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글-내글내생각] 칼 폴라니, [거대한 변환] 읽기 (1)  
일병 김예찬   2008-11-28 12:15:55, 조회: 136, 추천:7 

제가 학교 다닐 적 불만스러웠던 것 중 하나는 대안경제학 - 혹은 약간의 자조와 약간의 잘난 척이 섞인 표현인 비주류 경제학 - 을 본격적으로 접할 수 있는 루트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학교에 따라서 경제학과 전공 수업을 통해서 이를 접할 수 있는 곳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학교 수업 커리큘럼에서 찾아보기 힘든 것이 바로 대안경제학입니다. 운좋게 관련 수업을 듣게 되는 경우에도 대부분 빡빡한 학기 일정 속에서 맑스의 일부 저작으로 수업을 '하다가 마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또 제가 지향하던 경제학 공부가 전공자의 학적 관심이 아닌 인문학도의 관점에서 앞으로의 역사 전개에 있어서 자본주의가 아닌 새로운 체제의 도래가 가능할 것인지를 묻는 정치경제학적 해설에 있었기 때문에 이런저런 정치경제학회나 학부 수준의 세미나들도 기웃거려보았지만 대부분 대안경제학 = 비주류 경제학 = 맑스주의경제학 이라는 공식이 일반적이라, 맑스가 아닌 또 다른 길에 대하여 모색해 볼 수 있을 만큼 '학습'받기는 쉽지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그렇다고 제가 맑스라도 제대로 파봤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게 대안경제학에 대한 관심을 안타까움 속에 희석시켜가고 있을 무렵 과 선배의 세미나 제안으로 칼 폴라니의 저작을 읽어보게 된 것은 저에게 상당히 큰 지적 자극이 되었습니다. 자본주의 체제의 등장이 어떻게 사회를 변화시켰고 또 그 사회의 변화에 의하여 경제의 제문제가 등장하며 이러한 정치경제적 역동 속에서 역사가 굴러갔는지 새로운 관점으로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죠. 특히 이른바 '신자유주의'가 새로운 역사의 물결로 자리잡고 시장에 의한 사회의 파편화가 대두되는 이 시기에 폴라니가 [거대한 변환]을 통해서 이야기하는 '국가의 이중적 역할을 통한 시장과 사회의 균형'은 아직도 유효한 문제 제기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거대한 변환]은 대우학술총서 시리즈로 번역되어 나와있고(결정적인 오역은 많지 않지만 꽤나 읽기 까다로운 번역입니다.), 현재 국내 유일의 폴라니 전공자인 홍기빈씨에 의해 새로운 번역서가 준비 중에 있습니다. 아마 [거대한 변형]이라는 제목으로 1년 안에 출판 될 것으로 보입니다. 



1. 근대 체제의 제도적 기원



1815년, 프랑스 대혁명의 역사적 격동 후 유럽 체제의 재편을 위해 서구 열강이 모였던 '빈 회의'부터 1914년 제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 시기까지의 100년을 폴라니는 '백년 평화'라고 부릅니다. 이 시기 서구 열강들은 제국주의적 팽창을 계속하면서도 서로 결정적인 충돌은 벌이지 않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17,18세기의 두 세기 동안 서구 열강들이 크고 작은 전쟁을 수없이 벌였던 것과 달리 '백년 평화'의 기간 동안 전쟁이 일어난 기간은 통틀어 18개월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물론 유럽 열강들 내부에서는 자유주의, 민족주의, 사회주의의 영향으로 1848년의 혁명적 열기가 불타오르는 등의 격동이 있긴 했지만, 적어도 열강 끼리의 대규모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 특이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폴라니는 19세기의 '백년 평화'가 어떻게 유지되었고, 또 왜 20세기에 들어서 이러한 평화가 깨지기 시작했는지를 분석하면서 '근대의 형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폴라니의 분석에 따르면 19세기 문명은 네 가지의 제도적 메커니즘에 의해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첫번째는 '세력균형체제'입니다. 이는 나폴레옹 제국이 무너지면서 각 국가들이 새롭게 영토를 재편하면서 등장하게 되는데, 당시의 열강들인 영국, 프랑스,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러시아 등이 이전과 달리 확실히 국경을 그어놓고 본격적인 영토국가로 탈바꿈하게 되면서 열강 들 사이의 세력균형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어느 일정한 강대국이 사라진 '세력균형체제'를 통해 무력 충돌이 억제되는 양상이 보여지게 됩니다. 외교史에서는 이를 '유럽협조'Concert of Europe'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두번째는 '국제금본위체제'입니다. 금본위제는 쉽게 말해서 통화의 가치를 일정한 무게의 금과 연계시키는 화폐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금본위제 하에서 화폐의 가치는 금본위제가 폐지된 지금의 화폐가치와 좀 차이가 있는데, 현재의 화폐 가치는 세계적으로 보았을 때 기축통화인 달러를 기준으로 다른 나라의 화폐들이 상대적인 가치를 지니며 정렬해있다고 한다면(물론 요새는 좀 다른 양상을 보이긴 합니다만), 금본위제 하에서는 각국의 화폐가 그 나름의 '금값'을 가진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은행에서 발행된 1만원권이 있다면 그 지폐는 그자체로 1만원어치의 금으로 교환가능한 것입니다. 화폐의 가치가 경제 상황에 따라 수없이 오르고 내리는 지금의 상황보다 금본위제 하에선 화폐의 가치가 좀 더 안정적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세번째는 '자기조정적 시장'입니다. 아담 스미스가 이야기했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작동하는 순수한 시장경제가 바로 '자기조정적 시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 보충하여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네번째는 '자유주의 국가체제'입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프랑스 대혁명 이후 자유주의 사상이 유럽 각국에 전파되게 됩니다. 이미 영국 같은 경우는 시민 혁명을 통하여 자유주의 국가로 거듭난 바가 있구요. 자유주의 체제의 역사적 특징은 쉽게 말해서 국가의 정책 결정에 있어서 각 계층의 이해관계가 '형식적으로나마' 합리적으로 반영된다는 것에 있죠. 물론 여기서 말하는 이해관계가 반영되는 계층들은 투표권을 획득한 계층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유주의 국가에서는 시장경제에 반동적인 정치적 그룹들이 큰 힘을 행사하기가 힘들었기때문에 시장경제의 원활한 작동이 보장되었습니다.

