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글-내글내생각] 5년 전으로 돌아갈수 있다면  
6급 하지연   2008-09-05 14:19:36, 조회: 544, 추천:3 

‘5년 전의 나이로 되돌려 드립니다.’
임수정이 TV에 나와서 ‘제가 그렇게 예쁜 얼굴은 아니잖아요‘ 했다가 XY염색체를 가진 모든 종족들로부터 야유를 받았던 그 화장품회사에서 십 몇 만원의 화장품을 바르면 5년 전으로 되돌려 준다고 꼬드기고 있다.
고심해서 그 문구를 짜낸 카피라이터는 주름살까지 포함해서 정말로 5년 전으로 되돌려 준다면 사람들이 좋아할지 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한테 물어 보지 그랬어...
나는 싫거든.

5년 전으로 돌아가 봐야 별로 다를 게 없다. 눈가에 주름 한 두 개 정도는 사라질지 모르지만 퇴근하면 여전히 CSI를 녹화 떠놓고 휘트니스로 가서 땀을 흘리며 우두둑거리는 관절 꺽기를 하며 이제 시들해지는 팝핀을 배우고 있을 것이다.
그때 알았던 사람들이 휘리릭 지나간다.
지금도 연락을 하고 있는 두 어 사람과 지금은 어디에 있는 지도 모르는 다수의 사람들, 맨 날 사고만 쳐서 금치산자인줄 알았는데 제대하는 날 밝혀져서 나를 놀라게 했던 모 대학 수재였던 녀석과 덩치는 산만하지만 웃는 것만큼은 귀여웠던 기어이 담배를 못 끊어서 손가락에 니코틴자국을 간직한 거북이 마라톤참가자에게 나눠줄 2천장의 행운권을 찍고 강박증 있는 처장 때문에 새벽까지 1번부터 2000번까지 순서대로 정리했던 그래서 거북이를 세상에서 제일 싫어했던 뼈 속까지 마초였던 녀석. 내가 간식으로 먹는 짬밥 만큼도 안 되면서 걸핏하면 군대생활을 들먹이는 것도 모자라 입을 욕에 달고 살던 사는게 많이 피곤했던 oo ◇3위, 살다 살다 지지리 인복도 없게 검열 온다면 도망가서 체육관 앞에서 졸고 있던 과장 oo *령까지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을 몰랐던 5년 전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아직 자서전을 쓸 나이도 아니고 살아온 날 보다 원하진 않지만 그래서 살날이 더 많을 지도 모르는 인생을 회고할만한 나이는 결코 아니지만 이십대가 세발자전거로 낑낑대며 산을 오르는 기분이었다면 삽 십대를 훌쩍 넘긴 지금은 하강하는 롤러코스트에 올라 휙휙 지나가는 경치를 보며 어지러움을 느끼게 된다. 좀 더 나이든 어르신들이 장담하셨는데 몇 년 만 지나면 자일드롭을 탄 기분일거라고 하셨다. 언젠가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그 사실을 과학적으로 증명해냈다. 나이가 들면 어린것들 귀에만 들리는 주파수가 있고 신체 어디에 있는 시계가 고장 나서 시간을 더 빨리 느낀다는 것이다.

지금이라면 아무렇지도 않을 것들에 어렸을 때는 심하게 상처받았다. 아버지로부터 쓰레기란 말을 들었을 때는 시뻘건 피가 뚝뚝 떨어지는 상처에 굵은 소금 한 웅 큼을 문지르는 것 같았는데 스물 몇 살 사무실 선장에게 들을 때는 되돌려 줄 여유도 있었다. 나에게 소리 지르는 사람 앞에서 심장이 미친 듯이 벌렁거리고 목소리가 목에 걸려 나오지 않아 입만 벌린 체 꼼짝없이 당했지만 이제는 소리 지르는 사람을 멍하니 쳐다보며 담배를 피면 정기적으로 스켈링을 해줘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 

이글을 쓰고 있는 잠시 동안은 헤어지자는 말 한마디를 못해서 내 전화를 피했던 치사한 자식에게 좀 더 쿨 하게 대처하지 못했던 게 아쉽고, 대학 신문 공모전에 붙은 뒤 내 길이 아닌 것 같아 접었던 글쓰기를 계속 했다면 어떻게 되어있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선택의 여지는 없었지만 아버지보다 어머니와 같이 살았으면 또 뭔가 달라졌을까. 그런 생각이 불현듯 들긴 한다.

