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자유에 관하여 
 병장 이승일 05-08 03:45 | HIT : 357 




 진정한 자유


 나는 한 때 자유를 현상학적 자유와 객관적 자유로 분류하고, 인간이 자유로우려면 둘 모두가 충족되어야한다고 생각했다. <현상학적 자유>라는 말로 내가 의미한 것은 우리가 1인칭적 의식을 가진 능동적 주체로서 세상을 경험하고 그것에 반응한다는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자유롭다는 느낌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 만으로는 불충분하다고 여겼는데, 왜냐하면 나 스스로는 자유롭다고 느끼지만, 여전히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규칙이나 질서에 의해 지배받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자유롭다고 말하는 것은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객관적 자유>라는 개념이었다. 이 표현을 통해, 어떠한 질서나 법칙에 의해서도 지배받지 않는 상태를 가르키고자 했다. 나는 인간이 자유롭다고 믿었으며, 만약 그렇다면 <현상학적 자유> 와 <객관적 자유> 가 모두 확인될 수 있어야한다고 추측했다. 현상학적 자유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으므로 인간의 자유는 객관적 자유에 전적으로 달려있게 될 것이었다. 이 객관적 자유를 증명하기 위해 나는 양자역학에 관심을 기울였다. 양자역학은 세계가 근본적으로 비결정론적 이라는 것을 꽤나 강력하게 암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그러나 나는 과거에 내가 가졌던 자유에 관한 의견이 완전히 오도적이었던 것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위의 것과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 진정한 자유에 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자유는 '모든 법칙으로부터의 탈출' 이 아니다. 어떠한 존재도 질서나 법칙으로부터 벗어나있을 수 없다. 그것은 오직 無 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하나의 질서로부터 벗어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다른 질서의 지배를 받게된다.
 일상적인 예를 들어보자. 우리는 인터넷 실명제가 무언가 제약을 가하는 것이고 그것이 자유를 침해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익명성을 요구한다. 그 요구가 계속 수용 되었다고 해보자. 우리는 자유롭게 인터넷을 한다고 믿을지 모른다. 그러나 한 악플러에게 그가 1년 동안 쓴 악플을 모두 보여준다면, 그는 정말로 자유롭게 자기가 원하는 행동을 했다고 믿을까? 그가 과연 기쁨을 느낄까?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는 수치스러워 할 것이며, 괴로워할 것이다. 이는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그가 생각한 자유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이었을 테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했다면 당연히 기뻐야 할 텐데 말이다. 그가 기쁘지 않다면, 그는 정말로 원하는 대로 행동한 것이 아니다. 그는 단지 불쾌한 욕망의 노예에 불과했던 것이다. 인터넷 실명제라는 규칙으로부터 벗어난 대신 더욱 천박한 질서의 지배를 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욕망이라는 것은 인터넷 실명제와 달리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기 때문에 자신을 지배한다고 느껴지지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이 자기 자신인 듯 느끼게 된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뒤돌아보았을 때에만 자신이 정말로 그것의 노예였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다른 예를 하나 더 생각해보자. 인간 사회는 정치적 질서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였고, 결과적으로 상당히 그렇게 되었다. 그러나 정치적 질서 대신 새로운 질서와 법칙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었다. 자본의 질서가 그것이다. 우리는 갈수록 돈에 의해 평가받고 돈을 위해 삶을 헌납하고 있다. 우리는 얼마나 충실한 자본의 노예인가? 자신의 삶을 바쳐서 주인을 섬기는 노예야 말로 가장 신뢰할만한 종이 분명하지 않은가. 우리는 끊임없이 열심히 노력해야한다고 되뇌인다. 이것이 '열정' 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열정은 그 자체로서는 맹목적인 개념에 불과하다. 무엇을 위해 열정적으로 노력하는가? 그것이 정말로 자유인가? 
 이 모든 과정은 부당하게 일어난 것이 아니다. 정치적 질서로부터 벗어나고자 했을 때, 우리는 이미 다른 질서로 편입되고 있었다. 우리는 이에 대해서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결과, 가장 비인간적이고 단순하며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질서의 지배를 받게 된 것이다. 자본에 의한 피지배는 인간 사회가 자초한 일이지 결코 부당하게 일어난 일이 아니다. 이것은 "모든 질서로부터의 자유", 즉 <객관적 자유> 가 가능하다는 착각으로부터 비롯한 것이다. 우리는 벗어나는 데에만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으며, 선택하는 일에는 상대적으로 무관심했다. 전자는 불가능하고 후자야 말로 진정 중요한 일인데 말이다.

