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글-일상이야기] 당신의 노래를 들려주세요
상병 정근영 2009-02-11 09:28:26, 조회: 480, 추천:2
무준씨의 발화가 시작된 지난 금요일부터 손이 근질근질 하는 것을 참으며 애써 오늘까지 기다려왔다. 그것은 앞으로의 진행이 궁금하기도 했을 뿐더러 나 스스로도 명확한 입장을 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점점 어지러워지고 있는 책마을을 개혁하고 싶다는 마음도 강했지만, 그것 못지 않게 열린 공간으로서의 책마을을 지향하고 싶다는 의지 또한 강했기에 나는 섣불리 <찬성>, <반대>를 외치지 못하고 그냥 오가는 논의들을 열심히 읽어나갔다.
그런데 왠일인지, 읽으면 읽을수록 화가 났다. 석기씨 말마따나 무보수로 책마을을 아름답고 더더욱 가치있게 만들고 있는 몇몇 주민분들이 그토록 대화를 부르짖을 때는 코빼기도 하나 안 보이더니, 쫓겨날지도 모를 상황이 되자 그제서야 나타나서 살아남고픈 욕구에 <반대>를 외치는 모습에도 화가 났고, 그 이유가 '그들만의 리그'니 '글 못 쓰는 사람을 몰아내려 한다'느니 하는 터무니없는 개소리(이건 개소리가 맞다. 해성씨의 '공 좀 찹시다'와 두환씨의 '글쓰기의 도의', 민규씨의 '당신의 책마을은 무엇입니까'와 '사막 한가운데의 프로슈머 경제를 꿈꾸다' 와 같은 글들에서 도대체 어디에 '글 못 쓰는 사람은 좀 닥쳐라'하는 뉘앙스의 문장이 쓰여져 있단 말인가. 그것은 자기시간을 줄여가면서까지 이 공간을 아끼고 사랑해온 이들에 대한 배신이며, 더할 수 없는 모욕이다.)였기에 화가 났고, 서로의 사유를 나누고 책마을에 넘쳐나는 좋은 글들과 관물대에 쌓여만 가는 책들을 읽기도 바쁜 내가 이런 쓸모도 없고 소모적이기만 한 논의를 도대체 왜 읽고 가슴아파해야 하는 건지도 화가 났다. 책마을에 글을 올리고, 댓글을 달고, 좋은 글들을 읽으면서 감탄하고, 이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내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밤 늦은 시간까지 머리를 싸매면서 ‘책마을의 모습’에 대해 글을 써야 한단 말인가. 무엇보다도 이 공간을 심심풀이 땅콩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무런 관심도 없는데 책마을에 각별히 애정을 가지고 이 공간을 지속시키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상처받고 아파하는 것 같아 화가 났다. 도대체 누구에게 그들을 아프게 할 권리가 있단 말인가.
그래, 나도 처음에는 모니터 뒤에 숨어만 계시던 많은 분들이 꽤나 활발하게 피드백에 응하는 것을 보고 긍정적인 모습이라 생각했다. 그것이 비록 기분좋은 계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지라도 이렇게 작은 목소리나마 내주실 분이 있다는 것에 감사드렸다. 그런데 소통할 수 있는 타자를 또 한 명 찾아냈다는 기쁨도 잠시, 여기저기서 '나 여기있소'하는 소리들이 아우성치기 시작했다. 이 사람이 어떤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지 확인할 겨를도 없이 이 때가 기회다 하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노래를 불러제끼고 있었다. 나에게는 이 사람이 맑고 청아한 고음을 가졌는지 매력적인 중저음의 보이스를 가졌는지 두세곡 정도의 노래를 들으면서 그 사람을 확인할 시간이 필요했는데 다들 한 소절씩만 부르고 빠지는 바람에 처음 소녀시대를 봤을 때처럼 누가 누군지 알 수도 없었고 혼란스럽기만 했다. 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는 사실만큼은 충분히 바람직한 일이었지만, 남들의 노래와 어떻게 어울릴지는 전혀 생각도 안 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데에만 치중했던 그들은, 책마을의 이상적인 모습에 대해 어느 정도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던 기존의 사람들이 아름다운 화음으로 노래를 시작하자 곧 그 노래에 묻혀버렸다. 나야말로 아름답고 매력적인 그들의 노래를 무조건적으로 지지하는 한 사람이지만, 지금 또 다시 진행되고 있는 연재게시판과 회원정리에 대한 추기적인 논의들이 투표에 참여했던 모든 이들의 의견을 반영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대통령 후보가 9명 있는데 1번에게는 세 표가 모이고 나머지는 각각 한 표씩 여덟 표로 나뉜 것. 30%도 안되는 소수의 의견이지만 민주주의의 특성상 조금이라도 표가 더 많은 쪽으로 결론이 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비록 이 쪽 소수의 입장이더라도, 이 논의가 과연 그렇게 생산적인 토론이었는가에 대해서는 고개를 저을 수 밖에 없다. 다만, 하나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아직 조화롭게 어울리지는 못하더라도 책마을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계속적으로 대화에 참여하려는 의욕을 가진 사람들을 뒤늦게나마 이끌어냈다는 점일 것이다.
