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글-독서후기] 「퀴즈쇼」- 방황하는 젊음을 노래하다  
상병 정근영   2008-12-23 02:55:24, 조회: 480, 추천:6 

1. 지금 내 나이 또래라면 으레 채팅의 기억을 누구나 한번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는 얼굴도 모르는 낯선 사람과의 만남이라는 점에 호기심이 생겨 채팅방을 찾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이름도 직업도 나이도 별 관계가 없는 채팅의 특성상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용이하다는 점에서 채팅방을 찾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얼굴도 모르고 단지 아는 것이라고는 가상의 아바타라든지 아이디밖에 없는 모니터 너머의 낯선 사람들에게 이끌려 자기도 모르게 깊이 빠졌을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는 가상 세계에서 갖는 피상적 소통의 한계를 느껴 금새 싫증을 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구나 한 번쯤은 채팅의 경험이 있을 정도로 그것은 매우 매력적이었다.

  나 또한 한창 내성적이고 소극적이었던 중학교 1, 2학년때, 우연히 발견한 채팅창에서 클릭 한 번만 하면 아무런 거리낌없이 타인과의 만남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는 무척 놀랐던 적이 있다. 나는 곧 그곳에 빠져들었고, 상대적으로 많이 활성화되어 비교적 진입장벽이 높았던 세이클럽과 같은 채팅전문 사이트들보다는 이제 막 생긴 라이코스라든지 한미르같은 곳에서 채팅을 하곤 했었다. 그것은 무척 기이한 경험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이랬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당시 유난히 부끄러움을 많이 타고 남들과 말하는 것도 어려워하던 나는, 이상하게도 채팅을 할 때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솔직하고 진솔하게 타인과의 소통을 시도할 수 있었다. 지금에서야 글로써 고백하지만, 채팅에서 만난 지인들은, 당시에 가장 친했던 친구들만큼이나 내 안에서 소중한 존재로 자리매김하고 있었고, 나는 그들또한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퀴즈쇼」는 한 동안 잊고 있었던, 그 때가 지나가고 나서는 몇 번 들춰보지 않아서 지금은 희미한 잔상만이 남아있는 내 기억속 서랍을 다시 되새겨보게 만들었다. 새삼 그때가 그리워졌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벗어날 수 없는 현실에서 달아나고자 하는 헛된 회피에 불과했을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온라인으로 낯선 사람과 연애를 하던 사람들을 비웃었던 나는, 나도 모르는 새에 얼굴도 모르는 상대에게 점차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다. 그렇게 나 혼자만의 환상 속에서 사랑이 맞는지 아닌지도 모르는 감정을 싹틔우고 있던 나는, 오랜만에 접속한 채팅방에서 나 외에도 모임의 주를 이루고 있었던 그녀와 또 다른 녀석이 사귀다가 헤어졌다는 소식을 우연히 접하고는 채팅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어쩌면 나는 그 때부터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마치 영원할 것만 같던 우리의 모임은 사소한 한 가지 일로도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릴 수 있다는 것을. 실체가 없는 만큼 쉽게 다가설 수 있지만, 반대로 그만큼 바닷가에 쌓아놓은 모래성처럼 가볍게 흩어질 수 있음을.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마음까지 거짓이었던 것은 아니었기에, 상처까지도 그렇게 가벼웠던 것은 아니었다.


2. 김영하라는 작가를 처음 알게 된 때가 언제인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니, 내가 그의 책을 처음 본(말 그대로 읽은 것이 아니라 제목을 인식한) 게 초등학교인가 중학교 때, 안방의 침대 베게맡에 있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였고, 그 때는 이 책의 작가인 김영하에게는 별 관심이 없이, 뭔가 철학적이고 심오해보이는 제목에 이끌려 자극적인 제목만을 기억하고 있었으니, 엄밀히 말하면 '김영하'라는 작가의 존재를 인지한 것은 대학교 1학년 때라고 할 수 있겠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다른 일반적인 대학교들과는 다른 점이 몇 가지 있었다. 비교적 다른 학교들에 비해 학점이 짜다거나, 공부를 좀 빡세게 시킨다는 점 외에도 독후감 과제가 있다거나, 다른 학교들처럼 아무 자리나 앉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자리에 앉아야 하는 지정좌석제가 있다거나 하는 점들은, 정작 그 학교를 다니던 우리들 자신은 별 신경을 안 쓰고 있었으나, 타학교 학생들이 우리 학교보고 '00고등학교~'라며 우스갯소리를 하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나는 읽쓰(읽기와 쓰기)시간에 독후감 과제를 하며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의 김영하라든지, '베타별이 자오선을 지나갈 때, 내게'의 김애란과 그 때 처음 만나게 되었다. 그때까지 진지한 자세로 글을 써본 적이 없고, 논술시험 준비를 위해 틀에 박히고 진부하고 꽉 막힌 논설문만 몇 편 끄적여보았을 뿐인 나는, 이 글들을 읽고 200자 원고지 8매도 쓰지 못하고 낑낑거렸다. 글에 대한 관점이 많이 넓어지고 유연해진 지금이라면 원고지 8매 정도의 감상을 적는 것은 어렵지 않겠지만(글의 수준은 논외로 하고), 당시 수능으로 대표되는 입시 위주의 교육이 낳은 부산물들의 총 집합체로, 이제 갓 세상으로 튀어나온 나의 뇌는 딱딱하고 경직되고 기계적인 사고를 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인지 몰라도, 이렇게 말랑말랑하고 부드럽고 따끈따끈한 글들을 온전히 소화시킬 수가 없었다. 마치 방금 전자상가에서 구입한 스피커나 헤드폰을 '에이징'하는 것처럼, 나의 뇌도 부드럽고 말랑말랑하게 녹을 때까지 '길들이는' 과정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책의 주인공인 민수의 말마따나, 현실은 우리가 대답할 수 있는 준비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기에, 나는 코앞에 닥쳐온 과제를 위해, 미처 글을 정독하지도 못하고, 온전히 받아들이지도 못한 채로, '인간소외현상이나 '가치전도현상'등의 시덥지 않은 사회현상들을 끄집어내 허겁지겁 원고지의 칸을 채워넣기 바빴고, 그 결과는 처참했다.


