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글-독서후기]서울, 요새화 건물들의 도시 : 누가 그들을 좀비로 만들었나
병장 최도현 2008-08-28 10:32:39, 조회: 402, 추천:3
이제는 누구나 읽어보았을 정도가 되어 또다시 다루기엔 너무나 진부한 소재가 되어버린 한국의 아파트 문제, 그 중에서도 프랑스 지리학자의 눈으로 본 <아파트 공화국>이란 책을 이번 기회를 빌려 소개하게 된 것에 대해 변명을 굳이 하자면, 그만큼 우리 서울의 아파트 문제는 한국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가장 큰 사회적 문제 중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얼마든지 반복하여 설명하더라도 사회적 합의에 이르기 위해서는 아직도 한참이나 부족하다는 확신에서였다. 아파트 문제가 비단 서울 시민에 국한한 문제가 아니라 우리 아름다운 한반도를 뒤덮고 있어 국민 모두의 문제로 보아야 하지만, 정부 정책의 시행 범위가 서울에 집중해 있으며, 그 변화의 정도가 뚜렷하여 문제의 심각성을 명확히 볼 수 있기에 서울에 국한하여 생각하여도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 여겨진다.
저자는 서울의 땅이 좁고 사람이 많아 고층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 건설이 불가피했다는 보편적인 인식이 고정관념이었음을 말해주면서, 네덜란드나 벨기에는 인구밀도가 높더라도 도시의 집중화가 대규모 주택단지 건설을 가져오지는 않았음을 예로 든다. 한국의 주택 정책은 오랫동안 부유층에 유리한 방향으로 시행되었다. 실제로 1972년 주택건설촉진법이 제정되면서 주택 정책의 방향을 대규모 주택 건설로 잡았는데, 이는 아파트 단지의 건설을 추진하기 위해 급조된 것으로, 공동주택과 고층 건물 건설에 특혜를 주고 대규모 주택 건설 절차를 용이하게 해주었다. 이런 정책은 서울의 도시 경관을 불안정하도록 만들었고, 새것에 대한 맹목적인 숭배를 낳았으며, 도시 가옥을 소모품으로 취급하는 문화를 만들었다. 아파트는 이제 유행 상품처럼 취급되었고, 재테크의 수단이 되었다.
1970년대만 하더라도 정부주도로 만들어진 아파트는 전체 세대의 4퍼센트에 불과했다. 1971년 조사에서는 2퍼센트 미만의 주민만이 아파트 거주에 만족한다는 결과가 보고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 아파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전복시키도록 한 일련의 사건이 있었다. 정부는 부유층들로 하여금 1970년대 초반 시작된 도시 개발 전선의 산물인 아파트를 구입하도록 선전하였다. 또한 정부는 종로, 성북, 서대문, 용산구에 거주하던 부유층 고급 인력을 고용하고 있던 대기업을 강남으로 이전시키고, 중구, 종로구, 성북구 등에 위치하던 명문 학교들에 조세 감면과 낮은 지가 등의 혜택을 통해 서울 남동부 이전을 장려하였다. 공무원들에게 아파트 분야 혜택을 주어 입주를 장려하였고, 지도자급 엘리트들을 아파트 입주 명단에 등록하는 일도 전개하였다.
