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적으로 영화보기] 사랑니
사랑니(2005)
감독 정 지우
출연 김 정은, 정 유미
칠판에 또닥여지는 분필소리가 한 여인의 목소리와 함께 대등한 음원을 가지면서 들리고, 이내 목소리의 주인공이 미디엄 숏으로 잡힌다. 쩌렁쩌렁 울리지는 않지만, 작고 야무진 목소리로 수학을 가르치는 조인영(김정은 분)은 입시학원에서 잘 나가는 수학강사이다. 매일 이별하며 살아간다는, 그래서 이제는 뒤돌아 갈수도 없고, 그냥 지금까지 파여진 길로 계속 가야만 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30살을 맞이한 유능한 직업인인 그녀는 몸이 아픈 어머니를 간호하고 속깊은 남자친구와 동거하며 그렇게 자신만의 기반을 꼭 자기 몫만큼 만족하며 사는 여자이다. 요즘 입시학원은 저렇게 인테리어가 잘 되어있는가 하고 생각할 때즈음에 그녀의 시선은 한 남자수강생을 향해있다. 오프닝 씬에서 저렇게 여자주인공이 바라보는 지배적 시점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이 영화가 앞으로 그녀의 삶과 욕망을 순전히 그녀의 시선을 통해 항해하겠다는 복선처럼 보인다.
영화사랑니는 해피앤드로 무난한 신고식을 올렸던 정지우감독이 5년만에 내보이는 신작이다. 다소 인공적으로 보이는 세트와 눈에 띄는 소재가 없음이 낯설게 보이기도 하지만 오밀조밀한 편집과 여전히 그만의 강점이라 할 수 있는 일상성을 완성도 높게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그가 5년동안 보이지 않는 수행의 시간을 보내며 와신상담했었음을 느끼게 해준다.
정지우를 단번에 한국영화 최고의 기대주로 등극하게 했던 단편생강은 80년대를 단 한순간도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통과한 세대들이 90년대의 비리한 시간들을 어떻게 살아남으려고 하는지를 보여준 영화였다. 거기서 그들은 서울을 마치 더 이상 수를 놓을 수 없는 체스판처럼 만들어버린 아파트 촌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아들 딸들의 이름을 '민주', '한결' 등으로 지어놓고 퍽퍽한 삶들을 이어나간다. 무더운 여름이지만, 그래서 한바탕 소낙비라고 내릴 것 같은데 비는 오지 않고 무거운 공기들을 덩어리처럼 껴안고 있는 영화속 일상성은 그대로 다음 작품인 해피앤드에 이어진다. 정지우의 장편 데뷔작인 이 영화는 첫사랑(주진모 분)이 주인공 보라(전도연 분)에게 주는 살떨리는 욕정의 시간과 남편(최민식 분)과 함께 생을 책임으로서 받들어야 하는 일상의 무거운 시간을 대비하여 무기력에 빠진 중산층 기성세대들의 삶을 치정극의 형식으로 보여준다. '보통사람들'로 살아갸아하는 근대적 인간에게 일탈은 멜로드라마 공식에서의 탈선을 뜻한다. 낭만적 사랑과 가정, 남편과 자녀라는 초자아의 굴레와 꿈의 이율배반적 공생, 현대인의 딜레마는 더 이상 죽느냐 사느냐식의 고전적 운명론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는 '장미빛 인생'이라는 성냥갑에 새겨진 바(bar) 이름이 전해주는 의미심장한 서늘함과는 별도로 의도하지 않게, 혹은 미필적 고의로서 장르적 공식에 일정 부분 예속되어 있다. 미끄럼틀에 한번 타게 되면 더 이상 선로를 변경할 수 없는 것처럼, 감독은 치정극 자체가 내포하고 있는 통속적인 맥락을 중간에 선회하기에 영화적 일관성을 너무나도 심각하게 고려했던 것 같아 보인다. 후반부에 보라는 결국 남편에게 '심판'당하며 말미에 남편의 꿈과 보라의 꿈이 교차로 개입되면서 나른하고 무기력한 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의 완성도와는 별도로 이 작품이 많은 페미니스트 평론가들에게 비판을 받았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 결국 최보라는 부정(不貞)한 여인으로서 삶을 감시당했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아파트촌의 정상적인 부인들의 동조는 섬뜩하기 까지 하다.
