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글-내글내생각] 무라카미 류의 69, 마지막 장을 읽고 덮었을 때.  
일병 이승진   2009-06-18 141439, 조회 269, 추천0 

69.
축제에 대한 단상  유월 십이일 이천구년의 침상에서 생각하다.
그래피티. 바닥 건물 할 것 없이 공간을 점거해 버린다.
어떤 삐라도 어떤 대자보도 강요하지 않지만 공간을 점유한 언어는 무차별적으로 대중에게 다가간다. 언어 아닌 언어는 대중의 관심을 집중

글은 다시 쓰여질 수 없다. 글은 말이다. 내 글은 말이다.
토해낸 말을 숨어서 다시 끄윽끄윽 삼켜버리는 건 얼마나 비겁한가.
불완전하기 때문에 아름다울 수 있다 어떤 것도 재현 불가능하다

그러나 같은 말을 반복하는 건 또한 어떤가. 다시 쓰일 수 없는 글처럼 다시 뱉으면 뱉을수록 나의 말은 세련되고 가치 있어질까. 첫 탄성과 같은 소리가, 감정이 나올 수 있을까.

판화. 나는 알겠다. 그저 짐작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선을 덧대지 않고 빠르게 같은 언어를 쏘아댈 수 있는 방법. 철저하게 손으로 행하지만 복제 가능한.
우리의 그림은 판화가 되리라. 내 한 줄기 미세한 감정의 떨림까지 상세히 하나의 흔적으로 쪼개어 파묻어 영원한 화석으로 배출하리라.



점유한 공간은 깃발이 된다. 깃발의 이미지를 계속 생각했다.
수선관 지하 계단을 통과할 때 언덕을 오를 때 벤치에 앉을 때 여기저기 보이는 누군가의 옆모습. 영상학과 선배의 복제된 낙서들은 내 마음을 설레게 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나는 흔적의 의미를 알 수 없다. 다만 내 생각에 맞춰서 기분 좋은 추측들을 해볼 뿐.
「영역표시」
도서관 책상의 낡은 칼자국도 화장실 벽에 조악한 낙서도 이젠 없다.
새로 만든, 익숙하지 못한 공간의 냄새로 우리는 더 이상 이곳이 우리의 공간이 아니라고 인식한다.
매일 지나치지만 뭣하나 우리 손길이 닿지 않은 돈을 내고 제공 받는 철저한 수동의 공간 표시할 영역 따위는 어디에도 없나.

69를 읽고 겐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은 찹찹했다. 왠지 자신의 유년 시절을 겐으로 치환하여 응시하는 타자적인 류의 자세 때문에. 어설픈, 어설픈 영웅심과 반문화의 한계 어쭙잖은 짧은 지식. 자조적인 문체. 그는 멋졌던 유년을 '- 라면 그건 거짓말이고' 라는 말로 최대한 진솔한 느낌을 주는 어투로 얘기해보지만 후반부로가면 조금씩 사라지는 조심성.
그는 누군가에게 비난 받을 걸 염두에 두고 썼을 것 같다는 막연한 추측을 해본다. 뭔가 쿨하신 우리 예술가 선생 류는 즐기면 그만이라는 상업적인 멘트를 날려주며 무책임하게 끝맺어버린다.
분명히 그의 회상에는 복접한 감정이 드러난다. 물론 겐이라는 화자를 통해 현시점-과거시점의 시각이 아닌 현시점자체로 말해보지만. 때때로 겐은, 축제를 즐기는 겐은 일관성이 없다.
이것은 소설이 아니다. 중첩된 시간의 류가 펼치는 자전적인 반성문이다.

점유한 공간
영역표시는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 처음엔 우리의 초라한 정문.
누군가는 우리의 정문이 초라하다고 말한다. 그들에게 정문은 그저 철 덩어리, 돌덩어리정도의 상징물. 뭔가 웅장하고 숭고한 것을 갈구하는 그들에게 의미나 내용은 필요 없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강요한다. 이 누더기 같은 내용을.

우리가 누구인가. 우리는 개개인. 개개인의 집합. 서로 맞닿은 희미한 접경을 딱풀로 아슬아슬 붙인 우리는 붓 한 자루로, 펜 하나로 카메라로 온몸으로 세상을 때려부술 춤을 추고 있는 자들.

누군가 노래로 평화를 이룰 수 있다고 믿었듯, 그저 우리는 함께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 거대한 의지도 없이 우리는 하나의 흐름으로 모든 것을 휩쓸어버릴 개미떼. 광란의 개미떼.



누구도 휩쓸릴 수 있는 광풍이지만 결코 집단으로 매도당하지 않을 우리는 순수한 욕망. 우리는 스치듯이 서로를 확인할 것이다. 우리의 공간에서.