1970년대 고급 두뇌의 해외유출에 대한 처방으로 유학을 떠났던 명문대 졸업자들에게 귀국 시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였다. 여행비와 이사 비용 부담은 물론이고, 아파트 분양 순위에 우선 등록해 주는 조건으로 귀국한 대다수의 엘리트들은 강남에 건설된 아파트에 정착할 수 있었다. 재벌 건설 회사들 또한 이 정책에 참여하였다. 현대는 압구정동 개발 당시 고위 공무원과 국내의 영향력 있는 인사들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상당량의 주택을 분양하였다. 부유층과 상류층을 끌어들이기 위한 물질적, 비물질적 장려책을 적극적으로 동원하고 학교 이전 등을 포함하는 거주 환경에 대한 총체적인 개선책이 뒤따르면서, 이들 계층이 아파트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정부는 도시 엘리트층과 상류층을 대단지 아파트로 결집시키고, 이들에게 주택 소유와 자산 소득 증가라는 혜택을 줌으로써, 그들의 정치적 지지를 쉽게 획득할 수 있었다. 이러한 상호 혜택의 구조 때문에 상류층은 하층의 사회 계층으로부터 공간적으로 분리될 수 있었다. 아파트 단지 건설은 기존 거주민을 외부로 밀어내어 서울 중심에서 외곽으로, 그리고 다시 수도권으로, 그리고 다시 새로 건설되는 신도시로 계속 밀려나는 구조가 형성되었다.
처음 문제제기로 돌아가 보자. 아파트 단지가 가장 조밀한 주거 공간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서울에서 가장 밀도가 높은 구에 아파트가 가장 많은 것은 아니다. 서초구, 강남구의 경우 이 지역의 60~80퍼센트가 아파트이지만 인구 밀도는 오히려 도시 평균에 못 미친다. 사실 인구밀도 지도는 주택 형태의 분포보다는 지형적 특성에 더 영향을 받는다. 주로 고지대에 위치한 지역이 인구밀도가 낮다. 아파트 단지는 주거 공간을 조직하고 조밀화 시키는 국토개발의 해결책 중 하나일 뿐, 이론적으로는 같은 용적률을 유지하면서 주거 공간을 만들어 내는 데는 단독주택, 아파트 단지, 연립주택 등 여러 가지 대책이 가능하다.
저자는 아파트가 그 본연의 속성에 현대적이고 서구적인 것을 내포하고 있으며, 깨끗함 자체가 아파트의 건물과 더불어 현대성과 연결되어 있다고 믿고 있는 아파트에 대한 또 다른 고정관념을 아파트가 가지고 있는 몇 가지 역설적인 요소들을 통해 반박하고 있다. 아파트는 중앙난방 시스템인 동시에 바닥을 데우는 온돌의 전통적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한옥의 주거 양식이 아파트에 변형되어 도입된 것은 온돌 난방뿐만 아니라, 한옥 생활의 불편함으로 지적되었던 신발 신고 벗기나, 식사 때마다 상 옮기기 등이 남아있다. 바닥재의 차이에 따라 신발 사용이 바뀌어 지는데, 우선 외출용 신발을 벗고 들어와 양말이나 실내화를 신고 생활하며, 다용도실이나 발코니 등에서는 플라스틱 슬리퍼를 신고, 욕실과 같이 젖은 타일 바닥에서는 고무 슬리퍼를 갈아 신는 번거로운 수고를 반복하고 있다. 아파트가 서구 모델의 고유한 특징이라기보다는, 기술 진보로 인한 결과로 보아야 하는 게 적합하다. 기술의 발전을 통해 이룩한 주택의 물질적 개선을 서구적인 것으로 혼동하고 있다. 아파트만이 아니라 근대 대부분의 주택들도 이렇게 편리한 시설들을 갖추고 있다.
