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급인사 : 학생의 특권에 대하여..
병장 진규언 04-02 09:26 | HIT : 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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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학생이기를 포기했다. 자의에 비롯되었든, 타의에 이끌렸든 둘중 하나에 요인에 의하여 혹은 둘 모두에 의하여 포기했고 포기함을 당했다. 현재 우리는 학생이 아니다. 그래서 학생의 특권을 논하는 자리에 있어서 더욱 자유로울 수 있다. 사회와 일정한 거리를 놓고 동떨어진 시각을 유지한채 사회의 문제, 현실의 문제에 일희일비 하는 대신 여유롭게 관조할 수 있는 자유를 획득한 것이 우리이다. 이러한 자유의 냄새를 기반으로 학생의 특권을 조명해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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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적 의미로서의 학생(學生)
① 『학교의』 a student; a pupil. (★ 「미」에서는 중학생 이상을 stu-dent라 하고 초등학생은 pupil이라고 한다. 「영」에서는 대학생만이 student, 기타는 모두 pupil이라고 함).② 『생전에 벼슬 못 한』 a deceased scholar who lacks official rank.
어린아이도 다 알만한 1번의 광의는 설명을 생략한다. 주목하는 것은 오로지 협의적인 2번일 뿐이다. '생전에 벼슬 못한'이라고 한정하여 그 논의의 대상을 축소시키고 구체적인 것을 향해 나아가고자 한다. 벼슬의 현대적 의미를 생각해보면, 사회에서 나름대로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방법으로 공익 또는 사익에 기여하는 것을 지칭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가 아닌 군대에 있다는 것을 차치하고서라도(전역을 한다 하여도), 사회로의 진출을 꾀하고 있는 우리들로서는(琉?臼?일종의 유예기간을 갖고 있는 우리들로서는) 언제고 학생의 이름을 원하게 되어있다. 누군가가 그랬다. '입신'하여 '양명'하기 이전의 사람들은 모두가 학생이라고. 이곳에 접속하고 있음으로 시간을 보내는, 유일하게 허락된 소통의 자유를 만끽하는 사람들의 대다수가 아직은 입신하여 양명하지 못했다면.. 그래서 학생이지만 현재 제약이 따르기에 학생을 바라고만 있다면 그것의 장점에 대하여 이야기 해 봄이 옳다.
학생의 특권은 언어로 표현되는 것 이상으로 폭 넓은 영역에 자리한다. 학생 그것은 어떠한 의의를 갖는가. 이것을 고찰하기 위해서는 반대로 학생이 아닌 사람들을 비추어 보는 편이 보다 수월할 것이다. 사회구성체론에 입각하여 당당히 어엿한 1명분의 역할을 해낸다면 그는 학생의 울타리를 벗어난 '사회인'을 의미할 것이다. 학생은 단어 자체에서 내포하고 있듯이 사회인의 모든것과 비교할 시에 단연코 불완전한 존재이며 그러기에 이리저리 부딪혀 경험하고 시행착오를 겪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물질적, 정신적 성숙도를 기준으로 했을시에는 당연하거니와, 심지어 내적 안정성을 준거틀로 삼더라도 사회인의 그것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그들은 이야기하고자 하는 부류의 사람들보다 안락하고도 풍족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으며 사랑의 쟁취에 있어서도 그 속도가 빠를 수 있다. 학문의 길을 걸어가고자 하는 사람 또한 학생(*주1)들보다 진중하고도 진지한 사고의 폭을 자랑하며 묵묵히 나아가곤한다. 왜냐하면 불완전한 그들이 현재의 학제 내에서 하나의 학문체계를 가로맡을 수 있는 자유란 애초에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필자가 주제로 삼아 부 제목으로 엮은 것이 '학생의 특권'이나, 논의의 시작에 있어 그들이 가지는 유리함은 일절 발견하기 어렵다. 이쯤되면 그들은 아무런 특권을 가지지 아니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물음이 나올 법도 하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만으로는 기실 그렇기도 하거니와, 그럼에도 사회인의 장점에 일정 부분을 할애하는 이유는 내면에 뿌리깊게 자리한 자조섞인 한탄이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더 이야기해 봄이 옳다.