이러한 네 가지 제도중 금본위제와 자기조정적 시장은 경제적인 요소였고, 세력균형체제와 자유주의 국가는 정치적인 요소였습니다. 그리고 자기조정적 시장과 자유주의 국가는 각국의 국내적 제도에 따른 것이였고, 세력균형체제와 금본위제도는 국제적 차원의 제도들이었습니다. 폴라니는 이러한 네 가지 제도적 메커니즘 덕분에 19세기 문명이 형성 될 수 있었다고 봅니다.

이 네 가지 제도들의 상호관계를 따져보자면, 자기조정적 시장의 탄생을 통해 다른 세 가지 제도들이 존재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자기조정적 시장을 기반으로 탄생한 신흥 상공업 세력에 의하여 자유주의 국가가 탄생할 수 있었고, 자기조정적 시장의 국제적 확장은 단일한 화폐 가치의 필요성을 낳아 국제 금본위제가 수립되었으며, 국제 금본위제를 통한 세계 시장의 형성은 각 국가간의 충돌을 억제하여 세력균형체제가 작동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백년 평화'의 제도적 기반이 이러한 네 가지 제도였다면, '백년 평화'를 실행시킨 중요한 주체는 '큰손 금융haute finance'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들은 자기조정적 시장에 의해 탄생한 경제 조직이라 할 수 있는데, 예를 들자면 로스차일드나 JP모건과 같은 유명한 금융 가문들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큰손 금융'들은 각 국가의 은행 자본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연계된 금융망을 장악함으로써 큰 이득을 올리고 있는데, 만약 열강들 사이에 전쟁이 벌어진다면 국경이 봉쇄되고 국가간 거래가 중단되어 이러한 '큰손 금융'들이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기 때문에 '큰손 금융'들은 경제적/정치적 영향력을 이용하여 국가간 충돌을 억제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책마을에서도 가끔 프리메이슨에 의해 역사가 움직인다던가 뭐 이런 글들이 올라온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아주 근거 없는 헛소리는 아닌게 이처럼 '큰손 금융'들의 활약이 적어도 19세기의 평화를 유지시켰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폴라니에 따르면, 이라는 전제가 붙습니다.)

20세기 초에 인류가 1차 세계대전을 겪게 된 것은 100년 평화를 가져왔던 19세기의 제도들이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19세기의 네가지 제도는 독일의 파시즘, 러시아의 사회주의, 미국의 뉴딜 정책등으로 변모하게 되구요.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제도들이 만들어놓은 틀 속에서 20세기의 역사가 진행되게 됩니다. 폴라니가 말하는 [거대한 변환]은 바로 20세기 초에 일어난 제도적 변모를 통해 인류의 역사가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는 변화를 이야기하는 것이죠. 100년전의 일이지만, 20세기의 연장선 상에서 살고 있는 우리의 '지금, 여기'에도 유효한 메세지라고 생각됩니다. 



2. 자기조정적 시장의 형성과 전개



앞서 말했듯 19세기를 유지시킨 네 가지 제도중 가장 핵심이 되었던 것이 바로 '자기조정적 시장'입니다. 폴라니는 '시장'과 '자기조정적 시장'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시장'은 교역이나 매매를 목적으로 만나는 장소이며, 인류의 역사상 항상 존재하고 있는 시스템입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오일장 등등을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장은 그 자체로 독자적 경제제도를 이루지 못하고 사회 시스템 속의 일부로 묻혀있었으며, 인간의 경제생활에 있어서 교환의 장에 불과했습니다. 근대 이전의 사회에서는 재화의 생산과 분배가 시장이 아닌 관습, 종교, 폭력과 같은 비시장 원리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간단한 예를 몇가지 들어봅시다. 한국의 전통적인 농촌에서 이루어지는 품앗이는 화폐로 환산되는 노동의 교환이 아닌, 공동체적 '관습'입니다. 흉년이 들어 마을에 굶어죽는 사람이 생기게 되면 지역의 유지인 양반이 '유교적 윤리'에 따라 곳간을 풀어 마을 사람들을 구제해줍니다. 두만강 건너 여진족들은 매년 겨울 강물이 얼면 말타고 조선 변방 마을로 쳐들어와 식량을 '약탈'해갑니다. 이처럼 근대 이전의 사회에서는 비시장원리에 따른 재화의 생산과 분배가 이루어지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조정적 시장'은 다릅니다. 생산-교환-분배의 모든 활동은 외부의 가치가 개입되지 않고 오직 시장가격에 따라 조절되고 통제됩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경제학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합리적 인간들이 수요와 공급의 일치점에서 재화의 가격을 형성하는. 이전의 '시장'이 사회 속에서 제한된 역할을 가진 교환의 장에 불과했다면, 19세기의 '자기조정적 시장'은 사회에서 독립되서 스스로 경제활동을 이어가는 독자적 체계로 존재합니다.