또한 저자는 아파트 안에서 벌어지는 감시 체계에 대해 주시하고 있다. 감시 체계의 발전은 권위주의 국가에 의한 경제의 급성장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규율적인 방식에 따른 발전은 인구의 대폭적인 증가와 이윤 추구적 생산 체제의 확대라는 역사적 과정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설명한다. 경제 성장의 주요 수혜자 집단인 아파트 주민들은 직장에서의 감시와 통제를 받는 것에 길들여져 있어, 아파트 단지 안에서 경비원이나 관리 사무소를 매개로 행해지는 개인에 대한 감시와 통제 역시 기꺼이 인내하려 하고 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들이 고용한 경비원들에게(감시 장비, 장치를 포함) 감시와 통제를 받기 위해 정신적이고 물질적인 대가를 값비싸게 지불하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깊이 있게 다루진 않았지만, 이 글에서는 주상복합형 아파트에 대해 비중 있게 다루고자 한다. 1998년 주택정책은 부의 이전과 연대 의식의 개념을 바탕으로 하는 국민주택의 확대보다 자유화와 규제완화 쪽으로 치중되었다. 주택 부문의 규제 완화는 가격 통제 폐지, 대출 권장, 매매 시 부과되는 관련 세금의 면제로 나타났다. 호화 대형아파트의 건설은 규제 완화가 가져온 가장 두드러진 결과물이다. 이질적인 문화양식을 내포하고 있는 대형 아파트는 싱가포르의 고급 콘도미니엄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건설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도곡동 타워팰리스>이다. 주택 시장의 자유화는 건축 및 도시계획 철학 등의 이론적 측면의 검토 없이 호화 아파트, 오피스텔, 주상복합형 건물 등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는데 일조하였다.
이 새로운 주거형태는 헬스클럽, 수영장, 사우나, 골프 연습장 등의 고품격의 시설들을 이용하는 극소수인들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시설비와 유지비가 포함된 값비싼 관리비를 전혀 불평 없이 지불하고 있거나, 이런 획일화된 이질적인 문화 양식을 강요받고 있는 것이다. 주민들 대부분은 이러한 시설을 이용하고 있지 않지만 의무적으로 관리비를 내야하는 것이다. 이러한 불공정한 시스템 아래에서도 그들이 불만을 갖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일반 아파트에서는 받지 못했던 이런 서비스에 대한 특권 의식을 통해 일종의 구별됨과 무리 짓기 또는 계층 구분을 하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외부에 대해 매우 배타적인 이곳의 일상 공간은 출입이 통제되는 일종의 게이티드 커뮤니티(gated community: 외부인 출입제한 주거지역)의 형태를 발전시키고 있다. 이 주거 양식은 사회 전체적으로 거주 형태를 획일화시킬 뿐 아니라 점점 더 파편화된 도시를 만들어 낸다.
1970년대 서울에 처음 아파트가 세워졌을 때의 아파트들은 무지개 아파트, 진달래 아파트, 개나리 아파트 등의 이름을 사용하는 건물들이 빈번했었다. 이러한 시적인 이름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아파트 건물 전면에 거대한 크기의 재벌 건설 시공회사 로고가 찍힌 현대, 한신, 삼성 등의 상업적 이름을 지닌 아파트가 등장하게 된다. 기업 마크가 찍힌 아파트 단지들은 재벌기업의 대형 광고판처럼 보이게 된 것이다. 외부에 대해 매우 배타적인 공간이 되어버린 주상복합형 건물들은 이제 그 상징하는 바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고자 하여,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간에 건물들의 이름을 높은 탑으로 이루어진 궁전(타워팰리스)으로 묘사하거나 꼭대기 또는 중심이 되는 곳(센트레빌, 아크로빌), 높은 곳을 내려다보는 전망대(아크로비스타) 등의 이름을 사용하여 외부에 대해 구별 짓기 또는 계층 구분을 확실히 하고 있다.
