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글-얼개] 타인의 삶, 타인의 고독  
병장 문두환   2008-12-08 17:03:56, 조회: 258, 추천:3 



   # 1. 

   막차시간이 다 되어서야 출입구로 몸을 밀어 넣고 환승역 계단을 힘겹게 뛰어 올라 다시 덜컹거리는 지하철에 올라타 늘 찾아가는 그 자리, 그러니까 매일 타는 지하철은 다를 법 하지만 항상 찾아가는 자리가 있다. 길게 늘어진 좌석의 끝에서 웅크린 벌레처럼 철봉에 매달려 잠이 들었다가 -간혹 깜박 더 졸다가 내릴 역을 한참이나 지나치는 경우도 허다했지만- 26분이 지나면 나의 조그만 보금자리에 다다르게 된다. 터벅터벅 지하철역 계단을 올라와 사방을 두리번거리다 보면 그때서야 자신들의 조그만 삶의 터전을 정리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이들이 있다. 코끝으로 스산한 도시의 밤공기가 스쳐가고 어느새 허물어진 화려한 네온사인 불빛 사이를 지나 언덕을 올라가는 길이 내가 가야 할 곳이다. 그 날도 막차를 탔던 날이었다. 결코 이른 귀가시간도 아닌데 누군가가 내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몸빼바지를 입고 자신의 몸집보다 서너 배는 될 법한 수레를 언덕 위로 끌고 올라가는 할머니였다. 처음에는 그 모습을 그저 멍하니 지켜만 보다가 결국에는 나도 모르게 따라붙었다. 어르신, 댁이 어디세요?



# 2. 

   97년의 경제위기를 기점으로 우리사회의 불평등(상 하위 계층 간의 평균값 격차)과 양극화(상 하위 계층 간의 분포도의 측면) 문제가 심해졌다고들 한다. 생계형 자살이 늘어나고 보험금을 위해 자식의 손가락을 자른 ‘비정한 아버지 사건’을 계기로 우리사회의 복지와 재분배 문제가 새삼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제기되기도 했었다. 과거에는 일을 하면 빈곤이 어느 정도 해소 될 수 있고 경제성장을 통해 파이를 키우면 낙수효과로 인해 자연스레-완벽히는 아니더라도-빈곤을 퇴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져왔다. 그렇게 벌써 30여년이 흘렀다. 이제는 일을 해도 가난을 벗어날 수 없는 근로빈곤층(Working poor)-이것은 ‘신 빈곤’으로 통칭되고 있다-의 문제는 일상에서 심심치 않게 들어볼 수 있을 만큼 보편화 되어 있다. 언론에서는 때만 되면 입을 모아 위기, 위기라고 하니 정말 위기인 것 같긴 한데 그래서 뭘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적절한 대안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는 도무지 나오질 않는다. 현상의 원인이나 인과적 관계에 대한 고찰보다는 눈에 보이는 현상 그 자체에 대한 노골적 관심이 두드러졌을 뿐이다.

   엉겁결에 대학을 갔다. 세상은 지구의 자전 속도만큼 빠르게 회전하는 것 같았지만 나는 여전히 제자리에 서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살아가는 이 삶이 나의 인생인 것은 분명한데, 나는 항상 나의 인생에서 선택지를 뽑아들지 못했고 행여나 어떤 선택권이 부여된다고 하더라도 우유부단하게 타인의 의견을 맹신해 버리기 일쑤였다. 그런 나에게 2003년은 꽤나 큰 충격을 안겨준 해였다. 새해벽두부터 시작된 변화에 대한 희망은 곧 실망으로 바뀌어갔다. 인권옹호자임을 자처했던 그가 故 배달호씨가 ‘악랄한 Doo山!’을 외치며 죽어가고 故 김주익씨가 고공크레인 위에서 목숨을 건 아찔한 행진을 이어가며 종국에는 목을 매어 자살하는 것을 두고 '요즘같이 민주화된 시대에 그런 폭력적인 방식으로 자기의사를 표현 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는 말을 언론에 터뜨렸다. 그런 말을 뱉어낸 것이 어디 그 하나뿐이었겠는가. 한 달에 몇 백쯤이야 우습게 아는 이들의 눈에는 몇 푼어치 되어보이지도 않는 월급 9만원을 올리기 위해 고공 크레인 위로 기어 올라간 그 사내가 얼마나 기이해 보였겠는가. 



# 3.

   글을 썼다. 아니 원고를 썼다. 그것이 이 질식할 것 같은 사회에서 힘없고 가난하게 살아가는 내 부모님 같은 분들을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논하고 제도적 한계에 분개했고 책을 들고 토론을 하고 술을 마시면서 시대에 대한 유감을 마음껏 토해냈다. 


           고민의 깊이가 성취의 높이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며
           방황의 길이가 성취의 크기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고민과 방황을 겪은 것만이
           진정한 나의 것이 될 수 있으며 고민과 방황은
           나 자신을 성찰하게 한다. 
                                                    <신영복>


   난 보기보다 얼굴이 두껍지 못해서 지난 시간 내가 겪었던 갈등이 방황이었다고 감히 말할 수 없다. 이건 예의바른 척 하는 겸손도, 자학도 아니다. 깊이 있고 진중성 있게 삶의 문제와 사회적 현상을 바라보지는 못했던 스스로에 대한 반성일 뿐이다.

