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글-내글내생각] 리오 퍼디난드의 명예로운 은퇴를 위하여
상병 홍석기 2008-08-01 15:07:33, 조회: 1,182, 추천:20
썼다 지웠다 올릴까 말까 계속 고민하다 결국 올립니다.
이 글을 내 군생활에서 하나의 쉼표로 삼아, 이젠 또 다른 나를 이야기 할 수 있기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다 보니 스크롤의 압박이 상당할 것 같습니다. 얼마 되지 않은 시간들이었지만, 그래도 꽤 사건이 있었네요. (앗 이건 제대인사용 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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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금요일 일과 후, 나는 컴퓨터에 앉아 있다. 그것도 ‘자발적 야근’ 이다. 1초라도 근무시간을 줄이기 위하여 하루가 멀다 하고 뻑뻑 담배를 피우고, 아무에게나 전화를 하고, 국방일보와 함께 화장실을 들락날락했던 내 평소의 모습에 비하면 그야말로 해가 서쪽에서 뜬 일이 아닐까 싶다. 만약 나의 이런 모습을 광부 분들이 보셨다면 ‘우리 병사가 달라졌어요’ 에 내보내려할 지도 모르겠다. 그야말로 위로슈가감이다. 그러나, 이것은 절대로 내가 의도한 것이 아니다. 나는 어떤 불가항력에 이끌려 야근을 하고 있다. 마치 무더운 여름 날, 선풍기도 고장난 내무실에 있다 보면 시원한 밖으로 나가 담배 한 대 피울 수 밖에 없는 것처럼, 지금 사무실에 올라와 글을 쓰지 않으면 이틀 전부터 찾아온 이 원인 불명의 두통을 없앨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럼 나는 왜 이 모양이 된 것인가. 한번 사건의 단서를 찾아 잠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도록 하자.
이틀 전, ‘아들 기수’가 자대에 도착했다. 우렁찬 ‘필승’ 소리와 함께 시선 둘 곳을 찾지 못하고 어리버리한 눈빛을 보내는 그들을 보고, 꼭 1년 전의 내 모습이 생각났다. 오자마자 경례할 때 ‘필’ 만 들리고 ‘승’ 이 안 들린다며 갈굼 당하고, ‘목적암기는 금지되어 있으나...’ 라고 말해야 했으나 ‘관등성명은 금지되어 있으나...’ 라고 말 했다가 흡연구역으로 끌려가 또 갈굼 당하고, 선임이 오나 안 오나 항상 ‘진도멍멍이 1호’ 의 경계 태세로 생활관을 배회하고, 내무실에 들어 가 10명의 짬 찬 눈빛들을 마주했을 때의 그 위압감. 그때 나는 로마군에 포로로 잡힌 한니발의 병사처럼, 앞으로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겠구나, 란 생각을 했었다. 그랬던 내가, 어느덧 1년이 흘러 상병이 되고, 이층침대의 1층을 쓰게 되고, ‘아버지’ 가 되고, 어느덧 꺽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앞으로 약 1년 뒤에는 전역을 하겠지. 이런 생각을 하니 기분은 좋았다. 그래, 나도 어떻게 버텼구나. 절대로 안 올 것 같은 시간들이었는데.
하지만 마냥 좋아할 수는 없었다. ‘나’의 신분상승은 누군가의 추락을 전제로 하고 있으므로, 이런 허무맹랑한 행복 뒤에는, 쓸쓸한 이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또 어떤 ‘누군가’ 를 떠나 보내야 한다. 그리고 하필 이번에 떠나 보내야 할 그 ‘누군가’는, 예전처럼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제대후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따위의 상투적인 문구 만으로 이별을 고할 수는, 없다.
여기서 잠시,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 나의 신병 시절로 돌아가서, 여태까지 내가 떠나 보냈던 선임들의 역사를 살펴 보기로 하자. (독자분들의 귀한 시간을 위해 8배속 빨리감기로 진행하겠다).
2.
내가 작년 이맘쯤에 신병으로 이곳에 왔으니, 맨 처음 떠나 보낸 사람들은 내가 자대 온지 2주만에 집으로 향했던 공군 병 제 625기일 것이다. 여기서부터 시작하자. 나는 현재까지 14번의 이별을 했다.
