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병 홍명교 2009-08-15 20:10:04, 조회: 475, 추천:1
이런 것도 독서후기랄 수 있을까. 엄밀히 말해 그것은 책은 아니므로 독서는 아니었고, 대단히 짧은 글이기에 "읽었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다만 나는 '그것'을 '스쳤'다. '그것'은 그녀의 일기였다. '그녀'는 정확히 1년간 만나지 못한 나의 옛 친구이다. 이제부터 나는 '그녀'를 K라고 부르겠다. 바로 어제, 몇달만에 K의 미니홈피에 가게되었다.
나는 다른 사람의 미니홈피에 잘 가지 않는다. 다만 내가 들리는 미니홈피는 정해져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들은 모두 내가 한가득 부채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것은 "건강"한가? 이럴수가. 나는 방금 "건강"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요즘도 종종 "건강한 것이냐"고 내 자신에게 되묻는 나를 발견하며 놀라곤 한다. 그것은 우리들의 말투였다. 우리들의 스포츠는 건강한가, 우리들의 삶의 양식, 우리들의 연애방식, 우리들의 투쟁 방식, 우리들의 관계맺음의 방식은 건강한가, 하며 말이다. 이건 일종의 강박적인 결벽증같은 것인데, 고백컨대 스포츠권의 선수들은 저마다 다른 양식의 정신적 결벽증을 갖고 있다. 물론 결벽증은 아동기를 벗어난 많은 사람들에게 '아직' 존재한다. 트라우마가 되어 그 자신의 행로를 괴롭히거나, 불행해질줄 알면서도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실패가 예고된 선택을 강요하기도 한다. 요는 나의 어떤 이면을 채우고 있는 그 부채감이 그런 근원적인 결벽증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나는 결벽증적으로 흔적을 남기지 않으며, 결벽증적으로 완전한 '연기'를 가장한다. 나는 당신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으며 완전한 관계의 단절을 이루어냈다는 행색따위. 그러나 이런 비밀스러운 방문이 내게 더 많은 짐을 안겨주고 스스로를 옥죄게 할 것임을 알고 있다. 그런데 나는 왜 아직 그곳에 들리는가.
경색된 관계의 단절 행위는 결국 그 감정의 배설물들을 자아 안으로 수렴시킨다. 나는 어제 '스친' 그녀의 일기장에서 내 옆을 머무르던 그 유령의 서늘함을 감지했다. 그녀의 일기는 아래와 같다.
2009. 08. 07 금 01:XX
진정 탈출구는 없는가
너무 억울해서 분통이 터진다. 분이 안풀려서 뜨거운 한숨만 나온다. 한숨을 쉬고 쉬다보면 눈물도 맺힌다. 우리가 아직 너무 약하다는 말은 지금의 참담함을 전혀 위로하지 못한다.
하얀 얼굴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먼 발치에서 오늘의 위협을 바라보며 '객관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초조해하지 말라, 이제 곧 당신에게도 닥칠 위협이니
그날이 되었을때 적어도 부끄러워 할 줄은 알길 바란다고
또 하루의 비극이 추가되었다. 그래서 좀 더 열심히, 잘 살아야겠다. 정말 정말 강한 사람이 되어야겠다.
아마도 그렇지만은 않겠지만, 마치 나에게 하는 말처럼 느껴졌다. 그녀의 이 일기는 쌍화차 사건의 총체적 파국과 파멸적인 종결 이후의 분노와 한탄에서 쏟아진 감정이다. 두달이 넘도록 지속된 이 사태의 기간동안 그녀는 네 명의 친구를 철창으로 보냈음이 확실하다. 45일 전쯤에 서울에서 마주친 그녀의 선배를 통해 들은 말은, '우리들'의 친구들 넷이 그곳에 같이 들어갔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한때 내 친구이기도 했는데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나서는 뉴스나 신문을 볼 수 없었다. 끝까지 남은 사람들의 파국은 충분히 예측 가능한 것이었다. 이렇게 말하는 나의 자세가 바로 그녀가 말하는 '객관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자세이다. 나는 지금 미치도록 초조하다.