아담 스미스와 그의 뒤를 잇는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자기조정적 시장'의 원리가 인류 역사의 보편적인 경향이라고 인식하고, 합리적인 '경제적 인간' 상을 내세웁니다. 이는 경제적으로 자본주의가 역사의 최종적 단계라는 프란시스 후쿠야마의 선언까지 이어지게 되지요. 그러나 폴라니는 이러한 '경제적 인간'의 상이 단지 19세기에 들어서 보편화된 것이라는 것을 인류학적 탐구를 통해 입증해냅니다. 역사적으로 (개인의 이득을 위한 경제 원리인) '교역'의 원리 뿐 아니라 '호혜', '재분배', '집안살림' 등의 경제적 원리들이 존재해왔다는 것입니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새로운 대안경제체제를 고민할 때 역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힌트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호혜'는 쉽게 말해서 이득을 위한 물건 교환이 아닌, 선물의 교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폴라니가 든 예로는 남서태평양의 트로브리안드 섬에서는 부족끼리 '쿨라 교역'을 한다는 것이 있습니다. 각 부족끼리 이웃섬을 방문하여 붉은 조개목걸이와 흰 조개팔찌를 주고 받고, 선물의 주고 받음을 통해 서로간의 유대를 강화시킵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각 가문끼리 각자가 필요한 선물을 주고 받음으로 가문의 우애를 깊게했던 예도 찾아볼수 있습니다. 조금 비루한 예시일지도 모르지만, 각 생활관에서 서로 남는 보급품을 필요한 만큼 바꿔 쓰는 것도 '호혜'의 예로 볼 수 있겠네요. 여자친구에게 선물을 준다고 생각해봅시다. 솔직히 말해서 그녀에게 가장 필요한 물건을 선물하고 싶다면 그냥 돈을 주면 됩니다. 이만큼의 화폐를 줄테니 그 화폐에 맞게 네가 사고 싶은 것을 사. 하지만 대부분 모든 사람이 선물로 돈을 준다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선물의 교환은 단순히 물건의 획득이 목적이 아닌, 주고 받는다는 행위를 통해 서로의 우애를 증진시킨다는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화폐의 주고 받음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은 우리에게 '호혜'라는 경제 원리에 대한 무의식적인 기억이 남아있다는 뜻으로 생각됩니다.

'재분배'의 원리도 간단합니다. 부족의 족장이나 고대국가의 왕에 의해 집단의 재화와 용역이 징발되고, 이것이 다시 구성원들에게 분배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재분배를 담당하는 족장, 왕의 권력에 의해 지리적으로 분산되어 있는 재화와 용역을 좀 더 효율적으로 분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뭐, 하늘지킴이의 예로는 각 개인이 따로 보급품을 신청하는 것이 아니라, 보급품 담당자가 소속 집단이 필요한 만큼 보급품을 임의로 신청하고 그것을 구성원들에게 배분해주는 것을 들 수 있겠네요.

'집안살림House Holding'은 쉽게 말해 이윤을 남기지 않는 자급자족적 경제행위입니다. 대부분의 농촌 공동체가 이러한 경제 생활을 해왔습니다. 

근대 이전의 세계에서는 대부분 이러한 경제 원리들이 다양하게 조합되고, 변형되면서 나름의 조직화 과정을 이루어나갔습니다. 이러한 경제원리들의 특징은 경제가 사회의 영역에 묻혀 그 일부분으로 작용했고, 경제 행위와 경제 기능만을 담당하는 독자적 제도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부족장이 구성원들에게 사냥감이나 수확물을 재분배하는 경제행위는 단순히 경제행위가 아닌, 부족장의 통치와 관련한 정치행위로 수행되었습니다. 반면에, 정치와 경제가 분리되지 않은 근대 이전의 사회는 '자기조정적 시장'이 등장하면서 경제/사회의 분리가 나타나게 되고, 이러한 분리를 위해 사회가 새롭게 재구성되는 현상이 벌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사회의 재구성은 기존의 공동체적 사회를 파괴하고 사회 자체가 '시장화'되는 현상을 불러일으키게 되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19세기에 '자기조정적 시장'이 생겨났고, 이것이 오늘날까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제적 제도로 자리잡게 되었는지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시장'은 역사적으로 계속 존재해온 장소입니다. 중세유럽에서는 시장을 중심으로 도시들이 생겨나게 되는데, 이러한 도시들은 시장의 안전성을 확보하는 방어막이기도 했지만 반면에 시장의 확대를 가로막는 장애물이기도 했습니다. 하나의 도시와 그 도시를 둘러싼 배후의 농촌들이 시장을 형성하는 판매자이자 구매자들의 집단이었는데, 이러한 범위 내에서의 국지 교역은 활발하게 전개되었지만 각 도시와 도시 사이의 원거리 교역은 각자의 도시들에 의하여 제한적으로만 이루어졌습니다. 그 예로 '길드'를 들 수 있는데, 각자의 길드들은 그 도시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특권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그 길드가 취급하는 물건이 다른 도시에서 수입된다면 세율을 높게 매기는 등의 조치를 통하여 원거리 교역에 한계를 두려고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전세계적 시장'이 형성되기는 요원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15~16세기에 등장한 중상주의 국가에 의해 이러한 판도가 변화하게 됩니다. 중상주의 국가는 국왕에게 집중되기 시작한 권력을 바탕으로 각 도시의 특권과 텃세를 부수고 전국적인 국내시장을 형성하게 됩니다. 각 경제 단위들은 도시에서 누리던 특권을 포기하고 경쟁 체제로 뛰어들 수 밖에 없었던 것이죠. 그러나 중상주의의 특성상 국가가 국외에 대한 물건의 수출입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통제 하고 있었습니다. 통제의 완화는 어디까지나 '국내 시장'이라는 지역에 국한된 것이었기 때문에, '시장의 해방'이 오기 위해선 좀 더 역사의 흐름을 지켜봐야했습니다.

