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글-독서후기] 난 이 종언 반댈세.  
상병 김요셉   2009-01-08 14:11:42, 조회: 282, 추천: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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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뒷북 한 번 때려 봅니다. 흐흐흐.




청춘의 종언을 읽었다. 누군가는 이 소고를 읽고는 엄청나게 분통을 터트려 댔다더라. 아팠다더라. 답답했다더라. 슬펐다더라. 나 또한 그렇게 느꼈으며, 무기력한 가운데 이를 바득바득 갈다간, 그런데, 김현진이라. 김현진. 누구더라. 낯익은 이름이다. 그 이름을 한참동안이나 되새겼으나, 첫사랑의 이름인지 오래전 헤어진 옛 친구의 이름인지 기억이 흐리다. 글을 다 읽고서야 겨우 떠올렸다. 그는 첫사랑도 아니고 옛친구도 아니며, 어쩌면 '피고'라 이름붙이는게 어떨까.

글의 말미에 붙은 김현진에 대한 소개. 에세이스트. 시나리오 작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졸업.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과 대학원 재학 중. 저서로 '내 멋대로 해라' (...)

'내 멋대로 해라'. 그래 기억 난다. 그걸 읽은게 아마도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이였을텐데, 그러니 열 여섯 때 즈음이였을까. 그 때나 지금이나 내 애송이적 작태들은 변함없지만 김현진은 그새 꽤나 바뀌었나보다. 못 알아 볼 정도로 변한 듯 싶으니, '청춘의 종언'을 읽으며 첫 에세이집 '네 멋대로 해라' 시절의 김현진을 떠올리지 못한 건 당연하다. 사실 그 때 김현진이 무슨 이야기를 했었는진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 때는 김현진도 지금보다는 훨씬 어렸고, 그의 글은 그만큼 풋풋했으며 치기로 가득 차 있었다. 나 또한 지금보다는 훨씬 어렸고 김현진만큼이나 치기로 가득 차 있었으니, 김현진의 글을 읽으며 이건 뭐 어쩌라는거야, 싶었던 기억만 얼핏 난다. 결국 지는 지 멋대로 살고 있으니 니는 니 멋대로 살아보라는 글인데 - 물론 열여섯의 나는 '멋대로'라 쓰고 'ㅈ대로'라 읽었음이 분명하다 - 뭐 그런 당연지사를 가지고 거창하게 책까지 낼 것 있느냐. 그게 뭐 그리 대단한가. 그래, 김현진도 그런 같잖은 당연지사 가지고 지 인생 스토리를 구구절절 풀어 책까지 냈으니, 그럼 나도 한 번 해 보지 뭐. 나도 내 ㅈ대로 살아보지 뭐. 어려운 일도 아닌 것.
그렇다. 말하자면, 풋풋하던 피고 김현진은 젖비린내나던 열여섯 애송이를 상당히 이색적인 방법으로 도발한 바 있다. 그 도발에 넙죽 넘어가, 나도 그만큼은 한다 이거야, 라며 지 인생을 지 ㅈ대로 살아오던 열여섯 애송이는 이제 요 모양 요 꼴이 되었다. 밤새 술마시고 길바닥에 퍼질러 자다가, 나는 왜 술을 마시는가 하는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판단력 비판을 읽는 스물세 살 애송이가 되었다.
박노자 라거나 홍세화 라거나. 그 양반들이야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내 전범(典範) 중의 몇이라 말할 수 있겠지만, 김현진이라면, 전범(典範) 보다는 전범(戰犯)에 속한다. ㅈ대로 사는게 평탄할 리 있나 - 전쟁이나 마찬가지지. 그 전쟁을 불러일으킨 중요 피고인중의 하나다, 그녀는.
아, 그런데 설마하니, 김현진의 ‘멋’은 나름 고상했다 치더라도 애송이 네놈의 ‘ㅈ’은 고작해야 온라인 게임 정도 아니였느냐 하는 멋쩍은 반문은 던지지 말아주시길. 그 정도의 반문은 나도 이미 예상하고 있었으며, ‘멋’을 ‘ㅈ’으로 해석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변질이 있었음은 인정한다. 그래도 그건 일단 제쳐두자. 변명하기도 귀찮다. 적어도 정말 온라인 게임이나 하고 있지는 않았다고만 말해두는 걸로 하고.