진정 탈출구는 없는가? 아주 오랫동안 끊임없이 질문해왔다. 이것이 지젝이 말하는 현재 저항운동이 처한 총체적인 난국의 양상이다. 극복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필연적인 '간극'이 모든 모순의 폭발 이후에도 항존하며 이데올로기 '반대편'의 흐름을 무화시키는 것이다. 지젝은 그 어떤 필사적 노력으로도 이것은 해결이 불가능하다며 결연하고 냉담하게 선언해버린다. (그 단락에서 나는 그가 정말 미웠다.)
아주 오랫동안 저항하는 사람들은 이 난맥에 빠져 허덕여왔다. 한국의 경우라면 정확히 91년 5월 이후라 하겠다. 그후로 사람들은 항상 이 혼돈과 함정의 탈출통로를 경황없이 찾으며 헤매어왔다. 김정한이 쓴 91년 5월의 기록, <대중과 폭력>을 보라. 91년 5월 그 짧은 기간동안 무수히 죽어간 십여명의 대학생들, 백만여명의 물결. 그것들은 단 한 순간의 이벤트, 한국외대에서의 국무총리 계란 투척 사건으로 어떤 기괴한 논리성의 충돌에 부딪치고 말았고, 그 모든 물결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사그라졌다.
한때 L파 학생스포츠의 주류를 자임하며 민족주의 학생스포츠선수들에게 쇠파이프까지 휘둘렀던 꼬뮤니스트들의 두 권으로 이뤄진 시리즈 <오래된 반성, 복잡한 습관>을 보라. 그때 이미 그들은 넌더리치며 그 지난한 자책과 민족주의자들에 대한 분노를 쏟아내지 않던가. 그러나 이런 식의 자괴적인 윤리담론은 이미 파멸을 예고하고 있지 않았던가. (무슨 일인지 갑자기 데리다를 읽던 그들 중에서의 또다른 주류는 21세기가 되자 모두 네그리주의자가 되더니, 정말이지 상상을 초월하는 낙관론자들이 되어 <제국>을 한권씩 들고 모든 것을 청산하고, 뿔뿔히 흩어지고 사라졌다. 2004년 서울과 부산 대학가에서 일었던 작은 청산쇼들. 그들이 자신들의 이론적 뿌리와 아무 상관이 없었던 데리다와 네그리를 읽었던 건 아무래도 결벽증적인 트라우마의 양식적 발산이 아니었을까?)
나는 어느새 하얀 얼굴의 객관론자가 되어버린건 아닌지 되묻는다. 폭넓은 독서와 인문학적 지식의 향유를 누리고 있는 내 편안한 처지를 생각하니, 돌연 죄책감의 쓰나미가 밀어닥쳐온다. 이런 것을 죄스럽게 여겨서는 안된다. 이런 것은 아무런 죄가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나는 어떤 결벽증 심한 유령의 응시를 끊임없이 의식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 이런 것이 보다 더 심해져서 그 고통스러운 사유 행위를 그치는 것으로 항복선언을 하는 그 순간, 그 백기를 든 사람은 모든 것을 쉽게 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것은 아주 쉽다. 이런 것은 쉬이 우리가 고뇌하며 찾던 '탈출구'의 이미지와 거짓 중첩되어 우리를 착각의 길로 인도한다. 무기력증에 빠진 무수한 3,40대의 모습이 그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나는 이미 그들이 이미 걸었던 경로 위를 밟고 있는것이 아닌가.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어느샌가 이 고통스러운 사유를 즐기게 되었음이 확실하다. 대체 무엇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고된 짓거리가 나를 통쾌한 인식의 발견으로 안내한다. 그리고 돌이켜 생각해보건대, 지젝의 <시차적 관점>은 역사에 내재하는 '간극'들을 직시하는 자세와 인식론적 단절을 강렬히 요구하는 것이 아니었나 싶다. K의 분노는 정확히 이 간극의 기나긴 터울 사이에 놓여있다. 그녀는 왜 이 설명불가능한, 비합리적 간극이 이토록 우리들의 노력과 역사를 기만하는가에 대해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일기에서 그녀는 "객관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향해 말하고 싶다며 일종의 경고의 신호를 보내고 있다. 아마도 그것은 어떤 명확히 분간되는 일군의 사람들을 향한 것은 아니다. K의 분노 가득찬 응시는 익명의 대상을 향해있다. 그것은 필시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주류적 담론' 그 자체를 향한 시선이 아닌가? 그렇다면 그것은 이 경우에서만큼은 역사-담론 그 자체를 향한 것이다. "또 하루의 비극이 추가되었다."라는 전제. 그리고 "그래서 좀 더 열심히, 잘 살아야겠다. 정말 정말 강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라는 다짐.