3. 고등학교 때 나는 공부를 썩 잘하는 편이었다. 선생님들이 기대하는 모범생의 표본은 아니었지만, 학생들이 바라는 우등생의 전형 정도는 되지 않았나 싶다. 나는 학원도 안 다니고, 과외도 안 하고, 야자가 끝나고 집에 오면 새벽 한 시까지 스타를 하다가 잠들면서도 항상 최상위권을 유지했고,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은 전교 1등 성적표를 의기양양하게 부모님께 보여드리기도 했다. 김무준씨처럼, 온몸으로 학교에 대한 거부를 표현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로서는 시도할 수 있었던 최대한의 일탈인 수업땡땡이, 야자째기 정도의 스킬을 가끔 구사하며 선생님들을 놀려먹었고, 약이 오른 선생님들은 나를 혼낼 궁리를 하다가도 시험 성적표를 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결국 혼내는 것을 포기하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소위 '노는 애들'처럼 내가 학교에서 담배를 피거나 술을 마신 것도 아니고, 오토바이를 타고 다닌 것도 아니며, 다른 학교 여학생들을 따먹고 다닌 것도 아니기 때문에 나의 이런 행동들은 소소한 장난으로 치부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 생각하면 웃긴 일이지만, 이런 행위들을 통해 묘한 승리감과 희열을 느꼈다. 그것은 책 중 이민수의 말처럼 현실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힘없는 어린 학생이 공부를 강요하고 시험 성적으로 자신들을 평가하는 학교에 맞서할 수 있는 최대치의 사보타주였다. 어쨌든간에, 대학은 가야했으니까.

  앞서 말했듯, 사실 난 그리 공부를 열심히 하지는 않았다. 고 3때는 나도 모르는 위기의식에 휩쓸려서 분위기에 편승해 꽤나 공부를 열심히 하기는 했지만, 그것이 분명한 목적의식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아니,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을 받는 것만이 유일한 길이고 진리였을 뿐, 누구도 나에게 다른 것을 알려주지 않았다. 우리들의 목표는 모두 같았다.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으로 점수를 끌어올려서 그 점수에 맞는 좋은 대학과 학과를 선택하는게 우리 모두의 지상목표였다. 학교는 시험만 잘보면 장학금을 주었고, 나는 묵묵히 영어단어를 외우고 문제집을 풀고, 새벽같이 일어나 어스름한 아침해를 맞으며 학교로 향했다. 나의 일상은 그렇게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되고 있었다. 냉혹한 현실로부터 보호해주는 학교라는 거대한 울타리 속에서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은 나에게 나르시시즘적 태도와 낙관적 패배주의라는 가면을 씌어주었다. 나는 나의 '잘남'이 특별한 것인줄 알았고, 지금 생각하면 창피할 따름이지만, 스스로가 자랑스러웠다. '이정도면 됐지'라며 스스로를 합리화했고, '괜찮아, 잘 될거야'라며 근거없는 낙관적 미래에 대한 확신에 젖어있었다. 이 무위로의 도피는 부모님의 따뜻한 품 안에서 나라온 나에게 더없이 달콤한 편안함과 아늑함을 주었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발을 내딛으며 코앞에 닥쳐온 낯선 현실은 그 모든 것이 환상이었음을 일깨워주었다. 입학식날 수많은 군중들 사이를 날카롭게 파고드는 바람은 폐부를 찢어발길듯이 시려웠고, 모든 사람들이 다 낯설었다. 여태까지 한 번도 나 자신이 내 또래의 다른 아이들보다 나약하고 철이 없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는 나는, 다른 아이들의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태도에 눌려 주눅이 들어 있었다. 남자 아이들은 의젓하고, 어른스러웠으며, 여자 아이들은 새침하고 도도했다. 그들은 나와 대화할 때 웃고는 있었지만, 이제 갓 서울에 상경한 촌뜨기에게는 별 볼일 없다는 듯이, 그들의 시선은 나를 지나 먼 곳을 향해 있었다. 마치 세상은 이제 갓 성인이 된 나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보였으며, 이상하게도 다른 아이들은 이러리란 걸 알고 있었는지 멍 때리고 있는 나와는 다르게 적극적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라는 녀석에 적응하고 있었다. 나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누군가가 나에게 하고 싶은 것이 뭐냐고 물으면, 책 중 이민수의 말처럼 멋쩍게 웃으며 단지 "모르겠다"라고 대답할 수 있을 뿐이었지만, 아이들은 네 꿈이 뭐냐는 물음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거침없고 자신만만하게 자신의 꿈과 이상을 이야기했다. 나는 과연 이들이 나와 같은 교육과정을 거쳐, 수능시험을 치르고 대학에 온 녀석들이 맞는가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나는 처음으로 나 자신에 대한 회의를 느꼈다.


