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글-내글내생각]글을 쓰는 이유  
병장 윤영돈  [Homepage]  2008-11-25 08:25:55, 조회: 206, 추천:3 

고등학교 3학년때, 그러니까 모의고사가 끝나고 성적이 나왔을 때 내 언어영역 성적은 반에서 1등이었다. 공부를 지지리도 못했던 반이었기에 만점을 받지 못했어도 1등을 할 수 있었고, 국어 선생님이 성적을 말해줬을 때 반 애들은 믿지 못하겠다는 말을 했다. 그 애들 보기에 나는 야자도 안해, 학년 초부터 선생들에게 얻어맞기만해, 공부엔 관심이 없는 놈이었기에 믿지 못하는건 당연했다. 나 또한 1등을 할 줄은 몰랐지만 당시 성적때문에 차별하는 것에 오기가 올라 몰래 열을 올리며 공부했었고 가장 자신있는 언어영역이기 때문에 그런 성적을 받는건 당연했다. 녀석들이 놀라는 것을 속으로 비웃고 있던 나를 변호해준 사람은 성적을 발표해줬던 국어선생님이었다.

"아냐, 얘 독후감 쓴거 보고있으면 시야가 트여있어."

기억이 가물가물해 대사가 다르긴 하지만 그런 류의 발언이었다. 그런 국어선생님의 말에 내 글쓰기에 대한 자부심은 하늘을 찔렀다. 누가 체계적으로 가르쳐 준적도 없고, 배울 생각도 없어 글쓰는 것에 대해 노력따윈 없었지만 언제라도 조금만 노력하면 대작가만큼은 못하더라도 어느정도 사람들이 만족 할만한 글을 쓸 수 있다는 막연한 자신감이었다.


자신의 글에 대한 평가도 없었고 사유조차 하지 않았던 시간이 흘러 대학에 올라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나는 리포트 대신 내는 시나리오를 작성했다. 그리고 그곳에서도 어이없는 자신감은 표출되 1년 동안 생각해온 시나리오는 아까우니까 낼 수 없다고 생각하고 거기서 몇개의 소스만 빼와 마치 패스트푸드 마냥 초고 상태의 시나리오를 만들어 냈다. 그렇게 모인 20개 가량의 1학년들 시나리오 중 단 4개만 영화촬영에 들어가기로 했는데 그 네개 중 하나에 속해있었다. 그 땐 당연하다고 생각했었고 동기의 칭찬이 내 자부심을 굳건히 하는데 일조했다.

"교수님 방 청소할 때 시나리오 다 읽어봤는데 네게 제일 좋았어. 다들 첫글이니까 당연하긴 하지만 자기 얘기하느라 바뻤거든. 근데 네건 그런거 없이 독특했어."

과 특성상 얼마 안되는 동기 중 생각이 깊다고 느꼈던 동기였기에 그 일조는 더 컸을지도 모르겠다.


의무감 따위 없이 오직 미래만 생각해서 궁에 빨리 들어왔다. 궁 안을 떠돌며 바쁜 생활을 하며 나는 글에 대한 욕구가 커졌다. 다행히 컴퓨터가 있는 곳에서 일했기 때문에 글은 언제라도 쓸 수 있었다. 광부, 윗사람의 눈을 피해 몰래몰래 글을 쓰며 욕구를 채웠지만 마음먹고 그것에만 집중할 수는 없었기에 부족함을 느꼈다. 어느정도 적응해갈 무렵 이제는 2년 반동안 구상해온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쯤해서 병영문학상을 준비했다. 글에 대한 자부심이 하늘을 찌르다못해 대기권을 돌파했으니 전혀 분위기가 다른 두 이야기를 쓰는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결과? 아직 결과가 나오긴 이르다. 한가지만 더 말하자.

정작 제대로 글을 쓰니 병영문학상은 개판으로 쓰고-역시 초고 상태로- 시나리오 작업에 끙끙댔다. 왜 이렇게 글이 안써지지? 하고 고민하고 있을 때쯤해서 책마을을 발견했다. 명예의 전당을 거닐며 그들의 인간답지 않은 지식과 글솜씨에 멍해졌고 그 충격 덕분인지 책으로 읽는 글귀들이 내 뇌리에 파고들었다. 작가들이 쏟아내는 언어의 포화가 얼마나 강력한지 그때서야 느낀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읽고 있었던건 대체 뭐였지? 글을 분명히 읽음에도 독서를 하지않을 수 있구나를 깨달았다. 작가들의 힘, 책마을의 포스에 떠밀려 책마을에 글을 올렸다. 소위 굇수라고 칭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책마을의 글, 병영문학상 그리고 시나리오.

결과? 물어보나 마나지.


