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글-내글내생각] 과거 속에 살아가는 ‘나’와의 또 한 번의 화해  
병장 문두환   2008-10-19 23:32:55, 조회: 308, 추천:4 



   1. 나‘다움’에 대하여


   오랜만에 야외 소풍을 다녀왔다. 으레 소풍이란 가기 전부터는 물론 그곳에 가고난 후 까지 복잡한 절차가 필요하거나 거동조차 귀찮은 일들이 몇 가지 끼어 있기 마련이다. 내가 ‘이 생각’이 들 때 쯤의 나는 아마도 내 팔보다 짧은 삽을 휘둘러가며, 단 하룻동안이라도 안락하게 지낼 공간을 만들기 위해 별다른 감상(혹은 죄책감)없이 나무 뿌리를 찍어내고 흙을 제 멋대로 파내면서 비로소 조금이나마 만족스러운 형틀을 갖춘 구덩이를 소유하고 난 후 잠깐이나마 휴식을 취하고 있었을 것이다. 혹시 ‘노동명상’이라는 것이 농담으로나 존재하는 것인지 아니면 실재하는 것인지는 내가 그 세계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에 정확히 답변하기 어렵지만 결론적으로 나는 그것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머리가 멍-해질 정도의 단순하고도 반복적인 노동의 결과가 어떤 생각을 창출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하겠는가. 홍신자(현대무용가/명상가)씨가 운영하는 ‘웃는돌’에서 자원봉사를 할 적에 우리의 무식한 삽질과 살인적인 롤러질에 대고 그곳의 어느 누군가가 ‘노동명상’이라는 명칭을 붙이는 것을 보고 ‘그것은 단지 지금의 이 상황을 정당화 시키는 회유적 언어일뿐’이라며 야유를 던졌던 나였지만 말이다. 
   

   나 답다는 것. 그것이 뭘까. 문득 떠오른 이 말이 풀리지 않는 실타래처럼 머리에 엉겨 붙은 느낌이었다. 


   ‘제 버릇 개 못준다’는 속담처럼 습관이나 태생부터 타고난 천성은 바꾸기 힘든 무엇-이기도 하겠지만, 사춘기가 훌쩍 지나고서 입궁해서인지 나의 사고방식과 감성은 이곳에 와서 바뀌기에는 그다지 순수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경우에 따라) 굉장한 게으름의 소유자이며 철저하게 귀차니즘과 타협하며 살아온 사람 중 하나이다. 사바세계에 있을 적에 나에게 오는 문자 메시지에 대한 답장은 ‘통화’ 버튼을 누르는 것으로 응대하였고, 다음날 꾀죄죄한 모습으로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더라도 학교를 오가는 것이 귀찮아 좀 늦었다 싶으면 그냥 학교에 남아 잠을 자는 쪽을 택하는 편이었다. 게다가 남에게 무엇인가를 부탁하고 기다리는 시간을 참지 못하고 결국 내가 해 버려야 속이 시원한 인내심이 부족한 근성도 여전하다. 그렇지만 뭐, 나는 이런 것들에 크게 괘념치 않는다. 하다못해 동전도 앞 면이 있으면 뒷 면이 있기 마련인데 나라고 해서 꼭 단점만 있겠는가. 내가 봐도 내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으니, 그것을 위안삼아 살아가는 것도 썩 나쁜 것 같지는 않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나 ‘다운’ 것들이다. 크게 긍정하지도 그렇다고 한편으로 크게 부정하지도 않는, 똑 부러진 듯 하면서도 우유부단한, 지극히 평범한 그런 것들 말이다.


