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글-내글내생각] 계림동, 초원장 체류기 외  
병장 이동석  [Homepage]  2008-11-30 04:22:44, 조회: 128, 추천:0 

계림동, 초원장 체류기 외



1. 

바야흐로 90년대가 도래했다. 모든 것이 호황이었던 시기, 우리 가족은 마이홈-장만의 꿈에 젖어있었다. 전세금도 빼고 대출도 받아 겨우 청약을 받았지만, 입주는 연기되었고 가족은 길거리로 나앉는 대신 여관방을 전전하기 시작했다. (그렇다. 나는 자그마치 호적에 잉크도 마르기 전에 무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모텔을 드나들었다-) 놀랍게도 여관에 사는 사람들은 우리뿐만이 아니었다. 아무리 어렸어도 이상한 냄새를 풍기며 쉼없이 드나드는 아저씨와 아줌마들과 배추 아저씨 가족과 목수 아저씨 가족들을 분간하지 못할정도로 분별없는 어린이-는 아니었으니까. 아닌게 아니라 배추 아저씨는 할머니랑 살고 있었고, 목수 아저씨는 뚱뚱한 누나와 살고 있었다. 엄마는 말도 못하게 했지만, 뚱뚱한 누나는 내가 귀여워 죽겠다는듯 틈만나면 불러내서 먹을걸 쥐어줬다. 엄마는 평생 사주지 않는 소시지나 돈부리-같은걸 먹으면서 나는 꼭 저 누나에게 장가를 가고 말겠다는 결의-를 다졌다. 물론 어린이-의 눈에도 누나는 예뻐보이지 않았지만, 그 결의를 들으면 누나는 쭈글쭈글한 얼굴을 한컷 찌푸리며(나는 기묘하게도 전혀 닮지 않은 이효리의 눈웃음-정확히는 눈가의 주름을 보며 그 누나를 떠올린다) 웃었으니까. 그리고 그 다음날에는 역시 엄마는 아직까지 사줘본적 없는 돈가스와 오란씨-같은걸 싸들고 와서 내게 내밀었고, 나는 샐쭉- 웃으며 누나의 볼에 뽀뽀를 했다. 이제와서 하는 말이지만 사실 누나는 엄마보다도 늙어-보였다.

배추 아저씨는 장사를 나가면 몇 날이고 오지 않았다. 할머니가 있는 방엔 서늘한 냄새가 가득했다. 심심함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할머니 방으로 몰래 들어갔다. 곰팡이 냄새가 나는 방에서 홀로 누워 있는 할머니는 그 날따라 똥냄새가 심했다. 나는 할머니가 깨서 가래 끊는 목소리로 이상한 소리를 하길 기다렸다. ‘테레비’를 켜고 할머니 머리맡의 눈깔사탕을 까먹으며 ‘테레비’의 다이얼을 돌렸다. 드륵- 드륵- 드르륵- 할머니는 아무 말이 없었고, 나는 ‘테레비’를 끄고 역시 조용히 방을 나왔다. 

아빠가 출근할 때 뽀뽀뽀는 못해도 인사는 하는 바른 어린이였던 나는 아빠가 출근하고 엄마가 주인아줌마네로 빨래를 하러 갈 때 아직 한참 어린 동생을 혼자 두고 방을 나왔다. 무섭게 생긴 목수 아저씨는 당연히 없을꺼라 생각하며 누나네 방문을 두들겼다. 누나아- 소리도 하기전에 누나는 뛰쳐나왔고 목수 아저씨는 누나의 머리채를 붙잡고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궜다. 그때 나는 웅변학원을 다녔었지만, 막상 단상에 올라 웅변을 할때면 몇일동안 외운 것도 까먹는 아이였기에, 이럴때면 엄마를 찾거나 주인아줌마를 부르거나 하라던 엄마의 가르침따윈 잊어버리고 조용히 방으로 돌아가 이불을 뒤집어 쓰고 누워버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빨래를 하고 온 엄마를 보며 나는 괜히 울어야할것만 같았다.



2. 