 이러한 상황은 자유를 소극적 의미로만 이해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소극적인 의미의 자유란 '~로 부터의 자유' 를 뜻한다. 우리는 어떤 법칙이나 질서가 자유를 침해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 그러나 그 탈출이 또 다른 질서와 법칙에 의한 피지배를 뜻한다는 것은 알지 못한다. 심지어 그것은 더 불쾌한 복종일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더 더러운 곳으로 탈출할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알지 못한다. 특히 젊은 나이에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자유를 사랑하는 젊은이들은 오직 '탈출' 을 자유의 전모로 생각하며 모든 권위와 규율로부터 벗어나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자유의 본질은 소극적 측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측면에 있는 것이다. 우리에겐 불쾌한 질서와 법칙으로부터 벗어나는 자유 뿐 아니라 올바르고 기쁨을 주는 질서와 법칙을 선택할 자유도 있으며, 이것이 오히려 더 본질적인 자유의 모습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거부하는 것은 더 좋은 것을 선택하기 위함이지, 단지 거부 그 자체에 목적이 있을 수는 없다. 모든 것을 거부하고 싶다면 사라지는 수밖에 없다. 
 나는 인터넷 실명제가 올바른 규율이라고 말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고 정치적 질서가 선이라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익명제에 비해, 그리고 자본의 질서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낫다는 것이다. 인터넷 실명제로부터, 그리고 정치적 질서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는 것은 어쨌거나 좋다. 그것들은 분명 불완전한 질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올바른 질서를 보지 못하고 있다면, 벗어나는 것은 오히려 더 큰 악에 속박되는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진정한 자유란 가장 완전한 질서와 법칙에 순종하는 것이다. 가장 완전한 질서와 법칙은 거짓이 아니라 진리여야 하며 슬픔이 아니라 기쁨을, 그것도 가장 큰 기쁨을 주어야한다. 가장 크고 진실한 기쁨을 누리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원하는 것이고 이 때에만 우리는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유가 순종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며 그 결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장 어리석은 욕망의 충실한 시녀가 되어 살아간다.  


 상병 조진 
 새벽 3시에 글을 쓰시다니...! 05-08   

 병장 진규언 
 잘 읽었습니다. 사실 근래에 하던 고민을 일거에 뻥, 하고 날려주시네요. 요새 이 체제안에서 소심한 '자유'를 꿈꾸다 몇번이고 부딪히는 바람에 당최 그게 다 무언가.. 하고 체념하기에 이르렀는데요. 승일님 이 글을 읽고 느낀바가 많습니다. 

" 모든 것을 거부하고 싶다면 사라지는 수밖에 없다." 
 진정으로 현 정치세태가 역겹다고 뉴스에 관련 이야기만 나오면 등을 돌리는 이가 태반입니다. 삶의 어느 분야에서건, 심지어 군대 내에서조차 (그 어떤 부류이든)결코 정치세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면, 그래서 사라질 수 없다면 적극적으로 사라지지 말아야 겠지요.. 

" 진정한 자유란 가장 완전한 질서와 법칙에 순종하는 것이다." 
 현 질서와 법칙에 순종하며 다른 질서와 법칙을 꿈꾸어 보겠습니다. 그러다 현 질서와 법칙에 완전히 순종하여 새롭게 완전한 규율을 찾지 못한다 하더라도.. 나름대로 적극적으로 살아야 겠습니다. 

 글에서 언급해주셨다시피 우리는 교과서에서 배웠습니다. ~로부터의 자유는 소극적 자유라고. 그리고 ~에의 자유가 적극적인 자유라고. 물론 외국책을 그대로 가져와서 번역상의 모호함이라고 생각도 하지만.. 교과서가 하나도 틀리지 않았음을 승일님 글에서 봅니다. 감사히 읽었습니다. 05-08   

 병장 박희원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이해하기 쉽게 풀어 써주셨네요. 