지금의 내 모습이 내가 꿈꾸었던 모습은 아닐지라도 하루에 몇 번씩 선택의 기회가 올 때마다 나는 죽도록 힘들게 선택을 했고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 돌아보지 않기로 했다.
현재 내 모습은 내가 살아온 인생의 찌꺼기가 단단히 달라붙어 고집스럽고 아집강한 사람으로 보이게 한다.
몇 가지 좋은 습관을 길들이기 위해서 많은 시간이 걸렸고 꼭 버려야 하지만 계속 발목을 붙들고 있는 이러다 아마 죽기 전에는 못 고칠 것 같은 참으로 내 입으로 말하기 싫은 단점도 있지만 나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든다. 
거울을 보다 미간에 잡힌 깊은 주름을 보며 나는 왜 이렇게 인상을 쓰며 살았던 걸까. 손가락으로 머리를 쓸어 넘기기 무섭게 자라있는 흰머리는 내가 머리가 셀 나이인지 스트레스 때문인지 헛갈리고 아무리 노력해도 일년에 1킬로씩 붙어가는 나잇살이 원망스럽고 아줌마라 불렀을 때 까닭 모르게 솟았던 분노가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는 현실이 되었다
이만큼 살아내기가 쉬웠던 건 아니다.
그리고 지금 알고 있는 사실을 가지고 다시 돌아갈 수 있다 해도 더 잘할 수 있을 거란 자신이 없다.


사회적으로 지위가 좀 있거나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의 성공담을 책으로 써내기도 하고 여러 자리에서 그의 고견을 요청받게 된다. ‘전 어떻게 했습니다, 여러분 성공하려면 이렇게 하십시오’
그 단호하고 확신에 찬 목소리를 들으면 나도 저이처럼 하면 저이처럼 될 수 있을 거야라고 잠시 생각한다.
그런 종류의 책들이 잘 팔리고 강연회가 호황을 누리는 걸 보면 요즘 세상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모델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바라지도 않는 충고를 늘어놓고,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자기가 살아온 세월을 자랑스럽게 시시콜콜 나열하는 이상한 버릇을 가지고 있는 자도 있지만 나는 아직 누구에게 충고할 처지도 못되고 또 남들이 나에게 충고를 요청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이 가끔 나를 안도하게 한다. 쉼표 몇 개 찍어놓고 과거를 반추하고 남보다 조금 나아보이는 공적을 자랑하고 화려한 경력을 그리워하기보다 나는 내가 언제나 진행형이기를 바란다. 

나는 과거로도 미래로도 가고 싶지 않고 그저 내가 디디고 있는 이 발밑에 좀 더 힘을 주고 더 꿋꿋하게 견디어 나가고 싶다. 나는 5년 전의 나보다는 지금의 내가 조금 더 좋다.


3년 전 회원탐방에 올렸던 글을 처음 보는 글처럼 읽었다.
그때도 그랬지만 참으로 부끄럽고 쑥스러운 글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때 썼던 모든 글과 주말소묘 자료는 컴퓨터 하드가 날아가는 바람에 모두 잃어버렸다.
그 정신적 공황이 오래 가는 바람에 한동안 글을 쓸 수가 없다. 왠지 나의 뿌리가 없어져 버린 느낌이랄까..
그것도 과거라고 이제 연연 해 하지 않기로 했다.

* 책마을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8-09-05 16:31)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8-12-08
20:19:46 

 

상병 양순호 
  네, 맞습니다. 사회에서 보여지는 모든 성공 도우미격인 책들은 '~하십시오'라는 
명령조를 구사합니다. 그리고는 마지막에 외쳐댑니다. "생각대로 하면 된다". 
생각대로 하면 정말 되는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그렇게 느끼기도 하고, 정말 
생각하면 되는것을 해보기도 한지라 안되는것 없다. 전 여느 누군가들에게도 
말합니다. 궁 안에서의 생활은 정말 모든것을 되게 해준다. 안되는건 없다, 
하면 된다. 어떻게든 하면 된다 라면서 본문 내용과 같이 현재진행형. ing를 
하게 합니다. 아아. 전 어쩌면 죄를 짓고 있는 도련님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더랍니다. 

과거에 연연하지 않는것도 좋은 것 같더랍니다. 3년전이던, 5년전이던. 그날이 
있었기에 지금이 있는거고 지금이 있기에 3년후가 있고 5년후가 있는게 아닐럽니까. 
말 그대로, 지금의 내가 좋으면 되는 것 같습니다. 이런말, 함부로 하진 않지만 
그래도 이 글엔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좋아합니다, 주민 여러분. 2008-09-05
14:43:12
  

 

병장 이동석 
  음, 그런 안타까운일이 있었군요. 
그렇다면, 당분간 명예의 전당은 하지연님 특집으로... (퍽) 
뭔가 옛 일기장을 찾아내서 올려버린것 같아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더욱 더 뻔뻔하게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전 지연님 글이 좋거든요. 히히 2008-09-05
15:06:47
 

 

병장 이태형 
  임수정이 찍은 그 CF에서는 솔직히 얼굴이 넙데데하게 나왔더군요. 

