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너무 강렬한건가요? 므흣~
제목을 보고 손가락을 까딱이셔서 들어오셨다면 죄송스러운 마음을 전합니다.
비록 날씨는 구리구리하지만 봄이라 그런지 마음이 뒤숭숭하네요.
즐거웠던 학교 생각도 많이 나고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대학문화의 꽃(개인적으로는 농활이라고 생각하지만)인 3월이에요.
수없이 만나는 사람들과 낮술, 연애의 시도, 벚꽃 나들이 등등이 떠오르는 3월도 막바지입니다.
(줏대없는 제 의지의 문제겠지만)그래서 그런지 메모하며 읽는 수준이 아니라 필사하는듯 읽었던 사회과학책을 잠시 접어두고 우리시대의 고전이 되버린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근래에 집어들었습니다.
책을 읽으며 아버지 생각이 났습니다.
신영복 선생님의 아버지처럼 저희 아버지 또한 제게 '염려의 대화'만 건네실뿐
'소통의 대화'는 전혀 건네시지 않으니까요.
아버지는 제가 대학을 가더니 얘가 변했다고 자주 말씀하시곤 합니다.
아버지를 말하니 생각나네요.
00학번 선배가 제가 1학년 겨울방학때 읽어보라고 준 3권의 책이 있었습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대한민국사, 농활에 관련된 출판사 없는 책(..)
이 3권을 집 책상위에 올려두었는데 아버지가 보시고는 압수(?)해가시더군요.
처음엔 어디갔나해서 여기저기 찾아봤었는데 아버지께서 밤 10시쯤 조용히 저를 부르시더니 얘기를 하셨습니다.
" 정신이 있는 얘냐 없는 얘냐..! 너 이런 책 보라고 내가 대학 보낸 줄 알아? 이런 빨갱이책 보고 있으면 너 예전같았으면 깜빵에 갔어. 깜빵에. 시민단체니 뭐니 그런데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아빠가 보기엔 할거 없으니까 그런거 하고 있는 사람들이야."
저는 발끈해서 꼬박꼬박 대꾸를 했지요. 시대가 어느시대인데 지금 색깔론으로 사람을 판단하시느냐는둥 주입식 교육을 받은 고등학교가 아닌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고 그에 따른 활동도 할 수 있는 곳이 대학이라고.. 시민단체의 활동을 그렇게 가시가 있는 눈빛이 아닌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곳으로 봐달라고..
그 날 제가 아버지께 처음으로 귀싸대기를 맞았지요.
맞고 제방 이불속에서 얼마나 서럽게 엉엉 울었던지..
저는 반항심이 잔뜩 들어 대학생이고 이젠 타 컸는데.. 라는 생각을 되뇌이고 되뇌였습니다.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내가 지금 몇살인데 이렇게 싸대기까지 맞아가며 살고 있나' 이 생각을 말이죠.
많은 시간이 흘러 군에 와있지만 여전히 저는 아버지께 '혈연에 의한 아들'일 뿐, '믿음을 주는 아들'은 아닌듯 싶습니다.
이야기가 머나먼 삼천포로 흘러갔군요..
다시 이야기의 본론으로 들어가서
앞에서 언급했었지요.
제가 요새 펴들었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아빠가 압수해가셨던 그 책입니다.
책을 읽으며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고 놀라게 됩니다.
감옥이라는 사회와 격리된 낙오자들의 집합소에서..
이런 사색을 하는 신영복이란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인지..
꼭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실히 들었습니다.
배움을 통해 지적 사유욕만을 추구하며 '촌놈 겁주는' 권위의 전시물로써 사용하려고 하는 제 어린아이같은 생각을 어른에게 적나라하게 들킨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마치 급소를 찔린듯,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고 하기가 싫었습니다.
신영복 선생님의 말씀처럼 저 역시 지식은 실천에서 나와 실천으로 돌아가야 참다운 지식이라 말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제 독서의 목적은 일체의 실천을 배제하고 단지 소위 말하는 '가오'를 살리기 위해, 내가 사회에서도 하지 않았던(..) 공부를 군에와서 하고 있다는걸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것이란 확신이 들었습니다.
'뜨거운 현장의 거리'에서 실천적 활동을 하고 있는 선배들, 동기들, 후배들에게 술 좀 그만마시고 건설적인 활동인 독서나 학습을 하라고 비아냥거렸던 제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일체의 실천이 배제된 조건하에서는 차라리 책을 덮고 읽은 바를 되새기듯 생각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질 필요가 있다 싶습니다.
그래서 어제
군에 가기 전 다짐했던 '제 마음에 남아 있는 약속'을 되새기며 생각했습니다.
...
..
.
"책, 때려쳐!"
병장 김정환
그 책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신영복씨는 참 대단한 사람인 것 같다는.. 03-29
상병 진규언
진지하고도 솔직한 글 잘 읽었습니다. 누군가의 강력한 추천을 발판삼아 들게된, "우리 학문의 길"에서 조동일 교수가 언급한 내용과 비슷한 사고 체계를 글에서 발견하여 기쁜마음에 답글을 적어 봅니다.
