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글-내글내생각]단상- 이모티콘과 문자언어.(병장 김현진)
병장 김상열 2008-04-16 09:32:29, 조회: 421, 추천:0
단상- 이모티콘을 통해 본 문자언어의 방향.
(*이 글은 주제가 이모티콘이므로, 어쩔 수 없이 이모티콘을 사용합니다. 사용했다기 보다는 자료로서 '보여주는' 수준이기는 하지만, 이 점 양해 부탁 드립니다. 이 글에서 쓸데없이 이모티콘을 사용했으며, 그렇기 때문에 내규에 어긋난다고 판단하신다면 거침없이 이의를 제기해 주시길.)
0.
인터넷 전송속도의 한계와 사람들의 인식과 관련된 잡다한 문제(속옷 차림에 부스스한 머리와 눈꼽, 침흘린 자국을 보여주며 영상통화를 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때문인지, 아직 인터넷 문화는 문자언어(=글)를 벗어나지 못하는 실정이다. 카메라/마이크를 사용한 실시간 채팅이나 최근 인터넷의 대세로 떠오른 UCC가 있지 않냐고 물을 수는 있으나, 이것들은 '설정된 일상', '녹화방송'이며 현실적으로는 소수의 영역이다.(*) 대부분은 키보드만을 사용한다. 아직 일상의 영역은 '생방송'되지 않는다.
(*UCC의 경우, 의사소통이라기 보다는 "소비재의 생산"에 가깝다고 본다. UCC는 즐기는 것이고, 결국 소비된다.)
이런 상황에서 의사소통이 쉬울 리 없다. 상대의 표정이나 어조, 몸짓을 보지 못하고 오직 글로만 소통하는 상황에서 오해의 발생은 거의 필연에 가깝다. "이모티콘"은 그 문제 때문에 생겨났다. 이모티콘은 자신의 감정을 기존 문자의 형태적 특성을 살려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기호를 의미한다.
텍스트의 시각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모티콘은 인터넷 탄생 이후 엄청난 각광을 받았다. 우리는 이제 [^^]에서 상대가 웃고 있음을, [--^]에서 상대가 화가 나 있음을 안다. [ㅠㅠ]는 우는 것이며 [-_-;;]는 당황해 땀을 흘리는 모습이다. 직접 사용해보자. 옳커니. 이모티콘 몇 개만 넣었을 뿐인데 건조한 글에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텍스트를 시각적으로 꾸미는 이러한 방식은 어느덧 인터넷을 넘어 일상을 물들이기 시작했다. 몇 년 전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귀여니의 '소설'은 그 도전적 시도였다. 이야기 수준이 초중딩용 순정만화와 똑같다는 내용의 문제는 비판의 화살을 피해가지 못했지만, 판매량과 인기를 감안하면 적어도 그 이모티콘의 사용은 (글로 먹고사는 사람들에게는 이것처럼 꼴사나운 일은 없었을 것 같다만) 대중에게는 어찌어찌 받아들여진 것 같다. 이러한 용인은 인터넷과 핸드폰 문자 메시지의 사용 빈도가 증가하면서 점점 더 강해졌는데, 이모티콘의 사용을 무시하지 못하고 반감을 가진 '이모티콘 안티'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역으로 이모티콘의 현실 침공이 상당한 수준의 성공을 거두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한 가지 물음을 제기하려 한다. 이 물음은 이모티콘의 정의가 아니라 이모티콘의 실제 활용에 근거한 것이다. 이모티콘은 "무엇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가?
1.
이모티콘은 "무엇을" 표현하는가?