4. 이 때의 나는 심각한 패배주의와 제 마음을 잘라먹는 콤플렉스에 빠져있었다. 세상에는 잘난 놈들이 너무 많았다. 여태까지 그닥 경제적 어려움을 느껴보지 못했던 나는, 강남의 비싼 아파트에 사는 도련님들의 얼굴에 묻어나는 귀티에 주눅이 들었다. 나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는 경제적 조건의 차이는 상반된 생활태도로 이어졌다. 그들은 매사 여유가 넘쳤고 긍정적이었으며 자신감이 충만했다. 도전에 대한 망설임이 없었으며,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없었다. 몇 번을 넘어진다고 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의지와 자존감,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할 능력이 있었다. 그에 비해 난 그때까지 새로운 도전이라고는 전혀 해본 적이 없는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살던 샌님이었다. 그들은 매우 자신만만하면서도 나른한 목소리로 S&P, 무디스 등을 떠들었고, 자신들이 투자한 주식을 화제삼았으며, 유럽의 00가 좋다더라 하는 둥의 얘기를 했다. 나는 벙어리처럼 눈만 멀뚱멀뚱 뜬 채 멍하니 있을 뿐이었다. 책에도 나오듯이, 가진자와 못가진 자 사이에는 애초부터 넘을 수 없는 정서적 갭이 있었다. 비록 이런 녀석들이 많은 것은 아니었고, 열에 다섯 이상은 나와 그리 다를 것이 없는 아이들이었지만, 나는 마치 나와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아온 듯한 그들에게 한없는 패배감과 열등감에 시달렸다. 내가 아무리 노력한들 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나를 더욱 좌절하게 만들었다. 나는 가진 자의 자식으로 태어난 사람들이 받은 가장 큰 축복은 되물림되는 '부'가 아니라, 넉넉함 속에서 배양되는 삶에 대한 여유와 자신감, 그리고 '부'를 소비함으로써 얻어지는 다양하고 풍부한 경험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즈음에 나는 한 달에 30~35만원 정도의 용돈을 받았다. 나는 1학년 때 부천에 있는 할머니댁에서 통학을 했기 때문에 아침, 저녁을 집에서 먹는다고 치면 30만원이라는 돈이 그렇게 넉넉한 건 아니라도, 부족한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파릇파릇한 새내기가 되어서 아싸로 캠퍼스를 돌아다니는 것은 청춘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었다. 공강시간에는 학교 앞 플스방에 가서 위닝을 하거나 당구를 쳤고, 점심 때는 신촌의 맛집을 찾아 돌아다녔다. 밥 먹은 뒤에는 스타벅스라든지 할리스 커피에 가서 녹차라떼나 딸기스무디를 마셨고, 레드망고나 하겐다즈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어야 했다. 그리고 가끔은 아웃백이나 TGI 등을 가서 무슨 맛인지도 모르는 스테이크를, 어디서 주워들은 건 있어가지고 미디움이나 미디움 웰던으로 주문했다. 왜냐하면 웰던은 왠지 너무 유치하고 촌스러워 보였으며, 무엇보다도 '없어' 보였으니까.


5. 이 때의 우리 또래는 이상한 환상에 씌어있었다. 성인이 되면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들이 마치 우리 자신들만의 특권인 양 여겼다. 이제 갓 성인이 되었기 때문에 미숙하고 철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일진데 우리들은 그것을 숨기려고 애를 썼다. 새롭게 만나게 된 낯선 사람들이 자기를 깔보지 못하게 하기 위해 온갖 '있는 척'을 다하며 허세를 부렸다. 현실은 우리에게 아무 관심도 없는데, 우리들이 바라보고 있던 우리 자신에 대한 '환상'은 현실보다 우리를 괴롭게 했다. 나는 아메리카노와 에스프레소와 카푸치노가 뭔지도 모르면서 커피를 주문했고, 칵테일을 처음 마시는 것을 티내지 않기 위해 '준벅'이나 '섹스온더비치' 등 귀동냥으로 들어왔던 칵테일 이름을 들먹이며 유난을 떨었다. 씁쓸하기만 한 '기네스'를 마시면서도 오, 이거 괜찮은데..? 라며 가식적인 미소를 지었으며, 유명 패션 브랜드를 남들보다 하나라도 더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은 자신을 뭔지 모를 우월감에 빠지게 만들었다. 여자아이들은 '섹스앤더시티'를 얘기하고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며 몽롱한 눈빛으로 뉴요커의 삶을 꿈꿨고, 남자아이들은 'Maxim' 이나 'Esquire'등의 럭셔리 남성잡지를 보며 스타일쟁이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학문에의 자유로운 열정을 불태우고 진지한 자세로 지적 사유를 즐기며 날카로운 지성과 진취적 사고를 키워나가야 할 대학에서 우리는 안정된 직장을 가진 사회인들이나 갖췄을 법한 처세술과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 등을 배우는데 급급했다.

  나는 불과 한달 전까지만 해도 얼굴도 몰랐던 사람들과도 술을 마시며 신나게 웃고 떠들었으며, 소위 말하는 '베프'를 먹었다. 그것은 일종의 의식이자 묵언의 약속이었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친하다는 것을 알고 있던 중, 고등학교 때완 다르게 우리는 친함을 강요하는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내며 상대에게  동의를 구했다. 서로를 '베프'라는 단어로 규정지음으로써 우리는 스스럼없이 같이 밥먹자는 문자를 보낼 수 있었으며, 언제라도 전화를 해서 술먹자고 불러낼 수도 있었다. 그것은 중, 고등학교 때처럼 동급생들과 함께 있을 충분한 여유가 있는 것이 아닌, 맘만 먹으면 이 새롭고 낯선 세상에서 얼마든지 혼자서 다닐 수 있는 자유로움을 보장받은 우리들이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고 우리들이 언제까지나 서로를 경계하며 가식적인 미소를 짓고 맘에 없는 말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어른인 척을 하려 한다고 해도 본래의 철없고 순수한 모습이 언제까지나 감춰져 있을 수는 없는 거니까. 그래도 아직은 우리에게 이것저것 재고 계산하며 자기 잇속만 챙기는 것보다는 맘에 맞는 사람과 만나 진심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즐거웠기에, 아이들은 삼삼오오 어울려 다니며 낯선 사람들과의 새로운 관계를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었다. 

