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글-독서후기]광기와 우연의 역사 - 슈테판 츠바이크  
상병 이지훈   2008-12-27 00:55:09, 조회: 221, 추천:2 

사연 없는 무덤이 없다고들 하지만, 이제까지 살다간 모든 사람들의 사연을 우리는 들어줄 수는 없다. 들어줄 수만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고, 이제까지 살다간 모든 사람들의 대다수의 ‘사연’이 우리에게 전해지지 않는다. 우리가 들을 수 있는 ‘사연’들 또한 역사가의 작업(직업적인 역사가의 연구이든 개인적인 연구이든)을 통한 것들이다. 역사가는 대다수의 사연을 하나의 집단으로, 세대로, 시대 등으로 묶고 헤치는 작업을 반복한다. 이를 통해 역사가는 현재 우리네 삶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말하고, 수많은 무덤들의 공통적인 사연들을 우리에게 전달해준다. 이와 같은 전달 방식은 마치 군중의 함성을 녹음해놓은 카세트테이프를 우리에게 틀어주는 것과 같다. 우리는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는 알지만 함성 소리에 묻혀 개개인이 외치는 소리는 들을 수 없다. 

군중의 함성이 그들의 공통적인 사연을 말해주고 있기에 우리는 굳이 개개인의 사연을 듣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사회가 어떻게 흘러왔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개개인의 사연을 듣지 않고 역사가의 목적으로 묶여진 것들의 흐름만 파악하는데 그치는 것은 개개인의, 그 자신의 삶에 대한 고민의 깊이가 얕아지는 것이다. 어쩌면 누군가는 공통적인 사연의 함성을 따라 소리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우리는 그 누군가의 사연도 사회의 흐름에 따라 해석해버릴 수 있다. 또 당대의 집단 속에서 자신만의 색깔을 가졌던 사람들의 기막힌 삶을 배우지 못할 수도 있다. 우리는 그래서 개개인의 인터뷰 내용을 녹음한 테이프가 군중의 함성 테이프에 밀려 선반 저 너머로 사라지는 것을 항상 경계해야 하며 언제라도 그것들을 군중의 함성 테이프와 함께 들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개개인의 인터뷰 내용을 녹음한 테이프를 여러 개 틀어놓는다고 해서 그것이 그대로 군중의 함성이 돼진 않는다. 그것은 그저 어느 시장 한 구석의 추억을 불러일으킬만한 왁자지껄 정도이지, 함성은 아니다. 그러나 때때로 몇몇 테이프가 비슷한 내용을 마치 합쳐진 함성처럼 우리에게 전달해주기도 한다. 물론 그 인터뷰의 당사자들끼리는 전혀 다른 시대, 장소에 살고 있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중국 후한말 삼국시대 촉나라 장수 마속, 조선의 태조 이성계, 나폴레옹 시대의 프랑스 장군 그루쉬. 이 세 개의 테이프는 각기 다른 시대, 장소에서 녹음된 것들이지만, 각 테이프를 재생하고 있는 카세트 3개의 재생시간을 잘 조율해서 맞춰보면 한 순간 그들의 함성을 들을 수 있다. 

중국,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천 리 밖에 나가있는 장수는 왕명이라도 거역할 수 있다.”고. 왕명은 절대적이다. 설령 정치판에서 그 명이 절대적이지 않은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 시대 상황일지라도 전쟁터에서 왕명과 야전지휘관의 명령은 절대적이다. 명령 불복종, 지시 불이행은 곧 전쟁의 패배로 직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격한 전쟁터에서조차 누군가 이러한 예외를 만들어 놓았다. 세 개의 테이프가 함성을 내지르는 재생구간이 바로 여기다. 한 명은 저 위 한 구절의 문장을 이용하려다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했고, 한 명은 너무도 효율적으로 이용했으며, 한 명은 이용하지 않았다. 테이프에서 동시에 흘러나오는 소리는 비슷하여 함성을 이루었지만 세 개의 테이프의 끝은 너무나도 다르다. 여기에 ‘같은 소리를 냈던 그들의 테이프 끝은 왜 다를까? 라는 물음을 던진다면 그에 대한 대답은 수도 없이 할 수 있다. 각 인물들은 모두 다른 시대, 모두 다른 장소에 속해있으며 모두 다른 상황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별 소득이 없는 이야기가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함성을 듣기 위해 카세트 볼륨을 높이고 재생시간을 조율한 목적은 세 명 중 유일하게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한 인물의 변명을 하기 위함이다.

