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적 공포
병장 이승일 03-19 03:15 | HIT : 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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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는 말로 할 수 없을만큼 오싹한 두려움을 느꼈다.
이것은 순전히 내 친구와의 전화 통화 때문이다.
이 친구는 기독교인이다. 그것도 아주 광적인. -
원래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작년에 무슨 기도를 하다가 갑자기 자기 코뼈가 움직여서 충농증이 완쾌됐다고 하더니
그 이후로 점점 광기가 강해져서 지금은 거의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그는 모든 '지침' 을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음성으로' 전달받는다고 말했다.
그 지침 중 하나는 그 전까지 계획했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신학 대학원을 가야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아직 등록도 하지 않았고, 어떻게 가게될지 알 수도 없다. 참고로 그는 이미 연대 법학과 학부를 졸업했다.
' 신의 지침들' 중에는 신이 허락이 있기 전까지 인문학 책을 한 권도 읽지 말아야한다는 것도 있었다. 그것이 신과의 교통을 방해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자신이 매일매일 신과 점점 가까워지고 있으며, 모든 것이 충족되었다고 말했다.
나는 이 모든 말을 전해듣고서 아주 다정다감한, 그러나 정말 진지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 너...정말로 미쳤구나."
나는 그의 목소리, 말투 그리고 그 외의 모든 것으로부터 그가 문자 그대로 '미쳤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미친 친구를 갖는 것은 충분히 용납할 수 있는 일이지만, 친구가 미치는 것은 너무나도 슬픈 일이라고 느꼈기 때문에 나는 무언가 그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말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무엇이 최선일지 생각했다. 일단 그가 정상적인 논리나 이성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은 명백했다. 비열하더라도, 나는 무언가 '술수' 를 써야겠다고 판단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 지금 그리스도의 하나님이 나에게 계시를 내려주셨는데 -너에게도 항상 그러하시듯 - '교만은 가장 큰 죄악이며 그것은 네가 고민하거나 자신 없는 부분이 아니라, 가장 당연하게 받아드리는 사실로부터 비롯한다' 라고 너에게 전해주라셔"
나는 말하자면 그의 태도를 반대로, 약간 비꼬아서 사용했다. 그는 나에게 그가 어떤 계시를 받았는지 말했는데, 나 역시 그러한 말을 못할 이유가 없음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게 얼마나 말도 안되는 말인지 직접 느껴보라는 의도도 포함되어있었다. 설마 신이 그에게만 계시를 주고 나에겐 주지 않는다고 주장할 수는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랍쇼? 그 친구는 이렇게 대답했다.
" 아니, 넌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어."
난 갑자기 화가 났다. 물론 내 목소리 등등을 보고 내 말이 그다지 진실하지 않았음을 추측할 수도 있었을게다. 그러나 그래도 그렇지, 자신의 계시는 계시고 남의 계시는 계시가 아니라고 말하는 깡은 대체 어디에서 나올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나는 다시 말했다.
" 아니, 네가 믿건 믿지 않건, 사실은 달라지지 않아. 신은 오늘 나에게 그 말을 전하라고 하셨고, 나는 그 일을 다했으며 그것을 받아드리는 것은 너에게 달려있어."
그러자 그가 말했다.
" 아니, 그것은 악마가 너에게 불어넣어준 생각이야."
그러더니 외쳤다.
" 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악마여 물러가라!!"
이 말이 전혀 장난스럽다거나, 주저하는 기색과 함께 울려퍼진 것이 아니었음을 분명히 말해두고 싶다.
이 정도면 거의 엑소시스트를 방불케한다.
중요한 것은 여기까지의 일이 아니다.
..
믿을지 안믿을지 모르겠지만, 난 그 말을 듣는 순간 온 몸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의 광적인 신앙 때문이 아니다. 그것으로부터 기인한 오싹함은 이미 충분히 느낀 상태였다. 정말 놀랍게도, 나는 나의 말이 정말로 해서는 안될 말이었다고 느끼게 되었다.- 마치 악마라는게 존재하고 나의 말이 정말로 그의 꾀임에 의해 입밖으로 나온 것처럼. 그리고 곧바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불쾌감이 나를 엄습했다. 나는, 정말로 본능적으로, 전화를 확 끊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이성은 더 이상 내 의식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 못했다. 이것은 나에게 있어서 매우 희귀한 경험이다. 설사 격한 감정이 나를 지배하고 있을 때에도, 이성은 그러한 상황을 - 설사 조정은 못할지라도 - 가장 높은 관점에서 언제나 관조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의 경험은 나의 이성을 아주 작은 상자 안에 가둬두고 의식 저 편으로 가볍게 치워 놓았다.
