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글-일상이야기] 물이 반 남은 컵  
병장 정현진   2008-12-17 12:11:26, 조회: 208, 추천:0 

  교육의 양면성은 변화하려 하지 않는다. 오늘만 해도 그렇다. 교육 참석은 한 시간 삼십분이라는 시간을 잡아먹어 줄 테지만, 그렇다고 내 일을 누가 대신 해 주는 건 아니다. 잠깐의 휴식을 즐기고 일에 매진할 것인가, 아니면 포기할 것인가. 갈림길에서 열어보라고 비단주머니를 줄 책사 하나 없는 탓에 나는 혼자 고민해야 했다. 하지만 그런 개인적인 고민과 의지에 상관 없이 어느 쪽이 더 이익이 될 것인가 - 라는 저울은 순식간에 기울고 말았다. 끌려가게 됐다. 어찌되었든 나에게 선택권은 주어지지 않았던 게 분명하다. 이런 사실조차 간과하고 있었다니. 가슴 아픈 실수다. 덕분에 쓸데없는 당분만 소비하고 말았다.

  전직 스튜어디스의 강의는 매끄럽게 진행되었다. 강의 전 손담비의 뮤직비디오와 김연아의 갈라쇼를 보여 준 건, 순전히 우리들의 시선을 빼앗기 위해서라는 게 명백해 보였기 때문에 나는 소심한 저항을 하고 있었다. 강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곳은 성당이었는데, 나는 비치되어 있는 성경을 읽고 있었던 것이다. 제 3자의 입장에서 이 장면을 상상하며 키득거렸다. 성당에서 손담비는 춤 추고 노래를 부르고 나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성경을 읽고 있다.

  시선은 파워포인트와 강사에게 두고 있었지만 내 머리 안에는 쓸데 없는 생각으로 가득해졌다. 일에 대한 걱정이 그 절반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아무래도 저항할 걸 그랬나 싶었지만 이내 잡생각이 한 순간에 사라졌다. 내 앞에는 어릴 적부터 수도 없이 보아 왔을, 그 물건이 있었다. 물이 반 남아 있는 컵. 머리는 마치 불교의 도를 모두 깨우친 것처럼 무(無)의 상태에 접어들었다가 온갖 망상을 불러 일으키고 있었다.

  순간 강사의 말소리가 희미해졌다. 무슨 말을 할 지는 뻔하다. <긍정적인 생각>이 주된 내용일터다. 대답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열정적인 청강생들의 목소리도 희미해졌다. 그들의 이야기도 뻔하다. <물이 반이나 남았다>라고 외쳐 보고 있는 것일 테지. 그들은 강연자의 의도를 파악하고 있음을 그렇게도 어필하고 싶었나 보다. 하지만 여기 앉아 있는 사람들 중 거의 모두가 그럴텐데. 이래서는 희소성이 없다. 여기서 <물이 반이나 남았다>라고 동조하고 싶은 생각은 그런 식으로 말끔히 사라졌다. 설탕 먹을 때 궁에 대한 그리움만큼이나 말끔하게.

  과연 <물이 반이나 남았다>가 <물이 반 밖에 안 남았다>보다 바람직한 것일까. 나는 끊임없이 <물이 반이나 남았다>고 내 자신에게 속삭여 봤다. 물이 반이나 남았다. 물이 반이나 남았다. 결과는, 별 거 없다. 정말 물이 반이나 남아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더 이상 여기서 내가 할 일이 없었다는 게 문제였다. 그냥 있으면 된다. 물은 아직 반이나 남았으니까. 허나 <물이 반 밖에 안 남았다>는 그것과 다른 색다른 문제가 있었다. 뭔가 물을 더 채워야 한다는 사명감이 채워지고 있었다. 상황에 안주하는 것과 상황을 변화시키려고 하는 것. 둘 사이에는 중대한 차이점이 있는 게 명확했다. 변화를 주도하고 변화를 피부로 느끼는 것은 요즘 세상의 중요한 덕목임을 나는 익히 알고 있었기에, 이것은 내가 걱정하는 것보다 심각한 일이 될지도 모른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나는 자리를 박차고 마이크를 뺏고 싶었다. <물이 반이나 남았다>라는 것은 그대들을 그 자리에 안주하게 만들지만 세상을 바꾸는 것은 <물이 반 밖에 남지 않았다>라고 볼 줄 아는 회의주의자가 될 것이라고. 변화를 주도하여 성공하고 싶으면 물은 언제나 반 밖에 안 남았다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외치고 싶었으나,