이러한 요새형 주택의 출현은 부의 분배와 더불어 공간이 분리되는 현상을 낳았다. 한국 부자들의 독특한 주거 방식인 이 요새형 주택은 고급 내장재를 사용했다는 근거로 단위면적당 최고의 비용을 지불하고 있지만, 오히려 생태, 보건 문제가 이곳에서 더욱 심각해지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주상복합 아파트라는 양식은 원래 고층이라는 것 외에는 저층 아파트와 근본적으로 차이가 없다. 약간의 기술적인 문제와 법규상의 미비점 때문에 창을 크게 열 수 없게 되어 있고, 형식적인 공기조절장치만을 두어 내부의 공기를 제대로 환기할 수 없는 공간이 되고 말았다. 결론적으로 최근 많은 주상복합 아파트는 가격이 그렇게 비싼데도 케미컬 스트레스chemical stress 그 자체가 되었다. 고가의 내장재를 사용했다고 주장하지만 충분히 환경적이고 보건적으로 안전한 자재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토피 발생률은 일반 주택이 분포하는 지역에 비해 꽤 높은 편이다. 주상복합 아파트가 들어선 다음 인근 병원의 내방객 수에 대한 사례 조사를 통해, 낡은 아파트가 초현대식 주상복합으로 바뀌면서 인근 병원의 주부와 아이들의 병원 내방 횟수가 엄청나게 늘어난다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직선들의 대한민국(웅진지식하우스, 2008), 우석훈>
대형슈퍼마켓, 의류 잡화, 주거생활용품, 인테리어, 가구, 가전제품, 약국, 치과, 일반병원, 은행, 세탁소, 비디오대여점, 카페, 고급 레스토랑, 제과점, 미용실, 앉아 쉬는 공간, 분수대, 건물 주변 화단 등 주상복합은 실제로 생활에 필요한 모든 기본적인 욕구와 고급화된 서비스까지도 모두 해소할 수 있도록 모든 여건을 갖추어 놓고 있는 시스템인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들 주민들은 거주지 아래 완비되어 있는 상권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거주 지역 근처의 고급 백화점과 대형 할인매장을 이용하고 있다.
서울은 이제 가난한 사람들의 공격으로부터 부자들을 보호하는 요새형 건물이 줄지어 서 있는 곳으로 바뀔 것이다. 주상복합형 아파트 거주민들은 새롭게 건설된 건물을 찾아 요새에서 다른 새로운 요새로 이동하면서, 케미컬 스트레스로 인해 생긴 심한 두통과 무기력증에 빈번하게 노출될 것이다. 주변에 누군가가 반복적으로 심한 두통을 호소하며 이유를 알 수 없는 무기력증에 시달리고 있다면, 그는 우리의 주거를 유행 상품처럼 자주 바꾸는 중독 증세를 보이는 새로 건설된 주상복합형 아파트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이제 이 글의 마지막으로, 서울을 조금씩 뒤덮어가고 있는 수많은 주상복합 아파트 중 상징적인 건물 3곳을 소개하고 싶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지만, 이들 건물들과 개인적으로 아무런 관련성이 없음을 언급해야 할 것 같다.) 첫 번째 건물은 도곡동 <타워팰리스>이다. 타워팰리스는 1998년 규제 완화가 가져온 결과물인 동시에, 주상복합형 아파트의 시발점으로서 의미를 지닌다. 주거지 아래엔 카페와 제과점을 비롯해 다양한 고급 레스토랑들이 나열하고 있어, 타워팰리스에 살고 있지 않은 외부인들도 이곳을 이용하기 위해 몰려드는 기이한 현상이 연출된다. 거주민들은 양재동 대형 할인매장과 압구정 현대백화점이나 삼성동 현대백화점을 이용하고 있다. 근처에 예술의 전당이 위치하고 있어, 문화생활에도 접근성이 용이하다.