찌르기
성급하게 결론을 짓는다. 구태의연한 이야기일 수 있다. 학생이 소유한 유일한 것이며, 가장 큰 장점은 '가능성'에 있다. 무엇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영어로는 possibility 내지는 chance라고 한다. 하지만 이들보다 어떤면에서 훌륭한 단어가 potentialities 이다. 우리말로 의역하자면 잠재적 가능성 정도가 될수 있다. 학문의 업을 목표로 삼든, 세속적 성공을 목표로 삼든, 인류 사회에 공헌하기를 목표로 삼든간에 그들의 생각, 그것을 넘어선 행동에는 사회인보다 절대적으로 많은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어째서 그러한지 살펴보자.
우선 미래를 향한 상상과 공상에 인습적이고, 사회적인 제약이 따르지 않는다. 아직 사회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기 때문에 순수하다고 할 수도 있다. 굳이 경험론이나 인식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사람은 자신이 경험하고 인식한 범위내 그 한계를 짓고 사고할 개연성이 높다. 그러나 그들은 경험해보고 인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계를 모르며, 오로지 기존 학설과 학문 그리고 난삽한 서적들을 통하여 '간접경험'만 지속할뿐 '직접경험'에 있어서는 턱없이 모자라다. 그래서 그 끝을 알 수 없는 은하계의 수많은 별들처럼 순수할 수 있는 것이다. 한계를 알 수 없기에 잠재력이 높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두번째 자기계발에 있어서 당당할 수 있다. 일례를 들어보자. 공부하는 학생, 구도하는 학생, 책 읽는 학생.. 학생이라는 글자 앞에 붙는 수많은 어휘들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반면, 공부하는 군인, 책 읽는 군인, 프랑스어 공부하는 직장인, 책 읽는 우체부.. 어떤 의미에서는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들의 본업은 학업에 있지 않다. 이 부류의 사람들에게 자기계발은 자신의 위치에서 조금더 나은 위치로의 상승을 위한 수단일뿐,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주변인들에게, 아니면 전 사회적으로 비교적 당당한 지위를 갖고 계발에 나설 수가 있는 것이다.
크게 두 가지 요인으로 학생은 가능성의 총화에서 만큼은 전 사회인을 압도할 수 있는 것이다 (**주2) 수년전 어느 드라마에서 그랬던가 인생은 초콜렛 상자와 같아서 꺼내서 맛보기 전에는 달콤할지 쓸지, 달콤쌉싸름할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라고. 학생이 꼭 그러하다. 사회로 진출하기 전까지는 수년 후 그가 어떠한 분야에 어떠한 일을 짓고 있을 것인지 아무리 애쓰려 해도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너무 다양해서 생략하기로 한다.
돌아보기
이 시점에서 우리를 돌아보아야 한다. 과연 우리는 어떠한가. 아니 '나'는 어떠한가. 이제 철저한 성찰의 시간이 주어진다. '아'가 가진 것은 모래 한줌의 지식과 경험일뿐이요, 그 조차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더라도 아주 조그마한 자극에도 손가락 사이사이로 새나가고 말 것이다. 오히려 공부를 해 나가는데 있어 진행하면 할수록 모르는 분야는 더 넓어지고 방대해지며, 자신을 한참이고 뛰어넘는 주변인을 발견하기도 하고, 도저히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 텍스트를 접하기도 한다. 한없이 초라해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단지 '지의 추구'라는 측면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게 되고 속박당하게 된다. 오히려 초연해지면 그뿐일 수도 있다. 나와는 상관없는 길이겠거니.. 로 치부해버리면 그뿐이다. 조금더 솔직해지면 내가 모르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누군가와 대면했을때에 '부러운 마음'이 하나의 씨알만큼이라도 피어오른다면 그 고통을 외면하기 어렵다. 책마을에서 전역한 누군가가 그랬다. '나보다 나은 사람은 밤하늘의 별보다 조금 더 많다.'고.. 전적으로 옳은 이야기이다. 다른 의미로 비유를 하자면 극지방을 주 항로로 잡은 배를 들 수 있다. 선두에는 얼음을 깨기 위한 철뭉치가 자리할 것이다. 깨면서 길을 '만들어'가며 나아간다. 배가 지나가면 그뿐이다. 다시 얼음이 된다. 