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글-내글 내상각] 연애예찬  
6급 하지연   2008-07-11 15:37:39, 조회: 1,095, 추천:5 

언젠가부터 이 사람이 나를 좋아 하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특별히 행동이 달라졌다거나 말투가 달라졌다거나 아니면 나를 그윽하게 바라본다거나 뭐 그런 이유가 아니라 나의 온몸의 촉각이 동물적인 감각으로 레이다를 세우며 어느 순간 묘한 주파수가 발견해 냈기 때문이다.
몇 번의 연애경력을 통해 증명된 것은 내가 얼마나 다루기 힘든 사람인가 하는 점과 저 세렝게티 초원에 방목되어 있는 수많은 암펠라 중에서도 꼭 내가 찍어서 먹어야만 하는 묘한 사냥습성이다.

생각해보면 덫을 놓은 것 같기도 하다. 허술하게 실실 웃으며 무장해제를 유도한 점이나 두 잔에 뻗어버리는 주량을 핑계 삼아 주제넘게 도덕 강의를 하기도 했으니까.
남자들은 자기들만 사냥의 습성이 있는 줄 알지만 태고에는 여자들도 사냥을 했음에 틀림없다.
그러다 체력도 모자라고 사냥기술의 차이가 여자를 집안으로 들여보내고 남자들을 넓은 들판으로 내몰았겠지만 가끔은 몇 세대를 거쳐서 엉뚱한 그 원시의 본능이 차원을 건너오기도 하는 모양이다.
나는 장난삼아 연애를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내가 여자로서 그 유효기간이 얼마나 될까 끊임없이 확인하는 사람이긴 하다. 그리고 여자로서 남에게 선택을 당하는 것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먼저 설정한다는 점에서는 헌터기질이 다분한 호전적인 사람이다.

연애는 화학 작용과 같아서 절대로 혼자 반응을 할 수는 없다. 남자들은 꽃이나 이벤트, 명품의 선물세례 등으로  연애를 유도하기 위해 다양한 촉매제를 동원 하지만 모든 여자들이 그런 촉매제에 불이 붙는 것은 아니다.
나는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먼저 가서 말을 걸고 장난을 치면서 처음부터 여자로 다가가기보다 친구로 먼저 그 명함을 빼어든다. 그러다 저 친구가 남자로서보다 친구로 더 매력이 있을 때는 그대로 친구로 남으면 되고 저 친구가 남자로 느껴지면 다시 연애의 작업을 걸게 된다.
모든 일도 그렇지만 작업의 정석이란 건 없다.
대체로 남자들이 여자의 눈물에 약하다고 하지만 어떤 남자들은 아주 질색을 한다.
그리고 술 취해서 몸을 못 가누는 여자를 얼씨구나 하고 덥석 덤비는 사람도 있지만 아주 예의바르게 집 앞까지 엎어다 놓고 가는 사람도 있다. 저녁 내내 안절부절 못하며 살짝 살짝 손이 부딪히는 순간 스파크가 일며 흠칫 놀랄 만큼 저 사람이 나를 안고 싶어 하는구나 하는 게 눈에 보이지만 그것 또한 꾹 참으며 저녁내 별 일없이 귀가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기본적으로 세상의 모든 여자를 사랑하는 게 남자들만의 몫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여자들도 세상 모든 남자들을 사랑하고 있다. 얼마 전 핸콕 영화를 보았다. 그 두 사람은 지구가 생길 때부터 서로 짝이었고 사랑해 왔지만 같이 있으면 결국 서로를 파멸시키게 되는 남녀였다. 사람이 외로운 이유는 자기의 반쪽을 못 찾아서 이기도 하지만 자기의 반쪽을 찾아서는 안 되는 운명 같은 것도 있는 법이다. 
연애의 범위는 어디까지 일까.
결혼은 서로 사랑이란 탈을 쓰고 있지만 정확한 계산서를 들고 만나는 중매도 인정하고 있는 것을 보면 계약의 한 형태에 더 가까운 것이다. 내가 평생 이 사람하고만 자는 것을 전제로 서로 버는 돈도 나누고 종족유지 본능을 위해 자식도 낳아서 공동으로 키우고 헤어지고 싶은 충동을 참으며 서로의 발목을 붙들고 늘어져 늙어서 아무도 들여다 봐 주지 않을 때 서로 등 긁어 주며 측은해 하기로 약속하는 것이다.