우선, 첫 번째 테이프는 프랑스 나폴레옹 시대의 장군 그루쉬이다. 그루쉬는 나폴레옹의 마지막 전투인 워털루 전투에서 프랑스군의 1/3을 이끌었다. 이는 수많은 전투를 치러냈던 나폴레옹이 그루쉬의 능력을 인정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루쉬의 임무는 적에게 합류하려는 적 증원부대를 추격하여 본대와 합류하기 전에 섬멸하는 것이었다. 그루쉬는 곧 1/3의 프랑스군을 데리고 떠났다. 하지만 그루쉬의 추격이 잘못된 것인지 어떤지 적 증원군의 꼬리를 잡지 못했고, 그 사이 워털루에 있는 본대끼리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워털루 전투를 당연히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슈테판 츠바이크의 표현으로는 아주 처절한 싸움이었다. 두 진영 모두 죽음을 불사했고 배수진을 친 개념으로 맞붙었기 때문에 물러서지 않았다. 하지만 본대끼리의 전투로는 결정적인 승부가 나지 않았다. 나폴레옹은 적 증원군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적 증원군이 오면 끝장이라고 생각했다. 마찬가지로 적 지휘관 또한 그루쉬가 이끄는 나머지 프랑스군이 자신의 증원군보다 먼저 도착하면 끝장이라고 생각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그루쉬는 적 증원군보다 늦었고 아니 아예 오지 않았고, 나폴레옹은 몰락했다. 본대와의 연락이 두절된 상태에서 그루쉬는 미련하게 보일만큼 끝까지 나폴레옹의 명령에 복종했고, 워털루에서 포성이 들리고 자신의 참모들이 본대와 합류할 것을 수차례 건의해도 듣지 않았다. 나폴레옹의 연락병이 그루쉬에게 도착했을 때 이미 워털루 본대는 패배한 이후였다. 이 이야기를 마치며 슈테판 츠바이크는 그루쉬가 신중하고 사려 깊었지만 결단력이 없고 우유부단했다고 말하며, 운명은 가끔 영웅을 빗나가 역사를 바꿀 1%의 기회를 다른 사람에게 부여하지만 그루쉬는 이를 놓쳤다라는 뉘앙스로 그루쉬에 대한 평을 마무리 한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지만 그루쉬가 “천 리 밖......”이라는 예외를 자신에게 적용하여 과감하게 본대에 합류했다면 역사는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완전히 나폴레옹이라는 ‘영웅’의 입장이다. 그루쉬는 군인으로써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는데 최선을 다했고, 결정적으로 그를 기용한 것은 그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나폴레옹이었다. 유럽의 역사에서도 “천 리 밖......”의 예외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루쉬는 이를 이용하지 않았다. 후세 역사가가 무어라 하든, 그루쉬는 자신의 1/3 병력을 적의 포위망을 뚫고 안정적으로 프랑스까지 복귀시키는데 성공했고 당대의 영향력 있는 정치가로 천수를 누렸다.

두 번째 테이프는 조선의 태조, 이성계다. 이성계는 북벌을 주장하는 최영에 맞서 북벌에 대한 4대 불가론을 내세우지만 결국 북벌을 위해 군사를 이끌고 떠난다. 하지만 압록강의 위화도에 이르러 폭우가 쏟아졌고 대기하는 시간이 길어지자, 이성계는 같이 군사를 이끈 조민수를 설득하여 위화도에서 회군, 고려를 무너뜨리고 스스로 조선의 첫 번째 왕이 된다.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이 단순히 그 상황에 닥쳐서 나온 임기응변인지, 아니면 그를 위시한 신진사대부와의 완벽한 계획이었는지는, 후자에 무게가 더 실리기는 하지만 어느 것에도 확신을 가질 수 없다. 그러나 이성계가 당시 자신의 최고 사령관의 말을 어긴 것은 부인할 수 없으며 이 불복종(위화도 회군)이 조선의 건국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야전 상황을 모르는 상급 지휘관에 대한 우발적인 회군이었든, 새로운 나라를 위한 계획적인 회군이었든 이성계는 천 리 밖에 나가있는 장수로써 그 예외를 너무나도 잘 활용했다.