우문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모티콘은 그 어원(Emotion + Icon) 에서 볼 수 있듯 '감정'을 표현한다고 답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감정은 누구를 위한 감정인가? 우리는 정말 웃고 있어서 [^^]나 [ㅋㅋ]를 사용하는가? 정말 울고 있어서 [ㅠㅠ]를 사용하는가? 그렇지 않다. 웃으면서 [ㅠㅠ]를 사용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해할텐데, 우리는 글의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기 위해서나 혹은 멋쩍어서 습관적으로 이모티콘을 사용한다. 핸드폰 문자 메세지를 보내면서, 괜히 말 끝에 [ㅋ]나 [ㅎ]를 붙이지 않으면 딱딱해 보일 것 같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모티콘의 이러한 사용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 보다는 상대에게 맞춰주기 위한 연기에 가깝다. 젊은 세대에게 이모티콘은 일종의 '격식'으로 쓰인다. 그러나 이모티콘의 태생을 고려해 보면 이 격식은 일상언어의 존댓말과는 조금은 다른 용도를 갖고 있다. 이모티콘은 '싸움을 피하기 위해서만' 사용된다.
(*존댓말은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되는 것 같다. 상대에 대한 존중-싸움을 피하기 위해서-과 권력관계의 반영.)
2.
이모티콘은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가? 이모티콘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웃음 / ㅠㅠ=눈물 / OTL=좌절]
이 이모티콘이 적절하게 사용된다면, 우리는 상대의 기분이 어떨지 파악할 수 있다. 당신은 웃거나, 울거나, 당황하고 있거나, 좌절하고 있다.(앞에서 말한 이유로 인해, 정말 그런 건지는 알 수 없게 되겠지만.) 그런데 묻자. "당신은 얼마나 즐겁고, 얼마나 슬픈가?" 이모티콘이 표현하는 감정은 제한적이다. 감정을 단순한 몇 가지의 구분으로 나눌 뿐이란 말이다. 나의 웃음과 너의 웃음은 다르다. 사랑을 잃었을 때의 슬픔과 아플 때의 슬픔 또한 다르다. 그러나 모든 기쁨과 슬픔은 [^^]과 [ㅠㅠ]로 치환된다. 소위 디지털 세대다운 풍조라고 보기엔 지독할 정도로 편협한 구분이다.
우리는 생각하는 대로 산다기 보다는 사는 대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주어진 환경이 본성과 감정을 결정하는 것이다. 이모티콘의 디지탈적 표현은 우리의 풍부했던 표정들을 몇 가지의 기호로 못박는다. 이 글을 보는 당신은 지금 [-_-ㅋ]하고 있다. 나는 이것이 단지 표현의 차원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감정에 영향을 줄 거라 생각한다. 상대가 웃는지 우는지는 관심이 있으나, 얼마나 어떻게 기쁘고 슬픈지는 별 관심이 없다. 감정은 거세된다.
3.
사람들은 문자언어를 통한 의사소통에서 한계를 느꼈고, 그 대안으로 이모티콘을 사용하기 시작했으나 이 또한 한계를 드러낸다. 그러나 이 경계에서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은 이모티콘이 쓸모없거나 위험하다는 판단도 아니고 문자언어의 또 다른 대안이 필요한 근거도 아니다. 바로 문자언어를 더욱 갈고 닦아야 할 필요성과 그 방향이다.
문자언어는 이모티콘이 표현하지 못하는 '강도적(질적) 차이'에 주목해야 한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감정을 최대한 그대로, '감동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기법을 익혀야 한다. 또한 우리는 격식을 차리기 위해 [^^]을 날리며 논쟁을 피할 것이 아니라, 언어와 사고를 좀 더 치밀하게 갈고 닦아 논쟁을 활발하게 전개하여 그 성과를 얻어내야 할 것이다.
인간의 지식은 소통과 이해의 과정을 통해 축적되어 왔다. 일방적인 힘의 성채들은 언제나 소통에 의해 해체되고, 소통의 결과로서 재구축되었다. 여기서 이해를 담보하는 진정한 소통이란 충돌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충돌(=싸움)해 진화하는 것이다. 부서짐만을 야기할 큰 덩어리들의 충돌이 아니라, 언어에 의해 세밀하게 쪼개진 작은 알갱이들의 뒤섞임이다. 이는 이모티콘이 절대 할 수 없으며 UCC조차 이루지 못할, 문자언어만의 과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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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병장 구본성
꺄울~~ 잘 읽었습니다. 가지로!!