집들이 때엔 온갖 친척들이 다 왔지만 외-자 친척은 외-할머니말고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친-자 친척들은 집이 넓다며 안방이고 거실이고 자리잡고 앉았고 친-할머니와 고모는 피곤하다며 잠을 잤다. 엄마-와 외-할머니는 음식을 해나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는 천원짜리 몇 개와 만원짜리 한 개가 들어있는 종이지갑을 책상 서랍에 넣고 서랍을 잠궜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온 친척들이 이리 많이 모이기는 처음인데, 나는 재미가 영-없었다. 삼촌들은 담배를 계속 피워댔고, 나는 몇번이나 술이나 담배 심부름을 해야했다. 나는 침을 하필 밑접시에다 뱉는 삼촌 지갑에서 굳이 만원짜리로만 몇 개를 꺼냈다. 엄마에게 잔돈을 주면서 만원짜리 한 개를 끼워넣었고, 나머지는 내 서랍안의 종이지갑-으로 들어갔다. 사돈-어른이나 사돈-으로 불리던 외-할머니는 금새 술이 올랐고, 엄마는 외할머니를 끌고가 작은방에 뉘었다. 나는 동생과 술냄새 나는 외할머니와 KBS1밖에 나오지 않는 드륵- 드륵- 드르륵- 돌리는 ‘테레비’를 보며 공연히 채널-만 돌렸다. 거실-에는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리는 21인치짜리 죽은 화분도 다시 살리는 원적외선인가가 나오는 바이오 ‘테레비’가 있었지만, 엄마가 나오지 못하게 해서 어쩔수 없이 재미없는 KBS1만 봐야했다. 아홉시 뉴스에선 불타는 유전과 석유를 뒤집어쓴 새들이 나왔다. 그리고 안방으로 가서 할머니와 고모 옆에 누워 잠을 잤다.

집에는 연기가 자욱했다. 나는 종이 지갑을 넣고 잠근 서랍을 열려고 노력중이었다. 꿈에서는 늘 그렇듯 열쇠는 열쇠구멍으로 잘 들어가지 않았다. 멀리서 다연발 로켓차가 우리 집을 향해 로켓을 싸대기 시작했다. 나는 겨우 꺼낸 종이 지갑을 손에 들고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나는 마구 뛰어 계단을 내려갔는데, 누군가가 쫓아오고 있었다. 하필 밑접시에 침을 뱉던 삼촌같기도 했고, 그 무서운 목수 아저씨 같기도 했다. 세계는 불타올랐고, 모든 새들은 석유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어느새 보니 종이 지갑은 온대간대 없었다. 집도 사라지고, 엄마도 아빠도 동생도 보이지 않았다. 

새벽녁에 엄마는 벌써 일어나 밥을 준비하고 있었다. 할머니와 고모는 일어나지도 않고 조용히- 무슨말인가를 하고 있었다. 국민학교 입학을 앞둔 나는 계단을 뛰어내려가는 꿈을 자주 꾸고 있었다. 할머니와 고모는 소리 죽여 누군가를 욕하고 있었다. 엄마와 외-가에 관한것이었는데, 이럴땐 어떻게 하라고 했더라- 난 예전에 아빠와 엄마가 싸울 때 그랬던것처럼 그냥 자는척 하기로 했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별로 신경쓰지 않기에 그냥 살짝 눈만 감으면 무슨말이고들 하곤 하니까. 다른 친척들은 일찍 돌아갔지만 할머니와 고모는 며칠동안 집에 있었다. 나는 절대로 할머니와 고모와 같은 방에서 자지 않았다.



3. 

머지 않아 할머니와 고모는 형까지 데리고 광주 무슨대학교에 시험-지금 생각해보면 본고사-인가를 치러 다시 왔다. 아빠는 일찌감치 출근버스를 타러갔다. 5인용 식탁에 앉아 밥을 먹었다. 할머니, 고모, 형, 나, 동생- 형은 콩을 발라내 식탁에 뱉었고, 소고기 무국에서 소고기만 골라 먹었다. 형은 결국 대학에 떨어졌다. 엄마는 할머니와 고모와 형이 마지막으로 밥을 먹고 간 뒤 말없이 식탁을 치웠다. 엄마 형은 콩도 안 먹고 무도 안 먹고 고기만 먹어서 학교 떨어진거지? 나는 그 뒤로 절대로 편식을 하지 않았다. 