나는 오늘 이성이 정말로 종언을 고하는 곳 너머에 어떠한 종류의 느낌이 있는지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어쩌면 정말로 영적인 세계라는게 있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받았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두렵다. 마치 내가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내 손으로 살해한 것 같은 - 그래서 그 결과로 인류의 구성원은 나 하나밖에 안 남은 - 느낌이다. 파우스트는 "내가 혹시 신은 아닐까?" 라고 독백했다. 나는 "내가 혹시 악마는 아닐까?" 라고 진심으로 의심해보았다. 이것이 대체 무슨 말도안되는 일들인가!??
만약 지금 이곳이 중세 유럽이었다면 위와 같은 대화는 전혀 어색하지 않았을 것이다. 중세인들은 신은 물론이고 악마나 천사, 성인 - 그것도 수많은 계급에 의해 나뉜 - 등과 함께 살았다. 그러나 인류는 일종의 정신적 다이어트를 시작했고, 이 세계의 존재론적 구성원의 종류는 급격하게 줄었다. 악마나 천사들의 머릿수는 줄어들었지만, 그 대신 사람들의 머릿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으니 결과적으로 쌤쌤일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존재자들은 어떤 형태로건 개인 내면으로 흡수되었다. 개인 내면의 선함, 악한 본성, 이타심이나 이기심, 혹은 광기, 숭고한 정신 등등으로 말이다.
어찌되었건 지금 이곳은 중세 유럽이 아니다. 그 이후로 엄청난 시간이 흘렀고, 수많은 천재들, 재능있는 사람들, 그리고 성실한 사람들이 치열하게 사유하고, 실험하고, 토론한 끝에 오늘날 우리는 세상을 좀 더 단순한 존재자들의 조합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나름대로 이러한 노력의 결실을 최선을 다해 받아드려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의 사고와 지식이란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인가? 이렇게 한 순간에 모든 것이 의심되고 뒤집어질 수 있다니 말이다. - 인류 역사의 성과란 것이 한 개인에게 줄 수 있는 힘이 고작 이것밖에 안되는 것인가?
물론 나는 엄격히 말해 무신론자는 아니었다. 나는 나름대로 신에 대해 생각해왔고, 그것이 어떤 형태로건 존재한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추상적 관념으로써의 신일 뿐, 기독교와 같은 문화적 의상을 입은 신은 아니었으며, 무엇보다도 나의 삶에 개입하는 존재는 아니었다. 더군다나 악마라던가 천사라던가 하는 것은, 비유나 수사적으로가 아니라면 진지한 사고의 대상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다.
그런데. 지금 이건 대체 무슨 종류의 상황이며 무슨 종류의 공포인가?
나의 이성과 논리가 내 친구에게 도움을 주지 못했듯
현재 나에게도 그러하다.
나는 '종교' 라는 단어를 늘상 사용해 왔겠지만, 그것이 이렇게 엄청나게 무서운 것인지는 상상해보지 못했다. 인류의 역사적 평가, 혹은 보편적 이성, 혹은 감정적 확신이 최종 심급이 될 수 없을 때, 그래서 우리가 가진 그 무엇으로도 도달할 수 없고 알 수 없는 '최후의 심판' 만이 존재할 때, 우리는 대체 무엇을 의지하고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on Jesus Christ and as he lived
상병 이선열
본래 사람에게 있어서 미지의 것은 불쾌한 것이죠.
천사, 악마, 신화, 종교가 무력한 존재라는 말을 전 믿지 않습니다.
그 존재들은 분명 인간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터무니없는 파워를 발휘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뭐. 언젠가 저런 것들이 날 파괴하고 부숴버린다고 해도.
반드시 마지막까지 지킬 수 있는 것이 남아있으리라고 생각하니까.
...... 설령, 의지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한다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의지할 수 있는 것이 사람이 아닐까요?(먼산)
ps.
" 정말 이상한 기분이에요. 나무가 말을 하는 걸 본 듯한......."
" 그래. 정말 이상해. 분명히 일견 볼땐 평범해 보이지만, 위화감이 있어."
