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결혼했다. 
 병장 김현동 05-14 09:06 | HIT : 418 




 작년 6월에 썼던 글입니다. 재탕이죠(........). 밑에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길래 생각나서 올려봅니다. 이 글 쓸 때 뭘 믿고 이렇게 거칠게 썼는지는 모르겠는데, 아직까지는 대체적으로 스물둘이었던 제 생각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뭐, 그런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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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엽고 쾌활한 같은 학번 과 친구가 며칠 전 결혼을 했다. 돈 많은 집 자식이라 외제차를 끓고 다니던 그 애의 남자친구는 내 친구보다 세 살이 많고 어디에 이름을 대서 그리 부끄럽지는 않을 만한 대학교 법학과를 다니고 있다고 했었다. 가끔 멀리 다른 학교에 다니는 남자친구가 우리학교에 놀러 와서 데이트를 즐기고 있는 둘을 본적이 있는데, 둘이 죽고 못 사는 사이라는 느낌이 든 적은 없고, 그렇다는 말도 들은 적이 없다. 그런데 느닷없이 5월이 되어서야 결혼 발표를 했다. 당연히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사고 쳤구나! 였지만, 워낙에 엉뚱한 아이이고 또 두 집안의 조건도 맞는 것 같으니 굳이 사고 친 게 아니더라도 결혼할 만하다 싶다. 스물 둘 봄에 동갑내기 친구가 결혼 하는 걸 보다니. 이건 내가 작년 여름부터 하루에 커피를 20잔 씩 타게 된 것 이후로, 내 인생의 비망록에 전혀 예기치 못한 기록을 남기게 된 꼴이다.

 스물두 살에 주부가 된 내 친구. 아마 시부모님과 함께 살겠지. 조금 세련된 시부모님과 함께 산다면 내 친구는 남편과 함께 일어나 시어머니가 해주신 아침밥을 먹고 남편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학교로 가서 수업을 들을 거다. 수업이 일찍 끝나도 과방이나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가 남편이 데리러 오면 함께 집으로 갈 것이다. 집에 가서는 시어머니와 함께 장도 보고 저녁도 준비하고 청소도 하고 하겠지. 그렇게 남편이 졸업할 때 까지는 지낼 것 같다. 남편이 졸업 하면 집안에 돈도 많겠다, 부부가 함께 유학을 갈 거라는 생각은 누구나 할 만한 상상이다. 미국이나 캐나다 쯤 되는 외딴 나라에 둘이 함께 가서 알콩달콩 신혼살림도 차리고 공부도 하고. 어떻게 보면 내 친구의 결혼은 괜찮은 것 같기도 하다. 재미있을 것 같다.

 나는 굳이 떠벌리고 다니는 것은 아니라도, 누가 내게 결혼은 언제 할 거냐고 물어보면 결혼 안 할 거라고 이야기한다. 어린 내 생각에는 그냥, 아깝다. 그래서 자식은 안 낳을 거다. 내게 쏟을 에너지를 나눈다는 것이 아깝다. 어떻게 어떻게 후에 나이가 들어 생각이 바뀌어 실제로 내 자식이 생긴다면 물론 그 아이에게 무한정의 부정을 베풀겠지만, 아직 상상 속의 자식에게 나는 애정보다 냉정함이 앞선다. 물론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 거다. 사람은 고독을 숙명처럼 짊어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과 나누어 짊어지면 조금이나마 덜 무거울 거란 무책임하고 막연하고 근거 없는 기대가 있으므로, 사랑하는 사람과는 함께 살 거다. 하지만 결혼은 안 할 거다. 만약 한다면, 낭만적으로, 혹은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에서처럼 낭만을 적나라하게 패러디 하면서 미칠 듯이 유쾌하게, 평생을 함께 살아 똑같은 모습으로 백발이 된 사람과 결혼을 할 거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결혼의 의미는 쌍방에 대한 성기의 배타적 사용이라는 오래된 명제에서 단 한발자국의 발전도 없다. 몇 년 전 스와핑을 하던 여러 쌍의 커플들이 사회에 쓰나미적 물의를 일으켰었다. 사람들은 그들을 미친 년놈들이라고 욕하며 손가락질하고 매장을 시켰다.

 그들은 모두의 합의에 근거하여 한 것이다. 그들을 비난할만한 타당한 근거를 과연 우리가 가지고 있는가? 그들이 미성년자들이었다면 문제의 소지가 아주 조금(!)은 있을 수 있지만 그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들은 남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유롭게 행동할 권리가 있으며, 설령 미풍양속을 해치는 행위라 해도, 그 미풍양속이라는 것이 오래된 사회가 뚝뚝 흘린 진물의 결정이라면 그까짓 것 지근지근 밟아 터트려도, 눈살을 찌푸릴 만큼 조금 아프긴 할지라도, 괜찮은 것 아닌가. 나의 관점에서 그들이 받은 지탄과 몰매는 거룩하다. 오, 거룩한 순교자들이여.

