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의 추억
병장 이승일 03-22 01:11 | HIT : 245
오늘 소대에서 키우는 개 - 진순이 - 를 유심히 관찰했다. 진순이는 나와 상당히 다르다. 몸 색깔이 다르고(그녀는 천사처럼 하얀색이다), 나와는 달리 네 발로 걸으며 귀가 쫑긋하다. 혀바닥은 나보다 길지만, 손가락은 짧다.그리고 아마도 나보다 멍청하고 더 지저분하다. (이것은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같은 점도 많이 있다. 두개의 눈, 하나의 입, 무언가를 바라는 간절한 눈 빛, 애정, 호기심, 방항심, 질투... 등등.
진순이는 분명 나와 꽤 다르지만, 내가 돌맹이하고 다른 만큼 다르진 않다. 말하자면 그녀는 나와 돌맹이 사이의 어디쯤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마 내 쪽에 훨씬 가까이 있을 것이다.
나는 진순이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녀도 나의 눈을 쳐다보았다. 보드라운 바람이 부는 봄날, 햇살 가득한 잔디밭 위에서,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내 눈에 보인 것은 하나의 유구한 역사였다. 마치 증조할아버지의 장례식에서 만난 먼 친척을 보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공통의 과거를 한순간에 느낄 수 있듯이, 나는 진순이와 나 사이에서 공통의 역사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나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길고 긴 역사를 상상했다. 우리 둘이 이 햇살 아래에서 눈을 맞추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을까? 나의 상상은 그 모든 일들이 나와 무관한 일이 아니라, 마치 내 할아버지나 그 할아버지의 일이었던 것처럼, 이를테면 우리 가족의 이야기처럼 생각하는데 까지 나아갔다. '나'라는 존재의 정체성은 우리 가족, 우리 민족, 그리고 인류 전체를 넘어 포유류와 척추동물 그리고 모든 생명체의 일부분이라는 데까지 확장됨을 생생하게 느꼈다. 나는 정말로 그들 중 하나이며, 생명이란, .... 아, 생명이란, .. 정말로 얼마나 장엄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지! 그 길고 긴 이야기에 나는 압도될 수밖에 없었다.
진순이는 나와의 눈맞춤에서 별로 얻을 것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저 멀리, 나무들이 무성한 곳으로 달려갔다. 진순이도 느끼고 있을까? 저 나무들과 함께, 자기 자신도 이 모든 것의 일부라는 것을. 이 세상은 결코 낯선 곳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의 모든 일들은 고작 수년 혹은 수십년동안 일어난 것이 아니라, 수십억년 동안 일어난 거대하고도 성스러운 운동의 일부라는 것을. 우리는 정말로 이 모든 것들과 같은 편이라는 것을... '나'라는 개체의 죽음이란, 생각처럼 그렇게 엄청난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이러한 생각은 나 개인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을 느끼게 하기는 커녕, 오히려 커다란 평안을 가져다 주었다. 이 자연이 위대한만큼 나는 위대하니깐. 이 유구한 역사의 주인을 신이라고 부르는 것이 과연 신성 모독일까? 그가 단 일주일만에 세상을 뚝딱 만들었다고 말하는 것이, 이 장대한 서사시를 노래하는 것보다 정말로 더 경건한 찬양일까?
내가 테니스공을 집어들자 진순이는 다시 꼬리를 흔들며 나에게로 뛰어왔다. 저 꼬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쁨 - 그것은 내가 이해하는 바로 그 기쁨과 완전히 같지는 않겠지만 여전히 매우 비슷할 것이며, 또 다시 유구한 시간이 흘러 전혀 다른 생명체가 인류를 대신하고 있을 때, 그들도 봄바람에 실려온 햇살아래에서 이 기쁨과 비슷한 무언가를 느끼며 우리 가족의 역사를 회상하게 될지도 모른다. 워즈워드의 표현대로, "Father's Family" 의 역사를 말이다.
병장 임정우
감상에 맞물려 번쩍거리며 몰아닥치는 직관을 느낄수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과거를 회상하고 미래 역시 회상하기 위해 기다는게 아닌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에는 행복이라던가 절망이 있기전에 자연스러움이 흐르고 있고 자연스러움은 흐르고 지나감으로 자신을 증명하고 있는것 같습니다. 03-22
일병 구본성
공감합니다. 매우 멋진 글입니다. 우리가 느끼는 기쁨과 동물이 느끼는 기쁨과 미래의 그 누군가가 느끼는 기쁨이 그리 다르지 않다는 사실은 또다른 '기쁨'일 것입니다.
