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글-내글내생각] 장르소설의 한계와 극복
상병 김무준 2008-11-27 07:47:34, 조회: 254, 추천:1
막상 이것을 화두로 던져놓고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느냐. 앞이 캄캄하다. 하나의 문학현상이라고 볼 수 있었던 장르소설의 탄생은 자연발생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이영도야 마산 시내(확실치 않음)를 트레이닝복으로 미친 듯 뛰어다니며 글을 썼던 문학도라고는 하나 대부분의 작가들은 취미로 글을 쓰기 시작한 아마추어였다. 제법 시간이 지난 현재도 출판시장에 텍스트를 공급하는 글쟁이들은 거의 대다수가 아마추어다. 전문적으로 문학을 공부하고 글을 쓰는 이는 드물었다. 공학도, 법학도, 철학도, 의학도도 글을 썼다. 글쟁이가 어렴풋이 기억하는데, <이세계 드래곤>의 작가는 확실히 공학도였다.
텍스트의 생산과 표출이 너무나 손쉽게 일어나는 웹이 장르소설의 주 컨텐츠 공급원이다. 때문에 이러한 글쟁이들의 출현은 당연한 일이다. 여러 가지 각도와 배경지식을 통해 생산된 텍스트는 장르소설 특유의 다양성을 띄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무수히 많은 텍스트가 생성되고 개인 홈페이지와 커뮤니티 사이트 심지어 이곳 책마을에도 올라온다. 보통의 경우에는 예명을 갖고 글을 쓸 수 있도록 익명성이 보장된다. 다량의 컨텐츠가 공급된다. 비록 그 퀄리티는 떨어질지라도.
허나, 기존의 문학도가 장르소설에 흥미를 갖고 그라운드에 뛰어드는 일은 쉽사리 발생하지 않았다. 글쟁이가 만난 몇몇 아마추어 작가 중에는 등단을 준비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어디까지나 ‘흥미’ 때문에 장르문단에 잠깐 발을 담갔을 뿐 자신이 쌓아놓은 것들을 포기하지 않았다. 가던 길을 가려했다 랄까. 어쨌거나 장르소설 작가가 텍스트의 질적 향상을 위해 문단에 뛰어다는 일은 있었으나, 역으로 문학도가 장르소설에 뛰어드는 것만큼이나 그 경우는 적었다.
텍스트를 생산하는 생산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데, 이를 뒤에서 지원해줄 자원봉사자들은 늘어나지 않았다. 때문에 위기의식을 느낀 여러 커뮤니티 삼룡넷, 드림워커, 고무림(現 문피아) 등에서 비평을 전문적으로 하는 인원들이 나타난다. 현재까지도 장르소설을 하나의 학문으로 인식하고 연구하는 이는 없는데 전문 비평인원이 장르소설계에 유입됨은 필연적이었으나, 의외의 일이었다. 그러나 이 인원들은 극 소수였고 거대 커뮤니티가 문을 닫으며 역시 자취를 감춘다. 네이버 카페나 소규모 커뮤니티에서는 여전히 아마추어 평론가가 활동하고 있으나 예전에 비해 이들의 실력은 현저히 떨어진다. 장르소설 작가들이 그렇듯 이들 평론가 역시 문예비평을 공부하고 진지한 자세로 장르소설을 대하는 이가 드물다. ‘아에드 인 마이 오렘 델 글로인’(<폴라리스 랩소디>에 나오는 기도문인데 확실치 않음), 이라는 맺음 글로 유명한 비형 스라블 등은 결혼과 출산 등의 문제로 장르소설계를 떠난다.
자라나는 장르문단에 덧나무를 대어줄 전문 인력이 공급되지 않았으므로 장르소설은 기형적 형태로 자라났다. <반지의 제왕>을 쓴 J.R.R. 톨킨이 <호비트> 등의 작품으로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하고 7부작 <나니아 연대기>, <어스시의 마법사> 등 영국 환상문학이 세계 3대 환상문학을 선점하며 견고하게 토대를 세웠던 반면. 한국의 장르소설은 외국의 그것을 그대로 차용하는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시장에 쏟아져 나오는 소설의 반 이상이 톨킨의 세계관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사실 이 문제는 비단 한국 뿐 만아니라 일본 등 타국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톨킨이 수십 년에 걸쳐 실로 거대한 세계를 세우고 떠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실마릴리온>, <반지의 제왕>, <호비트> 등으로 중간계를 창조한 그의 소설이 세계 환상문학계에 등장했다. 1세대 작가인 이영도, 전민희, 홍정훈 역시 이들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각각 <드래곤라자>, <세월의 돌>, <비상하는 매> 등으로 장르소설계에 등장한 1세대 작가들은 그 작품들을 읽어보면 알 수 있지만 드래곤과 기사, 요정과 난쟁이가 등장하는 톨킨의 세계관이 그대로 투영됨을 확인할 수 있다. 1세대 이전에는 한국장르문단에 이렇다할 영향을 끼칠 작품이 없었다. 장르소설계를 개척했다고 생각되는 이들 1세대 작가들이 톨킨으로부터 자라났다는 것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시장이 개척되면서 1세대 작가의 영향을 받은 2,3세대 작가들 역시도 톨킨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2세대 판타지 중 걸작으로 평가받는 김철곤의 <SKT-Swallow Knight Tales> 역시 금발의 기사가 등장하며 근대 유럽, 중세 기사단과 비슷한 배경과 인물을 묘사한다. 전동조의 <묵향> 역시 마찬가지다. <묵향>, <묵향-다크레이디>, <묵향-묵향의 귀환> 등 3부작에서 타이탄이라는 거대 병기를 집어넣는 듯 발전된 모습을 보이나 무협과 판타지 세계관에서 맴돌고 있기 때문에 1세대 작가와 같은 평가를 받지는 못한다. 2세대 작가들은 전 세대의 세계와 시장을 발전시켰으나 이는 양적인 발전이었지 질적인 발전이 아니었다.
무협 역시 마찬가지였다. 무협소설은, 중국의 톨킨이라고 불리는 김용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의천도룡기> 등의 소설을 통해 발달한 한국 무협계는 기득권층의 정체로 변화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무협시장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금강의 경우 십여 년 전 쯤 발해와 관련한 작품을 쓴 적이 있다. 그러나 큰 재미를 보지는 못했고, 많은 무협작가들이 그러하듯 여전히 <소림사> 등의 글을 쓰며 죽어라 무림만 파고 있다. 장르소설의 역사에서도 언급했듯 그는 온라인상의 작가 커뮤니티와 연합을 맺고 고유의 작가회의를 제공하면서 장르소설의 질적 향상을 도모했다. 그러나 전문 인력의 부족과 ‘밥그릇’을 놓을 수 없는 작가들은 여전히 그렇고 그런 텍스트만을 쏟아낸다.
