[칼럼] 개인적인 연말 결산 (2) - 가장 빛나는 음악을 들려준 [가장 보통의 존재]  
상병 김예찬   2008-12-30 11:54:12, 조회: 438, 추천:0 


언니네 이발관 - [가장 보통의 존재]

[순간을 믿어요]로 부터 4년만인가요? 2008년 8월, 드디어 언니네 이발관의 다섯번째 앨범이 나왔습니다. 많은 언니네의 팬들이 그러했듯 저 역시 4집인 [순간을 믿어요]를 마냥 환영하지는 못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그들의 3집 [꿈의 팝송] 이후로 무려 6년만에 구입하게 된 언니네의 음반이 되었구요. 제가 [순간을 믿어요]를 좋게 들을 수 없었던 이유는 4집에 들어서 언니네의 음악이 더욱 화려한 멜로디와 좋은 짜임새를 보여주긴 했지만 3집까지 '일상의 우울'을 달래주었던 그들의 음악이 단지 웰메이드 팝으로 들리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장 보통의 존재]는 달랐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좋아하던 예전의 언니네로 다시 회귀했다, 는 건 아닙니다. 언니네의 1, 2집이 조금은 거칠지만 그만큼 순수하게 느껴지는 기타 리프가 가사의 내용에 역설적인 이석원의 보컬과 따로 또 같이 조화를 이뤄내며 아름다운 멜로디를 선사했다면, 3집은 이석원의 리드 아래 이제껏 따로 놀았던 밴드의 파트들이 하나로 응집되는 시기였다고 봅니다. <헤븐>이나 <2002년의 시간들> 같은 잘 직조된 곡들이 이 시기를 대표한다고 생각하구요. 4집은 더 나아가, 언니네의 음악 자체가 '이석원의 음악'으로 변해가는 과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석원이 4집을 통하여 얻고자 했던 성과가 무엇이었는지는 그 전작들 보다 더 화려하지만 그 구조상으로 단순해진 사운드와 귀에 쏙쏙 들어오는 훅을 통해 상상할 수 있겠죠.  4집 이후의 언니네는 멤버의 탈퇴도 있었고,(결국 복귀하기는 했지만) 이석원 개인의 신변에 관한 여러 루머들도 많았습니다. 이러한 진통을 거쳐 탄생한 5집은 언니네 이발관의 '이석원 체제'가 드디어 완성되었다는 느낌이 들게 합니다. 

표제곡이자 첫 트랙인 <가장 보통의 존재>부터 다섯째 트랙이자 언니네 스타일 팝의 완성이라 할 수 있는 <의외의 사실>까지 다섯 곡의 빛나는 연결은 [가장 보통의 존재]에 대한 언니네의 자신감이 단순한 '자뻑'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특기할만한 점은 앞 쪽의 세 트랙인 <가장 보통의 존재>, <너는 악마가 되어 가고 있는가>, <아름다운 것>에서 악기 사용이 최대한 절제된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이석원의 보컬이 다양한 시도를 보여주며 주 멜로디로 사용되는 <가장 보통의 존재>는 물론이거니와, 최근 라이브 무대에서도 보사노바 풍으로 편곡되면서까지 유독 보컬에 주의가 집중되는 <너는 악마가 되어 가고 있는가>나, 5집의 주력 싱글 중 하나이면서도 이제까지 언니네의 강점으로 여겨졌던 유려한 기타 솔로를 찾아보기 힘든 <아름다운 것>까지 마찬가지로 나타납니다. 이는 자연스럽게 듣는 이의 주의를 이석원의 보컬과 가사에 집중하게 만드는 효과를 발휘하는데, 덕분에 우리는 초반 부터 앨범 전체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가사의 흐름을 따라 갈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것은 또 한 언니네 이발관이 앨범 발매 시 "5집은 반드시 첫 곡부터 끝 곡까지 순차적으로 감상할 것"을 강조했던 것을 떠올리게 하구요. 5집에서 가장 다채롭고 화려한 기타 연주와 찰진 리듬을 선보이는 <의외의 사실>이나 출생 자체를 부정하는 암울한 가사와 이에 역설적으로 이석원의 낭창한 보컬이 대비되는 전형적인 언니네 트랙 <인생은 금물>, 여러모로 3집의 시도를 연상케하는 <나는> 과 같은 좋은 곡들은 앨범 감상의 집중력을 잃지 않게 해줍니다. 언니네의 음악 여정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보게 하는 마지막 트랙 <산들산들> 역시 좋은 마무리를 보여주고요.

