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글-독서후기] 신영복과 정수일의 경우  
병장 김동욱   2008-11-02 02:06:11, 조회: 312, 추천:4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신영복, 돌베개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 정수일, 창비


무덥던 8월, 한없이 내 몸을 침상으로 이끄는 매미소리를 온전히 견디며 이 두 명의 옥중 서간집을 꾸역꾸역 소화시켰다. 영어(囹圄)생활과 유사한 영내(營內) 궁인이기 때문인지 어느 때보다도 이들의 편지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감옥과 군대를 등가로 두기에는 무리가 없진 않지만 기본적으로 일정한 바운더리 안에 매어있으며 정해진 일과대로 행동해야하며 그 행동에는 다양한 제약이 따른다는 공통점은 간과할 수 없다. 푸코를 들먹이며, 근대적 주체니 규율이니 감시니 파놉티콘이니 주절주절 쥐어짜낼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대부분이 그 유사성에 동의할 것이다. 

“이튿날 아침기상 나팔이 불면 어제와 똑같은 오늘이 시작되며 또 똑같은 내일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 무의미하고 단조로운 나날의 반복 속에서 수감자들은 모든 동작과 사고가 기계처럼 습관화되어버린다.” (신)

그렇다. 적어도 우리의 일상이란, 훈련음메에서 주말마다 붙여지는 일과표에서의 그것처럼 정해진 범위 안에서의 것일 수밖에 없다. 또 이 조직의 특성상 이로부터의 일탈이란 존재할 수가 없다. (물론 일정한 불이익을 감수하면 가능하겠지만) 대개 우리가 자대에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저녁을 먹는 시간까지의 생활에서 변화를 찾아보기 힘들다. 계급장이 하나 둘씩 충전되고, 사람들이 나가고 들어오고, 청소들에서 하나 둘 열외 된다는 ‘사소한’ 사실들을 제외한다면, “또 똑같은 내일이 반복되는 것이다.” 내일 아침은 (아마 오늘 아침에 그러했던 것처럼) 기상 나팔소리 혹은 후임들의 .호전파소리에 졸린 눈을 비비며 .호를 받(았)을 것이고, 궁옷을 입고 궁노래를 들으며 아침밥을 먹(었)을 것이고, 그렇게 여차저차 일과를 끝내고 생활관으로 돌아와 청소하고 그러다보면 또 나팔소리에 잠들 것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에 정신을 놓는 바람에 밤을 지새는 경우도 또는 여자 친구가 너무 사랑스러워 다른 정해진 일들을 다 내던져버리고 하루를 함께 보내는, 그런 아름다운 일 따위는 일어날 수가 없다. 서울이든 대구든, 몇 년 전이든 몇 년 후든 일정한 시공간을 초월해서, 우리는 이런 일들을 해왔고, 하고 있으며, 할 것이다.

앞날이 눈에 보듯 뻔히 예상된다는 사실은, 단 1분후의 일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이 보유한 주식의 가치가 떨어질까 조마조마하는 이들의 마음과는 달리 심리적으로 안정된 상태가 되는 데 큰 도움을 가져다 줄지 모른다. 마치 선물환거래라도 한 이의 느긋함처럼.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그 순간 맘 편해진 우리들에게 모습을 드러내는 뭔가가 있다. 말년병장에게 찾아온 갑작스런 사역과 같은 어떤 것이. 

“모든 것이 마음대로 될 수 없고, 급하다고 해서 되는 일이 없는 곳이고 보면, 마음을 다 잡고 매사에 느긋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오. 문제는 자칫 느긋함이 게으름의 원인 제공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오.” (정)

“자칫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반복되는 일상에 지겨워지고 식상하여 끈기를 읽고 게을러 질 수가 있지. 고사에 이르기를 ‘몸을 수고롭게 하지 않으면 게을러져 허물어지기 쉽다’고 했소. (…) 사실 사람의 정신세계에서 가장 악착스럽고 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게으름이란 요물이거든. 일단 게으름 병에 걸리기만 하면 마음에 녹이 슬고, 육체에 좀이 생기는 법이오 .(…) 게으름이란 결국 의지의 나약함에서 오는 것이오. ‘우리의 육체가 정원이라면, 우리의 의지는 그 정원을 가꾸는 정원사다’라는 셰익스피어의 유명한 말이 있소. 의지가 게으름 같은 질병에 감염되어 나약해지면 육체가 파리해질 수밖에 없소.” (정)

명예의 전당을 들쑤시다보면 선행자들의 궁 생활에 대한 놀랄만한 통찰(?)을 마주 대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박형주 씨의 ‘독서발전 4단계의 법칙’도 그런 것 중 하나다. 

