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글-내글내생각] 6학년 6반 달팽이반  
병장 조현식   2008-10-08 11:10:33, 조회: 391, 추천:3 

선생님이 어디 소속이었는지는 관심이 없었다. 사실은 전XX 소속이래.. 라고 말을 들은 건 나중의 일이었다. 나에게 선생님은 그저 선생님이었으니까. 우리 반 아이들은 선생님을 재크라고 불렀다. 재크와 콩나무의 재크에서 따 온 것일까? 제대로 만든 크래커라는 그 제크일까. 별명의 유래는 알 수 없었지만 선생님은 보기 드문 남자 초등학교 선생님이셨다. 유쾌하고, 아이들을 이해하는 좋은 선생님이었다. 나이가 들면 세상의 뒷면을 알게 되면서 선생님의 어두운 면도 발견하게 되는데, 뒤늦게 어머니가 해주시는 말에 초등학교 3학년 때 한 여자 선생님은 알게 모르게 뒷돈을 바랬지만 가정형편상 어머니가 그럴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그 당시 선생님은 나를 싫어했다고 한다. 어머니, 100만원에 아이들을 차별 대우하는 선생은 교사라고 하는 거에요. 직업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일 뿐 아무런 봉사정신이나 희생정신이나 여타 선생님에게 필요한 자세가 갖추어지지 않았는데도 철밥통 직업을 가진 메리트 덕분에 아이들을 밟고 더 높은 상류층으로 편입을 시도하는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을 제가 따로 분류하는 단어랍니다. 이러한 정의에 비추어보면 재크 선생님은 그야말로 이상적인 선생님 상에 딱 맞는 사람이었다.


재크는 6학년 6반, 우리 반을 맡아 교훈을 ‘배워서 남 주자’ 라고 정했다. 배우는 게 힘, 아는 게 힘, 모르는 게 약, 배우면 다 내 것 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제도권으로 다이빙 하려던 평범한 초등학생인 나에게 이 말은 신선하게 와 닿았다. 배워서 남을 주자고? 어째서? 어딜 가나 반에는 한 명씩 뛰어난 재능을 자랑하는 아이들이 있다. 각자 분야가 다를 뿐.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재능은 공부를 잘하는 재능일 뿐이지 다들 한 가지씩 있는 건 명백한 사실이다. 우리 반의 포동포동 살이 쪘고 나랑 친했지만 머리를 도통 감지 않아 항상 비듬을 흘리고 다녔던 K가 공인된 공부 재능에 있어서는 독보적이었다. 신의 축복을 받았다고 해도 무리가 아닐 정도로 녀석은 우리와는 레벨이 달랐다. 한 번은 그 녀석의 집에 퇴마록을 빌리러 간 적이 있었는데, K는 대학생 과외 선생님과 함께 수학의 정석을 풀어대고 있었다. 아마 그 정도는 해야 그 세계에서 앞서나갈 수 있는 모양이었다. 무서운 세상이야. 나는 당시 인기리에 방영 중이던 세일러-문 비디오 녹화본과 퇴마록을 가지고 오며 몸서리를 쳤다. 이런 세상이 있다는 걸 우리 엄마가 아는 날에는 끝장이겠어. 또 같은 반의 O는 나와 유치원부터 알았던 사이였지만 서로의 취향 차이 때문에 같은 반이 아니었으면 그렇게 친해지지도 않았을 것인데, 키가 크고 덩치도 컸던 O는 학교에서 가장 싸움을 잘했다. K가 고등학교 수학을 푸는 사기 캐릭이었다면 O는 초등학생의 범주를 벗어난 체격의 사기 캐릭터였다. 그 외에도 그림을 잘 그리는 H, 목소리가 유난히 큰 B양 등 우리 반에는 특출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아이들은 나에게 성의껏 자신들의 재능을 전수하려고 노력했고 나는 내 능력 밖의 일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지만 그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당연히, 별로 친하지 않았던 O,H,B와 나는 친구가 될 수 있었다. 내 경우에는 그 덩치 컸던 O를 물리칠 수 있는 하늘에서 내린 재능이 딱 한 가지 있었다. 동전 축구와 동전 농구다. 나무로 만든 바닥의 결을 이해하고 있는 자만이 이 경기에서 승리할 수 있었고, 나는 동전 축구를 보급한 선구자로서의 독점적 지위를 한껏 누리고 있었다. 재크 선생님 배 동전게임 대회에서 나와 O는 동전농구 결승전에서 붙었다. 당시 O는 반칙에 가까운 손 크기를 가지고 연신 덩크를 해 대며 초등학교 6학년 밖에 되지 않은 내 가슴에 대못을 박고 있었다. 내가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리틀 야구부로 단련되었던 나의 던지기 실력 덕분이었다. 연이은 3점에 나는 최초이자 최후의 동전게임 우승자가 되었다. 내 초등학교 생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인데, 우리가 졸업하기 전 만든 회지에도 동전게임을 보급한 내 이름이 떡 하니 실려 있다. 아무튼 이러한 재능을 가진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에게 알려주면서 모두가 알아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게 교훈의 요지였고 그것은 바로 실행됐다. K는 아이들에게 항상 수학 문제를 알려주었고, O는 우리 반의 엄석대가 되... 지는 않고 힘이 약한 아이들이 맞고 오면 복수해주는 역할을 맡았다. H는 친구들에게 그림을 그려 나눠주고, 목소리가 큰 B양은 발표 수업 때 두각을 나타냈다. 나는, 동전게임이나 하고 앉아 있었다. 나름대로 인기 있었다니까? 이렇게 소시민적 삶을 영위해 왔다고 생각했는데 왠지 모르게 마지막 회지에서 나에 대한 각자에 대한 인상을 말할 때 나는 병아리마저 호텔 같은 시설을 갖추고 키우며 친구들과 파티를 즐겨하는 요즘 말로 된장남이 되어 있었다. 왜 그런지는 나도 모를 일이다. 