" 그런가? 하지만 나무가 말을 한다고 해서 그다지 피해를 주는 건 아니잖아?" 03-19
병장 이희웅
마지막 승일님의 'Oh, my God!' 은 잘 안보면 못 볼것 같습니다......(웃음_) 03-19
병장 배진호
으음.. 전 광적인 기독교신자의 일부라서 그런지 이 모든 내용을 이해할 수 있겠군요..
저도 때로 아니 어쩌면 인문학서적을 아예 보지 않으려고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때로 볼 일이 있게 되면 기도를 하고서 보게 되곤 하더군요..
모든 서적은 지식만을 이야기 하는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이성적이며, 감성적인 부분까지 컨트롤 할 수 있기 때문에
어떠한책을 어떻게 선별하여 보는가는 인생에 영향을 끼칠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자신의 의지와 신념과 사실을 인지하는 능력이 뛰어 나다고
해도 말이죠.. 여러가지를 생각한다는 자체는 좋지만..
그것을 인지하고 자신이 행동으로 옮기게 되고 그것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지를 자신도 잠시 망각해 버리게 되면 그것만큼 무서운 것이 없겠죠..
' 신의 지침들'이라는 표현이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어느정도의 약간의 왜곡이 있을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어쨋든 중요한건..
저도 그 사실을 믿는다는것 정도이군요..
때론 미쳣다고 생각될 정도로 말이죠......
하지만 저도 그 친구처럼.. 기도를 할때곤 하면..
내 마음속에서 자지러질듯한 소름과..
내 마음속의 평안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모든것을 버려도 될 만큼... 그 평안이 한도 끝도 없는
평안이 내 마음을 자리해 버리고 말면....
그 기도하기 전까지 생각했던 수많은 의심과
수많은 다른 죄악과 수많은 여러 모든 것들이 일 순간에
거짓이 되어버리는것...
모르겠습니다..
온전히 그것 때문에 기도를 하고 종교를 믿는지도...
종교의 문제는 이제 세상에서 경시할 수 없는 부분이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이성과 감성과 내면을 결정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어쩌면 여러사람의 내면을 표출할만큼의 글이 될 수도 있겠군요..
( 종교적 분쟁과 이야기들은 항상 많은 이야기들을 낳게 되는것 같습니다..) 03-19
병장 성태식
그게 인간 심리겠지요.
있건 없건 상관할 건 없지만, 그 있는지 없는지 확인도 안되는 놈이 내 마음을 움직이니까요. 03-19
병장 배진호
그리고 중요한것은 그 승일님의 글을 보고있는
저조차조 그 '악마여 물러가라'라는 대목에서
소름이 돋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 또한 지금 제가 어떠한 글을 쓰고 어떠한 것을
말하는지.. 그것이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해서
한번 더 생각해 보아야 겠다고 느낌니다..
이 글은 분명 영향력이 있는 글인 것 같군요..
그것이 어떤이에게는 진실로 받아들여지고 어떤이는
거짓이라고 생각할지라도 말이죠... 03-19
병장 임정우
마치 제 생각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해서 두려움마저 들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대체 무엇을 의지해서 살아야 하는걸까요? 03-19
상병 이주형
자신이 받은 계시가 '신의 계시'라는 믿음이 확고하게 되면,
그 생각과 반대되는 계시는 '악마가 불어넣어준 생각'이 되는 거겠죠.
신은 한 분이시고, 모순되는 두 말을 하실 리가 없다는 확신에서 나오는 거니까.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그렇게 모든 상황에서 자신의 행동과 반대되는 행동을 악마의 짓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문제가 되겠지요. 자신의 길을 결정하는 데, '신의 계시'를 따르던, 이성으로 치열하게 사고한 결과물을 따르던 확신이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몫이니 확신에 따라 가면 되리라 생각되지만, 이성의 장이라고 생각되어지는 토론장에서 '악마야 물러가라'로 판이 깨져버리면 곤란할 것 같네요. 03-19
병장 오기환
무엇에 의지하는지를 굳이 알아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개인적으로, 예전에 읽었던 소설의 표현을 빌자면
' 인간이 해서는 안 될일을 하는 존재'에게
' 신'이라는 칭호를 붙여둔 채로 사는 입장에서는...
이승일 병장님이 느꼈던 찝찝함(?)은
잠깐의 불쾌함 정도로 넘어가셔도 될 일이 아닌가 합니다. 03-19
일병 박준연
기도를 하다가 코뼈가 움직여 충농증이 완쾌되었다는 말과..
악마여 물러가라는 말..