   내가 봐도 싫은 나의 몇 가지 못난 모습들이 있다. 이것은 내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지적해 주어서 알게 된 것들인데 지금도 그때와 별반 달라지지는 않았으니 지금도 그렇다-라고 보는 편이 좋겠다. 사람이 변화를 다짐하는 어느 순간부터 변화하는 모습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한창 때는 ‘강마에’ 뺨치는 독설과 직설화법으로 많은 사람들의 오해를 사기도 했고, 나의 기준에서 타인을 바라보고 나의 기준에서 타인의 행동규범을 찾는 것도 모자라 그것을 강요하기까지 했으니 나에 대한 호평과 더불어 혹평이 공존했던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기까지 했던 일이었다. 어쨌든 선배든 동기든 후배든 그런 나의 모습을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았고, 아량이 좁은 나였지만 가끔은 조심스레 지적해 주는 것을 잊지 않는 이들을 미워하지는 않았으니 그것 참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소풍을 다녀오고 난 후부터 나 다운 것이 무엇인지를 화장실에서, 밥을 먹으면서, 자기 직전에 자리에 드러누워서, 그러니까 틈나는대로 열심히 고민해 보았다. 그러면서 정리된 생각이 하나 있었는데,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인간이 가지는 고유한 특성을 고려했을 때 무엇 ‘답다’는 것은 단지 개인적 차원에서만 정의 내릴 수 있는 주제는 아닌 듯 하다. 어쩌면 사람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주어진 상황에서 스스로의 모습을 만들어 가면서 나 다운 것들을 발견하는 것은 아닐까. 더불어 한편으로는 나 ‘다움’에 대한 탐구는 그것이 착각에 준하는 오류일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라도-자신이 스스로 찾아낸 자아의 모습과 실재가 일치하지 않더라도-일종의 자기성찰의 결론 일 수 있다. 고 말이다. 나 ‘답다’는 말로 스스로에 대해 쉽사리 정의 내릴 필요는 없다. 사람은 언제든 변화할 수 있고 그런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타인이 보는 나에 대한 관점에서 스스로 의식하지 못한 ‘나’를 발견했을 때, 보다 반갑게 맞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것이 ‘나’라는 사람이 보다 사회적 관계 안에서 성장하는 방법이고 자신과 타인에 대한 예의인 것이다. 




   2. 과거를 즐기는 것은 인생을 두 번 사는 것이다


   2年前, 그 해의 총학생회 선거는 처음에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前年에 선본을 꾸리고 나왔던 이들로부터 ‘공청회 준비단’에 들어오고 싶다는 제안을 받은 것이다. 그들은 준비단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공정한’ 선거를 위해 공청회는 더욱 ‘공정’하게 진행되어야 함을 거듭 강조했었다. 서로 그리 친밀한 관계는 아니긴 했지만, 그들은 공청회라는 형식으로는 그들이 의도했던 것들을 펼쳐 낼 수 없기에 준비단에서 탈퇴하겠노라, 라는 말만 문자 메시지로 남긴 채 다음 준비회의부터는 나타나지 않았다. 애초에 그들이 끼어든 것 자체가 변수였기에 우리는 우리가 계획한 대로 패널 교육에 들어갔고 정해진 수순대로(1주간의 설문조사 후 질문지를 작성하고 1주일 동안 질문지를 작성)공청회를 진행하였다.


   사건의 발단은 공청회가 끝나고서부터였다. 아니, 그 전부터 준비되고 계획 된 것인지도 모르지만 지금에 와서 그런 문제는 나에게 중요하지 않다. 그 무리 중에는 9자로 시작하는 꽤나 학번이 높고, 학생회 안에서 제법 비중이 큰 자리를 차지하며 학생회에서 비벼댄 경력이 수 년은 되었던 이가 있었는데, 그는 공청회가 끝나자마자 몹시 흥분한 채로 나에게 달려들었다. “이게! 이게 공정한 질문지야! 내가 말한 것들 다 어디갔어? 어?” 그가 말한 ‘내가 말한 것들’은 공청회 준비단에서 중도하차 하기 전에 자신이 ‘특정선본’에 대해 지적한 문제들을 가리키는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그가 나에게 왜 그렇게도 화가 났는지, 그리고 왜 내가 전혀. 잘 알지 못하는 이에게 이렇게 대천지원수를 만난 것 마냥 막무가내로 소리침을 받고 멱살을 잡혀야 하는 것인지 이해 되지 않았다. 그는 질문지가 ‘특정선본’에게 유리하게 작성되었음을 주장했고, 그것을 몹시도 분해 하는 듯 했다. 하지만 공청회 질문지는 단순히 ‘언론출판연합회’에서 제작하는 것이 아니었다. 최종적으로 만들어진 질문지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안에서 심의 되었고 그 안에서 의결이 나야만 질문지로 인정 받았기 때문이다. 특정 선본에게 쉽고 또한 그들의 약점을 피해가는 질문을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속한 모든 이들이 한통속으로 선거를 짜고 치는 고스톱으로 만들었다는 말 밖에 되지 않았다. 그가 지적했던 것들을 누락시키지도 않았지만, 토씨하나 바꾸지 않고 그대로 질문으로 넣었다면 그 공청회 질문지는 공정한 것이 되었을까.