그러나 연애는 다르다. 사랑이 본능이라면 연애는 사랑의 구현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세상구경하기 힘든 수녀에게도 찾아오고 사춘기는커녕 호적에 잉크도 안 마른 초딩 조차 사랑운운하고 걸음마도 제대로 못 떼는 몇 살짜리 유치원생도 이불 뒤집어쓰고 울어서 엄마를 당황스럽게 하고 너만 사랑하고 너만 보겠다고 결혼 계약서에 도장 찍은 사람에게도 불현듯 찾아오고 환갑 진갑 다 지나 좋은 묘 자리 찾는 게 꿈인 노인네에게도 찾아온다. 
생각해보면 사랑이란 씁쓸한 감정은 원할 때는 그 인색함을 자랑하다가도 무방비 상태일 때 폭풍처럼 찾아와서 우리를 흔들고 간다. 밀물과 썰물처럼 규칙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달도 차면 기울어진다는 월력의 법칙도 없다.
그런 감정이 무서운 사람이라면 마음을 닫아놓고 그래도 문틈을 기어들며 찾아온 사랑을 부정하고 때가 되면 가장 적당한 때 가장 적당한 사람을 만나 집을 짓고 그 집안에서만 규칙으로 만들어놓은 사랑을 하면 된다.

연애가 흥미롭고 그 단어만으로도 가슴이 설레는 것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규칙의 놀라움(그러나 불쾌하지 않고) 열정과 고통을 같이 수반하는 달콤함 때문이라 생각한다. 스물 몇 살의 연애와 서른 몇 살의 연애, 또 마흔 몇 살의 연애는 분명 그 형태는 다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꺼이 그 감정의 폭풍에 자신을 맡기는 것은 사랑의 중독성이 너무도 강렬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활활 타오르는 붉은 감정의 폭풍은 세월이 지나면 연분홍의 모시저고리처럼 기억도 아련하게 바뀔지도 모른다. 연애를 많이 한 사람은 추억이 많다.
나는 그 회상할 추억을 가진 사람들이 부럽다. 아주 많이 부럽다.
남들이야 어쨌건 나는 사랑은 다다익선이라고 생각한다. 지조 없다고 해도 상관없다.
이기적인 사람이 남의 마음을 배려해주게 된다면 그것도 사랑의 힘이고 이 세상에 나 말고도 빛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것도 사랑을 통해서 일 것이다. 오히려 이기적인 인간일수록 사랑을 많이 해서 그 마음이 노골 노골하게 설탕에 조린 단 호박처럼 달콤해지기를 바란다. 편협한 인간은 사랑이 찾아와도 그 사랑을 오래 지켜낼 수가 없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연애의 끝이 모두 해피 엔딩은 결코 아니다. 연애의 끝이 해피 엔딩이라면 첫사랑의 그토록 아련한 이름도 아닐 것이고 짝사랑이란 말도 없을 것이며 연애가 진한 에스프레소처럼 씁쓸하면서도 달콤하지도 않을 것이다.
연애의 끝을 꼭 해피 엔딩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편집증은 버려도 좋다.
그렇지만 연애의 경력자는 그 스킬도 늘어서 사랑을 많이 해 본 사람일수록 자신이 원하는 짝의 근사치에 가까운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은 맞는 것 같다.

나는 연애를 숭배한다.
세상에 가장 큰 인생의 공부중 하나가 연애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연애를 예찬함에 주저하지 않는다.
사랑이 찾아온다면 그 손을 덥썩 잡아 보기를 권한다.
인생은 교과서처럼 몇 쪽 몇 페이지에 뭐가 쓰여 있다 그런 것이 아니다.

-주의사항-
불행하게도 본능보다 이성을 발현하려는 교육을 너무 오래 받아서 인지 아직은,
적어도 머리로는 사랑과 연애보다 우정과 의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연애도 때로는 의리가 필요하기 때문에(사실은 이 의리란 것이 연애의 가장 큰 걸림돌 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이 다른 이와 연애를 할 때 의리를 지켜야할 일을 했다면 그것을 지켜야만 사회적 도덕적 지탄을 받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진심으로 말하자면 나는 의리마저 저버리고 사랑에 올 인하는 사람을 다른 사람과 더불어 비난은 하겠지만 마음으로는 존경하며 부러워 할 것이다.

연애의 관한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혼자 달콤해 지는 나는 아마 연애 중독증인지도 모르겠다.



PS.
요즘의 책 마을은 거의 옛날 27사단 시절의 책마을을 떠올리게 한다.
여러 거주지의 과도기를 거쳐서 책마을 가장 이상향에 도달하고 있는 것 같다.
이 마을의 오래된 주민으로 매우 즐겁고 매우 보람 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 책마을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8-12-18 19:24)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6
13:03:14 

 

상병 조현식 
  오랜만에 본 하지연 주사님의 글이네요. 
작성자도 반갑고, 글도 반갑고 제가 쓴 수원갈비 예찬보다는 연애를 예찬하는 쪽이 더 맛나네요. (웃음) 2008-07-11
15:48:48
  

 

병장 이동석 
  일단 스크림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후 감상 

내글 내상각이라는 말머리도 좋아요. (눈물) 

-FROM 양상국 2008-07-11
15:50:59
 

 

