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 결산주의자의 역습 
 상병 김현동 01-05 16:21 | HIT : 593 



 음. 35캠에서 올렸던 마지막 결산 이후의 결산입니다. 안그래도 보급창이 열리면 올릴 생각으로 준비하고 있었는데, 마침 또 결산주의자들의 귀향을 바라시는 분도 계신 것 같아서(.....). 굉장히 날림인데, 살살 읽어주세요.

 나중에 독서후기는 따로 모아서 한 번에 올려보든지 할게요. 뭐, 보잘 것 없지만 이제 다시 시작하는 책마을의 db를 확장시킨다는 의미에서 3g 정도 유의미한 짓거리가 되지않을까, 하는 착각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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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향수 - 파트리크 쥐스킨트
 말로만 듣던 쥐스킨트인데, 처음으로 읽는 그의 작품이 향수가 되었습니다. 많이들 읽어보셨으리라 생각되니까 별로 코멘트할 만한 것은 없고, 그냥 재미있게 술술 잘 읽혔어요. 플롯을 잘 짜는 작가라는 생각은 할 수 없었지만 스토리 텔링에 능한 작가라는 생각은 들었어요. 솔직히 감명 깊다, 라고 말하면 거짓말일 것 같고. 스피디한 독서의 쾌감을 느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아멜리 노통브와 비교한다면 쥐스킨트에게 실례겠지요?

 다음은 이 책을 읽을 때 적어놨던 일기장의 편린. 읽어보니 방금 적은 거랑 거의 비슷한 이야기네(.....).

 말만 들었던 파트리크 쥐스킨트가 이런 사람이구나. 아주 재미있는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소설이다. 그야말로 이야기가 재미있다. 상상력과 스토리텔링의 측면에서는 아주 뛰어나다. 그런데 사실, 다른 것들은 잘 모르겠다. 빌러비드보다 열 배는 재미있게 읽었지만, 빌러비드의 문학성에는 반의반도 못 미친다고 생각한다. 물론 한 작품으로 쥐스킨트를 평가할 수는 없는 거지만, 그의 대표작들은 이것 말고도 아주 많이 있지만, 그에게 위대하다는 수식어는 결코 붙일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재미있기 때문에, 그의 다른 책들을 읽어보고 싶다. 이것만으로도 아주 대단한 거다.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들은 더 이상 별로 읽고 싶은 생각이 안 드는 것만 보더라도 그렇다.


2. 공중그네 - 오쿠다 히데요
3.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 - 다카하시 겐이치로
 역시 일기장에서 발췌.

 오오오. 다카하시 겐이치로라. 기억해야 할 이름이다. 그가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를 쓴 것은 1988년이다. 맙소사.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10년 이상 빠르다니. 물론 여기서 가치의 판단은 제외한다. 훌륭한 소설이냐, 문학성이 뛰어나냐 따위 질문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그냥,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앞서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한국 소설을 많이 읽어보지 않아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조심스럽고 또 염치없는 짓이지만, 분명, 다카하시 겐이치로는 박민규보다 열 살 이상 많고, 십 년 이상 먼저 작품을 발표했다. 그리고 심지어는 이 십 수년 전의 소설이 지금의 박민규 소설보다 더 포스트 모던하다. 박민규가 더 읽기 쉬운 소설을 썼기 때문에 이런 섣부른 판단을 하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솔직하게 느낀 바를 말하자면, 이렇다. 일본은 한국보다 열 발자국 이상 앞서있다. 이게 너무 과격한 표현이라면, 일본은 한국보다 열 발자국 이상 포스트 모던하다, 고 하면 어떤가.

 안대섭 병장은 사요나라 갱들이여가 더 재미있다고 했다. 그것도 읽어보리라. 얼마 전에는 공중그네를 읽으면서 토할 뻔했다. 서양골동양과자점보다도 덜 문학적인 소설책을 읽는 건 처음이었다. 어느 나라 소설이든 그렇겠지만, 반드시 좋은 책을 골라 읽는 습관이 필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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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아감상야구를 읽고 나서 이렇게 적어놓기는 했지만 사실 이 책을 읽고 난 직후에 우연히 다시 읽을 수 있었던 허원영의 "책을 읽고 난 뒤에 글을 쓰는 일에 대하여"라는 에세이를 읽고 나서 완전 오티엘모드에 돌입했던 기억이 나네요. 지금 생각해도 씁쓸하군.


