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탐방] 책마을의 아이콘 '매크로 동석'님과의 대화입니다! 중  
병장 김준호   2008-10-27 13:38:03, 조회: 224, 추천:0 

상병 이우중 
  저랑 취향이 비슷할 것 같은, 하지만 그걸 글로 풀어내는능력은 단연 저보다 한 수 위인 것 같은 동석님. 


(20) 언젠가의 댓글 중에 '문학이 죽거나 말거나 문인들은 끊임없이 나온다'라고 하셨는데 문학이 죽었다고 생각하시나요? 만약 그렇다면 그 이유는요? 아니라고 해도 그 이유는요?(따지는거 아니에요. 하하) 

질문이 무시무시합니다. 허허. 칼을 갈아 오신건가요.

문학지나 신문, 잡지의 문학란을 보면, 요새 한국영화가 맨날 위기라고 징징대는것처럼, 문학의 위기를 말하거나 문학이 죽었다고 칭얼대는 글이 너무 많습니다. 여전히 오늘도 새 책을 뽑아내고, 좋은 문인들은 여전히 나오는데도 말이죠. 

물론 실제로 일년에 책한권도 안 읽는 사람이 대부분일 정도인데, 문학이라고 배부를리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건 어쩌면 시대의 변화에 발 맞추지 못한 문학계의 잘못도 있는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엠피삼 파일이 탄생하고, 초고속 인터넷망이 보편화 되면서 유독 고사상태에 빠져버린 한국 음반시장처럼 말입니다. 책이 안팔린다고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끊임없이 글을 읽습니다. 오히려 활자에 질식해버릴정도로 전과는 비교도 안될정도로 글을 많이 읽지요. 인터넷 말입니다. 매일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정보와 지식과 가쉽거리를 꾸역꾸역 집어다 넣으면서 지쳐버린 사람들은 어쩌면 그래서 책을 더 안읽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래도 책은 팔립니다. 여전히 읽는 사람들은 읽습니다. 수십만권 팔리는 베스트 셀러도 나옵니다. 불행히 한국 문학은 그중에 안보이는군요. 자기계발서까진 그러려니 하겠는데, 맙소사 귀여니 소설도 저렇게나 팔리고, 일본소설은 저렇게 팔리는데도 말입니다. 추천도서가 되거나, 문광부(요새 명칭을 모르겠습니다) 지원 도서라도 되지 않으면  만권 팔리기도 어렵다는군요. 유사 이래로, 전업작가는 언제나 손을 꼽았지만, 그나마 없는 전업작가들 마저 씨가 말라버리진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만권 팔려도 한국문학으로는 베스트 셀러인데, 그 인세만으로는 가족까지 부양하며 생활하긴 힘들겁니다. (만권 팔린 인세를 2천만원 받는것도 많이 받는거라고 알고 있어요)

중견 시인인 박남철 시인은 자신의 시집에서 하이퍼텍스트를 시도합니다. 텍스트를 초월했다기 보단, 하이퍼 텍스트 문서 양식을 사용했다는 것이 가깝겠지요. 그러니까 자신의 시집에 홈페이지를 링크 해놓았습니다. 겨우 자기 홈페이지 홍보를 했다는것도 아닙니다. 시의 이미지나 감상, 혹은 또 하나의 심상을 넷상에 링크 해놓은 것입니다. 조악하긴 하지만, 시대의 변화에 발 맞추려는 좋은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젊은 작가들의 경우엔 없지 않았지만, 황석영 작가가 네이버에 글을 연재한 것은 일종의 현상입니다. 반발도 우려도 적잖았을겁니다. 그러나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인터넷의 시대가 왔다는 것을, 그러나 책의 시대가 끝장나버렸다고는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직 가상세계가 불안하며, 지나치게 가벼워서 멀미를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게다가 아날로그적 인간들은 최소한 아직까지는, 디스플레이어에서 나오는 활자보단, 물리적으로 만질수 있는 아날로그 활자를 더 좋아합니다. 우리가 굳이 문서를 출력해서 읽는 까닭도 그 때문이겠지요. 사람들은 소유하고 싶어합니다. 허망하게 사라져버릴수도, 변할수도 있는 가상의 활자보단, 감촉이 느껴지고 냄새도 나는 종이위에 활자를 말이지요. 그래서 네이버에서 황석영의 글을 읽던 사람들을 그의 글을 소유하기 위해 책을 사거나, 도서관에서 빌렸겠지요. 혹은 모니터나, PDA같은 조그마한 디스플레이어를 보고 있자니 눈이 빠질 것 같아서 책을 산 사람도 있을겁니다. 

또 원소스 멀티유즈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이은주의 유작으로 유명한 <주홍글씨>는 김영하의 단편소설 두개를 원작으로 했고, <밀양>은 얼마전 타개한 소설가 이청준의 <벌레 이야기>를 원작으로 했습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건 모두 아실테고,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은 김훈의 <칼의 노래>와 김탁환의 <불멸>을 원작으로 만들어졌지요. 최근 <즐거운 나의 도시>, 드라마화 되어, 안 그래도 많이 팔렸던 책 더 많이 팔렸습니다. <아내가 결혼했다>는 이미 단물이 빠진 느낌이지만, 충격적인 소재인지라 영화가 개봉하면 다시 이슈가 될 수도 있을겁니다. <바람의 화원>은 이미 영화화가 끝나 개봉을 기다리고 있고, 동명의 드라마는 이미 방송중입니다. 이미 베스트셀러였던 책은 문근영 사진이 새겨진 띠지를 두르고 불티나게 팔리고 있습니다. 다 아는 소리 왜 또 지껄이냐고 한다면, 요새 시나리오 작가들에겐 소설책 내는게 유행이라고 해서 말입니다. 영화화 될 확률도 높을뿐더러, 시나리오 고료 보다야 영화화 판권이 더 비싼 까닭입니다. 뭐 그런것과 상관없이 아무도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하지만, 문학이 죽어간다고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여러 방법으로 문학을 소비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겁니다. 전.

문학은 결코 죽지 않았습니다. 죽는소리를 하는건,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진짜로 죽었다면, 아무 소리도 못하겠죠. 한국 문학계를 대표할만한 황석영 작가가 나섰습니다. 젊은 독자들과의 소통이었든, 새로운 판로를 찾은것이든간에 어쨌거나 그는 그의 위치에서는 쉽지 않은 시도를 했습니다. 위치도 있고 권위도 있는 사람이 발벗고 나섰다면, 누군가 이제 그를 밟고 올라서, 새로운 하이퍼텍스트 문학을 개척하는게 예의일 것 같습니다. 

아주 논지가 널뛰기를 합니다. 어쨌거나 정리해보자면, 전(前) 시대의 문학은 골병에 들었습니다만, 죽는 소리 하는걸 봐서 금방 죽을 것 같진 않습니다. 그리고 문학을 꼭 인쇄된 책만으로 소비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서울 시민 상당수가 일년에 책 한권도 안 읽는 시대라고 해도, 하다못해 영화나 드라마로 문학을 소비합니다. 문학은 살아있습니다. 다만, 낯선 공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산소 호흡기에 의존하고 있군요. 새로운 공기에 적응해야 할때입니다. 


(21) 요즘 자그마하게나마 이슈가 되고 있는 '유모차 부대'에 대한 동석님의 의견이 궁금합니다.(이런거 안되려나요) 

저 마침 그 즈음에 잠깐 나가있었는데, 유모차 부대에 대한 글을 썼었답니다. 허허. 

이건 극비사항인데 사실, 유모차 부대는 사실 외계에서 지구정복을 기도하기 위해 인간 사이로 잡입시킨 스파이들입니다. 지구인과 위장 결혼-위장 출산을 통해 한국 뿐만 아니라 전 지구를 파괴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지요. 그들의 유모차는 사실 평범해보이지만, 모든 생물의 눈을 멀게하는 플라즈마 광선을 발사할수 있는 ‘햇빛 가리개’가 장착되어있습니다. 그들이 낳은 아기도 사실은 그냥 아기가 아니라 자살 폭탄테러를 하도록 프로그래밍된 폭탄 로봇이지요. 그들이 얼마나 대담한지, 그들은 단체로 거리에서 접선을 가지며 인터넷상에 아지트를 (공개)카페로 위장해 만들어 놓았더군요. 그들의 우두머리는 경찰차를 맨몸으로 막아설정도로 완력과 내구력이 강한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는 실로 단순히 정권에 반대 시위를 하는 평범한 시민들이 아니라 전 인류와 지구에 치명적인 위협이겠지요.

그래서 입건 한거 맞죠? 아니에요?


(22) '소라 아오이'를 부대찌개선배에게 추천해 줬는데설탕빨면서 뭘 보고 왔는지 영 별로랍니다. 아니 아직도 그녀를모른다는 게 안타까워서 가르쳐 줬는데 이거야 원 적반하장도... 그 이야기를 들은모두가 '그럴 리가 없다. 다른 인물의 것을 본 것이 아니냐'라고 말하는데 본인은 틀림없답니다. 물론 이 선배의 심미안이 형편없는 것 같긴 하지만 그녀는 그것마저 포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미모라고 생각합니다. 그를 구제해 줄 수 있는 그녀의 대표작은 무엇이 있을까요? 참, 그리고 혹시Take it easy를 '타케 이테아시'라고 읽은 그것, 알고 계시나요? 그럼 그 사람 진짜 이름이 뭐죠? 

3번은 무시하셔도 좋아요. 
  
가장 무시하고 싶지 않은 질문이네요. 허허. 제 친구가 아오이 유우와 소라 아오이를 혼동하는 바람에 여자 후배들과의 대화에서 대망신을 당한 일화가 떠오릅니다. (강조하건데, 친구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전 소라 아오이의 작품을 몇 편보지 못했을뿐더러,(겨우 열 다섯편 정도?) 제목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제목을 기억하는게 가능한가요? 소라 아오이가 옷을 벗고 웃고 울며 소리를 지르는데, 제목이나 보고 있으란 말입니까? (웃음)

소라 아오이는 대단한 매력의 소유자인것만은 틀림없습니다. 프루나 검색창 한가득 쌓인 야동의 범람속에서도 빼놓지 않고 꼭 언급되는 소라 아오이의 이름은 명불허전이지요. 갑자기 나른하고 지루한 주말 오후인데도 힘이 불끈 솟는군요. 그러나 제가 한창 안방의 컴퓨터 소리 줄여가며 청소년 보호프로그램 지워가면서 300K ADSL로 다운받을 땐, 분코가 대세였던 시대였습니다. 이제는 향수를 넘어 고전이 되어버린 그 이름 말입니다. 불행히도 전 분코의 음성을 듣지 못했습니다. 