두 번째 건물은 서초동에 들어선 <아크로비스타>이다. 이 주상복합 근처에는 대법원과 기타 관련된 법률 사무소 등을 끼고 있어서, 직장인들은 식사나 만남의 장소로 주상복합에 들어선 카페와 레스토랑을 이용하고 있다. (‘부엌과 서재사이’라는 레스토랑은 아크로비스타에 입주한 전형적인 고급 음식점 중 하나에 해당한다.) 건물 내에서 금융 업무를 볼 수가 있으며, 건물 지하 내에 분수대가 설치되어 있다. 거주민들은 근처 반포 신세계백화점과 양재동 대형 할인매장을 이용하고 있다. 아크로비스타라는 이름에 걸맞게 주변의 지형보다 높은 지대에 건설되었으며, 고층아파트여서 한강에서 많이 떨어진 곳임에도 불구하고, 한강은 물론이거니와 서울의 전 지역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을 지니고 있다. 또한 아주 가까운 곳에 고속 터미널과 공항 터미널이 있으며, 경부 고속도로 진입로가 있는 최적의 교통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아크로비스타는 근처에 교육대학교와 예술의 전당이 위치해 있어, 교육과 문화생활에도 접근성이 용이한 장점도 가지고 있다. 이 건물이 건설되기 전엔 건물 붕괴로 인해 희생된 고인의 넋을 기리는 추모 공원이 자리하고 있었으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더 이전엔 바로 삼풍백화점이 세워져 있었다. 현재는 삼품백화점이 붕괴된 현장에 추모 공원을 몰아내고 주상복합 아파트가 우뚝 솟아있는 것이다. 높은 지대로서 최고의 전망과 인접해 있는 최적의 교통 환경이라는 것이 결합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간 그 자리에 지금은 그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질서정연하게 높이 포개어져 생활하고 있다.
마지막 세 번째 건물은 여의도 <더샵 파크아일랜드>이다. 이 건물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이유는 이 주상복합 아파트가 들어선 위치에 있다. 건물의 이름대로 여의도 공원이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으며, KBS 본관과 맞닿아 있고, 반대편으론 산업은행이 있으며 가까운 곳에 국회가 있다. 주변의 건물들이 암시하듯이 이곳의 위치는 공공기관 및 정부기관, 공원과 같은 공공장소로 이루어진 곳이어서, 주택단지가 들어올 필요가 없는 곳이며, 거주민을 위한 상권이 조성되어 있지 않다. 정치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건물들이 많아 산업은행 앞마당과 여의도 공원 등에서는 대규모 집회를 갖는 경우가 빈번하여 소음 등으로 주거 지역으로는 최악의 조건이다. 또한 건물 높이 제한구역이란 특수성 때문에 주상복합 아파트의 고유한 특징인 고층화도 이 건물엔 나타나 있지 않다. 또한 앞에서 살펴보았던 타워팰리스나 아크로비스타와는 다르게 주변에 고급 백화점이나 대형 할인매장도 위치하고 있지 않으며, 예술의 전당과 같은 문화생활 공간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교통 환경도 나쁜 편에 속하는 지역이다. 이처럼 거주지로서 완벽하게 비효율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는 위치에 이 주상복합이 들어서게 된 사건은 역설적이라 할 수 있다. 나 역시 직장에서 퇴근을 하여 여의도 환승센터로 가는 귀가 길에 언제나 이 건물을 지나치게 된다. 거대한 검은 색 철문으로 된 아파트의 정문은 자동 센서로 되어 있어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는데, 단지 내에 조성된 공원을 주상복합 거주자만 이용하고 있어, 공공성이 배제되었으며, 일반인에 개방된 여의도 공원에 맞닿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건물 곳곳에 첨단 감시 장비와 통제 장치를 설치해 놓았으며, 고립되고 폐쇄된 곳으로 주변 위화감을 조성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TV 뉴스에서 취재하였고(2008년 1월 방영), 뒤 이어 서울시에서 자체 조사가 나왔다. 거대한 철문과 폐쇄된 단지 내 공원 활용 등으로 대변되는 이 건물의 일반인에 대한 구별 짓기, 또는 계층 구분은 주상복합의 이름을 여의도라는 섬 속에 공원섬(파크아일랜드)이라는 또 다른 고립된 섬이 되어, 국가나 사회에 끼친 잘못을 소리 높여 규탄하고 있는 집회 행렬에 대해 외부인의 침입을 오늘도 열심히 방어하고 있다. 이는 마치 좀비 영화를 연상시킨다.