저 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분들도 올 해의 음반 중 하나로 [가장 보통의 존재]를 꼽기를 주저하지 않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예 '올 해의 음반'의 첫 순위에 [가장 보통의 존재]를 올려놓기로 했습니다. 스스로에게 감사하게도 올 해 GMF2008을 통해 언니네 이발관의 5집을 첫 트랙 부터 끝 트랙까지 모두 라이브로 감상할 수 있는 행운을 누렸고, 이는 최근 몇 년간 '음악을 듣는다는 행위'를 단순히 일상의 BGM을 깔아둔다는 수준으로 무의식 중에 살아온 저에게 큰 쇼크를 준 계기였거든요. '음악 듣기의 소중함'을 다시 일깨워줬다는 면에서, 언니네 이발관 5집 [가장 보통의 존재]는 개인적인 2008년의 음반일 뿐만 아니라 제 인생의 음반 중 하나로 남을 것 같습니다.

제가 언니네 이발관 5집을 올 해의 음반으로 꼽는 것은 또 다른 상징적인 의미도 있습니다. 언니네의 4집이 나왔던 2004년은 음반 시장이 무너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긴 했어도 어느 정도 음악 소비자들의 지지력이 만만치 않았던 해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발매 되었던 서태지의 7집이 50만 장에 가까운 판매고를 올렸다는 것을 생각해봅시다. 언니네 이발관 4집도 2만 장에 가까운 판매량을 보이며 자평 타평 대중적으로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4년이 지난 지금, 2008년 한 해의 음반 판매를 돌아보면 안타깝기 짝이 없는 상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슈퍼 아이돌 동방신기가 그럭저럭 30만 장을 넘겼습니다. 공교롭게도 언니네 처럼 4년만에 앨범을 발매한 서태지 역시 싱글치고는 많이 선전했지면 결국 25만 장 판매에 그쳤습니다. 4년 동안 음반 시장이 이렇게까지 축소 된 것이죠. 하지만 어지간한 아이돌도 2만 장을 팔기 힘들다는 시대에 언니네 이발관은 2만 5천장 이상의 판매량을 보이고 있습니다. 앨범이 발매되었던 8월에는 그 달의 음반 판매 순위 14위까지 오르기도 했습니다. 언니네 이발관은 이번 음반을 내면서 매체를 통한 별다른 홍보를 하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온라인을 통한 음반에 대한 입소문이 음반 판매의 주 원인으로 분석된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언니네 이발관의 성공이 다른 뮤지션들에게도 음반 시장에 대처하는 방법에 대한 시사점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올 해가 온라인 상에서의 인기를 토대로 한 인디 뮤지션들의 도약이 유독 빛난 한 해였기도 하구요.

(다양한 방법으로 음반 홍보를 위한 '떡밥'을 뿌렸지만 정작 음반의 내용물이 부실하다는 이유로 이전과 같은 '신화'를 재창조하지 못했던 서태지의 사례가 떠오르기도 하네요. 물론 내용물이 부실하다는 것은 만원이 넘는 싱글 앨범의 가격에 비해 곡 수가 현저히 적었다는 뜻입니다. 음악 자체는 훌륭했다는 서빠의 변명입니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6
13:35:52 

 

일병 권홍목 
  어허허 마침 제가 지금 가장보통의존재 음반 듣고있었는데 이런 타이밍 좋아요 흐흐 2008-12-30
12:08:09
  

 

상병 김호균 
  진짜 이 엘범 듣고 또 듣고 장난아니게 많이 들었음. 정말 이거 물건입니다. 2008-12-30
13:18:51
  

 

상병 이지훈 
  공감에서 한 곡 듣고 반해버려, 앨범 꼭 사야지 했었는데 아직도 못 샀네요. 

언니네이발관도 그렇고 스웨터도 그렇고 오랜만에 앨범 나왔는데 

왜 하필 이 타이밍인지 허허 

잘 읽었습니다 

다음 결산은 뭔가요? 2008-12-30
13:28:26
  

 

병장 홍석기 
  노노. 올해 최고의 음반은 브로콜리 너마저의 [보편적인 노래] 라구요. (예산 부족으로 끝내 [가장 보통의 존재]를 지르지 못한 1인의 억지...) 

정말 올해는 온라인을 통한 입소문이 음반 시장에 강력한 영향을 발휘했던 해라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나 '장교주'신드롬을 일으켰던 장기하와 얼굴들은 정말 대단했죠. [싸구려 커피] 앨범의 일시 품귀 사태도 일어 났었구요. 

