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베스트-내글내생각] 최경빈님의 미니홈피입니다.  
병장 최경빈   2009-06-13 02:17:28, 조회: 624, 추천:3 

이 글의 조회수는 0입니다. 클릭 몇 번이면 조회수가 한 두 자리 숫자로 바뀌게 만들 수도 있겠지마는 그럴 생각은 없습니다. 이 글은 그저 이렇게 비공개인 채로, 조회수가 0인 채로 남기를 원합니다. 이 글을 볼 수 있는 사람은 당신과 나 둘 뿐입니다. 당신이 이 글을 본다 해도 조회수는 0일 것입니다. 그 이유는 내 비밀번호를 아는 사람이 나와 당신뿐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 글을 당신이 읽고 있다면 당신이 내 아이디와 내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로그인을 했다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혹여나 당신이 그리할까봐 나는 이렇게 글을 씁니다. 그럴 리 없겠지마는 만에 하나 그리될 수도 있을 것 같아 이렇게 적습니다. 어둔 밤일수록 희미한 별빛이 눈부셔 보이는 까닭입니다.

내 비밀번호를 알려주는 건 참 특별한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비밀번호를 묻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내가 모르는 당신의 소통이 궁금하기도 하였지마는, 난 다른 몇몇 연인들이 그러하듯이 당신의 비밀을 털어놓길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비밀을 묻지 않는 만큼의 신뢰가 주는 안정감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당신 역시 마찬가지였기에 우리는 서로의 핸드폰을 뒤질 필요도 비밀번호를 알 필요도 없었습니다. 궁에 오기 얼마 전에야 필요에 의해 - 내 새로운 주소를 게시해 주길 부탁하기 위해 - 내 비밀번호를 알려주었지만 난 오히려 기뻤습니다. 당신의 신뢰를 두텁게 만들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때 알려준 비밀번호가 지금의 글을 쓰는 전제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 때 알려준 비밀번호 덕분에 나는 이렇게 미약한 희망의 숨을 내쉴 수 있습니다. 당신이 이 글을 읽어주길 바라는 희망 말입니다.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음은 내 비밀번호를 기억하고 있음이고, 내 비밀번호를 기억하고 있음은 아직 나를 잊지 않았음이겠지요. 잊지 않음이 미련일 수도 있겠고 그저 습관일 수도 있겠지마는 어느 것이든 괘념치 않습니다. 그저 내가 당신의 의식 아래 묻히지 않았음을 아는 것으로 족합니다. 내 희망은 당신 마음 한 구석에 아직 내가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나를 아직 기억하기에 나는 그 기억에 의지하여 말하겠습니다.

당신에게 이별은 한 번이었지만 내게는 두 번이었습니다. 

우리의 공통된 첫 이별은 잊음의 강요였습니다. 강요는 반발을 부르던가요. 당신을 잊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머리가 지끈거릴수록 나는 더욱 날카롭게 당신을 떠올렸습니다. 당신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게 되어 당신의 목소리는 점차 희미해져 갔지만, 목소리의 흔적은 오히려 견고해져만 갔습니다. 그렇게 견고해져가는 당신의 환영에 시달려 나는 한참을 슬퍼했습니다. 내 슬픔은 낭만적이고 감성적이었습니다. 나는 추억할수록 외로워졌고 앓을수록 깊어졌습니다. 내 이별이 아플수록 내 한 가닥 남아있던 희망도 두터워졌습니다. 말하기 민망하지마는 당신도 예상할 것이기에 말하겠습니다. 내 희망은 당신과의 인연을 회복하는 상상이었습니다. 내가 당신을 잊지 못하듯이 당신 역시 나를 잊지 못하길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생기발랄한 추억과 신음하는 현실의 괴리가 우리의 헤어짐을 무마하길 원했음입니다. 

당신 역시 아팠겠지요. 당신 역시 추억 속에서 허우적댔을 겁니다. 나는 알 수 있습니다. 느낄 수 있습니다. 나는 내 느낌이 그저 연민의 대상은 아닐 거라 믿습니다. 제 아무리 폄하해도 우리의 나날들은 쉽사리 쓰레기통에 던져버릴 싸구려는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아프리란 확신 속에서 내 희망은 어느새 머릿속을 잠식했습니다. 희망에 잠식된 머리는 마비되어, 나는 우리의 가장 행복했던 나날들만큼이나 행복한 순간을 꿈꾸듯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흥미롭지만 씁쓸한 일이지요. 그래도 난 만남의 공상 속에서 얼마나 행복했던지 모릅니다. 