18세기 말에야 비로소 통제적 시장에서 '자기조정적 시장'으로 이행이 시작됩니다. 기계가 발달하고 공장제가 도입되었으며, 재화 뿐만 아니라 노동, 토지, 화폐라는 생산요소가 상품으로 간주되고 시장에서 매매되기 시작합니다. 폴라니는 노동, 토지, 화폐에 대해 '허구적 상품'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원래 노동, 토지, 상품과 같은 것은 사고 파는 상품이 아니었습니다. 노동이 사고 파는 것이 아니다? 그럼 노예 매매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라고 반문하는 분도 있으리라고 보는데, 노예는 노예 매매가 존재했던 시대의 기준으로 봤을 때 '인간'이 아닌 동물이나 사물에 가까운 취급을 받았습니다. 소가 밭을 갈고, 말이 마차를 끌 듯 노예가 일을 하는 것은 당시 기준에서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노동이 상품이 되었다"라는 말은 자유로운 인간이 스스로의 노동력을 화폐로 환산하여 교환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입니다. 19세기 이전의 노동은 차라리 지배자에게 강압적으로 끌려가 용역을 제공하면 모를까, 기본적으로 스스로 노동하여 자신의 재화를 생산하고 그것을 판매함으로써 화폐를 얻는, 노동이 바로 화폐로 치환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토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전국의 모든 땅이 모두 임자를 가지고 판매되기 시작한지는 인류 역사에 비해 정말 얼마 되지 않은 일입니다. 봉건제 하에서 영토의 소유는 어디까지나 '정치적인' 것이였지 '경제적인' 관점의 토지 매매는 아니었습니다. 화전민, 부랑자들, 목동, 집시들이 존재했다는 사실 자체가 '토지의 소유'라는 개념이 지금과는 확실히 달랐다는 증거가 됩니다. 화폐도 그렇습니다. (화폐가 상품이 되었다는 것을 저는 개인적으로 인류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사건으로 생각합니다. 오늘날 이야기되는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대충 안다면 저의 사견에 많이들 동의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원래 화폐는 단순히 국가에서 보증하는 교환가치를 지닌 도구였습니다. 시장의 확대를 통해 더 많은 양의 화폐가 필요하게 되었고, 그 많은 화폐를 모두 들고 다닐 수 없으니 화폐를 대체하기 위해 어음이 생기고, 어음의 탄생으로 '신용'을 화폐화할 수 있다는 개념이 생겨나고, '신용'을 토대로 대출이 생겨나고, 대출로 인하여 '시간의 화폐화'(금리를 생각해봅시다)가 이루어지고... 이러한 거대한 순환 끝에 오늘날의 금융 산업이 화려하게 등장하게 된 것이죠. '화폐의 화폐화'(어감이 좀 이상하긴 합니다만.)는 "모든 것은 화폐가 된다"라는 자본주의의 명제가 가장 도전적으로 나타난 사건입니다.

화폐 이야기가 나와서 조금 말이 길어졌는데, 화폐에 대한 이야기는 참고 서적을 하나 소개하는 것으로 끊고 지나가도록 하겠습니다. (화폐가 어떠한 과정으로 우리 삶에 물신으로 자리잡게 되었는지 정치/사회/경제/문화적인 접근을 통해 보여주는 고병권의 [화폐, 마법의 사중주]. '수유 너머'가 이뤄낸 대중 교양서의 절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진경의 들뢰즈 운운이나 고미숙의 스노브적인 헛소리들은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지만.)

아무튼, 이처럼 공장제에서 생산에 필요한 요소들인 노동, 토지, 화폐가 시장에서 상품으로 취급됨으로써, '자기조정적 시장'은 스스로의 유지와 발전, 확대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손에 넣은 셈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노동=인간, 토지=자연, 화폐=생산조직(국가)의 등식에 따라 경제적으로 독립된 영역의 '자기조정적 시장'은 인간, 자연, 생산조직(또는 국가)이라는 사회의 영역을 재편해나가게 됩니다.