교회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다지 열심이 아닌 저로써는
저게 무슨 쌩뚱맞은 말인가라는 생각이 드네요.
저희 부모님도 광적인 기독교 인이시지요..
어머님은 하나님의 지침을 꿈을 통해 받는다고 말씀하시곤 하셨는데..
그 맥락과 비슷하지 않나 싶네요.. 03-19
병장 임정우
종교뿐만 아니라 어떤 것이던 이렇게 맹신할수 있다는게 무섭고 어떤 면에선 부럽기도 합니다. 저로서는 신에게 광신하는 것과 독재자를 맹신하는 것과의 차이점을 결코 발견할수가 없기때문에 도저히 신이란게 특별하다거나 선하다고는 생각할수가 없는 편입니다. 03-19
병장 성태식
'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상을 파괴해야 한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소설 내용은 다 까먹었지만 이 한 구절만은 기억이 나는군요.
이성의 세계 뿐 아니라 광신의 세계도 하나의 세계입니다.
우리가 이성의 세계 안에만 있으면 광신의 세계는 우리의 세계에서 멀어지겠지요.
광신도가 칼을 들고 배를 째러 달려오지 않는 한, 그의 세계를 파괴하기 보다
우리의 세계를 파괴하는 관점에서 바라보았으면 합니다.
글쎄요. 이렇게 생각하기는 하지만,
도대체 '자신의 세계를 파괴하는 관점'이 무슨 쓸모가 있는지.
참 난감하군요.
뭐. 자신의 세계를 파괴해 보려는 사람에게는 쓸모가 있겠지요. 03-19
병장 임정우
제가 광신의 세계를 절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 역시 하나의 세계이지요.
궤론은 그럴듯해서 좋아하지만 그래도 아닌건 아닌거라 생각하는 주의입니다.
물론 맹신할 정도는 아니지만. 03-19
병장 성태식
정우//글쎄요. 광신도와 이성적 사람이 같이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좀 더 나아가 서로 다른 우리들이 같이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무리 찾아봐도 해답이 안 나와요. 원래 해답이 없는 주제인가보네요.
옳고 그름의 기준을 없애면 하나의 해답이 될 수는 있지요.
그렇지만 그것도 애시당초 불가능하지요.
뭔가 다른걸 찾아야 되는데, 그건 도저히 모르겠군요.
설령 찾았다 해도 실현하는 과정에서 또다시 '다른 것'을 배척해야 하지요.
뭐. 어쩌겠습니까. 세상 그렇게 쉽게 안 망한다고 생각하며 살아야죠.(웃음) 03-19
병장 오기환
태생적으로 지 와 광신 은 공존할 수 없는 것이죠.
지를 지향하는 순간, 광신이란 것은 불가능하게 되는 것이고,
광신에 물드는 순간, 지는 지가 아니게 되지요.
공존은 불가능하겠고.. 공생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03-19
병장 김정환
신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이 세계가 존재할 수 없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신과 인간이 동시에 존재할 이유가 없죠. 03-19
병장 임정우
태식 / 우리끼리 사는건 문제가 안됩니다.
어떤짓을 해도 우리는 살기 마련이거든요.
물론 개인은 못살지도 모르지만 인류는 살아갈겁니다.
' 배척' 역시 자연스러움의 일부이고 인간도 역시 일부니깐요.
저는 개인과 전체를 동시에 인지하고자 하는 심정이지만
실제 자연스러움 -신의 의도라고도 생각되는- 은 우리를 우리로만
판단하는것 같아요. 물론 아마도요. 03-19
병장 김현동
승일님의 입장이라면 뭐가 옳고 뭐가 그르다 라는 판단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해합니다. 03-19
병장 임정우
헉. 나타나셨다. 뜬금없지만 괜히 반가와요. 03-19
병장 심승보
좀 엉뚱한 얘기이긴 합니다. 글 중에 나온, 어떤 분께서 코뼈의 움직임으로 완치되었다고 주장하는 질환은 '충농증'이 아니라 '축농증'이 맞습니다. '고름(膿)이 쌓이다(蓄)'의 의미이니까요.