3세대에 들어서며 드디어 한국장르소설계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어온다. 일본장르소설에 맞서 싸우기 위한 뉴 웨이브 문학이 등장한다. [시드노벨 공모전]에서는 <괴력난신 돗가비뎐> 등의 작품이 한국 전통의 소재를 들고 당당하게 시장에 뛰어든다. 하지만 이는 글쟁이의 입사 후에도 여러 가지 이유로 출판되지 못했다. 다행히 임달영과 같은 작가들이 공모전을 통해 책을 내기 시작했으나 임달영은 다분히 일본의 색채를 내는 소재와 주제 때문에 독자로부터 크게 인기를 끌지는 못한다. 아직 이 년 정도가 흘렀기에 향후 오에서 십 년 가량은 지켜봐야 할 것이라는 게 장르소설계의 판단이다.
다행히도 1세대 작가들이 다시 작품을 들고 돌아오지만 이영도와 홍정훈을 제외한 다른 작가들은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니까 이 한계가 무엇이냐. 현재의 장르소설계는 썩어있다는 평을 듣는다. 판타지와 무협 등의 세계관에서 수많은 컨텐츠가 쏟아져 나오나, 이는 분명 타국의 문화를 바탕으로 한 정형화된 세계일뿐이다. 이영도를 빼고 생각해보면 한국 장르소설은 중세 유럽과 중국을 배경으로 한 글이 시장을 지배한다. 전민희의 <룬의 아이들>, 김철곤의 <SKT>, 윤현승의 <하얀 늑대들>은 등장인물의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 중세 유럽풍의 소설이다. 세 작품 모두 기사와 칼, 마법이 소재로 쓰인다. 공통적으로 세련된 스토리텔링으로 승부수를 던졌고 어느 정도 수확을 얻는다. 전민희는 소프트 맥스가 개발한 <테일즈 위버>의 성공으로 이제는 확고한 위치를 다지게 되었다. 아마도 그녀가 죽을 때까지 <룬의 아이들>시리즈는 책으로 나올 것이다. 김철곤은 매력적인 캐릭터와 옴니버스식 구성으로 각 챕터의 독립성을 세우면서도, 전체적인 사건의 흐름을 유연하게 풀어나가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옴니버스 구조는 장르문단에서 <퇴마록> 이후 좀처럼 볼 수 없었던 구조인데, 김철곤은 이 어려운 구조의 소설을 깔끔하게 마무리하며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해주었다. 윤현승 역시 개성 넘치는 캐릭터와 깔끔하고 맛깔스러운 스토리텔링, 감동적인 묘사로 <하얀 늑대들> 3부작을 완결 지었다. 다른 1세대 작품과 달리 <하얀 늑대들>은 출판 된지 몇 년도 채 되지 않아 양장본으로 재판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만큼 매니아층의 요구가 있고, 좋은 글을 썼다는 이야기다. 금강은 <소림사>로 신무협 스타일의 소설을 쓰기 시작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세 작가들과는 확연한 차이가 난다. 주인공은 엄청난 천재로 최근 장르소설에 등장하는 ‘먼치킨’적인 캐릭터다. 현 트렌드를 스토리텔링으로 극복하려는 시도는 보이나, 살리지 못한 채 구무협 작가가 쓴 신무협 소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글이 돼버렸다.
진짜 심각한 게 무엇이냐. 우리의 가치관을 지닌 인물과 우리의 생각이 타국의 문화를 배경으로 뛰놀고 있다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이다.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현재 장르소설 중 판타지, 무협에 등장하는 인물은 거의 모두가 유럽식, 중국식 이름을 지녔다. 간혹 한국에서 태어난 주인공이 이세계로 날아가는 [퓨전] 소설이 등장하지만 그 배경은 어디까지나 기사단과 무림방파가 판치는 타국의 문화에 불과하다. 혹자는 배경이 어떠하든 결국 한국 글쟁이가 쓴 한국 글이니 뿌리는 대한민국에 있지 않냐 말한다. 어느 정도 인정할 수밖에 없으나,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뿌리가 썩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전쟁을 경험한 소녀에게 아무거나 그림을 그려보라 말했더니 총과 탱크를 그렸다고 한다. 물론 장르소설의 주된 타겟은 십대에서부터 사십대에 이르는 남성독자층이지만 이를 주로 소비하고 향유하는 연령층은 청소년이다. 이러한 글을 읽은 청년들이 칼과 마법, 무공에 대한 환상을 꿈꾸며 때로는 직접 창작활동에 뛰어들기까지 한다. 그러나 1세대 작가들이 그러했듯 아마추어 작가들은 자신의 환상을 1,2세대 작가의 그늘 아래서 키울 수밖에 없고 결과적으로 톨킨과 김용의 세계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전문 인력을 자원봉사자로 칭하며 위에서 언급했다. 사실 이 전문 인력은 순기능과 악기능을 모두 갖고 있다. 톨킨과 김용을 포함한 고전 환상문학에 심취했던 지식인들은 어떻게든 자신의 지식을 다른 이에게 공유해주기 위해 노력했다. 순수한 의도에서 시작된 이 노력은 후에 ‘판타지 세계관’, ‘무협 세계관’ 등으로 정형화되며 알게 모르게 진리인양 받아들여지게 된다. 현대 장르소설의 대다수는 이들 지식인에게서 공급된 ‘세계관’에서 벗어난 사고와 창작활동을 할 수 없을 수준에 이르렀다. 철저하게 마비되어가는 환상에 평론가들이 뛰어들었지만 현재 이들 대다수는 현실에 쫓겨 이제는 글쟁이처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들 평론가 역시 순기능만을 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평론가가 객관적 시선을 유지한 채 어떠한 비평을 하던 평론가의 의도와는 다르게 글쟁이들이 텍스트 작성을 때려치우거나, 꿈을 버리는 등의 극단적 선택을 하기 때문이다.
