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글-내글내생각] 가난한 그대 가슴에  
병장 문두환   2008-10-29 02:29:09, 조회: 464, 추천:2 




   온 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 한 덩이 재로 쓸쓸히 남는 것이 두려워 /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
   되려 하지 못했나 보다 / 하지만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아침에 /
   나 아닌 다른 이가 마음 놓고 걸어 갈 / 그 길을 나는 만들고 싶다



   잔뜩 서늘해진 날씨 탓인지 시원한 공기가 여과 없이 몸 속 깊은 곳까지 미끄러져 들어온다. 자칫 손으로 툭 치면 깨져버릴 듯 투명하고 청명한 하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가사가 좋아서 외우고 다녔던 노래가 생각나는 것은 당연한 일일까. 첫 눈이 내려 가슴 설렐 시간은 아직도 꽤 남은 듯 한데 볼에 닿는 그 차갑고 딱딱한 공기의 감촉과 나도 모르게 흥얼거렸던 노래 가사 덕분인지 잠시 잊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미리 이야기 해 두지만 이 글은 철 지난 대중가요를 읊조리는 것처럼, 꽤나 촌스럽고 진부할 수도 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기대한 이들에게는 그저 죄송스런 마음뿐이다.


   # 1. 왼발의 추억


   하루 내 내린 눈을 어설피 긁어낸 탓에 조악하게 시멘트를 발라 놓은 우둘투둘한 도로는 어느새 얼어붙어 있다. 도로의 측면에는 제 나름의 방편으로 아무렇게나 던져 놓은 제설도구가 있긴 했지만 그것이 도로를 타고 내려가는 것에 어떤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 무리를 지은 -같은 공장에서 찍어낸 같은 옷을 색상의 선택조차 없이 몸에 걸치고 별다른 기술력 없는 손이 만들어 놓은 비슷한 헤어스타일을 한- 고만고만한 나이의 아이들은 마침 밥을 먹으러 가는 길이다. 무리 중 유달리 동작이 각진 아이가 하나 있었는데 관절염이 오기에는 턱없이 젊어 보이는 그가 그리 걷는 것은 급하게 내려가는 경사 때문만은 아닌 듯했다. 위태위태한 발걸음은 아마도 그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무의미한 정적이 흐를 때 즈음이었다. 무리 중 우두머리 격인 아이 하나가 흘리듯 내뱉은 ‘왼발’이라는 말에 그 각진 걸음을 한 아이는 따라 붙이듯 ‘왼발!!’이라고 크게 소리쳤다. 모두가 예상하지 못했고 또한 이곳에서는 꽤 생경한 모습인지라 큰 웃음들이 터져 나왔다. 오해는 하지 마시라. 먼저 왼발을 외친 사람은 정말이지 별다른 의도 없이 혼잣말을 하듯 내뱉었을 뿐이었다. 단지. 그저. 툭하니 나온 말 한마디에 또 한명 역시 별 생각 없이 조건반사적으로 추임새를 넣었을 뿐인데 상호의 ‘의도 없음’이 그 상황에서 코드가 맞지 않았을 뿐이었다. 아마도 그는 주위의 반응에 조금 어리둥절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상황이 그에게는 함께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도 고민스러운 익숙하지 않은 상황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로부터 수개월이 지난 지금의 그가 ‘왼발’의 소리를 듣는다면 그때처럼 소리치지는 않겠지만 나는 그때 크게 웃었던 것을 내심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의 모습은 곧 과거의 나의 모습이었을 뿐이었으니까. 다들 별다른 사심 없이 웃었다고 믿고 있지만 그 상황에서 배제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그의 미숙한 행동이 가십거리가 될 수 있는 것은, 그와 대비한 자신의 모습에서 은근한 우월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아니한가. 그 상황에서 나는 그를 조금쯤은 비웃었는지도 모른다.


   매일 08:25. PM. 이 되면 나는 쓰레기통을 찾으러 다녔다. 어디로 몇 명 소집령이 떨어지는 찰나에 신발을 신고 달리는 것도 역시 나의 모습이었다. 행여나 나의 작은 실수가 선배들이 애써 쌓아놓은 위업을 해치는 누가 되진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새삼 행동거지를 조심하며 지냈고 ‘앞으로 잘 가다 옆으로 홱 틀어 가’라는 농담 섞인 지령에 허공을 향해 힘껏 발을 내지르기도 했었다. ‘왼발’에 ‘왼발’로 응대한 것과 하등 다를 바 없었다. 그것은 정도의 차이만 존재했을 뿐, 이 회사에 입사한 말단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겪어봤을 ‘어리숭한’ 행동들이었다. ‘새롭다’고 하기보다는 ‘낯설다’라는 말이 더 적절했던, 아프리카 2年 계약직 특파원의 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정영목님의 ‘아프리카’라는 표현을 허락 없이 차용한 것에 대해 뒤늦게 양해를 구한다). 한 가지 다행스러웠던 것은 그나마 나의 선배들은 터무니없는 건수로 후배를 괴롭히는 것을 즐기는 Sadism적 성향은 없었다는 점이었다. 그것을 제외하고는 다른 곳과 다른 것은 없었다. 시간은 내 편이었다. 그때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수습기자로 딱 1年을 있다 보니 내 밑으로도 후배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덧 내 직속선배가 떠나간 자리에 직속후배가 한 명 배속되었다. 말단을 벗어날수록 내 몸이 분주히 움직이는 횟수는 확연히 줄어들어갔다. 믿기지 않을 만큼 나의 생활은 안락해져갔다. 결론적으로는 말하자면, 난 편해졌다. 나의 ‘안락함’만큼 후배들의 분주함이 담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고통의 시간적 분담’이라는 말과 ‘이것은 결국 끊을 수 없는 모순적이면서도 합리적인 룰’이라는 말로 위안을 삼으며 말이다. 