  대학생이 된 지 한 달 정도가 지나자 처음에는 비교적 큰 규모의 집단이었던 섹션(다른 학교에서는 '반'의 개념인)은 여럿의 소그룹으로 세분화되기 시작했다. 이 과정은 2~3주라는 기간에 매우 빨리 진행되었기 때문에 개개인은 어떤 선택을 강요받는 입장에 놓이게 되었다. 이 그룹인가 혹은 저 그룹인가, 아니면 아예 아싸가 되어 혼자 학교를 다닐 것인가 하는. 나는 새로운 사람들과의 관계가 싫었던 것은 아니지만 뭔가 분위기에 휩쓸려 이리저리 떠밀려가는 듯한 내 모습이 낯설었다. 매일매일이 신선하고 유쾌했지만, 자욱한 담배연기 속에서의 정신없고 산만한 회식이 끝난 뒤 막차로 지하철을 타며 복귀할 때 어두컴컴한 창문에 비추어진 내 얼굴은 마치 내가 아닌 듯 생경했다. 나는 껍데기만 남은 채 뭔지도 모를 공허한 울림만이 되풀이되고 있는, 텅빈 마음속을 멍하니 들여다보고 있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란 놈은 전화도 안 하다가 통장에 돈이 떨어지면 그제서야 어머니께 전화를 걸어 10만원만 보내달라며 떼를 썼고, 그럴 때마다 어머니께서는 철없는 아들을 질책하시기 보다는 따뜻한 목소리로 밥은 잘 먹고 다니며 감기는 안 걸렸느냐고 물어보셨다. 그건 내가 먼저 했어야할 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불효막심한 아들은 건성건성으로 대답하며 다음 주말엔 한 번 내려갈게요 라는 거짓말을 지껄여댔다. 1학기가 거의 끝나가던 날, 문득 어머니한테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는 유난히 기운없고 약한 목소리로 언제 올 거냐며 내게 물으셨고, 나는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며 왜 그러느냐고 물어보았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사고를 당하셔서 병원이 입원해 계시니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고, 나는 그렇게 심하게 다친 건 아니라는 어머니의 말에 마음을 놓고 시험 끝나고 약속이 있어서 하루, 이틀 정도 놀다가겠다고 했다. 만사를 다 제쳐두고 집으로 뛰어갔어야 할 상황에서, 나는 노는 데 바빠 자식놈이 어서 오기만을 바라는 부모님의 기대를 배신했다. 못난 아들놈의 죄가 컸는지, 아버지는 7~8개월이면 다 낫고 퇴원했어야 할 것을 거의 1년 6개월 동안, 내가 입궁을 하기 바로 직전까지 병원에 누워있으셔야 했다. 나는 스스로를 경멸했다.


6. 그렇게 1년을 갈팡질팡하며 보낸 뒤, 나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기숙사에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 언제까지나 할머니댁에서 신세를 지고 있을 순 없는 노릇이었고, 이왕에 타지로 와서 학교를 다니고 있는 거라면, 자취나 하숙을 하던지 기숙사에 들어가서 사는 것도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자칫하면 자신을 절제하지 못하고 폐인이 될 가능성이 다분한 자취나 하숙보다는, 어느 정도의 통제가 있는 기숙사가 더 나을 거라는 생각에 나는 부모님의 권유를 받아들여 기숙사에 입사를 하게 되었다. 여태까지 기숙사에서 살아보지 못했던 나는, 기숙사 생활에 대한 일종의 로망에 빠져있었다. 마치 해리포터에서 나오는 호그와트처럼, 뭔가 즐겁고 유쾌한 일들이 일어날 거라는 기대를 했던 난, 그 꿈을 고이 접어두어야 했다. 기숙사에서의 일상은 단조로웠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도서관으로 향해 산뜻한 아침햇살을 맞으며 독서를 하겠다는 나의 다짐은 어디로 갔는지 사라지고, 나는 7시반에 허겁지겁 일어나 세수를 하고, 식당에서 토스트를 들고나오며 걸어가면서 먹곤했다. 그렇게 게을러졌음에도, 나는 8시 강의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그것은 고등학교때부터 항상 학생주임보다 먼저 학교에 1등으로 도착했던 아침형 인간을 자부하는 나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이 무렵의 난, 책 속의 이민수가 처해있던 상황과 상당히 흡사한 경험을 하고 있었다. 후배들에게 밥을 사주고 정작 난 점심을 먹을 돈이 없어 컵라면에서 삼각김밥과 튀김우동을 사먹었고, 여자친구와는 여전히 가끔씩 아웃백을 가서 스테이크를 먹곤 했다. 남자의 자존심이 있기에, 차마 여자친구한테 말은 하지 못하고 '에이, 그깟 사만원가지고 뭘 그래'라며 쿨한 척을 했으며, 눈에 띄게 줄어드는 통장 잔고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마음가짐을 바꾸기 위해 기숙사에 들어갔으나, 나는 오히려 더 나를 망쳐놓고 있었다. 거기다가 설상가상으로 안좋은 일들까지 몇 가지 겹치면서, 나는 넋이 나가 있었다. 생일날 술을 먹고 친구 자취방에서 자다가 가방을 도둑맞았고, 100일 기념으로 맞춘 커플시계를 두 달도 못 가서 잃어버렸다. 거기다가 신발까지 잃어버린채 슬리퍼를 신고 터덜터덜 기숙사로 돌아오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허탈감과 좌절감이 나의 온몸을 휘감았다. 나는 수업이고 뭐고 다 쌩까버리고, 기숙사 침대에서 하루 종일 누워있었다. 나는 스스로에 대한 모든 자신감과 자부심이 땅에 내팽개쳐진 것을 느꼈다.   아무래도 이대로는 학교를 계속 다닐 수가 없었다. 나는 결국 궁으로의 도피를 마음먹으며, 2학년 1학기가 끝나고 휴학을 신청했다.


