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글-내글내생각] 우리는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로 이루어진다.
병장 김민규 [Homepage] 2009-01-02 13:57:20, 조회: 278, 추천:0
우리는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로 이루어진다.
올해도 어김없이 신년의 해는 떠올랐다. 천지가 형성된 이래 단 한 차례도 예외가 없었던 당연한 순리는 이번에도 정동진의 해돋이 관광객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뭐, 구름이 많이 끼여 생생한 장면은 연출하지 못했을지라도, 조금 색다른 풍경을 상상해 보면 안 되는 것일까. 아침 일곱 시가 되고 여덟 시가 되어 출출한 시장기를 컵라면으로 달래야겠는데, 여전히 천지는 깜깜하고 ‘어, 왜 안 떠 오르지, 이상한데?’ 하며 웅성이는 해맞이객들을 말이다. 그러다 저녁이 되어서야 슬쩍 나와서는, 새해 첫 날인데 좀 쉬었다고 변명하는 태양의 모습은 어떤가.
상상이 상상으로만 끝나는 까닭이 사실은 불행한 태양의 숙명 때문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다 하는 신년의 해 조차도 제 속도감을 이기지 못하고 반복적 주기속에 갇혀 공전하고 있으며, 스스로를 태우는 만큼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이기에 시시각각 자신을 잃어가고 있다. 그 잔혹한 굴레 속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는 태양의 저 분노를 우리는 얼마만큼 이해할 수 있는가. 그 안에서 희망을 찾는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한 살 한 살 먹어가다 보니, 어느덧 이렇게나 괜한 숫자만 올라, 울타리 안에서 스물 넷을 맞이했다. 그저 황홀했던 스무 살도, 여행의 기억으로 가득찬 따뜻한 스물 하나도, 입대 장정의 신분을 받아들여야 했던 스물 둘 앞에서 무너졌다. 올 것 같지 않던 시간은 현실이 되었고 나는 사회에서 내가 누렸던, 가졌던, 갈망했던 그 모든 것들을 내 손으로 포장해서 집으로 부쳐야만 했다.
아침이면 차라리 꿈이기를 소원했고 밤이면 내일이 오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나 자연의 순리에는 역시나, 예외가 없어 또다른 하루는 어떻게든 찾아왔다. 남은 시간이 육백일도 넘게 까마득히 남은 이등병에게는, 하루를 지나간다는 것이 끝자락으로 하루 더 다가간다는 느낌보다는, 내가 살던 세계로부터 하루 더 멀어지는 것으로 다가왔다. 그저 까마득하고 막막해 다른 기대를 품을 여지는 없었고, 그나마 밖에 있는 이들과의 우정을 추억하며 옛 삶의 흔적을 찾아보려고 애썼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 역시도 마땅히 찾을 길 없는 공통분모의 부재속에 흔들려 갈 뿐이었다.
잃어갔다. 내가 살아오던 세계를. 어쩌다 서울에 가도 주머니에 손을 넣지 못했고, 광화문의 별다방에서 콩차를 홀짝이면서도 지나가는 시위대 주변에 얼쩡거리다 끌려가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에 가시방석이었다. 동아리방에 가도 이제는 함께 지내던 익숙한 얼굴들이 떠나갔음을 인정해야 했고 나누는 대화들은 생소해 채널을 맞추는 데에 한참을 보내야 했다. 교수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첫 대학에 갔을 때의 그 느낌대로, 언어에서나 사고에서나, 다른 세상 사람들로 느껴졌다.
무엇보다 극심했던건 정체성의 문제였다. 절대로 허용될 수 없는 민간인의 지위와 사회를 향한 나의 짝사랑, 그리고 그것은 객관적 상태의 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감정적으로 느끼는 현재와 기억속의 삶의 태도간에도 깊이 닿아있었다. 내가 누구였는지, 어떤 모양으로 살아왔는지, 그리고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철학적인 고민은 관등성명 아래 가려졌고 때로는 그런 무미건조한 시간이 다행스럽기까지 했다. 무언가를 시도할 수 없는 시기라는 자기 변명의 명분이라도 있으니까, 한순간도 스스로를 가만히 두지 못했던 나였지만 한번 풀려버린 긴장은 발전적인 내일에 대한 집착을 미뤄놓게 했다.
그토록 갈망했던 절대자에 대한 폭넓은 이해는, 현실의 피로감 앞에서 차순위로 밀려났다. 배우고 시도하고 가꿔오던 믿음은 마음속 마지막 보루일 수는 있었을지언정 현재의 과제는 아니었다. 그 희석된 의미만큼이나 행위에서 드러나는 나의 내면은 완악했다. 사소한 일에 상처받고 흔들리며 그만큼 돌려주려 했다. 입에서 나오는 것이 악하다 했는데 딱 그 모양이었다. 달랠길 없는 속병을 다루다 다루다 결국은 연기로 뿜었다. 말하자면, 그것이 율법적이건 위선적이건 무엇이건 떠나서, 나는 예수전도단 서울대학사역 출신의, 입궁 직전까지 C국에 파견되어 있었던 단기 선교사라는 최소한의 자존심마저 버린 셈이었다.