오이디푸스는 스스로에게 통렬하게 분통을 터뜨렸고, 안티고네는 아버지-세계의 담론 그 자체에 대해 체념하며 비극을 담담하게 수용하는 자세로서 대응했다. K는 안티고네적 자세를 수용하고 있는것이 아닌가 싶다. K다운 선택이다. 그녀는 "사람들"을 지칭하며 분노하고 있지만, 그것이 인간을 향한 분노가 아니라는 점에서, 그리고 자신을 비극 속의 동어반복적으로 다짐 그 자체를 다짐하는 말들을 되풀이하는 '말하는' 주체로 자임한다는 점에서, 간극을 인지하면서도 그것의 도래를 전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오늘날 끈질기게 버티며 그 공간에 남아있는 03학번다운 모습을 느끼게 한다. 올해 겨우 남게된 십여명의 03학번들이 졸업하여 궁엘 가거나 학생XX의 마지막 해를 보내고 있는데 그들은 모두 독하디 독한 타입들이다. 정말 끈질기게 악으로 계속 버티다보면 독한 마음만 남는다.
예전에 나와 K는 종로2가 뎀셀브즈 3층 창가에 앉아서 스스로를 이런 식으로 논평해주며 수다를 떨었는데, 지금은 아마 내가 이렇게 직접 말해주면 화를 낼 것이다. 그땐 내가 외부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린 연애관계였고, 그녀는 내가 다시 돌아올거라고 믿고있었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니까. 그럼 나는 대체 누구한테 말하는것인가? 혼자놀기의 진수를 보이고 있는건가? 나 자신에게 말하는건가?
K의 일기를 본 그날밤, 나는 기이하리만치 긴 꿈을 꾸었다. 새벽녘, 나는 불X번의 구두굽 소리에 꿈에서 깨었는데, 그 꿈과 현실 사이의 경계 사이에 머무른채 정신없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꾸역꾸역 관물대에서 메모지를 꺼내 알아보기 힘든 글씨들로 꿈에 대해 적어두었다. 그것은 그대로, 하나도 빠짐없이 인터넷 상의 내 미니홈피와 블로그에 옮겨졌는데, 그 중 세번째 장면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나는 동생인 은교, 그리고 같은 사무실 중사 광부(굉장히 독특하고 재미있는 스타일인 그는 나보다 세 살 어린데, 나를 형대접 해준다.)와 함께 벌판 위에 있었다. 날은 어두웠고 (*모든 꿈이 그렇듯이 어둡고, 희뿌연 공기...) 모래바람이 부는 것 같았다. 그때 은교가 갑자기 우리가 서있는 반대편의 낡은 아파트 건물을 향해 돌맹이를 마구 던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분노에 가득차 있었다. 왜 그런가.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멍청하게 구경만 하고 있었다. (대개 꿈에서 자아는 구경꾼에 머물러있다.) 그러다가 갑자기 유리창이 깨졌던가? 내가 깜짝 놀라기 무섭게 그 아파트에서 아랍인들이 튀어나왔다. 그곳은 아랍인들의 집단 거주 아파트였던 것이다. 그들이 무시무시하게 기관총을 난사하기 무섭게 나는 몸을 날려 은교의 몸을 숨겨주었다. 나는 분통해하는 은교의 화를 풀어주려 노력했다. 그네들에게도 그네들의 슬픔과 아픔이 있지 않겠느냐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은교가 왜 아랍인들을 향해 분노의 돌맹이들을 던졌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난사를 피해있다가, 나는 두 팔을 활짝 벌리며 벌판으로 나아가, 무릎을 꿇고 아랍인들을 향해 사죄했다. 내 사죄는 간곡한 것이었고, 아랍인들은 이내 난사를 그쳤다.
이 꿈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이 꿈을 그날 당일 저녁에 본 K의 일기에 대한 인상깊은 기억과 연결시키지 않을 수 없다. 왜 K가 아니라 동생이 등장했는가. 그리고 왜 동생은 하필 아랍인들을 향해 분노했는가. 아랍인들은 K의 분노가 향해진 담론체를 표상하는가? 나는 왜 간곡하게 울부짖으며 무릎을 꿇고 사죄했는가. 그리고 아랍인들은 왜 기관총을 난사했는가.