창피했다. 너덜너덜한 언어의 배설물은 내 얼굴을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머릿속에 존재하는 생각은 현실로 꺼내오지 못해 발악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어쩔 수 없는 그런 무력감. 내 자부심은 무너졌다. 그러고 보니 대학 선배가 이런 얘기를 했었다. "너는 아이디어가 참 좋아. 근데 그걸 이끌어갈 표현력도, 그 아이디어에 대한 고민도 안해. 한 씬 가량의 글만쓰면 밑천이 바닥나버려 글을 질질 끄는 네 시나리오는 못봐주겠어. 가끔 내가 저 생각을 했으면 저렇게 이야기를 끌고 나가지 않을텐데하고 아까울 때가 많아." 물론 그 때는 '뭔 개소리'라고 생각했지만 지금만큼 내 가슴을 후벼파고 있는 말이 아닐 수가 없다.

생각해보면 국어선생님의 말도, 동기의 말도 그 어디에도 글을 잘 쓴다는 말은 없었다. 말의 미묘함을 파악할 줄 몰랐던 나의 짧은 문법실력은 그저 시야 = 글실력, 독특함 = 글실력 이라는 명백한 오류를 범했다. 그들이 말한건 그게 아닌데 나혼자 설레발에 빠져 우주 제일의 머저리가 탄생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글을 못쓴다. 쏟아지는 동일 어구의 반복, 미묘하게 또는 우악스럽게 어긋나는 수식어, 개념어의 개념조차 몰랐고, 사용하는 단어의 양은 빈곤하고, 자유형식이라 하기엔 너무나 방종스런운 글들은 심혈을 기울여 쓴다해도 만족스런 글이 되지 않았다. '보석글'을 읽고 정준엽이 말하는 글을 쓰기 위해 애썼지만 보석이 나오기에는 아직 내 자신이 너무 부족했다.

원석인지 그저 돌덩이인지 모르겠지만 흙더미의 텁텁한 글이 계속 나올지라도 나는 계속 글을 쓴다. 그 텁텁함에 내 목이 메일지라도 꿋꿋이 괭이질을 한다. 언젠가 보석이 나오기를 바라며- 라고 하기엔 너무 성장드라마의 주인공 같아 우습우니까 관두고, 내 꿋꿋한 괭이질은 단지 즐겁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는 없다. 음악이든, 글이든, 그림이든, 몸짓이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도 흥분되는 일이니까. 비록 그것이 약간은 삐뚜룸하고, 그보다 더 어설플지라도 즐겁다는 것은 똑같으니까.

그 중에서 나는 글을 택했다. 일상 생활 속에서 가장 쉽게 접하고 만들 수 있는건 글이니까. 그런 면에서 글은 생각보다 쉽다. 인간의 생각이 곧 글이고, 글이 곧 생각이니까. 하지만 머릿속의 글을 현실로 불러오는 것은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글은 생각보다 어렵다. 접근성은 높지만 풀어내기는 힘든 이 결합은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그 중엔 엉터리로 자신의 생각을 풀어내는 사람도 있고, 정말 정갈하게 풀어내는 사람, 풀어놓고 장난스럽게 묶어버리는 사람 등 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사람이란 각양각색이니까 - 그래서 글은 다들 제각기다. 어떻게 똑같은 글자들을 가지고 그렇게 다르게 풀어낼 수가 있는지 신기할 정도로 각자의 스타일을 갖고 있다.

게다가 접근성이 주는 그들과의 소통이란!(그만큼 물이 흐려지고 초딩소리가 난무하는 세상이지만 그만큼 청정지역은 존재하니) 글을 단순히 쓴다는 의미로 쓰기란 쉽지만 완성하기는 정말로 어렵다. 그리고 대부분의 글들은 미완성인 채로 그들과 소통하고 또, 그들은 미완성의 글로 소통한다. 완성된 글은 없다. 완성이 됐다면 더 이상의 소통은 없을테니까. 미완성의 혼합. 그 틈에서 생성되는 또다른 미완성은 완성보다 값지다. 새로운 길을 만들어내고, 새로운 미완성을 완성하니까.

사회에 나가서 보고서를 쓰고, 글의 제설작업을 하다보면 그 성질은 변질될지도 모르지만 지금 여기 순수하게 모인 이들의 목적은 그게 아니다. 글 쓰는게 즐거우니까. 괭이질이 즐거우니까. 내 생각을 표현하고, 상대방의 생각을 읽고, 생각의 생각이 서로 맞부딪히고, 내 생각 혹은 상대방의 생각을 파괴하고 재창조하고, 생각을 공유하고 공감하는 행위는 어디에서나 맛보기 힘든 그런 유니크한 행위이니까.