"그렇게 예쁜 얼굴"이 아니라 "예쁜 얼굴"이 아니지. 

<가지로> 2008-09-05
15:07:14
  

 

병장 어영조 
  전 가끔 고등학교때 가진 지식을 가지고 5년전으로 돌아간다면, 분명 모든 
학업우등상을 휩쓸거라는 상상을 해보는데 말이죠.(웃음) 2008-09-05
15:20:20
  

 

병장 윤영돈 
  저도 지연님 글이 참 좋아요. 이히히 

과거의 영광을 기억하기 보다 현재에 충실하다라는 말이 생각나네요. 

GO,GO <가지로> 2008-09-05
15:31:03
  

 

병장 이동석 
  아니... 그 CF의 임수정이 넙대대하다구요....? 그 성별을 가진 나머지 99프로쯤의 탄식이 들려오는듯 하군요. 임수정치고 넙대대하게 나왔다는 건가요? 


과거에 사로잡히기 시작하는게 어른이 되가는거라고 생각했는데, 어쩜, 과거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는게 더 어른에 가까울지도 모르겠어요. 제 인생에 돌이키고 싶은일들이 벌써 몇개 있긴 하지만, 막상 돌아가면 또 그 질알같은 시간과 조우해야한다는 생각은 못했군요. 정말이지 오랜만에 다른이의 생각에 무릎을 치는것도 부족해, 일말의 한숨과 탄식이... 

이것이야말로 가지로 가야죠. 
<가지로> 2008-09-05
15:31:57
 

 

상병 이우중 
  아무리 X같은 일들이 많았다고 해도 전 돌려보내준다면 돌아갈 겁니다. 
그런데 300일 전으로 가라! 이런 건 좀 곤란하지 않으려나... 생각하면 모순 같기도 한데 말이죠(웃음) 
그래도 다시 한 번 곰곰 생각해보면 언제든 돌려준다면 돌아갈 것 같네요. 일관성 없기는... 

어쨌든 <가지로>를 외치기 위해 단 꼬리였습니다. 2008-09-05
15:49:29
  

 

병장 이동석 
  지연님 역시 
마지막에 줄하나를 비워주시는 센스, 

* 책마을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8-09-05 16:31) 
같은 메시지와 본문이 붙어버리곤 해서 불가피하게 본문에 엔터질을 가할수밖에 없었는데 
이번엔 본문에 손도 안댔습니다. (꾸벅) 2008-09-05
16:34:19
 

 

병장 이동석 
  그건 그렇고 
글 올리신지 두시간도 안되서 가지행 급행열차를 타신건 거의 기록 아닌가요? 2008-09-05
16:35:10
 

 

상병 양순호 
  너무 빨리 가지로 와버린게 아닌가 싶어요. 2008-09-05
16:38:51
  

 

병장 이동석 
  음... 제가 너무 급했군요...? 가지로가 넷을 돌파하니 저도 모르게 그만, 2008-09-05
16:41:20
 

 

병장 이동석 
  컥 다시 자게로 옮기는 방법을 모르겠어요. 

이런, (엉엉) 

죄송합니다. 지연님, 주민 여러분. 2008-09-05
16:42:16
 

 

일병 오창희 
  가지로 외치고 싶은데 가지에 와 있어요... 

이럴땐 추천이나 꾸욱 2008-09-05
20:22:19
  

 

병장 이동석 
  가지로 와있어도 
가지로 외쳐주세요. 흐흐. 2008-09-05
20:23:52
 

 

상병 윤일호 
  가지로~~~! 2008-09-05
20:36:37
  

 

일병 오창희 
  진짜 글이 맛갈나게 읽히는것 같애요. 

아아... 일기나 써볼까 2008-09-07
12:08:51
  

 

상병 박찬걸 
  헛 좋은글을 하나 그냥 넘길뻔 했네요. 
음... 저도 일기를 한번 써봐야겠어요. 
오늘부터 당장 시작해야겠네요. 
하루를 정리해보고 생각했던것들을 한번씩 써보는것도 나쁘지는 않을거 같아요. 2008-09-08
15:2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