   며칠 후 그들은 유인물을 배포하였다. 내가 특정 선본을 밀어주고 있으며, 그 증거로 특정선본 관계자들이 내가 있는 언론사 공간에서 플래카드 제작 작업을 했다는 것을 제시하였다. 나는 미처 몰랐다. 공간대여가 그렇게 큰 잘못이라는 것을. 그것이 부정선거의 근거가 된다니 그 고집스러운 억측이 혀를 내두를 만큼 감탄스럽기까지 했다. 내가 그 ‘특정선본’의 후보자들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음은 물론 그들과 같은 스포츠에 종사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정적인 증거로 제시됐음은 물론이다. 내가 무디긴 했지만 어리석지는 않았고 선거기간이 얼마나 예민한 것인지 알고 있었기에 나는 그 ‘특정선본’ 관계자들이 언론사에 출입하는 것을 가급적 금지시켰고 서로 왕래하는 일도 드물었다. 같은 시기에 그들의 방에는 수년 간 학교선거에 개입한 브로커가, 그리고 그 ‘특정선본’과 반대되는 선본의 관계자들이 드나들었다. 나는 그 모습을 목격했고 맞대응을 하려고 했으나 이 시점에 내가 개입하면 선거판이 더러워질 것이라는 선배들의 조언을 거부할 수 없었다. 무척이나 분하고 억울했지만 말이다.


   나는 익명으로 글을 썼다. 그것이 썩 떳떳한 모습은 아니며 어쩌면 비겁한 짓일 수도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선거라는 것은 학교운영의 주체 중 하나인 학생의 손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학생이 ‘아닌’ 이들이 선거에 개입하고 있다.”고 말이다(그들 중 학생은 단 한 명 뿐이었다). 글이 올라가고 얼마 되지 않아 그들 중 나와 알고 지내던 이(그는 前年에 총학생회장 후보로 출마했었고 나와 어느정도 친분이 있었다)로부터 ‘네가 올린 글이냐’라는 문자가 왔다. 나는 ‘형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렇다’고 답했다. 그 문자는 곧 캡쳐되어 인터넷에 게시되었고 내가 얼마나 비열한 인간인지를 알리는 근거가 되어 주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악선전은 심해졌고 ‘언론출판연합회 의장 M은 사퇴하라’는 유인물이 학내 곳곳에 뿌려졌다. 학교에 가기 싫어졌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세상에 둘도 없는 부도덕한 놈으로 치부하는 듯 했고 내가 없는 곳에서 내 이야기를 수군거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정말 잠적한다면 그들이 말한 그 모든 것들을 인정하는 것이 되어버리기에, 나는 매일 아침 그 떼어지지도 않는 발걸음으로 이를 악물고 학교에 갔다. 내가 인격적으로 다듬어지지 못하긴 했지만, 나를 타겟으로 한 그들의 공격 때문에 언론사 공간 안에서 우리가 일궈놓은 모든 것들이 부정당하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와중에도 편집실 선배들을 모시고 동문회를 열었는데 자리를 옮기다가, 기어이 그 장면을 목격하고 말았다. 브로커와 모 선본의 후보자들의 만남. 실소가 나왔다.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머리 꼭대기까지 차 올라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보일 지경이었다. 술이 과하게 들어갔는지 나는 도로 한 가운데에서 껄껄 웃어대며 이렇게 소리쳤다. “봐! 애들아. 이것이 학생회 선거라는 거야! 똑똑히 잘 봐 놓으라고! 이렇게 더러운 것이 학생회 선거야. 하하하하하.” 