초라한 정문을 초라하게 점유한 우리는 이제 부루마블 시작점을 밟다. 우리는 각자의 깃발을 몸에 걸치고 같은 깃발을 들 친구들을 찾는다. 

시작점에서 우리는 왼손에 검은 매니큐어를 다섯 손톱 모두에 칠한다.
기반의 사람들은 관찰력이 뛰어나야 할지도 모른다. 섬세한 기초.
우리는 연락처가 없다. 우리의 영역, 공간에 존재하는 것이 우리의 연락망의 전부.

수선관, 법대 건물로 가는 실크로드. 거대한-마음에 안 드는 이 단어- 벽면엔 온통 같은 그림들이 무수히 반복된다. 붕대를 감은 왼팔. 누군가는 소설속의 학생회장처럼 분개할 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어찌됐든 우리는 흰 붕대를 왼팔에 감고, 그 말도 안 되게 짧은 실크로드를 활보한다. 마치 유행이나 되는 양.

번호. 순서는 필요 없다. 그저 우리의 공간에 합류하는 걸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저들은 우리를 향해 이를 드러내고 달려와선 목을 물어뜯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그건 모르는 일이다.
머릿속으로 암만 수천 개의 시나리오를 짜놓아도 무엇하나 그대로 이뤄진 적은 없다.
역사에 가정이 없듯이, 미래 역시 가정하고 싶지 않다.

축제의 목적은 불순해서는 안 된다, 누군가의 말대로 불순하다는 언어를 그대로 사용한다.
그렇다면 축제는 충분히 불순해야한다. 그러나 너무 많은 것을 담는 것은 전달력이 약하거니와 광풍을 미풍으로 쪼개버릴 지도( 모르는 일이다 )
목적은 단 한 가지. 새로운 언어의 발명. 모든 언어로 그들 머리에 결코 빠짐없이 각인하리라. 우리 모두의 몸짓을. 경험을 공유하리라.

69의 겐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냥 밉상으로 볼 수 없는 건, 또 한 번 발견했기 때문이다.
나. 재미난 전복을 꿈꾸는 겐의 모습은 일상에 지친 나의 또 다른 망상의 실체이다. 양계장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판옵티콘 같은 재수학원의 죄수가 되었다. 터덜터덜 걸어간 대학교는 이미 충만한 실망감으로 더 이상 내게 좌절감마저 주지 않았다. 알고 있었으니까. 좌절은 희망 없이 생겨나지 않는다.
몇 마디로 그린 나의 자화상은 과연 나의 자화상인가. 나 하나의 자화상일까. 
여럿. 나는 여럿이다. 여럿 나의 모습. 우리 모두 똑같은 억압에서 태어난 숨 쉬지 못하는 핏덩어리들. 단 한 번도 눈 뜬 적 없고 단 한 번도 숨쉬어보지 못한 피 흘리는 고기 덩어리들이다.
그래서 양가적으로 류를 존대할 수밖에 없다. 겉멋이라 칭한다면 마음이 편할까.
그래도, 그 몸짓 하나는 충분한 의미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7-20
080731 

 

상병 김유현 
  좌절은 희망 없이 생겨나지 않는다. 

가지로. 2009-06-18
143426
  

 

상병 양동훈 
  보내야겠네요. 가지로- 2009-06-18
151249
  

 

상병 권홍목 
  우린 겉멋조차 없었을테니까요. 
가지로. 2009-06-18
151719
  

 

상병 양동훈 
  이거 왠지 가지로 스트레이트 3연타는 처음 보는 기분이(!) 2009-06-18
152641
  

 

상병 김태완 
  똑같은 억압에서 태어난 숨 쉬지 못하는 핏덩어리들. 단 한 번도 눈 뜬 적 없고 단 한 번도 숨쉬어보지 못한 피 흘리는 고기 덩어리들. 표현한번 짜릿하군요. 공감이 확 됩니다. 

공중그네에 나왔던 다쓰로라는 정신과 의사가 생각나는군요. 겉멋에 치중하여 나이 36살, 의학학부장의 사위라는 굴레때문에 본래 장난기 많던 성격을 모조리 버려버리고 지정된 삶을 부유하던 사람. 우리의 자화상과 닮아 있지 않은가 생각해봅니다. 또한 오타쿠로 결부되어 묘지로 은폐되어지는 개성적 취향들도 함께 떠오릅니다. 2009-06-18
160607
  

 

일병 이승진 
  태완아마도 그 묘지가 우리의 시작이 되겠지요. 모든 정상 범주를 벗어난 것들 속에 섰을 때, 전복적인 삶이 시작될테니까요. 하지만, 또 다시 울타리 외의 범주가 정상으로 회귀하게 될 때 느끼는 무력감은 참 묘하달까요. 2009-06-19
072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