2007-11-25 10:38:57
02|상병 주해성
얼마전 고등학교 2학년인 사촌동생이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여러 언어의 능숙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그 아이는 마치 애니메이션 포스터 같은 멋진 편지지를 직접 만들었습니다만, 난발되는 [ㅋㅋㅋ]은 편지가 왔다는 사실만 각인될뿐 그 내용을 잃어버렸습니다. 습관적 이모티콘은 더이상 감정의 전달이 아닌 감정의 상실(내용적 상실에 기반한)로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사촌동생한테 이 글을 보여주고 싶군요.
<가지로!!>
2007-11-26 13:23:06
02|병장 황인준
잘 읽었습니다.
주제도, 내용도 좋은 글이네요.
저 역시 이모티콘을 많이 썼다가, 군대에 오면서 안쓰게 되었는데 주위에서 글이
깔끔해졌다고 하더군요.
또한 이모티콘을 사용하지 않게됨으로서 한 문장 한 문장 쓸때마다
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할 수 있게 된 거 같습니다.
가지로! 외칩니다.
2007-11-26 13:41:29
02|6급 하지연
우리 책마을에서 이모티콘을 지향하는 점에 대한 의미가 잘 표현된 좋은 글 같습니다.
이 글을 책가지 공지에 올려 이모티콘에 대한 경각심을 자극하도록 합시다.
'가지로' 그리고 추천
2007-11-26 13:48:05
02|상병 박상욱
호감을 가지고 있던 사람한테 [ㅋㅋ] 붙여 문자를 보내놓고는, 답장에 [ㅋㅋ]또는 [ㅎㅎ] 아니면 적어도 [^^;]가 붙어 있는지에 되게 민감해 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이모티콘도 둔했고, 거기에 매달리는 저도 둔했습니다. 그래서 잘 안됐는지도 모르죠[ㅋㅋㅋㅋ].(웃고 있진 않습니다)
아참 가지로~
2007-11-26 15:13:59
윤기현
저도 이모티콘을 붙이는 것이 습관이었던 때가 있었죠.
말 그대로 습관.
그러면서 저의 감정은 사라져갔던 것 같네요.
좋은 글입니다. '가지로~'
2007-11-26 16:39:48
병장 김현진
앗. 이런 반응은 책마을에 글을 쓰면서 처음 받아봅니다!(울먹)
성원에 감사드리며, 자만하지 않고 좀 더 좋은 단어와 문장을 쓰려고 노력하겠습니다.
(지금 다시 보니 수정해야 할 부분이 이곳저곳 보이는 군요..)
2007-11-26 18:36:30
02|병장 장윤호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몇가지 생각이 들어서 댓글을 달아봅니다. 현진님의 글은 읽으면 읽을수록 깊이가 있어서 제가 동어반복을 하는 건 아닌지 하는 우려가 생기곤 합니다. 그만큼 깊은 사유를 동반하셨기 때문이겠지요.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이모티콘이 정말 감정의 거세와 같은 기능을 수행하고, 그러므로 이모티콘을 지양해야 하는가에 대해 좀 의문이 들었습니다.(다음의 숫자는 현진님이 넣으신 단락 번호입니다.) 구분지어 말하자면 1.의 내용은 동의할 수 있었지만 2.는 다소 오해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1.과 2.는 언뜻보면 이모티콘의 감정표현여부를 두고 상충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1.은 감정표현이 아닌 격식의 표현으로써, 2는 감정을 표현하기는 하나 거세하는 존재로써의 이모티콘 만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3. 에 가서는 각각의 경우에서의 이모티콘의 단점만을 취하여 문자언어로 그것을 극복해 내야한다는 주장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3. 의 초반부에서는 이모티콘을 사용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라고 미리 밝혀두고 있습니다만, 댓글에서는 그런 주장들이 조금씩 보이고, 현진님도 어느정도는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것을 보면서 이모티콘이 감정을 표현한다는 것, 또 그것을 몇가지 종류로 단순화시켜버린다는 말은 일종의 착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너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 좋았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단순히 [^^]를 사용합니까? 아니면 [오늘 이러이러해서 좋았어^^]라고 표현합니까? 여기에서 오해가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 이 자체가 다시 '좋아'라고 '말한다'고 생각하면 문자언어와 의미가 중복됨에도 우리는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현진님의 글 0.에도 드러나듯이) [^^]는 난 기쁘다는 문자적인 감정표현이라기 보다는 내가 실제로 웃고 있다는, 시각적인 이미지를 기호화 한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하면, 이모티콘은 문자언어와는 대응관계를 가질 수 없는, 시각적 기호가 됩니다. 그리고 같은 식으로 초성체, [ㅋㅋ] 등은 청각적 기호가 됩니다.