지독한 패러독스지만 이들 전문 인력은 장르소설의 발전에 있어 꼭 필요한 존재다. 고인 물에는 물길을 뚫어줄 방법이 필요하다. 가장 좋은 방법은 기존의 문학도나, 문단에 종사하는 이들이 장르소설계에 발을 들이는 것이겠지만 이는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모두가 그렇듯 손에 쥔 것을 놓기는 힘들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문 인력으로 평가받던 소수의 인원이 순문학으로 발을 옮겼다. 하지만 이것 역시 몇 년 사이의 일이므로, 십 년 정도는 지나야 이 판도의 변화가 느껴질 것이다. 이들 전문 인력의 공급을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활동의 대가를 마련해주어야 하나, 작가와의 술 약속. 출판본 제공 정도의 개인적인 보답으로는 이들을 붙잡아놓기 힘들다. 아직까지도 전문 인력의 활동은 자원봉사나 다름없는 수준이다. 가끔 열리는 [황금드래곤 문학상]에서 아마추어 비평가들을 모집하고, 출판본 전질을 제공하나 공모전 때만 반짝하는 이벤트성 지원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을 붙잡기 위해서는 어떠한 시스템의 개선이 필요할 것이다.
글쟁이들은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일찍이 장르소설계를 개척한 작가들은 이제 장르소설이 어떻게 이 한계를 극복해야 하는지 제대로 판단했다. 장르소설에는 화려한 필체나, 아름다운 묘사, 주제의식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많은 대중문화가 그러하듯 장르소설역시 상업성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이는 다시 말해 흥미를 우선시해야한다는 말이다. 작가들은 식상한 배경과 스토리를 벗어나 제대로 된 스토리텔링을 보여주려 애쓴다. 소설의 서사적 구조를 완성하며 뼈대를 갖춘 세계를 창조해 놓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윤현승은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생략하기와 보여주기를 적절히 사용하여 독자를 소설 속 깊숙이 빠져들게 한다. 현재 2,3세대 작가들이 간단한 줄기만을 잡아두고 즉흥적으로 글을 풀어나가는 반면, 윤현승이나 이영도와 같은 1세대 작가들은 전체의 이야기를 확실하게 정해두고 같은 시간대에 인물들이 어떠한 행동을 했는가를 흥미롭게 보여주며 왜 이야기가 이러이러하게 진행되어야만 했나를 보여준다. 확실한 개연성을 갖춘 소설은, 소설의 진실성에도 한 몫을 한다. 때문에 독자는 더욱 몰입하며 다음 권을 기다린다. 종래에는 재판을 발행하거나 양장본으로 출판되어 독자의 지갑이 열린다.
그렇다고 장르소설이 무조건적으로 상업성을 바라봐야 하는가. 이것 또한 아니다. 홍정훈은 <월야환담>시리즈를 통해 청소년들의 비행과 범죄 같은 사회 여러 문제를 그로테스크한 필체로 그려낸다. 현대사회의 문제를 토해내며 그만의 극단적 필체로 그려진 대한민국과 세계는 어둡고 슬프게 그려지나, 아이러니 하게도 문학적으로는 아름답다. 문성실의 <신비소설 무> 역시 무속인에 대한 사회의 편견, 정치인의 어두운 뒷모습 등을 그리며 사회비판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영도는 <하이어드>에서 미래사회에 대한 상상을, <폴라리스 랩소디>에서 가슴 속 가치에 대한 인간의 고뇌와 갈등을 그렸다. 매니아층을 형성할 수 있다면 상업성을 쫓으면서도 충분히 문학적 장치를 담을 수 있다.
개중에는 홍정훈의 묘사를 두고 ‘지나치게 잔인하다.’는 평을 내린다. 이는 그의 주 독자층이 1세대 독자이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비판을 이해할 수준의 독자는 어느 정도 나이가 찬 이십대 초반부터 사십대 초반의 남성이다. 그러나 이 작품이 책으로 출판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해볼 때 아직까지 판단능력이 확고히 자리 잡지 않은 청소년들이, 만화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소설을 읽고 폭력에 대해 둔화된다면 이는 깊게 생각해보아야 한다. 실제로 많은 수의 글이 잔인한 묘사와 비상식적인 주제의식을 품고도 여과 없이 책으로 출간되곤 한다. 상업성만을 쫓는 출판사의 책임이 크다 할 수 있으나, 이러한 컨텐츠를 공급한 양심 없는 생산자에게도 책임을 물어야만 한다.
장르소설의 문제는 온라인 게임에까지 확산되었다. 한국은 손꼽히는 IT 강국이 되었고 집집마다 케이블망이 깔렸다. 게임은 자연스레 한국인의 오락문화로 자리 잡았다.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리니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아이온> 등 대다수의 MMORPG는 서양과 중국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초등학생마저 <메이플 스토리>를 즐기고 있다. 한국인이 한국 문화를 즐기지 못하고 타국의 향수에 젖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국수주의나 문화적 사대주의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영도의 경우처럼 충분히 타국의 소재를 가져오면서 우리 것을 버무릴 수 있다. 앞으로의 장르소설은 한국 문화가 섞인 소재와 배경을 바탕으로 개성 넘치는 인물들이 등장하는 맛깔스런 스토리를 제공해야한다. 또한 전문 인력이 공급되어 날카로운 비평과 넓은 시각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굉장히 어려운 일이지만 장르소설계의 성장과, 우리 문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난제다. 앞으로의 장르소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뱀발. 늘 그렇듯 A/S 따위는 없습니다.
뱀발 둘. 대체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
뱀발 셋. 그러나 깽깽이는 극한의 소심쟁이라 위의 것을 실천하고픈 마음은 추호도 없음.
뱀발 넷. 누군가는 할 테니까. 황민우씨 처럼. 깔깔깔.
* 책마을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8-11-27 17:32)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8-12-08
20:40:36
병장 정병훈
일단 오늘 시간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니 도장 쾅-
시간날때 흥미롭게 읽어보겠습니다. 2008-11-27
07:52:37
상병 이우중
아까는 일어났다는 도장이고
출근도장은 여기다가ㅡ히히.
1세대니 2세대니 하는 건 잘 모르지만
자기 작품만의 독특한 세계관 확립이 필요하다는 건 정말 그렇다 싶네요.
남이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올려 놓고 내 거다ㅡ하는 것들이 많은 것 같았거든요. 2008-11-27
08:12:45
상병 임경모
아랫 글부터 잘 보고 있습니다.
장르문학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만드네요. 하하. 2008-11-27
08:59:50
상병 이석현
아악...................
장문의 댓글을 약간의 반론과 함께 달았건만 로그아웃되버렸다니!!(울음)
갑자기 의욕이 오만퍼센트정도 감소합니다.(울음)(울음) 2008-11-27
09:23:12
상병 이석현
크하... 대충요약해서 다시 적어보겠습니다...(또다시 길게는 안쓸래요)
여기서 말하는 장르문학 - 환타지 무협 등 - 은 '대중성'을 추구하는 만큼 '상업성'을 추구하고 따라서 독자의 '희망사항'을 들어줘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장르를 즐기는 독자의 '궁극적인 목적'은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에대해 간접체험을 함으로써 대리만족을 얻는 것'이죠. 말씀하셨듯이 몇몇 '전문적 비평가'들을 제외하면 대다수의 대중들은 이를 위해 '이러한 장르의 책'을 즐기니까요.