4. 여행의 기술 - 알랭 드 보통
 알랭 드 보통의 소설을 재미있게 읽었다면 추천. 사실 여행의 기술이란 제목이 이 책의 성격을 드러낼 수 없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긴 하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굉장히 재미있고 새롭습니다. 여기서 새롭다는 표현을 쓴 건 일상의 눈으로는 발견할 수 없었던 "숨은 생각"을 드 보통이 자신만의 빛나는 언어로 펼쳐 보이기 때문이지요. 이 분명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새롭다는 말이 아이러니하게 들리는 것은 다른 모든 드 보통의 책들도 이러한 새로움을 보여주기 때문일 겁니다. 그래도 책만 좋으면 그만이지 무얼. 흠. 재미있는 것은 만약 당신이 드 보통의 소설 세 권, 그리고 이 책을 함께 읽는다면 그의 경험이 어떤 식으로 소설에 녹아들어갔는지 알 수 있다는 겁니다.


5. 호밀밭의 파수꾼 - 제롬 데이비드 셀린져
 아호. 이것도 이제야 읽었어요. 말로만 듣던. 컨스피러시에서 보았던 바로 그 책. 그런데 이 책이 왜 살인자들, 범죄자들이 좋아하는 책인지는 모르겠는데요? 나처럼 모범적이고 착하고 깜찍한 사람도 주인공의 생각과 행동에 결코 동감할 수 있었는데. 여하튼 아주 재미있게 읽었어요. 한 편의 영화를 보듯이.


6. 새의 선물 - 은희경
 일기장에서 발췌.

 은희경 새의 선물도 읽고 있는데, 문장이 아주 좋다. 정말 아주 뛰어난 문장이다. 그런데 스토리에는 그다지 흥미가 안 간다. 플롯이 치밀한 것도 아니고, 지금 3분의 1정도 읽은 시점에서만 보면, 기승전결 없는 스토리 텔링에 지나지 않는다. 잘 읽히긴 읽히는데, 너무 밋밋하다 보니 매력을 못 느끼겠다. 글쎄, 은희경이라는 작가가 어떤 작가인지는 한 권 정도 더 읽어봐야 알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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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고 적었지만 저건 책을 덜 읽었을 당시 적었던 내용이고.

 나의 김강록이 추천했던 은희경. 아주 좋았습니다. 플롯도 썩 괜찮고 스토리도 기발함이 번뜩인다, 따위의 말을 할 수는 없지만 썩 흥미진진했고.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위에 적어놨던 거랑 완전 딴판이네). 은희경의 다른 책들도 어서 쭉쭉 읽어나가고 싶어요. 이 책은 그냥 무턱대고 샀는데 도서관에서 찾아보니 은희경의 책은 웬만큼 다 있더군요. 만족스러운 독서였습니다.


7. 우리는 사랑일까 - 알랭 드 보통
 일전에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와 함께 독서후기를 썼었으므로 패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와 함께 추천. 강추.


8. 거장과 마르가리타 - 미하일 불가코프
 역시 독서후기 있음. 초강추. 뻬드로 빠라모와 함께 상병기간에 읽은 최고의 소설.


9.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 - 알랭 드 보통
 일기에서 발췌.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이라는 책의 제목은 실제 책의 내용과는 무관한 질문을 하고 있다. 역자가, 혹은 우리나라의 출판사가 제목을 이렇게 바꾸어 놓은 것은, 원래 제목이 키스 앤 텔이기 때문일 텐데, 키스 앤 텔은 키스하고 말하기(그러니까, 출판사에서 나름대로 해석한 의미)를 그대로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유명인사와의 연애 후 그 연애담을 폭로한다는 관용구이다. 따라서 대충 영어를 해석하면서 흥미 유발을 위해 변형시킨 이 제목은 결국 책의 제목과 내용의 괴리를 낳고야 말았다. 드 보통의 다른 소설들은 원래의 제목보다 번역한 제목이 더 좋았다는 점과 아주 판이하다.