첫 번째 이별
막내가 해야 하는 전통에 따라 8옥타브 화음을 자랑하며 필승 받아주고, 일명 ‘문 막기’ 를 했었다. 전역자가 나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개인적 감흥은 없었지만, 나도 모르게 분위기에 휩쓸려 눈물을 떨굴 뻔했다. 이것은 단지 군중심리였을까, 아니면 일주일 밖에 함께하지 못한 노란딱지라도 ‘이별의 무게’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일까.
두 번째 이별
이 사람에 대해 서술하기 전에 사정 설명을 좀 하겠다.
앞에서 잠깐 언급을 했지만, 나는 오자마자 몇 가지 실수를 해서 캐갈굼을 당했다. ‘역시 나는 다재다능하여 고문관의 자질도 갖추고 있군’ 이라고 자기 위안을 삼고 있던 찰나, ‘신병 소개’ 를 할테니 멘트를 준비해 놓으란 주문을 받았다. 이번에도 반응 안좋으면 너같은놈 앞으로 쌩 까버릴 거라는 가시돋힌 참언과 함께. 그리하여 나는 전국대회를 위해 미친 듯이 필드 슛을 연습했던 강백호 처럼 자기소개 준비를 했다. 그리고 내 차례가 되어 숨을 깊게 들이쉬고 운을 떼려는 찰나,
큰 웃음소리와 함께 ‘강xx다~’ 란 외침을 들었다.
깜짝 놀라 상황을 살펴보니 어느새 배꼽을 잡고 몇 명을 소파에 나자빠져 있고, 짬 안되는 놈들은 웃음을 참고 있고, 어느 놈은 문 밖으로 튀어나가더니, 어떤 사람을 데려왔다. 그렇다. 나는 ‘강xx 병장’ 을 똑 닮았다는 거였다. 그래, 이러한 사정이 있었다.
그래서 이 사람이 나갔을 땐, 뭔가 감흥이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말 한마디 제대로 안 해본 사이인데 무슨 할말이 있겠는가. 거기다 난 짬less의 사정상 이 사람이 가는 것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전역 전날 밤, 내무실에 찾아와 “미안하다. 그동안 나 닮았다는 소리 들어서 힘들었을텐데...” 한마디 해주고 갔던 것이 나의 그에 대한 기억의 전부이다.
세 번째 이별
이번엔 내 직속 선임이 전역했다. 그러나 맨날 나한테 일 시키고 옆에서 싸이월드만 했던 사람한테 좋은 감정이 있을 리 없다. 그나마 미운 정이라도 있으려나 했는데, 억지 눈물도 나지 않았다. 앞에서 언급했던 뻔한 멘트 (“그동안 수고...)로 끝냈다.
네 번째 이별
우리 내무실 ‘왕고’(‘눈의 꽃’ 을 부른 가수와 이름이 같다. 설마 나카시마 미카는 아니다)의 전역이 있었다. 첫 날의 아픈 경험 이후로 바싹 쫄아있는 내가 안쓰러웠던지, 가끔 날 데리고 BX에 가 ‘치즈 핫 스파왕’을 사주었다 (이상하게도 그것만 사줬다).
그러면서 나에게 ‘XX(우리 부대찌개 상호) 를 바꾼 5인의 전설- 항상 5인 중의 한명으로 본인이 포함되었다- 이야기와,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선임이랑 친해지려고 애 써봤자, 너보다 먼저 가버리고 결국 혼자 남게 돼. 후임들에게 잘 해주려고 노력해. 결국 XX의 역사에서 너를 평가해 주는 것은 그들이야.”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왕고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와서 그랬는지, 치즈 핫 스파왕의 화학물질 때문이었는지 모르지만 꽤나 감동받았다. 그의 이 말은 그 후 나의 군생활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을 정도로. 하지만, 이런 그였음에도 불구하고, 역시 짬 LESS의 사정상 나는 그를 제대로 보내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아직 그를 기억한다. 가기 전 마지막 불침번을 서며 그가 남긴 눈물자국 깃든 편지가, 나에게 두 번째 감동을 선사했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 이별
내 두 번째 직속 선임의 전역. 내무실에서 무서웠던 선임 중 한 명이었던 모양이지만, 막내 생활이 길어서 그랬는지 막내였던 나에게 끔찍이도 잘해주었다. 내가 힘들었을 때면, 항상 어디선가 그가 나타나서, 난 울음을 터뜨렸고, 그는 나를 달래느라 무진 애를 써야했다. 이런 그였기에, 나는 그에게 건강하라는 멘트 한마디 못 던지고 홍수에 댐 터지듯 밀려오던 울음을 터뜨렸었고, 그 후로 ‘나 전역할 때도 울어줄거지?’ 라는 질문을 여러 선임들에게 들어야 했다. 전역한 ‘그’와는 아직도 가끔씩 연락한다.