영화 사랑니는 얼핏 그의 전작들과 다른 색감으로 그려진 수채화같지만 유심히 들여다보면 여전히 '첫사랑'이라는 섬광과도 같은 기억의 매개를 통해 개인의 순수했던 적을 비순수함이라는 가짜에고로부터 반추하는 형식을 띠고 있다. 여기서 감독은 섣불리 성장한 자를 망가진 꽃으로 비유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
서른은 꼬박꼬박 영양제를 먹어주고 러닝머신을 하며 보험금을 내야하는 나이라며 자기관리를 늦추지 않는 인영은 어느 날 문득 수강생중에 자신의 첫사랑과 외모와 말투, 심지어는 이름까지(이석)같은 학생을 보게 된다. (자신은 이리도 나이들어버렸는데 여고생때의 첫사랑은 나이도 먹지 않고 지금 자신의 시간속에 떡하니 나타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는 또 다른 층위의 이야기를 병렬배치시킨다. 여기에 청순한 한 여고생이 있다. 그녀의 이름도 조인영이며 지금 그녀는 그녀가 좋아했던 남자아이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가없다. 사랑의 소멸을 감당하지 못하던 소녀는 결국 죽은 그의 쌍둥이 동생을 사랑이라고 착각하며 따른다. 그의 이름은 이석. 얼핏 생각하면 30살 조인영이 과거를 회상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고, 아님 동시에 전혀 딴 이야기일 수도 있다. 어쨌든! 두 개의 이야기는 그렇게 흘러가고 30살 조인영은 자신의 제자와 연애를 한다.
영화의 클라이막스는 30살 조인영의 과거의 모습인줄로만 알았던 여고생 조인영이 실재로 30살 조인영의 학원으로 찾아온 장면이다. 여기서 영화는 서로 다른 질감을 가진 두 개의 시간을 이어붙이는, 오로지 영화만이 가능한 불가해하지만 동시에 이해가능한 시간들의 집적을 보여준다. 그러니깐 굳이 정리해보면 30살 조인영이 지금 사랑하고 있는 이석은 자신의 첫사랑과 '나이까지' 똑같이 닮은 아이지만 실재 첫사랑은 아니고, 여고생 인영은 그런 이석을 동년배로써 짝사랑하고 있다. 반사되어 끊임없이 의미를 연쇄화시키는 거울이론, 혹은 뫼비우스의 띠, 두 여인이 모두 과거와 현재의 인영을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되던 영화는 두 사람을 동시대에 만나게 함으로서 이 시간의 균질성은 '곱게' 찌그러지고 다양한 해석의 도미노를 일으키게 된다. 여기서 일상의 디제시스함, 즉 총체성으로서의 일관성을 방해하는 것은 바로 동명이인의 등장이며, 이는 관객들에게 과거와 현재가 같은 선상에 존재하는 '공감각적 시간성'임을 인지하게 해준다. 이질적인 두 개의 시간이 합쳐져서 삼투압을 일으키는 것처럼, 여기서 일관된 시간성도 무참히 파괴된다. 마치 가로와 세로로 달리 직항하던 두 개의 비행기가 하나의 점으로 수렴하는 것이 불가피한 것처럼 영화속 두 인영이 마주치는 씬은 관객들에게 많은 생각을 가지게 한다. 이제 사랑은 일상에서 그리 단순히 정의되지 못할 것이다.
30 살 인영은 이석을 여고생 인영의 시간에서 건져냄으로써 비로소 연애를 하기 시작한다. 그는 결국 다치지 않고 성장한 셈이다. 잠자리도 같이 하지만 타인에 대한 배려를 더 많이 배우게 되고, 여백으로 보고, 침묵으로 듣는 계몽된 삶을 인영에게서 배우게 된다. 마치 젓가락질을 배우는 어린 아이처럼, 에밀에게 자신의 밭을 가꾸는 법을 가르키는 루소처럼, 그렇게 인영은 두 번다시 사랑에 실패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러던 중 30살 인영은 진짜 이석을 만나게 된다, 그러니깐 30살먹은 이석, 아저씨...
서른 살 인영은 처음에는 제자인 이석이 자신의 첫사랑과 똑같이 생긴 줄로만 알았는데 막상 30살 이석을 보자 둘이 서로 닮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녀는 여기에 별로 아랑곳하지 않는다. 따라서 서른 살 인영에게 여고생 인영은 그녀의 판타지가 현실로 침범한, 일종의 병리적 현상일 수도 있으며, 아님 욕심많은 30대 인영의 차별받지 않는 욕망을 충족시키는 욕심많은 선택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그리고 영화는 자신의 진짜 첫사랑 이석과 지금의 이석, 그리고 동거하고 있는 남자친구를 자신의 집에 초대해 30살 현대인 조인영이 가지는 여러 가지의 욕망을 한 장소에 모이게 함으로써 즐거운 파티를 연다. 이는 분명 전작의 치명적인 결함을 반성적으로 반영한 듯 하다. 또한 지금까지의 다소 까다로웠던 구조가 결코 트릭이 아니었음을 증명해낸다. 분명 도플갱어식의 첫사랑이 다른 시간 층위에 나타나는 건 판타지이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 사는 세상을 우리는 각자의 제눈의 안경을 통해서 보고, 느끼고, 살아가기 때문에 거기에는 언제나 현상학적 환상이 개입되어 있기 마련이다. 인영과 이석이 학원에서 키스를 나눌 때 인영은 마치 무중력상태처럼 몸이 가벼워져 허공을 붕 뜬 상태가 된다. 영화를 보는 일상인들은 이 장면을 보고 놀라지만 정작 영화속에서도 일상을 사는 그들은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하던 업무()를 계속한다. 그녀는 이제 전작의 한보라처럼 다양한 등위의 욕망을 차별받지 않도록 생활을 꾸릴 줄 알게 된다. 지금 애인인 고교생 이석을 통해 실재 첫사랑이었지만 지금은 많이 변해버린 어른 이석에게서 풍기는 나이들어감의 서글픔을 보상받고, 가끔 사랑하면서 생기게 되는 불균질한 잉여들, 삐져나오는 여분의 불만족을 해소해줄 든든한 동거남도 가지고 있다.