그렇다면 이모티콘이 우리의 풍부한 표정이나 음성을 거세하는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모티콘을 받고 상대방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가 웃음짓는 모습을 생각하고, 목소리를 떠올리면서 킥킥 거리는 것을 생각합니다. 즉, 상대방과 '실제의 (대면하는) 대화하고 있는 상황을 상상하며' 이모티콘을 사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상대방의 감정이 표정으로 드러나던가, 목소리로 드러나던가 하는 부분을 이모티콘으로 치환시켰다고 볼 수 있는 것인데, 이것이 감정의 거세가 될 수 없는 이유는, 우리는 실제의 상대방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상대방이 얼마나, 어떻게 기쁜가에 '관심이 없어지지'는 않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상욱님의 댓글이 반영해주듯, 우리는 이모티콘이 쓰여진 맥락에서 상대방의 감정을 파악하려고 충분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모티콘은 이처럼 문자언어와는 별개의 매커니즘, 다른 맥락에서 사용된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편지글에 이모티콘을 쓰는 것은 편지가 마치 메신저나 문자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버렸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런 글은 메신저에서 처럼 피드백이 없기 때문에 길게 늘여쓰기도 어렵고, 또 그러한 이유로 이모티콘이 과잉사용된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문자언어로 감정을 세련되게 표현하는 것은 편지글이나 문학작품 등에서 아름답게 사용되어야 하겠다고 여기면서도, 웹 공간이나 문자메시지로 그런 글을 쓴다는 건 좀 이상할 것만 같습니다.
2007-11-28 11:04:35
병장 김현진
이 글의 맹점을 정확히 짚어 주셨습니다. 이 글을 책마을에 올리고 제 개인 블로그에 올리려고 쓰다 보니 2번 끝에서 탁 걸리더군요. "정말, 감정은 거세될까요?" 거세된다는 말은 심리학 책을 감명 깊게 읽은 적이 있는 사람에게는 습관처럼 나오는 관용적 표현이지요. 저는 무심코 이런 표현을 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2번 단락을 생각하게 된 중심 주제였습니다. 전 '감정은 거세된다'고 간주하고 글을 쓴 거지요. 글을 보충할까 했었는데, 윤호 님의 댓글로 충분할 것 같아요.
2번을 다시 보면서 든 고민은 이랬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우리는 "항상 이모티콘 만을 사용하는 건 아닙니다. " 이를테면
"하루 종일 앉아서 일을 했더니 허리가 너무 아파[ㅠㅠ]"
라는 문장은 나는 하루 종일 일을 했고 그래서 허리가 아프다고, 문자언어와 이모티콘을 모두 사용해 표현합니다. 이 경우 이모티콘은 문자언어의 사용을 제한하거나 의미를 제한하지 않으며, 오히려 묘사를 더욱 풍부하게 해 주지요.
이러한 상승작용은 대부분의 일상회화에서 동일하게 작용합니다. 문자언어와 이모티콘의 조합은 [상황+감정]을 간편하게 표현해 주지요. 특히 일상회화는 '이미 알고 있는 상대'를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우리는 이모티콘을 보고 상대의 표정을 보다 생생하게 떠올릴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인터넷 상에서 벌어지는 담화의 속도와 난잡함을 생각해 보면, 상대의 웃음을 떠올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저는 반대로 생각해요. 우리는 상대가 띄운 [^^]에서 상대가 아닌 저 자신의 웃음이나, 혹은 어느 누구도 아닌 다른 무엇(라캉의 대타자를 생각해 봅시다)의 웃음을 떠올리고, 곧 지나칩니다.