7. 입궁을 기다리며, 나는 거의 한달 내내 집에 틀어박혀 지냈다. 한 달에 두 번 보기도 힘들다고 징징대는 그녀의 말을 무시하며, 다음에 보자고 토닥였다. 사실 그녀를 사랑하게 된 것은 사귀고 난 다음부터지만, 그 이후로 난 언제나 그녀를 사랑해왔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그러나 나는 나에게 그만한 자격이 있다는 것이 의심스러웠다. 친구의 소개팅에 땜빵으로 나갔을 때부터 우리는 서로가 운명인 게 아닌가하고 농담삼아 말했으나, 나는 불안했다. 사랑과 영원이라는 말은 아름다워 보이는 만큼이나 부질없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섣불리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었다. 사랑의 기쁨은 그 예기치 않음에서 오는데, 정작 그 예기치 않은 때문에 인간은 불안에 떨며 그것이 제 손아귀를 빠져나갈까 전전긍긍하는 것이다. 여자친구는 언제나와 같이 항상 내편이 되주고 응원해주었지만, 나는 가족들을 제외하고, 나를 사랑해주는 누군가가 지구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8. 2007년 11월 15일, 나는 입궁했다. 그리고 2008년 5월, 넓디 넓은 인트라넷에서 한 줄기 빛을 찾았다. 그 이름은 책마을이었다.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숨겨진 소통과 대화의 장을 찾아냈다는 점은 나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겨주었다.  '죽이지 못할 정도의 고통은 나를 강하게 만들 뿐이다'는 니체의 말처럼, 쿠닌이라는 매우 제한적이고, 한정된 여건에서도, 그들은 끊임없이 소통을 시도하고 있었으며, 그 어느 때보다도 활발하게 지적인 사유를 불태우고 있었다. 그것은 그만큼 치열했으며, 진지했다. 나는 마치 이민수가 '퀴즈방'을 만났을 때처럼, 정신없이 책마을에 빠져들었다. 책마을은 나에게 축복이었다. 나는 매우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열정을 찾을 수 있었고, 책에 대한 목이 타는 듯한 갈증을 느꼈다. 나도 이들의 잔치에 발을 들여놓고 싶었다.



9. 드디어 현재와 만났다. 여기까지 읽으신 분이라면, 별 내용이 없는 글에 실망을 할 수도 있다. 위에 적은 내용들은, 이 책을 일고 난 뒤 떠오르는 기억들을 하나하나 짜맞춘 것에 불과하니까. 이 글은 오히려 [독서후기]라기 보다는 [내글내생각]이 어울릴지도 모른다. 책과 같이 허무하고,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끝맺음이지만, 나는 별로 개의치 않는다. 김영하가 섣불리 '청춘'에 대한 희망을 노래하지 않았듯이, 나 또한 아직 '젊음'의 노래를 시작하지 않았을 뿐이니까. 아마도, 당신은 이 책을 읽고 무지개빛 미래를 꿈꿀 수는 없을 것이다. 다가올 밝은 날에 대한 예찬 따위는, 이 책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냥 담담한 목소리로, 우리의 '젊음'이 처한 현실을 바라볼 뿐이다. 그러나,「퀴즈쇼」는 현실만큼 아프게 다가오기에,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를 위무한다.

우리의 '젊음'과 '사랑'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책마을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8-12-24 08:31) 

20.3.1.98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10
09:44:06 

 

상병 이지훈 
18.49.9.198   그렇죠 아직 끝나지 않았죠 잘 봤습니다 
진심이 묻어나서 그런지, 대화하는 느낌으로 그렇게 읽었습니다. 
하하 00고등학교.. 사실 뜨끔했습니다 저도 (근영님과 같은 학교라고 예상되는)친구를 보면서 그렇게 말한 적이 있더라죠 
대학생 하는 것에 목적과 방향성을 잃고 입대라는 것을 무작정(?) 선택한 저로써는 쉽게 넘기지 못할 독서후기였네요. 지금 생각해보면 대학생이었던 적도 없었던 것 같은데...말이죠 허허 

앞으로도 책마을 잔치에 많은 진심어린 글 부탁드립니다 흐흐 2008-12-23
04:19:34
 

 

일병 이석현 
22.53.2.88   글의 내용과는 별개로 반갑네요- 저도 그 땡땡고등학교를 다니는 신촌의 과중한 대학생중에 한명입니다- 우호- 

대학생때의 저라- 움 저 같은 경우는 2학년을 아예 마치고 왔기 때문에 - 스그브스라는 중앙동아리에 덜컥 들어가 버린 탓에 반드시 4학기는 마치고 와야 했답니다 - 이제는 과거를 돌아볼 시간보단 현실적으로 저녘밥먹은 후 해야 할 일이 더 머리에서 맴도네요. 

하지만, 덕분에 잠깐 뒤돌아 봤답니다. 우후, 1학년때 저는 결코 아싸는 아니었죠- 오히려 섹션의 중심에서 이리저리 소위 '깝치는' 사람이었달까요.. 각종 세미나 많이 참석하고 술자리에는 항상 빠지지 않는- 이게 제 '자유'라는 이름표를 세상에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하기도 했고, 그리 열심히 공부하진 않았지만(이건 꽤 위험한 발언인가...) 그래도 나름은 어느정도 공부했기에- 이제는 더욱더 놀아야지 생각하기도 했죠. 
밥은.. 전 학생식당에서만 먹었어요. 맛집따위 찾지 않았어요. 누군가 사준다면 모를까- 덕분에 많이 얻어먹긴 했지만..으흐 - 친구라 칭하는 사람들도 많이 만들고, 실연도 한번 당해보고. 그러다가 어느순간 확 질려버렸죠 모든게. 그래서 동아릴 찾다가 방송국에 들어갔죠. 섹이 좀 신경쓰이긴 했지만- 흥미도 있었고 동기도 있었고, 면접보고 시험보고 합격하고 3학기를 '빡세게' 동아리 활동을 하고나니, 어느새 부국장도 해보고 이리저리 경험도 쌓고, 사회로 진출한 선배들도 많이 알게 되고- 꽤나 신선한 경험이었어요. 솔직히 동아리 안했음 2년 그냥 날렸겠다 라고 생각도 많이 했죠. 이런저런 공부하면서 각종 프로그램도 많이 다룰 수 있게 되고, 방송을 준비하다보니 잡다한 분야에 관한 서적도 많이 읽어보게 되고, 할땐 많이 힘들었는데, 이젠 하고 난 입장에서 바라보니 보람있네요. 

이젠 나도 내가 무슨얘기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고 뭘 말하고 싶은지 모르겠지만- 



결론적으론 반가워요.(웃음) 2008-12-23
09:30:18
 

 

병장 이동석 
40.6.1.206   일단, 여담 한접시. 