  강의 주제는 그새 또 변했다. 나는 그저 재판장을 나오는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입장이 되어 "허허허허, 이것들아. 그래도 물은 반 밖에 안 남았다." 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물론, 정확하게는 <물이 반 남았다>이다. <물이 반이나 남았다>와 <물이 반 밖에 남지 않았다>라는 식으로 어째서 가치판단을 하게 되어 버린 건지는 알 수 없다. 누구의 세뇌인지, 혹은 누구의 음모인지 알 길이 없다는 게 답답할 따름이다. 분명 물은 반 남아 있는데, 아주 어릴 적부터 우리는 그 컵을 보는 순간 두 가지 명제를 떠올리고 만다. 물이 반이나 남았다라는 극과, 물이 반 밖에 남지 않았다라는 정반대의 극으로. 재미있는 일이다. 정말 객관적이고 상황에 걸맞는 <물이 반 있네>는 사라졌다. 어째서 중간, 중립, 중도는 사라졌는가. 그리고 객관, 냉정, 있는 그대로 또한 사라졌는가. 누가 이러한 쓸데 없는 가치판단을 종용하고 있는가.

  누가 어떤 목적으로 이 컵을 만든거지. 누가 시작했단 말인가. 이 컵은 실로 무시무시한 것일지도 몰라.

  주위의 모든 소리는 희미해지고 내 생각은 끝도 없이 뻗어 나가고 있는데 어느 때 파워포인트마저 꺼졌다. 그렇게 강의가 끝나는 동시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졸린 듯한 아이들의 모습이 보였고 그와 동시에 내 생각도 종료되었다. 나는 나가는 길에 정수기에서 물을 컵에 딱 반만 따라 마셔 보았다. 아쉽게도 별로 느껴지는 건 없었지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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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6
13:02:09 

 

상병 김무준 
  가지로. 

누가 그랬죠. 저 컵에 담긴 물이 설탕 물일까, 소금 물일까, 아니면 사이다일까. 요즘은 그런 고민하고 살고 있습니다. 2008-12-17
12:51:05
  

 

병장 양 현 
  그렇게, 계속 딱 반만 따라 마셔 보면은 느껴지는게 있을지도 몰라요. 
지금 당장 그 순간에만 느끼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은 별로 느껴지는게 없는것일지도 몰라요. 
마치, 계속해서 반식을 하다 보면 느껴지는게 있는 것 마냥 말이죠. 2008-12-17
12:54:55
  

 

상병 이우중 
  이미 그 이야기는 '컵에 담긴 물은 마셔서 없애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고 생각해요. 

현진님 말대로 물을 채울 수도 있는 거잖아요. 허허허. 
가지로 2008-12-17
12:55:52
  

 

병장 정현진 
  '마셔서 없애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를 어째서 생각해 내지 못했을까요. 꽤 당연한 명제를 잊어버려서 글이 부실해진 듯해 안타까워요(흑흑). 왜 마신다는 게 아니라, 채워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는지 음모론을 펼쳐 봤으면 훨씬 재미있었을텐데. 2008-12-17
16:38:00
  

 

병장 박성훈 
  어설픈 긍정은 때로 자기 위안이나 때로 억지로 합리화 시키는 약자의 모습을 연상시키죠 

무튼 저는 10분의 1도 안남았습니다.(응?) 2008-12-18
08:38:54
  

 

병장 이동석 
  그냥 물은 반 남았을뿐입니다. 

가지로. 2008-12-18
09:22:25
 

 

병장 이동석 
  저 비유-를 꼭 진부하고도 상투적으로 쓰는 교육만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자기계발서나 뭐 그런 류-를 싫어하는 까닭도 저런 빤함-에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2008-12-18
09:26:06
 

 

병장 고은호 
  응? 이 글을 왜 이제야 읽게 되었는지. 
현실에 만족하는 사람에게 더이상의 변화를 위한 노력은 찾아보기 힘들죠. 

그래서 '안분지족'은 아직도 저에게 어려운 화두랍니다. 
어느 쪽이 나 자신을 위해서 좋을런지... 

궁에서 나가는 날까지 고민해봐야겠습니다. 2008-12-23
01:56: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