어쨌거나, 그랬던 김현진이 이제와 지껄이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어라. 이건 좀 아닌데, 싶다. 슬슬 심기가 불편해지는 것이 비단 그녀의 말이 너무 바른 말인지라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지경이라서만은 아니다. 어찌 보면 바른 말일 듯 싶지만, 그게 김현진의 입에서 나왔다는 게 분통이 나서 견딜 수가 없다. 다른 사람도 아닌 김현진의 입에서, 나를 요 모양 요 꼴로 만든 김현진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는게 ‘요즘 것들은’ 이렇다 저렇다 운운하고 있으니 화가 날 수 밖에 없다. 이 분노의 정체는 배신감이다.

이 분노와 배신감은 크게 두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니 멋대로 살아보라 그럴 땐 언제고 이제와선 ‘그렇게 살면 안 되지’라는 듯 혀를 차듯 말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품게 되는 단순한 반발심이다. 또 다른 하나는, 혹 김현진이 ‘나는 네 멋대로 살았더니 이제 이 만큼은 산다. 너희들에게 훈계 할 정도의 위치는 된다. 그런데 너네는, 네 멋대로 살더니 그 꼴이 이게 뭐냐’ 라고 말하는 듯 하여 그에 대해 품게 되는 계급적 반발심이다.

김현진은 이렇게 말했다.
이십대들에게 특징이 없다. 겁에 질려 있다. 계급적 열등의식을 완전히 내면화 하고 있다. 안그래도 겁에 질려 있는데다가 말 할 기회도 없으니 입닥치고 가만히 있는 것 같다. 맞기 싫으니 비폭력 운운한다. 어쩌고 저쩌고. 요약하자면, 뭐, 병-신같다 이건가.

그래 병-신 같은 건 맞다. 여러모로. 그런데, 특징이 없다느니 겁에 질려 있다느니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싶다. 저 말은 이십대를 향한 말이고 나는 보편적 이십대에 속해있음이 분명하니 곧 저 말은 나에게 하는 말 이렸다. 내게 특징이 없다니, 내 입으로 말하긴 민망하지만 특징이라면 얼추잡아도 일흔일곱개 쯤은 가볍게 뽑아 낼 수 있겠다. 특장을 찾아내려는게 아닌 바에야 말이다. 겁에 질려 있다라니, ‘겁’이라는 단어를 접하자마자 속에서 욱 - 하니 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의 정체는 분명 ‘겁’ 이라기보다는 ‘만용’ 혹은 병에 가까운 ‘무책임’에 더 가깝다고 보는게 옳겠다. 계급의식이라면, 할 말 없다. 그게 뭔가. 먹는건가. 어릴 적부터 워낙 배고프게 살았던 터라, 이제 왠만한 건 다 먹는 걸로만 보인다.

배고픔에 지쳐 보이는 것들마다 닥치는대로 먹어치우는 건 나 뿐만이 아니다. 내 주위의, 김현진이 겨냥한 이십대들을 보자. 그들, 그렇게 마시고도 아직 지치지 않았는지 오늘도 마신다. 내일도 마신다. 술만 주구장창 마신다. 먹고 살 방도는 구하고 저러는 건지, 야밤에 홍대 앞 놀이터에서 어슬렁거려 봐라. 거기서 만나는 놈들 하는 짓들을 어디 한 번 봐 봐라. 그 놈들 한숨밖에 안 나온다. 커서 뭐가 될련지. 게다가, 그 어처구니없는 놈들이 술 쳐마시고 하는 짓이라는게, 음악을 한다질 않나 연극을 한다질 않나. 하나같이 굶어죽기 딱 좋은 일들만 골라 하고 있다. 누군가는 혁명가를 꿈꾸고 누군가는 그치지 않고 글을 쓴다. 얼핏 보기에 장난감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만들어 파는 녀석도 있고, 그걸 꼬박꼬박 돈 주고 사는 놈들도 있다. 대체, 뭐 하는 놈들이냐 그것들.