만일 주거를 유행 상품처럼 자주 바꾸는 중독 증세를 보이는, 새로 건설된 주상복합형 아파트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위 세 개의 건물이 세워진 순서대로 보았을 때, 타워팰리스에서 아크로비스타로, 그리고 현재는 파크아일랜드로 이사해 살고 있을 것이며, 지금도 또 다시 새로 지어진 주상복합을 찾고 있는 강박적인 증세를 보이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최근 세워진 광화문 근처 주상복합을 생각하고 있을지 모른다.
서울 중심부에 남은 궁궐 몇 채와 한옥 몇 백채(가회동)가 결국 우리가 후손에게 물려줄 거의 마지막 유산이다. 서울에서 추진 중인 중인 100층짜리 초고층 빌딩은 상암동 랜드마크와 용산 드림타워만 해도 여섯 동이나 된다. 이는 필요해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100층 넘는 건물을 사랑하기 때문에 지어야 한다는 이상한 순환 논리 위에 서 있다. 오세훈 시장의 한강 르네상스 사업은 잠실에 인공섬을 조성하고, 고층 빌딩을 한강 주변에 세우며, 뚝섬에 문화 컨벤션 센터를 세우고, 잠수대교를 통제해 차 없는 문화의 거리로 만드는 계획이다. 한강 르네상스가 성공적으로 끝난다면 서울은 한강변을 축으로 거대한 건물과 상업지구에 둘러싸인 초고밀도 도시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한강 변에 들어설 이 고층 건물들이 거주할 사람들을 찾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서울 인구가 천만에서 2천만으로 변할 거라 생각하겠지만, 이미 서울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더 이상 인구를 수용할 수가 없어 인구가 줄고 있는 도시이다. 도시가 거대화되면 당연히 생겨나는 슬럼화가 진행될 것이다. 이 사업이 완공될 즈음에는 지금 서울시가 구상하는 것과 같은 이런 거대한 공간에 대한 수요가 한국에 존재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나에게는 개인적으로 잠수대교에 대한 소중한 추억이 있다. 다른 서울 시민들 역시 어느 특정한 곳에 자신만의 애틋한 무언가를 심어 놓아, 마음이 무겁거나 지칠 때 그곳으로 달려가 다시 생활의 활력을 얻는 추억의 장소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의 변화될 서울은 이런 장소들을 모조리 갈아엎어 놓을 것이며, 우리들의 소중한 추억들도 함께 사그라질 것이다. 안타깝게도 나의 잠수대교는 이제 더 이상 추억의 장소가 아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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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8-12-08
20:17:40
병장 황인준
감상 후 리플을 달려니, 스크롤이 장난 아니군요(땀땀).
그러니 일단 리플부터 달고 읽어볼게요.
그래도 읽을 거리가 기니까, 행복하군요.
즐거움(?)의 비명! 2008-08-28
11:11:31
병장 이재민
잘 읽었습니다.
저도 비슷한 글을 읽은 기억이 있는데 역시나 이름은 안개 속으로....
그 책에서는 타워팰리스, 아크로비스타, 슈퍼빌을 꼽아 얘기했었는데, 도현씨가 사례로 드신 더 파크아일랜드가 더 적당한 사례 같군요
주상복합의 핵심이 '구별됨과 무리 짓기 또는 계층 구분'이란 지적에 동의합니다. 심지어 아이러니한점은 타워팰리스 거주자들 사이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생긴다는 점-작은 평수의 동과 큰 평수의 동 거주자들 사이에서-이지요. 하지만 서울에만 새로생기는 주상복합이 끝도 없는데, 그러면 계속 구별지어지는 건가요? 땅값은 잘 안떨어지는데.... 2008-08-28
11:22:20
일병 송해연
중간에 서울 아파트 3곳 소개부터 읽었는데, 여의도에 있는 파크아일랜드는 정말 아이러니한거 같습니다. 여의도에 갈때마다 '저런 곳엔 누가 살까?' 라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이 책 읽어보고 싶군요. 2008-08-28
11:37:07
병장 정영목
우석훈 씨의 <직선들의 대한민국>이 언급되는군요. 재밌게 읽은 책이죠. 특히나 미학 얘기 나올땐 공감가는 부분도 많았습니다. 건설 자본의 문제에 대해선 글에서 잘 지적해 주셨으니 추가적인 얘기는 생략하겠습니다.