두 번째 이별은 나만의 이별이었습니다. 내 희망이 가장 꿈결 같을 때 겪었기에 더욱 치명적이었습니다. 3개월이란 시간은 내게 찰나였지만 당신에게는 그렇지 않았나봅니다. 당신은 아팠을 겁니다. 하지만 3개월이란 시간이 아픔을 치유하기에 지나치게 짧은 시간은 아니었나봅니다. 혹은 당신의 아픔을 치유하는 방식이 나와 달랐기 때문일 겁니다. 당신은 다른 인연을 통하여 내 인연을 지우길 바랐나요? 나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나는 당면한 현실에 눈앞이 캄캄해졌을 뿐입니다. 쉽사리 인정할 수 없어 나는 치를 떨었습니다. 첫 번째 이별은 소설이나 영화에 나올 법한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별이었습니다. 두 번째 이별은 지나치게 통속적이었습니다. 당신에게 다른 남자가 생겼다는 걸 듣는 순간 내가 떠올린 건, 너무도 흔해 빠진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버렸단 사실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흔해빠졌을 뿐, 내 바람만큼 클래식하지도 근사하지도 않아 나는 부끄러웠습니다. 당신이 그저 그런 이야기 속 인물일 뿐이라는 것 역시 안타까웠습니다. 우리는 조금 더 특별하길 바라는 마음이 컸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이별 - 그러니까 나만의 이별은 우리의 첫 이별까지 훼손시켜 나는 더욱더 슬펐습니다. 

당신을 탓하는 건 쉬운 일이었습니다. 나는 그저 그런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 김에 그저 그런 이야기의 주인공처럼 행동했습니다. 당신을 비난하기도 하고 우리의 나날을 폄하하기도 하였습니다. 한편으론 쿨하게 보이고도 싶어 오랜만에 당신에게 연락하여 그럴싸한 말을 지껄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는 결국 시간이 지나길 기다렸습니다. 시간이 모든 걸 해주리라는 걸 어렴풋이나마 알기에 기다렸습니다. 내가 기댈 곳은 오직 시간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세 달이 흘렀습니다. 세 달도 시간은 시간인지라 내 가슴 속의 당신은 예전 같지 않습니다. 나는 ‘잊혀짐’을 배운 후에야 ‘잊음’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당신에게서 내가 지워지고 있음을 느낀 두 번째 이별 후에야 나는 필사적으로 당신을 잊기 시작했습니다. 덕분에 당신의 형체는 제법 흐릿해졌습니다. 격한 감정의 소용돌이도 제풀에 지쳐 나동그라졌습니다. 내 가슴 속의 당신은 시들어가고 있습니다. 당신이 내게 알려주었듯이, 제 아무리 값진 사랑과 추억도 결국은 잊혀질 수 있기 때문일 겝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한 가닥을 쥐고 있습니다. 내가 쥐고 있던 한 가닥 희망은 첫 이별 후 감성을 폭식하고 비만이 되었다가 두 번째 이별 후 처참히 찢겼습니다. 그러나 산산이 찢겨 날린 줄만 알았던 희망이 아직도 손에 쥐어져있음을 나는 외면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 내가 쥐고 있는 희망은 여린 숨을 한 올 한 올 힘겹게 뱉어내고 있습니다. 죽어가는 어린 새 같은 내 희망에 대한 동정으로, 나는 마지막으로 당신을 향한 슬픔을 겪는 중입니다. 내 자존심은 당신을 망각하기 위한 고삐를 잡아당기길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나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건 내 성격 탓도 있지만 우리의 추억들이 워낙 무겁기 때문일 겝니다. 그리하여 나는 이렇게 글을 적습니다. 내 희망이 어쨌거나 아직 존재하듯, 내 존재가 아직 당신의 마음속에 살아있길 바라면서. 