정말이지, 지 ㅈ대로들 살고 있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대부분의 20대는 정치 따위엔 무관심하다. 인정한다. 그렇다고해서, 그 대부분의 20대들이 숨 죽이고 병-신처럼 살고 있다는 우를 범하지는 마시길. 20대가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투덜거리지 마시길 - 이제 이미 당신이 생각하는 20대는 사라지고 새로운 20대가 나타나 활개치고 있으니까. 당신의 20대는 낡았으니까. 지금 이 순간 정치적 올바름을 위해 투쟁하는 20대는 물론 당신이 기대하고 있는 정도에 훨씬 못 미치겠지만, 정치적으로는 올바르지 못할지라도 제 삶의 올바름, 정치성과는 또 다른 제 이상의 올바른 실현을 위해 죽기살기로 악쓰며 투쟁하는 20대는 당신의 생각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그렇게 확신한다. 그렇게 믿는다. 또한,

적어도 내 경우 내가 이렇게 된 건, 김현진 당신 때문이라구. 그러니 그런 같잖은 소리 하지 마세요.

어디 두고 보라지. 홍대 앞에서 술 취해 악쓰는 20대는 지금껏 찾아보기 힘들었던 새로운 20대의 전형이나, 그들은 감히, 섣불리 청춘이 끝났느니 어쩌니 하는 말이나 들어야 할 정도로 덜떨어지진 않았다. 도리어 그 반대에 가깝다. 낡은, 지난 시대 20대들이 보여주었던 ‘청춘’스러운 모습을 가지지 않았을 뿐이다. 화염병을 던지는 대신 기타 잡고 노래를 부를 정도로 ‘발랄’해졌을 뿐이다. 침침한 방 안에서 밀담을 나누는 대신 무대 위에 올라 많은 사람들 앞에 소리를 지를 정도로 넓고 관대해 졌을 뿐이다. 

새로운 ‘청춘’이 도래했을 뿐이다.

정말이지, 두고 보라지. 청춘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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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6
13:13:18 

 

상병 김무준 
  오오 뒷북의 파급효과가 꽤나 큽니다? 재밌네요. 킬킬킬. 2009-01-08
14:39:55
  

 

상병 김요셉 
  무준씨 뒷북을 보다가, 그 글을 읽으며 혼자 열심히 김현진을 씹어대던게 생각나서 말이죠. 흐흐 2009-01-08
14:44:33
  

 

상병 김예찬 
  크크. 제 짧은 생각으로는 김현진이 이야기하는 20대들과 홍대 앞 놀이터의 20대들은 같은 20대를 지칭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아무튼 재밌게 읽었습니다. 이 글을 읽으니 고딩 때 [네 멋대로 해라]를 읽었을 때 김현진이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아무튼 김현진은 제 멋대로 해서 각광을 받을 수 있었던, 그런 세대였던 것 같아요. 그때쯤 청소년 문화랄까, 그런게 본격적으로 이야기 되고 있었고 대중 문화에 대한 (어느 정도 돈이 되는) 관심이 부풀어 올랐던 시기죠. 김현진으로 대표되는 일군의 무리는 그 시류를 잘 탔구요. 2009-01-08
14:46:47
  

 

병장 김민규 
  아, 시원해. 병-신같은 20대가 ㅈ대로 한번 나불거려 보렵니다. 가지로. 2009-01-08
14:53:56
  

 

상병 이지훈 
  오랜만에 외쳐보렵니다! 가지로! 2009-01-08
15:29:42
  

 

상병 김요셉 
  예찬 / 네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싸잡아 놓고 까는 것 같아 상당히 불쾌해서요. '네 멋대로 해라'에서 지는 영원히 애송이처럼 살 것처럼 굴더니만. 이제 좀 잘나간다고 우세 떠는 것 같기도 하고... 2009-01-08
16:02:30
  

 

병장 이동석 
  난 이 반대에 반댈세. 
김현진이 옳든 그르든, 그 대담의 정황만으로 판단하는건 너무 일러요. 