여섯 번째 이별
신병 때의 내무실 ‘투고’가 전역했다. 언제나 해맑은 미소와 나이에 걸맞지 않은 순수한 귀여움으로 구름 낀 날씨에도 해를 띄울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갈 때 후임 여럿 울렸다. 이 때는 어찌된 일인지 나는 울지 않았고, ‘섭섭하다’ 란 말을 들어야 했다.
일곱 번째 이별
한 선임이 나에게 꼭 모자를 물려 줘야 한다면서 기어코 주고 갔다.
여덟 번째 이별
신병 때 내무실 ‘쓰리고’ 로, 그 다음 내무실에서 나와 1,2층을 나눠쓰며 담배와 먹을것을 공유했던 선임이었다. (물론 담배는 내가 일방적으로 많이 뜯겨서, 아직도 다 회수 하지 못했지만) 나와의 기수차이가 열아홉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년병장과 갓일병임에도 불구하고 처음으로 말 놓고 형동생 하던 사이였다. 그는 나와 비슷하게 오자마자 캐갈굼을 당한 경력이 있었기 때문에 동병상련이라 잘해주었는지, 단지 내가 담배가 많아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어쨌 이별 후 그의 공백은 컸다. 중간에 한 기수가 없어서 일곱 번째와 여덟 번째 이별 사이의 기간이 길어서만은 아닐 것이다. 평등조건이든 불평등조건이든 간에 우린 ‘공유’라는 관계를 맺고 있었다. 혹시 우린 담배나 과자 말고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또 공유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홉 번째, 열, 열한번째 이별
얘기 할 만한 것이 별로 없으니 생략하겠다.
열두번째 이별
색다른 경험이었다. 이번 기수에도 사실 친한 선임이 별로 없었으니, 그냥 무덤덤하게 생각하고 있던 찰나였다. 그래서 전역자들이 하나 둘 내무실에 찾아왔을때도, 그냥 아무 감정 없는 듯이 대답했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들이 내가 이병 때 머리 깎아준 것까지 일일이 기억하면서 후임과 더 친해지지 못했던 자신들을 책망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립서비스가 아니라 진심이었다는것을, 화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더 말을 해보려고 눈을 떼지 않던 그들의 모습을 보고 알 수 있었다. 어쩌면 나도, 쿨한 척 무덤덤해 하지 말고 한 순간이라도 더 그들과 소통하기 위한 시도를 해 보아야 하지 않았을까.
열 세 번째 이별, 열 네 번째 이별
그동안 내 군생활이 답답했던 이유는 그것이었다. 나는 선임들에게 최소한의 예우만 해주고, 진심에는 다가가지 못하게 벽을 쌓아놓았다. 대화 주제는 항상 근무할 때 있었던 이야기, 담배는 마세가 최고인가 말보로가 최고인가, 원더걸스 선예가 이쁜가 소희가 이쁜가 (요즘 유빈이 뜨고 있다지만 여기서는 논외로 한다), 혹은 “슈가 언제 나가십니까?” 에 국한되었다. 애초에 위험을 무릅쓰고 가까워 지기도 싫었다. 괜히 그랬다가 ‘튀는’ 것은 싫었으니까. 관심도 별로 없는데 알아봤자 손해밖에 없는, 선임이란 내게 그런 존재였다. 하지만 이런 내 태도는, 그리고 “선임은 먼저 가버리니 후임에게 잘해라”는 ‘왕고’의 철학에는 맹점이 있었다. 선임이기 이전에 그들은 인간이다. 나는 그들을 인간으로 대해야 했고, 그 인간에 대한 ‘감상’ 을 얘기할 수 있어야 했다. 그랬다면, 그들이 떠나는 순간, 우리는 진정한 인간과 인간으로 서로를 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때는 늦었다. 내가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열 세 번째, 열 네 번째 이별은 찾아왔다. 결국 나는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맥심 커피믹스 스틱의 뜯어진 비닐 쪼가리 만큼이라도, 내가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순간을 공유했던 사람은 없었는지. 공군에서 이병 찾는 수준이겠지만, 그런 추억의 파편 한 조각이라도 찾을 수 있다면, 하고 말이다.