나는 아직도 매일 당신과의 나날을 추억합니다. 당신이 밉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당신을 애타게 그리워합니다. 당신과 함께 한 순간의 행복들이 마약처럼 혈관에 퍼져있기에 당신과의 순간이 충족되지 못하는 만큼 괴롭습니다. ‘잊음’을 알았기에, 당신이 나를 ‘잊음’ 역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절박한 만큼 급한 선택이었겠지요. 괜찮습니다. 내 스스로의 ‘잊음’을 겪으며, 만약 내게 수월한 ‘잊음’의 기회가 온다면 나 역시 간절히 부여잡았을 거란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나는 이제 당신을 원망하지도 미워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아직도 당신을 사랑하고 있음을 느낄 뿐입니다. 당신의 말투가, 당신의 걸음걸이가, 당신의 머리카락이, 나는 너무도 그립습니다. 그리고 그런 당신을 잊어가고 있음이 서글픕니다. 

당신이 나를 잊었다면, 내가 당신 가슴 속에서 이미 죽어있다면, 당신은 이 글을 읽지도 않겠지요. 이 글을 당신이 읽고 있다는 것 자체가 아직 내 희망이 가능성이 있음을 뜻하기에 참 다행입니다. 재치 있는 트릭이었다고 평가하면 자화자찬일 테지만 나는 이 비공개 글이 꽤 마음에 듭니다. 당신이 이 글을 읽지 않는다면, 적어도 난 이미 나를 잊은 사람에게 구애하는 수모를 겪지는 않을 테니까요.

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건 당신이 이 글을 읽었음을 알 방도가 내게 없음입니다 - 조회수는 계속 0일 테니까요. 그렇기에 나는 지난 우리의 인연에 기대 간절히 부탁하겠습니다. 당신이 이 글을 읽는다면, 쉼표 하나라도 좋으니 다만 흔적을 남겨주세요. 내가 쓰지 않은, 그러나 내 이름으로 된 댓글을 본다면 난 당신이 이 글을 읽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내 희망은 연약하기에 이 글을 읽은 당신이 돌아올 거라고는 믿지는 않습니다. 다만 당신에게 내 희망을 알릴 수 있음만으로도 내 희망이 기뻐하기에 쓰는 글입니다. 그렇기에 당신은 부담감을 가지지 않아도 됩니다. 당신은 긍정적인 대답을 할 필요도, 부정적인 대답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읽었다는 흔적만 남겨주면 만족할 겁니다.

차분하고 정갈하게 심정을 토로할까도 했고, 달콤하고 절절하게 애정을 호소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솔직하고 감정적으로, 내 혼란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로 결심하여 이리 적습니다. 당신에 대한 내 감정은 잊음의 경계선에서 어지럽습니다. 혹여나 당신 역시 나로 인해 혼란스럽다면 이 글의 요란스러움이 당신에게 가 닿아 보람 있겠지요. 막연한 기대를 품으며 글을 마칩니다. 

덧붙여.

요즘 로그인을 하면 자꾸 비밀번호를 바꾸라고 해 신경질이 납니다.
이 글이 필요가 없어지는 순간을 요구하는 걸까요. 난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여자는 글을 읽기를 마치고 화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망설임 끝에 손을 들어 올렸지만 손가락이 끝내 주저하여 손은 허공에 한참을 머물렀다. 시간을 잡아먹을 대로 잡아먹은 손가락이 마침내 자판을 눌렀다. 화면에 마침표 하나가 찍히고 옆에 긴 막대 모양의 커서가 깜빡였다. 여자는 엔터 버튼을 누르려고 또다시 한참을 망설였다. 그리고 여자는 그냥 인터넷을 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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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도 실제 제 미니홈피에 이런 비공개글은 없습니다.
- 마지막 자제력 덕분입니다. 휴우.

* 책마을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9-07-14 12:36)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8-24
15:56:26 



병장 정근영 
  하아 
무슨 말을 해야할지 
저와 비슷한 경험을, 비슷한 시기에 겪으신 것 같네요. 
6개월 정도가 지나, 서운하고 미안하고 답답한 감정들마저 이제는 흐려진 듯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군요. 언제 그랬냐는듯이 이렇게 되살아나는 것을 보니. 
슬프군요. 2009-06-13
10:03:17
  



병장 최경빈 
  근영씨 글을 볼 때마다 저도 언제나 느끼던 바였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경험을 했고 비슷하게 느끼는구나. 

