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글-내글내생각] 푸르른 그라운드  
병장 조현식   2008-07-07 10:23:32, 조회: 791, 추천: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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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어머니는 운동을 참 좋아하셨다.

어릴 적부터 나는 아버지의 조기교육에 힘입어 야구라는 스포츠의 룰을 하나씩 익혀 나갔는데, 어떤 식의 조기교육인고 하니 아버지는 어찌나 야구를 좋아하셨는지 어머니와 매일 야구를 하셨다. 원래 싫어하는 것도 매일 보다보면 정 붙여 좋아하게 마련인지라, 나도 처음에는 시큰둥하거나 의도적으로 피해 다녔으나 어느새 나도 야구의 룰을 정확히 그것이 무엇이라고 하는 지 정식 명칭에 대해서는 몰라도 어떤 상황일 때 판정은 어떻게 난다 하는 정도는 나도 모르게 알게 되었다. 길쭉이 늘려 말했으나 실상 야매당구의 기술을 터득하여 봤자, 우라나 하꾸, 다들 아는 맛쎄이 같은 단어를 정식 대회에서는 쓸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나도 우리 집 특유의 용어로 야구 좀 하는 아이들에게 지껄여봤지만 그 녀석들은 나의 야구를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이런 제각돌리기같은 녀석들. 그들이 못 알아듣는 것은 그들의 야구는 너무나 프로-스포오츠 틱한 미쿡식 야구였기 때문이고, 나는 아까도 말했지만 짜장면 시켜놓고 후르릅 대며 온갖 겐세이가 난무하는 토종 야구임에 이유가 있었다.

가난했던 우리집안은 야구공을 살 돈이 없었기에, 아버지는 야구공 대신 집안의 여러 둥근 꼴 가진 도구들을 어머니에게 던지며 제구력 연습을 했었고 어머니는 그 어떤 프로 포수보다 능수능란하게 얼굴로 아버지의 제구 안 된 공을 성공적으로 블로킹하셨다. 이 대담한 연습은 어떠한 보호장비도 없이 진행되었는데, 그라운드의 포수들이 몇 십 키로나 되는 포수장비를 끙끙 대며 둘러치고 그것도 모자라 자신이 원하는 곳에만 공을 던지라는 비겁한 사인까지 내는 만행을 저질렀던 것에 비해 어머니는 항상 투수인 아버지의 의견을 존중해서 엉터리같이 빗나가는 공마저 날아가서 잡아내는 신기에 가까운 몸놀림을 선보여주셨다. 이게 얼마짜린데! 
그게 과연 얼마짜리였는지 나는 매우 궁금했으나, 그 얼마짜리 양은냄비며 국자 받아내다가 어머니의 얼굴은 시퍼런 멍 자국이 가득해지는 통에 구급통 가져오느라 나는 그 궁금증을 채 풀어보지도 못했다. 

질풍노도의 시기도 있었다. 과연 우리집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토종 야구가 과연 야구의 범주에 속하는 것인지 의구심을 품었던 철없던 시절이었다. 나는 아버지에게 과연 야구가 가내수공업으로도 가능한 경기인지에 대해 물었고 아버지는 말없이 금요일 6시에 TV를 틀어 나에게 ‘저것이 토종 야구’ 라며 나에게 프로야구를 시청할 수 있는 놀라운 기회를 제공해주셨다. 아버지는 전통적으로 타이거즈의 팬이셨고, 나는 서울의 멋쟁이라는 트윈스의 팬이었기 때문에 언제나 티격태격 싸우는 통에 그 당시 거의 시즌 내내 야구를 보지 못했었던 적이 있었다. 이렇게 우리 집안의 선호하는 팀이 달랐던 것은 아버지가 지방 사람이면서도 어머니와 함께 야반도주하여 서울로 와서 나를 덜컥 낳아버렸기 때문이지 내가 아버지의 의지를 배신했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 놀랍게도 아버지는 내가 트윈스 팬이라는 것에 대해 매우 불만을 표시하셨지만 어머니에게 늘상 그랬던 것처럼 나에게 투구 연습을 하시지는 않으셨다. 사내자식만 아니었어도... 하고 씩씩대며 담배에 불을 붙이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나는 남자로 태어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계집아이로 태어나 다리가 세 개가 아니었으면 나도 그 무시무시한 지옥훈련에 동참할 뻔 했지 않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날아오는 비누며 다 탄 연탄을 쳐 내는 것은 오직 어머니만이 가능한 일인 듯 느껴졌다. 