전 뭘까요, 낯선 사람과의 채팅-은 시도도 해본적이 없어요. 온라인게임을 해도 말이 없구요. 타자를 잘 못치기도 하지만, 뭐랄까 예전에 세이클럽이나, 다모임이나 요새 네이트온까지 모르는 사람이 말걸어서 답해주고 있으면, 발가락이 오그라드는 기분이에요. 자신을 '가장'하는 스스로의 비틀림을 마주하기 때문인것 같기도 하고, 아직까지도 낯설어서 그런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전 실제로 모르는 사람과는 쪽지도 주고 받지 못합니다. 

이런 오프라인과 연계된 커뮤니티 말고, 이를테면 학교 홈페이지나 친구들끼리 만든 역적모의 커뮤니티말고, 순전히 온라인에 기반을 둔 커뮤니티에서 활발하게 활동한것도 책마을이 처음이고요. 대부분 자료만 쓱싹-해가거나 다시는 안찾아가거나 뭐 그런 수준이지요. 

이렇게 쓰면서 드는 생각인데, 막상 만나서는 별 말 안하던 사람들과 온라인상에서는 쪽지나 채팅이나 방명록을 주고 받는걸 보니, 사실 아는 사람이긴 하나, 안다고는 하기 어려운 이들과의 온라인상의 소통- 

공감할 여지가 생기는군요. 그렇다면, 다시 일독- 2008-12-23
10:05:35
 

 

일병 권홍목 
16.48.8.33   저는 1학년만 마치고 입궁했더랬죠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생각해보니 딱 그 즈음이 
"이거고 저거고 다 생까버리고 하루종일 침대위에 엎어져있고싶은" 느낌이 들만한 시기였네요 
그때는 '초기증상'정도만 겪었고, 입궁이 정해져있던때라 뒷정리하느라 바빠서 느끼지 못했겠지만, 만약 그때 입궁을 안했다면 저도 비슷한 경험을 했을것같군요 

결론은 

전 적절한때에 입궁한거같아요 (하하) 2008-12-23
10:14:35
 

 

병장 이동석 
40.6.1.206   아, 그 고등학교 다니시는군요. 낄낄. 읽으면서 인상적인게 많아서, 독서후기-느낌으로다가 댓글을. 

학창시절을 묘사하는 한 단어, 사보타주- 오랜만에 들어서 잊어버릴뻔했군요. 역시 요새 더 무식해진 이동슥. 


[여태까지 한 번도 나 자신이 내 또래의 다른 아이들보다 나약하고 철이 없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는 나는, 다른 아이들의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태도에 눌려 주눅이 들어 있었다. 남자 아이들은 의젓하고, 어른스러웠으며, 여자 아이들은 새침하고 도도했다. 그들은 나와 대화할 때 웃고는 있었지만, 이제 갓 서울에 상경한 촌뜨기에게는 별 볼일 없다는 듯이, 그들의 시선은 나를 지나 먼 곳을 향해 있었다.] 


[그들은 매우 자신만만하면서도 나른한 목소리로 S&P, 무디스 등을 떠들었고, 자신들이 투자한 주식을 화제삼았으며, 유럽의 00가 좋다더라 하는 둥의 얘기를 했다] 

-이건 정말이지 거침없이 오그라들었던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군요. 물론 조금 지나면, 그게 아니라는걸 알게됩니다. 


[어디서 주워들은 건 있어가지고 미디움이나 미디움 웰던으로 주문했다. 왜냐하면 웰던은 왠지 너무 유치하고 촌스러워 보였으며, 무엇보다도 '없어' 보였으니까.] 

-한국인은 미디움 웰던-이죠. 낄낄. 제가 한 석달쯤 주문 받아본것 중에 미디움 웰던이 아니었던적이 손으로 꼽습니다. 레어는 좀 그렇고, 웰던-이라고 하자니 촌스러워 보이고, 쿨하게 미디움이나 미디움 웰던-으로 가자. 

관련 업종 종사자들의 농담으로다가, 처음에 가져다준 미디움 웰던을 보고, 이건 너무 익혔군요, 미디움 웰던-으로 주세요. 하면 그냥 다시 덥혀다가 가져다 주면, 역시 고기는 미디움 웰던이라니까- 뭐 이런다던가요. 



[이 때의 우리 또래는 이상한 환상에 씌어있었다. 성인이 되면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들이 마치 우리 자신들만의 특권인 양 여겼다. 이제 갓 성인이 되었기 때문에 미숙하고 철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일진데 우리들은 그것을 숨기려고 애를 썼다. 새롭게 만나게 된 낯선 사람들이 자기를 깔보지 못하게 하기 위해 온갖 '있는 척'을 다하며 허세를 부렸다.] 

좀 있으면, 그들이 말하던 꼬부랑말들이 결국 '공부'한거라는게 드러나요. 오타난 잡지기사나 잘못 쓴 블로그에서 봤던 내용을 '그대로' 쓰더라니까요.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친하다는 것을 알고 있던 중, 고등학교 때완 다르게 우리는 친함을 강요하는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내며 상대에게 동의를 구했다. 서로를 '베프'라는 단어로 규정지음으로써 우리는 스스럼없이 같이 밥먹자는 문자를 보낼 수 있었으며, 언제라도 전화를 해서 술먹자고 불러낼 수도 있었다.] 

대학교에서 뭔가 연애병-(그러니까 모든 학내커플이 그렇다는게 아니고, 딱히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필요에 의해, 추해보이지 않으려고, 기념일날 구질구질하지 않기위해 억지로라도 연애하려고 하는-)이 창궐하는것과 그놈의 베프-질이 뭔가 같은 맥락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다고 모든 커플과 베프들을 그렇게 생각하는건 아니고, 제 경우엔 일정부분 그랬어요. 


그건 그렇고, 

[지하철을 타며 '복귀'할 때...] 
근영님 그때는 학교에서 할머니집으로 '귀가'하신거 아니였나요. 껄껄 

그리고 내글내생각이고 독서후기고 뭐 다를것 있나요. 책을 읽고 자신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하게됐다면, 그게 독서후기고 내글 내생각이죠. 게다가 책마을에 대한 적절한 비유-까지. 

