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교육사의 봄 
 병장 이승일 04-26 19:56 | HIT : 446 





 부대 안의 벚꽃을 보니 문뜩 진주교육사의 봄이 떠올랐다. 내가 입대하던 날에도 이렇게 벚꽃이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더할나위 없이 아름다웠다. 얼마나 아이러니한 장면이었던가. 나는 정말 아무런 준비 없이 입대했다. 물질적인 측면에서의 준비는 물론이거니와 정신적으로 전혀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채로 벚꽃의 환영을 받았던 것이다. 입대하기 이틀 전까지 바이올린 레슨을 받았고, 대학원 세미나를 들었으며, 심지어 새 옷을 사기도 했다 (...) 내일 지구가 망해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허황된 심보였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가 아무런 준비를 안하면 세상도 아무런 변화가 없을 줄 알았나보다. 그러나 얼떨결에 나는 입대해 버렸고 현실은 내 마음이 준비가 되어있는지 안되어있는지 한마디 상의도 없이 제멋대로 진행되었다. 나는 입대 첫날, '어랏...이..이게 아닌데' 하고 생각했다. 설마 정말로 이런 곳에서 2년을 살게 될까? 매일 아침 기상 나팔 소리와 함께 깨어날 때 마다 오히려 꿈 속으로, 가장 지독한 악몽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모든 것을 현실로 받아드릴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나는 ... 그곳이 어딘지 알 수가 없었다. 저들이 대체 누구인지, 무엇인 진짜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훈련소의 처음 몇주가 힘들었다면, 그것은 단지 내게 주어진 상황에 대해 전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가 가장 알 수 없었던 것은 저 빨간모자를 쓴 사람들이 우리를 정말로 싫어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하는 것이었다. 그 표정이나 말투 등으로 미루어보건대 우리를 정말로 싫어하고 파괴하고자 한다고 믿을만한 츙분한 근거들이 있었다. 나에게 두려움을 준 것은 단지 그것이었다. 얼차려도 아니고, 감점표도 아니고, 다른 무엇도 아니었다. 나를 지배하고 있는 이 세계가 나를 증오하고 파멸시키고자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 나는 정말로 버림받았을지도 모른다는 사실. 폭력이 두려운 것은 그 자체의 물리적 파괴력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아무것도 아니다. 그 폭력이 부조리한 방식으로 행해지고 있다는 점이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이다. 그 부조리함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가 물화되는 경험을 하며, 언제라도 우리의 모든 것이 빼앗길 수 있으리라고 느끼게 된다. 우리 중 하나 쯤 죽어나가도 크게 개의치 않을 것 같다고, 그냥 손(망)실 처리 하고나서 금새 잊어버릴 것 같다고 여기게 되는 것이다. 우리를 정말로 두렵게 하는 것은 고통이 아니라 무의미이다.
 우리 내무실에는 나만큼이나 마음의 준비없이, 대책없이 입대한 친구들이 두 명 더 있었다. 그들의 마음도 나와 비슷했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후, 우리는 약간의 안도감을 느꼈던 것 같다. 버림받았을지라도 완전히 혼자는 아님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도 수많은 유대인들이 함께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모두 절망 속에서 죽어가지 않았던가. 