아무튼 그 날, 나는 우리집에서 일어나는 토종 야구가 비단 우리 집만의 일이 아님을 깨달았다. 세상에! TV속에서는 우리 아버지와는 쨉도 안되는 그 미국의 메이저리거들이 가득했다. 아버지는 그래도 불은 안 붙이는데 그들은 푸른 그라운드에서 불이 붙은 쓰레기통을 던지고 의자로 서로의 대가리를 신나게 내리쳤다. 와우, 거기에 야구가 있었다. 나는 그 이후 아버지와 어머니의 야구를 한 번도 의심하지 않게 되었다. 역시 아마추어 야구는 어설픈 면이 있다고, 그렇게 느꼈을 뿐이다. 다음날 일간 스포츠에는 사상 최악의 관중 난동이라고 대문짝만하게 기사가 올라왔는데 어째서 야구를 난동이라고 표현했는지 기자에게 묻고 싶을 정도였다.
이 날의 강렬한 경험에 자극이라도 받으셨는지 봉황대기 4강 투수라며 진로 소주만 병나발을 내리 불어대면 주구장창 자랑하시던 아버지는 그 날 4강 투수의 면모를 어머니에게 확실히 보여주었다. 투수라기 보다는 타자에 가까운 행위를 하셨지만. 내 기억에 그것은 메이저리그급의 야구였다. 아버지는 걸레니 쓰레받기니 온갖 청소도구로 어머니를 대칭하며 부지깽이로 어머닐 연신 두들겨 댔다. 아 아버지, 야구도 좋지만 어머니는 그 정도 고급 야구는 따라가지 못한다구요! 나는 그날 처음으로 두 분의 야구에 끼어들었고, 아버지는 얼굴에 핏대를 세우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 자폐 천치자석! 너까짓 녀석 병신으로 낳아서 니 에미라는 것만 고생하며 나한테 두들겨 맞고 사는것이여! 그것이 운명이라는 것이제! 

언제나 콜드게임으로 종료되곤 했던 우리 집의 야구가 뒤집힌 순간은 바로 그 때 그 날 그 시각 그 분 그 초였다.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가 와도 그렇게 극적으로 끝내기 홈런을 치지는 못했을 것이다. 흥분한 아버지가 정신없이 나에게 주먹을 휘두르며 섀도 피칭 연습을 시작하던 그 때, 어머니는 기대하지 않았던 팀의 9번 타자가 9회말 2아웃 만루에서 역전 만루홈런을 터뜨리듯 아름다운 어퍼 스윙으로 아버지의 후두부를 부지깽이로 정확히 타격했다. 아버지의 머리는 순간 공이 되었다. 실밥이 터질정도로 강하게 때린 어머니의 스윙을 견디지 못한 아버지는 털썩. 주저앉아 풀린 눈으로 나를 하염없이 쳐다보았다. 많이 봐 왔던 광경이었다.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역전 홈런을 맞은 투수는 언제나 그런 눈으로 공이 넘어간 쪽의 스탠드를 하염없이 바라보곤 했었다. 어머니의 손이 감격에 못 견뎌 부들 떨리는 모습을 나는 정확히 목격하였다. 머릿속 삼 만의 관중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막대 풍선이 탕탕거리며 번개를 내뿜고, 내 안을 새하얗게 만들었다. 어머니에게 헹가레라도 쳐 드려야 되는 것이 아닐까?

어린 시절, 내 기억 속의 야구는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전설적인 미국의 야구 선수 요기 베라가 순간 내 머리 속에서 중얼거렸다. 몰랐는데, 그도 삼만 관중 안에 섞여 막대풍선을 쳐 대던 사람 중 한 사람이었다. 놀랍게도.

야구는 끝날 때 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제.