계속 딴소리만 하는군요.....이럴수가아아아 2008-12-30
13:35:39
  

 

상병 김요셉 
  지엠에프 이천팔. 
윤아누님을 도저히 버릴 수가 없어서, 셋째 날 대신 둘째 날을 선택했는데 말이죠. 셋째 날, 언니네 이발관이 [가장 보통의 존재]를 트랙 순서대로 전 곡 들려줬다는 말을 전해 듣곤 통탄의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2008-12-30
13:40:17
  

 

상병 김예찬 
  브로콜리너마저와 장기하와 요조 등등의 인디씬의 부흥과 관련해서 바로 다음 결산 글에 올릴 생각입니다. (이렇게 적어놓으면 찔려서라도 스스로 안 적을 수가 없겠죠?) 

<보편적인 노래>는 올 해 최강의 싱글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도 한 세달간 언니네 앨범만 계속 듣다가 저번 나들이 이후로 브로콜리를 열심히 파고 있습니다. 흐흐. 2008-12-30
13:42:01
  

 

일병 권홍목 
  요셉// 저도 설탕 일정때문에, 그리고 Yo La Tengo때문에 둘째날을 택했는데, 언니네이발관의 라이브를 전해듣고는 땅을 칠수밖에 없었다는... 2008-12-30
13:43:01
  

 

상병 김예찬 
  사흘 전부를 갔다온 저는 승리자입니다? 2008-12-30
13:44:20
  

 

일병 권홍목 
  예찬// 흥 그래도 전 펜타포트니 자미로콰이니 다 봤습니다. 1월에 <Once> 주연들의 내한공연도 보러갑니다 흥흥 

쳇..... 2008-12-30
13:49:40
  

 

상병 김호균 
  요조의 경우에는 인디씬에서는 빛나는 요정과 같은 존재였는데, 주류에 발을 
담그게 되면서 그 빛을 잃어버렸다고 봅니다. 반면 장기하씨는 오히려 주류에 
들어가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오히려 비주류의 방식으로 밀고나가서 대세가 되었죠.. 

하여튼, 다음글 기대하고 있겠습니다(웃음) 2008-12-30
15:24:51
  

 

상병 김요셉 
  ... 저는 패배자 
원스도 놓치는 저는 완벽한 패배자. 
그러나 삼월의 트래비스는 꼭 쟁취하고 말겠어요...흐흐 2008-12-30
15:54:15
  

 

병장 김민규 
  원스는 정말 놓치고 싶지 않은데... 흑흑흑 2008-12-30
16:11:07
  

 

병장 김동욱 
  사실을 전제로 얘기해, 그래야 후회없을테니까. 넌 원래 그런 사람이야. 자기밖에 모르는 그런 사람. 타인의 상처따윈 아무 의미없어~ (이건 뭐니?) 

올해 가을(?)밤을 함께 했던 음반인데 이렇게 또 만나게 되니 괜시리 반갑군요. 저도 이번에나온 브로콜리의 [보편적인 노래] 지르고파요...흑흑 2009-01-01
01:10:53
  

 

병장 박찬걸 
  올해는 인디가 좀 많이 뜬 해였네요. 브로콜리, 요조, 장기하, 언니네 등등. 뭐 그래도 알 사람들만 알지 엥간해서 알랑가 모르겠어요. 2009-01-02
07:10:25
  

 

병장 이동석 
  얼개에 딱 들어맞는 칼럼들- 잘 읽었습니다. 

그러나 올 해 최강의 앨범은 역시나 브로콜리 너마저... (흐흐) 2009-01-02
14:41:33
 

 

병장 이동석 
  물론 <가장 보통의 존재>를 들으며 이젠 노래가사와 경쟁해야할 시인들을 보며 잠시 묵념하기도 했습니다만, 낄낄 2009-01-02
14:42:25
 

 

병장 박상욱 
  쥐엠엪 사흘 갔다오고 yo la tengo와 30분간 이야기를 나눈 제가 궁극의 승리자인가요? 

농담이구요, 올해의 음반 후보에 
백현진이랑 검정치마를 빼면 섭섭하기에 지나가다 이렇게 댓글을 답니다!!! 
뭐 그래도 가장 많이 돌려들은 앨범이 언니네였다는 건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그나저나 인디씬의 성장과 메이저음악계의 계속되는 삽질이 맞물려 
바야흐로 인디의 르네상스 시대가 시작되는 건 아닌지, 조용히 혼자 생각해봅니다. 
(조용히 혼자 생각해야만 하는 이유는, 르네상스가 온다고 설레발치는 건 인디스럽지 않으니까요.) 2009-01-06
09:15:26
  

 

병장 이동석 
  허허허허허, 상욱님 이거 뭔가 압도적으로 승리하시는 느낌이군요. 

저도 백현진 콜- 
검정치마는 뮤직비디오가 마음에 안들어서 보류(농담) 2009-01-07
21:3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