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개인적인 연말 결산 (1) - 구라 2008  
상병 김예찬   2008-12-29 18:39:08, 조회: 372, 추천:0 


얼마 전 인터넷을 돌다가 [야심만만 시즌 2 예능선수촌]에 김구라가 나왔던 동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타이틀이 독 vs 독 vs 독 이라든가, 아무튼 신해철, 김구라, 유세윤 등 나름 독설가들을 모아본 방송이었던 것 같은데 그다지 특기할 만한 내용은 없었지만 김구라가 스스로 '젠틀구라'라고 주장하며 그 근거를 대는 장면이 인상 깊게 다가왔죠. 

일단 그 영상은 김제동이 한 때 흥신소 차렸냐는 말을 들었을 정도로 연예인들에 대한 별별 얘기를 다 알고 있는 김구라를 공격하면서 시작합니다. (이 대화는 제 기억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으로 실제 영상의 내용과 다를 수 있습니다.)

"구라씨는 남의 자동차 타이어 바뀐 것 까지 다 알아요. 전에 지석진씨가 차 바퀴를 갈았더니 아는 체를 하더라구. 다른 연예인들에 대해서 모르는게 없어" 

이 공격에 대한 김구라의 디펜스에서 부터 우리는 김구라의 현실주의에 대해 잘 살펴 볼 수 있습니다. 

"그게 말이지, 사람이 외제차를 타는 이유가 뭐야, 다 남들한테 자랑하려고 타는거잖아? 남들한테 자랑 안하려면 그냥 국산차 타면 되지 뭐하러 외제차 타겠어? 지석진씨가 외제차 타고 다니다가 바퀴 바꾼거 아니야. 그게 다 자랑하려고 그러는거야. 지석진씨, 차 바퀴 바꾸셨어요? 이렇게 내가 아는체 해주면 본인도 좋아한다구. 차 말고도 다 똑같아. 집을 샀다고 생각해봐. 이사하셨다면서요? 이렇게 아는 체 해주면 다들 좋아한다고. 내가 이렇게 아는 척 해주는건 다 그 사람들 생각해서 하는 소리야. 괜히 피디나 작가들이 날 젠틀 구라라고 부르는게 아니라니까? 나만큼 남들 생각해서 말하는 사람이 어딨어? 말이 나와서 하는 소리지만, 우리 프로그램 같이 했던 피디 선생이 딴 프로 맡아서 같을 때, MC들에게 돈 걷어서 피디에게 선물 하나 줘야 하는게 아닌가, 라고 말 꺼낸 것도 나야. 얼마나 젠틀해?" 

"아니, 그럼 왜 구라씨는 피디나 작가 분들한테만 젠틀하냐 이거죠."

"그걸 몰라서 물어? 그 분들이 먹고 사는데 도움이 되는 분들이잖아."

이후 이어지는 영상에서는 김구라가 역으로 야심만만의 '감동을 주는 명언 제조기', '착한 남자' 김제동을 공격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은연중에 가지고 있는 일상의 허위 의식에 대해 까발리는 김구라의 발언은 보는 이로 하여금 말초적인 쾌감일 줍니다. 실제로 [황금어장]의 코너인 <라디오 스타>는 막말과 게스트의 신상을 비꼬는 유머로 많은 시청자들을 확보하기도 했죠. <라디오 스타>에서 특히 활약한 김구라는 이미 디씨인사이드 코미디 갤러리에서는 '구라신'으로 불리우며 찬양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역시 익명성을 토대로 정치적 공정성 보다는 말초적 즐거움을 추구할 수 있는 대표적인 공간인 디씨인사이드에 김구라는 딱 어울리는 캐릭터기도 하지요.(솔까말 -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라는 디씨의 유행어 중 하나는 디씨인사이드와 김구라 모두에 어울리는 표현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한편, 이러한 김구라의 지나치게 솔직한 발언들은 기존의 예능 시청자들 일부에게 불쾌감을 주기도 합니다. 김구라의 반말 / 막말 방송 등에 대한 시청자위원회의 반발도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심한 편이구요.

