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쯔와 안나 
 병장 임정우 01-19 16:16 | HIT : 107 



 한가롭고 평화로운 주말에 나는 하릴없이 뒹굴고 침낭을 몸에 돌돌 말아보기도 하고 부침개마냥 앞뒤로 몸을 뒤적거리고 하다가, 지겨워하는 행동에도 지쳐버려 결국 리모콘을 꺼내어 들게 되었다. 원래 나는 TV에 관심이 없는 편이라 가능하면 독서라도 하면서 떼우면 좋으련만, 어딘가 출처를 알수없는 기묘한 나른함에 온몸이 어금니에 박힌 찰떡마냥 침상에 끈적거려하며 달라 붙어서, 내가 하는것이란건 고작 어그적거리며 몸을 비트는것뿐이었기에 독서는 사치스러운 행동이었고, 그냥 TV나 보자라는 생각이 들어 버린 것이다. 우선은 전원을 키고 이리저리 채널을 옮겨 보았다. 지나간 운동경기라던가 쇼프로, 가쉽거리를 소개해주는 프로가 거진 이었는데, 개인적으로 흥미를 끌만한 프로가 도저히 나오질않아 70개 가량 되는 채널을 끊임없이 돌려보다가 거의 지쳐가는 무렵에, 무언가 나의 흥미를 끌만한 프로가 나오고 있었다. 그 프로는 <동물농장>이었는데, 언제 분인지는 모르나 재방이 확실하였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개'가 나와서 뛰댕기길래 -마땅히 볼것도 없고해서- 리모콘을 내려두곤 브라운관에 시선을 고정하였다.

 내가 보기 시작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나왔던 동물들은 그냥 무신경하게 지나칠만한 것들이었다. 내가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스스로의 존재만으로 사람을 살린 개"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였는데. 막상 듣고보니 약간 의아해 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보통 개라하면 뛰어난 후각과 청각, 충직하고 영리한 행동으로 주인을 구하는 경우라 하여야 자연스러운데, 스스로의 존재만으로 사람을 구했다니 이처럼 신기한게 또 있을까? 물론 많다. 근데 이것도 신기하다. 그리고 막상 전말을 알게 된다면 더욱 그러하리라. 

 브라운관은 서서히 가구나 책상따위가 놓여있는 방을 클로즈업하기 시작한다. 곧 바닥에 내동댕이 쳐져있는 뼈가 앙상한 어떤 소녀의 비참한 몰골이 나타나고 그 옆에서 안나라 불리우는 잘생긴 검은개가 혀를 낼름거리고 있다. 그 여자아이의 이름은 지나쯔(일본) 근육이 경직되고 뼈가 잘 부러져 평생 누워있어야하는 괴이한 희귀병에 걸린 10살가량의 여자아이였다. 그 희귀병은 스스로의 천직에 만족해하며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여 한 여자아이의 몸을 무너뜨리고, 이어 그의 친지와 지인들의 희망을 부스러뜨린채 구석에서 낄낄 쪼개고 있었다. 물론 아직 그에게도 갈길은 허다하였고, 좀더 기대감을 옥죄어 뭉개버려야 직성이 풀릴것임인데, 그것은 혀를 낼름대는 검은 개로인해 일종의 실패라고 할만한 경우가 되어 버렸다. 부모님의 불행으로 생명을 존속했던 지나쯔는 이제 안나의 검은 눈망울에 기대 살아가기로 결심하게 된것이다. 

 지나쯔의 어릴적 화면이 흘러나온다. 강아지적의 안나가 재롱을 떤다. 지나쯔는 부들거리는 작은 뼈다귀를 지탱하여 안나에게 다가간다. 그렇게 세월과 희귀병과 안나가 뒤섞여 현재로 향해간다. 브라운관은 조금더 지난 그들을 내비친다. 지나쯔난 안나와 함께 이어달리기, 주인과 개가 함께 뛰어 진행하는, 대회에 나가게 된다. 그둘은 함께 뛴다. 붉은 잇몸을 장미처럼 드러낸 지나쯔와,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무구함으로 운명을 씹어 발긴 안나. 그네둘은 대체 어떤 인연이기에 이토록 짙은 감동을 제조할수가 있었던 걸까. 대체 이 감동의 실체가 무어란 말인가. 개와 인간의 우정인가. 아니면 주사위의 구름이 탄생시킨 그럴듯한 신파극인가. 아니면 좀더 밀도깊은 절망이 오기전 마지막으로 불타오른 희망의 양초심인가. 나의 빌어먹을 의구심의 답이야 어찌되었던, 한가지는 이미 알겠다. 세상의 모든 절망이 한마리의 검은 개에게 죽임을 당했음을. 

 하늘에선 불확실한 불행이 솔개처럼 지상으로 내리 꼿친다. 사실 절망이나 고통 행복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들이 하늘로부터 부지불식간에, 눈깜박거리는 순간에만 떨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인식은 가장 키큰 나무를 찾는 번개와도 같다. 그래서 우리가 잠깐 눈을 감았던 순간에, 우리 앞으로 떨어진 수만가지 상황이 우리를 간지럽히고 때로 겁탈한다 할지라도 고개를 숙여서는 안된다. 끊임없이 달라붙는 사소한 상황들을 떨구어 내라. 그리고 고개를 하늘로 꼿꼿히 들라. 그리하면 인식은 번개처럼 우리를 강타하리라. 그것은 지나쯔와 안나처럼. 인연이란 이름을 들고 나타나게 될것이다.  


 상병 조윤호 
.. 인연이란 이름을 들고 나타나게 될것이다. 

 네. 01-19   

 병장 제갈승 
 요즘 사람들이 애완동물을 기르려고 하는 것도 지나쯔와 안나처럼 안나가 앞뒤 재지않는 사랑 
- 이런 것이 진짜 사랑이 아니겠습니까. 존재만으로 힘이 되는 - 을 주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근자에 들어 안나 보다 못한 인간이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도 자유롭지 못하죠. 
 이런 이야기에 고개 숙이는 것은, 맘 속 한 구석에 부끄러움이 슬며시 밀려와서 일 것입니다. 01-22   

 상병 이지훈 
 우리 짬타이거도 가끔 희망을 주는것 같아요 
 그녀석도 이곳에서 잘 생활하고 있는데.. 핫팩도 없이.. 이런 추운 겨울날.. 
 나도 꼿꼿히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드는 인연?! 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