형은 시내를 다녀오더니 (아마 원서를 사오는 길에) 월리를 찾아라-를 사 나와 동생에게 한권씩 선물했다. 난 형과 월리-가 퍽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건 칭찬-이었다. 선물한 책을 다시 가져가서 월리를 찾는 형은 월리-를 원리-로 발음했다. 형은 시험 전날밤까지 내 방 책상에서 스탠드를 켜고 ‘원리’를 찾아 검정 사인펜으로 표시를 했다. 심지어는 ‘동물원 곰우리에서 곰 탈을 쓴 남자’-나 ‘꽁무니에 불이 붙은줄도 모르고 으스대고 있는 소방관’-같은걸 죄다 찾아 줄을 그어 놓았다. 다행히 나는 열 살이 되기 전까진 병신-이라는 말을 몰랐기에 형에게 병신-이라고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원리’라는 말은 알 것 같았다. 키가 아빠보다도 크고 미취학 아동이 보기에도 촌스러운 녹색 체크 남방에 두꺼운 뿔테 안경을 낀 형이 ‘원리’를 찾아라-를 보면서 소파에서 누워 모나미 볼펜으로 ‘원리’에 동그라미-를 치고 있는걸 보면서 저런 인간은 대학에 떨어지는게 ‘원리’-라는걸 배웠다. 그리고 절대로 할머니와 고모와 형이 자는 안방에는 들어가지도 않았다. 그건 이를 테면, 미취학 아동의 ‘원리’ 같은것이었다. 

이듬해 국민학교에 입학했다. 낡은 국민학교는 개보수-가 한창이었다. 80미터 도로라고 불리는 논과 산 사이에 덜렁 놓여 주로 수확한 쌀과 고추를 말리는데 쓰이던 도로를 건너 공사장을 가로질러 교문을 돌아 컨테이너 박스와 개보수중인 본관을 지나쳐 별관으로 들어가면 되는게 내 첫 등교길이었다. 나는 숨을 참고 40미터를 달려 도로 중앙의 분리대까지 뛰어갔다. 그리고 잔디를 심어놓은 분리대에서 다시 숨을 고르고 다시 40미터를 달려갔다. 이상하게 달릴땐 방귀가 붕붕붕-나왔고, 주위의 누나나 형들이 볼까봐 더 숨을 참으며 달렸다. 그럼 방귀는 뿡뿡뿡-나왔고, 끝내 어떤 형들은 꽤 어른스럽게 비-웃었다. 원래는 오후-반으로 학교를 갔다올때면 벌써부터 도로 구석에 돗자리를 깔아놓고 삼겹살을 구워먹거나 백숙을 해먹는 가족들을 보면서 엄마-나 아빠-를 찾았다. 그러나 형이 표시 해놓고 간 ‘원리’와 ‘꽁무니에 불이 붙은줄도 모르고 으스대고 있는 소방관’처럼 아빠-의 회사는 너무 멀었고, 일이 많았고, 엄마-는 아빠 몰래 가전제품을 파는 외판사원-을 하고 있는것 같은 노골적인 ‘원리’는 찾기도 전에 손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집엔 가스버너-가 없었다. 그러니까 우리집 장만의 꿈은 원리 분할 상환-에 의해 실현 되고 있었다. 물론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대출받은 돈의 원리(元利)가 얼마인지 따위는 정확히 몰랐지만, 그 속에서 가족을 찾을 바에 방귀를 뿡뿡-뀌며 달려가는게 낫다는 원리(原理)는 알고 있었다. 



4. 

국민학교를 옮긴 뒤로 한번도 넘어가지 않았던 80미터 도로를 넘어 서경석과 이윤석을 보러갔다. 아니 이렇게 심한말을-따위를 하는 만담보다 테마게임-을 더 좋아하긴 했지만, 21세기형 쇼핑센타- 거평마트의 오픈식에서 테마게임을 보여줄수 없다는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들은 역시 아니 이렇게 심한말을-따위나 지껄였다. 동네 슈퍼 아줌마도 아파트 단지 지하슈퍼 아줌마도 웃는걸 보며 나도 따라 웃었다. 