때론 인간은 기형도의 시에서처럼 여러 가지의 공장들을 세워 되돌아갈 곳들을 만듦으로써 자기애에서 비롯되는 신념을 기초부터 무기력하게 만들기도 한다. 청년들은 성장할 때 주로 그런 과오를 범하게 된다. 무엇인가를 열렬히, 온 존재를 걸고 사랑했던 적도, 뜨거웠던 적도 없이 자신이 성장했었다고, 어른이 되었다면서 가짜로 믿는다. 미련이 남으면 인간은 과거지향적이게 마련이다. 모든걸 걸고 사랑도, 도전도 하지 않았기에 미련이 생기고 '왕년에.....'로 시작하는 길고 긴 서사시를 꾸며대기에 바쁘다. 군역을 마친 대한민국 남성들이 주로 만나면 하는 이야기가 군대 이야기인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들은 군대에서 남성성을 창조시킨게 아니라 자아를 제도화된 폭력안에 적응시켰기 때문에 자꾸 남성성의 신화를 다시 씀으로서 그런 결핍을 메우려 하기 때문이다. 개혁세력이라 자청하는 이들도 그들이 기성정치권에서 외부의 사회적 힘을 바라보면서 생기는 결핍을 자꾸 정치언어와 수사로서 매우려 한다.
하지만 때론 첫사랑이라는 것으로 대변되는 순수했던 때의 열정과 꿈은 좀처럼 어른이 된 이후에도 사그러들지 않고 찾아온다. 그것은 미약 하고 능력은 허술했으나 순수하게 모든걸 걸고 꿈을 이루고자 했던 이들에게만 주어지는 또 다른 기회다. 정지우는 자신을 한없이 괴롭혔던 청년기와 시대의 우울증을 더 이상 패배주의적 시각에서 사유하지 않는다. 그는 약았다면 한없이 약아서 나무꾼에게 팥죽을 통째로 뒤엎을 만한 지상의 무서운 여자로 살아갈 수 있는 30살 여자에게 다시 한번 더 기회를 준다. 이미 죄를 범한 자에게 다시 한번 범인의 자유를 주고, 진탕에 빠졌지만 갈아입을 옷을 꺼내주는 이치대로 서른살 인영에게 감독은 다시 시작하라고 넌지시 일러준다. 인영은 이제는 자신의 밥값은 자신이 책임질 수 있으니 더 이상 자기 만족을 위해 사랑을 이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여고생 인영도, 진짜 첫사랑 이석도 과감히 버릴 수 있는 것이다.
정지우의 사랑니는 한 인터뷰에서도 밝혔듯이 여고생 인영의 이야기는 1초에 16프레임으로 찍고 30살 인영의 이야기는 1초에 24프레임으로 찍는 효과를 내어 두 개의 시간의 질감을 다르게 나타냄으로서 우리가 한때 가졌던 꿈이 이제는 차원을 달리하는 시간속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성공적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이건 별로 새롭지 못하다. 그건 이미 많은 유럽의 거장들이 원숙하게 체념함으로써 보인 첫사랑의 냉소와 별반 다르지 않는다. 그러나 감독은 여기서 더 나아가 그 두 개의 시간을 이어붙이는데, 성급하게 매달리지 않고 치밀한 편집으로 그것이 가능의 세계에 위치 할 수 있도록 잘 조합해냈다. 결과는 스위스 시계공의 작업처럼 구체적이며 자연스럽다. 김정은의 연기도 눈부시다. 생각해보면 모든 이야기 중 오로지 특정한 것들만이 매끄럽게 연결되는 이유는 그것이 당대의 대중들이 숨쉬는 공기속에 특정 이야기가 소화가 잘 되기 때문이다. '모든 당대의 이야기에는 역사의 속임수가 숨어있다' 라는 아도르노의 말을 떠올리며, 마치 우리 각자가 서로 같은 기차의 서로 다른 칸사이를 무사히 건너갈 수 있는 것처럼. 따라서 그 두 개의 시간이 매끄럽게 이어붙여서 연속성을 가지고 관객에게 소통된다는 것은 많은 이들이 30살 인영처럼 어른이 된 이후에도 첫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석은 그렇게 30살 인영에게로 돌아왔고 사랑은 다시 시작된다. 인영은 그렇게 과거와 화해한다.