물론 같은 세계관의 비슷비슷한 스토리라인을 갖고 '새 책'인냥 출판되는 소설들을 보면 이제는 한숨밖에 나오지 않고, '새로운 세계관'의 출현이 기다려지지만 만약 새로운 세계관이 출현하더라도 이는 '한국 문화'를 담고있는 세계관이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이국적 배경'에 '한국적 정서를 지닌 주인공'이야 말로 '모순적인 현실성'을 가장 충족시켜 주기 때문이죠. 이게 무슨말인가하면 '한국문화'는 우리가 살고있는 현실세계입니다. 반면 '이국의 문화'는 새로운 세계, 어쩌면 '몽상의 세계'로 취급되죠. 따라서 '우리가 살고있는 세계의 우리와 비슷한 정서를 가진 주인공'보다는 '몽상의 세계에서 활동하는 우리와 비슷한 정서를 지닌 주인공'이 묘하게 더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것'같은 느낌은 주어 현실성을 띄며, 읽는 독자로 하여금 대리만족을 더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각설하고, 이러한 이유로 '새로운 세계관'이 나오더라도 그것은 '우리 문화'와는 별개의 세계관이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지금 제 손안엔 진시황프로젝트가 들려있습니다. 흐흐
이따 봐야지. 흐흐 2008-11-27
09:32:59
병장 고동기
가지로. 2008-11-27
09:34:09
상병 김무준
그러니까, 그 새로운 세계관의 기반이 한국 문화를 바탕으로 생성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물론 가상의 세계라는 점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와는 동떨어진 세계일 테지만, 그래도 쓰여져야 합니다. 계속해서 은하영웅전설, 반지의 제왕 따위를 보고 꿈을 품는 사태가 발생한다면 우리의 뿌리가 흔들리고 말겁니다.
제가 얼음마녀 이야기 따위를 깨작거렸던 까닭입니다. 제 이야기와 관련한 설명은 차후에 시간이 나면 글로 작성해 해석해드리겠습니다. 2008-11-27
09:41:00
일병 김예찬
전민희씨도 문학도로 알고 있습니다. <하이어드>는 탐그루의 김상현씨 소설로 알고 있구요.. 2008-11-27
09:46:39
상병 김무준
일단 확실하지 않은 부분은 최대한 언급을 자제했습니다. 문성실도 철학도였나 문학도였나 그렇죠. 다만 정확히 기억나지 않을 뿐. 2008-11-27
09:52:58
상병 이석현
'우리 문화'의 정의를 잘 모르겠군요. 제가 생각하는 '우리 문화'는 정통적 가치관에 기반을 둔 민족 고유의 '문화적 정체성'이라고 느끼는데요. 우리나라 사람이 만든 세계관이 한국문화를 기반으로한 세계인가는 참 궁금하네요. 다음 글 기대하겠습니다.
그나저나 '문화적 정체성'이라... 뭘까요 대체. 아직까지 있기는 한걸까요 제기랄
눈에 보이는 역사조차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보이지 않는 '정체성'을 지키자니, 욕밖에 안나옵니다. 2008-11-27
09:55:49
상병 김무준
소설의 현실성과 진실성은 인물,사건,배경의 3요소를 제대로 세운다면 자연스레 따라오기 시작합니다. 현재 독자들이 비현실적 배경에서 현실적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은 물론 문학을 즐기는 모든 독자들에게 해당 되겠습니다만, 환상적 배경에 비현실적 주인공을 통해 현실에서의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은 어디까지나 처음부터 잘못 학습되었기 때문입니다. 게임, 영화, 만화 등 '환상' 그 자체는 소년시절부터 다른 뿌리에 물들었습니다. 이는 일제강점기의 역사왜곡 등 여러가지 현실적 문제가 작용한 이유도 있지만, 어린시절 보고 자란 것이 죄다 일제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일 수도 있죠.
소설은 '현실에서 있음직한 이야기'이기에 현실성을 띄지만, 반대로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은 이야기이기 때문에 비현실일 수 밖에 없습니다. 잘못된 학습으로 인해 우리 것을 즐기지 못하는 일종의 사대주의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우리 것은 촌스럽고 지루하다는 생각. 뭐 소설의 현실과 비현실의 개념은 양쪽의 존재 자체가 모순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두 가지가 상호 보완적인 역할을 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어쨌거나 길게 이야기 하기는 귀찮고, 시간이 나면 <강철의 열제>나 <신쥬신건국사>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나마 뭐가 제대로 가고 있는 건지 모여주니까요. 2008-11-27
10:02:07
상병 김무준
제가 말하는 부분이 석현님께서 말씀하시는 그겁니다. 깽깽이의 필력이 모자라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듯 한데, 이영도의 손은 들어주나 다른 작가들의 손을 들어주지 않는 까닭이 아무리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했다고는 하나, 이미 기존의 것들을 답습하는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해섭니다. "정통적 가치관에 기반을 둔 민족 고유의 '문화적 정체성'"을 바탕으로 생성된 세계관과 인물, 주제를 바탕으로 환상소설이 나아가야 한다는 겁니다. 아니면 대별왕 소별왕, 미륵 따위는 저 바닥으로 사라지겠죠. 2008-11-27
10:07:20
상병 김무준
일단 저부터 다시 제 글을 정독해 보겠습니다. 그냥 써 내려간 글이라 오류가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2008-11-27
10:08:36
병장 정영목
문화의 빈곤(다양성의 쇠퇴)이란 문제는 비단 장르문학 뿐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현상인 것 같습니다. 시장 자체도 작거니와 다양한 가능성을 탐색할 만한 따뜻함도 부족하니 이상한 일도 아니지요. 컴퓨터, 번역, 가요, 국악 등등등등.
일단 현실은 현실이니 그것을 인정한다고는 해도, 요즘은 화살표 방향마저 조금 의심스러운 상황입니다. 낭중지추라며 자위하는 것도 하루이틀이죠.
그나저나 혹시 해외 장르문학의 근황에 관한 정보는 없나요? 인물이라던지. 단체라던지. 등등요. 2008-11-27
10:11:15
상병 김무준
관심 없어서 모르겠습니다. 전 국내용이거든요. 2008-11-27
10:15:45
상병 김무준
사실 일본이나 타국에 비해 문화 컨텐츠가 부족한 것은 아닙니다. <무속백과사전>이 떵떵거리며 제작되고 있고, 이현세는 <천국의 신화>를 그립니다. 생각보다 많은 민속 사학자들이 비록 세련되지는 못할지라도 민담과 전설, 신화에 대한 해석을 쓰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정리가 덜 되고 발굴이 덜 되었을 뿐입니다.