 결혼이라는 것은, 부동산법이 그렇고 도로교통법이 그렇듯, 제도적인 필요에 의해 생성된 것이다. 동성동본(同姓同本)의 결혼이 이제 별 탈 없이 가능해진 것처럼 동성(同性)간의 결혼도 이제는 평범한 것이 되어 마땅하다. 합의가 있다면 지금의 결혼이라는 제도에서 연쇄적으로 발생된 수많은 권리와 의무를 포기할 수도 있는 것이며, 새로운 권리와 의무를 얹을 수도 있는 것이다. 부부가 서로의 성기를 개방적으로 사용하고자 한다면 그들과 같은 생각을 지닌 다른 부부와 함께 사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이 평생 서로를 책임지며 살아야 하는 것도 웃긴 일이다. 물론 지금의 우리 어머니 아버지도 그렇게 살아오셨다. 하지만 당신들이 그렇게 했기 때문에 다음 세대들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은, 이제는 예비역이 된 아저씨들이 우리도 구타 및 가혹행위를 당했으니까 니들도 당해야 한다고 우리에게 주장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지듯 평생부부라는 개념도 이제는 모든 개인에게 폭력적으로 적용시켜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자유 민주주의국가에 살고 있는 국민이다.

 개방형 결혼이든, 동성결혼이든 보편화되기에 힘든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거다. 하지만 보편적이지 않다고 해서 부도덕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어처구니없는 사고체계는 어디서 발생한 것인가. 부도덕은 비난받아야 한다. 하지만 일반적이지 않다고 해서 비난받는 사회는 이제 부도덕 이상의 비난을 받아 마땅하며 결국엔 폭파되어야만 한다.

 정작 내가 본 게 없어서 언급하기 민망하긴 하지만, 결혼은 미친 짓이다 부터 해서 바람난 가족, 요즘 개봉 중인 가족의 탄생까지 가족과 결혼을 열심히 해체하고는 있지만, 이 영화들을 읽는 사람들이 이것을 지금의 "우리 사회"로 인식하지 못하고 단순히 "픽션"으로만 치부한다면 우리 사회의 결혼이라는 제도는 성기의 구속이라는 냄새나는 의미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 같다.

 결혼의 대안으로 동거가 거론된 것도 이제는 꽤 오래되었다. 지붕에 비가 새고 기둥에서 삐그덕 삐그덕 소리가 나니 집을 고치지 않고 마당에 텐트를 치고 누워있는 게 어째 좀 이상한 모습이긴 하지만, 나도 구닥다리 모양의 결혼이라는 굴레를 쓰느니 차라리 동거를 하리라 마음먹고 있다. 현명하지 못한 법과 제도적 장치 때문에 자유로워야 할 인생이 억눌린다는 것은 얼마나 안쓰러운가.

 스물두 살 친구의 결혼 소식을 듣고 생각한다. 이 친구의 파격이,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는 것은 뒷담화의 지저분한 안주거리가 되는 사회에 대한 유쾌한 일격인지, 아니면 사회가 말하는 책임질 일에 부과된 의무를 억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인지 알 길은 없다. 바라건대, 나의 소중한 친구가 그저 자유롭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병장 박희원 
 하루에 20잔의 커피(...) 유후. 05-14   

 병장 박동일 
 좋은데요~ 05-14   

 병장 김지민 
 하지만 현동씨도 이미 알다시피, 동거는 결혼의 대용품이 될 수 없잖아요. 다만, 짝퉁이라고 해야될까, 뭔가 헐렁한 느낌이랄까, 아무튼 뭐, 일단 2세도 그렇고, 05-14   

 상병 이선열 
 제 친구들 중에서 가장 먼저 결혼할 것 같은 녀석이 이런 말을 했었죠. 
" 피임의 근대화로 인해 현대의 성관계는 문화적인 의미가 강하다." 라고요. 
 저도 나름대로 이 견해에는 동감하고 있습니다. 
 물론 제 친구가 못말리는 바람둥이나 카사노바라면 신빙성 0겠지만, 
 이 녀석은 자기 자신의 모든 것을 단 한 사람에게만 바치는 고집불통이거든요. 
 말과 행동이 왜 다르냐고 제가 언젠가 말했었던 때가 있었는 데, 
" 내가 그러고 싶으니까. 하기 싫은 것을 사회가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라도 되지만, 자기 자신이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는 것은 바보에 불과하잖아?" 라고 하더군요. 
 아무튼간에 멋진 녀석입니다. 
 이름 모를 친구 분의 결혼생활에 축복이 있기를. 
 그리고 앞으로 근시일내에 결혼할 것 같은 제 친구에게도 축복을. 05-14   

 상병 조진 
 오호. 결혼에 대한 제 생각을 마치 필사하듯 적어놓은 것에 신기할 따름입니다. 생각만 하면서 표현을 못하는 저에 비하면 정말 표현력이 굉장하시단 느낌도 듭니다! 

< 아내가 결혼했다>나 <결혼은 미친짓이다>의 내용이 저의 결혼관 해체에 일조했죠. 

 제 짧은 소견으로는 이 문제는 여성의 권리신장이 지금보다 조금만 더 이루어진다면 (전 조금도 페미니스트가 아닙니다만) 그나마 현재사회의 보편적 결혼관이 많이 느슨해질거란 생각이 듭니다. 모노가미/폴리가미의 문제는 어느사회나 한 때 뿌리째 박혀버린 이데올로기의 문제일것입니다. 이런 거대담론을 제가 함부로 왈가왈부하는 것조차 조심스럽네요. 엉뚱한 이야기 일지는 모르지만, 이런 이야기를 하기에 간통법이 존재하는 우리나라는 왠지 씨알도 안먹힐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하하) 05-15   

 상병 이기중 
 왠만한 사람들은 빚을 내야 집을 사는 한국 사회에서는 내 집 마련을 위해서 결혼은 필수랍니다. 동거커플에겐 대출에 제한이 많아요. 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