탈출구는 아마 여전히 없는 것 같다. 위X소 창밖이 아무 불빛없이 시꺼멓고, 암흑 속에 묻혀 보이지도 않는 위X 사수 녀석은 계속 혼자서 버블시스터즈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나는 대체 언제까지 저 노랠 들어줘야 하는건가. 이럴땐 착한 선배 이미지인게 좀 안타깝게 느껴진다.
* 책마을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9-09-16 09:04)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10-01-27
11:18:51
병장 정근영
맙소사, 사실 지난 달 말에 있던 두 가지의 큰 사건들(미디x법과 쌍화차 사건)을 지켜본 뒤, 책마을에서 이 주제에 대한 논의가 불가한 것을 알고(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으로 조용한 책마을의 침묵이 어색하기는 했습니다. 허허) 속으로만 삭이고 있었는데, 명교씨의 이 글에서 뒤늦게라도 간접적이나마 얘기가 나오는군요.
휴우, 어렵습니다. 단 한 번도 전선에 뛰어든 적이 없던 '하얀 얼굴의 객관론자'인 저에게, 이 글은 너무도 벅찹니다.
'나는 어느새 하얀 얼굴의 객관론자가 되어버린건 아닌지 되묻는다. 폭넓은 독서와 인문학적 지식의 향유를 누리고 있는 내 편안한 처지를 생각하니, 돌연 죄책감의 쓰나미가 밀어닥쳐온다. 이런 것을 죄스럽게 여겨서는 안된다. 이런 것은 아무런 죄가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나는 어떤 결벽증 심한 유령의 응시를 끊임없이 의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 단락을 보니 갑자기 지난 설탕 때 주간 한겨레에 시를 소개하는 란에서 읽었던 글귀가 하나 떠오르는군요. 자세히는 생각이 안 납니다만, 대략 이런 문장이었던 것 같아요.
'지독히도 잔인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아름다운 것을 노래해야 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아름다운 것을 노래하는 이유는 진정 아름다운 것들이 이 세상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므로'
저에게는 이 문장이 많은 위로가 되었는데, 과연 명교씨에게도 그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후우. 2009-08-15
20:45:52
병장 이 원
힘내요 형. (토닥토닥)
아무것도 모르고 하루를 보낸 저에게
큰 시사점을 주시는군요. 2009-08-15
20:51:40
상병 홍명교
근영/
좋은 글이네요..
그런데 제가 좋은 글 좋은 이야기, 좋은 영화로 아름다운 것들을 느끼고 있을때에도, K같은 친구들은 그런것들을 누릴 시간조차 갖지 못해요.
제가 이따금 내가 본 좋은 영화에 대해 구구절절하게 설명하며 너도 꼭 보라, 고 말하면 K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슬프게 이렇게 말하죠. "그래. 나도 지아장커의 새 영화를 너무 보고싶은데 그걸 볼 시간이 너무 없어. 오늘 저녁에도 회의가 있고, 내일 새벽엔 어딜 가야하고, 그 다음엔 대구, 그 다음엔 광주에도 가야해서..."
그러고나면 입을 꼭 다물게 되요. 그 누구보다 그런걸 느끼고 위로받고 에너지를 부여받아야할 사람들은 지금 이순간 저 앞에서 눈물을 감추면서 싸우는 K같은 친구들인데 말예요. 오늘도 침대에서 뒹구며 책만 본 나보단 그들을 위로해주고 싶은데 말예요.
이원/
고마워요. 그런데 이 글은 제가 힘들어서 위로받으려 쓴 글이 아니라, K들을 위로하고 또 그 고난을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쓴 글이에요. 아무것도 모르고 하루를 보내고 있는건 저도 마찬가지인데요() 2009-08-15
21:16:51
병장 정근영
정말로 그렇다면, 너무 슬프네요.
가끔은 당위를 말하는 자와, 그것을 실천하는 자의 간극이,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어쩌면 저는 그들을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 지도 모르겠어요. 명교씨의 글을 통해 언뜻 들여다보기만 했는데도 K라는 분이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보이는 것만 같아 가슴이 무겁습니다. 왜 누군가는 고통받아야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누군가가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다시 고통받아야 할까요.