이글을 가지로 보내지 말아야할 이유가 있나요? 2008-12-23
10:29:44
 

 

병장 고동기 
16.33.4.71   저의 대학생활과 많은 부분이 겹치면서 공감이 되지만, 한편으론 이런 사회가 무섭기까지 하네요. 이제 방송법마저 개정되면 모두 다 같은 행동을 하게 되지 않을까 두렵기까지 합니다. 음. 지하철 창문에 비친 얼굴. 조금 있으면 다시 마주하겠네요. 

가지로. 2008-12-23
11:31:27
 

 

상병 이동열 
22.36.32.20   새삼 대학생활을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직도 어린아이처럼 느껴지는 제자신이 원망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피터팬 콤플렉스마냥 어린아이로 남고 싶어하는것도 아닌데- 성장해 나가길 바라면서도 정작 그러지 못하는 저의 얼굴이 지하철 창문에 비치겠지요... 

근영님의 글에서 책마을의 희망(?)이 느껴지는것 같아 이와 함께 외칩니다 

가지로- 2008-12-23
13:13:01
 

 

상병 정근영 
20.3.1.44   지훈 / 글에서 진심이 느껴졌다니, 감사합니다. 흐흐, 사실 저도 00고등학교라는 말을 들으면서 울컥 하는 적이 꽤나 있었지만, 그걸 가지고 이건 어떻다, 저건 어떻다는 둥 떠드는 건 또 없어보여서 그냥 쿨한 척 했드랬죠.. 

석현 / 반갑습니다. 스그브스라, 제가 생각하는 그게 맞겠죠?(웃음) 

동석 / 어이쿠, 이 막돼먹은 글에 대해 그렇게 자세히 후기를 써주시다니 부끄럽군요. 그나저나, 저는 왜 '복귀'라고 썼을까요. 분명히 쓰기 바로 전까지도 '귀가'라는 단어를 되뇌고 있었는데... 쿨럭.. 

동기 / 앗, 독서후기의 달인이신 동기님께 저의 독서후기가 가지로-를 받다니, 영광이에요(웃음) 

동열 / 감사해요, 동열씨 오랜만에 뵙는군요. 2008-12-23
13:30:47
 

 

일병 김도영 
18.17.47.59   인상깊은 글입니다. 20대를 말하고 자신의 경험으로 빗대어 서술한 글로 자극을 주시는 분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선각자의 냄새가 납니다.(킁킁) 그리하여 여태 쓰신 글들을 찾아서 정독 하게되네요. 

이 글은 책가지에서 읽고 싶습니다. 가지로 2008-12-23
13:40:11
 

 

병장 양 현 
18.17.54.124   책마을의 혼령, 책마을의 키보드 워리어, 책마을의 게임개발자, 
책마을의 싸이코, 책마을의.. 또 뭐가있죠. 여하ㅡ튼간에 16년간 
생각만 해온 생각의 달인 양현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라는것이 사라지면, 그곳 또한 사라진다. 

에.. 맞습니다. '나'가 사라지면, 내가 있어야 할곳과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인 '그곳'이 사라지는거죠. 이것이 제가 느낀, 고1때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보고 온라인 세계에 빠져 산 폐인..아니, 16년간 생각만 
해온 생각의 달인 양현의 말입니다. 

길들이기. 그 과정에 서 있는 제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책마을에 있는 
여러분들께 연습대상이 되어야 하는 지금이 민망하고, 저 자신도 지금 
연습하고 있는 이 현실이 참 부끄럽습니다. 쥐구멍은 누가 옮겼나요? 

<어쨌든간에, 대학은 가야했으니까..> 

그래요. 대학은 가야했었죠. 헌데, 전 전문학교를 갔네요. 이건 뭐시깽? 

<스스로가 자랑스러웠다. '이정도면 됐지'라며 스스로를 합리화했고, 
'괜찮아, 잘 될거야'라며 근거없는 낙관적 미래에 대한 확신에 젖어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발을 내딛으며 코앞에 닥쳐온 낯선 현실은 
그 모든 것이 환상이었음을 일깨워주었다.> 

전 이것을 자기환상이라고 하렵니다. 우리는, 환상속에 살고 있어요. 
서태지의 <환상속의 그대>마냥처럼요. 환상속에, 그대가 있는거죠. 

<나는 처음으로 나 자신에 대한 회의를 느꼈다.> 

성장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앞으로도, 더욱 더 성장하시길 바랍니다. 
RPG게임같군요. 디아블로를 권해드릴까요? 한정판으로, 

4번항에서 나온건, 저도 느끼게 된건 <압구정 다이어리>를 읽고 나서 부터 
였더랍니다. 그들과 이야기를 통하려면? <디자이너의 프로그램적 보기>라고 
쓴 글 마냥 그들의 세상에 뛰어들어야죠. 뛰어들라면? 일단 돈입니다. 돈\ 

<무엇보다도 '없어' 보였으니까.> 

여기서도, 우리의 이미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역시. 세상은 
이미지군요. 영화 <일루셔니스트>와도 같은 세상이 지금과도 같은 세상일까요? 

<아무리 어른인 척을 하려 한다고 해도 본래의 철없고 순수한 모습이 언제까지나 
감춰져 있을 수는 없는 거니까.> 

그래서 우리 책마을 여러분들이 순수한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풉...) 

<나는 스스로를 경멸했다.> 

이런, 또 성장하셨군요. 뭐 이리 성장만 하십니까. 부럽습니다. 제길. 

<식당에서 토스트를 들고나오며 걸어가면서 먹곤했다.> 

토스트를 입에 물다가 꺾인길에서 여학생과의 something은 없었나요? 흐흐. 

<'못할 정도의 고통은 나를 강하게 만들 뿐이다'> 

이상하게 니체의 이야기가 많이도 나오는군요. 전 니체가 싫습니다. 재수없는 사람. 

