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사라마구 - 눈먼 자들의 도시 
 병장 김지민 06-04 17:26 | HIT : 372 





 분노하지 말자. 몇 번이나, 가슴을 울리는 불쾌한 두근두근함에 대하여 나는 그렇게 다짐해야 했다. 이 책을 보는 동안 나는 불쾌함에 사로 잡혔고, 인간 본연의 절망감에 대하여, 깜깜한 어둠을 맞이할 수 있었고, 속된 말로 재수가 없었으며, 단순하게는 기분이 나빴고, 짜증이 났다. 더욱이 열 받는 것은 이러한 가운데에서도, 나의 쾌락적인 욕망은 책을 놓지 못하게 했고, 이것이 나를 그들과 다를 바 없게 만들었기에, 나는 나 스스로에 대해서도 분개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한계상황에 갇힌 그들을 절실히 이해했고, 오히려 그들보다 나쁜 상상을 머금었으며, 훨씬 더 타락한 인간이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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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계상황은 갑작스럽게 닥쳐왔다. 원인도 모른다. 다만, 중요한 것은, 사거리에서 한 남자가 갑작스레 실명했고, 그것이 기하급수적으로 전염되어 도시의 모든 이들, (한 사람만 제외하고)을 감염 시켰다는 것이다. 그렇게  '눈먼 자들의 도시'는 탄생했다. 소설의 제목이 이야기 하듯이.

 필자는 사실 이러한 '페스트'적 구조에 대해서 전혀 예상치 못하고 있었다. 도시하나가 하나의 전염병으로 인해 폐허로 변하고, 이런 폐허 속에서 한계상황 안에 또 다른 정상적 세계를 그려나간다는 실존주의적 구조가 이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도 적용 될 줄은 모르고 있었다. 때문에 나는 여태껏 내가 좋아해왔던 이러한 구조, '페스트'라던가, '새벽의 저주' 라던가, '28일후'와 같은 대재앙적 사건의 경과에 갑작스럽게 부딪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전염병의 정체가, '페스트'나 '좀비화'와 같은 직접적이고 공포스러운 재앙과는 달리 다만 '눈이 머는' 전염병이기 때문이었다. 흔히들, 사람들은 경솔한 생각 속에서, 사람들이 점차 눈이 먼다고 해서 큰일이야 나겠어. 하는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나 또한 이에 대해서 그다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 소설은 아주 개연성 있게 사건을 그려낸다. 그리고 그것은 응당 그러한 사건들이며, 현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독자들 스스로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소설을 읽기 전에 어째서 '눈먼 자들의 도시'가 그 자체로 재앙인가를 떠올려 보면, 다만 눈먼 장님들이 조용히 거리를 시체처럼 의욕 없이 돌아다니?모습 정도로 밖에는 생각 되지 않는다. 빛없는 세상에서 이들은 절망하겠지. 정도의 상상. 하지만 
 현실은 달라요.

 이 주제 사라마구가 제시하는 '눈 먼 자들의 도시'가 더욱더 절망적인 까닭은, 이러한 '실명' 전염병이, 점진적으로 확산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눈 먼자들의 도시 라는 제목을 보고 상상할 수 있는 것은 그 과정의 재앙이 아닌 그 결말의 재앙이지만, 전염병이 점진적으로 뻗어나가는 상황을 살펴보면 그 과정이 오히려 결말보다도 훨씬 더 참혹하고 악하다는 것을 금세 깨달을 수 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점진적으로 병이 뻗어 나간다는 것은. 세력의 양분화를 의미한다. 아직 눈이 멀지 않은 자, 와 눈이 멀은 자. 눈이 멀었다는 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기본적인 기득권에서 한 단계 멀어졌다는 셈이 된다. 또한 정부 역시 이러한 기득권을 다시금 어떤 수단으로 보장해 주려 하지 않고, 다만 '기득권을 잃은 자들의 모임'을 만들어 주는 식으로 (즉 격리 수용으로) 해서 해결하려 한다. 이것은 아직 전염되지 않은 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지만, 다른 식으로 보면, 기득권을 잃은 자들을 그들 스스로 평등한 위치에 있게 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들 눈먼 자들은 격리 수용소에서 그들만의 사회를 만들게 되고, 이는 하나의 제한세계, 이를테면 세계의 모방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더군다나, 여기서 이러한 세력의 양분화는 '실명'자체로서의 한계상황 뿐만 아니라, 실명하지 않은 세력이 독점하는 기득권으로 인한 한계상황까지도 만들어 준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냐고? 한층 더 가까운 현실의 모사이다. 어째서 그러한가는 굳이 이야기 하지 않아도 되리라 생각한다.