저는 진화, 뇌에 대해 제대로 알지못하면서도 괜히 나서서 글을 썼던 듯 합니다. 조용히 있어야 겠습니다. 03-22
병장 김택근
이상하게 승일씨의 글들은 반문할생각이 전혀 안드는것이...
종교에대한 토론으로 시작해서 제가 올린 진화론으로 번진불꽃은 이 글로 마무리 되었으면 좋겠군요.. 공부하고 돌아오겠다고 몇번말했지만 만족할 만한 성과를 이루긴 어려울꺼같고
여기 책마을 분들에겐 오류투성이의 논리가 될가능성이 다분해서...
제가 어제 내려 간동안 진화에대한 글이 이것까지 3개올라왔지만 뭐...
거기엔 답글을 안달겠습니다
이것으로 저의 진화론에 대한 의견은 마치도록 하죠 03-22
병장 성태식
크하하하. 승일씨. 문학쪽으로 나가셔도 대성하실거 같아요. (웃음)
' 완정성과 세계-1'에서도 느꼈지만, 사실에 기반한 독특한 상상력이 정말 돋보이네요. 03-22
병장 윤재훈
글 재밌게 잘쓰시네요. 그런데 저는 세상을 7일만에 창조하셨다는게 훨씬더 설득력이 있을 거 같은데요. 전능하신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는데 수억년이 걸렸다면 조금 이상하잖아요. 03-22
병장 임정우
재훈 / 신에게 시간은 바닷가에 모래같은게 아닐까요. 무한이 많지만 외면하면 보이지 않고 갖고 싶다면 손으로 약간 퍼올리면 그만인. 03-22
병장 배진호
객관적으로 글을 보면 이 글은 분명 감상적인 글이지만
무엇인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가 의미심장합니다.
' 우리의 모든 일들은 고작 수년 혹은 수십년동안 일어난 것이 아니라, 수십억년 동안 일어난 거대하고도 성스러운 운동의 일부라는 것을'
진순이를 통한 키워드는 이 부분이라고 생각되는군요.
이 사실은 여지껏 이야기 했던 부분에 있어서 명확하지 않다고
여겨졌던 부분이지만 여러가지 감상적인 부분을 인용해서
전체적으로 모든 부분이 감상적으로 흘러갔다고 느껴지게 했습니다.
즉 이 글은 살펴볼 필요성이 있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분명 무한한 시간간인지 얼마 되지 않는 시간인지 확연하지는
않지만 이러한 글을 사용함으로 인해서 은연중으로 단정지었고,
여지껏 이야기했던 가장 중요한 부분인 창조에 대한 이야기와
진화에 대한 이야기들을 한 순간에 담았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이 글이 창조와 진화에 관련되지 않는 부분에 있어서 쓰여졌다면
아무런 연관성을 찾을 수 없겠지만 특히나
지금의 여러 글들의 정황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소지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통해서 그렇게 단정지어 버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수십억년인지 몇만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라는 표현이 좀더 여러사람의 생각을 포용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합니다.
또한
" 그가 단 일주일만에 세상을 뚝딱 만들었다고 말하는 것이, 이 장대한 서사시를 노래하는 것보다 정말로 더 경건한 찬양일까? "
이 부분에 있어서는 일주일만에 세상을 뚝딱 만들었다고 말하는것이
경건한 찬양인지 아닌지에 대한 생각의 여지를 주지 않고
단순히 한부분의 입장에서 다른것에 대해 생각할 부분을 제한함으로써
그것에 대해서 일주일만에 만들었다면 경건한 찬양이 아니다
그러므로 일주일 만에 만들지 않았거나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신을 모독하는 행위라는 사실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글을 읽으면서 그냥 자연스럽게 수긍하여 버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03-22
상병 김지민
태식씨에 동감. 문학쪽으로도 막.... (좌절중) 03-22
병장 윤재훈
정우//시간이란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나 기타 생물에게만 적용되는 것 아닐까요? 무한하고 영원한 존재인 신에게 시간이란, 너네의 기준에 내가 맞춰준다는 아량 정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 바닷가의 모래 같이 무한하다는 것.. 적절한 비유 같네요
/ 진호 제가 이 글을 쓴 사람은 아니지만, 이 글은 분명히 창조론보다는 진화론쪽에 무게를 두고 쓴글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런 사람의 글에서 신에 대한 존경을 기대한 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고 만약 이 글에 창세기에 대한 존경이 표현되면 글 자체가 이미 모순적인 글이 되버리겠죠. 이 글에서 위에 진화론에 문제를 제기 했던 분들이 수긍하고 넘기는 것은 오히려 나는 진화론을 주장한다는 이 한마디 말보다 더욱 더 강한 위트로 진화론의 우위를 주장하기 때문에, 그냥 당신 생각을 인정한다 정도로 넘어가겠다는 뜻이 아닐까요? 03-22
병장 성태식
지민 // 그렇죠? (크흑)
언제 같이 술이나 한잔 할까요? (웃음) 03-22
병장 성태식
진호//이 글은 논증이 아니라 문학에 가깝다고 보여집니다.