집이 비는 날은 드물었고, 혹 집이 비는날에는 동생이 있고, 그러다가 동생도 없는 날이면, 이상하게도 어머니는 느려터진 다운속도로 겨우 다운 받을때쯤 초인종을 누르셨단 말입니다. 이제 막 분코의 얼굴이 맺히려고 하는데 말입니다. 저의 청소년기는 어두웠습니다. (야동 못봐서 어두웠다는 소리같군요)

그런 욕구불만들 덕에 약간 비뚤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좋은점도 있더군요. 전 아직까지 백양인지 오양인지 구경도 못해봤습니다. 훨씬 나중에 자취를 하게 되었을땐 그런걸 찾아다니기엔 뭔가 쑥스럽기도 했고, 또 백지영과 오현경에게 미안해져서 아예 잊어버리기로 했죠. 

그러거나 말거나 그 시절의 제게 만일 분코는 물론이고 소라 아오이까지 단번에 모니터에 맺히게 할수 있다는 빛보다 빠른 광랜과 서라운드 기능이 있는 실감 음향의 헤드셋과 절대 방음이 되는 제 방에 컴퓨터가 있었더라면, 제 삶은 조금 나아졌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농담)

소라 아오이를 느끼지 못한 그분은 아마 취향이 서양쪽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물론 소라 아오이는 동서고금을 초월하는 매력의 소유자지만, ‘서양’ 노루표의 노골적이고 거친 면은 좀 없지 않나 싶어요. 그분께 권하고 싶은 작품의 이름은 <동물의 세계>  (이건 아니잖아 이건 아니잖아, 추억의 개그) 혹은 소라 아오이 라는 이름에서, [야오이]를 기대하신건 아닐까요. 취향이 아예 그쪽일지도 모르니, 물을 추천하시는건 어떨까요? (이건 괜히 더했다싶은)

아, 다케 이테아시, 디씨모 싸이트에서 이야기는 들은 것 같은데 이...이런, 
(만천하에 드러나는 오덕후 이동슥, 농담이고 전 디씨 별로 안 좋아해요. 흐흐)
정말, 궁금해지네요. 혹시 그 후로 얻은 정보 있으시면, 공유하죠? (흐흐)


일병 박영준 
  책마을 로우개그 댓글의 일인자이자 살아있는 심심이 

(23) 실시간 댓글을 달 수 있는 능력은 레이드보스급 miner들을 피하는 궁극의 알탭스킬입니까? 아니면 그냥 짬이 되는것입니까? 

요새는 실시간 댓글을 달만한 여건이 못되지만, 특별한일이 없을땐, 적당히 알탭 스킬 사용하면 충분합니다. 일단 보스급 몹들이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어그로가 제게 쏠리는 상황이 올때는 돌연 화장실 청소하기 스킬을 사용하면 완벽하게 어그로를 피할수 있습니다. 거기다, 일과 후엔 제가 숙식하는 방과 인트라넷 망 컴퓨터가 붙어있기에 마음껏 쓰는거지요. 물론 평소에 우호도를 높여놓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플레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은 강철같은 뻔뻔함 스킬 사용. 그런데 요새는 그마저도 쉽지 않습니다. 슬슬 줄일때가 온 모양이에요.

(24) 요즘 책마을에 책이야기보다는 일상적인 이야기가 많이 올라오는데, 거기에 대한 동슥님의 생각은 어떠신지? 

이런, 질문시기에 너무 동떨어진 답변이라 죄송합니다. 다행히 그 뒤로 균형이 잡혔지요. 전 책마을의 자정작용을 믿습니다. 책마을은 그 믿음에 불같은 좋은글로 화답하더군요. 허허. 일상이야기도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어쨌거나 우리는 외로운 사람들이고 서로의 일상사를 나누는 영역도 필요하니까요. 다만 하나의 목소리로 쏠리는 상황이 너무 오래 지속되는건 조금 우려됩니다. 이를테면, 모두가 각개전투를 하듯 사방에서 끝없는 논쟁만 벌인다거나, 모두 각자의 논리만 풀어놓는다거나 하나같이 책읽었던 이야기만 하거나 한다면, 일상이야기만 계속 되는것만큼이나 부정적인 결과를 낫진 않을지요. 물론, 오래 지속되었을때 말입니다. 

(25) 언제 저녁을 드시는지..? 만약 저녁을 드신 후 만나보고 싶은 책마을人이 있다면? 그리고 그 이유는?  

저는 내년 설 지나면 마지막 나들이를 갔다가 계룡대학으로 전학가게 됩니다. 그리고 며칠 뒤 아예 집에 가는 거지요.  만나고 싶은 책마을 주민은 너무 많아서 손에 꼽기 어려울 듯한데, 여건이 되고, 주민분들도 의향만 있다면, 지역순회 정모라도 하고 싶습니다. 

김원택님과는 술 한잔 하며, 민중가요 한 소절 배우며 철거민 이야기에 밤을 샐지도 모르겠고, 정영목님에게는 머신즈 그린웨이의 영화 판권과 와우에서 아템을 받아내기 위한 로비(?)와 함께 밤을 샐지도 모르겠습니다. “잘생긴” 홍명교님에게는 놀라운 인문학적 소양과 영화에 대한 지식을, 조현식님과는 문학에 대한 썰과 수원갈비에 대한 예찬을, 윤영돈님과는 영화에 대한 썰, 이우중님과는 소라 아오이에 대한 썰-과연 누가 우리의 여왕인가-, 전승원님과는 끝없는 소재의 세계에 대한 썰, 강수식님과는 음주가 인간의 진화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고찰-왜 인간은 술을 마시면 개가 되는가-, 이현승님에게는 제가 구상하고 있는 밴드에 들어오지 않겠냐는 제의와 함께 전우주적 히키고모리 현상에 대한 썰, 주해성님에게는 로스팅한 커피한잔을 얻어마시며 커피에 대한 썰, 고동기님에게는 어떻게 하면 책을 그렇게 맛있게 읽을수 있는가에 대한 썰, 홍석기 님과는 과연 이동슥은 B급일까 C급일까에 대한 논쟁과 더불어 샐린저는 언제쯤 다음 글을 공개할것인가에 대한 썰, 이동열님과는 과연 이씨인데다 이름에 ‘동’자가 들어가는 사람들은 왜 이렇게 완벽한것인가에 대한 푸념, 문두환님과는 반듯한 지식인의 기품을 배우려면 무슨 학원에 등록해야 되는가에 대한 고찰, 요새는 잘 안뵈는 홍성기님과는 그 아름다운 문장이 어디서 나오는것인지에 대한 고찰 등 셀 수없이 많은 분들을 만날 이유가 넘칩니다. 지금 생각나는데로 끄적여봐도 이정도인데, 누구 몇을 꼽는건 정말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유도 겨우 이런 말장난은 아니겠지요. 그리고 각자에게 생활인으로서의 고려 없이 과한 기대를 하는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두발을 땅에 딛고 사는 사람이고, 내가 상상하는 것은 그저 환상에 가까운것이라는 걸 주지하려고 노력도 하니까요.

추신 : 영준님과는 오크가 인간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봤으면 합니다. (농담)


상병 박민욱 
  사실 누군지 잘 모릅니다. 위의 댓글을 종합해 봤을 때, 책마을의 부촌장이자 로우개그(?)와 블랙코미디 스킬을 두루두루 익히고 있는 모두에게 사랑 받는 존재? 정도가 될 듯 싶습니다. (※참여동기 : 가입한지 2틀 됐는데, 난데 없이 자유게시판이 닫히는 바람에 자기소개를 못써서 이렇게 참여하게 됐습니다. 언제쯤 자유게시판을 이용가능 할련지..?) 

(26) 자기가 지키고자 하는 소신이나 흔들리지 않게 잡아주는 기준은? 

민욱님, 아직 계시나요? 똑 똑. 
제 소신은... 음, 잠은 여덟시간은 자야한다? 사실 그거 말고는 딱히 소신이라고 부를만한 것은 없는 것 같아요. 그걸 흔들리지 않게 잡아주는 기준이라면, 여덟시간정도 안채우면 성격부터 이상해지는 제 자신의 모습이라고 할까요?

그 의미가 아니라면, 제가 기준으로 삼는 것은 부모님과 은사 몇분과 절친한 친구들과 선배, 후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모습, 그러니까 세상은 좁아서 아무리 외딴곳이라도 나와 결코 무관하지 않은 사람들일테니 가능한한 모두를 아는 사람인것처럼 대하고, 항상 염치를 가진체로 살자 뭐 그정도 될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막상 염치는 별로 없어요. 허허. 밥 얻어먹고, 술 얻어먹고, 하룻밤 신세 진후에, 아침까지 꼭 꼭 얻어먹고 다니는걸 보면, 히히.

(27) 가장 인상깊게 읽었던 책 2가지 

이런 질문이 참 어렵긴 하네요. 2가지라니 생각나는데로 말해볼께요. 지금 생각나는 건 <인간실격>, <카프카 단편집>
<인간 실격>은 잠깐 만났던 국문학도 누님이 제게 보낸 책인데, 그 뒤로 연락이 뜸해진걸 보니, 이동슥이라는 인간은 인간실격이라고 판정하신 것 같습니다. 아마 계속 기억에 남을거에요. 허허.

<카프카 단편집>중에 <굴>이라는 소설을 읽을때마다 항상 중간에 막히는데, 번역이 이상한건지, 애초의 문체가 광포한건지 구분이 안되요. 그런것과 상관없이 그저 꾸역꾸역 읽으려고 해도 무슨 불량섹터가 있는 데이터마냥, 끝내 읽어낼수 없었어요. 

(28) 내 삶에 빅뱅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신선한 충격은?? 