슬펐던건 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이 헤어나올 길 없는 한없는 수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군에 갔다 오면 사람이 되어서 나온다더니, 사실은 파계승 아저씨로 변해가고 있을 뿐이었다. 얻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실체도 없고, 거쳐온 어느 조직에서든 조금씩은 누릴 수 있던, 그 전우애? 독립적인 자아상을 구현하는 주체성? 그 어떤 핑계를 들이대 봐도 그저 나는 함몰되어 가고 있을 뿐이었다. 가끔 집에 가도 그냥 별 일 없다는 듯이, 무심하게 표면의 나를 보이고 쓰린 속은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친구들과의 맹목적인 자리속에서 달랬다. 깊은 이야기는 되도록 하지 않았다. 해 봐야 아픈건 나 자신이고, 게다가 밖의 그들에게는 나의 당면현실을 이해할 만한 배경지식도, 단서도 없지 않은가. 그냥 위로도, 이해도, 무엇도 별 필요는 없으니, 함께 있어주는 그들과 함께, 술 한 모금으로 씁쓸함을 털었을 뿐이다. 말하자면 자격지심이었을 게다. 처지가 부끄러워 동창회에 나가지 못하는 마음과도 같이, 진짜 내 속을 보인다는 것은, 그저 낯뜨겁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긴 파견생활은 나를 실무의 왕자로 만들었다. 밖에서 깨작거리는 수준이었던 프로그래밍은, 홀로 프로젝트 하나를 구상하고 해낼 수 있는 수준으로 올라섰다. 그래 봐야 아마추어 수준의, 몇 달 지나다 보면 버그가 속출하는 졸작들이었지만, 그나마에도 목말랐던 정규직들의 니즈를 채우기에는 충분했고, 하나의 일이 끝난 후에는 반드시 그만한 보상이 있었다. 그나마 그런 잔재주가 일개 병사였던 나의 입지를 조금은 올려 주어, 집에 갈 수 있다는 기대감과 함께 약간의 허영심을 자극하면서 내게 동기를 부여했고, 그래서 더 일에만 깊이 매달렸다.
아침에 일어나 잠에 빠져들 때까지 머릿속에는 온갖 수식과 쿼리문이 돌아다녔다. 이쪽 테이블과 저쪽 테이블을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동시키고 동기화할 것인가의 문제는 내가 오늘 저녁에 나올 쌀빵 대신 라면을 먹을 것인가, 의 문제보다 더 중요한 자리에 들어섰다. 필요에 의한 관계는 필요로 하는 쪽을 안달나게 하기에 충분해서, 일반적으로 누릴 수 없을 편의도 많이 누렸고, 일을 추진하기 위해서라면 나를 움직이게 한 바로 그 권력에 접근해 간접적인 힘의 행사를 할 수도 있었다. 그건 사회생활의 수완 내지는 지혜로 생각되었고 특별한 느낌은 없었다. 대학 생활 당시 조교 생활을 하며 교수들과 어울렸던 그 짬밥이 이제야 발휘되나, 하는 엄한 자만심이 함께 차올라 잠시간 벅찼다. 나는, 병사도 아니고 간부도 아닌, 그 중간 어딘가의 실무자, 말하자면 문관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연계성 있는 일을 조금이라도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다행이었을지 모르나, 평생 엔지니어로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일테고, 필요가 종결된 이후의 나는, 그저 머리수 하나짜리 비정규직일 뿐이다. 복귀한 후에 번잡한 서류질들을 자동화시키며 나름의 프로젝트를 시도했지만, 결국은 자기위안을 위한 일종의 집착적 행위에 불과한 것임을 머지않아 깨달을 수 있었다. 다시금 모든 것은 잊혀져 갔다. 그들은 필요하면 나를 찾았으나 우연히 마주치면 그저 애매한 인사로 걸음을 제촉해 갔다. 이용하고 이용하는, 잔머리 싸움의 관계였을 수는 있었겠으나, 그 안에 진심은 남지 않았다.