물론 저도 이 글 시원하게 읽었습니다만. 2009-01-08
16:08:37
 

 

병장 이동석 
  아 그게 그 구체적 정황에 대한 비판-조차도 반대한다는건 아니고, 
김현진은 일단 잘 안나가고, (어딜 봐서 잘나갑니까) 

우세 떤다-기 보단 그 대담에서의 포지션이 20대를 대변하는 위치였고, 20대 내에서의 20대를 보는 시각-이 아니라 20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자리의 20대였어요. 어쩌다 제가 김현진을 변호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뭐 전 원래 골수까지 반골이니까 그렇고, 사실 누가 김현진을 비판하지 않았으면 제가 먼저 깠겠지만, 그래도 

난 이 반대 반댈세. 2009-01-08
16:12:57
 

 

병장 김민규 
  당시에 달았던 리플에도 남아 있겠지만, 저 역시도 그냥 기분 나빴어요. 비아냥의 일종으로밖에 받아들여지지 않더군요. 니들이 알면 뭘 알아, 하는 듯한 그 어조가 곱게 들리지 않더군요. 짧은 대담으로 그의 진심을 판단하는 것이 이르다는 말씀에는 동의하나, 적어도 그 대담 안에서의 그는, 비난받을만 하다는 생각입니다. 2009-01-08
16:14:53
  

 

상병 김예찬 
  김현진이 잘 나간다, 라고 말하기는 어렵겠습니다만 (그 '잘 나간다'의 개념 자체가 모호하고 말이지요.) 적어도 그 나이대에 있어서 그 정도로 글을 발표할 수 있는 지면 자체를 확보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볼 수 있겠죠. 그렇기 때문에 저 대담의 일원으로 참가하게 된 것이기도 하구요. 물론 이건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긴 합니다. 2009-01-08
16:17:04
  

 

상병 김요셉 
  중요한 이야기가 아닙니다만, 동석씨. 김현진은 좀 잘 나가 뵈더라구요. 예찬 씨가 방금 말했듯이요. 게다가, '나 어디서 좀 싸워봤다'는 듯 말하는 그의 태도도 그렇구요. 허세뿐인건지도 모르겠지만, 설마. 그러기야 하겠습니까. 

게다가 나 어디서 좀 싸워봤는데, 너넨 뭐하니. 하는 듯한, 그거. 대변하는 걸로는 보이지 않더군요. 

사실, 믿는 도끼에 발등찍혔달까. 상당히 감정적인 반댑니다 이건. 영 억울해서요, 그래도 한때 풋풋한 글을 썼던 김현진이라면 종언이니 어쩌니 하는 말은 하지 않았을텐데 - 하는 억울함에서요. 2009-01-08
16:33:33
  

 

병장 이동석 
  옴마, 그 청춘의 종언-이라는 표현의 책임을 김현진에게 돌리는건가요. 
뭐 김현진신-의 어록에 감히 토를 달다니-라는 맥락에서 이야기하는것이 아니란것쯤은 아시리라 믿고 

전 왜 그 김현진의 20대 인식이 이렇게 일괄적으로 비판받는지 의문입니다. 

고까운건 아닐까요. 386 세대 유명한 누구, 뭐시기뭐시기 연구소장 누구가 까도 화날판인데, 어디서 낫살도 별로 안쳐먹은 지집애가, 나랑 별로 차이도 안나누만, 꼴랑 글팔아먹으면서 편하게 사는게 어디서 아는척이야 아는척이? 라는 맥락은 아닐까요? 