매일 좋은 옷만 입고 다니던 지하슈퍼 딸을 처음 본건 이사왔다며 같은 층 사람들한테 시루떡을 돌릴때였다. 지하슈퍼-는 화장품점과 문방구점이 입점했고 신발, 옷부터 고기와 과자까지 없는게 없는 그야말로 ‘백화점과 다를게 없’는 곳이었다. 같은 반 되본적이 한번도 없는 그 여자애는 말버릇처럼 ‘백화점과 다를게 없’다고 말했다. 단지부터가 다른 소아과집과 치과집, 변호사집 아이들을 굳이 우리 단지의 지하슈퍼로 데리고 와서 과자를 이것 저것 골라 집으로 가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나는 어째서 저 계집애와 한번도 같은반이 된적이 없는것인지를 한탄하곤 했다. 같은 층에 살기에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알은척-이라도 해보고 싶었지만, 새침한 계집애는 끝내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나는 담배 심부름을 하든 술 심부름을 하든, 엄마와 장을 보러가든 무조건 다른 슈퍼로 가거나, 가자고 떼를 썼다.

지하슈퍼 딸과 처음으로 말이나마 섞게 된건 소아과집 여자애의 생일 파티-였다. <금호 아파트 X동 XY호>로 오라는 백원짜리 초대장을 들고 아파트 단지를 헤매던 나는 똑같이 헤매고 있는게 틀림없어 뵈는 지하슈퍼 계집애가 나를 보고 다시 새침-하게 땅만보고 섰는걸 보며 기어이 말을 걸었다. 전에 (비비탄 총으로) 금호애들이랑 서바이벌 할 때 ‘수영장’네 집 가봤었어. (‘수영장’은 초딩적 작명에 따른 소아과집 여자애의 별명이었다.) ‘수영장’네-는 수영장만큼이나 넓은 거실에 보트만한 ‘테레비’와 다이빙대 만한 전축이 놓여있었다. 수영장 어머니는 땀 흘리는 나와 슈퍼를 위해 에어컨을 틀어주었다. ‘수영장’의 언니-수진장은 방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수영장’은 무슨 드레스인가를 입고 나왔다. 나는 학교앞 문방구에서 산 천원짜리 선물세트를 줬고, 슈퍼는 5000원짜리 제도-샤프를 줬다. 나는 제도 5000을 훔쳐보면서, 저 이상의 선물은 없을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치과는 아버지가 미국에서 사왔다는 화구(畵具)를 선물했고 (그때 나는 눈높이 영어-도 안했지만, 치과-는 윤선생 영어-를 하고 있었다.) 변호사는 역시 제 아버지가 일본에서 사온 게임팩-을 선물했다. 제도 1000과 제도 2000, 제도 3000같은 선물을 준비한 상상력 부족한 아이들 앞에서 단연 돋보였던 슈퍼는 은근히 신경이 쓰이는 눈치-였지만, 무슨 어린이 드라마처럼 얼굴이 불그락 울그락 하며 뛰쳐나가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제와서 말하는거지만 어린이 드라마-를 보는건 멍청한 애들이나 멍청한- 어른들 밖에 없다. 그리고 어린이 드라마를 보는 애들도 분양-과 임대-의 차이는 안다. 등교길에 지나치는 부동산에 적힌 가격-만해도 제도 1000이나 2000이 아니라 5000이라도 몇천, 몇만자루는 살만큼은 차이-나는 분양과 임대-의 차이를 생일 때 제도 1000 몇자루를 받았는지로 인기도를 느끼는것만큼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금호-아파트는 분양 아파트 였고, 나와 슈퍼-가 살던 아파트는 임대-아파트였다.



5. 