그나저나 우석훈 씨, 요사이 아주 활발한 저술 활동을 펼치시는 것 같던데, 그분의 <촌놈들의 제국주의>는 제 주관적인 기준으로 2008년 최고의 책으로 꼽고 싶습니다. 제 현실 인식이랑 거의 정확히 똑같아서 다소 의기양양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씁쓸하기도 했죠. 10년 이내에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걸 생각하면.. 2008-08-28
13:07:18
병장 주해성
책가지에 있는 독서후기와 같은 책이군요. 주안점을 주는 부분이 달라 헛갈렸습니다.
장문의 글이지만 막힘없이 내려가는게 좋네요. 잘 읽었습니다. 2008-08-28
13:09:50
병장 이현승
이 글에 나온 책하고, 영목님이 추천해주신 책들 다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공감하며 잘 읽었습니다. 2008-08-28
13:53:12
병장 김원택
한 번 썼던 댓글을 지우고 약간 추가하면서 다시 씁니다.
다시 글을 읽어봐도 좋은 글이긴 한데 집중이 안되니 쩝. 요즘들어 길면 집중이 안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으니. 이런. 큰 일입니다...(저 자신의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흐음 이 글과 관련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지만, 한 번 그냥 생각했던 글을 적어봅니다.
아파트 열풍으로 인해 그와 연결되어 일어나는 재개발, 재건축 열풍.
과연 그것이 원주민들을 위해 좋은 것인지. 실제 재개발 등으로 인해 돈을 버는 것은 누구인지.
예전에 철거촌에도 놀 때 그런 말을 서로 하고는 했죠.
재개발로 돈버는 1순위는 건설사, 2순위 철거용역(조폭들의 자금줄 중 하나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이니.) 3순위는 부동산투기세력, 4순위는 조합장, 5순위는 경찰 및 소방서(왜일까요?). 어디에도 원주민은 없으며(물론 일부 원주민이 돈을 버는 경우가 생기기는 하지만.) 세입자는 당연히도 없다는. 2008-08-28
13:57:37
병장 최도현
재민씨가 보았던 책이 무엇인지 무척이나 궁금하군요.
그 책에선 주상복합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 말이지요.
책제목이 기억나시면 꼭 알려주셨으면 감사하겠어요.
사실, 아파트와 같은 행정적 차원의 문제들은
방대한 자료와 복잡한 이해관계 등을 따져보아야 하는 세밀한 작업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론 자신 없는 분야입니다.
아는 분 중에 건축을 전공하고, [SPACE 공간]이란 잡지사에서 일하는 분 소개로
아파트 공화국을 읽다가, 주상복합의 특수성을 통해 다른 영역에서도 끊임없이
[구별짓기]를 시도하는 것을 역사적으로 살펴보아 일반화시켜보는게 주요 계획이었는데,
그 작업은 다음으로 기약해야 할 것 같군요.
아파트 문제 2탄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적절한 순간에 글을 올리겠습니다. 2008-08-28
14:40:45
병장 최도현
영목씨가 소개해준 [촌놈들의 제국주의] 저도 재밌게 읽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에 인류학과 생태학이 없는 이유에 대해
설명한 대목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우석훈씨가 자주 언급하고 있는 68혁명.
2008년은 프랑스의 68혁명이 일어난지 40주년이 되는 해 입니다.