“독서 발전 4단계 법칙이라고 해 두겠습니다. 그러니까 1.보고 싶어도 못 보는 때 2.겨우겨우 짬을 내서 보는 때 3.자기 시간에 마음껏 보는 때 4.드러누워 퍼지는 게 가능할 때의 순으로 놓을 수가 있겠죠. 이건 거의 예외 없는 역사적 필연인 것 같고. '창문을 바라보며 드러눕는다'라거나 '느긋한 일요일 오후가 느릿느릿 저물어가고 있다'같은 행동이나 느낌은 안에 있다고 해서 아무나 느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저는 입대 2개월차에 무려 한달이나 지난 신문을 화장실에서 잡아먹듯이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원영님의 생각도 본질적으로는 이런 병장적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에게만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거 같고. 다시 말하면 저 엄보운님의 경이적 독서활동도 조만간 봄날의 햇살 앞에서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http://26.1.1.40:2007/bbs/zboard.php?id=02191&page=1&sn1=&divpage=1&category=3&sn=off&ss=on&sc=off&keyword=허원영&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777)

처음에는 그냥 풋-하고 지나가고 말았지만, 곰곰 생각해보니 웃고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1→2→3으로 까지 과정에 있어 불합리에 대해서도 문제는 있지만 그것은 그래도 뭔가를 얻어가는 과정이기에 그나마 위안은 된다. 더 큰 문제는 ‘3→4’의 과정에 와서 생긴다. 그것은 대개의 경우 부정할 수 없는 ‘퇴보’이다. 나의 초창기 다짐들이 “봄날의 햇살”(뿐만 아니라 여름의 더위, 가을의 낙엽, 겨울의 추위 등등 말하자면 끝도 없는 것들) 앞에서 “무력해질 수밖에 없”는 ‘역사적 필연’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것. 그 과정 자체가 굴욕적임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따스한 침상에 몸을 웅크리며 리모콘이나 쪼물쪼물하고 있는 나를 마주대한다는 것. 이미 나도 “게으름이란 요물” 앞에서 허물어져버렸다는,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는 것.

훈련음메에서 시간날 때마다 수첩에 꼼꼼히 적었던 것들, 자대에 와서 가졌던 다짐과 목표들, 그런 것들은 이미 - 아무래도 전혀 입맛이 돌지 않는 오렌지 맛 맛스타처럼 - 짬통 어딘가를 뒹굴고 있을 것이다. 사실 우리 중 얼마나 이와 같은 ‘상실’(?) 앞에서 떳떳한지 모르겠다. 적어도 내 주위에 있는 이들의 궁 생활은, (물론 나를 포함해서) 하루 종일 뮤직비디오만 틀어주는 채널과 원더걸스를 위시한 여자연예인들, 그리고 드라마로 - 밑이 0과 1사이인 지수함수 그래프가 x축의 끝을 향해 달려가듯 - 수렴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가 없다. 꿈이 건축가이며 보들레르의 시집을 가지고 온 (하지만 잘 펴보지는 않는) 아이는 O자로 시작하는, 영화채널보다는 광고채널이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바보상자에 빠진지 오래고, 국제통상전문가를 꿈꾼다는 유학파 친구는 동양 문화에 대한 이해를 넓히기 위해서인지 신조협려나 의천도룡기를 읽지만 아직 손담비의 수렁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뭐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고.

이런 일련의 ‘게으름의 (어느 순간 비약적 상승이 가끔씩 보이지만) 점진화’과정과 함께 진행되는 것이 ‘핑계의 다양화’로 이는 대체로 뭔가를 많이 계획했던 이들에게서 유독 극심하게 나타난다. 처음 국면에서는 ‘아, 오늘 열심히 청소해서 몸이 피곤해’ 내지는 ‘내일 설탕 먹어야 하니 오늘은 마음 준비를 하자’ 등의 그나마 합당해 보이는 핑계, 나름의 생산적 목적을 위한 핑계를 댄다. 하지만 그러한 것도 익숙해지고, 스스로에 대해서 포기가 시작됨에 따라서 핑계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양상을 보인다. 예를 들어 ‘더우니까 쉬어야해’라는 이유가 ‘추운데 오늘은 쉬자’ 라든가 ‘아, 가을인데 무슨 공부냐’ 라는 식의 계절적 변동에 따르기도 한다. 문득 태양의 흑점 수의 변화와 주가변동을 연관 짓던 제본스의 센스가 생각난다. 이쯤 되면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xx 핑계’카드를 꺼내드는, 가공할만한 자기합리화의 괴물이 되어있는 자신을 발견하지도 모른다. 