이제 차려놓은 밥상을 누가 제대로 해먹느냐가 남았죠. 2008-11-27
10:21:08
상병 김무준
우선 위에서 언급한 것들이 선행되고 나서, 뿌리를 내린 다음 해외시장으로의 진출이라던지 원소스 멀티유즈로 발전을 해야지 지금 상황에서는 죽도 밥도 안됩니다. 공업국가에 원자재 집어넣고 완제품 뽑아내는 것도 아니고.
얼마 전 피터팬의 공식 속편<돌아온 피터팬> 이 출간되어 화제가 되었습니다. 해리포터의 작가인 조앤.K.롤랑은 계속해서 창작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스티븐 킹이 여전히 호러와 스릴러 소설을 씁니다. 일본에서는 로도스 전기와 같은 전통 판타지류와, 전국시대와 비슷한 배경이 혼합된 퓨전 소설. 그리고 NT 레이블이라 불리는 다양한 장르소설이 출판되고, 한국으로 수입됩니다.
SF쪽은 제가 관심이 없는 부분이라 잘 모르겠습니다. 해외 단체 역시 지식이 전무하군요. 2008-11-27
10:27:40
상병 이동열
사실 저같은 경우 장르문학에 대한 관심도 적을 뿐더러 조예도 적은지라
언급하기가 곤란할 듯 하지만 내심 아쉬운 점이 있어 몇자 적습니다
개인적으로 다른 장르문학은 단 한번도 읽은적이 없지만
이우혁씨의 글들은 다수 읽어보았는데 이 글에는 이우혁씨는 한번의 언급도 없네요
내심 섭섭하기도 한데-
이우혁씨의 글에서 저는 그나마 한국적 문화 정체성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무준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왜란종결자'같은 작품이 마음에 들었는데(땀) 2008-11-27
10:37:17
상병 김무준
어떻게 보면 이영도보다 이우혁이 훨씬 한국적이죠. 제 판단하에서는.
A/S하기는 죽어도 싫기에 그냥 댓글로 달겠습니다.
작가명이 기억나지 않아 언급을 자제했습니다. 이우혁이었군요. 아래의 장르소설의 역사에서 '제일 한국다운 장르는 [퇴마]' 라고 말했습니다. <왜란종결자>는 정말 재미있게 읽었고 전권 소장중입니다. <치우천황기>였나요. 그 역시 재미있게 읽었으나 완결까지는 보지 못했습니다. 이우혁은 한국적 환상소설을 구현하면서 1세대 작가들의 귀환보다 조금(아주 약간) 이른 시기에 <왜란종결자>를 발표하죠. 그는 종결자를 시리즈물로 쓸 계획을 가지고 있었는데 현재는 어떻게 됐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2008-11-27
10:43:09
병장 조현식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 전문적으로 써주시고 계시군요!
이참에 칼럼이라고 붙이시는게 어떨런지. 아니면 연재. 이게 정말 어울리는 연재죠. 2008-11-27
10:44:26
일병 김예찬
이우혁은 한국적인 소재를 쓰는 것을 넘어서 세계를 한국화 시키려는 역사적 야심이 너무 황당할 정도로 야심차서 안타깝더군요. 물론 퇴마록 시리즈에서 가슴 따뜻한 감동을 많이 받긴 했지만.. 스스로의 역사 인식을 작품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여, 웅혼한 민족의 기상을 높이고 싶어하는 것은 알겠지만 그 시간에 글 공부를 조금 더 해주셨으면 하는 작은 바람도 있긴 합니다. 치우천왕기는 소재는 나쁘진 않았지만 문장력이나 작품 전체적인 내러티브에 문제가 많은 글이었죠. 2008-11-27
10:52:43
상병 김남우
새로운 세계관의 기반이 꼭 굳이 한국 문화를 바탕으로 생성되어야 할 필요가 있나요.
이미 '예'라고 대답하셨지요. 그렇지 않으면 뿌리가 흔들린다고, 톨킨을 시초로 형성된 서양적 판타지 세계관이 그대로 답습되고 답습되어 우리 뿌리는 이미 썩어들어가고 있다고.
물론 굉장히 흐뭇한 주장이지만,
그러나 우리의 뿌리가 미륵이나 퇴마에만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역사적, 사상적 유기체로서의 인간이 끊임없이 생성되는 과정 속에 있다고 할 때, 뿌리를 찾아 내려가자면 일단은 (가령) 도무지 알 수 없는 수사로 치장된 '실용주의'라는 놈의 정체가 무엇인지 어디서 불쑥 나타난 그 놈이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며 무슨 짓을 하며,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고 우리를 어떤 식으로 변화시켰는지 부터 고민해 봐야지요. 조금만 더 내려가자면 외환위기도 있을테고, 더 내려가자면 87년 6월도 있을테고, 08년 5월의 광주도 있겠지요.
고전적인 소재. 고전적인 태도. 비단 그것 뿐만이 아니라는 겁니다. '지금', '여기' 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뿌리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탐구 대상으로 주목해야 한다는거죠. 그리고 그 현상들을 장르적 문체로 짚어낼 수 있을 때, 장르 소설은 굳이 한국적 소재를 차용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한국적으로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더 깊은 곳에 위치한 뿌리, 가장 고전적인 사상적 원류들을 발굴해 내는 것은 그 이후에 찾가가야 할 일이고, 오늘에서 찾은 뿌리가 어제로 이어져있음을, 어제를 거쳐 아주 오래 전 옛날까지 이어져있음을 발견해감에 따라, 굳이 의도하지 않더라도 누군가에 의해 분명 고민되어질 일입니다.
오늘에 대한 고민 없이 무작정 깊은 뿌리를 캐내려고 하다 보면 자칫하단 이 뿌리 저 뿌리 다 상해버려 우스운 꼴이 되어버릴 수도 있잖아요. 2008-11-27
11:18:31
상병 김무준
그건 순문학이 제 기능을 해줄겁니다. 순문학이 좀 더 다양하게 그 이전의 것들을 다루어줘야 하는데 그렇지가 못하니, 환상문학이 하자는 겁니다. 타국의 과거를 캐기 전에 우선 우리 것부터 캐야합니다. '환상'이기에 가능한 일이니까요.