과연 그들은 이런 고통속에서도 자신들이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있을까요. 이런 이들에게 가장 힘이 되는 건 다름아닌 자기 자신의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신념과 정신적인 안정감일진데, 언뜻봐도 불안해보이는 내면은 이들이 언제라도 움직일 수 있는 힘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 같아 걱정됩니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가장 적극적으로 실천하며 자신이 살아있는 이유를 증명하고 있는 자들이 가장 불행하다는 역설. 누가 그들을 불행하게 만듭니까.
깊어가는 여름밤에, 더위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마음이 서늘해져 옵니다.
그리고 저의 이런 반응마저도, K라는 분이 말하는 '그들'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 같아, 그것이 더욱 더 씁쓸합니다. 2009-08-15
22:22:21
상병 홍명교
그래서 책마을에서 멋있는 분들이, 제가 영화나 미술 라인에서 마주치게 되는 상상력 넘치는 분들이,
K와 같은 사람들을 도운다면, 아니 상상력의 공간을 불어넣어준다면
새로운 무엇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들의 치열함, 물리력, 새로운 체계에 대한 갈망, 갈증은 정말 상상도 못하죠.
K는 보기드물게 인문학적으로나 예술적 재능에서 정말 탁월한 선수이지만, K에겐 숨쉴 틈이 필요해요. 그리고 그 숨들을 (K는 춤추길 좋아하는데..) 춤추면서 발산할 공간이. 2009-08-16
00:43:36
상병 홍명교
저는 저녁하면 이 넘치는 상상력으로,
제가 도망쳐나오면서 마무리 짓지 못한 숙제들을 하려고 해요..
학생으로서의 복잡하고 다난했던 삶을 정리는 해야죠.
그래야 사회인의 출발을 할수있는거니까. 2009-08-16
00:44:53
병장 이 원
다들 화이팅입니다! 2009-08-16
09:08:03
병장 이재원
이런글 읽고나면 한참 먹먹해져요. 아무것도 하고 있지않고 지켜만 보고있다는것과, 왜 나는 저런 일이 일어나도 무관심한 걸까. 나도 설마 양산화되어가고 있는 일반인의 모습인가. 나는 아니면 조금 아니 뭔가 많이 부족한 인간인가. 라는 생각까지 가버려요.
하얀얼굴의 객관론자가 아니라 저는 지금 하얀얼굴의 시체 같은 기분이네요. 허허. 2009-08-16
10:14:53
병장 김예찬
바깥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TV와 인터넷으로 지켜보면서, 도저히 무엇도 할 수 없는 신분에 대해 한탄하면서도 속으로는 조금 안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2009-08-16
13:11:34
병장 김형태
이시대의 일지매나 홍길동이 나타나길 바랍니다.(그게 개인이나 단체가 되었든 간에)
속이 터지고 머리가 뜨거워집니다. 개 난장판에서 잠시 벗어난 이곳에 있는 자신이 한없이 원망스럽지만, 과연 그 속에 함께 있을 수 있을지라도 우리의 세대에서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을런지 다시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2009-08-17
08:26:51
일병 오학준
그곳에서 조금 한 발 떨어지기 위해서 이 곳에 온 저 스스로가 미워지네요... 2009-08-17
09:18:23
병장 이기범
쌍화차라니. 하핫..
입궁 전 날, 벌써 20개월 전 이야기네요. 학교 선배의 국카스텐법 위배 재판을 다녀오면서, 그리고 그곳에서 죄수복을 입고 있던 그 사람을 보면서 느꼈던 감정이 떠오릅니다. 모르겠어요 정말.
적당한 배팅과 적당한 실패,
개인적으로, 결국 나 자신은 왜 소시민적 삶을 그리게 되는건지. 2009-08-17
09:54:44
상병 이정환
제 나름의 전선에서, 올해의 승부를 끝내기 전까지 책마을에 제가 책임지지 못할 글이나 댓글은 쓰지 않기로 다짐했었는데 결국 명교 씨가 좌절시키는군요.(한숨)
지젝 말대로 그 '간극' 자체를 좁히거나 덮어버리는 것이 불가능할지라도 그것이 이 '총체적인 난국'을 타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莩쨈募 말씀을 드리면 조금이나마 힘이 되시려나요.