이렇게 되물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게 다 무슨 잘못이냐, 궁 생활이 힘들고 하니 적당한 휴식을 취하는 게 어디 잘못이냐.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 그렇다. 사실 따지고 보면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을 자기가 가장 즐거움을 주는 방식으로 소비하고 있는 것이고, 누군가가 남의 인생에 뭐라 왈가왈부할 자격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퇴화한 집오리의 한유(閒遊)보다는 무익조의 비상하려는 안타까운 몸부림”(신)을 훨씬 ‘훌륭한’ 자세로 평가해야 하는 게 아닐까. 처음부터 그냥 그럭저럭 시간이나 보내며 궁 생활 할거야라는 사람에게는 해당되지 않을는지 모르겠지만, 입대와 동시에 한 생각들과 계획들이 있음에도 입대 전부터 자신이 옳다고,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있음에도 그에 어울리지 않는 생활을 해나가고 있다는 것은 어떤 핑계를 대더라도 자신 속의 무언가가 ‘퇴화’해 버렸다는 사실을 증명할 뿐이다.

이거, 또 말하다보니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결국 궁 생활의 반복되는 일상과 그것이 가져다주는 게으름 앞에서 우리는 쉽게 허물어져 왔고, 허물어지고 있다. 어쩌면 허물어질 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문제는 감옥도 별다를 바가 없다. 아니, 우리보다 더 많은 제약 속에서 생활하는 그들의 경우는 훨씬 더 일상의 피곤이 심할 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우리와 유사한 상황 속에서 비슷한 고민을 마주했을 이들이, 게으름이 가져오는 쇠락을 어떻게 넘어서서 이 영어-영내 생활을 자신의 정신적 성숙과 학문적 도약의 시기로 만들어 냈는가를 들여다보자는 게 (비록 초등학교 위인전틱하지만), 달콤한 낮잠을 고스란히 반납하고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내 거창하기 이를 데 없는 이유다.

1. 신영복의 경우

“사람은 실천 활동을 통해 외계의 사물과 접촉함으로써 인식을 가지게 되며, 이를 다시 실천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그 진실성이 검증되는 것입니다. 실천은 인식의 원천인 동시에 그 진리성의 규준(規準)입니다.” (신)

감옥은 일정한 뜻을 공유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부재하며 다른 이들과의 의사소통에도 제약이 가해지며 그렇다고 직접적인 실천을 할 수 있는 공간 역시 아니다. 기껏 주어진 시간 동안 그나마 마음껏 할 수 있는 것은 독서와 생각이다. 많은 책을 읽고, 많은 생각을 하는 것. 물론 그것은 그 자체로서 절대 해가 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감옥이란 공간의 특수한 성격상 늘어 가는 것은 생각의 ‘폭과 깊이’라기보다는 생각의 ‘녹(綠)’인 경우가 많다. “독서는 인식→인식→인식→…의 과정으로서 한발걸음에 불과하다. 이때 우리는 현실의 든든한 땅을 잃고 공중으로 지극히 관념화해간다.” 적당한 피드백이 없으며 구체적 실천마저도 한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우리들의 사유는 현실에 단단히 발 딛고 서기 힘들다. 

“출석부의 명단을 죄다 암기하고 교실에 들어간 교사라고 하더라도 학생의 얼굴에 대하여 무지한 한, 단 한 명의 학생도 맞출 수 없습니다. ‘이름’은 나중에 붙는 것입니다. 지식은 실천에서 나와 실천으로 돌아가야 참다운 것입니다.”(신) 결국 우리들 주위에는 주인을 찾지 못한 이름들만 방방 떠다니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대개 그 생각이란 ‘벼리’를 잡지 못한 채로 현실에 침윤해 잡념잡사의 범위 안에서만 왔다갔다  하기 십상이다. 생각을 엮어내려고 하는 순간마다, 어쩌면 유레카가 가까이 왔다고 느끼는 순간마다 우리는 고개를 들이미는 현실 앞에서 커피를 타거나 청소하느라 정신이 팔리는 게 하루 이틀 일인가. 때문에 넘쳐나는 시간 동안 많은 생각을 한 것 같은데도 불구 많은 이들이 이곳을 벗어나면서 남는 게 없다는 후회가 드는 건지도 모르겠다.

신영복 역시 어느 순간 깨닫게 됐을 것이다. 현실에 뿌리박지 못했기에, 실천을 통해 검증되지 않았기에 자신의 사유가 절름발이의 걸음과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그런 그가 다시 온전히 대지에 발을 내려놓게 되는 것은 함께하는 수인들과의 소통-연대를 통해서였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경험, 즉 ‘과거의 실천’을 자신의 목발로 삼”으며 자신의 한발걸음을 극복하려 한 셈이다.