마치 금방 배웠던 따끈따끈한 지식이 얼어붙어 다시금 얼음장 같이 차가운 지식으로 변모하는 과정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압도하는 지식과 경험을 외면하고 자신만의 길을 숭상하는 편이 옳을까. 자신이 가진 지식과 경험이 일천하다고 하여 입을 다물어 침묵해야 옳을까. 전적으로 틀렸다. 그 이유는 주변을 돌아보고, 위와 아래를 둘러보면 확연하게 드러난다. 이미 언급하였듯이 학생은 무한한 특권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특권 의식조차 싹트기도 한다. 세상에는.. 이 소박한 학생의 특권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밤하늘의 별보다는 한참 더 많을 듯하다. 오히려 온전하게 내 것으로 가진 사람을 찾는 것이 힘들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 이 나라에서 대학교육을 받을 수 있는 인원은 정해져 있다.(***주3) 그중에서도 당대 최고의 교수님의 강의를 직접 들을 수 있는 소위말하는 명문대에서 수학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학생 수는 그보다 훨씬더 적을 것이다. 학문적 인프라가 잘 구축되어 있는 학풍에서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자유를 지닌 학생 또한 적을 것이다. 이룬 업적이 탁월하여 명망한 교수와 학문적 열정이 남다른 학생이 '강의'를 통해서 만나 진솔하고도 진중한 토론의 장을 이룰 수 있게 허락된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대학에서 강의를 들을 자격을 부여받은 사람은 일순간의 아는 분야에 대해서만큼은, 자신이 아는 한도 내에서 만이라도 전적으로 믿어야 하고 입을 놀려야 한다. 꼭 그러하다.
주위를 둘러본다. 학문의 길, 학문이 아니더라도 배움의 길을 나아감에 있어 간과하면 안될 두 부류가 있다. 우선 삶에 지쳐 도저히 공부에 집중할 수 없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있다. 대표적인 예를 들면 원고 마감 기한에 쫓기는 글쓰는 이들이 그러할 것이며, 직장 생활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하여 상사의 머리를 붙잡고 동료, 후배들을 부여잡고 일에 매진하는 사회인들이 그러할 것이다. 요새는 퍽이나 살벌한 사회가 되다보니 후자의 예를 든 사람들조차 휴식할 시간을 쪼개어 자기계발에 힘쓰기도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본업이 아니다. 언제든지 이직을 가능케 하는 보다 유연한 노동시장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우는 것을, 몸에 난 두드러기 마냥 꺼리는 것은 아니지만(오히려 반기는 편이지만) 그래도 아닌것은 아닌 것이다. 이들은 학업에 대한 열의보다는 생존에 대한 열의가 한참은 더 강하기에 '본업'을 그것으로 삼는 사람들보다야 집중할 수 없을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두번째로 배움에 목숨을 걸고, 학문에 목숨을 걸었던 사람들을 주목하고 언제든지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기실 우리가 마주하는 책 1권은 과거의 누적된 지식 체계를 적게는 수백 페이지 많게는 수천페이지까지의 출판물로 집약해놓은 것이다. 이 지식은 어디에서 왔는가 ? 구태여 곰브리치 세계사의 한 페이지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은 동굴 벽화에서 부터 시작하여 인류는 지난날의 지식에 자신의 지식을 조금씩 더함으로써 성장해 왔다.(*주4) 이토록 영겁의 세월을 거쳐 이룩해낸 산물이 그것이다. 그것과 마주하는 본인의 자세가 어찌 중요한가는 미루어 짐작가능하다.
그러한 것이다. 우리가 배우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앞선 부류의 사람들의 배움에 대한 열망(그러나 실천할 여력이 모자라는)을 담보로 하겠다는 말이다. 두번째의 사람들이 이룩해놓은 업적에 누를 끼치는것이 두려워, 진 일보한 지식의 체계를 구축하고자 하는 것이다. 학생의 어깨는 무겁다. 가슴속에는 열정이 가득하나 그것을 찬란히 빛내줄 배움에 대한 정진이 결여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을 기만해서는 안된다. 혹은 배움에 대한 열정조차 없는 사람또한 기만해서는 안된다. 그들의 없는 열망조차도 기만하는 행위일 수 있는 것이니까 그렇다. 배우고자 하는 것은 그런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짊어지고 묵묵히 걸어간다는 행위이며, 개인별로 지식의 양적 증가를 논하기에 앞서 이 자세를 먼저 이야기 해야 하는 것이다.