   # 2. 발신일이 적히지 않은 편지


   후배들에게 잘 해 주려고 노력하지 말고 인간적으로 대해 주려고 노력하라는 말을 했었다. 작위적인 노력보다는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관계를 만들어 가자는 의미였다. 그보다 훨씬 이전에는 인간 자체도 스포츠의 대상으로 보고 세상을 변혁시키기 위해서는 부단한 자기혁신과 성찰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해 왔었다. 격은 쌓되 벽은 허물 수 있는 사람관계를 만들자고 했었다. 아―. 멋있어 보이려고 했던 말은 아니었지만 -밖에서든 안에서든- 말단 수습기자가 감히 내뱉었던 ‘인간적 관계’는 지금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인지 모르겠다. 지난 시간이 증명해 주듯 그것은 의지뿐이었고 나는 일상에 매몰된 채로 나의 특파원 생활의 이력을 만들어 왔다. 


   이해는 가장 적나라한 오해라고 하지 않았던가. 사람을 굉장히 치졸하게 만드는 이 작은 사회의 구조에서 타인을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란 말인가. 네가 서 있는 자리를, 너의 입장을, 너의 요구를 내가 알아들었다고 하는 것은 오해일 뿐이다. 변화는 다수의 동의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서로간의 입장의 차이가 현저하게 존재하는 곳에서는 현상유지도 버거운 것처럼 보였다. 100%소통, 완전한 만남, 우리가 만드는 새로운 아프리카를 꿈꾸기에 이상은 너무 높았으나 내가 바라보는 세상은 성냥갑처럼 조그맣기만 했다. 


《100일 Vacation때에 비해서 한결 차분해진 모습, 좋더라. 뭐, 여전히 수다스럽고 궁을 어디 당나라에 위치한 자신과는 상관없는 공간으로 여기는 모습은 역력했으나. 그래도 그건 나쁘지 않으니 고치려고 하지 않아도 돼. 흐흐. 시간이 주는 여유 때문일까. 덩그러니 궁에 떨쳐진 것 같던 초기와는 다르게 네 발자국, 몸 내음이 그곳에 제 자리를 만들어 낸 듯 좀 더- 잘 적응되어 보이더라니. 어느새 운동화가 너무 가벼워 어색하듯 네 몸도, 움직임도 그곳의 환경을 점점 더 기억해 내겠지? 근데-걱정하진마. 네가 지난 스물 네 해 동안 잘 길러온 네 정신은, 네 마음은 그리 쉽게 말랑말랑 녹아 없어지진 않을 테니까. 몸이 점점 편해질 수 있도록 환경에 더 잘 적응해 가겠지만 어느 날, 너무 ‘궁인스러워진’ 네 모습을 보고 스스로 배신감이나 실망감을 느끼진 않았으면-하는 바람이야.》


   쑥스럽지만 이 글은 내가 가장 아끼는 사람으로부터 온 편지의 일부이다. 정성스레 보내준 이 편지를 함께 읽는 것이 사뭇 그녀에게는 실례인 것은 확실하나, 스스로에게 배신감이나 실망감을 느끼는 이들과 함께 고민을 풀어가기 위해 옮겨 적은 것이니 너그러이 용서해 줄 것을 믿는다. 내가 갓 작대기 두 개를 달았을 적에 받은 이 편지가 오늘 새롭게 읽히는 까닭은 이제 슬슬 정년퇴직의 시기가 다다라 여태 달려온 길을 뒤돌아보게 된 것에 근거한 것만은 아니다. 너무 잘 적응해 버린 탓인지 몇 번의 시도를 끝으로 아프리카의 개혁은 잊은 채로 지냈던,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급히 음식을 먹다 체한 듯 남아있는 부채의식과 <연탄>의 노래가사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기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이 편지를 다시 가난한 우리의 마음에 부친다. 몇 차례 반복하여 쓰디 쓴 자기혁신의 실패를 경험했다고 하더라도 환경에 의해 잠시 잊었을 뿐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것이 바로 우리네임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한두 번 소통을 지향한 변화의 시도가 실패로 끝이 났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우리가 인간임을 확인하는 과정이었음은 분명할 것이다. 너무 늦어버린 것은 아닌가, 라는 고민이 들기 전에 최소한의 노력도 없었다는 후회를 씹어 삼켜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마씨 아저씨의 말처럼 만약 인간이 환경에 의해서 형성된다면 사람들은 환경을 인간적인 것으로 형성해야 하기에. 가난하지만 가난하지 않아야 할. 가난한 그대 가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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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8-12-08
20:29:55 