하지만 어찌해서 두 발을 겨우 땅에 딛고 있다고 문제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목발을 가지게 됐다하더라도 그것이 걷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그 목발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거추장스런 장식물일 뿐이다. 그 목발을 자신의 다리로 삼고 어떻게 걸어 나가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단순히 목발을 가져다대는 것만큼 타인의 경험과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은 간단한 일인지 모른다. 타인의 말에, 이해하는 척하며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것은 얼마나 쉬운 일인가. 위계질서가 조직의 핵심이며 그에 따른 이해관계가 결정적인 이곳에서 우리는 좀 더 잘 보이기 위해 상대를 전혀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시도하지 않으면서도 위로의 말을 건네거나 고개를 끄덕이고 있지는 않은가. 아니, 정작 이 곳을 벗어난다 하더라도 애초에 이 시대는 ‘타인의 고통에 무감한’ 시대가 아닌가. 짤랑이는 돈 소리에는 예민한 감각과는 정반대로.

‘나는 이들보다 더 좋은 대학을 나왔고, 더 많이 배웠으며, 더 좋은(이라 쓰고 비싼이라 읽는) 집에 살고…’ 와 같은 ‘안경’을 낀 채로는 다른 누군가와 같은 눈높이로 대화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를 제대로 바라보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더 나은 대화와 소통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으며 함께 걸어가”는 노력을 통해서 가능할 뿐이다.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그를 오롯이 이해하려는 것. 그러한 노력이 없다면, 누군가 인간을 둘러싼 모든 비밀을 밝혀낸다 하더라도 그는 절름발이일 뿐이다. 

“인텔리의 안경” 그가 경계한 것은 그것이었다. ‘가치중립’이라는, ‘절충과 종합’이라는 허울 좋은 단어들은 은폐와 호도에 다르지 않다. 우리들이 상대와 상호작용 속에서 쉽게 빠질 수 있는 함정에 대해,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그는 하나하나 되짚어본다. 타인의 자리에 서보려 노력함으로써. 그것은 결코 중립적인 위치에서 ‘공정’이나 ‘객관’이라는 말을 내걸며 생각해보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단어들이 전제하는 “일정한 간격은 믿을 수 없는 풍문과 선입견으로 가득”차기 십상이라는 것을 우린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베푸는 자의 동기’까지를 분석하는 데에 이르러서 나는 벌거벗은 듯, 섬뜩한 감정까지 느꼈다. 그렇게 그는 진정한 소통과 연대란 무엇인지를 되새기고 또 되새긴다.

“그 사람의 삶의 조건에 대하여는 무지하면서 그 사람의 사상에 관여하려는 것은 무용하고 무리하고 무모한 것입니다. 더욱이 그 사람의 삶의 조건은 그대로 둔 채 그 사람의 생각만을 다른 것으로 대치하려는 여하한 시도도 그것은 본질적으로 폭력입니다. 그러한 모든 시도는 삶과 사상의 일체성을 끊어버림으로써 그의 정신세계를 이질화하고 결국 그 사람 자체를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

이 같은 자신에 대한,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이들에 대한 철저한 고민과 자기반성을 통해 그는 ‘목발로 삼은 그 경험들의 임자의 인식’에 공감함으로써 비로소 걸음걸이를 얻은 듯하다. 그것은 목발이 자신의 몸에 적응한 피상적인 종류의 것이 아리나 ‘자신의 몸을 목발에 적응시킨’ 능동적이며 진정성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자신의 몸에 일체화된 목발은 그의 몸 전체를 다른 곳으로 이끌었다. 대학 강사를 지내며 번역까지 할 정도의 경제학자를 우리시대의 빼놓을 수 없는 ‘정신’가운데 하나로, 이념을 막론하고 우리시대 지식인 누구에게도 존경받는 인물이 되도록. 비록 삐뚤고 느릴지 몰라도, 그의 목발은 그 어느 누구의 온전한 다리보다 따뜻하며 완전하다. 그것은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의 감옥생활을 동안 그가 다듬고 또 다듬어서 만들어낸, 영광스런 것이기에.

2. 정수일, 혹은 무하마드 깐수의 경우

북간도출생. 베이징대학 제 1회 입학생. 중국 국비유학생 1호로 선발되어 이집트로 유학 후 중국 외교부에서 근무. 이슬람 지역 관련 외교업무에 종사하다 돌연 북으로 환국. 남파간첩의 임무를 부여받고 10여년에 걸쳐 튀니지, 말레이시아 등지에서 생활하며 국적세탁. 필리핀에서 아랍인 2세(무하마드 깐수)로 행세해 대한민국 입국 후 단국대 초빙교수로 활동. 96년 국보법 위반혐의로 구속. 2000년 광복절 특사로 석방 후 왕성한 학문 활동.

소설 같은 인생 - 소설가 김연수를 비롯해 그를 재판한 판사조차도 그의 삶을 이렇게 표현했다. 거대한 역사의 굴레 앞에서 끊임없는 굴절을 강요받는 개인의 삶. 중국의 유능한 외교관에서 남파간첩으로, 각광받는 이슬람 연구가에서 감방안의 수인으로. 그렇게 끝없이 오르락내리락하는 롤러코스터 같았던 그의 삶. 이념이니 민족이니 하는 거창한 것들은, 개개인의 몸에 지워질 수 없는 상처들을 아로새기며. 그렇게 우리를 무심히 할퀴고 지나간다. 