중학교 때 일도 잘 기억을 못하는 기억력의 달인님이 이렇게 초등학교 6학년 때 일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 내 삶에서 그 한 해가 얼마나 강렬하게 자리 잡았는지 말해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또 하나, 당시 TV에는 깜찍이소다 CF가 붐을 일으키고 있었다. 야, 지금 뭐가 지나갔냐? 글쎄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우리 반의 마스코트는 깜찍이 달팽이들이었고 자연스럽게 달팽이 사냥이 트렌드로 이어졌다. 아직 학교가 시멘트로 뒤덮이기 전의 이야기였다. 비가 온 후 학교 스탠드 뒤로 올라가면 달팽이가 참 많았다. 민달팽이를 잡는 날은 운이 좋은 날이었고, 어린 달팽이를 너무 세게 잡으면 껍질이 깨지곤 했다. 누가 달팽이를 많이 잡았냐는 누가 돈이 많으냐와 같게 취급되었다. 큰 달팽이는 작은 달팽이와 비교할 수 없는 가치가 있었지만, 솔직히 말해 좀 징그러웠다. 달팽이로 행복할 수 있었던 때는 이 후에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정말 뭐가 지나갔냐 싶을 정도로, 너무 순식간에 지나간 한 때다. 나중에야 내가 떠올린 의문은 어째서 달팽이는 잡았으면서도 깜찍이 소다를 아이들이 많이 사먹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었다. 이어 중학교에 올라가고 나서는, 퀘퀘한 남자 중학교에서 포켓몬스터 빵 스티커를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짱이었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나는 싸움의 세계나 공부의 세계와는 한 걸음 동 떨어져서 한가롭게 달팽이나 줍고 포켓몬스터 빵 안의 스티커를 미리 보다가 아줌마한테 혼나기도 하는 평범한 학생의 모습을 견지했던 것 같다.


추억은 앨범과 같이 한 번 펼쳐보기 시작하면 끝없이 잊고 있었던 기억들을 보내는 성질이 있나 보다. 새록새록 떠오르는 옛 생각을 한 페이지만 더 펼쳐보면, 6학년 추운 날 - 재크 선생님과 우리들은 점심시간이 되면 각자 가져온 양은도시락을 하나 둘 꺼내들었다. 우리 학교는 내가 졸업하기 전에는 아직 나무로 때는 구식 난로를 쓰고 있었다. 겨울이 되면 교실 중앙에는 난로가 설치되고, 난로 당번이 돌아가며 창고 아저씨에게 나무를 받아서 썼다. 나무는 일반 나무가 있고 동그랗고 단단한 기름나무가 있는데 이 기름나무를 두 개 얻어오는 날은 난로 당번이 영웅이 되는 날이었다. 3교시가 끝나면, 난로 당번은 잽싸게 고구마를 난로의 나무 집어넣는 곳으로 과감히 투척했고, 몸이 잽싼 애들부터 굼뜬 순으로 양은 도시락을 착착 올려놓았다. 점심시간 직전 난로에서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애가 타는 향기가 솔솔 풍겼는데, 이 때면 수업이고 뭐고 아이들의 정신은 난로로 모두 집중해 있었다. 가끔 재크 선생님은 큰 양푼을 가져오기도 했다. 각자의 도시락을 한데 모아서 양푼에 턱 털어 넣고 고추장과 갖은 양념을 팍팍 집어넣으면 아이들은 숟가락 하나만 가지고 선생님 주변으로 우르르 모여 들었다. 6학년 점심시간은 보통 이런 풍경이었다. 어른들이 볼 때는 평범한 국민 학교의 광경이지만, 난로가 있어도 이렇게 하는 반은 우리 반 뿐이었고 우리가 졸업한 다음해부터는 난로에서 히터로 공사를 마쳐서 이러한 즐거움을 누리는 후배들은 더 이상 없게 되었다. 언제나 이렇게 예전부터 우리의 사랑을 받아오던 것들은 편한 것에 밀려 사라지곤 한다. 이제 수원 어느 학교에서 교실 중간에 아이들의 자리 차지하고 버틴 난로에 고구마를 구워 동치미 국물과 먹을 수 있겠는가. 우리가 사랑하던 것들이 사라질 때 흔히 그랬듯, 이러한 모습도 급격한 학교의 현대화와 더불어 소리 없이 사라져버렸다.