서경석-이윤석이 왔다간 뒤로 몇몇 가수들도 왔다 간 무려 3층짜리 쇼핑센타- 거평마트는 화려하게 장사를 시작했다. 이제는 자동차 시트부터 침대에 버거킹-과 에어컨-까지 그야말로 없는게 없는, 지하슈퍼집 딸의 표현대로라면, ‘백화점보다 나은’곳이었다. 자가용이라면 금방 가지만, 버스를 타면 한 시간이나 걸리는 백화점-보다 가까운데다, 무엇보다 삼층엔 버거킹과 놀이기구-가 있었다. ‘수영장’이든 치과놈이든 변호사자식이든 더 이상 지하슈퍼-는 가지 않았다. (이제와 고백하는건데, 치과의사든 변호사든 그 직업을 가진 이들과 그 사람들의 가족들을 비하-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단지 기억나는 이름이 ‘수영장’밖에 없을뿐이다.) 주말이면 삼층 푸드코트에서 돈까스나 버거킹을 먹으러 가는 아이들과는 더 이상 놀수 없었다. 아닌게 아니라 버거킹-은 짜장면 곱빼기-보다도 비쌌기 때문이다. 지하슈퍼네 아주머니는 단골들을 잃지 않으려고 이것 저것 세일을 하거나, 쿠폰을 만들기도 했지만, 그 쿠폰을 50개 채우면 주는 ‘크리넥스’를 받으러 가려던 날에 지하 슈퍼네는 이사-를 갔다. 새로 들어온 사장아저씨는 이전 쿠폰-은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쿠폰 100개와 전기 후라이팬을 바꾸기 위해 한창을 실랑이하다 결국 크리넥스 몇통이라도 받아오는 통장 아주머니의 동네에서 장사 그딴식으로 해서 얼마나 가는지 보자-는 말마따나 지하슈퍼는 망하는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절반은 에어로빅을 하고 절반은 태권도를 하는 체육관이 생겼다. 나는 태권도 승단 시험을 보고 꿈의 ‘검빨간띠’를 받을 마음에 설레고 있었는데, 마침 도장이 망해 에어로빅에 병합(?)되면서 끝내 검빨간띠-를 달지 못했다. 나는 배우다 만 태권도처럼 따져보면 무의미하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많은 피아노 학원으로 옮겼다. 집에서 피아노치던 수영장-과 수진장-을 생각하면서 피아노를 배우려고 했지만, 태권도 도장에서부터 계속 티격태격 하던 녀석의 옆구리를 걷어찼는데, 알고보니 그 녀석이 여자-였던고로 피아노도 그만두고 검도-를 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그 전에도 그 후에도 여자를 때린적이 없다. 이건 초원장에서 돈가스를 사준 누나-의 이름을 걸고 맹세할수 있다. 그리고 보니 난 그 누나의 이름을 모르는구나.) 에어로빅이 그 넓은 공간을 혼자 사용하자니 임대료가 비싸 절반쯤 검도-에 떼준것이었다. 그런데 검도-를 접수하려고 가보니 그때 그 태권도 관장-이 태연히 검도복을 입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내가 검도 3단의 승단심사-를 본 후 3단 자격증을 기다리고 있을 때, 또 검도장은 망했다. 그래서 나는 그 뒤로 헬스장도 다니지 않는다.



6. 

이름만 도로-였던 80미터 도로는 결국 광주 신도심과 신 시청, 버스터미널과 아직도 정체를 모르겠는, 김대중 컨벤션 센터부터 고가와 다리로 이어져 나주와 무안을 거쳐 목포에 이르는 무진로로 불리면서 화려하게 탈바꿈했다. 땅값은 올랐지만, 임대아파트 가격은 안 오른다고, 이 가격으론 전세도 못 들어간다는 어머니의 푸념을 들으며 베란다 창으로 본 80미터 도로 건너 거평마트는 건물도 남아 있지 않았다. 거평마트는 IMF때 모기업이 도산했지만, 그동안 꾸려놨던 단골-과 유통망으로 버티다 결국 이마트와 홈플러스, 멀티플렉스극장과 쇼핑몰까지 생겨 망해버렸다. 

시청이 떠나버린 계림동에는 을씨년스러운 옛시청 터 근처로 쇠락해 가는 홍등가와 식당가, 술집 골목이 자그마하게 남았다. 직할시 이전의 광주시청이 있었던 황금동-은 구시청-이라는 지명이 남아있는데 계림동에는 단지 노래방 도우미 가격이 광주에서 제일 싸다는 오명-만 남아있다. 몸을 풀러 계림동을 서성이던 남자들은 이제 신시청과 1등광주의 슬로건을 따라 깔끔하게 정리된 신도심의 네온사인으로 몰려든다. 급조된 신도심은 모텔과 관광나이트와 안마방으로 가득찼다. 비틀거리는 사람들은 서둘러 어디론가로 들어가버리고 나와 몇몇은 택시를 잡지만, 갈곳을 알지 못한다.