마지막 테이프는 삼국지에 등장하는 촉나라 장수 마속이다. 울면서 마속을 벤다는 읍참마속의 고사로 더 유명한 장수다. 그는 젊고 유망한 장수였지만 단 한 번의 실수로 형장의 이슬이 된다. 한창 촉나라와 위나라가 전쟁을 벌이던 때 촉나라는 보급선을 지킬 필요가 생겼고 아무리 중요한 지역이라지만 본대를 이끌고 있는 촉나라 야전사령관 제갈량 스스로 갈 수는 없었다. 제갈량은 자신을 대신하는 중요한 임무를 바로 이 마속에게 맡겼다. 처음에는 자진해서 나서는 마속을 쉽게 보내주려 하지 않지만 군령장을 쓰는 등 자신의 각오를 강하게 내보이자 마속에게 임무를 준다. 제갈량은 마속에게 그곳을 지킬 수 있는 요령을 설명하고 꼭 그대로 시행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정작 군령장까지 쓴 마속은 제갈량의 말대로 하지 않고 “천 리 밖.......”의 예외를 적용하여 자신의 뜻대로 그곳을 지키려다가 패배하고 만다.

어쩌면 삼국지에 숱하게 등장하는 ‘말 안 듣는’ 장수들 중 하나가 마속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마속은 억울한 것이 많다. 그럼에도 그는 변명할 기회조차 없이 죽어버렸다. 그래서인지 나관중의 평가도 가혹하며, 그 이후 삼국지를 저술하거나 번역한 사람들의 평가 또한 대부분 가혹하기 짝이 없다. 일단 가정이라고 하는, 촉의 보급로를 빼앗긴 전투는 촉나라에게 충격적인 패배였다. 승승장구를 이어오다가 졸지에 퇴각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단 한 번의 패배였지만 제갈량은 스스로 관직마저 낮추었다. 그러나 떨어진 군사의 사기를 끌어올리기에는 보여주기식 관직 낮추기는 약발이 통하지 않으니 마속에게 결정적인 책임을 물은 것이다. 또한 당시 장수라면 누구나 지켜야하는 군령에 대해 그것을 서면으로 남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든 책임을 마속에게 씌우려는 느낌이 강하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제갈량의 명대로 가정을 사수하려고 했던 마속의 부장 왕평이 먼저 제갈량에게 전투의 전모를 밝혔으니 마속에게는 변명할 기회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루쉬가 나폴레옹이라는 영웅의 입장에서 평가되었듯 마속 또한 제갈량이라는 영웅의 입장에서 평가된 점이 많다. 그루쉬, 마속 둘 다 영웅, 나아가 역사의 대사를 그르친 것처럼 표현되며, 영웅의 실책을 덮기 위해 이용된다. 가정의 전투 역시 마속을 잘 알고 있던 제갈량의 책임이 가장 크다. 사실 마속의 행동은 예측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마속은 항상 제갈량 곁에 있으면서 그에게 조언을 하거나 의견을 내놓거나 하는 일종의 고문 역할을 했다. 대화 속에 드러나는 마속은 정치, 외교, 군사 분야에 있어서 제갈량 못지않은 능력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는 실질적인 공을 세우지는 못했다. 자신의 형 마량이 살아있을 때는 “마씨 오형제 중 백미(마량)가 가장 최고”라는 평가에 눌려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마량이 죽은 후에는 제갈량을 직접적으로 수행하느라 자신의 능력은 발휘하지 못했다. 그 사이 자신보다 젊고 유망한 장수들이 제갈량의 북벌 전쟁 동안 공을 세우기 시작했다. 극적효과를 위해 만들어낸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지만 유비가 죽기 전에 했다는 마속에 대한 평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 아니었을까 한다. 결국 마속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무엇을 보여주어야만 했다. 제갈량은 늙었고, 자신은 아무 공로도 없다. 이는 곧 불안감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그루쉬와 이성계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균형있게 이루어진다. 한 쪽 의견이 강하면 다른 한 쪽 의견으로 그것을 약화시켜 균형을 이룬다. 이것은 그루쉬와 이성계라는, 먼저 살다간 인생 선배들에 대해 파악하고 나의 삶에 녹아들게 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마속은 다르다. 그는 철저하게 한 쪽으로만 평가받고 있다. 그가 앞선 두 명과 다른 것은 예외의 활용에 실패했다는 것뿐이다. 아무리 역사는 승자의 편, 살아남은 자의 편이라지만 변명할 기회도 없이 말이다. 모자란 긴 글을 이용하여 하필 마속에 대해 변명하고 싶었던 것은 “천 리 밖......”이라는 재생구간 속에서 마속과 그루쉬, 이성계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가장 나 자신의 목소리와 비슷한 인물이 마속이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누군가 ‘20대를 한 마디로 말해보면?’이라는 질문을 던졌었다. 왜인지 몰라도 20대가 나고, 내가 20대인데 감히 생각하기 어려웠다. 한 마디는 아니지만 이제와서 반칙성으로 그에 대한 답은 슬쩍 말해본다. “마속같은 사람들”, 모두 어떤 부분에서든 읍참마속 당하겠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다. ‘마속들’은 영웅을 중심으로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으로부터 평가받아야 마땅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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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08
09:04:10 