감정적인 반대라고 해서 반대할건 없지만, 글쎄 다른 대담자들의 발언과는 달리 김현진이 대담에서 임했던 일련의 발언이 유독 문제가 되는 까닭은 뭔가요. 글쎄 어느쪽이 더 직설적이냐, 더 기성적인 언어냐의 차이인가의 차이말고, 어떻게 보면 누군 몸사리고 누군 욕먹든 말든의 차이 말고, 규정하는 시각이 동정이냐 비판이냐의 차이말고 어떤 격의 차이가 있나요? 한쪽은 엄청나게 막돼먹은 인식이고, 한쪽은 지당하신 말씀-인가요. 2009-01-08
16:50:41
 

 

병장 김민규 
  그런 혐의로부터 저는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군요. 

저는 그 사람이 뭐하는 사람인지, 어떤 대단한 업적을 남겼는지, 무슨 타이틀을 달았는지 애초부터 몰랐고, 별 관심도 없었거든요. 적어도 그런 맥락에서의 불편함은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안이한 비폭력, 옹박산성은 실언이예요. 김현진의 말이 유독 도드라져보이는건 착시인가요. 사태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다른 이들은 현상의 이해 정도로 넘어가는 것 같은데 김현진씨는 좀 나름대로는 동질적인 입장이랄까, 그래요. 그러다 보니 더 편하게 이야기하는지도 모르겠는데, 그만큼 '우리 아이들이 요새는 영' 식의 뉘앙스가 나오는건 아닌가요. 

얘기했잖아요. 어린애 취급하는거 안 좋아한다고. 2009-01-08
16:57:37
  

 

병장 정병훈 
  이거 참여하고 싶은데, 저녁 늦게나 읽어 볼수 있겠군요. 휴. 2009-01-08
17:11:42
  

 

병장 이동석 
  엄, 그리고 전 이 문제로 제 소중한 무언가가 상처받지 않기에, 이렇게 정색하는것 같아보여도, 그냥 하는 말입니다. 혹시나 이 색기 또 시작이네-라고 생각하신다면, 오해여요. 

일전에 이야기하다 말았지만, (예, 그러니까 이 글이나 요셉님의 시각과는 다른 범주의 이야기랍니다.) 

전 그 비폭력은 뭔가 길들여져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폭력을 옹호하겠다는게 아니랍니다. 일종의 바른생활삘-, 국민윤리삘-이라는 생각이 든다는거에요. 

이를테면, 이런 맥락입니다. 

지하철에 보면 노약자석이 있잖아요. 그 자리가 비어있고, 선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도, 젊은사람들은 분위기상 아무도 선뜻 그 자릴 앉지 못해요. 그 자리는 엄밀히 말하면 교통약자를 위해 양보해주는 자리이지, 교통약자가 아닌 사람이 앉으면 큰일나는 자리는 아닌데도요. 교통 약자에 대한 배려-였다면 지금 당장 있지도 않은 교통약자배려석을 비워두고 굳이 서있을까닭은 없죠-나 그런게 아니라 그냥 훈육받은대로, 어쨌거나 지켜야 하니까 곧이곧대로 그렇게 그 자리를 비워두는거지요. 이건 엄밀히 말하면 제 경우이기도 할텐데, 그런 인식을 하고 있더라도 막상 그 자리에 앉으려면 제 안에서 뚝-하고 멈칫하게 있는게 있습니다. 제 안에 프로그래밍된 어떤 것의 실체와 마주하게 되는겁니다. 

심지어 그 자리에 용감하게 앉아있는 젊은 외국인이나 좀 젊어보이는 아주머니를 보면 무의식적으로 비난-을 하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그 약간의 충돌에도 비폭력을 반사적으로 외치는 것처럼. 

저도 물론 비폭력-을 외쳤지만, 돌이켜 보니 입맛은 썼습니다. (여기서는 더 이야기하는것이 무리겠군요) 나는 왜 반사적으로 비폭력-을 외쳤나. 저들의 옹박산성과 원천봉쇄의 폭력성과 모욕감과는 별개로, 그저 그놈의 준법-이라는 메커니즘에 경도되어 있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단 말입니다. 