 소설은 남자인 화자가 자신의 연인 이사벨과 사귀면서, 그녀의 전기를 써내려 가는 내용이다. 전기를 쓰는 이유는 그녀를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이다. 이해는 곧 감정이입이다. 그 사람이 되어보는 것이다. 대강 작가가 주인공에게 전기를 쓰게 만드는 명분은 그렇다. 드 보통은 그의 다른 소설들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연애의 장면 장면을 소재로 삼는다. 그런데 다른 소설들과 약간의 차이점을 만들어내는데, 이 소설이 전기소설을 표방했기 때문이다. 현재에서 과거를 하나하나 얽어낸다. 그러니까 프루스트적 기억에 초점을 두는 것인데, 나는 사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어보지 않았기에, 구체적으로 어떤 걸 말하는 건지 확신할 수가 없다. 드 보통의 친절한 설명에 근거하여 내 방식대로 이해하긴 했지만.

 분명한 건,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가 그의 세 연애소설 중에 가장 뛰어나고, 이번에 읽은 키스 앤 텔이 게 중에 가장 처진다는 거다. 통찰도 떨어지고 날카로움도 이전보다 무디다. 커버는 굉장히 예쁨에도 불구하고.


10. 면세구역 - 듀나
 처음 읽어보는 sf소설. 정말 재미있었어요. 장르 소설, 장르 소설 이렇게 말은 하지만 비장르 독자가 읽어도 충분히 재미있고 유쾌한 경험이었습니다. 실려 있는 작품들 간에 어느 정도 편차가 있긴 있었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로 아주 좋았어요. 누구에게나 추천할 수 있는 책. 빌려준 대섭이 형께 감사.


11. 이성과 감성 - 제인 오스틴
 읽는 도중에 썼던 일기에서 발췌.

 제인 오스틴의 처녀작 이성과 감성을 읽고 있다. 오랜만에 도서관에 가봤더니 와, 읽고 싶은 책들이 엄청나게 많이 있었다! 올 초에 갔을 때만 해도 읽을 책이 없었는데. 심지어는 거장과 마르가리따도 있었다! 세상에. 하지만 그 책을 산 걸 후회하지 않는다. 미하일 불가꼬프 최고의 걸작은 분명 소장할 가치가 충분하다. 어쨌든,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내가 스무 권은 넘게 산)도 웬만한 건 다 있는 듯 했고(없는 것들도 있었지만), 최신 한국 소설들도 다수 있었다. 정이현이라던가 박민규라던가. 출간된 지 한 달도 안 된 핑퐁이 있을 정도였으니. 도서관에 읽을 책이 있다는 거에 신기해하고 기뻐한다는 것 자체가 어색한 짓이긴 하지만, 도서관에 그다지 의지하지 않고 있던 나로서는(책 나누기 행사는 예외다. 오오오, 책 나누기 행사 언제 또 하지?) 굉장히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성과 감성을 지금 3분의 1정도 읽었는데, 글쎄. 오만과 편견에 비해서 인물들의 대사가 덜 감각적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오만과 편견은 그야말로 통찰과 감각과 재치가 넘치는 작품이다. 흥미진진한 러브스토리(어쩌면 이젠 식상할 만하지만, 그래도 즐겁다)를 제외하고 보아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캐릭터, 그 캐릭터들의 감각적이고 재치 넘치는 대화(오오오, 나의 엘리자베스!)는 정말 압권이다. 이성과 감성을 집으면서 이러한 유쾌함을 기대했는데, 작품이 기대보다는 못하다는 걸 인정한다. 하지만 아직 완독한 것이 아니니 좀 더 지켜봐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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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아래는 완독한 후의 코멘트.

 확실히 오만과 편견보다는 모든 면에서 처진다는 생각이지만, 그래도 꽤나 재미있게 읽었다. 엘리너와 메리엔. 이성과 감성. 양자 중에 누가, 무엇이 더 좋다, 더 나쁘다를 따지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이성적 인간과 감성적 인간 모두 특유의 매력이 있으며, 소설의 결론도 그렇지만, 모두가 나름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 글쎄, 나라면 어떨까. 나는 엘리너에게서 더 매력을 느꼈지만 메리엔처럼 살고 싶다. 어린 시절에 지독한 사랑을 한 번쯤 겪어보고 싶고, 그걸 계기로 성숙해지고 싶다. 처음부터 겉늙어버리는 건 젊음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않겠는가.

 소설의 모든 면에서 오만과 편견을 떠나 생각할 수 없는 작품이었다. 엉켜있는 이야기가 한순간 풀리는 형식의 플롯도 비슷하고, 개성강한 캐릭터, 그리고 그 캐릭터간의 재치 넘치는 대화, 모든 면에서 우월한 주인공과 그 주인공을 돋보이게 만드는 주변 인물들. 하지만 말했다시피, 이 모든 면에서 오만과 편견이 압도적이다. 다음엔 엠마를 읽어야겠군. 맨스필드파크는 그 다음으로 미루고.