자존심이 바닥을 치고, 미래에 글쓰기와 전혀 관련없는 일을 하더라도, 보고서만 쓰게 되는 상황이 오더라도 나는 글쓰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건 칼춤, 비록 내 칼춤이 신비한 인도의 무녀의 춤사위도, 아름다운 중국의 무용수의 칼춤도 아닌 무수리의 것일지라도 내 생각을 담는데는 부족함이 없으니까. 내 칼춤이 어설프고 비틀비틀 거려도, 혹시나 내 칼춤에 흥겨워서 장단맞추고 겨뤄보고 싶어서 동참한다면, 서로 형식이 틀려 옷이 베이고 생채기가 나더라도 함께 출 수 있다면 - 즐겁지 아니한가? 나는 즐거운데.   - 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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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8-12-08
20:39:16 

 

병장 박윤수 
  전 항상 글 잘쓴다는 말을 고등학교 졸업할때까지 들었는데, 
책마을 와서 시야가 트였어요. 
근데, 글을 잘쓴다는 말과 시야가 트여있다는 말은, 실상 같은 말일지도 몰라요. 
글을 잘쓴다는건, 제 생각에는, 결국 자기의 정리된 생각을 얼마나 잘 정리할 수 있느냐 ㅡ 니까요. 2008-11-25
08:29:43
  

 

병장 김민규 
  "명예의 전당을 거닐며 그들의 인간답지 않은 지식과 글솜씨에 멍해졌고 그 충격 덕분인지 책으로 읽는 글귀들이 내 뇌리에 파고들었다. 작가들이 쏟아내는 언어의 포화가 얼마나 강력한지 그때서야 느낀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읽고 있었던건 대체 뭐였지? 글을 분명히 읽음에도 독서를 하지않을 수 있구나를 깨달았다." 

속독의 강박증에 사로잡혀 지난 10년간 망쳐온 제 독서를 떠오르게 하는 구절이네요. 그저 읽고 있었을뿐 그것은 활자중독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는걸 결국은 알게 되었죠. 요즘에서야 그 단어들의 세세한 의미를 가끔씩 이해하게 됩니다. 갈 길이 얼마나 먼지..... '그 자리에 들어갈 만한 의례적인 단어'가 아니라 작가가 '느끼고' '표현하는' 살아있는 단어라는 것을 왜 이제야 알았을지 

그래도 영돈님의 글은 항상 즐겁습니다. 네. 그거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2008-11-25
08:33:27
  

 

상병 김무준 
  가지로. 2008-11-25
08:59:14
  

 

병장 김우열 
  멋진 글입니다. 
저역시 많은점을 느끼게 해주시는 글이로군요.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다는 점은 확실히 언제나 즐겁지요. 
전 그래서 '게임'을 선택했지만- 2008-11-25
09:03:59
  

 

병장 정병훈 
  책마을의 망령이 된 저는, 지금까지 수많은 말을 했지만, 단 한마디만 안했군요. 
그래요. 

가지로 

이 단어정도면 충분하군요. 
잘 읽고 많이 생각하고, 씁쓸함도 함께 가져 갑니다. 2008-11-25
09:07:38
  

 

상병 이석현 
  나는 즐거운데 - 피식 - 2008-11-25
09:15:15
  

 

일병 주상환 
  글쓴이의 마음이 그대로 느껴진다고 해야하나요? 

미묘하게나마 쓰라리면서도 따뜻해지네요. 

저 같은 하찮은 아해가 말할 수 없는 한 마디 일지도 모르겠지만... 

[ 가지로 ] 

몇번이고 읽어보면서 다시한번 마음을 다잡아 보는 좋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p.s 김우열 / 게임쪽으로 공부하시는 분이신가요? 저도 게임학과인데...반갑습니다!(웃음) 2008-11-25
09:38:33
  

 

상병 김용준 
  - 가지로 - 

우열// 
저도 '게임'을 선택한 一人입니다. 허허허. 2008-11-25
10:30:09
  

 

병장 김민규 
  저도 깜빡했네요. 가지로 2008-11-25
10:51:52
  

 

병장 정병훈 
  이글은 이제 가지로 가겠군요. 흐흐흐 
가지로 가기 전에 좀 더 뛰어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2008-11-25
10:53:36
  

 

상병 이석현 
  좋은글이란 무었일까. 
문득 이런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은 생각을 정리중이니.. 다음기회에 한번 이에대해 써봐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웃음) 2008-11-25
11:26:42
  

 

책마을 
  페이지 넘어갈때 가지로 보내겠습니다. 2008-11-25
12:40:58
  

 

병장 이동석 
  그리고 영돈님과 저는 참 공통점이 많은거 같아요. 대면하게 되었을때 외모도 닮았을까봐 덜덜덜.... (이건 뭐지?) 2008-11-25
12:59:48
 

 

병장 윤영돈 
  음 풀취침을 하고 머리가 멍한 상태로 확인하네요. -멍 

동석/ 촉이 비슷하니 존재성의 위협으로 없애버리겠다는 농이 불현듯 생각나는 이유는 무슨 이유에서 일까요. 덜덜덜 

민규 / 충분하죠.(웃음) 2008-11-25
16:56: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