그리고 어느덧, 나는 열 다섯 번째 이별을 맞이하려 하고 있었다.
3.
텔레토비도 아니고 왠 반복재생이냐 할 사람도 있겠지만, 다시 테잎을 되돌려, 나의 신병 시절로 되돌아가 보자. 추억의 파편 한 조각을 찾아서, 그리고 어떤 만남의 시작을, 찾아서.
내가 사무실로 배속을 받은 다음 날, 내 선임(싸이월드 그놈) 은 뭐 그리 신이 났는지 나에게 xx청사 투어를 시켜주겠다, 는 선언과 함께 온 사무실을 다 돌아다니며 나를 다른 선임들에게 소개 시키는데 열을 올리고 있었다. 신이 나서 조선 통신사 왜나라 행차 하듯 자신 있게 문을 박차고 이 사무실 저 사무실을 드나드는 그와는 달리, 캐신병인 나에게 이러한 일이 달가웠을 리가 없었다. 혹시나 실수라도 한다면, 하는 생각으로 최대한 단답형으로, 인간적인 감정따윈 감추고 인사를 다녔던 나. 결국엔 내 선임놈도 그 밋밋한 공기의 흐름을 감지한 듯, 그러나 이 짓거릴 그만 두고 돌아 가자...는 나의 실날같은 기대는 무시한 채, 이번엔 나를 웃겨 보려 했다.
“ 저기 있는 애, 리오 퍼디난드 닮지 않았냐? 그 맨유의 수비수 있잖아.”
아, 고전적인 ‘닮은 꼴’ 농담이었다. 또 억지로 갖다 붙이기 식일 게 뻔하다. 루니나 박지성도 아니고 하필 리오 퍼디난드를 닮은 레어한 인간이 있을 리가, 하며 내 선임놈이 가리킨 사람에게 고개를 돌린 순간
......진짜 리오 퍼디난드가 군복을 입고 앉아 있었다. 흐흐 웃으면 안돼 웃으면 안돼 웃으면 안돼 웃으면....
퓨하H
....아 이럴수가, 캐신병 주제에 미쳤다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구나. 자대 온지 일주일만에 군생활이 막장으로 치닫겠구나. 하아, 한숨이라도 내쉬고 좀 진정해 보려는 순간, 리오 퍼디난드와 눈이 딱 마주쳐 버렸다. 자세히 보니 코 근처에 칼빵 같은 것도 살짝 보이는 듯하는 것이, 이미 상병 연가만큼이나 피아노를 친 듯한 아우라가 뿜어져 나온다. 허억. 그 순간 내 머리 속에서는 여태 살아온 21년간의 인생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고 있었다. 이렇게 끝나 버릴 거라면, 슈가라도 다 쓸걸.... 이런 내 속마음도 옆에 있던 내 선임은 웃으며 이제 사무실로 돌아가자신다. 결국 난 그날 하루 종일 ‘퍼디’ 에게서 언제 어디서 호출이 올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바싹 긴장한 채로 사무실에 있어야 했다. 다행히 연락은 오지 않았지만, 내무실에서 마주칠지도 모른다. 피해야 해 피하자 피아자 피아자...한때 찬호박과 배터리를 이루었던 이 포수는 이번에도 역시나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고된 하루를 마치고 들어간 샤워실에서, ‘퍼디’ 와 마주친 것이다. 그리고 아쉽게도 나는 ‘점퍼’의 능력을 소유하고 있지 못했으므로, 그냥 그 자리에서 ‘얼음’ 이 되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잠시 나를 지긋이 바라보곤 먼저 입을 열었다.
“샤워 하려고? 내가 자리 비워줄테니 여기 써.”
땡, 뭔가 액션을 취해야 할 때다. 인간이 발명한 감사의 표현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오전의 사건을 고려할 때 그의 그 말은 여러 가지 의미를 띄고 있을 가능성도 있었고, 어쨌거나 나는 신병이므로, 내 대답은 한 가지로 국한되겠다.
“예, 이병 홍석기, 감사합니다.”