# 글쟁이는 글로 말한다
현식씨와 수식씨는 어쩌면 이 상황이 '좋은 글'을 쓰지 못했던 우리 모두로부터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댓글을 남겼다.(여기서 말하는 좋은 글이 '글의 수준'을 뜻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 글을 보고 나는 뒤통수를 맞은 듯 머리가 멍했다. 그것이 나의 책임이기도 하고 당신의 책임이기도 하고 우리 모두의 책임이기도 하다는 것은 결국 우리가 서로 끌어안고 끝까지 함께 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나는 논의에 참여하는 대신 나의 글을 쓰는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우리가 모두 같은 마음으로 책마을의 글쓰기 버튼을 눌렀다면 애초에 이런 상황이 발생하지도 않았을테니, 미약하지만 나부터라도 활발히 논의에 참여하는 대신에 나 자신의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사실, 가시적인 결과를 기대하는 이런 논의들이 별 실효성이 없다는 것을 우리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것이 무용하다는 말은 절대 아니지만, 활발히 논의에 참여하고 계신 분들을 격하하는 것 또한 절대 아니지만, 결국 이 논의 또한 허공에 대고 소리치는 꼴이 될지도 모를 거라는 걱정이 벌써부터 내 마음을 짓누른다.
책마을에 입주한 그 순간부터, 우리는 모두 잠재적 글쟁이다. 여기서 말하는 글쟁이가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을 지칭하는 것은 물론 아니고, 텍스트로밖에 자신을 드러낼 수 없는 이 공간에서 글이 바로 그 사람을 대신한다는 의미로 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이 쓴 글에 대해 충실해야 하고, 솔직해야 하며,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자신에게조차 부끄럽고 민망한 글이라면, '부족하지만 너그러이 이해해주세요'라는 뱀발을 붙일 거라면, 그런 글이라면 아예 올리지를 말아 달라고 말하고 싶다. 자기 자신도 확신을 갖지 못할 글을 마구잡이로 올릴 정도로 이곳 책마을이 만만하게 보였다면, 그건 큰 착각이다. 이 글을 쓰는 당신은 그러고 있느냐고? 물론 내 글쓰기가 부족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백번 인정을 하지만, 적어도 내 글에 대해서 부끄럽지는 않다. 왜냐하면, 짧게는 4~5일, 길게는 2주일 정도에 걸쳐 매일 12시까지 연등을 하고, 머리를 싸매가면서 썼던 글들이기 때문이다. 글 하나 쓰면서 왜 그렇게 번거로운 짓을 하냐고? 이 곳 책마을은,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남들이 어렵게 어렵게 쓴 글을 5분만에 읽으면서, 자신은 하루에 한 시간도 책마을에 글을 올리기 위해 투자하지 못한다면, 그건 이기적인 짓이다. 자신은 좋은 글을 쓸 수 없다는 말은 핑계에 불과하다. 오늘이라도 밤에 책상에 앉아 한 시간이라도 내가 책마을에 어떤 글을 쓸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자. 당신이 생각해왔던 어떤 사유라도 좋고, 당신을 감동케했던 어떤 책에 대한 글이라도 좋다. 그렇게 3일만 투자하더라도, 최소한 당신에게 부끄러운 글이 나오지는 않을 거라고 난 확신한다. 서로에 대한 이해는, 이때부터 비로소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바로 그것이 우리가 그토록이나 바라던 '책마을'의 모습이자, 그토록이나 부르짖어왔던 '소통'에 다름아닐 것이다.