유독 올 해는 김구라 뿐만 아니라 박명수의 막말도 여전했고 [개그콘서트]의 왕비호나 <독한 놈들>도 은근히 큰 인기를 얻는 등, 독설과 막말이 예능에 만연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올 해에 들어서 [절친노트]의 단독 MC를 맡게 될 정도로 대활약을 보이고 있는 김구라의 모습은 2008년을 살아가는 한국 사회의 시청자들이 예능 프로에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겠죠. 이제까지 건전한 방송이라는 명목 하에 은폐되고 금기시 되어왔던 것들에 대한 '솔까말', 이제까지 시청자와 방송사들 사이에서 암묵적으로 공유되어 왔던 '방송 윤리'라는 선이 무너지는 것에 대해 시청자들 스스로가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방송 윤리' 역시 사회적으로 합의된 기대치의 반영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았을 때, 이러한 현상은 한국 사회가 이정도 선까지 '무례해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구요. 저는 이러한 '무례'의 보편화를 부정적으로만 보고 있지는 않습니다. 수십년 동안 한국 사회의 공공 영역을 지배해온 중산층적 허위 의식을 해체한다는 점에서 재미있는 현상이라고 생각하고 있구요. 특히 온라인 매체에서는 이미 수 년 전부터 이러한 까발림이 공공연해졌음에 비해 방송으로 대표되는 오프라인 매체에서는 2008년에 와서야 이러한 경향이 생긴 것이 오히려 좀 늦은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물론 2~3년 전 부터 '노홍철'이라는 캐릭터로 대표되는 '솔직함'의 트렌드가 유행하긴 했지만, 이 때의 노홍철은 기성 사회에서 흥미의 대상은 될지언정 위협의 대상은 되지 못했죠. 노홍철이 입에 달고 사는 '형님'이라는 말이 한국 사회에서 위계의 일상화를 보여주는 언어라는 것을 생각해봅시다. 게다가 노홍철이 가지고 있던 '강남 중산층'의 이미지는 그의 저질성(?)을 순화시켜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김구라의 '솔까말'은 '자기 아들을 방송에서 팔아먹을' 정도로 노골적으로 현실주의적인 것입니다. 돈이 최고인 한국 사회에서 누구나 생각은 하고 있지만, 공공의 영역에서는 차마 내뱉지 못하는 그런 말들을 김구라는 시원스럽게 뱉어주고 있는 것입니다.

2008년의 한국 사회가 '경제 살리기'라는 노골적인 메시지로 출발했고, 결국 경제적 위기로 한 해를 끝맺게 되었다는 점을 돌이켜 보았을 때 한 해 동안 '먹고 사니즘, 돈의 논리'에 충실한 방송을 했던 김구라가 시청자들에게 배설적 쾌감을 주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중산층의 기호에 맞추어 지탱되었던 '예의 있는 방송 윤리'가 시청률에 밀려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생각해 볼 만 한 것 같구요. 이런 점에서 제가 매우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는 김구라의 활약이 언제까지 계속 될지 2009년에도 계속 지켜 봐야할 것 같습니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6
13:35:30 

 

상병 김예찬 
  연말 칼럼 시리즈 1탄입니다. 1탄은 원래 많이 부족한 법이에요. 다들 아시죠? 제가 생각하는 올 해의 예능인, 개념입니다. 

2탄은 제가 생각하는 올 해의 음반이 될 것 같습니다.. 2008-12-29
18:40:21
  

 

병장 김민규 
  푸하하, 짭짜름하게 와닿는군요. 라디오스타 나와서도 그러던데, 거기선 좀 더 노골적이었어요. 김구라는 '남의 집 부조'를 개그소재로 쓰는 사람이라고. 그 프로 출연진들이 단체로 솔까말이잖아요? 간만에 제대로 까이는 걸 보니 실실 웃으면서 더 후련하더이다. 

원래 김구라씨, 황봉R씨랑 딴지일보에서 노닥거렸던 걸로 기억하는데, 뒷쪽 분이 공중파에 어필하지 못한건 순전히 이름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종종 했더랍니다. 허위의식을 고발하는 <무례의 보편화>도, 결국은 공중파 심의라는 기득권들의 보편적 생각의 턱을 넘어야만 했나봐요. 