계림동- 나는 계림동으로 가달라고 말했다. 거기 도우미가 가장 싸긴 한데, 지금까지 장사할곳이 있을지나 모르겄소. 택시기사는 다 안다는듯 젊은 취객들에게 한마디 하지만, 어차피 갈 곳이 없었다. 나는 계림동에 거짐 도착해서야 택시기사에게 초원장-으로 가달라고 했다. 초원장이라는데가 한두군데요. 제일 가까운데로 가주세요. 쇠락해가는 홍등가의 모퉁이에 내가 알고 있는 초원장과는 뭔가 다른 초원장이 비틀거리며 서있다. 친구놈들이 화장실을 찾다 길에다 일을 보는 새에 나는 초원장을 향해 걸어갔다. 왠 중늙은이가 갑자기 나타나더니 나를 잡아 끌었다. 왠지 그 아주머니도 할머니도 아닌 여자를 따라가면 돈가스와 오란씨-라도 줄 것 같아 나는 밀쳐내지도 못하고 어어-하며 따라갔다. 



*계림동: 광주광역시청의 이전(以前) 소재지. 산업기반이 약한 광주에서는 가장 큰 ‘회사’는 ‘시청’이었다. 90년대 계림동은 시청 직원들과 시청 민원인들을 대상으로 한 장사-로 호황이었다. 




* 책마을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8-11-30 21:36)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8-12-08
20:43:48 

 

병장 이동석 
  원래는 얼개 가볍게 쓸 목적으로 옛날 생각을 해봤는데, 이 여섯개 말고도 열 댓개쯤 생각 덩어리가 이어지길래 여기까지-하며 끊고 얼개는 다음 기회에... 2008-11-30
04:24:14
 

 

병장 김현민 
  아,! 이게 본인 이야기셨군요. 어렷을때부터 모텔을 드나들었다니 하하. 
21세기형 거평마트라, 저희동네에도 새마을마트라고 있었는데 
결국 이마트와 홈플러스에 와그장창 무너졌죠. 
참, 그곳엔 이런저런 추억이 깃들여있었는데 말이죠. 안타깝기도 하지만 
지금은 홈플러스가 더편하게되었다는(.....) 2008-11-30
07:08:24
  

 

병장 정병훈 
  4. 알은척 - > 아는척 

오랜만에 보는 동석님의 글이네요. 그래서 더욱 반갑습니다. 흐흐 이게 동석님 얘기라니, 시크한 도시남같은 동석님에게도 이렇게 서민적인 얘기가 숨어 있을줄이야. 
저도 옛날 생각에 잠겨 봅니다. 

얼개가 준비되고 있군요. 훗- 그말은 동석님의 칼럼도 준비되고 있다는 얘기겠지요. 2008-11-30
08:21:45
  

 

병장 김민규 
  역시 생일의 추억은 제도샤프로 이어지는군요. 잘 읽었습니다. 어렸을 때 느꼈던 문방구와 슈퍼-와 정육점과 그랜저- 의 기억들이 떠오르면서 버무려지네요. 허허. 2008-11-30
08:29:27
  

 

병장 문두환 
  동석님 얼개는 12월 1일까지랍니다... 2008-11-30
10:05:20
  

 

병장 김민규 
  제목에서 미려한 문학의 향기가 풀풀 풍겨 다 읽고도 한번 더 눌러보게 되네요. 흐흐 2008-11-30
10:30:56
  

 

병장 홍석기 
  이거 블랙코미디의 정수로군요. 

왠만하면 안 웃을려고, 픽픽거리면서 참았는데, 거 왜 태권도 관장님이 검도복을 입고 있단 말이요. 

'수영장'네 와 비슷한 유년시절을 보낸 저로선, '대한민국 원주민'을 보았을 때의 쇼크가 다시 한 번 살아나는 느낌이 되돌아오며, 웃다가 체한것처럼 씁쓸한 뒤끝이 남는군요. 

그건 그렇고, 그 많던 제도샤프는 도대체 다 어디로 갔을까... 

가지로. 2008-11-30
14:51:22
  

 

병장 이동석 
  굳이 계층을 따질건 없지만, 계층적으로만 보면 전 딱 윤아 나오는 일일드라마의 주인공입니다. 이제 새벽이 같은 여동생만 생기면 됩니다. 친척중에 정치인이 있는것까지 비슷해요. 이 뒤에 이어질 7번과 8번 등등에 관련된 내용이 나오는데, 과연 그런것까지 고백하는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여, 적당히 6번을 끌어들여 마무리 했습니다. 

그리고 알은척이 맞습니다. 

알은-척 
〔알은척만[--청-]〕ꃃ①어떤 일에 관심을 가지는 듯한 태도를 보임. ≒알은체①. 
②사람을 보고 인사하는 표정을 지음. ≒알은체②. ¶다음에 만나 봐라, 알은척이나 하나. 