 

일병 이석재 
  그루쉬는 곧 1/3의 프랑스군을 데리고 떠났다. 하지만 그루쉬의 추격이 잘못된 것인지 어떤지 적 증원군의 꼬리를 잡지 못했고, 

-사실 그루쉬같은 경우는 분리되기 전에 나폴레옹에게 본대 병력에서 계속 합류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주장이 묵살되자 그는 추격을 '아주 천천히' 진행하였고, 워털루에서 맞붙게 될 웰링턴의 군대를 추격하지 못한 채, 결국 중요한 전투상황에서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하였고, 전투가 끝나고 나서야 웰링턴의 후위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이건 나폴레옹의 잘못이 큰데, 나폴레옹의 전쟁사 전체를 놓고 봤을, 그들의 부관은 단지 수족에 불과했을 뿐이고, 머리로서 나폴레옹이 모든 것을 지휘했기 때문이지요. 그러다보니 수족들은 머리의 명령에 따를 수 밖에 없었으니, 이게 과연 누구의 문제였는지는, 잘 모르겠꾼요. 2008-12-27
07:26:15
  

 

상병 김무준 
  잘 읽었습니다. 2008-12-27
13:45:51
  

 

상병 이지훈 
  석재//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을 보면... 
워털루 방향으로부터 포성이 들리기 시작하자 그루쉬의 참모진들은 본대로 빨리 합류해야 한다고 발을 동동 굴렀다는군요. 뭐 나폴레옹이 다른 전쟁들에서 보여준 '절대적 머리'의 모습은 모르겠지만 일단 나폴레옹의 실질적인 지휘 범위에서 그루쉬가 벗어났던 것은 사실이었던 것 같고, 그래서 그루쉬에게도 선택의 기회가 있었다는 점을 바라보고 싶었던 거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잠시나마 글에서 잘잘못을 논한건 나폴레옹 중심의 역사관에 약간 움찔해서 말한거고요. 

무준// 

감사합니다 흐 2008-12-28
00:44:08
  

 

병장 김민규 
  왜이렇게들 아끼시는지요. 외칩니다. 가지로 2008-12-30
11:33:26
  

 

상병 김용준 
  마속, 그루쉬, 이성계...재밌게 읽었습니다. 후후. 공로는 없고 후배들은 공로를 세우며 제갈량은 점점 늙어가고...심리적으로 불안하고 초조했을 겁니다. 마속을 너무 미워하지 말아주세요. 하하하. 

Ps. 재밌게 쓴 지훈씨의 글! 가지로! 외칩니다. 2008-12-31
10:16:16
  

 

상병 김무준 
  가지로. 2009-01-03
23:48:07
  

 

병장 이동석 
  오오오오- 

다 집어치우고, 이렇게 재밌는 직조라니 이 글에 열광하지 않은까닭은 빽빽해보이는 폰트들의 결집때문입니까, 낯선 이름이 새겨진 제목때문입니까, 

하기사, 저도 이제 보지 않았나이까- 

이제라도 열광하렵니다. 

와와와- 2009-01-04
00:17:37
  

 

병장 이동석 
  마속과 그루쉬와 이성계를 엮은 발상은 지훈님의 발상이신가요? 와와- 그 발상과 이 조직력과 재밌는 구성만으로도 가지로를 한 백개쯤 외치고 싶군요. 와와- 2009-01-04
00:18:40
  

 

상병 이지훈 
  헐. 제 글이 가지로 오다뇨. 

부끄럽기도 하고 기분 좋기도 하고 만감이 교차하는군요 

가지에 매달리면 이런 느낌인가요? 허허 

다들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2009-01-04
02:35:46
  

 

일병 이동환 
  추천 꾸욱! 마지막 문장은.. 좀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웃음) 2009-01-04
12:22:49
  

 

상병 정근영 
  아아.. 
뒤늦게 이 글을 봤습니다. 

가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