그는 정확한 한국말과 사투리로 그렇게 나에게 말했다. 그것이 아버지의 목소리인지, 요기의 목소리인지 나는 헷갈리기 시작했다. 스탠드에 불이 꺼지고, 관중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불 꺼진 마운드에는 어머니만이 서 있었다. 눈물인지 땀인지 어머니의 짜운 물이 가슴을 타고 흘러내렸다. 누가 이긴 것인지. 아버지인지 어머니인지 요기 베라인지. 나는 그 순간 그것이 궁금했다.


* 병장 박준연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8-07-09 10:13)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8-12-08
10:35:16 

 

상병 신지훈 
  아, 놀랍습니다. 글이 참.... 흥미롭네요. 2008-07-07
11:25:51
  

 

 
  아 진짜 뭐랄까 너무 잘읽었습니다 2008-07-07
12:07:48
  

 

병장 어영조 
  야구때문인가요, 문체때문인가요. 
여튼 박민규씨가 떠오릅니다. 2008-07-07
12:25:29
  

 

상병 홍성기 
  아, 이런 글을 원했었어. 추천. 2008-07-07
12:25:59
  

 

일병 이동열 
  오오, 너무나 잘 읽었습니다. 

말로 표현 못할 무엇인가가 느껴집니다(웃음) 2008-07-07
12:30:27
  

 

상병 이승훈 
  추천! 2008-07-07
12:45:29
  

 

병장 황인준 
  -1- 
이라는 건 -2- 도 나올 수 있다는 건가요(웃음)? 
정말 잘 읽었습니다. 문체가 참 뭐라 말로 설명하긴 힘들지만, 
뭔가 있는 것 같아요. 글이 매끄럽게 잘 전개되는 것 같고. 
결론은.. 글이 좋아요! 2008-07-07
13:05:12
  

 

병장 이동석 
  이런 글은 가지로 가야하는 것이제 

추천 2008-07-07
13:08:16
 

 

일병 김상윤 
  오늘 처음 오지만 이런글은 흔치 않을꺼라고 생각합니다 

좋네요! 2008-07-07
13:10:12
  

 

병장 정영목 
  느낌 좋습니다. 가지로. 

그런데... 이거 실화입니까? (땀) 2008-07-07
13:23:00
  

 

병장 김준호 
  가지로. 

슬픔을 웃음으로 표현하고 이별하는 방식인가요? 
저에게 익숙한 표현방식은 아니지만 잔향이 진하게 남네요. 2008-07-07
13:33:05
  

 

상병 정민우 
  잘 쓴 글이예요!! 추천! 2008-07-07
13:34:52
  

 

병장 이태형 
  왠지 슬픈데요 이거. 
연재라고 굳은 마음으로 믿고 있습니다. 
가지로. 2008-07-07
15:36:05
  

 

병장 김원택 
  흐음....... 리플을 어떻게 달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 동안에..... 이미 이렇게 많은 리플들이....... 후후..... 

글을 보면서..... 제 어린 시절...... 가족의 문제도 생각을 하게 되고..... 저 자신에 대해서도 생각을 하게되고........ 

슬프지만...... 공감이 가는 글입니다........ 2008-07-07
15:53:20
  

 

병장 이현승 
  아.. 정말 이런 플롯의 글을 짜내는 것은 

힘들더라구요. 

잘읽었습니다. 2008-07-07
17:03:54
  

 

병장 이동석 
  그리고 보니 
준연님의 공지사항에 이은 두번째 다 추천글 
(그런데 아까 추천했는데 또 추천버튼이 있는데 눌러보고 싶다?) 

어쨌거나 
저도 자극받아서 좀 뭔가 써야 할텐데. 2008-07-07
17:48:43
 

 

일병 김세현 
  와우.......장난아닙니다 2008-07-08
05:28:02
  

 

병장 이동석 
  조현식님 이런글 또 써주셔야해요. 껄껄. 2008-07-09
10:34:58
 

 

병장 윤형주 
  야구이야기 정말 잘 읽었습니다 

멋있으세요~ 

2편도 기대하겠습니다~ 2008-07-25
08:49: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