12. 브로크백 마운틴 - 애니 프루
 전 이 영화를 못 봤어요. 그런데 영화가 정말 좋다는 이야기를 몇 번 들은 적이 있어서 책도 막연하게 괜찮겠지, 라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이건 전혀 아닙니다. 결코 주목할 만한 작가도 아니고, 주목할 만한 소설도 아니었어요. 단편집인데, 실려 있는 수편들 중에 괜찮다고 할 만한 작품이 거의 없더군요. 영화는 여전히 보고 싶지만 소설은 비추. 미국 서부(서부가 맞는지도 잘 모르겠지만)의 황량함만 남아있음.


13. 뻬드로 빠라모 - 후안 룰포
 최고. 어떻게 이런 소설을 쓸 수 있었을까. 놀랍고 당황스럽습니다. 후안 룰포. 나 같은 놈은 천년을 갈고 닦아도 결코 쓸 수 없는 소설.

 역시 아래는 일기장의 코멘트

 뻬드모 빠라모. 그 어떤 찬사도 과하지 않을만한 작품. 러시아나 라틴 아메리카의 소설을 읽을 때면 언제부터 시작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습관적으로 작품 속 인물들의 이름을 메모한다. 보통 포스트잇을 책갈피로 쓰면서 그곳에 메모를 하는 편인데, 이번에 읽은 이 작품은 백년의 고독이나 거장과 마르가리따의 반의반이 안 되는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포스트잇이 모자라 아예 큼직한 메모지를 찢어 필기할 수밖에 없었다. 보통 두 권으로 출판되는 소설을 읽을 때에도 조그마한 포스트잇 한 장이면 충분했다는 점에 비추어보아, 그것만으로도 160페이지의 이 소설이 얼마나 압축적인 방대함을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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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위의 코멘트는 독서후기 쓰다가 만 것. 후기 쓰다가 감당이 안돼서 중간에 포기했던 것 같아요.


14.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펜클럽 - 박민규
 후기 있음. 재미있었고, 나름 생각도 하게 만들었고. 하지만 역시 박민규는 박민규, 소설은 소설.


15. 달콤한 나의 도시 - 정이현
 일기장에서 발췌

 점심을 먹고 난 후부터 나는 읽고 있던 정이현의 "달콤한 나의 도시"를 읽었다. 안 그래도 꽤 흥미가 가던 소설인데 마침 김우철 병장이 빌려줬다. 정이현은 이효석 문학상 수상작품집에서 읽어본 기억 밖에 없다. 수상작인 타인의 고독과 자선 대표작 한 편이었는데, 뚜렷한 인상을 남긴 작품들은 아니었지만 읽어볼만한 젊은 한국 작가로 그녀를 기억하고 있었나보다. 또 부인할 수 없는 건, "달콤한 나의 도시" 표지가 권신아의 일러스트를 배경으로 아주 예뻤기 때문에 매력을 느꼈다는 거다.

31 살의 여자. 24살의 남자와 여차저자 동거를 하다가 36의 남자를 만나 결혼 할 뻔하고, 실패하고. 그녀의 친구는 기업 과장 자리를 내던지고 뮤지컬 배우를 하기 위해 가슴 성형수술을 하고. 다른 친구는 만난 지 한두 달 된 의사와 결혼을 했다가 바로 이혼을 하고. 그야말로 요즘 여자 이야기.

 마무리가 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특히 김영수의 별스러운 반전은-그것을 반전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매끄러운 소설이었다. 전체적인 스토리 라인도 재미있었고, 특히 작은 장면 장면에서 드러나는 정이현의 재치는 한여름 모래사장의 유리조각처럼 아주 반짝거렸다. 전체적으로 플롯이 주가 되는 소설이 아니었기에 커다란 감탄을 내뱉을만한 곳이 없긴 했지만, 두 명의 남자 사이에서 이도 저도 아닌, 술에 물 탄 듯, 물에 술 탄 듯 하는 오은수의 어정쩡함에서 동감을 느끼기도 하였고. 여하튼, 재미있었다.