지금 장르소설은 장르소설만의 색깔로 미래를 열 필요가 있습니다. 2008-11-27
11:35:51
상병 김무준
지나치게 전문적이지 않는 편이 다양한 독자층을 수용하기 용이합니다. 장르소설이 순문학보다 접근성이 높다고 평가받는 근거죠. 지나치게 깊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그 소재는 한국적인 것이 되어야 합니다. 2008-11-27
11:37:40
상병 이석현
오늘을 먼져 되돌아보자 라는 말로 '옛것'을 보호하길 보류하자는 주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왔죠. 마치 60년대부터 시작된 '선 발전 후 분배' 계획 처럼 끊임없이 '현재'에만 매달려 왔습니다.
하지만 '뿌리'가 없는 '오늘'은 있을 수 없습니다. 흔히 '오늘날에 이렇게 잘살면 되지 왜 자꾸 옛것을 들추어 내는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법정에서 한 판결이 그 후 판결에 본보기가 되듯이 '과거에 일어났던 일'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본보기가 됩니다. 그렇기에 옛것을 먼져 바로 세워야 현재에 우리가 바른 판단을 할 수 잇는 것입니다.
민감한 사안이기 하지만, 일제시기 친일파 청산 문제가 계속해서 대두되는 것도 이때문 입니다. 요즘 청소년들 - 제가 청소년일 때를 포함해서 - 에게 다시한번 일제가 우리나라를 침략할 경우 어떻게 하겠나는 질문을 던지면 대다수가 '친일'을 하겠다고 말합니다. 친일을 해서 그 당시를 어찌어찌 편하게 모면하겠다는 생각이죠. 이는 독립후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민족반역자들에게 합당한 처벌을 가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겨난 현상입니다. 그들에게 '친일'의 합당한 댓가를 받아내고 그 말로가 비참했다면, '독립 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그 댓가로 우리나라를 이끄는 '지도층'의 자리에 올랐다면, 그래도 '현재'에 살고 있는 우리가 '친일'을 하겠다고 말할수 있을까? - 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국 문화' '우리문화'를 지키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문화 상대주의'라는 말로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는 척 하며 동시에 '세계화'를 통한 '단일화' 혹은 '자문화화'로 '문화적 식민지'를 만들어 나가고 있는 현재의 '주류 세력'들을 잊어선 안됩니다. 문화는 우리가 살아가는 터전이며 사상입니다. 문화가 길들여지는 것은 우리의 터전이 바뀌고 사상이 길들여져 가는 것이며 '정체성'을 잃는 것입니다.
요즘 일어나는 현상을 통해 뿌리를 탐구하는 것.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닌 '뿌리'를 가꿔 새로운 '현상'을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또다시 두서없는 글이 만들어지는군요. 언제쯤 안드로메다는 제게서 멀어질까요(웃음) 2008-11-27
11:43:01
병장 정병훈
잠깐 나갔다 온사이에 많은 얘기가 오고 갔군요. 참여하지 못하는게 조금 아쉽습니다.
오후에도 하루종일 나가있어야 하는 상황이라 말이죠. 후후후-
잘 읽고 갑니다. 2008-11-27
12:18:11
일병 송기화
역시 책마을은 잠시라도 자리를 비우면 따라가기가 너무 힘들어요.
하지만 그만큼 즐거우니까요.
무준님의 글 덕에 책마을에 다시 한 번 장르문학에 대한 대화가 불붙었네요.
재밌어라.
이런 글은 주옥같은 글도 글이지만 주옥같은 댓글들 때문이라도 <가지로>가야죠.
시리즈로 쭉 갔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2008-11-27
13:12:00
병장 이동석
요새 책마을에서 김무준을 지우면 뭐가 남을까요. 무준님 두 글을 언제 책가지로 보낼까를 고민하는 이동슥입니다. 더 불 붙이긴 제가 압박이 너무 심하고,
거참, 컨디션 난조와 부상과 개인사가 겹친 책마을 선수들이 언제쯤 돌아올수 있을까요. 어서 이 우울한 계절이 가고 소녀시대가 왔으면
(니네 왜 컴백 안하니!) 2008-11-27
13:23:57
병장 강문석
음.. 예로 드신 이영도 씨는 눈마새 시리즈에 대해 딱히 '한국형 판타지'를 의식하고 쓴 것은 아니라고 했죠. 그는 그저 특이한 소재를 찾았던 것일지도 몰라요.
솔직히, 저도 장르소설의 독자지만 '한국형 장르'에 대해 고민한 적은 드뭅니다. 그저 수많은 이 텍스트들을 받아들이기에도 바빴죠.. 그러므로 이 리플은 제 스스로의 생각을 정리하는 기능이 더 크므로 아량을 베풀어 받아들여주시길.
음.. 글 전체 내용상 대부분이 판타지라는 장르에 대한 고찰이 주가 되네요. '장르소설의 한계'라고 하신 이상 다른 장르쪽도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요. 예컨대, SF쪽은 어떻습니까. SF는 관심이 없다고 하셨습니다만 이쪽도 엄연히 독자가 있고 창작하는 측도 있거든요~ 물론 판타지에 비해서는 그 여건이 열악하지만요(판타지가 받는 대접을 생각해볼때.. 뭐 오십보백보겠지만). '미러'라는 사이트가 있습니다. 환상문학 웹진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있지만 sf, 미스터리, 판타지 등등 다양한 장르를 소화해내는 곳입니다. 그곳에서는 오히려 톨킨의 세계관을 찾기가 힘들어요. 판타지라고 해도 말이죠. SF로 보자면, 이쪽은 오히려 영어식 이름을 쓰는 소설이 드뭅니다. 왜냐.. SF자체가 우리네 현실의 과학기술에 대한 고민과 그 과학이 어떻게 사용되어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경이감을 줄 수 있을까를 파는 장르니까요. 물론 이쪽도 영미 소설의 영향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만.
그리고 그 영미 소설의 영향- 즉 '우리의 가치관을 지닌 인물과 우리의 생각이 타국의 문화를 배경으로 뛰놀고 있다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이다' 라는 말입니다만. 에.. 어쩌면 이건 당연하지 않나요? 지적하셨다시피, 우리네 장르 소설의 역사는 외국의 소설을 읽음으로서부터 출발하였습니다. '장르소설'이라는 문화 자체가 외국으로부터 나온 거잖아요. 톨킨, 김용, SF로 따지면 4~50년대의 BIG3라던가 로저 젤라즈니가 되겠네요. 그들을 읽음으로써 우리의 선구자(......)들은 소설 창작을 결심하게 되었고, 그들의 스타일을 모방할 수 밖에 없었죠. 이건 문화가 발생하는 대부분의 단계에서 공통적으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예컨대.. 비틀즈 이후 수많은 밴드가 생겨났죠. (신해철의 말을 빌리면) 베이스, 기타, 드럼으로 이루어지는 밴드라는 음악 형태는 비틀즈가 창조한 거나 다름없다고 합니다. 어떤 문화든 선구자가 있고, 이를 모방, 답습, 변형, 다시 복고풍이라는 형태로 고전의 모방-이라는 형태로 문화는 자라나간다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셨다시피 아직 장르소설의 역사는 얼마 되지도 않잖아요.
