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글-내글내생각]침묵하는 자의 변명  
상병 이지훈   2009-01-23 12:23:29, 조회: 387, 추천:0 

어디를 가든 우리는 발성하는 자와 침묵하는 자를 볼 수 있다. 발성하는 자는 인간 혹은 인간들이 이루는 무리의 행동과 사고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문제를 제기한다. 누구에게? 바로 발성하는 자가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는, 인간 혹은 인간들이 이루는 무리에게 이다. 이름이 ‘발성하는’ 자인만큼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누구나 ‘발성하는’ 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야말로 귓속말이든 메아리를 기대할만한 외침이든 ‘발성’의 행위가 있어야만 한다.

인간이 탄생과 함께 시작하는 것이 발성이지만 그렇다고 문제의식을 가진 ‘발성’도 이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특히 문제가 있다고 느끼는 인간 혹은 무리가 발성하는 자와 가까울 경우 더욱 어렵다. 문제 제기 그리고 수용의 과정에서 발성하는 자 또한 물리적, 정신적 피해가 있기 마련이다. ‘가깝다’ 라고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쏘아붙이는 것은 결국 거울을 보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발성하는 자의 침은 거울을 향해 날아가지만 돌아오는 것은 더러운 거울에 비친 자신이다. 게다가 모 접시 회사 광고의 소프라노처럼 강한 발성으로 거울을 깨버리면 영영 자기 자신을 못 볼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거울을 닦으면 되지 않는가, 더러우면 닦아서 빛나게 할 일이지, 괜한 침을 뱉고 또 깨먹는가 라고. 하지만 인간의 분비물 없이 거울은 닦아지지 않는다. 적어도.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발성’은 어렵다. 누군가, 우리에게 혹은 우리가 속한-더불어 누군가도 속한- 무리에 대해 용기 있게 발성한다면 그것은 박수 받아 마땅한 일이다. 발성하는 자를 찾아볼 수조차 없는 경우도 많기에 그 사람과 가까운 사람과 무리는 축복받은 것이라 감히 말하고 싶다. 문제를 제기한 발성하는 자를 무시하지 않고 환영하는 것이 첫째요, 그의 침이 거울의 얼룩에 제대로 묻었는지 함께 관찰하고 이야기해보는 것이 둘째요, 그의 침이 통렬하게 거울에 박혔다면,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닦아 내는 것이 셋째다. 세 과정을 지키는 것은 발성하는 자를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일종의 도덕이다.