학문(여기에서는 책이라 하죠..)을 지적 우월의 수단으로 삼는 것에 경종을 울리며 진정한 학문을 추구하는 자세란 어떤 것인가를 이야기합니다. 아직, 60페이지 정도까지밖에 나아가지 못하여.. 상세한 후기야 따로 적어볼 심산이나.. 얼핏 준연님의 고민이, 저의 고민과 너무도 흡사하여.. 준연님의 성찰이 저의 그것과 일맥상통함을 반가이 여겨, 급한 마음에 이렇게 답글을 남깁니다.
과시하기 위한 욕구라지요, 실천을 배제한 이론의 답습이라지요.. 그럼에도 과시를 하지 않을까요. 그럼에도 실천(나아감)의 방향전환을 가늠하게 해주는 이론들을 답습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읽은 바를 되새기고.. 곱씹어 보고, 다시 나의 언어로 풀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작업인것을..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03-29
병장 이건룡
읽고나니 한편으론 뭉클하고 숙연해집니다. 독서만에해도 다각도로 현실에 제약을 많이 받으니, 실천에 앞서 부는 맞바람이'책상 앞에서' 받아보지 못하는 시퍼런 날바람 같으니 현실에 대해선 두말 할 필요도 없겠군요. 좀 더 확장하자면 제 입장은 이에 유보하는 입장이지요. 그리고 게으르고요. 가장 유감스러운 (이렇게 남는 시간에 책마을에 너무 자주 들락달락하는 걸 봐서도 한 단락이라도 더 읽어야 생각을 뿜는) 사치를 가지고 사니. 03-29
상병 김정민
저 역시도 밖에 블로그에다가 안에서 읽은 책 들의 독서후기랄까 그런것들 올리면서,
한 권씩 한권씩 쌓여가는 독서후기를 남 보란듯이 펼쳐놓고
뿌듯하기도하고, 경멸감이 들기도 했죠
공감이 가네요. 03-29
상병 진규언
건룡님의 답글을 익고, 다시금 숙연해 집니다. 앞 부분이야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마지막 문장인.. 유감스럽다고 하시는 부분에 대해 변명의 단초를 제공해 드리지요.(웃음).. 제약이 심한 어떠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은, 책마을에 들락거리는 것만이 허락될 수 있지요. 이러한 연유로.. 완결된 체계를 보여주는 독서조차 현실에서는 제약을 많이 받으니, 온갖 파편들과도 같은 책마을 텍스트에 집착하게 되는.. 저같은 부류의 사람들도 있겠지요. 03-29
상병 이지훈
감옥과의 차이점은 무얼까요?
저는 음.. 비스무리 한 수양을 쌓을수 있다고 생각한답니다~이곳에서도 03-29
병장 심승보
규언님/ 반갑습니다. <우리 학문의 길> 다 읽으시고, 상세한 후기 기대하겠습니다. (웃음) 03-29
병장 장익수
글 잘 읽었어요!!(웃음) 03-29
병장 배진호
음 가슴아픈 글이네요.. 실상은..
어쩌면 아버지와의 관계의 회복을 마음속으로는 희망하고 계실지도 모르겠네요..
아버지와 대화가 안되는것..
그건 아버지의 잘 못일 수도 있고.. 우리의 잘못일 수도 있습니다..
분명 아버지께서는 어떠한 선입관에 입관하여서 이해하지 못하시는
점이 있으시겠지만..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우리로써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건드리지 않는것이 좋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차라리 숨기는것.. 핫.. 아마 이것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사람도 꽤 많겠죠?..
어건 대화의 초점에서 약간 빗겨서서 들어갔네요..
아버지와 화해하시면 좋겠네요..
그리고 신영복이란 사람의 글이라..
"배움을 통해 지적 사유욕만을 추구하며 '촌놈 겁주는' 권위의 전시물로써 사용하려고 하는 제 어린아이같은 생각을 어른에게 적나라하게 들킨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부분이 포인트 인거 같네요.. 지적 사유욕..
제가 가진 한부분이고.. 권위의 전시물로써 사용하리라는건
조금 아닌거 같지만.. 지적 사유욕에 의해서
제가 어느정도 지식을 소유하는데 급급한 것은 사실인것 처럼 보이네요..
그리고 분명 제가 얻은 지식을 저의 수익을 올리고 저의 미래를
활용할때 사용할 하리라는 것도 조금은 예상이 가능하네요..
그냥 평생 가난하게 굶줄이면서 살려고 하지 않는 이상 말이죠..
어떤것이 옳은지는 아직 분간이 잘 서지 않네요.. 단지..
현재에 충실하며,, 사회가 요구하고 있는 몇가지를 맞추어 가며
살지 않는 이상은 사회에게 호되게 당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조금은 앞설 뿐이죠.. 권위에 굴복해 버린 케이스라고 할까요?..
그렇다고 해서 권위를 무찌른 다음에 마땅한 대책도 없고..
권위가 무찔러지는것은 또다른 권위를 탄생시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 그 어떤것이 옳은지는... 아직도 그냥 몽롱할 뿐이네요..