16. 엠 아이 블루
 권기범님이 마지막으로 올린 독서후기에 있었던 책인데, 후기가 나름 인상이 깊었던지라 구해서 읽었습니다. 다양한 작가들이 쓴 다양한 퀴어 단편소설집인데 정말 생각을 많이 하게 되더군요. 각양각색의 단편들이 모여 있는데 정말 소수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수 있게끔 만들었습니다. 청소년들이 읽으면 정말 좋을 것 같다는 생각.


17. 내가 죽어 누워있을 때 - 윌리엄 포크너
 오, 정말 좋았습니다. 일단 소설을 써내려가는 형식이 굉장히 특이했고, 플롯도 정말 새로운 모습이었어요. 스토리보다도 플롯이나 기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저로서는 아주 반가운 작품이었습니다. 윌리엄 포크너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보고 싶은데 이거 말고는 우리나라에 제대로 번역된 책이 없더군요. 아, 안습. 안 읽어본 분이 있으시다면 추천합니다. 재미있어요.


18. 토파즈 - 무라카미 류
 이건 주영준의 추천으로 사서 읽은 책. 그런데 읽기 전까지 이게 단편집인 줄도 몰랐고, 에스엠 일색의 소설집인 줄도 몰랐어요. 표지에 19금 이라는 글씨가 번뜩이는 걸로 봐서 뭔가 있겠다 싶긴 싶었는데, 섹스는 없고 에스엠만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는. 완전 주영준과 싱크로 120%의 단편집이라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고. 읽으면서 야하다는 생각은 추호도 못했습니다. 자아와 타자의 소통 불가능성, 의미의 미끄러짐, 기표와 기의의 근원적 어긋남, 따위를 이런 식으로 풀어 놓은 거라 생각해요. 씁쓸하군.


19. 시계가 걸렸던 자리 - 구효서
20. 카스테라 - 박민규
21 핑퐁 - 박민규
 아래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발췌

 지금 읽고 있는 책은 구효서의 시계가 걸렸던 자리 라는 단편집이야. 구효서의 책은 처음 읽는데, 정말, 좋다. 정말 좋아. 너도 읽어봤다면 동의하리라 생각하고, 안 읽어봤다면 읽어보길 강력히 추천해. 삶과 죽음, 시간과 인식에 대한 통찰이 정말 뛰어난 감성으로 엮여있어. 아마 이걸 다 읽고 나서는 박민규의 단편집 카스테라를 읽을 것 같다. 박민규는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과 단편 두어 편 정도만 읽어봤는데, 사실 한국 문단에서 커다란 의미를 지니는 작가라고 생각하지는 않아. 매너리즘에 빠진 한국문학에 일시적인 쇼크를 일으키는데 적당한 작가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어. 그의 글이 재미있다는 것에는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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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는 일기에서 발췌

 박민규의 핑퐁이라. 읽고 있는데, 이제껏 박민규의 책들이 그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면, 그의 이 신작은 그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든다. 여전한 박민규. 재미있는 입담과 기발한 표현으로 실소를 머금게 하는. 하지만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어찌 보면 아주 식상하다. 식상함에 다른 무엇도 아니 더해졌다. 탁구라는 노골적인 메타포로 이제껏 했던 말들을 똑같은 문체로 반복하고 있다. 그의 문체도 이제는 조금씩 질리기 시작한다. 물론, 읽는 사람도 그런 문체를 쉬워하고, 작가로서도 그런 문체로 글을 쓰는 게 훨씬 쉬울 것이다. 하지만 진정성의 결여라는 건, 아무리 포스트 모던한 시대라 해도, 문학에게 있어서 치명적인 결점이 될 수밖에 없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쉽고 재미있는 게 다가 아니다. 특히나, 박민규의 카스테라와 핑퐁을 읽기 바로 전에 구효서의 시계가 걸렸던 자리를 읽었기에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구효서의 그것이 매너리즘에 빠진 한국 문학의 구원이라고 할 순 없어도, 진정 이것이 문학이다, 라는 나의 감탄을 받을 만 한 것이었다면, 박민규의 책들은 그냥 아마추어의 장난기 어린 습작처럼 느껴진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거기에 조금의 안타까움을 더하자면, 난 박민규의 네이밍 센스가 탐탁치 못하다. 핑퐁도 핑퐁이지만,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도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지만, 이것들의 작명은 뭐 그다지 센스의 발휘가 필요한 작업은 아니었으니 제쳐두더라도, 단편집에 실려 있는 단편들의 제목은 정말 하나같이 똑같은 패턴이다. 쌩뚱맞은 마지막 대사를 제목으로 옮겨놓은 것은 한 번 하면 신선한 충격일 테고 두 번 하면 또 써 먹네 라는 느낌이 들 테고 세 번 하면 10년 째 만나는 애인의 목소리를 전화로 듣는 것 보다 더 지루한 일일 것이다. 또 제목들에 동물의 이름이 등장한다는 것도 아주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의도적인 건가? 의도적이라면, 왜 그렇게 의도하였나. 이해할 수 없다. 아주 식상하고 지루하고 재미없다. 촌스럽기 그지없고 유치하다. 박민규가. 재미있는 작가라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내게 재미있는 작가 이상의 평가를 바라지는 말라.