물론 우리나라에도 홍길동전, 춘향전 등 소설이라는 문화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과 현재 장르소설간에는 시대적인 차이, 방법론의 차이 등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소재를 활용할 수 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그 시대의 소설이 현재의 장르 소설을 대채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그 정신-즉 한국의 정신-을 현재의 문화에 녹여내는 작업이 필요할 터입니다. 음.. 그렇지만 전 퇴마, 도깨비 등의 한국적인 소재에 그 길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것은 차라리 전래 동화 복원이나 신화의 수집 등 인문학적인 노력이 더욱 필요하겠지요. 가장 한국다운 장르는 '퇴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고 현대 한국인이 무속이라는 신앙을 보편적으로 인정하는것은 아니잖아요. 현대 한국인은 저녁으로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고 정장이라고 하면 양복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생활 양식 자체가 이미 바뀌어버렸습니다.
그렇다고!! 퇴마 소설이라던가 한국 문화를 담은 소설이 낡았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요. (땀) 물론 그런 문화를 담는 것도 좋지만, 굳이 그런 문화가 담겨있지 않더라도 한국적일 수 있다는 겁니다. 또 모든 판타지 소설이 한국 문화를 담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구요. (미스테리 소설이나 SF소설의 경우에는.. 그러려고 하지 않으려고 해도 한국 문화가 담길 수밖에 없구요. 애초에 현실간의 관계가 굵은 장르니까)
저는 오히려 '태왕사신기'같이 엉뚱하게 한국 소재를 다루는 게 불안할 지경입니다. (만약 그 드라마를 보고 어떤 사람이 고구려 시대에 이미 철갑 갑옷이 존재했구나라고 생각한다면.. 덜덜덜. 허황된 소리가 아니라 어떤 후임에게서 확인한 사실입니다요) 2008-11-27
13:29:26
병장 이동석
<소설>이라는 장르 자체가 유럽적-이긴 합니다. 근대가 유럽의 산물-이듯이 소설은 근대-의 산물이지요.
사실 구운몽이니 홍길동전이니 하는걸 소설-이라고 칭하는건 들은 사실 조선시대를 중세-라고 부르는것처럼 어폐가 있습니다. 유럽식 개념을 단순히 대입-시켜놓은것일뿐이라는거죠. 물론 지금의 한국-소설이 유럽의 소설을 단순 이식-한것에 불과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유럽식의 소설-장르를 훌륭히 한국식-으로 변용했다고 생각합니다. 황석영이나 박경리까지 가지 않더라도 한국소설을 읽어본 우리들은 이게 유럽에서 비롯된 장르건 말건 우리-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니까요. (사실 이는 우리가 접하는 현대문학-의 일반적인 특성이기도 합니다. 서정시-라거나 에세이-같은것 말이죠.)
여기서 '우리 장르문학'에 대한 단초를 찾을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환상소설이라는 장르의 기원은 비록 유럽신화와 서사시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미 한국문학이 그래왔듯이 환상소설의 형식으로도 우리-의 이야기를 할수 있을겁니다. 2008-11-27
13:46:09
상병 김무준
읽어보니 글 자체에 오해의 소지가 있군요. [퇴마]를 가장 한국적인 장르로 뽑은 것은 우리의 샤머니즘에 근거해 토속적 뿌리를 찾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현존하는 장르 중 가장 한국다운 것이 무엇인가 고민했을 때 찾을 수 있는 답이어서 였습니다. 짧게 언급했습니다만 3세대 작가들은 <진시황 프로젝트>와 같은 새롭고 현대적인 시도를 해나가고 있습니다. 꼭 홍길동이 나오고, 떡하나주면 안잡아먹지가 나올 필요는 없죠. <월야환담>의 예를 들었듯 현대 한국사회를 바탕으로 소설이 쓰여져도 상관없습니다. 고전적 소재는 한가지 예일 뿐입니다. 이영도의 이야기는 잘 알고 있죠.
SF는 지식이 전무한지라 언급을 피하겠습니다. 무협의 경우에는 더이상의 설명이 필요가 없어 깊게 파고들지 않았습니다. 주류와 비주류 사이에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바탕으로 하느냐, 아날로그식의 글짓기를 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더 낫고 떨어지고의 차이가 없습니다. <궁귀검신>과 같은 글에 고려가 잠깐 등장하고, 주인공이 반도태생이지만 주 무대는 중국대륙입니다. 무협은 지금 보여지고 있는 그대로의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는 지적하신대로 40-50년대 김용의 스타일을 답습하며 반백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변하지 않은 문제중의 문제입니다. 이는 기득권층으로 분류되는 원로작가들의 '변화'가 없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작가들과 대화해보면 무협을 쓰는 원로작가들은 나이는 사오십줄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대단한 것을 개척한 원로' 취급을 받습니다. 장르적 토대를 다진 것으로 그 업적은 칭송받아야하나, 환상이라는 무궁무진한 것을 가지고 아직도 중국대륙을 버리지 못하는 건 골때리는 일입니다.
홍길동전을 모티브로 한 <신-홍길동전>이 삼룡넷에 연재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말씀하시는 고전소설이 톨킨의 작품과 같은 그런 맥락으로 해석할 수는 없겠으나, 북유럽 신화와 그리스 로마신화 등의 좋은 모티브가 될 수 있는 소재가 많이 있습니다. <니벨룽겐의 반지>와 같은 소재가 판소리에도 엄연히 존재합니다. 뭐, <적벽가>는 삼국지를 노래했다고는 하나 거북이가 토끼 간 빼먹으러 간다는 짧은 이야기를 10시간이 넘는 노래로 풀어내기도 하니까요. 비유가 적절치는 않네요. 어쨌거나 기록된 고전 문학만 뒤져봐도 그 양이 상당합니다. 우리 할배들이 마냥 코파고 논건 아닙니다. 일제강점기, 그 이전의 여러 전쟁에서 상당히 많은 양이 유실되었다고는 하나 현재까지도 많은 고전 문학이 복구되고 있습니다.