신선한 충격이라면, 음, 아무래도 첫 경험들이 생각납니다. 전 첫 야동을 본게 다소 늦은 편인 중1~중2 과도기 시절이었는데, 친구집에서 친구 삼촌이 복제해놓은 미국 노루표 였습니다. 친구들끼리 게임방 갔다가 라면 먹으러 가서 봤는데, 그런데 그게 어찌나 하드코어 하던지 입맛이 정말 뚝 떨어지더군요. 지금 생각해보면, 남-여 양성의 범주에서 벗어난 이들의 사랑과 일부일처제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몸소 몸으로 표현하는 한때의 남-녀들, 인류애를 넘어서 동물들과 사랑에 빠지는 어느 고귀한 여인에 대한 일대기였습니다. 그런데 그게 첫 야동이라니, 그전까지의 저와 그 후의 저는 아마 다른 인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건 단순히 야동을 본게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본것이나 마찬가지지요.

(전부 개소리고, 야동 함부로 놔두지 맙시다. 조카와 동생들을 병들게 합니다.)
  


병장 김선익 
  저는 아주 평범합니다. 서울 위성도시출신(수원)이고 아버지는 작은 유치원 원장이십니다. 중류권 대학의 경영학과 학생이며, 장래희망은 회계사입니다. 
얼마 전에 책을 읽는데 이런 내용이 있더군요. 
'신림동 고시촌에서 회계사 시험을위해 용왕매진하고 있는 혜미의 남자친구는, 영철이나 영수라고 부르면 어울릴 평범하고 지루한 스타일이었다. 서울 위성도시 출신, 중학교 평교사인 아버지, 중류권 대학의 경영학과 학생, 그동안 혜미에게 주워들은 정보를 종합해보면 대충 그랬다. 뻔하지 않은가. 대학 캠퍼스, 영어회화학원, 젊은애들이 많이 모이는 이 도시의 거리 어디에서도 흔히 부딪칠 수 있는 남학생이었다. 제 나름대로 젊은 날의 꿈을 걸어보겠다고 궁리해낸 것이 공인회계사 자격시험이라니 안쓰럽기까지 했다.' 
정이현 - 낭만적 사랑과 사회 中 
위험한 독서를 해버렸습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이미지에 사로잡힌 적은 있어도 이렇게 책주인공과 작가에 집착하게 되버린 적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29) '엄마 말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 저는 여성의 능력이 남성보다 훨씬 더 뛰어나다고 굳게 믿고있는 사람 중 한명입니다. 여작가분들의 책과 시선을 통해서 남자들을 보고있노라면 가슴이 찔려오곤 합니다. 이런 제가 저 글을 어떻게 받아넘겨야만 좋을지요? 

저는 성별과 능력이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에, 단지 후천적 환경의 차이일뿐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어쨌거나 이 사회에서 여성으로 사회화 된 사람들의 감성을 더 신뢰하는것도 사실입니다. (고로 일정 부분 선익님의 논지에 동의한다는 말입니다.) 

글쎄, 제가 그 소설을 읽어보지 못해 전체적인 맥락은 모르겠지만, 작가의 의도가 특정계층을 싸잡아 비판하려는게 아니라는건 알겠습니다. 단지 ‘낭만적’ 사회의 몰개성적 인물 군상의 하나로 그런 유형을 묘사한것이겠지요. (그리고 보면 정이현은 ‘영수’라는 이름과 무슨 사연이 있는걸까요?) 그러거나 말거나 여간 신경이 쓰이는건 누구라도 어쩔수 없긴 할겁니다. 밑엣 질문에서 언급하신 그 대학선배 같은 인물형 묘사가 제겐 그런 경우겠지요. ' 난 그 사람 싫어. 난 너희들의 모든 걸 꿰뚫고 있다는 듯이 말한다 말이야. 아닌 척하면서 자꾸 정답을 내려' 

저 같은 경우엔 선익님의 예리한 질문을 어떻게 넘겨야할까요?

저라면 이럴겁니다. (아닌척 하지 않고, 제가 생각하는 정답을 내리겠습니다. 그러나 전 정답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전 모든걸 꿰뚫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만, 어느정도는 꿰뚫을수도 있을꺼라고 생각하는걸 보니, 역시 오만한 모양입니다.)

변명이 길었군요, 다시 저라면 이럴겁니다. 누군가 절 싫어한다고 해서 저를 바꿔놓을수는 없는 일입니다. 누가 자신의 어떤면을 싫어할때마다 바꿔놓을수도 없을뿐더러 혹 가능하다고 해도 그것은 이미 자신의 삶이 아니겠지요. 그러나 한편으론 그런 듣기 싫은 소리라도 귀 기울여 들어야 할겁니다. 저 같은 경우엔 아집과 독선을 걷어내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그리고 가끔은 자신을 송두리째 부정해보기도 해봐야 할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한 인간의 완성은 죽음으로 이뤄진다고 생각합니다. 그전까지는 만들어지는 과정이겠지요. 나이가 많든 적든 그것은 과정일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완성된 삶, 안정된 삶이라는 것은 환상일지도 모르지요. 그리고 그 과정은 그 누구도 아닌 스스로의 가슴에 귀를 기울이며 만들어가야 할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시 선익님 질문이 가장 어렵다고 일전에 말한것처럼, 휘청휘청, 제 변명에만 급급하군요.

제가 할수 있는말은 이것 뿐입니다. 가슴이 찔렸다면, 가슴이 찔린 이유는 무엇인지 스스로 한번 잘 생각해보시는게 어떨까요. 그리고 제가 생각하기에, 장래희망이란 단순히 ‘직업’만을 뜻하진 않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살고 싶으신가요? 그게 하고 싶은 직업보다 앞선 물음이어야겠지요.


(30) 저는 이동석님의 글을 한 번도 읽어보지 못했습니다.(가입한지 얼마 안 된 관계로..) 
댓글을 읽다보니 동석님의 스타일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글은 보지 못했으니제외합니다) 저한테는 동석님과 약간스타일이 비슷한 대학선배가 한 명 있습니다. 토론을 한다거나 어떤 일처리를 할 때면 어김없이 나타나 깊이있는 코멘트를 남겨줄 때도 있고, 미처 놓친 부분을 찾아내서 머리를 끄덕이게 한다거나, 분위기가 죽으면 하이개그를 날려 사람들을 사로잡곤 했죠. 특히 그냥 웃어넘기는 것처럼 하는 한마디 한마디가 여운을 남기는데, 그게 정말 일품이었죠. 저도 어려운 일이 있으면 자주 그 선배를 찾아가서 자문을 구하곤 했었습니다. 완전 빠져있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던 중 저와 그 선배를 멀어지게 한 사건이 하나 생겼습니다. 
한 여선배와의 대화 中 
' 아 역시 그 선배 대단한 것 같지 않아요? ' 
여선배 曰 ' 난 그 사람 싫어. 난 너희들의 모든 걸 꿰뚫고 있다는 듯이 말한다 말이야. 아닌 척하면서 자꾸 정답을 내려' 
평론가를 싫어하는 작가의 심정이라고 해야할까나요? 아무튼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이 여선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제 글을 읽어보지 못하셨다니 다행입니다. 겸양이 아니고, 별로 읽을만한 글이 못됩니다. 그건 제가 들인 성의가 보잘 것 없는걸 아는것일뿐, 자학하는 건 아닙니다.

앞서 질문에 버벅거렸던 건 사실 이 질문 때문일수도 있겠습니다. 전 이렇게 폐부를 찌르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거든요. 덕분에 한번 더 제 자신을 돌이켜볼수 있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멋진 선배 같군요. 아, 그 여자분 말입니다. 전 호오가 뚜렷하지 못해서인지, 뭐가 왜 싫다고 단언할수 있는 사람들을 놀랍게 생각합니다. 물론 그마저도 성급한건 아닌가 하는 의문과 함께 말이죠. 그래도, 우리 동방 형들의 라이벌이기 때문에 따블에스를 싫어한다, 이런것보단 존중받을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초반에 너무 말을 많이 한 까닭에 슬슬 힘이 달리는군요.)





병장 정영목 
  전 가볍게 가겠습니다. 

(31) 20년 이내에 한국이 파시스트 사회가 될 확률을 얼마나 높게 보시는지? 그리고 현재 그 진행 상황을 어느 정도로 판단하는지? 그 근거와 개인적인 다짐을 듣고 싶군요. 

이게 가벼운 건가요? (웃음) 저도 가볍게 가겠습니다. 

위기에 봉착하면, 보통 익숙한 방법으로 대응하더군요. 지금 닥친 경제위기가 얼마나 심각한 영향을 미칠지, 저로서는 가늠할수도 없지만, 그 정도가 어떻든간에 한때 댓글계를 평정했던, ‘경제만 살리면 된다.’ 놀이가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 되버리진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습니다. 그리고 자유주의자인 저로서는 지금 한국은, 아니 세계는 자본의 파시즘에 지배되는 사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자본주의가 아니라, 자본의 파시즘 말이에요. 

장하준 교수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대공황이 났을때 미국은 이른바 뉴딜 자본주의를 했고, 스웨덴은 조합주의를 했고, 독일 이탈리아는 파시즘을 택하며 다른 식으로 반응했다”면서, “한국사회가 어떻게 변할지 예측이 어렵다”고 하더군요. 

제가 예측을 하는건 좀 주제넘은 짓이겠지만, 그냥 제가 보는 좁은 세계를 기준으로 판단해볼께요. 개발 경제시대, 파시즘 사회에의 향수를 가진 사람들이 아직 많은데다, 냉전의 최전선이었던 까닭에 한국은 언제든 그렇게 회귀하려는 움직임이 있어왔다고 봐요. 여기에서 이야기하긴 좀 민감한 이야기인데다 다 알고 있는 예를 열거하는건 생략하지요. 