 

상병 이지훈 
  계약직 특파원. 멋진 표현이네요 허허 

감사합니다 좋은 글이었어요 여기서의 생활(특파원으로든 뭘로든)을 
하다보니 깊게 공감되는 글이네요 
그러고보면 전 선배나 후배와의 사이에 대해 이렇게 생각한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아니, 시도도 안해봤던 것 같아요 분명 글에서처럼 작은 사회를 이루고 있는데 말이죠 
흠.. 2008-10-29
03:13:31
  

 

상병 이우중 
  잘 읽었습니다. 
후배들을 인간적으로 대한다는 마음가짐을 갖고 보면 화가 나더라도 일단 한 번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게 되고 그러면 화도 좀 가라앉고 그래요. 좋은 말로 타이를 수 있죠. 
어디까지나 제가 여유 있을 때 말이죠. 
아주 바쁜 경우에 좀 신경질적으로 변하는 건 미안하지만 후배들에게 좀 양해를 구한다 치더라도 개인적으로 화가 나 있다거나, 기분이 좋지 않다거나 할 때 저도 모르게 후배들한테 막말을 하는 경우는 정말 고쳐야지 고쳐야지 하면서도 아직 완전히 고쳐지지 않네요. 허허.. 점점 나아지곤 있지만 그래도 그건 제 의지로 인한 게 아니라 여유가 많아지니까 그렇게 되는 것 같아서 조금 아쉽습니다. 

덧. '아프리카'란 표현 정영목님이 처음 쓴 것 같기도 하고 말이죠. 2008-10-29
07:57:46
  

 

병장 정병훈 
  인간은 원래 이기적이라죠. 2008-10-29
09:23:58
  

 

병장 이동석 
  <가지로>라는 말을 외쳐야할때 아닌가요? 

방금 일어났는데, (11시까지 취침입니다) 
그 편지 내용을 읽는데, 하품을 했나, 눈곱이 눈을 찔렀나, 
핑- 

두환님 글이 상투적이라는 건 아닌데, 
공연히 새벽 다섯시에 쓰레기통이 생각나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울화통을 터뜨리던 때가 생각나고 
이젠 다 포기하고 나가서 제대로 하겠다던 개소리가 생각나고 
시큰- 2008-10-29
10:18:33
 

 

병장 고동기 
  저도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반성합니다. 

가지로. 2008-10-29
13:09:03
  

 

병장 고은호 
  가지로! 

'변화는 다수의 동의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 현상유지도 버거워 보였다.' 
최근에 가장 절절히 느끼는 감정이네요. 

후후... 아니, 아니에요. 
실은 그렇게 핑계대며 몸 편히 뒹굴대고 싶어하는 제 속마음을 숨긴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곱번 넘어져도 여덟번 일어난다는 눈 큰 개구리 처럼 
꿋꿋하기만 한 두환님이 존경스럽네요. 

그래요. 지금 이렇게 포기하며 뒹굴댈 때가 아니지요. 
결과가 있어야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과정 자체가 우리가 인간임을 확인시켜주는 이상 
다시 한 번 마음 다잡고, 가난한 가슴에 힘을 불어넣어 봐야 겠네요. 

좋은 글 너무 감사합니다. (웃음) 2008-10-29
14:50:17
  

 

병장 이동석 
  오늘은 좋고 나쁨을 떠나 글도 잘 안올라오니, 좀 삭혀두었다가, 꺼내서 가지로 가야겠어요. 흐흐. 2008-10-29
14:51:57
 

 

병장 문두환 
  윤영돈님과 정영목님 두분께 동시의 사과의 말을(꾸벅)...아 요즘 정말 단기기억상실증이라도 걸렸나봐요. 바로 직속 마이너 이름이 생각이 안 나질 않나...후배들 보고 어! 너 이름이 뭐였지...!!라는 말을 하지를 않나. 글을 한 번 쓸때마다 꼭 한번씩은 공개적인 수정을 거치는군요(웃음). 

무슨 말을 더 하고 싶은데, 실어증에 걸린 것처럼 도저히 써지지를 않았습니다. 쓰고 나서도 계속 더 고민이 들었던 글이었네요. 2008-10-29
15:12:05
  

 

병장 정영목 
  보아하니 제가 사과받아야 할 건 없는 거 같은데요? 아프리카란 단어의 사용 때문에 그런 것이라면 더더욱요. 오히려 제 표현에 동감해주셨다는 게 감사할 따름이죠. 2008-10-30
12:38:35
  

 

상병 손정우 
  안도현 시인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서문에 나오는 노랫가사가 참 와닿네요. 사지방이 고쳐지는 대로 한번 검색해 들어봐야 겟네요. 
<연탄> 이라... 2008-11-04
15:0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