신영복에게서 엿볼 수 있는 이미지가 친근한 이웃집 할아버지라 한다면 정수일은 아마 우리가 생각하는, 완고하며 한편으로는 고지식하기까지 보이는 올곧은 ‘선비’의 이미지에 가깝다. 집에 불이 나든 말든 정좌한 채로 책을 손에서 놓지 않던.

“느긋해 질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게으름을 예방하는, 무언가를 이루어내는 방도는 오로지 우직하게 우보천리하는 것 밖에 없소. 잔꾀에 한 눈 팔지 않고 속성(速成)에 현혹되지 않으면서 쉼 없이 뚜벅뚜벅 걸어가는 길밖에 없소.” (정)

“아직 갈 길이 멀고 해야 할 일도 많으니 부지런함과 땀으로 거듭 자신을 채찍질하게 되오.” (정)

우보천리(牛步千里). 그의 다짐이며, 책의 제목이기도 한 이 성어는 그의 감옥생활의 ‘4자 요약’이기도 하다. (이제까지 내 궁생활을 ‘원더걸스’로 요약해도 무방한 것처럼) 언뜻 와닿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루가 멀다하고 우리의 오감을 자극하는 카피들이 쏟아지는 이 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간다.’는 말은 ‘나쁜 짓하면 지옥 간다.’처럼 평범한 사실을 무색무취하게 환기시켜줄 뿐이다. 하지만 참 맛은 다만 담백할 뿐이 듯, 진리 역시 다만 평범할 뿐이다. 그가 자신의 다짐을 우보천리식으로 실천한 단적인 예가 하나 있다. 바로 국어대사전을 완독한 일이다. 전체 2,349 페이지. 솔직히 말해 500페이지 정도 되는 책들도 버거운 나 같은 이에게 그런 大사전은 꺼내 펴는 것조차 버거운 분량이다. 고침단명(高枕短命)이기에 그런 책은 베개하기도 적당하지 않다. 그는 하루 첫 일과로 약 40분간 5~6페이지정도를 공부하고, 연습할 종이도 충분하지 않기에 읽던 책의 여백에 낯선 단어들과 예문을 적은 후, 잠자기 전에 다시 그것을 복습했다. 그렇게 433일 동안 우직하게 2,349페이지의 국어대사전을 완독하기에 이른다. 소설가 김소진 역시 대학노트에 용례를 적어가며 국어사전을 통째 소화시켰다고 하지만, 감옥 속에서 한 장 한 장, 한 단어 한 단어씩 되새김질 한 그의 모습은 - 여백에 빈틈이 없을 정도로, 빼곡하게 단어들로 채워진 그의 책을 찍은 사진은, 내게 자못 충격이었다. 

이렇듯 감옥에서 마주하게 되는 ‘문제’들에 대한 그의 돌파구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채찍질하여 우보천리’하는 것이었다. 국어사전의 단어들을 하나하나 되새김질할 때의 그것처럼. 하지만 그것은 그 다짐만큼이나 쉽게 행해질 수 있는 종류의 것은 아니다. 고등학교 시절 ‘걸어 다니는 영어사전’이 될 거야 하며 괜찮아 보이는 영어단어장은 가리지 않고 사버렸지만, 구입한 단어장의 수만큼 영어단어를 그때 외웠었는지는 지금 생각해도 의문이다. 자신만의 굳은 ‘동기부여’가 없다면, 지금 어딘가 뒹굴고 있을 그 시절의 영어단어장들처럼 그런 다짐들도 쓸모없는 것이 될 뿐이다. 그렇다면 그를 붙잡아주던 것은 무엇일까, 아니 좀더 거슬러 올라가서 잘나가던 외교관이던 그가 돌연 북으로 환국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그 이유에 대해 이런 답을 한다. “시대와 역사 앞에 지닌 민족적 사명을 위해서, 민족사에 무언가를 남겨놓고 싶은 개인적 욕구” 때문이라고. 그 때문에 중국 당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환국을 신청했다는 것이다. (약간 붕 뜨는 느낌이 없진 않다. 누군가는 그의 환국이유로 중국 정부 내에서의 ‘차별’을 꼽는다.) 책을 통해서 잘 드러나듯, 그의 학문적 최종 과녁은 ‘문명 교류학’이라는 학문의 정립이었다. 흔히 은둔국(the Hermit Nation)으로 소개되는- 지극히 서구적 시각으로 재단된 우리의 역사에 대한 문제제기로, 우리는 은둔국이 아니라 ‘세계와 더불어 살아가는 열린 나라’였다는 것을 밝히고자 한다. 그가 천착하고 있는 씰크로드의 한반도 연장문제 역시 이러한 작업의 일환이다. 또한 풍부한 아랍-이슬람 국가들에서의 외교활동으로 거의 12종의 언어와 씨름한 경험이 있는 저자는, 흔히 우리가 세계사에서 간과하기 쉬운 이들 문명을 소개하는 데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다양한 중동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유리함이 있기 때문에 그는 그동안 고대사 연구에 있어서 미진했던 페르시아 등과 관련한 중동과의 교류를 연구하는데도 손을 놓지 않았다. 그는 수감되는 그 순간까지 제자들과 함께 『고대문명교류사』를 펴낼 준비 중인, 그래서 문명 교류학이라는 배가 돛을 올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실 국보법이 국시라 할 수 있는 우리나라에 매우 중죄인 간첩활동에도 불구하고 그가 상대적으로 낮은 형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이와 같은 그의 학문적 열정을 재판부에서 인정해주었기 때문이다. 원심 판결문 중 일부는 이렇다.