문학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되는데요.
단지 문학적으로 진화론이 옳다는 생각을 드러낸 부분이 문제라면
문학적으로 창조론이 옳다는 생각을 드러낼 능력이 필요할 따름이지요.
글쎄요. 자세한 문제는 문학에 능통한 우리 지민씨와 민우씨에게.. (퍽) 03-22
병장 이승일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만, 문학과 저는 거의 인연이 없다는.. 태식씨와 지민씨의 개그는 정말 웃겨요.(으하하)
예.. 이 글은 진화론적인 관점을 전제로 씌어졌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수필조로 썼다고는하나, 그것을 너무나 당연한 사실인 듯 가정하고 이야기하는 것은 분명 비판받을 소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제가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진화론이 창조론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인간을 물화시키고 '맛 없게'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진화론적 관점이 결코 신을 배제해야할 이유도 없으며, 시각에 따라서는 오히려 상상을 초월하는 신의 역사를 더 잘 드러내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 엄청나게 긴 생명의 역사를 상상으로나마 직접 느껴보실 수 있다면, 그것이 결코 신의 전능함을 격하시키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재훈 / 진화론에 무게를 두었다고 해서 신에 대한 존경을 표현다는 것이 말이 안된다는 생각은 분명 옳지 않습니다. 진화론 - 무신론 / 창조론- 유신론 의 이분법은 매우 편협한 생각이며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기독교의 역사는 신에 대한 관념의 역사보다 짧으며, 단지 수많은 신에 관한 의견들 중 하나일 뿐입니다. 물론 참인 의견일 수 있겠지요.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신을 받아드리면서도 기독교와는 다른 관점이 많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은 우선 인정하셔야 할 것입니다. 저는 결코 '당신 생각을 인정한다' 정도로 신을 거론한 것이 아닙니다. 03-22 *
병장 윤재훈
아.. 한 30분정도 생각해서 글을썼는데 그 사이에 로그오프가 되어 다 날라갔습니다.
힘이 쭉 빠집니다..
승일 / 제 글의 '신'은 기독교의 하느님 혹은 하나님을 의미하는 것이 었습니다. 물론 진화론자도 신에 대한 존경을 할 수 있고, 기독교를 믿을 수 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분법적으로 생각한적도 없고 사실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신을 받아들이면서도 기독교와 다른 관점이 많이 존재한다는 것 역시 인정합니다.
승일씨 글을 보면 신이라는 글자가 딱 1번 나옵니다. 5번째 문단에 3번째 문장인데요. 거기서나오는 신은 4번째 문장에서 나오는 '그'가 받는 말이고 그 후의 문장이
그가 단 일주일만에 세상을 뚝딱 만들었다고 말하는 것이, 이 장대한 서사시를 노래하는 것보다 정말로 더 경건한 찬양일까?
라고 일주일을 지칭하셔서 창세기를 의미하는 것이고 그 신은 바로 하느님혹은 하나님이 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 글에도 그렇게 썼던 것 같네요.
마지막에 '당신 생각을 인정한다'정도로 신을 거론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무슨뜻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진화론을 옹호하지 않는 사람들이 이승일씨 글을 읽고도 왜 문제점이 없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는 의견을 나타낸 진호씨에게 진화론을 옹호하지 않는 사람들이 이승일씨 글이 문학적으로 재치 있어서 그냥 좋게 넘어갑니다. 라는 것 같다는 제 개인적인 의견을 쓴 것입니다. 참 말로 표현하기 힘드네요
여담으로 어렸을때부터 창조론과 진화론은 대립되는 이론이라고 배워서 그런지 몰라도, 신이
무언가를 창조한 후에 그것이 진화해서 현재에 이르렀다는 것이 진화론이 될 수 있는지 없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것도 진화론으로 인정받을 수 있나요? 03-23
병장 이승일
재훈 / 보통 그런 것을 이신론이라고 합니다. 뭐, 부분적으로는 진화론이고 부분적으로는 창조론이겠지요. 신을 인정하는 것과 진화론을 받아드리는 것은 별개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예컨데 진화 과정 자체를 신이 이끌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고, 진화의 원동력이 신이 불어넣은 질서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고, 뭐 이신론적 관점을 취할 수도 있을 것이고. .. 가능한 의견의 형태는 아주 많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