22. 파이이야기 - 얀 마텔
 얀 마텔이 스토리 텔링에 능숙하다는 건 부인할 수 없지만 역시 밋밋한 플롯 때문에 썩 훌륭한 소설이라고 생각할 순 없을 것 같아요. 제가 너무 잔재주만 좋아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싶은데, 저는 사실 이런 소설보다는 마누엘 푸익이나 후안 룰포의 소설이 열 두배, 혹은 그 이상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내 취향은 아님. 흠.


23. 비트겐슈타인
24. 비트겐슈타인은 왜 말놀이판에 나섰을까
 한 권은 만화책, 한 권은 청소년용 교양서. 비트겐슈타인이라. 음. 말할 수 없는 것에는 침묵해야지요. 읽은 두 권의 책을 통틀어서 반의 반의 반이나 이해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25. 낭만주의의 뿌리 - 이사야 벌린
 강유원씨가 번역을 했더군요. 어쨌든. 꽤나 유익한 독서였습니다. 필기하면서 정독한 게 아니라, 그냥 재미삼아 통독한 거라 남은 건 별로 없지만, 그래도 재미있었습니다. 흐름을 알 수 있었어요. 나중에 한 번 제대로 짚어가면서 읽어보려구요.


26. 미학 오디세이 - 진중권
 읽으려고 뜸만 들이고 있다가 얼마 전에야 읽었습니다. 오오오. 재미있어요. 정말. 역시 그냥 일독 하자는 심정으로 읽어서 나중에 다시 한 번 읽어봐야 할 것 같긴 한데, 그래도 미학 입문서로 부족함이 없다는 것 정도는 알겠더군요. 덕분에 세잔의 그림을 이제야 좀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3월에 슈가 나가서는 대섭이 형과 마그리트 전시회에 갈 계획. 아잉.


27. 살인자의 건강법 - 아멜리 노통브
 미학 오디세이 읽는데 속도가 안 나서 부스터 쓰는 기분으로 집어 읽은 책. 역시나 빨리 술술 읽히는 노통브. 그런데 이 책은 전에 읽었던 적의 화장법이나 아름다운 세 살보다도 별로였어요. 참나. 이 아줌마 왜 이래. 나중에는 짜증도 막 나더라는. 비추 비추. 인명사전이나 사랑의 파괴, 오후 네 시는 괜찮다고 하던데, 하필 난 왜 이런 책들만 읽는 거지.

 아래는 일기장에 적어놓은 짧은 코멘트

 미학 오디세이 1권을 읽는 중이었는데, 아주 재미있게 읽고 있는 중이었는데, 눈에 갑자기 띈 아멜리 노통브의 살인자의 건강법을 충동적으로 집는 바람에 중간 쯤에서 멈춰 두었다. 노통브는 역시 별로 남는 게 없다. 그다지 재미있지도 않다. 억지도 많고 말 그대로 "작가가 하는 말을 작가는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에 대해 의문이 들기도 한다. 어쨌든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한 독서였다. 미학 오디세이나 다시 읽어야지.


27. 대리전 - 듀나
28. 무진장 - 강병융
 일기장에서 발췌

 어제부터 오늘 오전까지 듀나의 대리전을 읽었고, 지금은 강병융의 무진장을 읽고 있다. 둘 다 sf소설인데, 듀나의 것은 전에 읽었던 면세구역보다 사실 좀 별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면세구역은 정말 모든 단편 단편들이 충격적이었는데, 중편으로 적어내린 대리전은 짜임새에 있어서 흔들림이 있었고 끝에 가서는 글을 붙잡는 힘이 약해졌다. 듀나는 아무래도 단편인가보다. 강병융은 처음 읽는 작가인데, 단편집의 앞의 두 개만 읽은 지금, 듀나보다는 그리 썩 잘나지 않은 것 같다.