 이들의 모습은 과연 세계의 모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군다나 여기에는 역사까지도 모사되어 있다. 맨처음 인간이 서로 평등하였을 때, 그리고 조직화가 필요 하여 대표를 선출하게 되었을 때. 제한 된 식량을 위해 인간 서로간의 대립이 발생하였을 때, 우리는 격리 수용소 안에 있는 눈 먼자들의 상황으로 하여금 인류의 상황을 되짚어 볼 수 있다. 가장 압권인 것은, 병동이 수용 인원을 넘어서게 되면서, 좌병동 우병동으로 나뉘어 벌어지게 되는 해프닝이다. 여기서 좌병동은 깡패 장님들이 그 병동을 장악하게 되는데, 이 깡패가 가진 '총'의 등장은, 그야말로 우리가 역사 속에서 배웠듯이, 부유한 기득권층의 등장을 의미하는 것이다. 힘을 가진 자는 이윽고 착취를 행하게 되고, 선량한 눈먼 자들은 그들의 온당한 식량을 배급받기 위하여, 갖은 모욕을 겪게 된다. 심지어 강간까지도.

 이제 독자들은 불쾌한 정체에 대해서 파악할 수 있다. 같은 인간 끼리 물고 물리는 관계가 된, 이기적인 수용소 안의 사람들에게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최소한 필자는 그러하였다. 나는 이 한계상황에서 내가 눈이 보이는 여자였다면, 이러이러 했겠다 하는 상상을 하였고, 상상 속에서 내가 가진 기득권을 이용하려 했다. 그것은 설령 인도주의적 발상에서 벗어나지 않았다고 해도, 엄연한 이기심 중에 하나였고, 아무리 한계상황이라는 핑계를 대 보았자, 인간적인 모습에서 먼 무언가였다.

 나는 강간을 하고 착취를 일삼는 더러운 도적들 보스의 성기를 가위로 잘라버리는 상상을 했으며, 피의 복수를 원했다. 또 한편으로는 성적 욕구 해소를 원하는 도적들의 편이 되어 어느샌가 그들의 심정을 조금은 헤아려 보기도 하였으며, 강간의 장면에서는 내 자신의 성기가 발기하는 것에 대해 불쾌해 하기도 하였다. 내가, 그들과 다를 것은 무엇인가. 나는 눈이 멀어있는가? 나는 눈을 뜨고 있는가?

 불행하게도, 이런 한계상황은 수용소를 벗어나도 계속된다. 이미 도시는 거대한 한계상황을 이루고 있으며, 그들은 수용소를 벗어나도 결국 큰 틀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거국적인 실명사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하여 자문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소설 속에서 일어나는 이 일련의 사건들의 계기가 되는 아주 간단한 사건(그러나 간단하지만은 않은). '실명'은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하는가? 실명으로서 인간들이 잃은 것은 무엇인가? 단순한 시각인가? 혹은, 그들의 세계 자체인가?

 답은 아마도 후자에 가까울 것이다. 주제 사라마구는 실명한 사람들 가운데, 유일무이하게 실명하지 않은 한 사람을 등장인물로 배치시킴으로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주고 있다. 이렇게 실명하지 않은 인물은 소설 플롯을 이끌어 나가는데에도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인물이 없다면, 플롯이 얼마나 더디게 흘렀을지 상상해 보라!, 또한, 소설 속 인물들에게는 물론 독자들 까지도 희망을 잃었을 것이다.) 실명한 사람들과의 비교를 통하여 정반합의 결론을 이끌어 내고 있다. 눈이 멀든 멀지 않든 무슨 상관인가. 어차피 우리는 모두 죽은 사람들인데. 소설의 후반부에 가서 이끌어 내는 이 회의적 추론은, 실존주의에 대한 질문을 다시 한번 되새김질 하게끔 하는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은 비록, 이러한 회의적인 추론과는 반대로, 무척 희망적이고 밝은 모습으로 마무리 되고 있지만, 오히려 여기에 아이러니함이 있다는 것을 독자들은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한 가지 페스트의 대사를 떠올려 보자.
'그러나 페스트가 다 뭔가요. 인생 그 뿐이죠.'