그가 돌아가고 나서, 앗차, 일단 거절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미 ‘찍힌 상태’ 였을 가능성이 농후했으므로, 그냥 후회 반 체념 반의 상태로 샤워를 하고는 돌아가서 호출을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나 호출은 없었다.
이렇게, 신병의 찌질한 세계관 속에서, 우리의 만남은 시작되었다.
4.
그 이후 한 동안 그(‘퍼디’) 와 나 사이에는 이렇다 할 교류가 없었다. 이따금 흡연구역에서 그와 마주 칠 때 식겁했던 기억이 있기는 하지만, 그럴 때엔 항상 제 3자들이 있었으므로 꺽상이었던 그와 이병인 나 사이에 직접적인 대화가 오갈 리는 없었다. 또한 ‘퍼디’는 라이벌 첼시의 입장에서 보나 나의 입장에서 보나 여전히 두려운 존재였던 것은 틀림없지만, 첼시가 골을 넣기 위해선 스콜스, 캐릭, 하그리브스, 비디치 등을 먼저 제껴야 하듯 내게도 인접 기수의 ‘적’들- 주로 내가 자초했지만, 개중엔 스콜스의 중거리슛 만큼이나 급작스럽고 굵직한 갈굼을 뻥뻥 터뜨려주던 놈도 있었다-부터 상대해야 했으므로, 아직은 직접적인 위협을 가하지 않고 있는 ‘퍼디’상병은 내 꼬인 군생활에서 잠시 잊혀진 존재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언젠가 내가 그의 ‘아들 기수’ 라는 사실이 언급되면서 그가 뭔가 내 인적 사항- 취미나, 출신 학교 같은 잡담 재료- 에 대해 물어 봤던 기억도 얼핏 나는 듯 하지만, 그리고 그러면서 은근히 친근함을 나타내려 했던 것 같지만, 내게 아직 그는 다른 108명의 선임들과 똑같은 존재일 뿐이었다. 그러다 어느덧 나는 일병이 되었고, ‘우리는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담배화함으로, 해방된 세상을 건설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는 주영준씨의 말처럼, 나는 선임들과의 모든 관계를 담배화함으로 곱창에서 해방된 나날을 보내고 있는 터였다.
그렇게 ‘퍼디’의 존재가 잊혀질 것 같던 무렵, 그가 우리 사무실에 찾아왔다. 물론 업무상 방문이었다. 나는 하필 그때 마이클 무어의 <이봐, 내 나라를 돌려줘>란 책을 읽다가, 때아닌 그의 방문에 서둘러 책 표지가 위로 가게끔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그는 책 쪽으로 눈길을 보내더니, 나에게 물었다.
“어, 너 이런 책 좋아하니?”
이 책에 무슨 문제라도 있나? 하지만 마이클 무어의 팬은 도망가지도, 숨지도 않는다.
나는 “예”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내며 사무실을 나갔다. 그 당시, 그가 영화<세븐> 이나 <컨스피러시> 에 나오는 것처럼 <교수와 광인> 이나<호밀밭의 파수꾼> 등 특정한 책을 대출해가는 놈을 감시하는 FBI처럼 사람들이 보는 책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알 턱이 없었다.
그날 밤, 그는 나에게 같이 담배를 피러 가자고 했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 내가 사회 비판적인 책을 좋아한다는 것과, 하워드 진과 마이클 무어의 팬이라는 것, 그리고 삐딱했던 나의 유학 생활과, 그로 인해 삐딱해진 세계관 등에 대한 얘기를 했다. 그러자 그는 그가 가지고 있던 ‘유학생에 대한 편견’ 을 나에게도 가지고 있었다고 밝히며, 내가 그 책을 읽는 것을 보고 좀 놀랐다는 감상과 함께, 팔뚝 좀 흔들었던 그의 과거에 대해, 또한 같은 입장이었던 제대한 -나와 닮았다는- ‘강xx 병장’ (역시 팔뚝 좀 흔드셨던)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런 류의 사람들-그러니까 '퍼디'-는 이전까지의 나의 ‘세계’ 에서는 존재할 수 없었던 존재였다. 볼 수도, 만날 수도 없었다. 미국에선 맨유의 경기를 볼 수 없다. 나는 모피어스를 맞이한 네오의 기분으로, 그의 이야기를 관심 있게 들었다. 그렇게 우린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고, 어느새 소등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생활관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그는 잠시 내 방에 들러, 라고 말했고, 그의 방에서 나는 검은색 파일 한 권(검은색 노트가 아니다)을 받았다. 파일 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수많은 A4용지 안에 갇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군생활을 통째로 바꿔 놓았다.