 우리의 마음을 구원해 준것은 빨간모자를 쓴 사람들이 우리를 결코 싫어하지 않으며 나름대로 신경을 쓰고 있음을 깨달았을 때 였다. 아마 2주차 쯤 되었을 때의 일이었을 것이다. 교관들은 우리가 비에 젖지 않게 전천후 학과장으로 안내했으며, 아프다는 훈련병을 항의전대로 태워다주기도 했다. 이것은 지금 생각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당시 우리에게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그 순간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두렵게하던 것이 단번에 사라졌던 것이다. "저들이 우리의 안위를 신경쓰고 있다!" 우리 내무실의 친구들은 눈빛으로 이 엄청난 '복음'을 공유했다. 그 이후의 훈련들은, 비록 힘들었지만, 사실상 아무것도 아니었다. 저들이 우리를 죽일 마음이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건 나는 살아 남으리라는 것, 결국 이 모든 것은 견딜만 하리라는 것. 우리는 그것을 깨달았고, 얼굴에는 생기가 돌았다. 감기에 걸려서 시름시름 앓기도 했지만, 더 이상 우리를 근본적으로 두렵게 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약 2년이 지난 지금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이 시절 내 어리석음을 조롱하고 또 약간은 부끄러워하면서 말이다. 우리가 느낀 2주간의 두려움은 결론적으로 얼마나 바보같은 것이었던가? 훈련소의 정체를 알고 난 지금, 그것은 단지 환경에 대한 무지가 빚어낸 해프닝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 당시 우리에게 다가온 것은 그 심연을 헤아리기 힘든 실존적 두려움이었고, 우리는 삶의 그 어느 순간보다도 더 진지했다. 누가 우리를 진심으로 비웃을 수 있겠는가. 우리는 이 두려움을 2주동안 경험했지만, 어떤 사람들은 평생동안 들고 다니지 않는가. 예를 들면 알베르토 까뮈같은 경우가 그럴 것이다. 그를 고뇌하게 한 것은 결코 삶의 구체적인 어려움들이 아니었을 것이다. 신문사에서 짤리건 말건, 책이 잘 팔리건 말건...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것들일 뿐이다. 그가 저항한 것은 폭력이 아니라 부조리한 폭력이었으며, 고통이 아니라 무의미였다. 그는 무의미에서 탈출하려고 했으나 결코 성공하지 못하였다. 그는 무의미에 경멸의 미소를 날려줌으로써 승리했다고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오, 그러나 훈련병의 썩소 속에 대체 무슨 승리가 담겨있단 말인가? 그 썩소가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두 세명의 합작품이었다 할지라도 말이다. 빨간모자 교관이 자신들의 애정을 슬쩍 보여주지 않았다면, 대체 우리는 어디에서 승리의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인가? 경멸은 부조리에 대한 승리가 아니라 그 부조리의 또 다른 증상일 뿐이다. 우리는 삶의 무의미와 공허함을 받아드림으로써, 혹은 받아드렸다고 착각함으로써, 오히려 무의미를 승리의 주인공으로 만든다. Nothing 을 승리의 주인공으로 만든다. Nothing wins.  그 결말은 패배일 뿐이다. 무의미는 무의미하기 때문에 정말로 아무런 의미가 없다. 까뮈는 그것을 비틀고 짜내고 뒤틀면서, 이렇게 보여주고 저렇게 보여주고 요렇게 보여주면서 무언가가 나오길 기대했다. 그는 몰랐던 것이다. 의미는 오직 의미로부터만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어둠은 오직 빛에 의해서만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병장 심승보 
 음, 사소한 부분이긴 한데, 특정 꽃이 잘못된 형태로 반복되는 것 같아 한 마디 달겠습니다. 이 글의 첫줄에 피어있는 꽃은 벗꽃이 아니고 '벚'꽃 입니다. '벚꽃'은 벚나무의 꽃이라는 의미이고, '벚'은 그 나무의 열매인 '버찌'의 준말입니다. 아, 그랬지요, 저도 같은 시기에 교육사의 그 꽃을 본 사람 중 하나인데, 정말 지금까지 눈에 선하도록 아름다웠습니다. 기회가 될 때마다 몇 번이나 뒤돌아봤던 기억이 나네요. 그리고 맞춤법 상 오기 중 하나 더, 이것은 아마도 단순 실수로 보이긴 하는데, 어쨌든 '게의치않다'가 아니라 '개의(介意)치않다'가 맞습니다. 04-26   

 병장 이승일 
 게의치 않다는 단순 실수지만 벚꽃은 다시 한번 쳐봤는데 또 그렇게 썼네요 (끙...) 고치겠습니다. 
 아마 체육관 가는 길이 제일 아름다웠지요. 제 동기중 한명은 "에이 씨X X같이 아름답네" 라는 말로 그 상황의 어이없음을 표현하곤 했습니다. 04-26 * 

 병장 심승보 
 승일/ 음, 이 경우엔 비워진 공란의 성별에 따라 시적 성취의 맛이 달라지는 데, 제 생각에도 (승일님이 이미 심오히 표기해 주신 것과 같이) 여기선 XX가 탁월한 듯 보입니다. 근데 본 내용과 관계없는 잡담만 늘어놓고 있는 것 같아 갑자기 죄송한 마음이 드네요. 그냥,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04-26   

 병장 노병두 
 이승일님 저랑 동기네요. 
 그렇다면 저도 보았어야 했다는 건데 제기억에는 없습니다. 
 후문으로 들어와서 그런가... 
 하지만 후문 부근에 호수를 거닐수 있었기에 만족합니다. 04-27   

 병장 송호근 
 교육사에 후문도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됬군요 04-27   

 병장 진규언 
 승일님 글 잘 읽었습니다. 솔직함이 확 묻어나는 글이라 완전 공감하고 있어요. 내용과 전혀 상관없지만.. '나는 그 모든 것을 현실로 받아드릴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에서 '받아들일'이라고 써야 맞는것 같아요. 

' 공란'에서조차 시적 정취의 맛을 달달하게 우려낸 승보님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04-27   

 병장 이승일 
 승보 / 안타깝게도 X 와 X 사이에 띄어쓰기가 있음을 보지 못하신 것 같습니다. (웃) 
 규언 /이런, 틀린 곳이 한두 곳이 아니군요. 04-27 * 

 병장 임경빈 
 교육사 후문은 다 가보지 않나요?? 배낭 하나씩 짊어지고 산 올라갈때.. 04-27   

 병장 김청하 
 폭력의 부조리함은 때론 폭력을 이겨내는 힘이 되기도 하죠. 비전향 장기수 할아버지들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면 그런 얘기가 나와요.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우리가 뭐 그렇게 대단한 사상과 긍지를 갖고 있어서 그 길고 긴 세월을 버텨낸 것이 아니다. 그게 아니라, 우리에게 가해진 폭력들의 부조리하고 불합리함. 그것을 통해 저들을 옳지 않다, 라는 것을 깨달으며 묵묵히 버텨내었다는 것이지요. 

 삶의 부조리함이 늘 자살로 이어지진 않는다는 소극적인 결론으로 만족할까 하다가, 그냥 그마저 흐트러버리고 맙니다. 헤헤 아님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