즐거운 기억 속에서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학생이니까 공부도 배웠고, 그 나이 남자 또래처럼 싸움을 잘하는 법도 배웠지만 솔직히 배워도 안 되는 것이 더 많았다. 또 내가 죽어라 배워 겨우 터득한 비법을 남에게 준다는 것은 배우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때 아이들과 같이 놀 수 있는 동전게임을 알려주고, 달팽이가 잘 나오는 지점을 알려주고, 어떻게 하면 창고 아저씨에게 잘 이야기해서 기름 나무를 두 개를 받을 수 있는 지도 아이들에게 알려주었다. 오직 그 때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기적인 마음을 가지는 건 쉬운데, 베푸는 삶이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고 그런 사람에 속할 뻔한 나에게 재크 선생님은 정말 가장 큰 가르침 하나 남겨 주신 셈이다. 배워서 남주자는 인생의 철학 하나 얻었으니 지금이라도 재크 선생님을 찾아가 그 때 그 가르침이 내 인생에서 제일 큰 가르침이었다고 이야기 해 드려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게 안타깝다. 빨리 ‘TV는 사랑을 싣고’에 출현해서 선생님을 찾아야겠다. 배웠지만 배운 대로 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고, 자신이 돈 버는데 방해 된다고 남에게 절대 가르쳐주지 않는 사람들이 세상의 다수를 차지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마음속에 그 한 마디 때문에 나는 나만 생각하며 이기적으로 크지 않을 수 있었다고 얘기해드리고 싶다. 은사를 가진 학생은 얼마나 운이 좋은 학생인가. 나는 그런 선생님과 만날 수 있어서 행복했다. 


그래, 배워서 남을 줘야 한다. 그것이 남과 같이 웃으며 살아가는 방법이니까. 언제까지 논쟁하고 화내기에는 구지 안 그렇게 해도 너무 빡빡한 세상이다. 나에겐 행복한 얘기만 하기에도, 사라지는 소중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에도 주어진 시간이 너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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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8-12-08
20:24:07 

 

병장 이동석 
  전XX라면... 

그 화려한 휴가 개봉반대운동에 앞장서 화려한 휴가 흥행에 혁혁한 공을 세웠던 '전사모'? (농담) 

전교조가 무슨 이적단체도 아니고, 쓰면 안될까요? 2008-10-08
11:15:56
 

 

병장 황인준 
  흐음. 그러게요. 별 상관은 없을 것 같습니다만, 
워낙 안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러신 듯.. 

난로가 남아있던 학교를 다니셨군요(두둥)! 
저는 구경도 못 해봤다는... 

저는 왜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 별로 없는 지 모르겠네요. 
그나마 기억 나는 건 국민학교 2학년 시절에 쉬는 시간에 복도에서 뛰었다고, 
뺨을 쎄려주던 교감선생님 정도??? 2008-10-08
11:35:04
  

 

병장 이재민 
  아 따땃하네요 
따땃해... 2008-10-08
11:38:29
  

 

병장 이동석 
  그건 그렇고 저도 재크가 별명이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땐 '얼짱'의 의미였던걸로 기억해요. (하하하) 
('얼굴 짱 커'의 준말이죠) 2008-10-08
12:03:41
 

 

병장 이동석 
  아아, 저는 정말 복받은듯, 
제가 스물, 스물하나도 아니고 
아직까지 나가면 술 사주는 선생님들이 몇분이나 계셔요. 

술 사준다고 좋다는게 아니라 애프터 서비스 확실한 분들이라는게지요. 
그 재크 선생님 꼭 찾으셔서 술 한잔 하시는것도 좋을것 같아요. 

그런데 왜 이글은 가지로 안 보내는거죠? 

<가지로> 2008-10-08
12:06:52
 

 

병장 신지훈 
  잔잔합니다. 저도 어린시절을 떠올리게 하네요. <가지로.> 2008-10-08
12:46:40
  

 

병장 이동석 
  그건 그렇고 조회수 27에 댓글 6개, 가지로 2개. 