무엇보다 어째서 그 준법이니 시민의식이니 하는것은 법의 해석-적용과는 엄연히 괴리가 있는 공권력의 현실적 필요성에 의한 교본에 명시되어 있고, 전수받는 일련의 진압행위에는 무기력하다가 몇번의 선거를 제외하곤 의사를 표현할 방법이 미약해서 선거때만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사회에서 행사하는 최소한의 자위권에는 엄격해지는것일까요. 

오히려 제가 무기력한 비폭력주의자이며, 겁만 많은 어린아이라 이런 생각을 해온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2009-01-08
18:38:12
 

 

병장 김민규 
  그래요. 그놈의 준법 메커니즘은 저도 지지리 불만입니다. 

차 나고 사람 났으며, 의자 나고 사람 있었는지. 그래서 저는 기성의 불합리한 제재에 대항하는 나름의 방법으로 소극적 저항들을 실제로 시도하고 있습니다. 사차선 이내의 한적한 도로는 차 없으면 신호 무시하고 그냥 건너고요. 횡단보도에서는 (물론 상대의 속도감을 따져보고 해야 하기는 하는데, 목숨 걸 수는 없으니까) 차가 오든 말든 니가 서라, 이런 식으로 생각합니다. 지하철 노약자석도, 그냥 당당하게 앉았다가 나보다 더 필요하신 분이 오면 비키는 정도로 이용하고 있고요. (어떤 맥락에서, 노약자석은 오아시스라기보다는 감옥이라는 생각도 합니다. 지하철 사용인구중 노약자가 몇퍼센트인지는 모르겠는데, 노약자석 뻔히 비워놓고는 일반석에 앉으면 오히려 욕먹으니까) 

이게 궁이라는 조직을 지나가면서 더욱 공고화되고 구체화되는 것 같아요. 주머니에 손도 못 넣고, 길빵도 안 되고, 모자는 쓰고 다녀야 되고. 그런 맥락에서의 비폭력은, 분명 일리가 있습니다. 옹박타도의 현장 자체는 분명 비일상이고 일탈적인 폭발이예요. 그런데 그 순간에서마저도 준법적 메커니즘이 작동한다니, 말 그대로 모순이죠. 
문제는 윗 글에서의 그 비폭력 운운은, 그러한 준법 메커니즘과는 별개로, 비겁한 회피 정도로 그려져 있었다는 점이겠죠. 맥락이 달랐고, 나약한 20대에 대한 비아냥으로 들렸어요. 이건 구분해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09-01-08
22:05:25
  

 

상병 김요셉 
  어어라. 전 불 붙여놓고 퇴근해 버렸던 건가요. 이런. 일 끝내고 달려오지요 - 흐흐 2009-01-09
08:58:11
  

 

병장 이동석 
  비아냥 잘 대고, 남들 어린애 취급 잘하는 이동슥이라 그런지, 자기와 세대가 다른 이들과의 대화에서 자기 세대를 변호하다가도 그 다른 이들에게 공감을 표하려 도리어 자기 세대를 비판해본 경험이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전 별 무리가 없어요. 2009-01-09
09:18:07
 

 

병장 김민규 
  뭐 또 그렇게 생각하니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고, 귀만 얇아가지고, 팔랑팔랑. 저는 준법-의 조장은 文民 강조하던 03께 혐의를 두고 싶은데, 과한가요? 아예 朴까지 올라가야 하나. 쩝. 

타율적 질서마저 완벽히 내면화한 이 꼴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음, 예전에 사바넷을 보다 보니 그런 말이 있더군요. 중국에서, 예전에 기차가 다 육십년대 수준일 때는, 사람들이 거리낌 없이 안에서 흡연하고 바닥은 쓰레기장이었는데, 조금 좋은 기차, 말하자면 새마을이 도입되니까 특실부터 서서히 그런게 사라지더라는거죠. 
여전히 2등석은 그 모양이었는데, 몇년 지나고 대륙에도 고속철 깔리고 나니, 이제는 무궁화 레벨의 기차에서도 그런 모습이 확연히 적어졌다고, 통일호는 폐차되고 있고, 올림픽은 치뤘고, 마치 한국사회에서 80년대 말을 지나 90년대로 접어드는 그때를 보는 것 같다고 말이예요. 2009-01-09
10:40:38
  