“개인적으로 정세분석 보고 이상으로 학술연구에 가치를 두었고, 이러한 피고인의 행위가 단순히 자신의 신분을 위장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자신의 학문적 열정 따른 것이다.”

그의 이 같은 확고한 학문적 지향이 스스로를 거듭 채찍질하게 만들었다. 책을 읽다보면, 약간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빈번하게 ‘민족적 사명’을 운운하는 그의 모습에서 어쩌면 이러한 말들이 재판부를 의식한 일종의 변호행위가 아닌가란 의문이 들기도 하고, 약간의 답답함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살아온 삶의 궤적을 돌이켜보았을 때, 결코 그와 같은 생각들에 대해서 비난을 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앞서 인용한 신영복의 말마따나 “그 사람의 삶의 조건에 대하여는 무지하면서 그 사람의 사상에 관여하려는 것은 무용하고 무리하고 무모한 것”이기에. 중국에서 소수민족으로 활동하며 받은 핍박들은 그의 몸에 ‘민족’이라는 문신을 새겨버린 것은 아닌지. 그런 그의 모습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 역시 어쩔 수가 없다. 

그가 감옥생활을 마치기까지 집필한 분량은 200자 원고지 2만 5천매에 달한다. 번역작업과 씰크로드학의 학문적 정립을 위한 메모들이다. 이는 단순히 5년의 수감생활을 따져봤을 때, 하루에 15매에 달하는 메모와 번역을 꾸준히 해온 셈이다. 참고자료가 거의 전무한 상황에서 그가 학문에 얼마나 절치부심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감옥이라는 여러 제약이 따르는 상황에서 이와 같은 일을 했다는 사실은, 오늘도 몇 줄 쓰지 못하고 노트를 덮어버리는 내 모습을 참 부끄럽게 한다. 그렇다고 그가 이와 같은 글들을 편안한 환경 속에서 쓴 것일까? 편지들 중에는 그의 글쓰기 장면을 소개하는 부분이 있다. 감옥에 제대로 된 상(床)이 있을 리가 만무하다. 그래서 그는 바닥에 쪼그려 앉아 2~3시간 동안 다리에 피가 통하지 않을 때까지 몸을 뒤틀며 글을 쓴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책 세권을 쌓아 임시방통으로나마 책상처럼 사용하게 됐고, 그날을 영어 생활 중 ‘가장 기쁘고 기억에 남는 날’이라고 적고 있다.

늘 ‘첩경을 찾는 낭비’를 일삼는 나에게 그의 이런 무모할 정도의 우직함은, 참

불편하다.


- 사형을 구형받게 됐을 때, 사람들은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 누군가는 억울함에 소리치며 자신의 두려운 마음을 다른 누군가 알아주기는 바랄지도 모르고, 또 누군가는 헤어나올 수 없는 절망의 나락 속에서 모든 행동의 의미를 잃고 그저 멍해져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마 나의 경우에도, 절망에 빠져 몸을 가누기가 어려울 것이다.

신영복은 남한산성 육군 교도소에서 사형을 언도받았다. 몇 백년 전 인조가 굴욕적으로 머리를 찧은 그 자리에서. 그는 그 상황에서 글쓰기에 모든 정신을 쏟았다. 제대로 된 종이가 있을 리가 없었다. 휴지조각을 잘라 쉼 없이 자신의 생각을, 삶을 한 자 한 자 적어 내려갔다. 그것은 다행히 버려지지 않고 있다가 책의 앞부분에 실리게 된다.
정수일 역시 사형을 선고받았다. ‘마(魔)의 2주’ 그는 그렇게 그때를 표현한다. 하지만 그 역시 절망 속에서 허우적거릴 시간이 없었다. 그 2주의 기간 동안 그는 그 판결에 개의치 않(으려 노력하)고, ‘시간을 앞당겨야 한다는 촉박감에서 아예 구형 같은 것은 저만치 밀어제치고 해오던 번역에만 부심전념’했다. 이것은 그가 계획한 대로의 분량이었고, 그 결과 석방 후『중국으로 가는 길』이 번역되어 나왔다.