그만큼이나 삭막하고 빡빡하게 지내왔다. 얻은 것은 무엇인가. 나의 스물 둘, 셋, 꽃다운 두 해는 모두 사그라졌는데, 이제는 스물 넷의 깔깔이 아저씨만 덩그러니 남아 멍하게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끓던 혈기는 어디로 가 버렸나. 집 앞에서도 주머니에 손을 넣지 못하는 나는, 어느새 제도권에 완전히 예속된 늘어진 청춘이었던 것이다. 어떻게 하면 알랑한 잔재주로 그들을 설득해 현실의 편의를 누릴 것인가, 하던 파견생활의 잔머리는, 퇴궁 후의 삶을 구상하면서도 그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내가 생각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는데, 기술은 부족했어도 밖에서 처음 프로그램을 알아갔을 때의 마음은, 세상에 무언가 좋은 것을 주고 싶다는 순수한 동기였을진대, 이제는 그저 이력서 한 줄을 채울 ‘거리’로 전락하고 만 것인가?
형광등 스위치 아래 조잡하게 붙어 있던 ‘오늘의 경구’를 그냥 지나치지 못했던 것은 그런 까닭이다. 우리는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로 이루어진다는데, 어느 녀석이 무슨 생각을 갖고 떠들었는지 함께 적혀있지 않아 알 수는 없었으나, 내 앞에 오기만 한다면 이 녀석을 그냥! 하는 분노가 치밀었다. 여전히 타협되지 않는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과, 다시금 돌아가야 할 내가 살아오던 세상과의 거리감이 너무도 커서 안 그래도 괴로운 마당에 ‘그것들로 내가 이루어진다’니, 이 무슨 괘씸한 소리냔 말이다. 잃어버린 날들로 이루어진 것은 배터리 네 칸 밖에는 없었다. 아버지가 입대하는 내게 주신 세 가지 목표, 즉 지덕체智德體는, 어느 하나도 마땅히 얻지 못한 채 막연하게 멀어져가고 있을 뿐이다. 아 젠장, 이것밖에 안 되는 인간이었나-
자신을 소멸시키며 세상을 비추는 태양의 가슴앓이가 나의 것으로 다가오고, 어느샌가 체념이 더 익숙해진 자신을 보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잊을만 하면 찾아오는 신경성 위염은 유난히도 심하게 도져서 오징어튀김도, 밥도, 절반도 못 넘기고 돌아왔으나, 그래도 또 하루를 살아간다. 무엇 때문인가. 스스로를 깍아 내게 빛을 선사한 태양에 대한 빚진 마음 때문인가. 그 희망으로 2009년 한해를 맞이한 것인가.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열방중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저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다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같이 돌리소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시 126:1-6>
2009년 내 마음을 사로잡은 <약속의 말씀>은 이런 나의 속을 예리하게 파고들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둘 것이다’. 그것은 곧 태양의 고뇌와 밀접하게 닿아 있다. 내딛기 힘든 걸음을 오늘도 뻗으며 온 우주에 그 열기와 생명을 전해주는 아픔, 그것을 누가 값 없고 덧 없다 할 것인가. 느끼고 있는 현재의 모순은 곧 나 자신을 변화시켜 나갈 동인이 될 것이고, 가난한 나의 마음에 심어진 애달픈 눈물들은 사람을 보다 더 이해하고 세상을 사랑할 수 있게 토양을 굳게 해줄 단비이리라.
예외없이 시간은 갈 것이고 철원의 포로는 돌아갈 것이다. 눈물을 흘리자. 울며 씨를 뿌리자. 세상이 무어라 하건, 거친 바람이 나의 속을 파고들더라도, 정체성마저 잊혀져 모든 것이 까마득할지라도, 내가 잊은 나를 그가 기억하고 기다리고 있다면, 변치않은 가치의 힘이 나를 불러 일으킨다면.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나는 매인 자이고, 이런 나를 놓지 못하는 그는, 사랑에 눈먼 자이다.
* 책마을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9-01-05 06:02)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6
13:09:55
일병 조영수
뭐라고 표현해야할지..
단지 소름만 끼쳤을뿐..
수고하셧습니다.(울음) 2009-01-02
14:23:45
일병 송기화
우선 가지로-쏩니다.
후아. 오랜만이군요, 이런 글.
아무리 제자리에서 오래오래 탭댄스를 추더라도 결국엔 한발자국이라도 앞으로 나가면 되는건데, 왜 탭댄스가 더 편한걸까요?
민규님 글에 머리 한 번 들이박고 정신차리렵니다. 2009-01-02
14:33:57
상병 박정민
저를 한번더 돌아보게 만드는 그런글이네요
좋은글이라는 말뿐이 생각이 안납니다- 2009-01-02
14:43:43
상병 차종기
어어엇 ,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으나,
시간이 없는 관계로 , 월요일로 미루겠어요,
흐윽, 2009-01-02
14:45:55
병장 이우중
가지로 2009-01-02
16:01:06
상병 김예찬
어느새 저도 스물넷이군요. 2009-01-02
17:05:15
일병 한성용
우리는 대체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는지... 2009-01-02
17:18:52
병장 김민규
이것 참, 저는 이 글 올리면서, '아, 무플 나겠구나' 하면서 극히 소심해졌더랍니다. 공감해 주시니 어찌 몸둘바를. 고맙습니다.