이러한 '자기조정적 시장'의 성립은 인류의 진보와 번영, 자유를 약속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폴라니는 '자기조정적 시장'에 의한 사회의 재편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봅니다. 시장에 맞추어 급격히 변화되는 사회에서 전통적인 공동체는 파괴되버리고 맙니다. '토지의 상품화'의 대표적인 케이스인 인클로져 운동은 산업혁명기의 대표산업이었던 방직업의 원료인 양모를 얻기 위해 토지 소유자들이 토지에 울타리를 치고 양들을 대규모로 키우기 시작한 것입니다. 인클로져 운동에 의해 원래 살고 있던 웨일즈에서 쫓겨난 라이언 긱스라는 농민은 맨체스터 같은 대규모 공업도시로 가서 날품팔이 임노동자가 됩니다.(노동의 상품화) 인클로져 운동은 세계 곳곳에서 유사한 양상을 보이며 일어나게 됩니다. 따라서 에버튼에서 쫓겨난 루니, 저 멀리 포르투칼에서 쫓겨난 호날두 등 긱스와 같은 처지의 임노동자의 수는 점차 크게 늘어나게 되고, 자연스럽게 노동자들 끼리 임금격차가 생기며, 2군 같은 빈곤층 노동자들의 수가 늘어나게 되면서 이들은 공장의 탄가루와 쓰레기가 가득한 슬럼가에 모여 황폐한 삶을 살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을 폴라니는 '악마의 맷돌'이라는 개념으로 표현합니다. 산업혁명의 와중에 전체적인 국부는 증진되지만, 개별 노동자들의 삶은 더욱 더 어려워집니다. 이제까지 농촌 공동체에서 보호받으며 살아왔던 인간은 약육강식의 경쟁 법칙에 내팽개쳐지게 된 것입니다. (하긴, 따지고보면 오늘날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맞부딪히는 문제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 책마을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8-11-28 23:37)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8-12-08
20:41:46 

 

병장 고동기 
  조회수 1의 기쁨과 이런 글을 만나게 되는 기쁨에 두배로 감사드립니다. 
우선 추천부터 하고 찬찬히 정독하겠습니다. 2008-11-28
12:22:46
  

 

상병 김호균 
  좋은 글이네요. 추천합니다! 2008-11-28
12:31:02
  

 

일병 김예찬 
  추천과 리플 감사합니다. 뿐만 아니라 경제학, 사학, 사회학, 정치학 등등 전공자분들의 무자비한 태클도 환영합니다. 1편을 너무 재미없게 쓴 것 같아서 다음 편은 좀 더 라이트하게 수정하여 근시일내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2008-11-28
12:38:06
  

 

병장 정병훈 
  예찬// 
전공자가 아닌 제가 보기에는 대단히 전문적인 글인데(본인은 꽤나 쉽게 쓰신듯하이-) 
열심히 읽어보려고 해도, 대략 처음보는 단어와, 어려운 용어가 초큼 읽는데 방해를 합니다. 어째껀, 알아들으면 알아들은 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나름 잘 읽었습니다. 
다만 읽고나서, 이 글을 어찌하여 쓰게 되었고, 어떤 말을 하고 싶은가를 아직 찾지 못해 조금만 쉽게 글을 쓴 의도와 주제에 대해 설명이라도 좀 듣고자 남깁니다. 

한가지 더 질문드리자면, 
저는 이공계 전공자인데, 이런 문과적 성향이 강한 글을 쓰는 분은 보통 전공이 경제, 법, 사회, 정치,등이던데, 만약 컴퓨터, 기계, 순수과학, 의예, 한의예같은 이공쪽의 글을 보면 예찬님은 받아 들이는 편입니까? 그냥 넘기는 편입니까? 
'받아들인다'는 다른말로 '자신의 지식으로 남겨 둔다'라고 말하겠습니다. 일단 경제적인 지식이 얇디얇아 복어의 회정도의 두께밖에 되지 않는 제게 폴라니가 누구며, 거대한 변환이 뭔지를 한번 읽고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군요. 2008-11-28
13:56:16
  

 

일병 송기화 
  드문드문(사실 자주) 어려움을 만났지만 결국 정독해냈습니다. 
제가 알고있는 세상이 조금 더 넓어진 것 같습니다. 조금 더 깊어졌다고 해야하나요? 

어려웠던 만큼 알아가는 것도 많고 생각도 열심히 해볼 수 있는 글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조금 엉뚱하지만 금본위제라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독특하게 와닿았습니다. 
그런 시절도 있었군요.(복잡) 2008-11-28
14:15:21
  

 

일병 김예찬 
  병훈 // 

이 글의 예상 독자는 "신자유주의가 새로운 역사의 물결로 자리잡고 시장에 의한 사회의 파편화가 대두되는 이 시기에" 대안경제학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맑스는 너무 어렵거나 혹은 이제는 질려버린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 글의 가장 큰 독자는 저 스스로입니다. 