굳이 거칠게 유형화한다면, 신영복의 경우는 감옥에서의 기간을 자신과 함께 그 시간을 오롯이 견디는, 체온 그 자체로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수인들과의 소통을 통해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외(外)적 스타일이었다면, 정수일은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며 자신의 학문적 지향을 위해 저술 작업에 충실했던 내(內)적 스타일이 될 것이다. 신영복의 편지와는 달리 정수일의 편지에서는 자신과 함께하는 수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없다. 책의 상당분량은 자신의 삶의 화두, 이제까지의 삶, 앞으로의 계획 등등에 할애된다.


“사람이 그리운 시절에 그 앞에 잠시 멈춰 설 수 있는 인간의 초상을 만난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신)

한번 스스로에게 되물어본다. 나는 생활관에는 수많은 이들과 살을 마주대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나 역시 ‘인텔리의 안경’따위를 끼고 누군가를 대하고 있진 않은가.(내가 인텔리란 말은 아니라) 진정 나는 나를 내보이며 대화에 임하고 있나. 난 이미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멋대로 단정한 다음, 진지한 소통이라는 목발을 내던지고 있지 않나. 쌓여가는 책만큼이나 내 지식들은 땅에 발 딛고 있나. 그리고 내겐 글을 쓰기에도 책을 읽기에도 ‘편안한 책상’도 있고. 사실 따지고 보면 뭐 하나 부족한 환경이 아니다. 그런데도 나는 무엇을 얼마나 쓰거나 읽고 있는가. 오늘 또 적당한 핑계를 위안삼아 그럭저럭 하루를 보내고 있는 건 아닌지. 내가 가진 삶의 화두에 대한, 나의 학문적 지향에 대한 고민은 진지한가. 나는 나의 이 ‘작은 유한(有限)’을 채울 무엇인가에 골몰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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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마을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8-11-02 21:34)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8-12-08
20:31:23 

 

상병 이지훈 
  좋은글 감사합니다. 정말 잘 읽었습니다 느끼는 점이 많네요 

입대와 동시에 한 생각들과 계획들이 있음에도 입대 전부터 자신이 옳다고,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있음에도 그에 어울리지 않는 생활을 해나가고 있다는 것은 어떤 핑계를 대더라도 자신 속의 무언가가 ‘퇴화’해 버렸다는 사실을 증명할 뿐이다. 

마구 와닿네요 
그리고 지금 너무 배부릅니다 맛있는 음식을 배터지게 먹었네요 
이제 제 에너지로 소화시킬일만 남았는데 설사할까봐 걱정이네요 후후 2008-11-02
04:05:45
  

 

병장 장태순 
  가지로 외칩니다 2008-11-02
06:00:09
  

 

상병 이우중 
  오. 좋군요! 
동욱님 글은 처음 보는 것 같아요. 
처음의 다짐들을 다시 한 번 다져볼 때가 된 것 같군요 저도ㅡ 

가지로 가야죠 이런 건 2008-11-02
07:36:10
  

 

병장 김선익 
  긴 출동을 뛰고 오랜만에 책마을에 왔는데 
이렇게 좋은 글이.. 
저도 가지로 외칩니다. 2008-11-02
08:05:37
  

 

상병 양순호 
  이런 글을 가지로 가기엔 너무 이른 것 같습니다. 
더욱 더 많은 이들이 읽고 느끼고 생각하고 나누고 더해야 한다 생각합니다. 
그런고로 제 가지로는 아직입니다. 나중입니다. 

..실은 저 이거 반쯤 읽다 말았거든요. 2008-11-02
10:48:20
  

 

병장 문두환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바느질을 해 놓은 잘 만들어 놓은-예쁜 옷 같은 글입니다. 

김대현의 '결코 명예롭지 않은-'과 박수영의 '상병 최후의 날'을 읽으며 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동욱님의 글을 읽으면서 그 글들과는 또 다른 고민들이 스쳐가는군요. 

민족적 사명. 이 사회에서 자라나 이 사회에서 가꾸어온 지식을 먹고 자란(혹은 자랄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이로서의 사회에 대한 책임. 어렵습니다. 이 안에서의 관계의 문제든,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가해야 하는 성찰의 문제이든. 그리고 단지 머물러 지내다 가는 것이 아니라 어찌되었던 이 모든 환경을 겪고 나가는 이가 사바세계에서 말 하고, 실천해야 할 문제들. 어렵군요. 어려워요. 2008-11-02
11:37:08
  

 

일병 김예찬 
  나태와 무기력에 허우적거리고 있던 저에게 마치 세찬 죽비소리 같은 글입니다. 