우리는, 어디에 와 있는 걸까요. 2009-01-02
23:09:23
병장 홍석기
아 진짜, 이런 건 칼럼으로 올리란 말입니다. 또 귀찮게 가지로 세글자를 쳐야 하나.
예전에 어떤 아자씨가 이런 말을 했었어요. 여긴 궁이니까 너는 이병으로 일병으로 상병으로 불리는 거지만, 여기가 궁이라 그런 것 뿐 어차피 너는 홍석기라는 인간이라고. 정말 나는 여전히 나이고 그런 나 자신은 온전히 살아있지만, 너무나 깊숙한 어딘가에 격리되어 깊숙한 시스템 속에서 살아가다보니 나에 맞춰 살아가는 것보다 작대기 수에 맞춰 변화하는 내가 있네요. 지난 날들을 뒤돌아 보면 작대기 세 개, 작대기 네 개의 누군과와 나를 비교해봐도 전혀 다르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는, 피로와 귀찮음에 시달려 이제는 '그래도 책마을이 있으니...'따위의 말조차 나오지 않는 나를 보게 되는군요. 찾아 봐야 하겠군요. 잃어버린 것들을, 부서져 버린 나의 파편들을-
무슨 김민규 성령 충만기도 아니고, 요즘 각성 모드에 돌입하셨군요. 키르키즈스탄이 문제인가. 아무리 글로발이라지만 나까지 데미지를 입는 이런 상황은 뭔가.
에잇, 모르겠다
가지로- 2009-01-03
14:59:05
병장 김민규
거의 만성피로 상태인지, 오늘은 하루종일 죽어서 지냈군요. 근데 잠좀 들려고 하면 9꾼티비 보라고 깨우고, 잠 좀 자려고 하면 딱 삼십 분 만에 무슨 집합. 며칠만 지내고 나면 끝날 일이라면 그냥, 까짓거 해 주지 하겠는데, 이걸 내가 처한 현실로 받아들여야 하는 이상 여유롭게 바라보기는 어려웠습니다. 허나 주변인들을 생각하면 내 사정만 고려할 수 없을진대, 한없는 무기력으로 침몰하면서 '에라 모르겠다' 따위의 태도를 견지하는 자신을 어찌 받아들여야 할 것인지는 아직도 모르겠군요.
한 일주일째 계속해서 속이 쓰려요. 밥을 못 넘길 정도가 됐는데, 그 가슴 한복판을 눌러보면 뭔가 굳은듯이 아프고 말이죠, 아무래도 다음 주에는 선무당에게라도 좀 다녀 올까봐요. 속병까지 겹치니 더 여유가 없는 것 같아서
쩝. 문제는 키르키즈스탄인가요. 19일 남았습니다. 2009-01-03
19:09:53
상병 정근영
글은 마음에 와서 박혔으나, 때로 아무 말도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댓글로 뭔가를 적고싶은데, 아무 것도 쓰지 못하겠습니다.
그래서 조용히 가지로- 외칩니다. 2009-01-04
20:27:00
병장 이동석
사실 제가 난독증인지, 아직 이 글을 못 읽고 있습니다. 꼭 읽어내겠어요. 2009-01-05
06:47:37
병장 정병훈
풉. 복귀하니 민규형 글이 가지로 와있군요. 이거 다들 좋아하는 글인데, 저도 시간 내서 꼭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후기는 쪽지로 쏴드릴까요? 풉. 고맙습니다. 2009-01-05
19:14:32
병장 정병훈
당근을 통해서 프린트해 읽어 봅니다. 어디서 그런 겸손함이 나오는지, 참. 허허허
생각보다 깔끔하게 뽑힌 글은 정말 다시 한번 자괴감에 빠지게 만듭니다.
잃어버린 것들로 이뤄진 우리의 삶이라니, 좀 가슴이 아픕니다. 잃어 버렸다고 생각하면 그렇지만 결국은 본인이 버린 것들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엄연히 잃어버린것과 버린것과는 다르니까요. 조금 더 긍정적인 생각 속에서 과거의 것들을 내것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다들 이렇게 동감 하는것 보니, 제 사고방식이 잘못 된걸수도 있고 이거 참.
저는 개인적으로 지나간 삶에 대해서 후회 하지 않습니다. 대신 저에대해서 후회를 하지요. 결국은 그게 그 말일 수도 있으나, 미묘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댓글로나마 남겨 놓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09-01-07
03:42: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