 글 전체적인 내용에 대해서 비슷한 생각이네요.. 

 어떠한 틀 안에서 그 안에서 자유하는것이야 말로 진정한 자유라고 생각하거든요. 
 그것을 부정하고 깨고 내 마음대로 행한다고 그것이 자유는 아니고, 정해진 틀 안에서 그것을 얼마만큼이나 자신을 위해서 사용할 수 있느냐..정도의 생각.(조금 다른가요? 덜덜) 


 좋은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05-08   

 병장 김지민 
 자유는 순종! 
 현재 페다고지를 읽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조금 더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완벽한 체제에 대한 순종! 음... 05-08   

 병장 김현동 
 동감합니다. 
 역시 객관적 자유는 불가능한 거겠죠. 05-08   

 상병 김영훈 
 예술은 '악' 인가요? 05-08   

 병장 이승일 
 지민 / 움'체제' 에 대한 순종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완벽한 체제가 세상에 어딨겠어요 ~ 
 현동 / 예, 저도 이제 그렇게 생각해요. 청하씨 말대로요. (히히) 
 영훈 / 아니요, 예술이야 말로 끊임없이 더 아름답고 우리를 기쁘게하는 질서를 찾아 헤매지 않던가요? 하지만 예술도 예술 나름이겠죠. 플럭서스 같은 사조는 자유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05-08 * 

 병장 한치영 
 음...좀 삐딱한 시선이지만... 
 자신이 저지른 악행을 보며 기뻐하는 
( 남을 해하면서 충족되는 가학적 욕망 혹은 남들이 자신을 욕하는 것을 들을때 느끼는 피가학적인 욕망의 측면으로 보면...)사람도 있지 않을까요... 
( 음...생각해보니 정상적인 사람은 아니군요...) 
 다시 또 드는 의문...그렇다면 정상적인 사람이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되네요... 
 속해있는 사회가 요구하는 바를 따르고, 역행하여 그 질서에 물의를 일으키지않고 순응하는 사람이 정상적인 사람일까요...생각할 수록 점점 더 어렵네요... 
 음...예전에 책에서 봤던 '완벽한 구속은 완벽한 자유다'라는 글귀... 
 무겁게...고개를 끄덕여봅니다... 05-08   

 병장 이승일 
 치영 / 말씀하신 내용 중에 이미 답변이 들어있는 것 같네요. 우리가 속한 사회가 '완벽한 구속' 을 하지 못하는 한, 완벽한 자유도 주지 못하겠죠. 05-08 * 

 상병 김현진 
 매트릭스가 확실히 문제작이긴 했나 봅니다. 이런 류의 글만 보면 생각이 나는 걸 보니... 

 애초에 '자유'라는 개념 자체가 상당한 모순을 갖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렇지 않다면 자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거나요. 이 경우 자유를 굳이 이해할 필요가 없었던(없는) 상황에 문제가 있겠지요. 그 단어가 근대 이후 인간에 끼친 영향에 비해 정작 인간은 자유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면, 그건 그냥 선동을 위한 이념적 구호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 아닐까라고도 생각해 봅니다. 듣는 (힘 없는)사람 입장에선 굉장히 달콤했을테니까요. 굶주린 사람들에게 젖과 꿀의 땅을 제시하듯, 억압받는 사람들에게는 자유가 제시되었을 겁니다. 자유를 외친 사람들의 목적은 잘 모르겠고. 

 어쨌든 인간은 체제가 시키지 않은 행동들에 뭔가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나 봅니다. 05-09   

 상병 이지훈 
 글이 참 참신하네요~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웃음) 

 지금 우리가 있는곳이 조금 더 완전하다면 
 이곳에 순응하는 것도 자유스러운 것이 될까요? 
( 여기서는 완전하다는 정의가 참으로 모호하네요 ) 05-10   

 상병 안근홍 
 진정한 자유라.... 05-10   

 병장 정용기 
 그렇다면 "완벽"이란 것 부터 완성이 되어야 겠네요. 
 완벽한 규제는 사슬이 아니라 중력을 잊게하는 바람이 될 테니. 
 하지만 "완벽"이란 것이 그 어떤 분야든 과연 가능하긴 한 것일가요?(웃음) 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