 병장 강승민 
 알랭드보통은 보통이상으로 좋더라구요. 재밌게 읽었습니다 제 취향은 아니지만.. 

 애니 프루 브로크백..저도 아니올시다였는데 <쉬핑 뉴스>는 정말 좋아요..그것도 영화로 나왔었죠. 

 아..적응 안돼네요 01-05   

 병장 조주현 
 사요나라 갱들이여 재미있음. 괜찮음. 우아일본야구보다 읽기가 쉬움. 01-05   

 병장 권영욱 
 저의 약 1년치 결산인데요. 01-05   

 병장 강승민 
 윌리엄 포크너..한번읽어봐야겠군요. 
 오프~라 윈프리가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길래... 01-05   

 병장 이영준 
 저도 세보니까 작년에 겨우 30권정도 밖에 못읽었던데. 01-05   

 일병 송지원 
 과거부터 결산주의자들을, 그리고 결산을 볼 때마다 느끼는거지만 이런건 묘하게 자극제가 되더군요. 저도 결산을 꺼내 놓고 싶은데 워낙 밑천이 없는지라.(읍) 암튼 결산주의자의 재림(?)은 너무나 반가워요 01-05   

 병장 김효진 
 박민규의 단편 [코리안 스탠다드]는 제가 당당히 꼽는 21세기의 졸작입니다. 
 그리고 공중그네에 대한 평은 최곱니다. '서양골동양과자점보다 덜 문학적인 소설' 캬하핫! 
 룰포, 불가꼬프는 반드시 읽어보려 합니다. 구효서도, 전 예전에 단편 몇 개 읽고 흔한 작가라 생각해서 더 안 읽었는데 좀 경솔했던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01-05   

 상병 신재곤 
 공중그네는 정말 재미있게 봤습니다. 웃음을 주는 법을 아는 소설이라고 할까요. 

 알랭 드 보통 책들은 이상하게 취향이 아닌지. 못읽겠고. 

 오쿠다 히데요 작가의 연애소설인가. 꽤 재미있습니다. 01-05   

 병장 김청하 
 저도 결산주의자지만 읽은게 없다보니.. (허망) 01-05   

 상병 김현동 
 효진// 뻬드로 빠라모와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완전 초강추! 구효서는 글쎄요, 저도 단편집 하나만 읽어봤기 때문에 힘 주어 말하기 어렵긴 해요. 읽은 단편집에 실린 여러 단편들 중에 사실 약간의 편차가 있긴 있었어요. 플롯이 엉상한 소설도 있었고, 밋밋한 이야기도 있었고. 그 중에 시계가 걸렸던 자리와 소금가마니는 아주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한 번쯤 집어보시는 것도 좋을 듯. 01-05   

 일병 김현진 
 거장과 마르가리따 ...가 눈에 확 띄는군요. 정말 괜찮죠. 01-08   

 병장 황민우 
 환룰포의 뻬드로 빠라모는 민음사에서 출간되자마자 바로 여자친구에게 선물한 책이죠. 
 현동씨, 환 룰포의 뻬드로 빠라모 망에 드셨다면, 중남미 단편소설집인 『붐, 그리고 포스트 붐』에 수록된 환 룰포의 「루비나」도 반드시 읽어보세요. 원고지 70장 정도 되는 짧은 단편인데, 엄청난 소설입니다. 

 그리고 더불어 환 룰포를 좋아하시면 카를로스 푸엔테스도 강츄. 

 듀나의 대리전은 평이 별로더군요. 개인적으로 『면세구역』을 가장 좋아합니다. 뮬론 작품간의 편차가 좀 크지만, 「면세구역」과 「나비전쟁」은 반드시 읽어볼 필요가 있지요.그리고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된 SF소설인 듀나의 『태평양 횡단특급』도 추천합니다. 01-08   

 일병 김정민 
 카스테라 빼고는 또 겹치는게 없네요. 저도 얼른 결산해야 할텐데. 

1 월말까진 해야겠어요 01-08   

 병장 이남혁 
 이번 결산을 보고 위시리스트에 많이 올렸답니다. 평을 보다 보니 꼭 봐야겠단는 사명감이 드는 군요. 
 좋은 책들 추천해주셔서 감사해요 0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