[2008년의 한국 : 68혁명 40주년을 기념하여]라는 글을 연말에 한번 써봐야 겠습니다. 2008-08-28
14:45:27
병장 최도현
이곳 책마을에는 연장자 분들이 은근히 많은 걸 보고,
살짝 놀랐습니다. 저역시 83년 생이라 상대적으로 늦게 온 편이지요. 하하.
군제대후 국제관계학에 관심이 있어서,
학업을 이어갈 계획인데, 혹시 도움을 주실분 있으시면,
어떠한 말씀이든 부탁드립니다. 2008-08-28
14:53:45
병장 이재민
도현씨 반갑다 친구야! 군요
반갑습니다.
네, 책제목 생각나면 꼭 알려드릴께요
그렇게 재미있는 책은 아니었고, 주상복합에 관한 책만은 아니었는데... 한국사회에서 아파트의 개발사를 처음부터 소개해줬는데, 내용보다 자그마한 에피소드까지 붙여준 점이 재미있었죠.
도현씨의 다음 글을 기대하겠습니다. 2008-08-28
16:26:12
병장 배상혁
최도현 병장님, 이재민 병장님..
저도 "반갑다 친구야!"
연장자 분들이 많네요..
역시 다르죠? 2008-08-28
16:40:41
병장 이재민
얼핏 알기로 영목씨는 연장자인 걸로 알고 있는데...
영목형님이군요.. 2008-08-28
16:52:28
병장 배상혁
회원정보를 보니 영목씨도 83이네요.
저희 부대는 제 바로 아래가 3살 연하라서 외롭습니다
(웃음) 2008-08-28
17:34:13
병장 이동석
아니, 이글을 왜 여기 방치해두시나요.
<가지로> 보내셔야죠.
2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추석 선물 느낌으로 올려주셔도 좋아요. (하하)
아파트촌을 배경으로 한 좀비영화가 나올법도 한데...
헛
제가 먼저 찜했습니다. (견제?) 2008-08-28
18:33:49
병장 송승관
아주 잘 읽었습니다 가지로 보내야 할 거 같군요. 2008-08-29
10:50:42
병장 이재민
근데 저 개인적으로는 주상복합을 유행처럼 옮겨다닌다는 도현씨의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군요.
주상복합이 열풍(fad)마냥 한국사회에 갑자기 번진 것은 맞지만, 한번 주상복합에 거주한 사람들은 대부분 '지역' 선택의 이유가 아닌 이상 계속 그곳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극 초기에 거주해서 타워팰리스 매매를 통한 차익추구가 아닌 이상, 그다지 쉽사리 '이사'를 선택하진 않죠. 돈이 아무리 많더라도.
특히 대부분 처음에 생겨진 주상복합 외에 요즘 지어지는 것들(용산이나 이촌동 일부를 제외하곤)은 대부분 초기 주상복합보다 입지적인 측면에서 떨어지다보니 이주수요가 높진 않습니다. 대부분 신규수요를 노리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히려 타운하우스 쪽으로 이사가는 경우는 조금 있더군요. 2008-08-29
10:59:57
상병 이동열
정신없는 와중에 눈으로 훑다가 글 남깁니다.
그 이유는 이 글을 가지로 보내기 위해서이지요(웃음)
가지로!
사족. 도현님의 68혁명에 관한 글 기대하겠습니다! 2008-08-29
13:02:57
병장 최도현
글이 길어서인지 뒷부분이 짤렸군요. 하하. 2008-08-30
15:04:48
병장 이동석
복구 감사합니다. 흑흑 2008-09-01
15:09:12
병장 이태형
완성본을 이제서야 읽네요.
이 분야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전무하지만, 막힘없이 읽히는 것도 좋고,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것도 좋고, 아하! 깨닫게 되는 것도 좋습니다.
더불어 추천책도 메모중.
가지로지요, 당연히, 암요, 그렇고 말고요. 2008-09-03
08:34: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