저는 수학이 싫어서 문과에 온 전형적인 '문돌이'입니다만, 다년간의 DC 생활을 통해 인터넷이라는 수단이 사회의 또다른 거울이면서도 또 다른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사람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드 SF를 즐겨 읽는 장르 소설 독자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진화생물학에 대한 교양서를 즐겨 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일생을 비과학적 상식(대표적으로 '대체의학'을 들수 있겠습니다만)에 대한 나름의 투쟁에 힘쓰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문과적 성향과 이과적 성향은 물론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겠지만, 점점 더 복잡화되어가는 사회는 양쪽 모두에 대한 시민적 상식을 요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영부영 넘어가는 엘리트들의 '말빨'에 속아넘어가 버려요. 전 황우석 사건을 보면서 그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제 글이 조금 딱딱하다고 스스로 느끼긴 하지만,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한겨레신문이나 경향신문에도 가끔 실리는 수준의 어려운 글들 보다는 쉽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웃음) 2008-11-28
14:22:21
  

 

일병 김예찬 
  기화 // 

금본위제는 참으로 독특한 제도입니다. 금본위제에 대해 더욱 재밌게 알아볼 수 있는 전봉관 교수의 [황금광시대]라는 책이 있습니다. 책 표지 소개가 "1930년 전후 한반도에 난데없이 불어 닥친 금광열풍! 농부, 학생, 변호사, 의사 할 것 없이 사람들은 모두 금광에 모숨을 걸었다. 이 땅에서 벌어진 '한국판 골드러시'의 역사!"일만큼 정말 잘 읽히고 흥미진진한 책입니다. 2008-11-28
14:24:45
  

 

일병 송기화 
  오오, 예찬님. 좋은 글에 이어서 좋은 책 추천까지! 
'황금광시대'라, 금본위제라는 제도에 관심을 가져버렸으니 한번 살펴봐야겠네요. 
새로운 세상을 만날 생각에 벌써부터 두근두근합니다. 하핫. 2008-11-28
14:32:08
  

 

병장 정병훈 
  예찬// 
헙- 그럼 이정도의 글은 예찬님에겐 상식정도로 통용되는 글입니까? 흐흐흐 
고등학교에서 부터 경제를 공부한적 없는 저로선 상당한 수준의 글인데 말이죠. 

제 문제점은 '신자유주의'가 무엇인지, '사회의 파편화'가 정확히 어떤 뜻을 갖고 있는지 설명하지 못하는 것에 있네요. 그냥 어려워서 물어봤습니다. 

전문적인 글이라 사실 잘 썼다고 말도 못하겠습니다. 흐허허- 2008-11-28
14:39:56
  

 

병장 정영목 
  관심분야 얘기라서 번득이는 눈(!)으로 하나하나 훑어봤습니다만, 딱히 공격할 곳이 없네요. 그렇지, 그렇지, 그렇지~ 마냥 동의만 했습니다. 

이럴 땐 신자유주의파 분께서 반론을 제시하시면 재밌게 흘러갈텐데요. 글 자체의 논리적 비약은 없는 것 같습니다. 가지로+추천 날립니다~ 2008-11-28
15:24:51
  

 

일병 김예찬 
  기화 // 전 AS가 확실합니다. (웃음) 

병훈 // 사실 제가 생각하는 '상식'의 기준이 다른 사람들에게 통용되지 않을 경우가 많지만, 저는 이 글이 일간지에 실리는 북섹션에 견주어봤을 때 어려운 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전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는 개념이 상식적인 단어가 아닌지 주위 사람에게 물었다가 엘리트주의자가 아니냐는 비난을 받은 경험이 있긴 합니다. 

영목 // 동시대를 이야기한 맑스의 분석과 비교 대조해서 찬찬히 써볼 수 있으면 좋았겠지만, 그러기엔 참고 자료를 가져오기가 겁나더군요. (땀) 2008-11-28
16:20:25
  

 

병장 홍석기 
  예찬// 잘 읽었습니다. 다음 편이 기대되네요. 

음, 19세기 문명을 유지한 네 가지 메커니즘이라. 그런데 여기서 임페리얼리즘(제국주의)가 빠진 것이 조금 의아하군요. '세력균형체제'의 산물이라 보고 있는 걸까요. 사실 '백년 평화' 기간 동안 전쟁이 일어난 것은 18개월에 불과하지만 (아마도 보불전쟁과 크림전쟁을 이야기하는 것 같군요-아니,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간의 슐레지엔 지역 분쟁도 있었던 듯 하고, 사실 몇 가지를 더 추가하자면 18개월이 넘어갑니다. 하지만 저도 기억에만 근거한 것이라 여기에 대해서 자세한 이야기는 못하겠군요) , 분쟁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무대를 유럽에서 제 3 세계로 옮겨간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영국은 무굴 제국을 침공하고, 세포이의 항쟁이 발생하고, 곧이어 중국과 아편 전쟁을 일으켰고, 프랑스가 인도차이나 반도를 손에 넣은 것은 이 시기이죠. 제 3세계에서의 이권 다툼에 바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유럽 내에서 평화가 유지될 수 있었고, 또 값싼 원자재와 최적의 무역 루트 (수에즈 운하 라든가) 를 얻으면서 '자기 조정적 시장'의 발전에 일조할 수 있었죠. 음, 당연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빠진 것 같아서, 혹은 의도적으로 제외되었다면 이유는 무엇인지, 가 궁금해서 한번 언급해 봅니다. 