일병 이동열 
  저로서는 더 많이 경험해보아야 한다는 따끔한 충고의 글 처럼 느껴집니다(울음)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꾸벅) 2008-07-11
15:57:25
  

 

상병 이문희 
  기다렸습니다.(웃음) 반갑습니다! 2008-07-11
16:13:17
  

 

병장 이동석 
  이기적인 인간에서 뜨끔, 
이기적인 인간인지라 이기적인 '착취'를 연애로 호도해버릇해서말입니다. 
저도 인간인지라 끝없는 자괴감의 나락으로 빠져들고 
누가 보일때마다 고개를 가로저었는데 
그건 정말이지 난 계속 이기적일테니까 냅둬라 
뭐 이런 표현이었나 싶군요. 

그나저나 저 양상국적 댓글은 죄송합니다. 
귀청 아프셨죠? 2008-07-11
16:27:11
 

 

일병 김세현 
  하하 저는 요즘 연애 그 자체는 사람마다 이렇다 할 다름을 모르겠고 그 후에(굳이 시기적으로 구분하자면 이별!이라고 서로 인지한 때부터) 따라오는 어떤 남김과 흔적들이 흥미롭더군요..혼자서는 그것이 어쩌면 연애의 본질에 더 가깝다!라고 생각도 해보고요..항상 모든 변화와 깨달음을 이뤄내는 가장 큰 촉매제는 재앙이니깐요..(웃음) 2008-07-11
16:38:20
  

 

병장 고성구 
  하주사님~오랜만이에요! 하하 

잘 지내시죠?(웃음) 2008-07-11
16:39:40
  

 

병장김종빈 
  이십여년간 한번도 연애라고는 해본적 없는 저하고는 반대시군요. 
딱히 연애에대해서 악한감정을 가지고 있는건 아니지만 독신주의자이긴 합니다. 와하하. 2008-07-11
17:06:55
  

 

이병 장봉수 
  연애라... 
다다익선에는 동감입니다. 
만남은 이별을, 
이별은 만남을 만드는 법이죠. 

양다리는 연애가 아니겠지만요(웃음) 2008-07-11
22:16:18
  

 

병장 이동석 
  주말동안 페이지 밀려버린 지연님 글에 대해 심심한 안타까움을. 
이래서는 안되는데. 2008-07-14
06:44:28
 

 

병장 박준연 
  하지연 주사님, 오랫동안 안보이신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짠! 하고 나타나셨네요.(웃음) 반갑습니다. 2008-07-14
14:02:44
  

 

병장 이태형 
  24년간 한번도 연애라고는 해본적 없는 저하고도 반대시군요. 
독신주의자는 아닙니다. 와하하. 
연애는커녕 손도 못 잡아봤는데(자랑이냐?) 
흑흑. 2008-07-14
14:45:58
  

 

병장 이재민 
  따뜻한 연애에서 생기는 따스한 감정은 참으로 달콤하지요 2008-07-18
09:28:41
  

 

일병 장봉수 
  음.. 
연예학 강의하신 교수님과 같은 말이군요. 
크흑... 
근데 잘 안 되요 흑흑 2008-11-07
11:06:45
  

 

상병 김무준 
  음. 추천사를 쓴 다음 직접 가지로를 외치면 되는 거였군요. 2008-12-18
15:59:08
  

 

병장 이동석 
  가지로- 

맞습니다. 무준님. 그건 그렇고 이 비정상적인 조회수는 뭐랍니까. 2008-12-18
16:00:13
 

 

상병 김요셉 
  에에...그러게요. 조회수가... 

가지로- 2008-12-18
16:29:55
  

 

상병 서윤석 
  아 ... 김무준님의 글을 보고 이동석병장님을 따라 글을 읽으로 왔는데 

책마을에 여성분도 계시는군요. 항상 글을 읽을때 남성적으로 읽었는데 

오랜만에 부들부들 여성적으로 읽었네요.(웃음) 


가지로 - 2008-12-18
16:38:22
  

 

병장 이동석 
  그건 그렇고, 마지막에 추신-이 뼈아프네요. 지연님이 지금의 책마을을 보시면, 무슨 말씀을 하실지. 2008-12-18
19:24:27
 

 

상병 김무준 
  어머, B급이네? 하실지도. 어쨌거나 내글내 상각의 압박이 심하군요. 2008-12-19
01:16:06
  

 

병장 이동석 
  그마저도, 지연님이 하신거라 손도 대지 않았습니다. 흐흐. 그 압박을 이겨내기란... 2008-12-19
06:46:52
 

 

병장 양 현 
  헌데, 우리 다크호스 예찬님의 댓글이 없군요! 2008-12-23
12:40:55
  

 

병장 김태준 
  하지연님! 잘 읽었습니다 2008-12-27
10:05: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