어쨌든 윤호 님의 의견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건 접어두고, 그러나 저는 다른 상황도 보았습니다. 제가 주목한 것은 두 가지, 이모티콘이 글보다 우위에서 감정을 왜곡하기 위해 쓰이는 현상과 이모티콘이 일상의 경계를 넘어섰을 때 사람들에게 미칠 영향입니다. 아시겠지만 언어는 금과옥조가 아닙니다. 사용하는 사람들의 유행을 반영하면서 바뀌어 나가지요. 그렇다면, 이모티콘 없는 텍스트를 상상하지 못하는 세대의 등장은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여담인데, 그렇다면 언젠가 우리는 "^%$@*^%$""(??*&^%(" …이렇게 의사소통을 할지도 모르겠어요. 하하.)
일상언어와 공식적인 언어가 모호한 경계를 두고 따로 존재하기는 하나, 어쨌든 지금은 유기적입니다. 글은 글이고, 말은 말이며, 표정은 그저 얼굴에서 나오지요. 우리는 그렇게 배웠습니다. 그러나 저는 언어생활이 사고에 큰 영향을 준다는 관점하에서, 일상화된 이모티콘은 마찬가지로 사고에 영향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소위 ‘책의 문화’와 ‘영화의 문화’간의 차이나 몸개그와 시사 꽁트간의 차이처럼, 접하는 사람의 사고를 요구하느냐 일방적인 수용을 요구하느냐의 문제가 이 경우에도 적용됩니다. 자신의 감정을 이모티콘이라는 ‘영상’으로 표현할 수 있는데 굳이 장황한 서사나 묘사를 생각할 필요는 없으며, 상대의 표현이 직관적으로 수용되는데(그 표정이 정말 누구의 표정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굳이 생각할 필요 또한 없지요. 하늘의 색깔을 두 세가지로 나누는 민족이 있는가 하면 수십 가지로 나누는 민족도 있는데, 이는 편의와 필요의 문제입니다. 저는 웃음을 [^^]로 상징화하는 사람들이 그 이전의 사람들보다 더 많은 감정을 가질 수 있을 거라고는 믿지 않습니다.
(우리를 포함해)앞으로의 세대는 언어를 통해 일상을 문자언어만으로 부연하는 것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도 어색해 할 겁니다.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와 (현재까지는)공식적인-이모티콘을 쓰지 않는- 언어의 접점은 계속 줄어들겠지요. 해성 님의 댓글에서처럼, 편지를 메신저나 문자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그 증거일 것 같아요. 윤호 님도 그 ‘이모티콘이 과잉 사용되고 있는’ 현실은 인식하고 계시네요.
덕분에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문현답, 좋은 댓글 고마워요.
2007-11-28 18:56:04
병장 장재혁
와아..신 책마을의 첫 책가지군요!!
잘 읽었습니다. 뭐랄까 습관적으로 사용하던 이모티콘에 대한
새로운 생각이 들었네요...
2007-11-29 13:26:27
02|병장 장윤호
오랜만입니다(웃음) 잠시 설탕을 좀 많이 먹고 왔습니다.
현진님의 상세한 답변 감사드립니다. 요점이 좀 간추려진 것 같습니다.