민족적 사명이란 정 교수님이 살았던 시대, 그리고 그에게 주어졌던 생의 조건들을 고려해봤을 때 충분이 등장할 수 있을 법한 이유라고 생각되네요. 정 교수님을 생각하면 개인적인 아쉬움이 많이 드는데, 오래 오래 학자로서 활동해주셨으면 합니다. 2008-11-02
13:11:17
  

 

병장 이건진 
  저도 얼마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다 읽었는데. 
비슷한 시기에 같은 책을 읽은 분을 보니 반갑네요. 
공감하는 부분이 너무 많죠. 교도소와 부대찌개 식당은. 

더 일찍 읽었어야 할 책인데. 너무 늦게 읽어서 좀 아쉬웠습니다. 2008-11-02
14:28:43
  

 

일병 김예찬 
  아참, 가지로! 2008-11-02
16:33:52
  

 

병장 이동석 
  가지로 가는건 다음 페이지 넘어가면- 하겠습니다. 그리고 아직 이 글을 더 읽어보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2008-11-02
16:48:55
 

 

병장 이동석 
  단순히 인식-인식-인식-어느새 공중으로 관념화된 글이 아니라 더욱 더 절절합니다. 
생활속에서 인식을 발붙혀 자신만의 목발을 체화시키려는 절뚝거림-이랄까요. 

구절 구절 버릴곳이 없지만, 제게 유독 이 

‘베푸는 자의 동기’까지를 분석하는 데에 이르러서 나는 벌거벗은 듯, 섬뜩한 감정까지 느꼈다. 그렇게 그는 진정한 소통과 연대란 무엇인지를 되새기고 또 되새긴다. 

“그 사람의 삶의 조건에 대하여는 무지하면서 그 사람의 사상에 관여하려는 것은 무용하고 무리하고 무모한 것입니다. 더욱이 그 사람의 삶의 조건은 그대로 둔 채 그 사람의 생각만을 다른 것으로 대치하려는 여하한 시도도 그것은 본질적으로 폭력입니다. 그러한 모든 시도는 삶과 사상의 일체성을 끊어버림으로써 그의 정신세계를 이질화하고 결국 그 사람 자체를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 

대목이 와닿습니다. 저도 이 책을 읽으며 노트에 옮겨적으며 되뇌보기도 했지만, 단순히 인식-에 그쳐 버렸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지요. 

참 할말이 많지만, 다시 이 글을 기억에 새기며 제 생활을 돌아 봐야겠습니다. 2008-11-02
17:44:32
 

 

병장 이동석 
  그리고 가지로- 2008-11-02
18:05:21
 

 

병장 이동석 
  ‘나는 이들보다 더 좋은 대학을 나왔고, 더 많이 배웠으며, 더 좋은(이라 쓰고 비싼이라 읽는) 집에 살고…’ 와 같은 ‘안경’을 낀 채로는 다른 누군가와 같은 눈높이로 대화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를 제대로 바라보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더 나은 대화와 소통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으며 함께 걸어가”는 노력을 통해서 가능할 뿐이다.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그를 오롯이 이해하려는 것. 그러한 노력이 없다면, 누군가 인간을 둘러싼 모든 비밀을 밝혀낸다 하더라도 그는 절름발이일 뿐이다. 

“인텔리의 안경” 그가 경계한 것은 그것이었다. ‘가치중립’이라는, ‘절충과 종합’이라는 허울 좋은 단어들은 은폐와 호도에 다르지 않다. 우리들이 상대와 상호작용 속에서 쉽게 빠질 수 있는 함정에 대해,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그는 하나하나 되짚어본다. 타인의 자리에 서보려 노력함으로써. 그것은 결코 중립적인 위치에서 ‘공정’이나 ‘객관’이라는 말을 내걸며 생각해보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단어들이 전제하는 “일정한 간격은 믿을 수 없는 풍문과 선입견으로 가득”차기 십상이라는 것을 우린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아아- 2008-11-02
20:33:02
 

 

병장 고동기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책마을에서 자주 언급되었지만 
정수일의 옥중편지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는 잘 안보여서 아쉬워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글이 주말에 올라왔었군요. 2008-11-03
08:45:53
  

 

병장 김동욱 
  저 역시 늘 되뇌어보지만 늘 인식 (사실 인식까지 가지도 못하고 그 근처에서 허우적대기 십상이지만) 에서 그쳐버린 기억이 대다수입니다.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는 말들과 생각들을 밖으로 꺼내놓고, 몸으로 옮긴다는 것이 참 어렵고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제 이렇게 유예하고 주저하기에는 - 저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서. 

욕심내지 않고 한걸음 한걸음씩, 늘 그렇듯이 한발짝씩 늦더라도, 
우직하게 뚜벅뚜벅 걸어나가고 싶습니다. 
함께! 해요. 2008-11-12
23:38: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