그리고 '백년 평화'에 대해서 몇 가지 더 보태자면, 이 때도 끊임없는 분쟁-과 영토 전쟁- 에 휩쓸린 나라들이 있었는데, 투르크와 러시아가 그렇습니다. 비잔틴 제국을 정벌했던 기력이 옛날 얘기가 되어버린 투르크는 당시 유행이던 민족주의 열풍때문에 호되게 당했죠. 이집트의 독립운동(이것도 기억에 의존한 거지만) 도 그렇고, 헝가리는 독립에 성공하여 오스트리아와 'K-K' 제국이라는 공동 제국을 설립하게 되죠. ' 갓 블레스드 아리안들이여 알렉산더의 영광을 되찾자!' 며 (키플링이었나 누군가는 선동시를 지었죠) 유럽 전체의 지원을 받으며 이루어졌던 그리스 독립전쟁은 어떻고요. 19세기에 이어진 투르크의 쇠락은, 결국 1차대전 발발의 불씨 중 하나가 되기도 합니다. 투르크가 추락을 했다면, 러시아는 상승세를 나아가 영토 확장을 지속합니다. 표트르 1세 때부터 크리스티나 여제까지 지속된 황금기 동안 시베리아 확장과 핀란드, 스웨덴 제국의 영토 병합에 이어 급기야 투르크를 노리고 크림 전쟁을 일으키게 되죠. 물론 이 둘은 항상 '유럽사'의 예외로 취급되긴 합니다만. 추가적으로 논의되야 할 것이라고 봅니다. 2008-11-28
16:34:48
  

 

상병 이석현 
  선리플 후감상하겠습니다. 
집중해서 읽어야 할 것 같은데 지금 머릿속이 복잡해서.(너무 바빠요 울컥) 2008-11-28
16:48:20
  

 

일병 김예찬 
  석기 // 

네가지 '제도적' 메커니즘이기 때문에 제국주의가 빠진 것으로 보입니다. 제국주의, 혹은 팽창주의적 정책은 제도적인 무엇이라고 보기엔 좀 그렇죠. 물론 '자기조정적 시장'의 배후지엔 제국주의적 침략에 희생당한 식민지들을 빼놓을 수 없죠. 이 식민지들은 또 다시 '사회의 시장화'의 대상이 되기도 했구요. 

'18개월'은 국지적 분쟁을 제외하고 여러 개의 서구 열강들이 참여한 국제적 충돌만 따지는 기간입니다. 100년 전쟁이나 30년 전쟁, 그리고 나폴레옹 전쟁이라는 장기적인 국제적 규모의 전쟁에 비하면(그리고 물론 1,2차 세계대전도 포함해서) 19세기는 상대적으로 대규모 전쟁이 확연하게 눈에 뜨이지는 않는 기간입니다. 

그리고 폴라니의 '19세기 문명' 분석은 확실히 서구중심적이라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의 지적배경이 20세기 초반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해가 가긴 하지만. 이런 측면에서 러시아와 투르크는 확실히 폴라니의 분석에서 제외되는 느낌이 있습니다. 

민족주의적 움직임에 대해서는 사실 [거대한 변환]에서 1848년 경의 자유주의/사회주의/민족주의적 격동과 관련지어 다뤄지긴 합니다. 다만 제가 이 책에서 얻고자 하는 무언가와 조금 거리가 있었고, 특히 이 책의 분석이 중요하게 다루지 않기에 조금은 의도적으로 생략했습니다. 

부족한 점을 보완해주신 리플 감사합니다. 혹시 역사 전공이신가요? 2008-11-28
16:55:19
  

 

병장 이동석 
  사실 아주 보편적인 글이 아니라면, 글을 읽으면서 모든 용어나 개념에 대해 완벽히 숙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읽는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읽으면서 배우는 부분도 있고, 공부할 방향을 찾을수도 있는거지요. 이 글을 읽으면서 턱턱-막히는걸 느낀건 지적인 수준의 차-라기 보다는 익숙함-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평소에 어떤 종류의 언어에 익숙해왔나-의 차이겠지요. 

저는 문과-이과 할것도 없고, 전공도 없는 고졸-자 이지만, 재밌게 읽었습니다. 2008-11-28
16:57:34
 

 

병장 홍석기 
  음, 그리고, 금본위제에 대해서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네요. 금본위제의 경우 디플레이션을 야기할 수 있다는 맹점이 있는데, 유럽 에서는 이 문제가 발생되지 않았는지, 또 발생되었으면 어떻게 해결하였는지 궁금합니다. 식민주의, 때문이라고 살짝 추측을 해 봅니다만, 확신이 서지 않고, 분명 또 다른 요소들이 존재하겠죠. 

잠깐 발뱀을 붙이자면, 미국의 경우에는 금본위제의 이러한 성격 (물론 좀더 복합적인 요소가 있지만은) 때문에 커다란 사회적 이슈가 된 적이 있었어요. 산업과 금융업이 밀집된 동부에서는 금본위제를 기본으로 한 유럽과의 무역을 위해 금본위제를 옹호 했고, 반면에 남부와 서부 등 농업이 이루어지는 주이거나 막 개척된 주들에서는 디플레이션으로 인해 땅값을 지불하지 못하는 경우가 속출하면서 불만이 쌓여 가다가, '은본위제(= 'Free silver)'를 주창하는 Populist Party의 등장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 금과 은의 대립은 1896년 금본위제를 '인간을 짓누르는 황금의 십자가'에 비유하며 은본위제 지지를 호소하던 달변가,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이 Populist Party의 대선후보로 공화당의 맥킨지 후보와 맞붙게 되면서 급기야 그 당시 대선의 제 1의 이슈가 되죠. 