5.
그 뒤 나는 파일 한 권을 옆구리에 끼고 출근하여, 광부분들의 눈치를 살살 보면서 무수한 글들을 읽었다.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때 그 두근거림 속에 느꼈던 감동을. 김지민의 글을 읽으며 그의 번뜩이는 유머 감각과 발칙한 상상력을 (특히 <복수혈전>중 ‘1945 스트라이커 같이 하다가 P 2개 더 먹었다고 스타트 버튼 누른 채 밟혔다...’ 라는 구절에서 터져 나온 웃음이 사무실을 울리는 바람에 나는 연신 재채기를 내뱉어야 했다), 주영준의 텍스트 속에 숨겨진 이글거리는 파이터 본능을, 어려워서 몇 번이고 읽었지만 읽을 때마다 연신 고개를 끄덕거리게 만들었던 목동 김프로의 글들을, 최종 단계의 마인 부우로 변신하는 허원영의 모습을, 靑春을, ‘상병 최후의 날’을. 참으로 오랜만에, ‘살아 있다’ 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마치 챔스 결승에 나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베스트 일레븐을 보는 기분이랄까.
으레 최고의 플레이에서 느낀 감동은 종료 휘슬이 울린 뒤에도 쉽사리 사라지지 않듯이, 검은 파일의 마지막 장이 넘겨진 후에도 나는 그 강렬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결국 그 날 이후, 나는 종종 전화를 걸어 담배 피자는 명목으로 그를 불러내어 더 많은 글들을 요구했고, 일과 후 한번쯤 그의 내무실에 들리는 습관이 생겼다. (공포감 따위는 이미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그렇게 하루가 멀다 하고 사라지는 담배에 연초마저 바닥났던 어느 날, 아침부터 <화장실에서 사랑의 본질을 토론하다>를 읽고 있었던 그날, 나는 한 통의 쪽지를 받았다.
“http://xx.x.xx.xxx?book 책마을 주소다. 가서 가입해”
얼른 링크를 Ctrl+C, Ctrl+P 한 후 나는 서둘러 그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나는 맨유의 풀 스쿼드를 만났다. 그 곳은 당시 HAS에 만들어져 있던 ‘책마을’ 이었다. 언젠가, 나도 그들과 함께 플레이 할 수 있을까.
그렇게 나는 책마을과 처음 만났다.
6.
이런 연유로 인하여, 나는 지금 한 사람의 책마을 주민으로 활동하고 있고, 지금 이 글을 써 내려가고 있고, 맨유의 베스트 일레븐과 플레이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비록 로이 킨, 베컴, 반 니스텔루이 등등은 은퇴하였지만, 그 뒤를 이은 루니, 테베스, C.호나우두, 박지성 등의 플레이가 여전히 맨유를 빛내고 있듯이 주옥같은 글들은 여전하며, 하루하루 좋은 글을 발견할 때마다 ‘살아 있다’ 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뭐, 비록 나 자신은 쥬세페 로시나 동팡저우, 잘 쳐줘서 여기저기 출전은 하지만 기여도1 에 불과한 대런 플레처 정도이기 때문에, 역시나 별 기여는 못하고 있지만.