-> 축농-증(蓄膿症)[충-쯩] 의학체강(體腔) 안에 고름이 괴는 병. 원래는 늑막강, 부비강, 관절, 뇌강 따위에 고름이 괴는 것을 의미하지만 일반적으로 부비강 점막의 염증을 이른다. 두통, 협부 긴장 따위를 일으켜 건망증이 되고 때로는 악취가 나는 건락 같은 분비물이 코에서 나온다. ≒부비강염상악동 축농증축농. 03-19
병장 임정우
승보 / 승보님이 제일이여요. 저도 축농증 있었어요. 시간 지나니깐 낫던걸요. 별로 기도한적도 없었던거 같은데. 03-19
병장 정준엽
참 놀라운 경험을 하셨군요.
계기야 어찌 되었든, 이성이 제대로 추방당한 경험은 정말 희귀한 경험이죠. 03-19
병장 성태식
정우//배척이 자연스러움의 일부인 것은 인정합니다. 사람 사는 곳에서 어쩔 수 없지요.
그러나 이 경우 배척을 통한 다툼이 문제입니다.
배척이 자연스럽다 하여 아리아인종이 유대인종을 배척하는것 까지 용납할 수는 없지요.
그러므로 배척과 배척으로 인한 다툼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그 다툼을 줄이려는 노력을 포기하는 일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03-19
병장 임정우
태식 / 마지막 말에는 조금도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군요. (웃음) 03-19
병장 심승보
제 생각에 그 친구분은 독단에 빠져 자신도 알 수 없는 말들을 지껄인 것에 불과합니다. 그는 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독단으로 명한 것이겠지요. 저는 그가 물러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승일씨께서는 자정작용을 완전히 상실한 인간의 모습에 공포를 느끼신 게 아닐까 합니다. 이 세상에 대체 악마가 어디 있습니까. 기도로 코뼈가 움직여 축농증이 낳았다는 것 역시 자신의 망상이 짜맞춘 시나리오일 뿐입니다. 전,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해서, 거짓말을 거짓말이라고 하지 못하는 입신의 단계에 들어섰다고 판단합니다. 03-19
병장 성태식
승보//글쎄요. 하지만 그 사람은 자신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 사람이 자신의 오류를 깨닫게 만들 방법은 무엇일까요?
어쩌면 그냥 내버려 두는게 최선의 해결책일지도 모르겠네요.(웃음)
저는 승일씨와 같은 느낌을 저와 같은 교회 사람들에게도 받지만,
조중동을 비난하는 사람이나 (요즘은 조문동이라고 하더군요.)
좌/우파의 사람들, 학생운동 하는 사람들에게서 받습니다.
기독교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서도 같은 느낌을 받지요.
' 반 기독교 연합'이라는 사이트에 가면 이런 느낌을 쉽게 받으실걸로 믿습니다.
제 생각에 이건 기독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문제입니다.
한 광신도의 거짓말이라고 하기에는 이 문제의 중요성이 너무 큽니다.
정우//동의하신다는 말씀이신지 동의하지 않으신다는 말씀이신지, 약간 애매하군요.
그렇지 않다면 동의하되, 이 경우에 적용할 수는 없다는 말씀이신가요?
동의하신다면 정우씨의 해결책 이나 노력을 알고 싶습니다.
동의하지 않으신다면. 뭐. 어쩔 수 없겠지요.
만일 이 경우에 적용할 수 없다면 그 이유를 추가적으로 알고 싶습니다. 03-19
병장 임정우
태식 / 저도 막상 쓰고 보니 비꼬는 투로 써졌는데 사실 그럴 의도는 없었습니다. 변명을 하자면 댓글다는 시점에 제가 다른 커뮤니티에 음반리뷰를 쓰는 중이었고 거기에 쓰는 말투 - 돌려 돌려 말하는- 가 저도 모르는 사이에 개입되었던거 같아요. 쓰고 나서 금방 알았고 지울까도 했는데, 굳이 지울것 까진 없다고 생각해서요.
정말로 마지막 줄에는 동의한다는 뜻이에요. 03-19
상병 김지민
종교 개념 자체가 없다면 그러한 소름이 있었을까요. 어차피 인위의 산물. 인위의 세계관. 인위 안에서 소름이 돋아봤자 인위의 소산일 뿐이겠지요. 그것은 인위로 형성된 공포일 뿐이지 승일님을 벗어난 공포는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다만 승일님께 축적된 어느 정도의 종교적 개념에서 생성된 것이겠지요.
저는 무신론자는 아닙니다만. 종교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입니다. 예전에도 한번 책마을에서 종교토론이 한번 거나하게 벌어진 적이 있었는데, 이 게시물에서도 그런 논쟁이 기대되네요. 히히 03-19
병장 성태식
정우//으음. 멀티태스킹은 원래 어려운 작업이니까요.(웃음)
정우씨의 생각은 무엇인지 정말로 궁금합니다.