어쨌든 비정규직 문제, 농민 문제, 파업 문제 때 대중들이 약한 사람들, 서민들의 희생을 묵시적으로 종용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더 큰 문제는 그들 또한 대중의 한사람이라는걸 인정하지 않는데 있다고 봅니다. 이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구성원으로서가 아니라, 완전한 타자로 보는것이지요. 게다가 대부분은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이 없으면 무관심게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이 점차 공고해지는 것 같아요. 인터넷이든 지면이든 방송이든 언론은 기륭노조가 공중시위를 하건 몇백일을 투쟁하건 상관없이 박지성의 골 소식에 더 관심이 많더군요. 팔리기야 더 많이 팔릴테니까요. 촛불이 무관심속에 사그라드는 시기와 방송 삼사와 각종 포탈에서 베이징 올림픽 말고는 세상의 어떤것도 가치가 없다는 듯 하루종일 떠드는 시기가 맞물리는것도 그렇고요. 물론 모든게 언론탓은 아닙니다만, 언론이 제기능을 못하는 부분이 있다는 겁니다. 이건 일종의 증후가 아닌가 싶어요.

누군가 그러더군요. 이 정부가 들어선건 어쩌면, 기회라고, 우리가 할일이 많아진것이라고. 촛불이 뜨거울때가 불과 몇 개월전인데 지금은 흔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해결된건 없어보입니다. 뉴스는 전세계적 경제위기에 대한 내용뿐입니다. 십년전처럼, 사회는 경제논리로 재편되겠지요. 그동안의 금융자본주의에 대한 근원적 반성을 하며 억제를 할지, 서민들을 더 몰아붙이는 식으로 갈지는 두고 볼일입니다. 반드시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볼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때쯤이면, 이미 사바세계의 어린양일테니, 걸리적거릴 것도 없고, 마음껏 뛰어들어야지요.


(32) 베토벤 바이러스, '강 Maestro'의 리더쉽에 대한 당신의 입장은? 

처음엔, 뭐 저런 인간이 다 있나 싶었습니다. 김명민이 모델로 삼은 지휘자는 ‘카라얀’이라더군요. 확실히 김명민의 연기톤은 그런 문제적 인간을 연기하기에 알맞은 것 같아요. 뭐 그런것과 상관없이 전 문근영과 광주 동향인데다, 문근영의 모교를 들락거리며 매점에서 문근영에게 먹을걸 사준적도 있는 남자(사줬다기 보단 강제로 쥐어주었죠), 즉 “문근영주의자”인지라, <바람의 화원>으로 건너갔습니다. 장근석의 허세를 감당할 길이 없었어요. (사실 그래서 강마에의 매력을 많이 보지 못했어요. 그리고 바람의 화원의 열렬한 시청자도 아니에요.)

강마에는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인간임에는 틀림없지만, 그가 예술가가 아니라 사장님이거나 선생님이라고 가정하면 정말이지 최악의 리더였을꺼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가 지휘자로서는 능력 좋고, 감성도 뛰어나고, 집단에 따라 자신의 지휘노선을 수정하거나 인격적으로도 나아지는 모습에는 박수를 보내지만요, 부대찌개집에서 그런 사람을 만난다는건 좀 끔찍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제가 그냥 부대찌개집같은건 구경도 못해본 사람이었다고 가정하면, 이해할수 있을 것도 같은데 역시 감정이입을 그런쪽으로 해버리니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아 씁쓸하군요,)

달리 생각해보겠습니다. 강마에식의 리더쉽의 강점은 무엇보다도 노선을 수정할수 있는 진취성이 아닐까 싶어요. (다 보진 않아서 추측성입니다) 채찍질로 프로들을 자극해서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순 있겠지만, 아마추어에겐 안 먹힐꺼란 친구(?)의 비아냥 섞인 충고와 여러 사건을 겪으면서 배려와 격려의 리더쉽으로 변모해가는 모습은꼭 두루미와의 연애감정 때문만은 아니겠죠? (그렇다면 냉철한 도시남자지만, 내 여자에겐 따뜻한 쉬크한 강마에인가…) 그 오만불손해 보이던 강마에가 오케스트라를 위해서라면 누군가에게 무릎을 꿇을 각오까지 했다는건 처음부터 단순히 괴팍한 지휘자는 아니었다는걸 보여주는것도 같고요. (꽤나 설득력 있는 중간과정이 있었다는 말은 들었지만 리더쉽과는 별 상관 없군요) 

어쨌거나 실력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불가능했던 사디스트 강마에의 리더쉽은 집단에 따라 융통성을 발휘할 줄도 알며, 스스로 변화하는 진취성도 있지 않나 뭐 그렇게 생각합니다. 


(33) 와우 말퓨리온 얼라 'Wounded Knee' 길드에 가입하실 의향은? (길원 20여명, 길장 Gaiahead) 
  
저라도 괜찮으시다면, 게다가 전 무릎을 다쳐서 수술한 적도 있기 때문에 더 의미 있게 가입할수 있겠네요. 그런데 제가 워낙에 게으르고 또, 게임 센스가 없는 편인데, 음, 영목님이 좀 도와주시리라 믿겠어요. (웃음)


일병 김예찬 
  책마을의 모든 글을 정독해 보았을 것 같은 사람! 

(34)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나 움베르트 에코의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을 읽다가 떠오른 생각인데, 이제까지 제가 읽어온 자전적소설들이나 자전적 성격의 글들을 읽다보면 결국 글쓴이들의 삶에 가장 처절한 영향을 끼친 것이 바로 첫 사랑의 경험이 아니었나 싶네요. 하긴 서구 기준에서는 첫 사랑을 첫 섹스로 치환해도 별 무리가 없을 것 같긴 합니다만. 사랑, 혹은 섹스가 뭐길래 그렇게 사람의 인생을 방향 지우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스스로 돌이켜 봤을 때도 제 인생의 결정적인 향방에 타륜 역할을 했던 것이 바로 그런 것들임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궁금해진건데, 동석씨 인생의 결정적인 사랑의 순간, 혹은 섹스의 순간은 어땠는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스스로의 인생을 바꿔버린 그런 결정적인 무언가가 있으셨는지? 

첫 섹스의 경우엔 보통 시시하게 끝나지 않나요? (웃음) 제 경우엔 유사성행위(?) 경험이 좀 있었기에 딱히 첫 섹스라고 부르기도 좀 어색하긴 하군요. (글쎄 미국이야기이긴 하지만, 요새 청소년의 경우 직접적인 성행위보다 오랄섹스가 더 선호되는게, 성병과 임신의 두려움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발랑 까진 아이들은 한국이든 미국이든, 그정도 잔머리는 굴리는 모양입니다.) 결정적인 순간이라기 보단, 불장난에 가깝지 않았나 싶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첫사랑이 가장 최근의 사랑 같아요. 그전의 짝사랑이고 연애고 해봐야 사랑이라기 보단, 의무적으로 마음에 품거나 사귄 것 같다는 거지요. 앞으로도 변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랑이었건 아니었건, 제가 중학교시절 내내, 고등학교 시절 일부까지 내내 마음에 품고 있는 사람이 있었는데, 제가 그나마 성장을 하고 아파하고 사색을 하고 성숙해졌다면, 전부 그 사람을 좋아하면서 이뤄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지금은 그의 영향에서 벗어난 것도 같지만, 그 시절의 기록을 보면, 전부 한사람을 향한 연서(戀書) 같은 것이더군요. 그 시절에 써서 청소년 문학상에 낸 소설이 있는데, 상은 못탔지만, 심사위원의 평에 언급되었다는 이유로 자랑스러워 했던 소설인데, 지금 생각해보면, 청소년 문학상에 ‘중년의 남자가 첫사랑을 다시 만나게 되서 겪는 가족과의 갈등’이라니 가당치도 않았단 생각이 듭니다. 영화 <포스트맨 블루스>식으로다가 “TV나 영화를 너무 많이 본 까닭”일까요. 허허. 

아직도 가끔 비가 오거나 할때면, 그 여자애의 집에서 코코아를 마시며 창문을 보던때가 생각납니다. 그 여자애는, 겨우 중학교를 갓 올라간 꼬맹이 주제에, 친척인줄 모르고 만났던 교회오빠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저는 질투를 누를수가 없어 창문밖을 노려보며 이야기를 듣습니다. 여자애는 그 오빠와 도망갈 생각을 합니다. 촌수로는 사돈의 팔촌도 부족한 친척일텐데 만나지도 못한다니 말이 안되잖아. 사랑에 달뜬 꼬맹이는 키만 크지 동생같은 남자애가 왜 하필 자기 집으로 숙제를 빌리러 왔는지 모르지요. 효진이랑 사귈까봐. 효진인 그 여자애의 가장 친한 친구지요. 비도 안 그쳤는데, 빌리러 왔다는 숙제도 내버려두고 여자애 집을 나섭니다. 그리고 제가 그 여자애를 좋아한다는걸 모두가 알게되었을때, 다시는 그 여자애와 웃으며 이야기 할수 없게 되었습니다. 

나름대론 결정적인 순간도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유치하리만큼 찬란한 기억인데, 이를테면, 다크포스를 덜어낸 이와이 슈운지 영화같은 느낌이랄까요. 다행히 첫사랑의 원형이라도 제게 남겨줘서 고마운 그 심각한 꼬맹이는, 왜 그렇게 망가져버렸는지, 고등학교가 갈리면서 헤어진 뒤로 사년만인가 오년만인가 만났을땐, 못 알아볼정도 였지요. 학교도 그만두고 집도 나가버리고 했다가 경기도 어디에선가 잡혀왔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기숙사 구석에서 수음을 하거나, 왠지 모르게 그 여자애의 나쁜소식만 전해주는 여자친구의 자취방에서 만화책을 보거나 했을뿐이지만요. 

나중엔 좋아하는 그 여자애는 사라져버리고, 머릿속에 남은 그 기억만을 쫓으며 사는건 아닌가 싶어 그만, 그 여자애의 환영을 놓아주기로 했습니다. 마침 모종의 사건이 있었고, 전 그 이야기로 소설을 썼습니다. 그리곤 정말이지, 지독히도 끈질겼지만, 시시한 감기 같기도 했던 감정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 뒤로 누구를 좋아해도 차마 표현하지 못합니다. 물론 티는 나는지, 숨기려고 하는데도 결국 어색해져버리지만요. 그가 날 좋아할때에야, 겨우 그를 좋아한다고 표현하는, 어쩌면 이런 방어적이고, 이기적인 연애방식은, 이런 기억이 작용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뱀발, 자고 일어나니 결정적인 섹스의 순간이 떠오르는군요. 전 이를테면, 애정결핍에 시달리는 <여자, 정혜>의 정혜같은 여자와 만나고 있었는데, 전 그 여자의 상처같은건 관심도 없고, 애정결핍을 이용해서 제 욕망을 채우는데만 급급했던게 아닌게 싶어요. 어렸을때의 상처를 평생 숨겨왔던 여자지만, 허물어지듯 폭로를 하는 순간이 오더군요, 제가 너무 그를 몰아댄 탓이겠지요. 그 후의 이야기는 앞서 주해성님의 질문에 답한 내용과 같기에 생략하겠습니다. 


