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글-내글내생각] 공룡시대  
병장 조현식   2008-08-13 08:48:56, 조회: 559, 추천:5 

거대한 파충류들은 내 머리 저 편에서, 정확하게 중학교 2학년 때 멸종해 버렸다. 트리케라톱스와 티라노사우루스의 싸움의 승자를 알고 싶었던 국민-초등학생도 같이 멸종했다. 그것은 국민학교 3학년까지 도시락을 싸들고 친구들과 동전축구를 하던 동심도 그 무식하게 거대한 파충류들과 같이, 또 초등학교 의 등장과 급식술의 빛나는 발전과 함께 사라졌음을 의미했다. 그 이후로, 한 때 지구를 지배했다던 그들은 포유류인 고양이에게 밀려 내 안의 관심사 목록에서도 쓸쓸히 퇴장했다. 운석이라도 떨어졌다는 극적인 이야기가 있었으면 그들을 좀 더 오래 기억했을까? 그랬다면 좋았겠지만, 끝내 내 얇은 두피를 뚫고 운석이 떨어지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모든 멸종한 것들이 그랬듯

그들이 그 이후로 내 머리 속에서 주도적으로 뛰어다니는 사건은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정말로 살아 움직이듯 생생했던 ‘공룡 박람회’ 나 ‘공룡 전시회’ 의 그들은, 스무살이 넘은 지금에 와서 다시 가보니 차라리 안 보느니만 못했다 생각했다. 그건 공룡이 아니라 기계였다. 모터의 윙윙대는 움직임을 따라 그들은 나에게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내가 봤던 그 생생했던 포식자들은 다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아무래도 그것들은 영화 속으로 들어가 버린 모양이다. 내 옆의 초등학생들이 꼬리를 흔드는 이구아노돈의 옆에서 감탄하고 있는 것을 보니 그들의 머리 속에서는 저 멍청한 기계덩어리가 아직 공룡으로 보이나보다. 처음으로, 초딩들이 부러워졌다. 몇 억 년 전의 일로 고민할 수 있다는 게, 그것으로 꿈을 고고학자로 써 낼 수 있다는 게 사치와도 같은 지적유희임을 그들은 알고 있을까? 그러자 초딩들이 뇌가 호두만한 공룡으로 변해 대답했다. 지적유희가 뭐임? 그들과의 대화에서 얻은 성과라고는, 프테라노돈이 시조새로 변했다가 어이없이 펠리컨으로 진화했다는 이야기가 다였다. 정말 그게 진화였을까? 날개만 10m 가까이 됐던 하늘의 제왕 파충류는, 깃털을 단 대신 그 거대한 풍채를 포기하고 포유류로 전입신고를 마쳤다는 것이다. 기가 막힌 이야기였다.

그들에게 나는 진실을 들려주기로 마음먹었다. 프테라노돈이 포켓몬스터 프테라로 진화했다는 이야기보다는 그들의 이론이 훨씬 그럴듯해 보였기 때문에, 나는 그들이 마음에 들었다. 움직이는 티라노의 앞에서 V자 기념사진을 찍는 아이들의 모습이 천진난만해보였다. 사진을 찍어주고, 나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줬다. 재테크의 수단과 방법에 대해서. 초등학생부터 경제관념을 길러야 하는 것이 그들의 의무이자 사명이라고. 불행하게도, 초딩들은 재테크와 CMA 월급통장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지루하게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것을 온 몸으로 비비꼬며 나타내던 그들은, 나는 지질학자와 공룡탐험가가 될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들은 필요없다고 말하며 순간적으로 내 기억 저 편에서 화석으로 묻혀있던 수많은 공룡들의 이름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암호와도 같은 영어로 된 공룡이름을 자기 친구네 멍멍이 이름처럼 꺼내드는 아이들에게서 도망치고 싶었다. 도대체 여긴 어디야? 그러면서 한 아이가 나에게 슬픈 공룡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했다.