대한민국 원주민-의 단행본을 보진 못했지만, <한겨레21>에서 연재되는걸 보며 울컥-한적도 있습니다. 갑자기 작가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데, 그 작가의 <습지생태보고서>나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도 재밌게 봤어요. 최근엔 무슨 기관에서인가 청탁받아서 전태일과 노동사-에 관한 만화를 그렸다는데, 작가 스스로의 말대로라면, 청탁받은 내용대로 그렸다는군요. 그게 성에차지 않아 다시 자기식대로 그려볼 생각이라니 기대됩니다. 그 창작노동자-라는 표현도 <습지생태보고서>에서 유통(?)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현실]이지만 [사실]과는 일치하지 않는 부분도 있습니다. 게다가 [사실] 부분도 제 기억에 의존했기에 저도 자각하지 못하는 기억의 왜곡이 무궁무진 할꺼라고 생각해요. 이를테면, <대한민국 원주민>이나 <습지생태보고서>과 [현실]과 [사실]을 다루는 방법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2008-11-30
19:35:33
 

 

병장 김민규 
  알은척-이건 아는체- 이건, 날립니다. 가지로 2008-11-30
19:40:20
  

 

병장 이동석 
  저의 아는체-를 꼬집어 주시는군요. 낄낄낄. (뜨끔-) 

사실 저 주말 내내 달말마다하는 보고 절차때문에 상당히 바빴어요. 그 중에 멀티태스킹을 하는 심정으로 딱 한장 분량씩 쓰고 일하고 한장쯤 쓰고 일하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늘 그렇듯 퇴고 따위 없이 글을 올렸기에, 아차-싶어서 사전을 뒤져보고 훗, 역시- 하면서 아는체-를 했습니다. 낄낄 (식은땀) 

아는체-해서 죄송합니다. 쿨럭. 그건 그렇고 시나리오 작법이나 작문 강좌-같은걸 한번 들어봐야겠습니다. 개요쓰기나 퇴고-도 못하는 근본없는 글쓰기로는 한계-가 명백한것 같아요. 2008-11-30
19:47:39
 

 

병장 김민규 
  그런 뜻은 사실 정말로 없었는데 이거 월척이군요. 손맛이 찌릿찌릿, 야호. 

짬 나는대로 틈틈이 쓰고 퇴고없이 올리는 버릇은 저도 비슷한 것 같아요. 보면 볼수록 성질만 나니 그냥 던져버리는게 제 성미엔 더 맞아서. 맘먹고 퇴고한답시고 붙잡고 있어봤던 적이 있었는데, 결론은, 똑같더군요. 그래서 요즘엔 그냥 오타나 한 번 보고 맙니다. 쩝. 

논리학이 궁금한 요즘이예요. 변증법이니, 하는 그런 것들 있잖아요. 얕은 지식은 어찌 포장해도 방법이 없으니 공부만이 살 길이군요. 그 전에 설탕봉지나 해치워야겠지요. 흐흐 2008-11-30
19:51:52
  

 

책마을 
  오- 드디어 유망주를 만나나요- 크크- 
아 이제 일도 끝났으니 설거지하고 샤워하고 책을 읽으며 잠이나 자야겠군요. 흐흐. 잘 다녀오세요~ 2008-11-30
19:55:11
  

 

상병 이우중 
  새벽이 같은 여동생이 생기기를 고대하겠습니다. 허허허. 
제목에서 풍기는 문학적 향취 때문에라도(이것때문이라는 건 물론 아닙니다) 가지로 가야겠는걸요? 

저도 말 나온김에 '남명고시원 체류기'나 한 번? 흐흐흐. 2008-11-30
20:08:56
  

 

병장 이동석 
  그건 그렇고 얼개는 내일 이 시간에나 가능할듯합니다.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한참을 메모장에 쓰고 있었는데 정전-이... 2008-11-30
20:22:45
 

 

병장 정병훈 
  이번달은 얼개의 달이군요- 정말 좋은 글들이 많이 나오네요. 2008-11-30
22:02:50
  

 

상병 김남우 
  열일곱부터 열아홉까지를 계림동 소재의 고등학교에서 보냈지요. 
괜히 반갑네요. 2008-12-01
10:51:49
  

 

병장 이동석 
  우왓, 반갑네요. 남우님. 2008-12-08
19: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