문제는 한국에 이 '간극'을 무력화시킬 방안을 진지하게 사유하는 왼편이들이 거의 없어 보인다는 사실이지요.
지금 어디에 서있든 그 ‘간극’과 자신이 서있는 곳에서 눈을 떼지 않고 곰곰이 생각하다 보면 할 일을 참 많이도 발견하게 됩니다. 분노와 죄책감 따위로 감정을 낭비할 겨를도 없이요.
저는 명교님이 지금 서 계신 자리에서 보다 근본적인 노선을 발굴하시길 바랄 뿐입니다... 2009-08-17
17:07:20
상병 홍명교
이정환/
미안해요. 저도 이런 글은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건 사실, 지난 며칠간 제 감정을 불같이 점령한 일기니까요...
지젝이 결국에는 그렇게 긍정적으로 말하며 애써 발리바르의 인권의 정치와 민주주의까지 어떤 대안으로서의 정치철학으로 간략하고도 어렴풋하게 제시하는 걸 알아요. 그러나 그 불가능성에 대해 말하며 비관적 어조로 말하는 맥락의 순간에서의 참담함은 잊혀지지 않고 이렇게 맥락적인 한에서만 갑자기 되살아나네요.. 우스운거죠. 그 간극의 좀비적인 특질인건가요?
마지막 문장은 정환님의 저를 향한 요청이나 제시보다는 '우리'라는 주어가 더 어울리지 않을까요. 정환님이 "제가 그러길 바랄뿐"이라고만 말하는건 제 어깨에 돌덩어리 두 개 얹어주시는것일뿐이잖아요. 흑흑.
저는 그냥 계속, 괴롭게, 갈팡질팡, 오락가락, 방황하며 걸어갈 뿐이에요. 그러나 완전히 취하진 않았죠. 2009-08-18
05:22:40
상병 홍명교
기범/
그러나 그 짐이 얼마나 소중한건지 우리는 너무 잘 알죠. 그 감정이 자기혐오와 자괴만으로 끝나선 안될꺼예요. 2009-08-18
05:23:46
상병 이정환
제 댓글의 마지막 문장은 단순한 ‘돌덩어리 두 개’가 아니라 명교님이 자신의 정체성을 근본적으로 혼란시키는 ‘자유주의자’라는 굴레를 벗기 위해 이미 스스로가 떠안고 계셨어야 할 과제입니다.
명교님이 방황하실 수 밖에 없는 상황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 방황을 하루 빨리 끝내야 한다는 절박감을 가지셨으면 합니다. 한예종 쪽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고려대같은 경우 기존 Nx/Px 구도로 범주화될 수 없는 원익님같은 新왼편이들이, 조직화하여 자신들을 재생산할 수 있는 공간을 점유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만약 명교님 주위에 독자적 노선을 개척하고 있는 新왼편이들이 없다면 감히 말하건대 일단 명교님은 그들과 함께 길을 모색해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곳이 그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구요.
제 댓글이 다소 건방져 보일 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전 이미 동지들과 함께 나름의 노선을 걷고 있습니다. 명교님께 이런 글을 드리는 것도 명교님이 단지 ‘의식있는 영화감독’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가 있기 때문이구요... 2009-08-18
08:51:40
병장 윤현상
아아, 명교씨 글을 읽다보면, 항상 스스로에 대해서 깨닫게되요. "다만 내가 들리는 미니홈피는 정해져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들은 모두 내가 한가득 부채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맙소사. 저도 명교씨와 같더군요. 저는 단순히 그들이 '친해서'라고 생각했었는데, 이 부분을 읽다가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어요. 저도, 제 친구들에게, 동지들에게 부채감을 한가득 안고있었다는걸. 명교씨의 글을 읽다보면, 제가 걸어온 길을, 또 걸어갈 길을 보는 듯 한 기분이에요. 그래서 항상 공감하게 된달까요.
주제에 대해서 논하는 일은, 마음이 너무 아파서 안하도록 할래요. 2009-08-21
16:07:47
상병 진수유
흐음.... 2009-08-24
15:21:01
이병 온건웅
cafe themselves, 오래전 연인과 함께 자주 가던 곳이에요.
이곳에서 themselves를 발견할 줄이야. 2009-09-22
12:26: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