이구아노돈은요~ 처음에는요~ 그러니까요~

요가 매우 거슬리긴 했지만, 그 여자 꼬맹이는 이구아노돈보다는 훨씬 귀여웠기 때문에 나는 그 긴 이야기를 끝까지 참고 듣는데 성공했다. 그러니까, 이구아노돈이 처음 화석에서 지상으로 발견됐을 때, 학자들은 뼈들을 하나하나씩 끼워 맞췄지만 큰 뼈 하나 남는 것을 어디에 붙여야 할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고 한다. 그들은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지만 좋은 수가 나오지 않았고,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그냥 제일 만만한 인중에다 뼈를 떡 하고 붙여버렸단다. 순식간에 이구아노돈은 머리에 뿔을 단 네 발 공룡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런데요~ 바보같은 건요~

바보 같은 사실은, 무슨 놈의 뿔에 뼈가 있냐는 그녀의 반문이었다. 매우 똑똑한 꼬맹이여서, 나는 꼬맹이의 지위를 ‘그녀’로 격상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해부학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진 숙녀분이셨다. 아무튼 졸지에 네 발로 걸어 다니는 공룡이 된 이구아노돈은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단다. 뒤에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이구아노돈은 직립보행을 하던 공룡이었고 뿔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은 엄지손가락이었다. 그제야 두발로 서서 걸어 다니게 된 이구아노돈은 참 행복했단다. 도대체 직립보행으로 걸어 다니게 된 사실이 뭐가 그리 행복한건지 모르겠지만, 이야기의 결말은 이랬다. 나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준 그녀에게 사진을 찍어주기로 했다. 그녀는 보철물을 끼운 이빨을 환하게 드러내면서, 이구아노돈처럼 따봉을 외치며 엄지손가락을 들어올렸다.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양 손으로 따봉을 외친 공룡 이구아노돈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내 생각과는 달리 내 손은 유연하게 셔터를 눌러댔다. 

혼란스러웠던 전시회장을 급하게 빠져나왔다. 에어콘이 없어서 너무 더웠고, 삼엽충이 생각보다 큰 곤충이었으며, 그 때는 모든지 컸구나 하는 감상과 함께 빠져나왔다. 잠자리에게 잡아먹히는 인간을 생각하니 마음이 어두워졌다. 지금 시대에 태어나서 다행이야.

그 때 나는 셜마은 정도 되는 아해들이 떼로 저마다 곤충채집통과 잠자리채를 들고 와 몰려가는 신기한 장면을 목격했다. 요즘에도 저런 애들이 있구나. 고대의 복수를 하기 위해 달려가는 걸까. 그들은 무엇을 잡으러 가는 것일까? 이승엽의 56호 홈런볼인가? 그건 너무 옛날이야기지. 그럼 도대체 뭘까. 뭘 잡으러 가는 것일까. 

햇살이 너무 따가워서, 나는 1500원짜리 월드콘 아이스크림을 하나 구입했다. 공원 매점에서 산 월드콘은 10% 디스카운트도 되지 않는 비싼 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반 쯤 녹아있었기 때문에 나는 더 짜증나기만 했다. 바다라도 떠나고 싶었다.

그 때 저쪽에서, 나에게 이구아노돈 이야기를 알려준 그녀가 총총 달려와서 나에게 말했다.

아저씨! 바다 같이 가실래요~? 저는요~ 버뮤다 삼각지대에 가고 싶은데~ 엄마가 안 보내줘요~

큰일 날 소리를 하고 있구나! 버뮤다 삼각지대는 말야, 배와 비행기가 지나가기만 하면 사라지는 곳이란 말야.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고, 거기가 블랙홀이라는 소문도 있어. 근데 블랙홀이 있으면 화이트홀이라는 빠져나오는 곳도 있단다. 그 화이트홀은 영국 런던에 있거든. 사실은 그 배와 비행기들은 미국에서 출발해서 영국으로 가는 것들이었는데, 버뮤다 삼각지대가 지름길이었던 셈이지.

그녀는 반짝이는 눈으로, 나의 뻔히 보이는 구라를 철썩 같이 믿으며 버뮤다 삼각지대에 꼭 가보고 싶다고 대답했다. 그래, 아이들에게 산타크로스와 버뮤다 삼각지대의 비밀은 반드시 지켜줘야 하는 법이라고. 나는 공룡 전시회 이후 처음으로 잘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해졌다. 그러고보니, 왜 요새는 배와 비행기가 사라지지 않을까? 이제는 왜 어떠한 미스테리도 나타나지 않는것일까?