사실, 위와 같은 대단한 비유에, 자잘한 사연까지 이런 장문의 글에 늘어놓고는 이런 말을 하는 것도 그렇긴 하지만, 나와 ‘퍼디’ 병장의 관계는 여기서 언급된 만큼 대단한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도 그런것이, 책마을에서나 실제 세계에서나 이렇다 할 논쟁 몇 번 해본 적은 커녕, 잡담도 많이 안하고 맨날 같이 입에는 디스 하나 물고, 손에는 싸구려 맥심커피 하나 든 채 무언의 대화만 공유 했던 적이 대부분이었고, ‘핑퐁’을 할 때 조차 저질 스매싱으로 재미없는 경기를 남발하기 일쑤였으며, 당구는 아예 혼자만 쳤었고, 8땡 가지고 달리는데 치사하게 9땡으로 좌절시켰고, 부자 회식은 나만 빼놓고 했고, 매점 데려가서 그 흔한 과수원 한번 사준적도 기억에 없고, 막판에 야구 좀 같이 할 때도 1사 1,2루와 2사 2,3루의 찬스에서 삼진 남발을 하지 않나, 유로2008에서 스위스 크로아티아 골라놓고 혼자만 이겼다고 좋아하지 않나, 그렇다고 같은 내무실 한 번 쓴적도 없고, 사무실에서도 업무상 만날 일이 거의 없었으므로, 이렇게 보면 그는 그냥 ‘담배만 뜯어간 놈’ 으로 비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 어쨌든 담배만은 확실히 뜯어갔던 것이다. (말보로 얻어피고 타임 돌려줬던 행위까지 차마 언급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내가 이토록 상세하게 그를 비난할 수 있는 것도, 한 사람의 ‘인간’ 으로서의 그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심각한 얘기를 할 때든, 담배 피며 잡담을 할 때든, 저질 스매싱을 난무하며 간사한 미소를 날릴 때든, 그것이 같은 병장 앞에서든, 상병 앞에서든, 나같이 짬 안되는 놈 앞에서든 그에게선 항상 꾸밈없는 한 ‘인간’ 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달까. 탁구 점수를 세며 6-4 육군사관학교, 9-9 구구콘 같은 저질 개그를 선보이며 짓는 그의 순박한 웃음을 보고, 나는 마음을 열 수밖에 없었다. 나 역시 ‘일병’ 홍석기나 ‘상병’ 홍석기가 아닌,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그를 대할 수밖에 없었다. 위에서 언급한 찌질한 사건들도, 인간 대 인간으로 대하지 않았다면, 기억조차 될 리 없는 것들인 것이다. 그래. 그는 내가 진정한 인간 대 인간으로 대했던 첫 번째 선임이고, 무수한 인간적인 추억을 공유했고, 그랬기 때문에 나는 그에 대한 ‘감상’ 을 적어 보고 싶었다. 그것이 내가 이렇게 장문의 글을 쓰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인연이란 그 길이가 중요한 것도 아니고 그 두께가 중요한 것도 아니라고. 다만 인연이 닿았을 때 느꼈던 나의 감정들이 나를 바꾸었다면, 그건 정말 좋은 인연인 것이라고, 김동석씨는 이야기했다. 그는 나에게 ‘책마을’의 존재를 알려주었고, 그 ‘책마을’ 덕분에 나는 막연한 반발심만 가지고 있었던 나의 부조리한 과거와, <7년의 공백> 같은 글로써 직접 맞서 싸울 수 있었다. 이렇게 나의 삶의 태도는 바뀌기 시작했다. 그는 이것 하나만으로도, 나로 하여금 지나가버린 삶의 프레임들을 종종 뒤돌아 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즉 나는 바뀌었고, 이것만으로도 정말 좋은 인연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내게 보여주었던 인간적인 모습들은, 단순한 좋은 인연을 넘어서 나로 하여금 그 인연의 끈을 놓고 싶지 않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그 부작용으로 나는 두통을 앓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그는 떠나야 하고, 나는 계속 이 곳에서 살아 가야만 하기에, 나는 글의 힘을 빌어 이제 그 끈을 놓으려 한다. 이별 후에는 다시 새로운 만남이 있을 테고, 나는 또 다른 인연의 끈을 엮어갈 것이다. 그리고 그 끈을 엮기 위해서 나는 인간 대 인간으로 타인을 대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인간과 인간의 관계’ 가 지속되는 한, ‘인연’ 이란 것이 살아있는 한, 그는 ‘인간’의 마음 속에서, 영원히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때때로 이별의 끝에는 이런 ‘멋진 말’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단 한 통의 전화만 있으면 된다. 그에게는 ‘여보세요’도, 관등성명도,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같은 인사 치레의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다음 한 마디만 있으면 된다.
"GO?"
그럼 나는 웃으며, 손에는 타임 라이트 두 개피와 맥심커피 한잔을 든 채, 3층 로비로 향할 것이다.
...............................
수고하셨습니다.
이 글은, 나중에 술 한잔 얻어먹기 위한 빌미로 써 먹도록 하지요.
20080722
이별을 맞이하는 그 모든 이들을 위하여.