   우여곡절 끝에 선거는 끝났다. 그리고 그 ‘특정선본’의 부후보는 당선된 이들에게 “저는 솔직히 축하해 줄 수 없습니다. 대학평의원회가 뭔지, 대학민주화가 뭔지도 모르는 선본이 당선된 것을 어떻게 축하할 수 있습니까. 내년에는 제발 올해처럼 제주도로 L.T. 갈 생각하지 말고 공부하는 학생회가 되어 주십시오. 학교를 위해, 학생을 위해 공부하는 학생회가 되어 주십시오.”라는 말을 마치고 퇴장했다. 총학생회장 후보였던 친구는 나를 포옹하며 “두환아, 그 동안 많이 힘들었지?”라는 말을 남기고 개표실을 빠져 나갔다.


   선거가 끝나고 나는 한 동안 그때의 기억으로 악몽을 꾸었다. 꿈 속에서 나는 언제나 쫓기거나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몸서리를 치며 잠에서 깨곤 했다. 함께 모였던 선배들과 하나 밖에 없던 동기와 후배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후배들에게 미안했던 것이었을까. 늘 같이 웃고 떠들고 밥을 먹고 술을 마시며 함께 했던 이들은 그 이후로 만나기 어려웠다. 


                언젠가 많은 것을 말해야 할 이는 많은 것을 가슴 속에 말 없이 쌓는다.
                언젠가 번개에 불을 켜야 할 이는 오랫동안 구름으로 살아야 한다. 「니체」


   나는 학교를 떠났다. 그것이 남아있는 후배들에게 최선은 아니었겠지만, 내가 남아 있음으로 해서 차기 학생회와의 마찰을 더 빚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입궁을 했고 몇 개월만에 그토록 고대했던 사바세계로의 방출을 허락 받았다. 오랜만에 찾은 학교는 변한 것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한 가지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들’이 총학생회의 특별기구로서, 총학생회의 부족한 이론적 근거를 보충해주고 그들이 하지 못하는 행동을 대리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만 빼고 말이다. 
   벌써 2년이 지난 일이지만 총학생회 선거를 둘러 싼 그때의 일련의 사건들은 아직도 나에게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참아야 한다, 나서지 말아야 한다,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말들이 풀리지 않는 주문처럼 머릿속에서 맴돌았고 정말 나는 그때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야 했던가. 라는 물음과 함께 결국 아무 대응도 하지 못했던 내 스스로를 자책했다.


                                           외로워서 밥을 많이 먹는다던 너에게
                                           권태로워 잠을 많이 잔다던 너에게
                                           슬퍼서 많이 운다던 너에게
                                           나는 쓴다
                                           궁지에 몰린 마음을 밥처럼 씹어라
                                           어차피 삶은 네가 소화해야 할 것이니까

                                                                                「천양희, 밥」


   그간 그렇게 저어 하다가 결국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은 보다 나 ‘다움’을 찾기 위함인지도 모르겠다. 솔직하게 말한다면, P스포츠인을 자처했던 그들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는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고 그때 헝클어져버린 마음이 풀리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이격된 기억과 해후하지 못한다면 그때의 그 사건을 내 스스로 대학사회에 흔히 있었던 이념대립에 의한 정치적 스캔들로 격하시켜버리는 것과 같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에 와서 ‘그때 니가 그랬잖아’를 말하고 설혹 그 진위가 밝혀진들 무엇하랴. 하나의 사건에 미움, 증오, 자괴감만 남는 것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그땐 그랬던 것들을 지금 돌아보았을 때 피식-웃을 수 있다면, 그렇게 내가 한 뼘이라도 더 자라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어쩌면 내가 벗어던져버려야 할 것이 더 나 ‘다운’ 모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더 이상 나 ‘다운’ 모습이 되어서는 아니 되기에, 과거의 나의 못났던 모습과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들 마저 ‘나의 것’으로 껴안고 가기 위해, 나는 과거 속에 살아가는 ‘나’에게 또 한 번 이렇게 손을 내민다. 