나아가기
학생의 특권은 미약하게나마 언급했으며, 그것을 사용해야 한다는 당위성 또한 억지스럽게 연결시켜 보았다. 주어진 권리를 마음껏 누리는 것은 죄악이 될 수 없다. 오히려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있음에도 취하지 않는편이, 그 취할 여력이 없는 사람들을 한없이 기만하여 초라하게 만드는 행위라고 앞서도 이야기한바 있다. 지금의 우리를 예시로 든다 하여도 이 논리에는 변함이 없다. 한날 한시에 인트라넷 사이트에 접속하여 글을 읽을 수 있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사람은 분명 소수일 것이다. 업무에 치여, 혹은 상황이 허락하지 않아 이러한 소통의 공간이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도 못한채 묵묵히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이 대다수이다. 그들의 열망 또한 우리는 함께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학생보다 우리들이 어떠한 의미에서는 더 무거운 존재들이다. 그러기에 더욱 치열고도 엄정한 성찰이 요구된다.
인문과학(왜 그 자체로도 소중한 인문학이 과학의 이름을 빌려야 하는지.. 의문이지만)을 하는 사람들은 그 나름대로, 사회과학, 자연과학을 짓는 사람들은 그 나름대로 책무를 다해야 한다. 이 사회에서 학문의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세속적 목표를 위하는 사람 또한 그 나름대로 소중하며, 개인의 영달을 위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다만 쉽지 않은 구도의 자세만큼은 언제나 학생의 그것을 유지해야 한다고 믿는다. 학생증을 가지고 있고, 직업군이 학생으로 분류되고 길가던 행인에게 '학생'으로 불려지기를 반기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자세란 언제 어디서든 학생의 특권을 마음껏 누리겠다는 것이 되어야 한다. 타인보다 나은 가능성을 단 하나라도 발견하고 인지하고 그것을 공고히 여겨 한치앞을 모르는 세상의 등불로 삼아야 한다.
이렇게 보다 진지한 고민의 과정을 거친 뒤라야 우리는 학생을 바란다고 이야기할 당위성을 부여받을 수 있다. 그 당위성은 스스로가 창출해낸 것일수도 있고, 권위있는 누군가에 기대어 허락받은 것일수도 있다. 누구에게서 왔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래도 사회의, 세계의 일정 부분을 가로 맡아 자신의 업적을 이룩하고자 한다면 널리 정당성을 구해야 함이 옳은 것이다. 자연과학, 사회과학, 인문과학의 어느 분야에서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어떠한 길을 걸어가든지, 자신의 시행착오를 이야기 해야함이 옳으며, 매 순간 지식과 경험의 양적 질적 증가(혹은 불가피한 감소)를 기록해 나가야 한다. 가까운 주변을 포함한 모든이들의 열망(내적인 열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물질적 경제적 지원을 모두 포함한다) 을 담보로 하고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기대를 저버려서는 안되는 것이다. 영겁의 세월동안 이루어진 학문 체계를 찰나에 다 알고자 하는 것은 지독한 오만이며, 그 시도조차 불가능하다. 다만 지금의 내가 1년전, 1개월전의 나와 다르고, 내일과 1년뒤의 내가 지금과 다르다는 것만을 증명해 보이면 그뿐이다.
돌아오기
아직은 학생조차 되지 못한다. 학생시장에서 우리는 자발적으로(혹은 비 자발적으로) 실업을 선택하였다. 그러므로 학생보다 더 나은 가능성이 있는것이 아닌가 하고 자문해본다. 맞는 이야기이자 틀린 이야기이기도 하다. 맞는다면, 장차 학생이 다시될 사람들이라면 그러할 것이고, 바로 사회로의 진출을 꾀는 사람들에게는 아닐 것이다. 그래도 중요한 것은 날카롭게 갈리워진 학생다운 자세를 언제나 유지하고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이성과 실천. 그것뿐이다. 나에게는 정확히 5개월 남은 이곳생활에서 항상 유지해야할 마음가짐이며, 일과중 유일하게 허락된 소통의 공간인 이곳에서 잊지 말아야할 책무인 것이다. 몇 개월후면 학교로 돌아가 학생이기를 기쁘게 여길테지만 지금을 잊어버리는 것이 두려워 이곳에 적어내리는 것이다. '소통'을 빙자하여 공해를 양산해내는 진짜 의도는, '나'에게 하는 이야기라는 것에 있다. 타인에게 읽혀지기보다 자신과의 진솔한 약속 내지는 처절한 다짐으로 비춰지는 것 또한 환영한다. 내가 걸어갈 길을 앞서 지나간 사람들을 기만하지 않기 위하여, 내가 바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 누군가를 기만하지 않기 위하여..