아저씨 고마워요~

버뮤다 삼각지대에서 이구아노돈과 지질탐사를 하는게 꿈인 숙녀분의 감사 표현에, 나는 아까부터 마음에 걸렸던 호칭을 바꿔주기 위해 정중하게 대답했다.




아저씨 아니라, 오빠거든.


* 책마을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8-09-02 06:34)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8-12-08
20:19:22 

 

병장 이동석 
  아저씨, 따봉- 

(이 댓글을 썼더니 튕기더군요. 식겁) 2008-08-13
09:08:33
 

 

이병 윤상웅 
  재밌게 잘 보았습니다. 2008-08-13
09:18:31
  

 

병장 이현승 
  현식님의 글 오랜만이네요! 

향수를 느끼게 합니다. 어렸을 적엔 파워레인저에 나오는 울트라사우루스가 진짜 존재 

하는줄 알았죠. 아,아니 존재 하던가? 2008-08-13
09:59:43
  

 

병장 노요셉 
  존재합니다.(씨익) 2008-08-13
11:01:23
  

 

병장 황인준 
  군인은 
아저씨라죠.. 2008-08-13
11:33:26
  

 

병장 박종석 
  유독 파워레인저의 공룡 로봇이 갖고 싶었는데 말이죠. 아, 끝내 제 손에 쥐어지지 못했던 그 멋진 공룡들! 2008-08-13
12:06:43
  

 

상병 문두환 
  어제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다음달이면 변장이 된다고 했더니, 
변장이라고 하니 이제 아저씨 같다고 하더군요. 

그나저나 전 아직도 버뮤다 삼각지대가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군요(땀). 2008-08-13
17:25:59
  

 

병장 이동석 
  버뮤다 삼각지대야 있기야 하죠. 
관광코스로다가. (웃음) 2008-08-13
18:31:02
 

 

병장 김종혁 
  재밌게 봤습니다..(웃음) 

저도 어릴때 공룡 꽤나 좋아했습죠.. 

어릴적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네요(웃음) 2008-08-14
09:36:33
  

 

병장 이태형 
  <가지로> 외칩니다! 
역시 현식님의 글솜씨는 대단합니다. 2008-08-14
10:52:50
  

 

상병 이동열 
  이 맛깔나는 글은 저로 하여금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드는 스매시! 

잘 읽었습니다. 저 역시 가지로! 외칩니다(웃음) 2008-08-14
10:57:07
  

 

일병 김세현 
  푸르른 그라운드만큼은 아니지만..아마 현식님의 글맛을 한번 본터라 흐흐.. 참신한 표현법인 것 같아요~~ 2008-08-15
15:48:35
  

 

병장 이동석 
  아아 
이런, 중간에 닫혔을때 깜빡했군요. 

가지로 2008-09-02
06:34:02
 

 

병장 이재민 
  맛깔나는, 머리가 뱅뱅돌게 만드는 글이군요 

굳이 요약하자면 
"공룡 박람회 가서 꼬마아d이랑 얘기했다. 
근데 그아이가 자꾸 아저씨라 부른다" 

정도군요 
저는 두문장으로밖에 못쓰는 경험담을 이리 맴맴거리게 쓰시다니 
역시 책마을의 필진(추천자)답군효 2008-09-05
11:40:19
  

 

상병 서윤석 
  글이 참 잼있으면서도 생생한 느낌이에요. 

유머도 적절히 베어있는데 따분하지 않고 길지도 짧지도 않은것같아 읽는내내 

즐거웠습니다. 2008-09-19
14:45:02
  

 

상병 서윤석 
  버뮤다 삼각지대가 요즘은 관광코스가 楹た ? 

새로운 사실인데요 . 

거기 제가 알기론 해류와 지질이 모 어쩌구 해서 여튼 

이상변화도 심하고 물살흐름도 일정치 않아서 

비행기와 배가 자주 침몰한다고 들었는데 ... 2008-09-19
14:46: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