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착각
병장 임정우 03-27 09:02 | HIT : 223
서늘한 보송거림이 귓가를 기분좋게 간지르는 어느 밤 풍경을 본다. 고개를 들면 듬성거리는 별들과 달이 보인다. 별들은 제각각 미묘하게 다른 빛깔과 강도를 뽐낸다. 달은 푸근해지는 노란 빛깔로 가슴을 편안하게 해준다. 정면에는 고개숙인 가로등이 달 빛을 흉내내려 안간힘을 쓰고 있고 잣나무와 소나무, 밤나무 뒤편으로 작은 산이 우뚝 솟아있다. 시야가 가능한 곳을 살펴보면 돌도 있고 잡풀도 있고 그 사이에선 풀벌레 울음소리가 불쑥 튀어나온다.
이 모든 것들의 서로 완벽히 다르다. 별들만 해도 어떤 별은 이미 죽어있다. 달은 언제나 둥글지만 태양빛을 반사하는 면에 따라 매번 다른 얼굴을 보인다. 어느것 하나 진실이 없다. 거기에 가로등 나무, 돌, 풀, 작은 벌레와 그들의 울음소리 먼 배경의 산까지도 이 모든것은 서로 아무런 관계가 없다. 모두 다른 성질의 존재들이다. 이 풍경에는 진실도 어울림도 없어 보인다. 하지만 나의 시야에 허락되는 순간 하나의 완벽한 풍경이 된다.
무생물인 바위 틈의 작은 풀은 나를 안도하게 만들고 달빛과 별들의 아웅거림은 나를 뿌듯하게 만든다. 하늘과 지상의 광경은 하나의 장엄한 풍경으로 전설적인 아름다움을 뽐낸다. 모든 것은 서로 너무나 달라서 마치 하나처럼 느껴지는 착각같았다.
이런 착각이야말로 내가 살면서 느낀 가장 자연스러운 자연스러움이었다. 지구가 만들어지기 전에 이미 존재했던 것들, 지금은 존재하지 않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것들, 지구가 만든것들, 인간이 만든 모든 것들이 나의 사고속에서 섞이어 하나가 된다. 나 자신은 수많은 타자들과 버무려져 자연속으로 빨려들어가고 공평히 분배되어 세상 속에 흡수되어진다. 세상을 흡수한 모든 존재들은 너와 나를 이루고 자연을 이루고 결국 거짓과 진실로 토해진다.
병장 이승일
정말 아름다운 글이군요. 우리가 보는 풍경은 그렇게 왜곡된 진실의 복합체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아름답지요... 03-27 *
병장 임정우
승일님이 말씀하신 완전한 영원성은 불완전성과 유한 뿐아니라 착각마저 아우를수 있기에 진정 아름다운것 같습니다. 다만 저는 아직까지도 저의 착각과 완전한 영원성의 다른점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런 저의 어리석음 역시 세상의 이루는 풍경에 일부겠지요. 03-27
병장 안수빈
승일님같이 멋지게 표현할 수는 없지만,
정말 좋은글이네. 멋져. 03-27
병장 이승일
정우 / 예,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저 역시 항상 착각속에 살아가니까요. 중요한 것은 아무리 지독한 착각이라 할지라도 진실들로 이루어져있다는 것입니다. 무지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요. 우리가 정말 큰 착각에 빠져있을 때 조차도 우리는 단지 무언가를 알고 있을 따름입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은 착각조차 가질 수가 없지요. 착각은 정말 아름다운 것이 분명합니다! 03-27 *
병장 임정우
회의하는 자들도 회의하는 자신만은 회의할수 없다는 것과 비슷하군요.(웃음) 03-27
상병 김병완
진실이든 착각이든 우리에게 아름다울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을까요. 존재의 본질은 본질이 아니라 오히려 그 현상에 있는 것 아닐까 봅니다. 그나저나 아름다운 글이군요 (웃음) 03-27
병장 이승현
착각을 달리 말해 우리의 의식성이라고도 할 수 있겠군요.
아름다운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03-27
병장 이승일
정우 / 예, 그러나 정우씨가 생각하시는 것만큼 비슷하지는 않답니다.. 그렇게 생각하셨다면 저의 의도를 오해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 오해 역시 저에 대한 이해로 이루어져있음을, 정우씨는 무언가 알기 때문에 오해한 것임을 저는 또한 고백할 수밖에 없군요. 03-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