(35) 전 항상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그 사람의 음악 취향을 물어본답니다. 그 사람이 듣는 음악이 그 사람의 성격을 어느 정도 보여준다는 미신을 가지고 있어서요. 동석씨의 음악 취향이 궁금합니다. 
  
좋은 미신이로군요. 허허. 전 문화적으로 갈증이 많은 성장기를 보냈어요. 전 지방중에서도 변두리에 살았고, 예향의 도시라지만, 막상 돈쓰는 문화 말고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광주를 저주하다시피하며 살았거든요. 전 아직 음악 ‘취향’이랄만한게 없는 것 같습니다. 아직 취향을 만들기 위해, 이것저것 듣고 있는 중이지요. 전 제 취향을 위해서라도 이것저것 안 가리고, 폭식을 하듯 들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건 영화 동아리 시절, 강연을 왔던 <밀애>의 변영주 감독의 영향일겁니다. 변영주 감독은 <밀애>를 구상하기 위해 수천장의 그림을 봤다는군요. 그러면서 취향을 ‘정하는’ 행위의 편협함이나 성급함을 지적하더군요. 취향은 수많은 걸 접하면서, 만들어지는것이지, 정해놓고 그것을 보는게 취향이 아니라는거지요. (이정도로 애매하지 않았는데, 영향을 받았다면서 논지도 제대로 기억 못하는군요.)

이런 장황한 말을 늘어놓은건, 일천한 음악적 소양에서 취향을 이야기 하는 것이 제게 얼마나 부끄러운 행위인지 전달하고 싶어서입니다. 어쨌거나 전 김광석의 노래를 좋아합니다. 그래봐야 많은 노래를 들어본것도 아니라서, 좋아한다고 하기도 부끄럽군요.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브로콜리 너마저’ 나 ‘눈뜨고 코베인’같은 알려진 인디음악도 좋아하구요. 영화음악을 위해 공부하듯 들은 장르불문의 음악을 취향이라기엔 어렵겠어요. 요새 즐겨 듣는 앨범이라면, 그래봐야 실상 듣는시간은 얼마 안되지만, ‘언니네 이발관’의 신보 <아주 보통의 존재>, ‘장기하와 얼굴들’의 <싸구려 커피> 가 있겠군요. 그 전엔 백현진의 <반성의 시간>을 들었습니다. 우연히 UCC로 올라와 있는 수록곡 <학수고대 했던 날> 뮤직비디오를 보고 앨범을 구해 들었는데 뭐랄까, 잃어버려서 잊고 있던 형제라도 만난 기분이었습니다. 처음 만났는데도 말이에요.

예찬님 질문에 답하려고 보니, 여간 음악도 안 듣고 사는 인간이로군요. 허허. 시디 구입을 적잖게 하는편이지만, 막상 제대로 들어본게 드문걸 보니 즐긴다기 보다 와인이나 커피를 알아야 할 것만 같아서 공부하는 차원으로 음악을 듣는 것 같아요. 


상병 홍석기 
  위에 살짝 웃대틱한 질문들도 보이네요. 대상이 동석님이라 그런가. 이거 재밌어질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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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야 할 것 안 나와야 할 것 가리지 않고 사정없이, 그것도 익스트림하게 끄집어 내어 
독자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게다가 어느 글에서나 본인의 모습을 등장시키는, 책마을의 
쿠엔틴 타란티노. 타란티노를 싫어하시면 <배트맨>의 '리들러'도 왠지 어울리는, 
항상 경계의 외부에만 존재하실 듯한 우리의 부촌장. 

(36) 계룡산 화장실에 쉬르적인 시를남발하시다가 연평분교로 귀양을 가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그렇지 않음 말랑께롱). 궁생활 동안에도 결국 수도권을 벗어나지 못한
저로서는 그곳에서의 생활이 어떨지 상상이 안 가는데요, 그러니까, 연평분교의 생활 
에 대해서 좀 알려주세요. 그곳이 동석님에게 어떤 영감을 주었는지 (간혹 기형도에 
대해서 언급을 하셨는데 시적인 영감이 충만한 곳인지), 어떤 변화를 주었는지, 혹은 
동석님이 연평분교를 변화시킨 거라든지- 꽃게잡이 배를 타고 서울로 침투해 카라 
한승연을 납치해 왔다든가, 로우개그를 전수받을 후계자를 만들기 위해 섬 아이들을 
모아 511 킨더하임을 만들었다든가, 뭐 이런 거도 좋아요. (두둥-) 

연평분교로 온건 귀양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습니다. 허허. 제가 전에 그리 표현했기도 했지만, 그땐 제가 누군가를 패죽이던가, 누군가가 절 패죽이던가 할정도의 상황이었죠. 특정한 문제가 있었다기 보단, 그냥 모든 것이 파탄나고 있었습니다. 제 삶에 환멸이 이어지던 시기였어요. 제 이기적인 연애가 끝나는 시기와 겹쳐서 일수도 있겠습니다. 아무렇지도 않은척 하면서도 속으론 은근히 충격이었는지도 모르지요.

어쨌거나 저는 연평도로 왔습니다. 그 좋아하던 기형도가 태어난 곳인줄은 알지도 못하고 그저 도망갈 곳이 생겼다니 좋다하고 도망갔지요. 이 곳은 놀랍게도, 저와 같은 반인 학생이 단 둘 밖에 없고, 저와 관련된 선생님도 단 하나 밖에 없는 말 그대로의 분교입니다. 그 온갖 협잡과 시기와 음모가 가득하고 수많은 파벌이 만들어졌다 사라졌다를 반복하는 계룡대학과는 비교가 안 되었었지요. 저는 갑자기 급변한 환경에 몸서리쳤습니다. 하루에 책 몇권씩을 보고, 유료영화채널을 붙잡고 살았습니다. 너무 허기가 졌던것이죠. 이 좁아터진 섬의 단절감이나 폐쇄성을 깨닫기 전까지, 이 환경이 사실은 우리에 갇아 키우는 강아지와 별 다를게 없다는걸 느끼게 되기 전까지, (실제로 학교에서 키우는데, 그 신세와 별 다를게 없더군요. 그 개와 저는 서로를 동정하고 있습니다.) 전 참 이 생활에 만족감을 느끼며 살았습니다. 지금은 불행하다, 뭐 이런건 아니고 특별한일이 없고서야 분교 교문밖도 벗어나지 못하는 좁아터진 활동반경(이곳의 규모를 감안할 때 가택연금 수준입니다. 교실에서 교문까지 열발자국도 못돼요.)  과 겨우 세상에 사람이라곤 셋만 남겨진 듯한 사람에 대한 허기가 가끔은 감당이 안 된다, 뭐 이런 것이겠군요.

전 기상을 관측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밤을 새며 하늘을 봐야할 때가 있죠. 쏟아질 듯 하늘 가득한 별을 보며 저만의 별자리를 찾습니다. 그리고 눈을 감으면 별이 제게 맺히는 것 같습니다. 이 곳의 안개는 그것만으로 절창입니다. 안개도 그냥 안개가 아니라, 섧게 우는 눈물이 날렸는지 옅게 흩뿌리는 안개부터 절망적으로 두터운, 사람 몇 쯤은 집어삼키고도 시치미를 떼는 난폭한 안개까지 살면서 좀체로 느껴보지 못했던 다양한 안개들을 보면서, 기형도의 <안개>나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읽었습니다. 기형도는 연표상으로는 아주 어렸을때 연평도를 떠났지만, 아마 무의식적으로 연평도의 안개에 대한 기억이 그의 시에 영향을 주진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일주일이고 햇빛도 바람도 흘려 보내지 않는 고집스러운 안개를 보고 있을때면, 이 곳 연평의 특산은 꽃게도 조기도 아니고, 안개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바다에 갇히고 안개에 갇히고 철조망에 갇힌 저는 모든 세상과 단절되었다는 심정이 되어, 정말로 이대로 사그라드는 것은 아닌가 하는 공포에 시달립니다. 다행히 책마을을 발견하게 되었고, 조금은 위안이 되었지만, 그래도 안개가 있든 없든 멀어지는 정신을 보며 언제부턴가 뇌리에 박혀버린 무기력에 몸을 맡긴체로 책도 읽지 않고, 글도 안 쓰고, 티비도 안보고, 아령도 들지 않고, 말도 한마디 하지 않은체로 이날의 웅크림을 몸에 새기고 있는건 여전합니다. 아직은 몸이 근질근질한데, 이렇게 웅크린체로 굳어버리는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도 여전합니다.

뗏목을 만들어 한강을 거슬러 올라가 카라 한승연을 섭외할 생각도 해봤습니다만,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기엔 이 섬의 무기력이 무섭습니다. 가끔씩 내려가는 마을을 바라보며, 초입에서 술에 취해 장광설을 늘어놓는 선원이나 초점 없는 눈에 정신을 놓고 비척비척 걸어가는 미친남자를 보면서, 숲 초입에서 목을 매달았다는 젊은 장사치나 바다에 뛰어들었다는 나이든 작부를 떠올립니다. 물론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은데, 제 눈엔 왜 그런것만 보이고 들리는지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사족) 전방 수류탄으로 북녘의 동포들에게 신년 선물도 해줄수 있다는 거리상으로는 가장 가까운 위치의 지점입니다만, 제가 워낙에 둔해서인지, 주위에서 함포 사격 연습에 기동 훈련을 해도 소리가 참 소름 끼친다거나, 전쟁이 일어나면 몇 초 안에 죽을까 정도의 소소한(?) 감상 말고는 별 영향은 없는 것 같습니다. 