아쉽지만 어려움을 무릅쓰고 발성하는 자는 흔하지 않다. 대부분은 침묵하는 자이다. 흔하지 않은 발성하는 자가 모이더라도 침묵하는 자 앞에서는 절대 소수이다. 발성하는 자는 소수이기에 감히 특징을 짚어낼 수 있지만 침묵하는 자는 그렇지 않다. 발성의 반대어가 침묵은 아니지만 뉘앙스상 오해가 있을 수 있다. '발성'의 반대어는 '침묵'이 아니다. 침묵하는 자 모두가 그저 문제의식이 결여된 채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니다. 발성하는 자가 위대한 만큼 침묵하는 자 모두가 욕먹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발성하는 자는 침묵하는 자들을 좀 더 이해해야 하며 그들이 다수라고 싸잡아 일반화시키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이는 발성하는 자들을 위한 도덕과 마찬가지다. 거울을 빛나게 하기 위해서는 발성하는 자들의 침도 필요하지만 묵묵히 그것을 닦아서 빛낼 침묵하는 자 또한 필요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김삿갓으로 유명한 김병연은 자신의 외조부를 비판하는 글로 과거에 급제한 뒤, 그 사실을 깨닫고 죽을 때까지 삿갓을 벗지 않고 관직에도 나아가지 않았다. 발성하는 자는 삿갓을 눌러 쓸 각오를 한 용기 있는 자이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에게 삿갓을 쓸 각오를 가져야 한다고 강요할 수는 없다. 이러한 강요는 침묵하는 자 모두를 문제의식이 결여된, 문제에 대해 무관심한 자들로 파악할 때 생긴다. 통계학을 빌리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드러난 행동만으로 대다수의 침묵하는 자들을 일반화시켜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론 정말 문제의식 없이 무관심한 채 침묵만으로 일관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하는 것은 거울을 닦는 일도 아니고 침을 튀기는 것도 아니다. 이들은 그저 침묵, 그리고 침묵이다. 우리는 이들을-설령 자기 자신이 포함된다 하더라도- 이해해줄지언정 용납해서는 안 된다. 손을 놓은 채 그저 침묵하는 자들은 발성하는 자들의 용기를 비롯해 침을 닦는 침묵하는 자들의 행동과 실천까지 무용한 것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쓸데없이 긴 글로 포장하고 있지만 이것은 침묵하는 자를 위한 뻔뻔한 변명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생각보다 많은 침묵하는 자들이 발성하는 자들의 뜻에 동조하고 그들의 침으로 묵묵히 거울을 빛내고 있다.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많은 발성하는 자들이 자신의 침을 튀긴 채 사라져 갔지만 그들의 침은 거울에 남았다. 아직 닦아내지 못한 침도 많지만 우리는 역사를 통해 이것을 언젠가 닦아야할 것임을 알고 있다. 침묵하는 자들 중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자들을 끌어내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 구분은 애초에 불가능하며 무의미하다. 말하고 싶은 것은 이 글이 침묵하는 자들을 위한 변명이지만 발성하는 자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발성하는 자들은 발성하는 장한 용기를 침묵 속에 파묻어서는 안 된다. 침묵에 실망해서도 안 된다. 메아리 없는 공허함 속에 누군가는 자신의 침을 이용해 묵묵히 거울을 닦고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발성하는 자들이 용기 있는 발성으로 끊임없이 거울에 침을 튀겨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침묵하는 자들은 발성을 두드러지게 만들고, 그의 침을 닦아 거울을 빛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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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08
09:04:44 

 

상병 김형태 
  오늘도 열심히 침을 뱉어야 겠습니다. 2009-01-23
12:34:11
  

 

병장 이동석 
  침묵, 침-, 발성 
이거 운율이 살아있군요. 

는건 개소리고, 전 침묵하기엔 입이 너무 가볍고 성급합니다. 그리고 전 간접화법도 성미에 안 맞아 못하고, 그러나 "메아리 없는 공허함 속에 누군가는 자신의 침을 이용해 묵묵히 거울을 닦고 있다는 것을 믿어"의심지 않습니다. 

발성의 윤리가 없는, 침이 마르고 목이 갈라지는 인간에게 뜨끈한 차한잔과도 같군요. 

가지로- 2009-01-23
12:35:54
  

 

일병 송기화 
  퉤. 모두를 위해서, 제대로 튀겨주셨군요. 
<가지로> 2009-01-23
13:22:27
  

 

병장 이우중 
  기화님/ 원문이 가지로 가면 답글도 같이 가지로 가는 걸로 알고 있어요. 
실험해볼까요? 

가지로 2009-01-23
13:36:59
  

 

상병 김용준 
  흠...제가 봤을 때는...'침묵하는 자'도 '발성하는 자'도 아닌 '발성, 침묵조차 못하는 자'는 염두조차 안하신 것처럼 보이는데...아닌가요?(중얼중얼) 그냥 궁금해서요? 낄낄낄. 

저는...침묵하는 자일께 분명군요. 끌끌끌 2009-01-23
13:37:35
  

 

병장 이우중 
  용준님/ 
그런 사람에 대해서는 끝에서 두번째 문단에서 언급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허허허. 2009-01-23
14:15:05
  

 

상병 김용준 
  음...제 머리로는 이해가 안 되는데 우중씨가 쉽게 설명점 해주세요!(버럭!) 낄낄낄. 2009-01-23
14:17:21
  

 

병장 고은호 
  용준님/ 
발성, 침묵조차 못한다면... 도대체 어떤 상태인 것인지 짐작이 되지 않네요. 
그저 들어오기만 하며 눈으로만 보고, 강건너 불구경하듯 처다보기만 하는 것인가요? 
아니면 뭐라고 말 하고 싶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나 환경 때문에 발성하지 못하는 
분들을 말씀하시는 것인가요? 