* 책마을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8-08-07 18:05)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8-12-08
10:37:09
병장 이현승
책마을과 선임과 담배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 느껴지는 글이로군요.
저 또한 무수한 인트라넷의 바다를 뒤지다가 보급창 의 책마을을 '발견' 했을 때의
느낌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았습니다.
저도 퍼디와 같은 좋은 선임이 이곳을 좀 더 빨리 알려주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스를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힘들었던 군생활의 단비이자 숨구멍인 이곳에서 글을 쓰
고 소통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2008-08-01
16:31:31
병장 황인준
멋집니다. 두 분 다!(웃음).
아무튼 그분이 책마을에서 정말 수고가 많으셨죠.
이젠 떠나보내야한다는 사실이 아쉽기만 합니다.
그 전까지 한 편 이상의 글이 올라오리라 기대를 할게요(웃음).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석기씨,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
가지로!
를 사알짝 외쳐주는 센스. 2008-08-01
16:42:22
병장 김원택
푸헐헐. 길어서 읽기는 힘들었지만, 재미있어요. 뭔가 모를 동질감 비스무래 것도 느껴지고.
이제 윗 사람보다 아랫 사람이 많은 현실. 물론 예전에도 그렇지만 지금도 그 선임과 같은 좋은 사람을 만나기는 힘들다는게 슬프기는 하지만요. 2008-08-01
17:34:07
상병 박찬걸
아 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다.
누구에게나 군생활에 크게 영향을 끼치는 선임들이 한명씩은 있기 마련이죠.
저는 아무래도 같은 사무실에 한창동안 같이 일한, 일하고 있는 맞선임 두명인데.
두명이 다 성격도 다르고, 나이도 다르고, 살아온 것도 다른데
정말 저와 잘 맞는거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좋게 좋게 생활하고 있어요. 2008-08-01
18:04:10
일병 정근영
브라보!
멋진 글입니다
물론, 가지로 가겠지요..?(웃음) 2008-08-02
10:30:12
병장 신지훈
길고,
잔잔합니다.
가지로!! 2008-08-02
11:19:39
병장 홍성기
아, 아디오스. 2008-08-02
21:54:33
하지연
홍석기님이 상병이라서 좋은이유..
앞으로 기대가 된다.. 2008-08-04
09:56:10
병장 장윤호
퍼디...퓨하H...
그분의 전역인사가 기대가 되네요(웃음) 2008-08-04
12:25:34
병장 강호준
그 '퍼디'님은 실제로 한번 뵙고 싶네요.(싱크로율 80% 이상일 듯하네요 크크) 저는 군생활 동안 그렇게 친한 후임, 선임 없는 것 같은데...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본 사람이 없네요. 그런 관계가 부럽기도 하고... 2008-08-04
13:22:49
병장 허기민
재밌게 읽었습니다.
글쓴이가 무척이나 부러운 글입니다. 2008-08-04
14:14:57
상병 이동열
제목을 보고서 무슨 내용일까 했는데
잘 읽었습니다! 가지로!!! 2008-08-04
14:26:48
병장 이재민
전 별말없이 그냥 추천 2008-08-05
13:11:08
병장 이동석
퍼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 분의 저녁이 정말 얼마 안남았군요.
그런데 왜 이 글이 아직 여기 있지?
<가지로>
그건 그렇고, 전 아쉬우면 키퍼까지 보는 존 오셔로 하겠음. (덩팡저우도 아깝다) 2008-08-07
11:01:27
병장 이태형
퍼디라는 선수의 사진을 꼭 봐야겠군요.
하아..
아주 잘 읽었습니다.
책마을을 발견했을 때의 그 느낌은 정말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죠.
아쉽게도 이 글을 이제서야 봤네요.
이미 책가지에 있는 글이지만 그래도 외칩니다.
<가지로>
퍼디 닮은 분, 안녕히 가시길..(웃음)
100일 후에 책마을에서 뵐 수 있으면 싶군요, 하하하하하하하하.
쵸재깅 주소라도 알면 좋겠는데. 2008-08-08
11:39:34
병장 이동석
헉, 말머리 수정 안했었군요. (죄송해요) 2008-08-08
15:57:15
병장 오창윤
하하 재미있게 봤습니다. 많이 공감되는 글이였어요.
늦었지만 살포시 추천 누르고 가겠습니다 2008-08-14
14:5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