음. 정전이 된다는군요. 다시 오겠습니다. 2008-11-27
13:50:21
병장 강문석
에.. 먼저 용어의 정리부터요.
무협 소설에도 환상의 요소가 반드시 필요한 것일까요? 원로 작가나 작가간의 커뮤니케이션은 잘 모르지만 무협 소설은 중국의 세계관을 기초로 탄생한 장르입니다. 물론 소설이 그 발생지를 그대로 가지고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만, 무협은 내공, 초식이라는 그 장르만의 특색이 있지요. 무武가 등장하지 않는 소설을 무협이라고 부를 수는 없잖아요. 중국 대륙이 그 특색을 활용하기에는 가장 적절한 무대였던 것이고요. 말씀하신대로 중국 대륙을 벗어나려면 한국이나 일본, 또는 서양, 또는 이세계(기타 등등)로 가야 할 터입니다. 그런데 저는..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런 배경을 가진 소설들 중에 재미있는 녀석을 단 한번도 본 적이 없어서요. (뭐 이드나 묵향이나..) 앞으로도 나올 것 같지가 않아요. 무협이 그때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구무협이니 신무협이니 이런 구분을 나눌 필요는 없겠죠? 저는 모든 무협이 중국을 배경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 대륙을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런 소설은 또 다른 장르를 창조하는 것과도 같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물론 그런 작품은 칭송받아야 마땅하지만, 그렇지 못한 작품들을 비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음.. SF에 관심이 없으시다니 안타깝군요. 말씀하신 우리네 현실에 가장 밀접한 장르일 터인데!! 한번 [얼터너티드 드림](한국 SF작가 단편 모음집. 이영도 글도 있습니다)이나 미러의 글들을 읽어보시죠. 재밌습니다~ 2008-11-27
14:55:20
상병 김무준
일단 무협이라는 장르를 뜯어 볼 필요가 있겠군요. 원래의 무협소설은 환상소설이 아닌 대하소설에 가깝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용대운의 <군림천하>와 마찬가지로 대하소설은 이게 사람이 슝슝 날아다니고 칼질을 챙챙 해대는데 그 의의가 있는게 아니죠. 중국의 무협은 홍콩 무협영화 <황비홍>, <와호장룡>, <무인 곽원갑> 등에서 그려졌듯 중국의 근대기와 외세의 침입시기에 봉착해있는 무인들의 고민과 인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더 시대를 내려가 <동방불패>, <연인>, <영웅> 등에서는 중국의 무협이 무엇인지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적하신대로 톨킨과 1세대 작가 사이에 뗄레야 뗄 수 없는 영향을 얻은 것 처럼 김용과 1,2세대 무협작가들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습니다. 헌데, 오히려 무협보다도 그 역사가 짧은 판타지에서 새로운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더 나은 모습으로 발전해감을 볼 때 길게는 판타지의 두배인 3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른 한국 무협이 아직도 중국대륙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은, 어떠한 시스템적 문제가 있거나 누군가 인위적으로 그 변화를 막고 있다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내공, 초식 따위는 정통 무협에서는 중요시 생각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판타지의 '클래스'와 비슷한 개념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군요. 이것은 신무협에서 지식인에 의해 정형화된 세계관의 결과물로, 무협의 발전을 막고 있습니다. 한국의 동양의학과 중국, 일본의 동양의학은 중국에서 내려왔다는 점에서 그 뿌리를 같이할지는 모르나 허임, 허준등이 침술과 약학 등 다양한 부분에서 우리만의 의학을 발전시켰습니다. 적절치 못한 비유일수도 있으나 말씀하신 위의 개념들은 신무협에서 소재가 되는 일종의 장치에 불과하며, <군림천하>, <태양의 전설 바람의 노래>는 이러한 것들 없이도 동양 판타지를 충분히 풀어나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두 작품 모두 그 배경이 중국이라는 점에서 한계를 뚫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글쎄, SF에는 도통 흥미가 가지 않아서... 추천은 감사히 받겠습니다. 2008-11-27
15:25:14
병장 강문석
어.. 글쎄요. 너무 단순한 단어를 쓰긴 했지만, 내공, 초식이 무협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라. 물론 3갑자니 이런 비교적인 수치는 무협의 판타지화에서 드러난 폐해이겠습니다만. 음.. 그렇다면 단어를 조금 달리 써야 하겠네요. 항룡십8장이나 (..필터링.. 캇) 구음진경 같은 '무공'은 어떤가요? 2008-11-27
15:34:51
상병 김무준
위에서도 강조했듯 이제 장르소설이 파고들어야 할 방향은 어디까지나 '스토리텔링'입니다. 그 외의 것들은 구조적 뼈대를 뒷받침하는 소재로 쓰여지더라도, 시선이 낮아진 독자층은 크게 신경쓰지 않습니다. <태양의 전설 바람의 노래>는 인물들의 유년기와 청년기를 오가는 액자식 구성으로 전쟁을 그려내며 무협의 향후 발전방향을 보여줬습니다. <초일>에서는 내공과 초식 같은 무협의 주요 소재가 정형화된 상태에서 나타났으나, 이후 후속작인 <송백>에서는 초반 도입부에 오랑캐와 군, 왕실의 기싸움을 묘사하며 꼭 무공이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흥미로운 이야기를 쓸 수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이야기가 진행되며 연인과 무림에서 엮이기 시작하는 것은 작품의 중반부 부터입니다.
이 외에도 다양한 각도를 제시한 작품이 많이 있으나 구체적 작품명이 생각나지 않기에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들 역시 중국대륙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에서 절반의 성과밖에 내지 못했다고 생각됩니다. 2008-11-27
17:04:47
상병 김무준
무공, 내공, 초식, 무구 등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도구적 장치로 쓰일 뿐 구무협이 아닌 이상 철저한 고증 같은 것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단순히 한국적 소재가 쓰인 소설과 한국의 문화를 바탕으로 쓰인 소설이 다른 것과 비슷하겠죠.
오타가 자꾸 심해지는군요. (웃음) 2008-11-27
17:09:26
상병 김무준
아직 장르소설의 역사는 오래 되지 않았으나 그 성장속도는 놀라울 정도입니다. 다른 대중문화에 비해 엄청나게 급격한 성장을 이루었고 거품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죠. 이건 뭐 일본 부동산 시장도 아니고.
그러나, 양적인 성장에 비해 질적인 성장이 따라주지 못했죠. 2008-11-27
17:22:29
상병 이우중
뜬금없지만 천국의 신화는 정말 최고였드랬죠.
3연타석 가지로 왔군요. 허허허. 2008-11-28
07:00: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