(37) 허원영씨는 섣부른 코멘트를 '오아시스를 찾는 이에게 메마른 건빵을 던져 주는 일' 
에 비유하시며 '신중하게 정조준을 하고' 코멘트를 할 것을 주장하기도 했었는데요, 
16년은 커녕 16개월도 지나지 않아 무려 193개의 코멘트를 작성하시며 
책마을에 신 코멘트주의의 시대를 이끌며 (두둥-) 등의 유행어를 개척하신 동석님의 
입장에서 코멘트의 장, 단점- 즉 그것이 주는 유익함 (탁월한 개그센스를 제외하고) 
과 폐해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실 수 있으신지요. 그리고 한 때 사회 상층부의 몇몇 분들 
께서 '쓰레기들의 집합소' 라는 독설을 퍼부었던 인터넷 댓글문화에 대한 동석님의 견해를 
듣고 싶어요. 

10월 20일 기준으로는 676개로군요. 흐흐. 중간에 나갔다온걸 감안하면, 뭐 그냥 책마을 모든글에 댓글달고 다닌 수준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댓글을 그 짧은 시간에 이렇게 까지 많이 다는건, 정상은 아닙니다. (웃음) 그리고 다른 한편으론 신중하게 정조준을 하는게 아니라 조종간 위치 <자동>의 상태로 마구 갈긴 것 같군요. 제가 일상에서 쓸수 있는 총알을 댓글로 다 써버린 것 같습니다. 그리고 몇발쯤은 명중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대부분은 위협사격도 못됐으리라는 것쯤은 저도 알지요.  어쩌면, 오아시스를 찾는 사람에게 건빵을 가장 많이 던져준 사람도 저일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감정이나 느낌을 이야기하는 글에 그건 그렇게 느껴서는 아니되고, 이렇게 느껴야한다고 아무리 논리적인척 하며 떠들어봐야 결국 불필요한 충고와 조언질, 즉 내정간섭에 가까운건 아니었나 싶은거지요. 고로 저 같은 경우엔 잡담주의자에 가깝다 할수 있겠습니다. 

제 입장에서 코멘트의 장점이라면, 게시판의 성격을 재설정하는 역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게시물을 내뱉어진 일방적인 통보가 아니라, 아직 유효한 발화로 만드는 역할을 코멘트가 하지 않느냐는 것이지요. 또 알게 모르게 깔려있는 게시물에 대한 부담덕에 어지간해선 글을 남기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댓글로나마 의견을 피력하거나 스스로의 존재를 알리는 기능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이렇게 친한척(?)을 할 수 있고, 소통하는척(?)을 할수 있는건, 전부 댓글 덕분 아니겠어요? (우리가 더 친해지고 더 소통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가벼운 농담)

그건 그렇고, 허원영씨의 말은, 그냥 눈팅만 하고 백스페이스를 누르는 사람들은 오아시스를 헤매는 사람에게 건빵조차도 주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까요? (하하) 

제가 생각하기에 코멘트의 폐해는 허원영씨의 지적처럼 성급함에서 비롯되기도 하지만, 언어의 불완전성에서도 비롯되지 않나 싶어요. 물론 그조차도 상당부분은 성급함에서 원인을 찾을수 있을겁니다. 우리는 짤막한 글과 댓글로만 서로를 가늠하니까요. 그런데 그 댓글 몇 개로 서로를 쉽게 판단하고 벌써 소통을 했다고 단정지어 버리는데에서 댓글의 폐해가 시작되지 않나 싶습니다. 오타가 났다거나, 문맥이 뒤틀렸다거나, 단어를 잘못썼다거나 해서 오해가 생기거나 혹은 읽는 이가 오독을 하거나 일부만 읽고 반응을 한다거나 할때 말이죠. 또, 댓글의 양이 소통의 양과 비례한다는 착각이거나 댓글이 본문과는 무관하게 흘러가는 경향이랄수 있겠군요. 이를테면 댓글이 본문의 이해를 좌지우지하게 되버린다는것이죠. 어쩌면 이건 애초에 소통의 불가능성이나 상호간 불가해함을 성급하게 단정지은 저만의 문제점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어쨌거나 사소한 소통마저도 숨이 턱턱 막히며 어려워질때도 있는게 사실이니까요.

그런 원론적인 이야기 말고도 댓글의 폐해는 셀수 없이 많아 보입니다. 인터넷의 특성상 발화가 책임감 없이 이뤄지는 경우도 많고, 그 무책임한 발화가 퍼져나가기도 쉬워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게 된다거나, 유언비어가 퍼진다거나, 흑색선전이 쉬워진다거나 하지만, 인터넷이 뭔지도 모를때도 소문은 발도 없이 천리를 나다녔고, 유언비어는 더욱 더 확인할수도 없이 퍼져나갔으며 흑색선전은 언제나 쉽기만 하지 않았나 싶어요. 이게다 인터넷 때문만은 아닌거지요. 그건 인터넷을 쓰는게 인간이라 생긴 문제지, 인터넷의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이제 겨우 시작한 댓글문화를 쓰레기들의 집합소라고 단정짓는 성급한 꼰대들에게 “반사”라도 날려주고 싶군요. 실명제를 하건 말건 난 널 욕하고 까고 비아냥 댈꺼라는 덧붙임과 함께. (벌금형만은 안되는데) 당연한 말이지만, 실명제를 한다고 댓글문화가 얌전해질꺼라고 믿는게 얼마나 순진한 발상인지는 이미 실명인증을 해야만 쓸수 있는 네이버 게시판을 보면 알수 있지 않습니까? 또 익명게시판인 디시인사이드의 <식물겔>같은 청정지역은 어떻습니까? 수많은 (할일없는)용자들이 덤벼들었지만, 결국 감화되고 말았다는 중요한건 실명이냐 익명이냐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어떤 문화의 토양에서 있느냐가 아닐까요? 지금 책마을처럼, 분위기 만들기 나름일겁니다. (손발이 어지러울때 쓴 글이라 널뛰기를 하는군요.)



(38) 동석님이 제작하신 <밀프 픽션> 이 타란티노의 <펄프 픽션을 >제치고 미라맥스 사장으로부터 
백지 수표를 얻어 냈다는 가정 하에(즉, 자금 무한대의 상황에서), 동석님은 어떤 영화를 정말 찍고 싶을 것 같은지, 
주인공은 어떤 캐릭터일지, 스토리는 어떨지, 또 캐스팅은 누구누구로 하실지 궁금합니다. 그러니까, 그동안 생각해 두신 
시나리오가 있으면 트레일러를 공개해 달라! 이겁니다. (설마 AV는 아니겠죠?)
  
제가 얼마전, 그래봐야 전주영화제 카달로그를 보며 끄적였을때니 벌써 수개월 전이로군요, 장난삼아 구상해본 일종의 영화 소갭니다. 

※ 타블로이드코프 돌스크프노스키 특별전

소두아이 (So do I) 한국, 러시아 / 1985 / 18min / 흑백

중앙아시아 영화계의 기린아 돌스크프노스키 감독의 데뷔작으로 구소련과 한국의 수교가 맺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촬영을 시도해 국제적인 관심을 받았다. CIA와 KGB의 집요한 공작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을 왕래하며 5년간 촬영한 끝에 완성되었다. 원래는 317분에 해당하는 대작이었으나 냉전시기 말의 첨예한 정치적 압력덕에 상당부를 편집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서 개봉할 때 당시엔 국내법과 사전심의규정에 반하는 부분을 잘라내고 실제 개봉때는 18분 분량으로 압축하여 개봉되었다.

>>팔라치오 국제영화제 검은입술상 수상
>>오호츠크 국제영화제 캄챠카반도상 수상

So do I

Excuse me. Do you have a light? Yes. Here it is. Thanks. "You're welcome. "You canhave it. I haveanother one. Oh, thanks. You're welcome. Are you a student? Yes, I am. Are you goingTaiwan? No.I am going to London to study.  I see. Is this your first time to go to London?  Yes, it is. Actually, it is my first time to go abroad. Do youhave any relatives in London? No. I don't know anybody there. Would you likesomething to drink?" "Yes.I will have OJ, please." 

>>Dialogue : Arabic / Subtitle : English

영화가 시작 되면, 전략된 67분간의 내용이 함축적으로 펼쳐진다. 빅뱅이 일어나고, 수많은 은하가 생기며, 태양계가 만들어지고 지구가 만들어진다. 이 과정은 3분동안 이어지고, 사인펜으로 그린 애니메이션으로 처리한다. 다시 3분동안 지구의 모습을 다룬다. 생물의 기원은 스리슬쩍 넘어가더니 다짜고짜 아메바들이 증식하며 해파리로 진화한다. 해파리를 물어뜯는 어류의 등장, 대왕 해파리에 쫓기는 어류들은 육지로 뛰어간다. 갑자기 솟아난 다리에 양서류의 등장. 지겨우니 이쯤에서 하도록 점프 컷. 쥐들이 공룡의 알을 파먹고, 아직이다. 빨리감기로 몇번의 빙하기와 운석충돌이 지나가고, 그래도 죽지 않는 공룡들을 외계인이 납치한다. 드디어 공룡 멸종, 포유류 등장. 점프 컷. 여기까지가 124분 분량. 크로마뇽인과 네안데르탈인들의 전쟁이 한창이다. 네안데르탈인들은 암매장과 윤간을 발명한 종족이었다. 라는 자막이 나오고, 크로마뇽인들의 남자들은 모두 암매장 당하고, 여자들은 모두 윤간 당한다. 점프컷. (예산상의 문제로 실제 배우들은 둘뿐이다. 그루지야의 한 마을에서 어린 학생들을 발탁하여 초원으로 끌고 간 뒤 옷을 벗기고 세달 동안 생활하게 했다. 그 학생들은 어떤 지시도 내리지 않았음에도 -다만 굶기고 가뒀을뿐이다- 스스로 감독이 원하는 장면을 만들어냈다.) 이 놀라운 장면은 3분동안 축약되어 진행되는데, 실제 분량상으로는 43분을 차지 한다. 인류는 강으로 모여들고, 피라미드를 짓고, 바벨탑을 짓는다. 전쟁과 암매장과 윤간을 발견한다. 전쟁, 암매장, 분탕질로 이어지는 화면이 복색과 장비를 바꿔가며 끊임없이 반복된다. 나무꼬챙이로 꿰 죽이고, 돌로 찍어 죽이고, 청동칼로 찌르고, 강철검으로 베고, 화살이 박히고, 투석기가 날아든다. 그새 암매장의 구덩이는 더욱 넓어진다. 쉼없이 죽고, 죽이고, 뺏고, 뺏기고, 강간하고, 강간당한다. 소크라테스가 독약을 원샷하고, 알렉산더가 성별과 인종과 지역과 신분에 관계없이 난교를 한다. 싯다르타가 성불하고, 공자가 절명하고, 예수가 못 박힌다. 시저는 브루투스 너마저라는 말을 하지 못하고 죽는다. 점프컷. 무하마드가 사막을 달리고, 징키스칸이 초원을 달리고, 누군가가 화형당하고, 단두대에 목이 잘리고 하는 동안에도 쉼없이 죽고, 죽이고, 뺏고, 뺏긴다. 여기까지가 겨우 3분이다. 물론 실제 분량상으로는 55분이다. (후략)

어쨌거나 쓰다가 무슨일에선지 끊긴뒤로 잊어버리긴 했지만, 이렇게 또 쓸일이 있군요. 이 자체로 재밌는 글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보니 그냥 전위적이려다 말아버린 것 같습니다. 주민분들이 기대하시는 데로 이 세상에서 가장 비싼 ‘복상사 판타지물’을 구상해볼까 하다가, 그냥 막상 제가 가장 최근에 생각한 영상 이미지를 감히 들이댑니다. 