어찌보면 그런 일탈적이지만 그래도 <범주>내에 있는 당돌함이, 대중문화 자체가 지향하는 특성 내지는 목마름인지도 모르지요. 무릎팍 도사님은 안 그랬던가요. 예전 일밤에서 솔비가 그랬고, 시청자 혼내는 박사장은 어떻고요. 노홍철이야 사실 그냥 까불거렸고..... 2008-12-29
20:20:52
  

 

일병 이석재 
  올해의 사람들은, 허위의식을 타파하는 그 무언가를 좋아했던거 같습니다. 여의도 1번지 구중궁궐에서 사시는 어떤 분들에서부터 비롯됬다는 느낌이 들고 있습니다. 2008-12-29
21:30:56
  

 

병장 김동욱 
  놀러와였나. 김구라가 누가 선물해 준 자기 시계이야기를 하면서 모델명 이런건 모르고 그냥 5만원이라고 그것만 기억하면 된다고 하던게 떠오르네요. 누군가는 속물, 같은 말로 이야기할 지 모르겠지만 막상 어느 누가 그러한 것에서 자유롭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가장 아름다울(?) 것 같은 연인관계에서조차 몇만원 짜리 선물을 받았으면 그 정도 값 정도의 선물을 해줘야하는 게 당연해진 상황에서. 예찬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무례라든가 위신이라는 걸 들먹이며 말하기를 꺼리는 것들을 거침없이 툭툭 내던지는 그의 모습이, 우리들에게 '카타르시스' 같은 걸 준 걸 아닐지. 크크. 그건 너무 거창한가. 

근데 요새 완전히 티비가 버라이어티 일색이 되어버린 것 같아 씁쓸한 점도 없지 않아요. (뭐, 언제 안그랬냐고 하면 할말이 없긴 하지만) 티비 앞에 앉아서 하염없이 웃다가보면 이내 허무해진 제 자신에게 약간의 자괴감을 지불하는 일도 이젠 벗어나야 할텐데. 

그건 그렇고 이런 결산 참 좋네요. 음반~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2008-12-30
06:14:34
  

 

상병 이우중 
  앗. 연말 결산 제가 하려고 했는데(웃음) 
전 개인적으로 김구라씨가 싫어요. 
뭐 개인적인 호오를 여기서 이야기하는 건 웃기지만 

고등학교 때 들은 구봉숙 트리오의 불쾌함이 아직도 남아 있거든요. 
요즘 방송 나와서 독설이다 막말이다 하지만 그 정도야 충분히 용인할 수 있는데 
그 정도로 마이너에서 근거 없는 루머를 마음대로 부풀리고 확대 해석해 연예인들을 깐(?) 사람이 버젓이 티비에 나오는 게 영 거슬린다 이거죠 뭐. 

참. 민규님/ 황봉R씨는 김구라씨가 티비에 얼굴을 슬슬 비추기 시작할 때 개콘이었나 '황봉 선생'으로 아주 잠깐 나왔다가 들어간 걸로 기억해요. 허허허. 노숙자는 뭐하려나 2008-12-30
12:17:14
  

 

일병 배지훈 
  프리미어에서도 독설에 관한 리뷰가 써져있더군요, 

대세긴 대세인가 봅니다. 2008-12-30
12:41:09
  

 

상병 정근영 
  개인적으로는 동현군이 앞으로 어떻게 자랄지 무척 기대가 됩니다. 
아마도 조금만 더 자란다면, 자신의 아버지가 평가되고 있는 양 극단의 입장을 직간접적으로 접하게 되겠습니다만, 그것을 과연 어떤 식으로 받아들일까요. 
김구라 씨 부자의 실제 모습은 TV에서 비춰지는 그 이상, 이하도 아닐 것 같다는 점에서 저는 그들 부자가 긍정적인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쌓아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일단, 김구라 씨는 많은 다른 아버지들과는 다르게 아들에게도 있는 그대로의 솔직한 모습을 내비추는 것에 전혀 거리낌이 없어보여서요. 2008-12-30
13:24:11
  

 

책마을 
  상병 김동혁 
18.35.4.11 요즘 대세는 구라님이죠 (초성체) 

다음 글도 기대 할께요~! 2008-12-30 
09:32:37 2009-01-02
12:5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