p.s
어린 인영의 이야기에서 이석은 인영에게 지구본을 선물한다, 어쩌면 사랑이란 상대에게 세계를 선물하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님 말고.
병장 김동환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07-21 1025)
상병 허익준 (20060720 135648)
... 뭐 이딴 영화가 다 있어'하고 지나갔는데, 다시 봐야겠네요. 으음. 역시 아는만큼 보인다는 말은 절대진리.
상병 허익준 (20060720 135924)
그리고 은근슬쩍 가지를 치켜들어봅니다. 가지로-
병장 김태경 (20060720 140255)
와.. 재미있게 읽었어요. 영화를 보면 실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요. 변영기태씨의 글을 읽고 개혁에 대한 꿈을 안고 X작 시리즈를 보는것 만큼이나요.
병장 김동석 (20060720 140954)
가지로
사랑니,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마음에 들었어요.
병장 안대섭 (20060720 142139)
오케이, 리스트 추가.
병장 조용준 (20060720 142208)
가지로
와우.
상병 조주현 (20060720 144329)
가지로
이거 시네21가면 볼 수 있는건가요
병장 최요한 (20060720 144630)
다 감동적인데 특히 이 부분
...'약았다면 한없이 약아서 나무꾼에게 팥죽을 통째로 뒤엎을 만한 지상의 무서운 여자로 살아갈 수 있는 30살 여자' 에 한 표 흐흐
병장 김희곤 (20060720 145130)
가지로
무비위크에도 있을지 몰라요.
병장 박진우 (20060720 163431)
사랑니에서 가장 주목해야할 배우는 바로 '정유미'입니다. 배우의 스타일은 일상용 캐릭터인듯하나, 일반인이 범접할수없는 진정한 순수함의 영역에 가장 맞닿아있는 배우라고나 할까요.
병장 김동환 (20060720 172812)
정유미 최고. 진우님이 올리신 뭐시기뭐시기 키워드 100이었나 하는 글에서도
영화배우 부분에서 홀로 이름을 떨치고 있었죠. 사랑니에 이어 가족의 탄생. 작품운도
따라주는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가지로.
오랜만이에요 승민님. 흐흐.
상병 최태욱 (20060720 173900)
아- 이 영화 다시 봐야겠습니다.
근데 정유미란 배우가
혹시 가족의 탄생에서 봉태규 여자친구로 나오는 그 배우 맞나요
병장 김성엽 (20060720 194453)
와..
이렇게 영화를 본다면.. 으음.
병장 김동환 (20060720 200939)
태욱
맞아요. 봉태규 여자친구.
상병 최태욱 (20060721 075300)
동환님
그 배우가 그 배우였군요.
사랑니에서는 그다지 관심있게 보지 못했는데,
가족의 탄생에서는 참 괜찮은 배우라고 보는 내내 생각했었죠.
앞으로 관심있게 지켜봐야겠네요.
병장 박진우 (20060721 152919)
정유미씨는 폴라로이드 작동법이라는 단편으로 데뷔했지요.
병장 김동석 (20060721 162010)
폴라로이드 작동법도 매우 좋은 단편입니다. 멋진 필모그래피라고 할 수 있군요, 정유미씨.
병장 강승민 (20060721 171031)
사랑니 ost 가 참 좋습니다. ost는 디비디 특별판을 구입해야 들을 수 있는데(홍보하려는 건 아니지만) 근래에 나온 한국영화음악 중에 밀애,외출다음으로 가장 알찬 구성으로 프로듀싱 된 앨범인 듯 합니다.
참고로 여기 디비디 소개란에 보니깐 정유미가 달콤한 인생에도 나왔다고 하더군요
병장 박형주 (20060722 210028)
안에서 상영한 적이 있어서 7명인가 보러 갔었는데 아무도 스토리를 이해 못 했습니다. 보러 가자고 했던 저는 처참한 다굴을... 전 굉장히 답답하게 봤던 작품인데 좀더 복잡한게 있나봐요.
상병 이훈재 (20060730 212606)
잘 읽었어요. 영화 보고 싶어졌어요.
영화감독을 하다 온 후임이 있어서, 이 글을 프린트해서 일독을 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