 그리고 '눈먼 자들의 도시'의 마지막 부분의 대사 역시 읊조려 보자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눈은 멀었지만 본다는 건가.'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 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우리의 도시는 눈이 멀어있지 않은가. 하고 자문하게 해보는 대사가 아닐 수 없다. 때문에, 결말은 회의적이지도, 희망적이지도 않다. 다만 '인생 그 뿐이죠' 라고 사실을 덤덤하게 그려낼 뿐이다. 여자가 도시를 내려 보았을 때, 변함없이 그곳에 도시가 있었듯이.





* 병장 김청하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7-06-07 11:35)  


 병장 박수영 
 가지로. 가지로. 가지로. (왜 코멘트는 10글자인것일까!) 06-04   

 상병 조중래 
 아 정말 잘 읽었습니다. 저도 지금 [눈먼 자들의 도시] 다읽고 
[ 눈뜬 자들의 도시] 읽고 있습니다. 이글을 읽으면서 '그렇지' 하는 혼잣말이 
 나오는군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06-05   

 병장 우석제 
 주제 사라마구에게 한마디 -엔터 좀 치지 말입니다.- 06-05   

 상병 김대윤 
 석제// 그 부분에 대해서는 동감합니다. 엔터 좀 쳐주셨으면 합니다만.. 
 그 점을 즐기시는 분들도 많을 거라는 생각에... 
 저는 우리가 눈이 먼 것 치고는 너무 인간적인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06-05   

 병장 김지민 
 대윤 / 맞아요. 눈이 멀든 멀지 않든, 관계없이 인간적이니까요. 06-05   

 병장 김지민 
 참, 이 책 재밌게도 번역자가 '정영목'씨더군요. 핫핫 06-05   

 병장 진규언 
 꼼꼼히 읽고, 군말없이 <가지로> 추천합니다. 06-05   

 일병 박상욱 
 가지로오오오오오오오오. 06-05   

 상병 김윤호 
 와 저도 눈 먼 자들의 도시와 눈뜬 자들의 도시 합본팩(...)을 샀는데 이거 펴보고 일단 깜짝 놀란 건 문단 나눔이 없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문단. 
 저도 서서히 읽어봐야 겠네요. 좋은 글 잘 봤습니다. 06-05   

 일병 김준호 
 공포라는 감정을 조직하는 무언가에 대해 인간이 갖는 자세와 인간의 연대를 돌이켜볼 수 있었던 좋은 책인 것 같아요. 다만 관찰자인 동시에 구원자의 역할을 하는 눈 뜬 자가 이끄는 연대체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어 눈 먼 자의 상징적 의미가 퇴색(?)된 듯한 느낌을 받아서 많이 아쉬웠고, 맘에 걸렸습니다. 그 도시에서 살아남은 다른 눈 먼 자들의 과정과 이야기는 서술상의 한계로만 여기고 받아들이기엔 너무도 중요한 부분을 함축하고 있을 듯 해서요. 06-05   

 병장 김지민 
 준호 / 완벽하게 눈 먼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에서 이 책의 한계가 있다는 말씀 굉장히 동감합니다. 와우, 날카로운 지적이시네요. 
 저는 개인적으로 깡패 집단이 병동을 장악하는 모습이 좀더 '외부 조건'이 아닌 '내부 조건'으로 작용했으면 하는 바램을 가졌었어요. 말하자면, 갑작스레 들어온 외부세력중 일부가 이런 착취를 일삼는 것이 아니라. 한계상황 속에서 평등했던 누군가가 돌변한다는 설정이었으면 아쉬움이 남더군요. 06-05   

 일병 정영목 
 김지민 님// 그 '정영목'씨, 꽤 왕성한 활동을 하는 번역가로 알고 있습니다. (땀) 06-05   

 상병 송현준 
 이책 있는데 너무어려워서 보질 않고있네요. 사라마구 책 들은 대화 하는게 누가 말하는지 헷갈려서 어렵다는. 06-06   

 병장 노의찬 
 이 책 보다가 눈이 멀뻔했습니다. 06-06   

 병장 배진호 
 흠 읽어보고 싶어졌네요.. 유감스럽게도 말이죠 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