결국 맥킨지가 승리하고, 또 1차 대전이 발발하고 미국 경제가 유례없는 호황을 맞이하면서, 뭐 은본위제 논의는 사라지게 되었지만, 이 금본위제로 인해 농촌 경제가 계속된 디플레이션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을 대공황의 요소로 종종 언급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급기야 루스벨트는 '뉴딜'을 추진하며 금값을 격하시키기에 이르게 되죠. 2008-11-28
17:00:32
  

 

일병 김예찬 
  석기 // 

금본위제 하의 유럽에서도 생산과 거래의 확대에도 불구하고 화폐량이 크게 증가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히 디플레이션 현상이 왔습니다. 디플레이션으로 많은 기업이 위기에 빠지자, 이들은 전통적인 시장 지지자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에 화폐 발행을 요청하게 됩니다. 중앙은행이 바로 디플레이션을 해결하기 위해서 생겨난 것이죠. 제 글 2편에서 잠깐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디플레이션 해결을 위해 영국은 이집트와 인도에서 금을 쥐어짜죠. 식민지 백성들이 자신들의 귀금속을 내팔아 세금을 냈던 것을 '고통의 금'이라 합니다. 제3세계 국가들의 금광은 그시절 다 아작나버리고.. 특히 조선도 마찬가지였죠. 그때 서구 열강들에게 금광이 그렇게 털리지만 않았으면 북한의 경제 사정이 지금 저꼴이 아닐지도 모르겠네요. 제가 소개한 [황금광 시대]라는 책은 일제가 금 보유고를 늘리기 위해 식민지 조선에서 벌렸던 금광 사업과, 그에 부화뇌동하여 금광으로 달려간 조선 민중들의 이야기가 재미있게 펼쳐집니다. 

은본위를 도입하여 금본위를 보완하자는 주장이 실제로 통용된 국가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어디인지는 정확히 기억이 안나네요. 아무튼 석기님의 이야기처럼 당시에도 설득력 있게 전개 되었고, 요즘 기축 통화가 달러 단일에서 유로와의 양립으로 전환되어가는 '듯'한 모습도 이와 연결지어 생각하고 있습니다. 2008-11-28
17:18:15
  

 

병장 홍석기 
  예찬// 그렇군요. 제국주의 논의는 빠질 수도 있겠습니다. 저는 그것 자체로도 충분히 '제도'로 볼 수 있다 생각합니다만, 저자가 정의하는 '제도,' 혹은 경제학적인 측면에서 제시하는 '제도'의 정의에는 논외로 할 수 있겠군요. 그리고 이것은 저의 무식함에서 연유했을 가능성이 큽니다만, 응, 이런 독자를 위해서, 괜찮으시다면 '제도'의 정의를 살짝 언급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음, 서양사/철학사/경제사 등등을 공부하며 항상 느끼지만, 러시아/스페인/ 투르크/동유럽 국가들이 항상 '번외'적인 성격으로 언급되는것이 아쉽네요. 사실 그 당시 '유럽 전체'의 정의를 내리기가 어렵기는 하지만, 통합되는 그 날을, 보았으면 하네요. 

위에 붙인 금본위제에 대한 내용은 2편에서 언급하셨더군요. 그럼 2편, 즐겁게 보도록 하겠습니다 (웃음). 

답변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가지롱 이지롱 메롱. 2008-11-28
17:25:31
  

 

병장 홍석기 
  아, 그리고 역사 전공은 아니에요. 저도 동석님과 같이 문과-이과도 없고, 전공도 없는 고졸-자지요. 흐흐. 단지 어릴때부터 역사를 좋아해서(잘난 척하기 좋아하는 성격과도 맞더군요), 뭐 이것저것 잡다한 책도 읽고 다른 시간엔 졸더라도 역사시간만은 열심히 듣고 했을 뿐입니다. 좋은 선생님 덕택도 있고요. 그러므로 대부분 야매 지식이겠지만. 2008-11-28
17:30:19
  

 

병장 이동석 
  석기// 가지롱-이라뇨. 전 가지로 보낼때 [찾기]에 <가지로>를 검색한단 말입니다. 하마터면 가지로 못 보낼뻔... 흐흐 

예찬// 칼럼은 책가지에 올리셔야죠. 가지로- 
애프터 서비스가 확실하시군요. 허허. 2008-11-28
17:40:41
 

 

병장 정병훈 
  저는 문과-이과 할것도 없고, 전공도 없는 고졸-자 이지만 이 글을 재밌게 읽은 동석님이 좀 부럽네요. 

뭐 사실 마음다잡고 읽어보니 크게 재미없진 않았어요. 꽤나 정중하게 설명을 해주는 바람에 말이죠.가지로 가겠네요. 2008-11-28
17:58:42
  

 

상병 이우중 
  가지루ㅡ 
히히히 2008-11-28
19:22:25
  

 

상병 김무준 
  의문나는 부분이 있었는데 석기씨와 예찬님의 대화로 어느정도 해결되었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2008-11-28
21:34:20
  

 

책마을 
  이런 깜찍한 우중님- 키키키 2008-11-28
23:4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