* 책마을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8-11-18 12:05)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8-12-08
20:33:18 

 

병장 이동석 
  이 정도의 일이었다니, 소름이 돋습니다. 
결코 쉽지 않았을, 과거와의 악수를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2008-10-20
07:25:26
 

 

병장 이동석 
  그리고 두환님이 어째 친숙하다 싶었는데, 이런 속내까지 듣고 나니, 그 이유를 알것도 같습니다. 제가 하는 고민들을 미리 하신것 같기도 하고요. 

많이 배워야겠어요. 두환님한테. 흐흐. 2008-10-20
07:35:58
 

 

병장 황인준 
  천불 열불이 나네요. 
한 뼘 더 자라나는 과정의 글을 이렇게 써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런 고민들을 많은 분이 하고 계시는 군요. 
다 같이 고민들을 털어보고 같이 생각하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2008-10-20
09:20:26
  

 

병장 문두환 
  /동석님 

아아, 아마도 친숙한 느낌을 받았던 것은 동석님이 자라온 곧 바로 아래에서 제 고향이 있기 때문입죠(두둥). 이 글의 계기는 동석님이 던져주셨으니, 저는 밑밥을 문 물고기라고나 할까요? 좋은 조언 감사했어요. 

/인준님 

오히려 제가 분노에 찬 글을 쓰지 않았나 싶어 염려스럽답니다. 과거는 과거일뿐이라고 쉽게 말하고 싶지만 또 그렇지 않은 것이 사람이니까요. 2008-10-20
10:10:47
  

 

상병 이동열 
  오랜만에 들어와서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 
참, 스포츠의 세계에서도 파벌이니 이야기하고 진흙탕싸움을 펼치고... 
그런 모습을 보아가며 저도 모르게 염증이 생기더라구요...(땀) 
저같이 벤치에서 지켜보는 이도 이렇게 느꼈는데- 하물며 주전들은 어떻겠어요... 

인준님 말씀처럼 이런 고민 털어놓을수 있으면 좋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드네요 2008-10-20
11:35:39
  

 

병장 황인준 
  역시나 정답은 
정모 아니면 사바세계에서의 새로운 커뮤니티 사이트인가요.. 2008-10-20
15:58:58
  

 

병장 고은호 
  흠.. 새삼스럽게 흠칫하네요. 

총학생회.. 하긴, 수천만원 돈을 좌지우지 한다는 자리이니... 
권력, 금전과 함께하는 자리는 어디가 되었던 지저분해지기 마련인 모양입니다. 

기회가 되면 내밀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2008-10-21
16:30:44
  

 

병장 이현승 
  자기를 인식해야 당연히 앞으로도 나아갈 수 있습니다. 나에게 내가 던진 수많은 질문들은 제각기 답을 가지지 못한 것들이지만, 질문을 던진다는 것만으로도 하나같이 답의 씨앗을 품고 있을겁니다. 잘 품고만 있는다면, 언젠가는 해답의 싹을 틔우겠지요. 

피에스. 천양희씨의 '밥' 을 여기서 읽게 되어 참 좋습니다. 2008-10-23
14:59:05
  

 

상병 김민규 
  뒤늦게 읽다가 어느새 서글퍼져 눈물이 날 뻔 했네요. 계속 머물러있기엔 아쉬운 글입니다. 가지로, 드립니다. 2008-10-28
11:27:12
  

 

병장 이동석 
  저도 깜빡... 가지로- 2008-10-31
05:27:23
 

 

상병 이우중 
  아, 그러고 보니 베스트 선정에 투표할 게 아니라 제가 가지로-를 외치면 되는 거였군요. 
가지로- 히히히. 
근데 만약 이 글이 베스트로 선정된다면 '책가지'게시판에서 이 글 말머리는 어떻게 되나요? 2008-11-08
20:53: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