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월 통합 월베-일상이야기] ISOIDENAINONI
병장 최동준 [Homepage] 2009-04-21 15:07:38, 조회: 94, 추천:0
1.
예전에, 비가 엄청 많이 내렸던 때였나. 멍하니 웅크리고는 비가 쏟아지는걸 보았다. 엄청나게, 정말 엄청나게 쏟아지던 비여서. 전국 중에서 비가 내리는 곳이, 내가 서있는 이 지역이고, 아마 기억 중에서 정말 많은 비가 내렸다. 평소 물이 고이지 않던 도로에도 물이 고여서, 바람이 불면 출렁이면서 비가 쏟아지는게 눈에 보였다. 얼마나 봤는지는, 아무래도 그때 참 심란해서 계속 바라보고만 있던 것 같은데. 비가 묘하게 이상한 간격으로 쏟아지고 있었다. 마치 정말로, 웨이브를 치듯이. 물결이 보이는 것 같은, 그런 비라고 해야하나. 쏟아진다. 평소의 비는 그렇게 많지 않은 편이어서 그렇게 자세하게 보지는 않았지만 어느정도 불규칙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때 왠지 모를 규칙적인 패턴이 보였던 것은, 아무래도 비가 많이 와서인가, 아니면 무언가. 그러다가 누가 등을 쳤다.
너 요새 힘드냐?
아뇨, 힘든건 없는데, 좀 비를 보며 쉬고 싶습니다. 바람이 세차고, 비는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듯이 쏟아지는군요. 양손으로 턱을 괴고, 웅크리며 비가 쏟아지는걸 계속, 몇 십 중이 지나도 계속 보고 싶었다. 폭풍이 이곳을 휩쓸고 지나가나. 비가 내리는 부분은, 사실 경기도 전체인듯 싶지만. 비가 많이 오는 것은 여기가 맞다. 제일 많이 온다고 했다.
그랬었다. 아마 7월 이야기.
2.
어제 잠들기 전까지 계속 연습을 했다. 골반이 내장을 담는 그릇이고, 갈비뼈는 내장을 보호하는 갑옷이라 치자. 뭐 그런 생각으로 계속 공부했다. 갈비뼈의 구조는 대강 단순화가 가능하긴 하는데, 그리면 그릴수록 약간 좀 이해하기 힘들다고 해야하나. 아무튼 그렇다. 그러다보니 아무리 잘 그려도 다리가, 약간…애매했다. 뭐지, 상체의 연결부위도 문제라면 문제인데, 수정하면 되긴 하니까. 그런데, 이 다리라는 부분은 이상하게 견적이 잘 나오지 않았다. 무엇보다 골반이라는 그릇을 나는 어떻게 알고 있었는가? 곰곰히 생각을 했다. 계속 머리를 싸매다가, 한숨을 쉬고는 들어갔다.
갈비뼈는 토실한 조약돌처럼 둥글면서 원통형일지 모르지만, 이 골반이란 개념은 다각형인데 굳이 뭐라고 규정하기 힘들정도로 기억하기 힘들게 생겼다. 무슨 도형이나 무슨 사물에 빗대면 될까, 그런 생각을 하다 지쳤다. 도저히 떠오르는게 없다. 골반에서 쏟아져 나왔을 나이지만, 나의 시작점도 모른다니.
자리에 누웠다. 주위에 숨소리나 코고는 소리가 들린다. 귀마개를 한다. 꼭 막지 않으면 막으나 마나. 틀어막는다. 모포도 얼굴에 덮고 소리를 최대한 방지한다. 세상이 검다. 그러고 보니 나는 내 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 어둠 속에서 생각했다. 나는 그릇이 뭔지도 모르는 주제에, 그 안의 내용물을 담아내려고 하던건 아닌가? 구멍이 있어서 흘러나올지, 뭐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주제에 그냥 쏟아내기만 하려는건 아니었나? 왠지 나 쓸데없이 이상한걸 알아가는건 아닌가 싶다, 그림을 그리는데.
그랬었다. 아마 어제 새벽 12시 이야기.
3.