이 글 속에서, 여자가 흔적을 남겼건 안 남겼건 변하는 건 없을테죠. 
남자는 쉼표라도 남겨주길 원했으나 여자가 남기려 한건 마침표였으니까요. 
그렇기에 실제 제 미니홈피에 올리지 않았습니다. 

지나버린 사랑이 지나가 버렸음을 알면서도 버리지 않는건 
제 스스로의 낭만을 위해서입니다. 2009-06-13
17:37:27
  



병장 김형태 
  으음- 좋네요 2009-06-15
08:02:09
  



병장 김동혁 
  지나버린 사랑따윈 지워버린다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겠죠.. 
함께했던 시간들도 무의미 해지는 거겠죠.. 
그건 너무 슬프군요. 
가끔은..아주 가끔은.. 그사람과의 추억을 회상하는 것도.. 
헤어진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요? 2009-06-15
09:20:58
  



상병 양동훈 
  사랑...사랑...사랑.......... 

후아. 

진정한 사랑이 뭔지, 몸서리치게 아픈 가슴이 뭔지 느껴보지 못한 저는 왠지 버로우해야할 기분이...(...나이는 많은데) 2009-06-15
11:11:28
  



병장 최경빈 
  형태/ 감사합니다. 

동혁/ 자기 자신을 위한 예의이기도 하겠죠. 동혁님 말대로 지난 시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일테니까요. 아플수록 괜히 건드려보게 되는 입 천장의 상처처럼, 추억도 아픈 맛에 건드리는 게 아닐까 싶어요. 

동훈/ 나이가 많으시다니.. 휴우. 이 곳에 늦게 오셨나 보네요. 저도 조금 늦게 온 편인데 하아- 2009-06-15
15:52:02
  



상병 양동훈 
  경빈// 딱히 많다고 논할 나이는 아닙니다(껄껄) 여기만 해도 저보다 연장자가 꽤 있는 것 같던데요(웃음). 그래도 사랑정도 한번 겪어볼 나이는 지났다는거지요 낄낄 2009-06-15
19:38:40
  



일병 박정민 
  몰래 복사해서 제 미니홈피에라도 남기고 싶은 심정입니다. 
잘 쓰셨네요 (웃음) 
저같은 경우에는 최경빈님의 첫번째 이별과 두번째 이별 사이인것 같습니다. 아마도. 
두번째 이별도 올 것이라는 전조가 보이네요. 저저번 연애도 마찬가지 패턴이라서.. 
요새 바쁘게 지내다보니 많이 흐릿해진 것 같은데 두번째 이별이 온다면.. 많이 아프겠죠 
에고.. 전 대신에 금연과 운동으로 대체하고 있습니다. 여름을 기대하면서요 후후 2009-06-16
10:41:44
  



상병 이석현 
  저도 몰래 복사해서 제 미니홈피에 옮겨놓고 싶습니다.... 
정말로 좀 배껴가면 안될까요(응?) 
휴 저랬던 적이 있었습니다.........이미 몇달은 지났지만요 2009-06-16
20:37:30
  



병장 최경빈 
  게시한 공간이 공간인지라 비슷한 상황과 기분에 공감해주시는 분들이 많군요. 
감성적인 분들이 모이는 곳이어서 더욱 그런 듯 싶습니다. 하하. 2009-06-16
23:35:03
  



상병 오효섭 
  오,. 잘 읽었습니다,. 
처음 제목에 놀랬고 그다음 내용에 놀랬고 빠져들었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2009-06-17
16:52:12
  



상병 박진식 
  정말 좋은글입니다. 2009-06-17
23:25:55
  



일병 김진영 
  아- 사람이라면 마음한켠에 지니고 있을 잊지못하는 여자를 이렇게 담백하게 표현하신분은 오랜만이네요. 아,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틀리진 않았나봐요. 예전만큼의 날카로움이 없어지고 지금은 견딜만하게 됐네요. 하지만 아직까지 머릿속에 있는 건 왜일까요? 
항상 그 여자의 이름이 제 머릿속에 멤도네요. 하루에도 수십번씩. 정말 하루에도 수십번 
씩말예요. 가끔씩은 말이죠 그 여자를 예전에 외운 수학공식을 잊어먹듯이 잊지 못하는 
제 자신이 미워서 화가 날때도 있어요. 얼른 머릿속에서 지우던가 하지않으면 아마도 
평생 못잊을꺼 같아 때론 겁이 난답니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