이렇게, 16년간 생각만 해왔다고 하는(아마도) 생각의 달인 양현은 이렇게 
외칩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이렇게 속삭입니다. 귀에 가까이 대고, 숨소리를 
느낄 정도로. 


이 글은 가지로 갈 필요가 없습니다. 내글내생각에서도 수많은 이들이 함께 보고, 
듣고,생각하고,느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가지로 가야겠다면? 

가세요. 떠나는길 고이 보내드리옵고, 가시는길 꽃길 뿌려드리겠사옵니다만 
나를 두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날겁니다. 발병이나 나세요. 흥. 2008-12-23
13:56:23
 

 

병장 이동석 
40.6.1.206   최대한 여기서 지내다, 가지로 갈껍니다. 흐흐 2008-12-23
15:11:28
 

 

상병 정근영 
20.3.1.54   도영 / 선각자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제가 이 글에서 한 거라곤 최대한 냉정하게 과거의 자신을 돌아보려고 노력한 것 뿐인걸요. 아직 철이 들려면 멀었어요. 

현 / 음, 그게 제가 성장한 거였나요? 성장통이었나 보군요, 허허. 유감스럽게도 기숙사에서 학교까지 가는 길에는 꺾이는 길이 없었기에 그런 Something은 없었답니다(울컥) 2008-12-23
19:53:40
 

 

상병 김호균 
54.1.33.114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되네요. 정말 잘 쓰셨네요. 추천합니다(웃음) 2008-12-26
17:24:35
 

 

병장 양 현 
18.17.54.125   흥. 아쉬워요. 2008-12-26
18:05:46
 

 

병장 홍석기 
54.1.37.124   이 글을 이제서야 읽게 되는군요. 


[책과 같이 허무하고,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끝맺음이지만, 나는 별로 개의치 않는다. 김영하가 섣불리 '청춘'에 대한 희망을 노래하지 않았듯이, 나 또한 아직 '젊음'의 노래를 시작하지 않았을 뿐이니까. 아마도, 당신은 이 책을 읽고 무지개빛 미래를 꿈꿀 수는 없을 것이다. 다가올 밝은 날에 대한 예찬 따위는, 이 책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냥 담담한 목소리로, 우리의 '젊음'이 처한 현실을 바라볼 뿐이다.] 

'희망'을 찾는 다는 것이, '희망'을 위한 '희망'찾기 가 되어서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무작정 희망만을 찾기 위해서, 끊임없이 학습되고 주입된 누군가의 '희망의 노래'를 부를 바에야, 나 자신의 눈으로 이 세상을 똑똑히 바라보며 '나의 노래'를 찾아 나갔으면 합니다. 비록 그것이 엉성하고 조잡하여 '없어'보일 지라도, 비극과 절망의 노래가 될 지라도 말이죠. 

이미 가지로에 있지만, 가지로 외칩니다. 2008-12-28
15:18:12
 

 

병장 정병훈 
16.35.11.87   퀴즈쇼. 제가 읽고 독서후기 남기려고 했는데, 이미 선수 쳤군요. 이보다 더 좋은 반응을 끌어들이기 힘들듯 하여 포기합니다. 잘 보고갑니다. 2008-12-29
00:08:45
 

 

상병 정근영 
20.3.1.47   잠시 나가있던 주말간, 다시 몇몇 분들이 댓글을 남겨주셨군요. 
이 글이 가지로 갈 만한 글이라 생각지 않았기에, 이런 호응을 받았다는게 아직도 얼떨떨하군요 

석기 / 옳은 말씀입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뭔가 빠진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그 부분을 정확하게 찔러주셨군요. 

병훈 / 잘 돌아오셨습니다. 케케묵은 사과의 말 따위는 하지 않겠습니다. 앞으로도 마음껏 내뱉어 주세요. 포기라니요,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쓰셨던 글에서 퀴즈쇼의 한 구절이 인용된 것을 보고, 병훈씨의 퀴즈쇼는 어땠을지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2008-12-29
08:52:27
 

 

병장 김동욱 
54.6.4.170   길게 늘여뜨려 쓰지 않을게요.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잠시금 그 신촌 나름의 특이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하는 것 같아요 2008-12-30
01:01:36
 

 

병장 문두환 
22.34.42.26   이제야 읽어봤네요. 저와 비슷한 궁색한 생활을 하신 것 같아 괜히 짠하기도 하지만 그만큼의 동료애가 생긴다고 해야 할까요? 허허. 

다른 사람의 삶의 척도에 대어 자신을 규정하는 것은 누구나 한번 쯤은 겪는 과정인가 봅니다. 다행히 저는 일찌감치 일류의 생활문화라는 것이 저에게는 오히려 두드러기 돋고 어색할 뿐이라는 것을 깨닫고 난 후부터 꾸준히 단벌신사 패션에 후줄근한 아저씨의 인상으로 저의 개성을 밀고 나갔습니다만. 

일전에 동기님이 올린 글처럼 어쩌면 20대는 공통된 문화코드를 만들어내지 못하면서 무분별하게 소위 말하는 '유행'에 휩쓸려 다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봤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언제나 제가 신념처럼 받드는 말 한마디는, 결국 무엇이든 과정이고, 과정은 나를 성장시키는 양분이 된다-거든요. 언제가 됐든 근영님이 주신 이 양분과 정모의 알코올이 합쳐서 놀라운 성장촉진제를 만들어 내고 그것을 좌중의 인사들에게 뿌려주게 되지는 않을지. 으흐흐. 2009-01-06
09:22:19
 

 

병장 김민규 
22.34.42.32   심하다 싶을 정도로 늦었습니다. 이맘때쯤 출장으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거든요. 뒤늦은 가지로- 하나 붙입니다. 

게다가 동문이라니. 흔치 않은 인연인가 보네요. 2009-01-06
17:05:28
 

 

일병 윤병철 
18.4.1.122   내가있는곳이 곧 현실이라는 생각이 드는 책이었습니다. 2009-01-07
02:36:42
 

 

병장 정병훈 
16.35.11.87   조만간 독서후기를 만들어 봐야겠네요.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