당신이 피처링으로 참여한 노래도 좋고, 우리 모두가 부르는 '하나되어'도 좋지만,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당신의 18번이다. 부디 들려다오. 당신의 깊은 사유와 치열한 고민을. 당신을 감동케했던 책을. 당신을 변하게 만들었던 순간을. 오직 당신만이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를.
뱀발 1. 위에서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논의들이 별 쓸모가 없다는 뉘앙스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공지로 올라와있는 연재게시판과 회원정리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 더 나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혹여 불편하셨다면 죄송합니다.
뱀발 2. 저는 앞으로 책마을의 발걸음과 행보에 관한 글은 일체 쓰지 않을 거라고 약속드립니다. 저에게는 그럴 능력도 없을 뿐더러,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저의 목소리를, 저의 노래를 들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내글내생각과 독서후기로 찾아뵙겠습니다.
뱀발 3. 덧붙여, 저는 모든 게시판의 더블엔터글을 반대합니다. 더블엔터는 행간의 호흡을 조절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어야지, 글의 양을 늘리기위해 이용되어서는 안됩니다.
뱀발 4. 내글내생각이 맞겠지만, 많은 분들이 봐주셨으면 해서 일상이야기로 올립니다.
* 책마을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9-02-13 03:15)
20.3.1.47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10
09:44:57
병장 김민규
22.34.42.32 가지로 2009-02-11
09:34:48
상병 이동열
22.36.32.21 이제야 저의 행적을 말씀드린다는게 웃기지만- 11월 이후 뜸했던 것은 저의 외침이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새해를 맞아 미력한 제가 날뛰고 있는것은 뭐랄까- 지금 상황에 대한 반발이었습니다. 주변상황이 혼란스럽더라도 나의 글을 생산하겠다는 생각으로 임했던 것입니다. 근영씨의 글을 읽어보며 새삼 제 자신을 추스립니다.
사족. 역시 시간논리에 쫓긴 제글보다 좋군요. 흐흐. 2009-02-11
09:46:43
병장 김도환
18.65.3.98 딱히 드릴말씀 없네요.
가지로 2009-02-11
09:50:15
상병 김요셉
20.17.2.32 <가지로>
저도 이제 좀 써 볼랍니다. 2009-02-11
10:02:21
상병 이동열
22.36.32.21 아참, 저도 깜빡했군요. 가지로라고 외치는 것을-
가지로 익스프레스입니다(웃음) 2009-02-11
10:04:15
상병 김예찬
48.9.2.115 좀 더 많은 분들이 읽을 수 있도록 좀 남겨 둔 후 나중에 가지로 보내겠습니다. 2009-02-11
10:11:30
일병 오효섭
7.5.1.143 <가지로>
잘읽었습니다- 2009-02-11
11:06:03
일병 송기화
22.80.6.58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2009-02-11
11:21:24
병장 홍석기
54.1.37.124 뱀발 2에 동의. 내글내생각을, 독서후기를 나누어보는 책마을이 하루빨리 보고싶네요.
가지로- 2009-02-11
13:24:19
상병 손근애
8.151.3.59 좋네요.
읽으면서, 제가 올린 소통에 대한 글이 기우에 불과하지 않나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이런 글이, 이런 모습이, 책마을의 본 모습이겠지요. 추구하는 방향일테고요.
가지로. 2009-02-11
13:36:48
병장 최동준
22.17.150.134 과감한 글 마음에 드네요. 그런데 약간 안타까운게 있다면
취지는 "그들만의 리그 소리 내뱉기전에 글부터 잘쓰고 봐라!"인것 같지만, 글 쓰기 싫어질정도로 집단에 대한 이질감을 느끼진 않을까 조심스레 걱정하는 글입니다. 2009-02-11
14:43:23
병장 김민규
22.34.42.32 동준/ 책마을은 동아리입니다. 취향적 동질감을 느낄 때라야만 들어오기로 결정하는 것이 백번 옳습니다. 온라인의 편리가 가벼움으로의 전환이 되어서는 안될 겁니다.
오프라인 학회 들어갈 때는 그렇게 안 하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