뭔가 대단하다... 2008-10-08
12:56:10
 

 

병장 황인준 
  스타 플레이어다우신 스탯이죠(웃음). 
저도 <가지로> 2008-10-08
13:00:38
  

 

병장 조현식 
  이름을 다 쓰지 않은 것은 이름만 보면 거부감을 느낄 많은 분들 때문이었지만, 구지 집어넣지 않아도 될 저 부분을 집어넣은 것은 그들도 별 다른 세상에서 온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선생님들이란 걸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어디 단체에 속해있다는 것으로 사람을 판단하는건 얼마나 허무한가요. 2008-10-08
13:13:03
  

 

병장 주해성 
  울컥하는군요 가지로 2008-10-08
13:20:25
  

 

병장 이동석 
  음, 
그리고 보니 전대협도 있고요. 

그 단체엔 십만명도 넘는 사람들이 있는데 
흔히들 그 단체에 대한 편견으로 그 십만명을 범주화 해버리는건 정말 일상화된 폭력이로군요. 2008-10-08
13:20:37
 

 

병장 이동석 
  좀 식힌다음에 가지로 보낼께요. 이를테면 조회수 200찍었을 무렵에? 2008-10-08
13:22:02
 

 

병장 고동기 
  아. 저도 중학교때까지 난로를 피웠었는데. 
4교시만 되면 교실 전체에 김치볶는 냄새가 솔솔 풍겨요. 
그런데 난로가지고 장난치는 애들 때문에 싫기도 했어요. 
난로 위에다 침을 뱉거나. (발화하면서 풍기는 냄새가 아주 고약합니다) 
동전을 달궈서 장난을 친다거나. 
이제는 시골학교에도 라지에이터를 가동하겠죠? 2008-10-08
13:23:59
  

 

병장 고은호 
  가, 가지로!! (울음) 

진짜 마음이 따뜻해지는 글입니다. 

아, 이 글은 프린트해서 간직하고 있어야 겠습니다. 
저도 이런 선생님이 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좀 더 많은 수양을 쌓고, 좀 더 공부해야 겠습니다. 
정말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08-10-08
14:02:46
  

 

병장 전승원 
  아버지를 따라, 교육자의 길도 생각하고 있는 저로서는 상당히 감명깊은 글입니다. 학생에게 뒷돈을 요구하는 선생님과 너무 대조적으로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시는 재크 선생님을 통해 저는 어떤 인간상이 되고자 하는지 생각하게 되네요. 2008-10-08
14:10:18
  

 

이병 이영경 
  제가 제일 그리워하던 초등학교 6학년! 이네요. 저도 6반이였는데.. 
최근들어 못 본 친구들이 보고 싶네요. 2008-10-08
18:11:04
  

 

병장 김낙현 
  멋진 선생님을 만나는 것은 축복이죠. 2008-10-08
21:43:00
  

 

병장 이현승 
  글 잘읽었습니다. 난로에 대한 추억은 정말 따뜻하네요. 2008-10-09
10:22:25
  

 

상병 강수식 
  늦었지만 <가지로> 외쳐봅니다. 
즐거운 글이네요. 저는 담배때문인지 이제 옛날일들은 거의 떠오르지가 않습니다. 
친구들 이름들도 하나, 둘씩 헛갈리기 시작하고 
그 놈이 그 놈이었던가, 하는 현상이.(하하) 

그나저나 현식님 오랫만에 봐서 좋네요. 
언제가 현식님의 글을 기대하고 있어요(이래뵈도 애독자랍니다.) 

어서어서! 
다음 글을 주세요. (히히) 2008-10-09
10:55:58
  

 

병장 김민제 
  좋은 글 잘봤습니다. 
후임녀석중에 초등학교 교사하던 놈이있는데 
프린트해줬습니다. 더 좋은 선생되라고 
좋아 하더군요. 

어렸을적 난로 주변에 10원짜리 동전 올려놓았던게 생각나는군요. 
냄새없애는데에 좋다고 문방에서 거스름돈으로 받은 걸 올려놨었죠. 
몇몇 친구들은 동전 않뜨겁다고 얼굴이나 손에 올려놨다가 
10원짜리 모양으로 데어서 한참 웃었는데 말이죠 (호호) 2008-10-11
12:47:39
  

 

상병 김무준 
  잘 읽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은사님이 생각납니다. 머리가 하얗게 새어서 늘 웃음을 품고 다니며,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세를 외치고 다니던 선비같은 분이었는데... 
지금은 무얼 하고 사시는지 궁금하네요. 2008-10-15
22:23:15
  

 

병장 이태형 
  아니, 이 글을 제가 왜 못 읽은거죠? 
허허... 
정말 가슴 따뜻하고 푸근해지는 글입니다. 
이래서 현식님을 안 좋아할 수가 없어요!!! 
추천! 2008-11-08
14:4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