저는 이모티콘을 불가능한 공간에서 '대화'를 가능케 하기 위한 보조적인 도구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아마 이점이 근본적인 차이점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모티콘을 무분별하게 수용하는 사람이 실제로 감정이 단순해지게 된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감정을 구체적으로, 세련되게 표현하는 글을 많이 접하는 사람은 그만큼 다양한 감정을 습득하게 된다는 말일 것입니다. 이 두가지 상황이 한 사람에게서 서로 양립할 수는 없겠는가?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여기서 바로 '필요와 편의의 문제'를 생각합니다. 우리의 실제 대화는 얼마나 감정을 세련되게 표현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필요와 편의에 의해서' 우리는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지 않고, 표정과 몸짓으로 때우곤 합니다. 그런데 시를 읽거나 소설 속의 감정 묘사를 볼때면 글자 하나하나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읽습니다. 거기서 우리는 전율을 느끼곤 하니까요. 다시말하면 이렇게 특정상황 속에서 우리는 필요와 편의에 따라 공식언어와 일상언어를 자연스럽게 구분짓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화를 위한 일상언어의 차원에서 놀던 이모티콘이 공식언어의 테두리를 뚫고 들어갈지는 다소 의심스럽습니다. 오히려 감정표현의 구사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치명적인 결점을 가지고 있지요.
만약에 이모티콘이 대화를 넘어서 편지글 등에 침투하는 것, 귀여니 식의 소설이 인정을 받는 것 등이 '공식언어' 변화의 서곡이라고 생각하신다면 저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으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러한 상황이 어떤 큰 변화의 시작이라고는 생각을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의견의 차원보다 낮은, 짐작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부분에서 제가 강하게 제 의견을 주장할 수 없는 것은 아마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2007-12-07 13:33:53
병장 김현진
윤호 님// 파편화되어가는 우리와 우리 다음 세대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 원인 중 하나가 이모티콘으로 대표되는, 그네들의 언어활동이라고 생각했는데 조금 핀트가 맞지 않았나 봅니다. 원인이라기 보다는, 현상이겠지요. 파편화 그리고 인스턴트의 본질은 인터넷 환경, 더 나아가서는 컴퓨터 앞에 앉아서야 비로소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우리의 사회 현실에 있나 봅니다.
어쨌든 이 글로 돌아가면, 역시 시작점의 차이는 극복하기 힘드네요. 윤호 님의 말도 맞습니다. 저는 "이모티콘은 편의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그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운을 띄운 거지요.
문제는 귀착점입니다. 제 문제의식은 사실 이모티콘 안티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저는 이모티콘에 익숙할 다음 세대들이 이모티콘을 쓰지 않으면 뭔가 말을 제대로 한 것 같지 않은 것만 같은 느낌을 갖는 경우가 생기지 않도록, 일상 언어를 사용하는 법을 더 단련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
...역시 저는 종윤 님의 댓글에는 반박할 수가 없습니다. 뭐, 그럴 이유도 없지요. 제 글을 찢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생길 정도의 댓글이었습니다만, 저에게는 이 주고받음이 발전적인 논의라고 생각해요. 글을 쓸 때 있었던 모호한 부분들이 댓글을 주고받으면서 꽤 명확하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이 정도면 충분하지요! 앞으로도 많은 태클 기대합니다.
*아, 언어를 갈고 닦는 이는 그만큼 다양한 감정을 습득한다는 거, 저는 긍정합니다. 우리는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이상의 것을 사고하지 못한다고 저는 봐요.
**이 글 쓰다가 생각한 건데, 우리의 문화가 조금 더 '느림'을 선호한다면 제 문제가 가장 긍정적으로, 그리고 궁극적으로 해결되지 않을까요?
2007-12-11 23:43:48
02|병장 장윤호
현진 님 / 역시 좀 더 넓은 시각에서 문제를 보고 계셨군요. 저는 언어학이나 커뮤니케이션론에 대한 지식이 일천하여서, 그저 깜냥껏, 조금 기능적으로 이 논의를 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언어활동의 형식과 매커니즘이 넒은 차원의 인간의 소통행위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므로, 현진님의 이야기도 설득력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그 변화내용이 실제로 어떠할 것이고 이모티콘이 어떤 역할을 할 지는 저는 사실 상상이 잘 안갑니다. 상상력의 부족일까요. 아무튼, 그렇기 때문에 말씀하신대로 다른관점에서, 문화사회학의 차원에서 이모티콘을 보는 것은 좋은 착상인 것 같습니다. 음, 제가 설명해드릴 능력은 없지만요.(웃음)
2007-12-12 12:3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