후략된 내용의 결말은 결국 그따위 과정을 거쳐 현대에 다다른 인류가 아프간 침공을 하고 광주의 그 일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1985년이 밝아오는 날에 광주에서 도망친 남자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도망친 여자가 만납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말이죠. 채소 장사 김태희와 우유 배달 송혜교, 신문 배달 한가인이 유유히 지나갑니다. 여자는 아프가니스탄 말로 장광설을 늘어놓습니다. 남자는 말합니다. 소 두 아이. 그리고 둘은 결혼을 하고, 1985년 9월 20일에 드디어 하나의 아기가 태어나더라, 그것도 우즈베키스탄의 한 마굿간에서 말입니다. (참고로 그날은 제 생일입니다.) 그 뒤에도 접입가경으로 이어볼까 했는데, 18분짜리라고 우기는것도 정도껏이니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흐흐.

아마 이걸 진짜 만든다면, 미라맥스의 사장은 제 목에 현상금을 걸지도 모르겠군요. 하하. 파일 정보를 보니, 러시아가 그루지아를 침공했고, 촛불에 베이징발 황사바람이 불어닥쳤던 그때 장이모가 연출한 짝퉁 개막식을 보면서 쓴 듯 하군요. (중간에 왠 그루지야냐 싶으실까봐 굳이 사족을 답니다.) 제가 아직 시나리오 작법 같은걸 몰라서, 실제로 단편 찍을때도 굉장히 러프한 시나리오와 콘티만으로 즉석에서 정하면서 찍었습니다. 당연히 영화를 함께했던 사람들만 죽어라 고생했지요. 흐흐. 앞으로 남은 기간이나, 책마을 시즌 2에서 보여드릴 기회가 있었으면 합니다. 저도 더 이상 게으름만 피울순 없겠죠.


병장 배상혁 
(39) 
동슥님 이 수많은 질문들 다 어떻게 하실 것인지.. 
수습 되시겠나요 허허허 
(이것도 질문?)
  
휴우, 아주 죽겠습니다. 오늘은 대충 수습이 안되는군요. 사실 전 이런 문제들에 대해 그리 명쾌하게 답을 내릴만한 인간이 못되니까요. 외려 제가 반문하고 싶어지는 질문들입니다. 허허. 제가 요즘 읽은 책에 제 심정을 대변할만한 구절이 있어서 소개하는걸로 대답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전략) 후배들은 나에게 끊임없이 어떤 견해를, 시각을, 충고를 강요한다. 원래 없는 것들을 그런 강요에 의해 내 안에서 억지로 생산해 내려니 마음에도 없는 말들을 하게 될 때가 많다. (중략) 이런 나를 내공이 상당한 사람으로 착각했던지 자기 인생의 길잡이로 삼겠다며 한동안 따라다닌 일이 있다. 고역도 그런 고역이 없었다. 내 인생이 사시나무처럼 흔들리는 판에 다른 인생에 개입할 여력이 있겠는가. (중략) 나는 누구의 교과서도 될 수 없다는 것이 내 결론이었다. 내가 참으로 고심참담한 과정을 거쳐 중등 2급 정교사 자격증을 고도 학교로 가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 장승욱, <술통> 中


병장 문두환 
  위트 넘치는 덧글로 책마을 분위기를 주도해온 당신!(앗, 이런 용어는 기분 나쁠려나요?) 
요즘에 자리를 비워서인지 많은 글에 덧글이 안 달리는 것에 대한 책임감은어떻게 느끼고 있을지 궁금하군요. 동석님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과거에 영화와 관련된 일을 '잠깐' 한 적이 있었다, 는 것 정도지만 덧글에서 풍겨오는 해학과 풍자는 충분히 당신에 대해 궁금하게 하는데, 

(40)
여기서 질문 하나. 
물론 동석님과 관계된 질문은 아니지만 제가 주변사람들에게 즐겨 묻는 것이 하나 있습죠. 그것은 무언고하니, 당신이 사막을 걷고 있고 물통엔 단 한모금의 물이 남아 있다. 당신은 그 물을 마실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인가. 그리고 그 이유는. 

덧붙여 그 '물'과 같은 사람을 만나 본 적이 있는가? 

보통 제가 이런 질문을 받을때면 비뚤어집니다만, 두환님이 물으시는거니 성실하게 답해볼께요. (방긋) 전 사막에 우물이 있다고 믿는 우물론자(?)이기 때문에 지금 당장 목이 마른건 단지 발견하지 못했을뿐이라며 침을 꿀꺽 삼키며 앞으로 걸어가겠습니다. 물 한모금은 더 이상 침이 나오지 않을때 시원하게 마셔버리겠어요. 그리고 다시 우물 생각을 합니다. 도르레와 바가지 생각도 하고, 물을 긷는 소리를 생각하는 겁니다. 꿀꺽. 침이 고이네요. 결국, 마신다는 건데, 사막 어딘가에 우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물과 같은 사람, 만난 것 같아요. 이미 제 곁을 떠나가긴 했지만, 제 몸 어딘가에서 흐르고 있을 그 물과 같은 사람. (앗 이렇게 말하고 나니, 우물론자라면 뭔가 안좋은 해석이 내려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이를테면 주위의 인연이나 기회를 가볍게 생각하고, 언젠가 한방 터진다정도를 믿으며 흥청망청 사는 한심한 인간의 유형정도? 흐흐.)

(41)
질문 두울. 
사회에 상식과 혼존하는 비상식에 대한 당신의 기준이라면 기준이랄까. 설명을 부탁해요. 

저는 아직 확고한 무엇이 없는건지, 혹은 확고한 자신의 부분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것인지, 그런 확고한 선택의 순간을 아직 맞이 하지 못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기준이라는것에 확고한 답을 하긴 어렵습니다. 그러나 제가 유난히 민감한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 파열의 순간을 엿보면 제 기준이 조금은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건 이를테면 후배가 다리를 꼬거나 방에 누워있거나 할때는 아닙니다. 그러나 그 후배가 티비를 보다가 이를테면 동성애자에 대한 극렬한 증오를 표현하거나 여성비하적인 표현을 할때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그게 후배가 아니라 선배거나 심지어는 선생님일때도 저는 욱하는 편이지요. (물론 요새는 피곤해서 꾹꾹 눌러참습니다.) 말하자면, 제겐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강박이 있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그 올바름조차 테제의 목소리를 띨때면 전 그마저도 반발합니다. 정치적 올바름이 하나의 강령을 넘어 강제가 된다면 그것 스스로 모순이 아닌가 하는겁니다. 그러면 또 제가 자유주의자인가 하면, 또 그건 아닙니다. 그런 성향이 다분한건 사실입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어도 옳은 일”은 있는 모양입니다. 

저는 아직 미성숙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한치의 흔들림도 없는 확고함이라는게 존재하기는 할지, 혹 그게 존재한다고 해도 그게 과연 아집이나 독선은 아닐지, 그리고 그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 항상 의문을 품습니다. 기본적으로 자유주의자이면서 자유조차 회의하는 회의주의자인것도 같은 사회주의에 경도된 회색분자인 저는 어쨌거나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결국 인문주의자인가 싶다가도 인류의 대부분을 마음에 안들어하는 좁아터진 속아지의 소유자로서 가끔은 인류를 선택할것인가 지구와 다른 모든 생물을 선택할것인가의 선택지에서 어쩌면 인류만 빠지면 모두 행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는군요.

아무래도 제 기준은 종잡을 날이 없겠군요. 허허. 全우주적 인식을 하려고 노력하면서 실천은 먼저 이웃을 사랑하려고 노력하지만, 저 우주 반대편의 먼지보다 이웃을 차별적으로 사랑하는 것이 과연 옳은일인가를 가끔 고민도 하는 흔히 말하는 ‘개념’없는 인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입으로 제 기준을 꺼내지는 못했지만, 냄새는 좀 풍기지 않았나 자위하겠습니다.

그래도 굳이 부연은 해야겠습니다. 이건 두환님의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헤헤) 
전 도덕이나 법률이 결국은  헤게모니의 산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싸그리 무시해야한다는건 아닙니다만, 그것들이 사람들을 불행하게 한다면, 이를테면 개발 당국과 시공 업체, 용역 깡패들의 폭력에는 정당성을 부여하고 최소한의 생존권마저 무시당했기에 생물이라면 누구에게나 존중받아야할 자기방어적 물리력을 폭력이라거나 범죄로 규정하는 경우엔 그건 무시해도 싸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지금 앞에 방패를 들고 있는 전경을 짱돌로 찍으라는건 아닙니다. 전경은 그저 그곳에 서있으라는 명령을 받았을뿐이니까요.) 이건 제 법의식의 기준정도가 되겠군요. 일상 영역에서의 기준은 앞서 말한바대로 종잡을 날이 몇 년안에는 안 올 것 같네요. 혹 종 잡는 날이 오면, 연락드릴께요. (웃음)



(42)
질문 세엣. 
저에게 있어 글쓰기란 (아직은)생각을 정리하고 불편하는 감정을 해소하는 것입니다. 글쓰는 행위는 궁극적으로 이렇게 개인적인 것에만 한정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책마을 질문에 독서가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물어보는데 동석님에게 글쓰기는 어떤 의미인지. 