나, 여기서도 폐쇠적인 생각을 지니고 있다. 사실 내 세계가 참 많이 발전하고 늘어난 것이지만, 여기서야 겨우 내 세계가 발전했고 많은 경험을 했는데, 이것도 사실 내 의지도 아닌 타인의 의지로 움직인 결과였다. 그래. 누군가가 나를 여기로 보냈으니 타인이겠지. 나는 나 혼자서 넓은 세상에 맞설 자신도 그런 것도 없었다. 그러한데 내가 밖에 나가서 자유를 얻는다 치자. 그러면, 나는 그 자유를 과연 활용할 수 있을까? 은근히 바라고 있지만 절망적으로 갈구하는 그런 정도는 아니다. 내가 내 스스로 내 세계를 넓혀갈 수 있을까? 나는 조그마한 방에서 더욱 더 나가지 못할지도 모른다. 이대로 폐쇄적 일지도 모른다. 작은 세상보다 더 작은 세계. 나의 세계는 그러하다. 자유를 그렇게나 원하는 이들은, 과연 자유를 주면 그 자유를 마음껏 느낄 수 있을까? 어딘가에 속박당하진 않고? 우리는 지구에 태어난 순간부터 인간임에, 지구에 속박당해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 이전에 원하던 자유가 뭔데? 행동의 자유야? 생각의 자유야? 무슨 자유야? 어떤 자유라 하더라도 말이지.
그러니까 새가 알을 까고 나올 자신은 있기는 하냐는 말이지.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랬었다. 아마 지난주 이야기였나. 지금도 생각하는 이야기 같기도 하고.
4.
대답은 그렇게 잘 돌아오지 않는다.
누가 말했는지 모르지만, 사람과 친해지고 싶다면 먼저 한발자국 다가가고, 먼저 말을 걸어야 상대방은 말해줄 것이라고. 그런데 사실 뻥인 것 같다. 말은 정말 많아져서 글도 엄청나게 늘어나서 시끄럽다고 뒤에서 소리를 듣고있는데도, 결론적으로 사람들은 내가 한 말이 아닌 내가 한 말의 분량을 따지고 소리를 지른다. 나는 대답이 듣고싶은데, 그 대답이 그냥 단말마이거나, 괴성이거나, 이상한 효과음이면 그렇게 썩 좋지는 않을텐데. 듣고싶은 대답은 없어서, 결국 머리속에서 자문자답으로 보내고있다. 나에게 물어보면 지루하긴 하지만 원하는 답은 들려오니까.
몹시도 바깥이 가까워진다. 그렇게 서두른 편도 아니었는데. 용기를 내어 먼저 말을 했는데 아무 대답이 없어서, 약간 서운했다. 요즘 뭐 하고 지내니. 바쁜건가, 아닌건가. 좀 알고싶다. 연락은 닿고 지내고 싶구나. 뭐 그런 시시한 이야기에서, 아 맞아요. 그런게 있었죠. 그런데 그거 관련해서 뭐 있지 않았나요? 아니면, 아. 혹시 그 동물 아세요? 굉장히 귀여운데. 같은 시시한 이야기에서부터.
혹자는 나에게 가까워지는건 좋다고 말하지만 급하게 들이대진 말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랬었다. 아마 태고로부터 전해내려오는, 현재진행형 이야기.
ISOIDENAINONI
* 책마을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9-06-10 09:14)
22.17.150.135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10
09:35:58
상병 김유현
22.53.32.216 제목을 처음 봤을때는 아이소이드나노...쯤 되는, iso-접두어가 붙은 무슨 의약품 이름인 줄 알았더랍니다.
이소이데 나이노니. 2009-04-23
10:12:56
병장 최동준
22.17.150.134 일어이긴 한데, 이렇게 적어놓으니 이상하게 일어처럼만은 들리지 않지요.
ISO-가 붙으면 먼저 생각나는게 isolate 정도라서, 저는.
좀 더 템포가 붙고 새벽에 해뜬지 얼마 안된 분위기로 하려했는데
잘 안되는것 같네요. 으음. 하긴 쓸때는 아무 생각도 없었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