 

병장 김민규 
  선진에 대한 동경과 교육받는 것에 대한 맹신이 국민윤리를 경전으로 만드는 주범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또 막상 완전히 부정하기에도, 그것들이 합의됨으로서 얻어지는 실제적 편의가 있더란 말이죠. 오늘 머리 참 안 굴러가네요. 생각좀 해 봐야겠어요. 2009-01-09
10:43:07
  

 

상병 김용준 
  요셉씨 글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흐흐흐. 가지로! 외칩니다. 낄낄낄. 

흠....민규씨와 동슥씨의 열띤 토론으로 보이네요? 후후. 저도 귀가 얇아서 그런지 동슥씨의 의견에 공감이 많이 가네요.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나 386세대 분들하고 대화를 하면 저도 모르게 무조건 10, 20대 편에 서버리면서도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저희 세대가 무조건 좋고 잘한건 아니구나...라는 생각도 들고, 다른 세대 산 분들이 무조건 좋고 안 좋고 잘하고 못하고 모...이게 대게 애매모호 하드라구요.(몇몇 문제는 다르지만요...)킁- 킁- 2009-01-09
10:51:24
  

 

병장 이동석 
  음, 요셉님은 어디가셨어요? 아, 제가 아직도 이 말을 안했단말입니까. 

가지로- 2009-01-09
19:38:43
 

 

상병 김요셉 
  저 여기 있어요 - 일주일 치 일을 한꺼번에 몰아서 한큐에 해결하는 바람직한 습관이 있어요. 그 날이 그날이였지요. 흐흐흐. 이제서야 돌아왔습니다. 

간략한 입장 정리. 
동석씨의 말대로, 김현진에 대한 제 비판은 다분히 감정적이고 편파적인 면이 없지않아 있습니다. 어디어디의 소장이라거나 잘나가는 소설가 누구, 의 비판이라면야 뭐 그런가보다 하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딱 그 사람들의 위치에선, 그런 말 할 만도 하지. 싶거든요. 그런데 김현진은 말이죠, 동석씨가 말한대로 '꼴랑 글팔아먹으면서 편하게 사는 지집애'인 것도 아니면서, 20대와 그나마 (비교적) 동질적 입장에 서서 싸움 좀 했다는 사람이 그런 식으로 말하니 여엉 고깝게 들리는 겁니다. 
싸우는 나는 잘났다. 무기력한 너네들은 못났다. 이런 식의, 어떤 종류의 우월감에 입각한 비판 처럼 들리기도 하구요. 

'준법정신의 무비판적 내면화'의 부작용은 슬슬 나타나고 있는 듯 합니다. 그렇지 않나요. 
80년대 중후반즈음에 태어나 세뇌된 준법정신에 무기력하게 굴복하는 세대들은, 이제 90년대 중후반즈음에 태어나 마찬가지로 '무비판적'인 위법정신을 철저하게 갖춘 세대들로 대체되고 있는 것 같아요. 요즘 고딩들 무섭단말이죠. 2009-01-12
09:17:45
  

 

병장 이동석 
  음, 쿨하네요. 역시. (그렇다고 쿨지상주의자는 아니고) 
그러나 역시 요즘 고딩들이 무비판적인 위법정신을 철저하게 갖췄다고 생각하는건 아니고, 저 때도 고딩들은 무서웠습니다. 제가, 최소한 제 주위 녀석들은 철저하게 무비판적으로다가 위법정신을 함양한 무서운 고딩이었거든요. 낄낄. 2009-01-13
21:13:08
 

 

상병 김요셉 
  쿨은요 무슨. 고것 가지고 꽁해 틀어져 이런 글을 올릴 정도로 소심해요. 낄낄 2009-01-14
08:5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