마광수 교수는 문학을 ‘솔직하고 당당한 배설’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더군요. 배설이라는 단어의 어감이 좀 거칠긴 하지만, 저도 글쓰기란 배설의 다른 이름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해소라고 해도 좋고, 정화라고 해도 좋을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데서나 시종 배설만하고 있을순 없는 노릇아닌가?’ 하는 반문에도 일부 수긍하는 편입니다. 쉽게 알수 있게 특정인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사생활을 폭로하거나 비밀을 까발리거나 하는건 문학이 아니겠죠. 그러나 그런정도의 것이 아니라면, 단순히 글을 썼다는 이유만으로 처벌을 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마광수나 장정일이 음란물 유포죄로 잡혀들어갔던 일은 다시는 반복되선 안된다고 생각하는것이죠. 

(아까부터 느낀건데, 저 계속 동문서답하느라 말만 많죠?)

제게 있어 글쓰기란, 초등학교적 일기검사에서 [참잘했어요]와 짤막한 코멘트 몇줄과 선망하던 선생님의 관심어린 손길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다음날 일기검사에 [참 잘했어요] 도장 대신에 <검> 도장만 찍혀있거나 코멘트가 달려있지 않는 날엔 있지도 않은 일을 지어내며 거짓 교훈을 자아내거나 동화책에서 베껴쓰거나 했지요. 어쩌면 제 글쓰기는 그런 이유로 시작해서인지 제 글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무의식적으로 지어내려는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부터 글쓰기는 일종의 무기였습니다. 선생님이나 반 아이들에게 꺼내는 히든카드였지요. 그리고 그 카드는 의외로 썩 좋은 패였는지, 따기도 많이 땄습니다. 사실 제 글쓰기는 그것으로부터 많이 벗어나지 못했어요. 결국 제 과시욕이며, 과잉의 자아를 현시화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새는 실현되지 못한 자신을 글에서나마 실현시키며 만족을 얻거나 그저 머리와 마음 한구석에 맺히는 것들을 짜내듯 급히 끄적이는 것도 같습니다. 사실 ‘나의 글쓰기’라는 말을 하기엔 너무 게으른 작자(作者)인지라, 이마저도 조금 쑥쓰러운게 사실입니다만, 가끔은 쓰지 않고서는 못배길때가 있어 감히 제 글쓰기를 논해 봤습니다. 


(43)
질문 네엣. 
제가 좋아하는 교수님 한 분은 '학자는 논문으로 말한다'라고 하더군요. 하긴 그렇긴 하겠지요. 기자는 기사를 쓰고 소설가는 소설을 쓰고, 글은 생각을 전달하는 매개인 동시에 소통의 방법 중 하나입니다. 영상과 관계된 동석님은 영상을 통해서 어떤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은지, 궁금하네요. 

참, 전 개인적으로 영화를 많이 보는 편은 아니지만 
가끔 인디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곤 합니다. 
혹시 Broken Flower라는 영화 보신적 있나요? 
  
음, 일단 브로큰 플라워는 짐 자무시 감독이 만든, 그 빌 머레이 나오는 영화 말인가요? 안타깝지만 아직도 못 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시기를 놓쳐서, 다음엔 상영관이 서울에 밖에 없어서, 그 다음엔 이건 디비디방에서 찾으면 처음 듣는다고 되물어서, 그리고 마지막엔 매번 잊어먹기 때문입니다. 정확하게는 전 다운까지 받을 생각을 했는데, 결국 다른 영화라기보단 영상에 눈이 팔려 잊어먹어버린거지요. (영상이라면, 쿨럭)

전 박찬욱 감독의 영화중 <복수는 나의것>을 가장 좋아합니다. 아니, 좋아했습니다. 그 차가운 분노와 블랙코미디, 피상적이나마 다뤄진 사회상이라면 제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조합이지요. 그런데 박찬욱이 여느 인터뷰에서 “유산계급과 무산계급간의 계급 투쟁을 상징적으로 다뤄보려했다.”는 말을 했다는걸 알고 부턴 갑자기 그 영화가 시시해보이는겁니다. 역시나 영화감독은 영화로만 이야기 해야하는겁니다. 물론 해명의 기회는 주어져야 하겠지만, 영화가 잘 안된다고 해서, 대중성이 떨어졌다고 해서, 그런 의도를 밝히므로써 안목없는 대중들과 평단을 깎아내리기라도 해야 시원했다는 듯 그 인터뷰는 표현하고 있더군요. (물론 인터뷰어의 농간일수도 있습니다만, 어쨌거나 그 말을 한건 박찬욱이고, 영화 내에서 끌어내기 어려운 요소를 인터뷰에서 설명하는건 좀 아니다 싶었습니다.)

또 이렇게 장황한 서두를 늘어놓는 까닭은, 딱히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없는건 아니지만, ‘박찬욱의 경우처럼 보이는건 아닌지 항상 걱정된다’정도를 표현하기 위해서랍니다. 앞으로 시즌 2에서 제 영화를, 혹은 앞으로 이곳 책마을에서 제 영상을 위한 글을 보실수도 있겠지만, 그것들은 지금부터 제가 하는 이야기와는 무관하다고 여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전 제 글 <누나생각>과 같이
일상에서 사소하지만 사소하게 넘기기엔 중대한 일들을, 피스톨 운동에만 초점을 맞춘 포르노의 노골적인 시선처럼,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것처럼 굴지만 현실은 아닌, 우리의 왜곡된 인식속에서 현실이라고 생각되는 정도의 포지션을 잡으려고 노력할겁니다. 그 개념적 현실을 보면서 아마 많이 불쾌하실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그 불쾌가 일상에서 비슷한 장면을 목격할때도 반복될정도로 강렬해야한다고 생각하니까요. 그 영화나 글을 본 누군가에게 남는 건 그 강렬한 불쾌함 외에는 아무것도 없을지도 모르지요.

물론 제가 의도한 메시지는 있겠지만, 저는 모든 수용자에겐 오독의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글쓴이로서 심정적으로 서운하기도 하겠지만, 일단 그게 옳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그때되면 변명에 급급할지도 모르겠네요. 허허)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6
13:50:26 

 

병장 홍성기 
  정말 멋진 대답이로군요! 물론 글은 읽어보지 않았습니다. 2008-10-27
13:42:17
  

 

병장 홍성기 
  하하. 잘 읽겠습니다. 감상은 그 뒤에.. 2008-10-27
13:43:27
  

 

상병 양순호 
  푸하하하핫!!! <모두 하고 있습니까>를 보셨다뇨. 우하하하!!! 
전 자막 있는걸로 해서 봤는데, 이때는 일어가 귀에 좀 들어올 때였답니다. 
캐릭터들이 하는 대사랑, 자막 만든 사람이 번역한거랑 같이 보니 
즐거움 200배더군요. 으하하!! 2008-10-27
14:07:22
  

 

병장 이동석 
  김선익님에 대한 답변은 꼭 AS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때 아마 쓰다 졸았나 보네요. 
그전에 작성하다 날려버린 버전에선 제일 신중하게 답변했던것 같은데. (죄송합니다) 2008-10-27
14:30:56
 

 

병장 문두환 
  하아, 오늘은 너무 바빠요, 아마도 다음주까지는 잠자는 시간도 절약하게 될 듯 한걸요. 그래도 꼭 꼭 꼭 읽어봐야겠어요. 일단 저도 선 리플 후 감상을. 푸후흐. 2008-10-27
17:57:07
  

 

병장 이현승 
  글쎄요.. 동석님이 밴드를 기획 한다... RHCP의 플리가 나체로 '그곳'에 양말만 끼우고 공연한 정도로는 약하다고 생각하실 텐데 말이죠. 흐흐. 나이 좀 먹어서 <폴몬티> 급이 된다면 고려해 보겠어요. 

동석님과 저는 은근히(이렇게 말하면 기분이 나쁘실지도) 비슷한데가 있어요. 일단은 광주태생은 어쩔수 없는 피해의식(?)이 느껴지구요. 제가 사랑해 마지 않는 <씬시티> 나 <복수는 나의것> 것을 좋아하는 것으로 보아 분명 '달빛요정~'의 노래중 <스끼다시 내인생>을 애청 또는 애창 하실듯 해요. B급정서를 한가득 담을, 동석님의 영화가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잠시 딴 얘기 지만 '장기하씨'가 '눈뜨고 코베인'의 드럼인가 그랬을 겁니다) 

어쨌거나 이 회원탐방은 정말 좋은 코너예요. 짤막한 글로만 얻을 수 있었던 주민들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을 이렇게 풀어놨으니 말이죠. 막연하게만 생각 했던 동석님에 대한 기대감을 사그라뜨리고, 오해를 증폭시킨다는 점에서..가 아니고 그 반대라서 신선합니다.흐흐. 

다만 아쉬운 것은 제 차례가 안온다는.. (울음) 말출 복귀해서 뵈요~ 2008-10-28
10:00:13
  

 

병장 이동석 
  하하하, <스끼다시 내인생>은 제 애창곡 맞습니다. 

그리고, 저도 느낀건데, 현승님이랑은 은근히(기분 나쁠라나요?) 비슷한점이 많겠다는거, 물론 막상 실제로 만나면, 현승님은 절 보며 욕을 할지도 모르겠지만. 하하하. 

잘 다녀오세요~ 2008-10-28
11:16:41
 

 

상병 이우중 
  벌써 읽었지만 조용조용히 들어와서 자주 읽고 있어요. 혹 물어보고 대답도 안 듣는 사람으로 오해하실까봐ㅡ 2008-11-06
17:18:29
  

 

병장 이동석 
  음? 다른 글에서 댓글 봤잖아요. 허허. 그리고 질문자들은 모두 보셨으리라 믿고 있습니다. 흐흐- 2008-11-06
20:5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