아마 우중씨는 전자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 같은데... 
용준씨는 후자를 가리키는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상태를 말씀하시는 것인지 
잘 모르겠네요. 2009-01-23
14:36:43
  

 

상병 김용준 
  제가 말한건 후자입니다. 그리고 형편이 힘들어 먹고 살아갈뿐인 사람들도 포함 되겠죠... 
과연 그런 사람들을 '발성하는 자'와 '침묵하는 자'로 나눌 수 있을지 궁금해서요? 2009-01-23
14:44:08
  

 

병장 김민규 
  그래요. 사치스러운 말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긴 리플을 적었다가 올리지 못하고 그냥 지워버린 까닭은 그런 자격지심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궁 안의 책마을에 관한 것으로 이 논의를 국한한다면, 조금더 낙관적인 말로 일종의 변호 내지는 합리화를 할 수 있을 듯도 합니다. 깊이 있는 발성은 쉬이 묻히는 일이 없었다고요. 책가지에 간 글들을 살펴보면 쉬이 알 수 있어요. 
여건의 불비를 지적하는 말에 대해서는 - 저 역시도 낮엔 기껏해야 알트탭이고, 주로 새벽에 글을 쓰곤 하니 그 누구라고 편한 여건에서 팔자 좋게 글 쓰는 사람은 없으리라고 강변하고 싶었죠. 

그러나 혼탁한 세상속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에도 빠듯한 이들에게 침묵의 낙인을 씌우는 것은 폭력적이예요. 대중적 무관심의 일종이라고 규정할 수는 있는데, 그게 반드시 올바르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이건 선거날도 없이 출근하는 이들에게 투표율이 왜이렇게 안 나오냐고, 당신들 탓이라고 몰아세우는 것과 같거든요. 

생각이 복잡해집니다. 그냥 적당한 선에서 잘라버리고 댕강 하는게 건강에는 이로울지도. 2009-01-23
15:27:21
  

 

상병 김용준 
  역시 깊게 생각하면 복잡해지는건가요? 요즘 계속 사색(思索)을 많이 하고 혼자 번민(煩悶)을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치료할 방법이 없을까요? 흑흑. 2009-01-23
15:30:45
  

 

상병 정근영 
  이건 저를 비롯한 많은 분들이 생각하고 있었지 않을까.. 싶은 주제군요 
한 달에 고작 한, 두편 정도의 글을 올리고 댓글도 잘 안 다는 사람으로서 누워서 침뱉기-격이 될지도 모르지만, 확실히 이런 류의 글들에는 매번 참여하는 사람만 나타나지, 대다수는 오로지 침묵과 눈팅으로 일관하더군요. 물론 민규씨 말대로 자유롭게 글을 쓸 여건이 안 되기에 참여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거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굳이 주위를 돌아볼 것도 없이 우선 저만해도 그러니까요. 

그렇다 할지라도, 제가 침묵하는 것에 부정적인 이유는 책마을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있는 정도로 책마을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잠깐의 시간이라도 내어 한 편의 글을 쓰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가 하는 것 때문입니다. 제가 이런 말할 처지가 되겠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저는 책마을에 진지하지 않게 다가간 적은 없습니다. 밤에 졸린 눈을 비벼가며 노트에 글을 쓰고, 그렇게 만들어진 글을 수십번씩 들여다봅니다. 그렇게 며칠씩 고생하며 만들어낸 글을, 쌍황이라든지 당근을 먹을 때 차분하게 책마을에 올리고는 합니다. 아직도 제 글은 많이도 부족하다고 생각은 하지만, 최소한 가벼운 마음으로 쓰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부끄러움을 느끼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내일즈음이면, 책마을에 한 편의 글을 더 올릴 수 있을 듯 싶습니다. 부족한 필력이라도 진심이 담긴 글이라면 상대방의 마음속에 닿을 수 있음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저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신변잡기식 글들을 내뱉기 보다는 치열하고 진지하게 자신의 사유를 토해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09-01-23
19:13:45
  

 

병장 이동석 
  근영님 글을 기다리면서, 저는 정신없던 하루를 마무리 해야겠습니다. 2009-01-23
19:48:05
  

 

병장 김민규 
  저도요. 저녁에 정신이 없어 이제야 잠시 들어와 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