   짧고 굵게 대학생활을 마치고 학교를 떠나고 나서 돌아보니 어쩌면 난 타인의 삶의 문제를 너무 단순하게 생각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땐 나의 고민에 치열-이라는 수식을 붙이고 나의 노력을 열정이라 표현했었다. 하지만 대안을 찾아가기 위한 노력은 언제나 98%가 모자랐다. 어떻게 해야 한다는 심정적 동의가 하나의 주의主義와 이상처럼 보이긴 했으나 그것은 프로파간다의 다른 이름에 불과했다. 나는 도덕의 그림자를 따라가기에 급급했던 것이었다. 글을 쓰고 다듬고 한 권 한 권 책을 낼 때에도 당위를 역설力說하는 것에만 열중했다. 다른 이의 의견을 귀담아 듣는 것 같았지만 실상 스스로의 영역은 터럭만치도 양보하지 않았다. 세상을 알아가기 위한, 진정한 의미의 소통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 4 

   한 동안 글을 쓰지 않다가 책마을에 접속하면서부터 펜을 다시 잡기 시작했다. 이곳의 글을 보면서 알게 되었다. 이 폐쇄적인 공간에서 끝없이 정서적 교감을 지향하며 자신의 고민을 치열하게 풀어내는 글들을 보면서 나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그리고 그것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이어졌다. 

   무엇을 할 것인가? 이제 이 끝없는 행위에 대한 물음에 스스로 대답할 때가 된 것 같다. 사회 속에서 생겨난 인간이 사회 그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이 배회하게 되는 것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완곡어법을 동원하여 표현하자면 모든 것이 화폐의 가치로 환산 되어버리는 이 기가 막힌 현실에서 인간은 그저 ‘대상’과 ‘수단’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비틀거리며 나아가는 시대에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은 바로 사람에 대한 사랑임을 나는 확신한다. 

   왜 글을 쓰려 하는가? 또 하나의 껍질을 벗겨낸다. 세상 모두가 행복해 질 수 있는 절대적인 진리는 없다. 결국 돌고 돌며 순환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공명하게 되어 있는 이 세상의 구조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는 방식을 배워가는 '과정'이 있을 뿐이다. 이제 다시 펜을 든다. 과거에 내가 범한 오류처럼,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하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그대들로부터 소통의 의미를 배워가기 위해 글을 쓰려고 한다. 우리는 그간 쌓아왔던 숱한 이야기들을 어스름한 새벽을 뚫고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나눌 것이고 어느새 함께 울고 웃으며 서로를 보듬어 안고 있을 것이다. 비로소 오롯이,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책마을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8-12-09 13:10)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6
12:56:11 

 

병장 정병훈 
  일단 이런 글을 읽게 올려주신 두환님께 감사를 표해야겠군요. 

두환님은 원래 글을 좀 쓰신 분 같군요. 글에서도 얼핏 나오구요. 그러나 책마을에 들어서면서 글을 쓰기 시작한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뭐 이 멋진 얼개에 서로간의 사소한 얘기는 사실 부끄러우니, 기회 되면 다른 글로 만나죠. 

적어도 저의 경우는, 책마을을 통해 사람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느껴지십니까? 
하하하.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2008-12-08
17:44:32
  

 

병장 이동석 
  이 말밖엔 할수 없습니다. 가지로, 

여기에서 남은 시간은 얼마 안되지만, 그 뒤에도 우리에겐 함께 할 날들이 많기에 더욱 기대할수 밖에 없습니다. 2008-12-08
19:00:22
 

 

병장 김민규 
  사랑을 위하여, 가지로 2008-12-09
00:10:15
  

 

병장 고동기 
  가지로 2008-12-09
08:29:02
  

 

병장 김태준 
  '가지로!' 

잘봤습니다. 2008-12-09
09:07:02
  

 

상병 김용준 
  잘 읽고 가니다. 후후. 

두환님의 의지가 보입니다. 하하하. 2008-12-09
10:46:14
  

 

병장 문두환 
  / 병훈 
하하, 병훈님만큼 책마을을 좋아하는 사람을 저는 알고 있죠. 
(그치? 민규야?) 

작문법이나 논리학을 따로 배운적이 없어서 나가게 되면 독학으로라도 연습좀 해 볼 예정입니다. 제 전공이 글을 쓰는 것과는 큰 관계가 없는고로 일단 내던져진채로 시작해서요. 



/ 동석 
그럼요. 이대역 3번 출구에서 기다리겠습니다. 
하하-내친김에 크리스마스 이브에 술 한잔 하실래요? 
그리고 저 집에 갈려면 아직 좀 남았습니다(웃음). 2008-12-09
13:49:20
  

 

병장 이동석 
  흐흐, 크리스마스 이브에 나갈수 있을지 의문이긴 한데, 

(전 선생님과 매우 사이가 않좋아서, 노총각 히스테리를 자극하지 않는 선에서 설탕을 먹어야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습니다. 이건... 뭔가... 작년에도 그 시즌에 나갔다가, 일년동안 설탕 먹을때마다 크리스마스 운운-을 들었어요. 뭐, 이제 거의 끝났으니 저야 아쉬울건 없지만, 그나마 얼마 안남은 설탕마저 뺏길까봐 덜덜덜.) 

그러거나 말거나, 이대역 한번 가봐야겠네요. 낄낄낄- 2008-12-09
17:09:40
 

 

병장 김동욱 
  항상 글을 읽다보면, 두환님은 열정적인(?) 대학생활을 보내신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저 같이 어느 곳에서 끈기있게 에너지를 쏟은 게 아니라, 단순히 그 어디에도 제대로 안착하지 못하고 언저리만을 왔다갔다한 이들에게는 - 그 때의 그 열정이 비록 설익은 것이었다해도 참 부러운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도 이대역 콜? 흐흐. 아마 이브는 이 곳에서 보내게 될 듯하지만. 2008-12-12
01:35: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