* 주1 : 학문의 길을 걷는 사람은 크게 세 부류가 있다. 아직 학부생이며, (장차 대학원에 진학하여) 그 학문을 업으로 하겠다는 사람. 현재 대학원생으로서 공부하는 사람. 이미 미약하나마 업을 이룩하여 교수가 된 사람. 이들이 그것이다. 학문을 함에 있어 이 셋은 솥발처럼 솥을 받치는 형세를 보일 수 있다. 오로지 학문의 길에 얼마나 진지한 태도로 임하느냐에 따라 서로를 보완해줄 수 있고, 학문에 대한 순수한 열정만은 학부생, 대학원생 또한 뒤쳐지지 않을 수 있기에 그렇다. 다만, 마지막에 언급한 부류들이 제약없이 보다 자유로울 수 있다. 분명 아집과 독선때문에 자신이 이룩한 학문에 스스로로 갇히는 우를 범할 수 있어도, '배움'이라는 목적을 향한 그 자유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러하다는 것이다.
** 주2 : 아직 피지 않은 꽃봉오리 인 것이다. 아직 여물지 않은 벼이삭인 것이다.(오히려 새싹에 가깝다.) 이리 부딪히고 저리 부딪히는 어린아이와도 같은 것이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지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시는 아직 쓰여지지 않았다.' 류시화 씨가 지었다고 세간의 오해가 팽배한.. 시에서는, 현존하는 아름다움을 모두 포함하고 그를 뛰어넘을 가능성을 노래 한다. 이 시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은 학생이요, 반주를 하는것이 사회인이다.
*** 주3 : 공부를 하는데 있어서 대학교육이 굳이 필요한지,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감에 있어서 대학교육이 도움을 줄 수 있을지는 논란의 대상이다. 그나마 대학이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방대한 분야에 대한 막대한 양의 서적을 보유한 대학의 도서관과 저명한 교수진에서 찾는바, 각종 논문과 전문서적을 많이 보유한 대학과 훌륭한 교수를 모신 대학이(그리하여 철저한 토론과 논쟁이 강의실을 메우는) 좋은 대학일 수 있으며, 온갖 양서들을 도구로 삼아 학생과 교수가 '강의'라는 형태로 만나야 한다.
**** 주4 : 물론 논란거리이다. 고대부터 시작하여 현대로 이어지는 인류의 역사가 발전의 과정인지 퇴보의 과정인지 말이다. 다만, 여기에서는 세월이 지나며 축적하여 쌓임으로써 증가되는 그 지식의 양만을 초점으로 삼아 이야기를 엮는다. 그 질이 점점 우수해졌는가는 의문으로 남고 풀어야할 과제이지만.
반성
당초 마음먹었던 것은 이토록 난삽하고도 장황한 글이 아니라, '저 진급했습니다 축하해주세요..'라는 말 정도였다. 계급장을 다 채우고 새로운 시작을 하는 시점에서, 앞으로는 이리저리 새로운 방식의 글쓰기를 해보고자 다짐한다. 애초에 이글은 보다 진지하게 완결된 형태의 논설문처럼 써보고자 했는데 채워넣을 지식과 경험들이 너무나도 부족하여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 글이 '전역인사'가 아님을 진심으로 다행스럽게 여긴다. 고작 남들 다 하는 병장으로서 '진급인사'일뿐이니, 아직 유예기간이 있음을 행복하게 여긴다. 언젠가는 형식이 온전하여 내용이 풍부한 채로 글을 마무리 지을수 있겠지.. 수년이 걸릴지 수십년이 걸릴지 모르는 일이지만..