전 흘러가면 되는거겠c?... 03-29
상병 이명기
지식은 행동으로 옮겨져야만 비로소 그 빛을 보게 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알고 있는 것과 아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게 해주는 건 다를테니까 말입니다.
물론 그 행동에도 여러 방향이 있을 터 입니다.
어떻게 알려주는가,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03-29
상병 진규언
승보님 / 감사합니다.(웃음) 제가, 심승보님의 성함을 언급하려다.. 실례가 될까봐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이 책을 붙잡고 사투하고 난 연후에.. 후기남기겠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03-29
일병 구본성
저는 군대에서 책을 열심히 읽는 것도 일종의 실천이라고 생각할렵니다. 03-29
일병 박준연
본성// 군에서 책을 읽는다는 것을 실천이 배제되었다고 말하는게 아닙니다.
다시 생각하니 그렇게 이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책을 읽고나서도 내 행동과 삶이
변하지 않는다면, 단지 머리의 지식적으로 '그런 내용이구나'만
이해하고 덮어버린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이미 제 안의 양심이 찔리는 상황이 되버리는 것입니다. 03-29 *
상병 진규언
건룡님의 친절하게 인용해 주신 글을 보고선..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준연님의 철저하고 솔직한 고민이 저에게 까지 전해지는듯 하네요.. 03-29
병장 양각산
'저잣거리서 주색을 벗삼아 하는 방황만이 후회스러운 게 아니라 골방서 푸르고 붉고, 빳빳하고 낡은 책장 넘기며 하는 방황도 세월이 지나면 후회스럽더라. 가볼 가치 없는 골에 들어서지 않고, 빤한 변, 장인 줄 알고 찍어먹지 말길 바란다'
어릴적, 제 사상적(?) 방황에 님의 부모님처럼 검열적인 재제를 가하시던 제 아버지께서 책을 선물해주시며 써주셨던 글귀가 생각나 적어봤습니다. 표현하는 방법은 좀 다르셨지만 준연님의 아버지도 이런 마음이셨으리라 생각해봅니다. 03-29
일병 김현태
흥미로운 책이군요 한 번 읽어봐야 될 듯. 03-29
일병 구본성
준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단지, '실천'이라는 것이 너무 협소하게 사용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에서 댓글을 달아 보았습니다. 03-29
병장 조용호
영양가 없는 덧글이지만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감명깊게 읽으셨다면,(물론 모두가 당연히 감명깊게 읽을 책이지만) 신영복 교수의 최근저서인 '강의'도 추천해드립니다. 그나저나 비교적 최근에 나온 한홍구 대한민국사 4권 아직 안읽었는데, 저도 어서 읽어야겠어요. 03-29
병장 심승보
용호님/
신영복 교수의 <강의>를 흥미롭게 읽으셨다면, 한형조 교수의 <왜 동양철학인가>, <무문관 혹은 너는 누구냐>도 한번 읽어봐 주셨으면 합니다. 여기에 김용옥의 다양한 동양철학 관련서 역시 함께 읽어 유용할 것이구요. 예컨대 <도올논어>, <노자와 21세기>, <중용강의>, <금강경강해>, <혜능과 셰익스피어> 등을 말이지요.
솔직히 개인적으로 <강의>의 경우 애초의 기대에 비해 다소 실망인 측면이 많았습니다. 동양철학을 전반적으로 개략할 때 '관계론'이라는 키워드가 일정한 유효성을 지니는 것은 분명하나, 그것에 지나치게 집착하다 보니 경우에 따라 냉철한 논리적 접근에서 이탈하여 자칫 위험스런 아전인수격 해석을 펼친 대목도 꽤나 있지 않았던가 싶습니다. 또한 '존재론'과 대비시킨 '관계론'이란 중심테마 역시 지금에 와서 보면 다소 진부할 수 있는 평면적 접근은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로인해 훨씬 더 팽팽하고 다양한 색조를 지닌 동양철학의 진면모가 다소 탈색된 부작용은 없었는지 우려가 되기도 합니다. 특히 불교와 주자학에 대한 빈약한 소개가 아쉬웠습니다.
사실 좀더 과격하게 말한다면, 신영복 선생님의 동양철학 전반에 대한 이해와 밑천이 이 정도로 루스한 것이었나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습니다. 물론 '입문격 대중개론서'라는 측면을 고려할 때, 또한 대화체라는 측면을 염두에 둘 때, 그 방대한 분량의 동양고전에 대해 약간의 맛배기를 보여줄 수 밖에 없는 분량과 체제라는 점 등을 감안할 때, 그 누가 썼다 하더라도 수많은 관심과 요구들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일정한 아쉬움은 여전히 남습니다. 정말 깊었다면, 언어의 조직이 좀더 실팍할 수 있지는 않았겠나, 좀 더 날카롭게 찌르며, '단순직절'의 미학을 보여 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 말입니다.
그래서, <강의>에 대한 연계성을 지닌 체계적 후속타로, 또한 보다 전공적 소양이 탑재된 업스테이지 동양고전 해설의 적임자로 한형조, 김용옥 두 분을 추가로, 조심스레 권해드립니다. (웃음) 03-30
일병 김진영
박준연 상병님 이곳에서 활동을 하셨었군요! 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