4 월에 진급하신분들 모두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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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장 신재곤
저도 이번에 진급했습니다. 축하드려요. 04-02
병장 박상호
선리플 후감상. 진급 축하드립니다. 같은 9월이셨군요.
허나 저는 지난달에 진급을 하였고. 석달 늦게 나가겠군요. 후덜덜 04-02
병장 오영호
진급 축하드립니다.
저도 이번에 진급했어요. 04-02
병장 이영준
정신과 시간의 방에 들어오신걸 환영합니다- 04-02
병장 김현동
선진급축하 후감상. 축하합니다(빵긋). 04-02
병장 김지민
치열하게 책을 읽고 공부를 많이 하셨음이 드러나는 글입니다.
군대에 있는 모든 이들이, 유예 학생일 수는 없겠습니다만, 실질적으로 대부분의 군인이 '휴학'중인 학생이란 점을 생각할 때, 많은 이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글이 틀림없네요. 저 역시 그러하구요. 규언님은 글이나 행동이나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치열함을 고민하게 하는 포스가 있습니다. 저는 복받은 사람이야요
진급 축하드리고, 앞으로도 더욱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배울게 많거든요. 학생인지라. 크크. 04-02
상병 정연성
진급 축하드립니다. 저도 이번에 진급하였습니다(기쁜웃음) 04-02
상병 정민수
잘 읽었습니다.(웃음) 긴 글이었어요..(땀땀)
학생이란 단어를 사전에서 직접 찾아본 적이 없는지라
학생의 사전적 의미를 처음 눈으로 확인했네요.
역시나 학생이라는 말은 학교에 귀속될 수 밖에 없나봅니다.
하지만 배움을 추구하는 이들이라면 그들 또한 학생에 범주에 속하지 않을까요?
그것이 학문이 아닌 기술일지라도...
진규언 병장님께서 말씀하신 학생의 가능성이라는 말이 가슴에 와닫네요.
지금 혼란스럽고 무엇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고 우왕좌왕대는 저도
지금 이렇게 책마을이라는 공간에 얼토당토않는 댓글을 남기는 저도
가능성을 찾아가는 저의 모습이겠죠.
저도 길지않은 시간이 지나면 다시 학생이 될테니까요.
음... 04-02
상병 정민수
아.. 한가지 빼먹었군요(웃음)
진급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한분이 또있군요(웃음) 김지민 병장님 진급 축하드려요~ 04-02
상병 이현우
진급하신거 축하드립니다(웃음) 04-02
상병 김민준
저도 진급했는데.. 회원 정보를 어떻게 수정해야 할지. 그래서 아직 상병.. (우울) 04-02
병장 이건룡
진급들 축하드립니다. 진규언님도 김지민님도요(제가 더 오래 있겠네요..겨우 한달 먼저 달았지만..) 04-02
병장 신재곤
김민준//로그아웃 옆에, 정보수정 누르면 수정 가능합니다. 04-02
일병 임승관
나도 이제 리플을 달아봐야겠다는 생각에 글을 5번은 읽은거 같다.
리플부터 시작하면 언젠가 글을 쓰는 그 날이 오리라는 믿음을 갖고...
하지만 5번 정도를 읽어도 리플을 달 수 없는 내 자신에게 다시한번 최선을 다하자는 주문을 걸면서 오늘은 여기까지 쓰려고 한다.
진규언 병장님, 김지민 병장님!! 진급 축하드립니다.(웃음) 04-02
일병 황기봉
시립대 세무학과 04학번 맞으시죠?(笑.. 좀 유명하시더군요.)
학교에서 잘 안보이신다 했더니 벌써 병장이시군요.. 진급 축하드려요. 04-02
병장 이시인
규언아!!
잘 읽었다. 그리고 우리 병장단거 자축하자꾸나.
그래, 난 학생을 거의 다 마친 사람이지만 로맨티스트 규언이는 아직 학교 갈 날이 꽤 남았잖니. 난 벌써 일도 해보고 취업생각도 많이 하는지라, 규언이가 말하는 '잠재력이 무한한 학생'의 부류에는 속하지 않는것 같다. 무한하지는 않지만 제한되어있는 내 능력의 끝을 찾는 중?? (웃음) 전역하고 꼭 보자! 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