저의 해법은 지나치게 무력하고 극단적이라 쓸만한 녀석이 못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승보씨와 승일씨, 그리고 여기에 리플을 다신 다른 분들도 동참해주세요~(웃음) 03-19
병장 임정우
태식 / 저역시 종교와 신에 대해 정말 많은 생각을 해봤지만.
머리속에 엉켜있는 수많은 생각들을 정리할 수준이 못되어,
특별한 결론이 없는 실정입니다.
저는 기독교를 9년가량 다녔고 마지막 1년정도는 의심이 갑작스레 저를 잠식하는 바람에 제대로 다녔다고 할수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기독교라는 종교에 국한해서 의심을 갖고 있는 수준입니다만, 그런걸 떠나서라도 신이란 존재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입니다.
신의 존재 자체에 의심한다기 보다는 저라는 개인이 바라보는 신의 인격 -어감이 이상하지만- 에 대한 불만정도일 뿐이지요. 단지 의심이 된다면 의심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로 신이 위대하다면 의심에 마지막에서도 역시 완전한 존재로 존재할테니 말이죠. 의심자체를 단절하는 종교의 교리 자체가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고 보여집니다. 03-19
병장 오기환
글쎄요. 서로 방관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요.
서로에게 서로를 강요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서요.
제 입장에서야 회개하지 않으면 지옥의 유황불에 떨어질거라는 말이 짬뽕날 뿐이고,
그네들이야 나는 사탄에 물든 놈이겠지만..
그저 서로 '귀찮게' 하지 않으면 됩니다. 그 뿐이에요.
정우// 진정 위대한 사람은 자신이 위대하다고 광고하지도 않고, 자신이 위대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이가 있다고 해서 시뻘개진 얼굴로 달려들지도 않습니다. 기독교는 위대할지 모릅니다만(사실.. 아닐거라고 생각하기는 합니다만), 기독교인들은 위대하지 않은 이들이 정말 많지요. 03-19
병장 임정우
기환 / 기독교인에 뭐라 말한 기억은 없는걸요. 저는 단지 종교가 인간의 사고를 제한한다면 그것이 부정되어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기환님 말씀대로 방관하는게 가장 좋아요. 물론 건드리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 03-19
병장 정준엽
에... 종교에 대한 토론은 좋은데, 다른 글을 통해 생산적으로 하는 것이 어떨까요?
제 생각에 승일씨가 이 글을 쓴 애초의 의도는, 이성이 전혀 의미 없었던 경험을 해서 대략 두렵다는 것이었는데... 03-19
병장 오기환
정우// 글쎄요. 굳이 기독교인들을 언급했던 것은, 그렇게 '위대하지 못한' 교인들때문에 기독교라는 종교가 어떤 면에서는 필요 이상으로 낮은 취급을 받지 않나 하는 마음에 조금 더 덧붙여 보았던 겁니다. 모든 기독교인들이 정말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준다면, 저 같은 사람도 한 번 개종을 고려해볼텐데 말이죠. (웃음) 03-19
병장 임정우
준엽 /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03-19
상병 유내원
종교와 기도는 별개일수도 있습니다.
기도(혹은 명상)은 모든 종교인들의 기본이고,
대상만 달라지게 된거죠.
기도를 하느님에게 하면 하느님의 말씀이 들리고
부처님께 하면 부처님의 말씀이 들립니다.
결국은 모든 것은 마음, 즉 나 자신에게 있지 않을까요? 03-19
병장 성태식
준엽//승일씨가 단지 감정만을 이야기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만, 준엽씨 지적이 옳군요.
다른 글로 더 이야기하는게 좋겠습니다. 03-19
병장 정준엽
누군가 총대를 매 준다면... (대략 떠넘기기. 후다닥.) 03-19
병장 성태식
준엽//저는 능력이 안되서리...(같이가요~) 03-19
병장 정준엽
뭐랄까 승일씨는 이성, 감성도 아닌 제 3의 성에 접한 것이군요.
그 첫 느낌은 공포이구요. 항상 높은 곳에 있던 이성이 자리를 뺐겼기 때문이죠.
그러나, 저는 이성이 반드시 그 자리에 있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성을 가장 높은 곳에'만' 두는 순간부터 우리가 세계를 보는 시각은 절름발이가 되는 것이죠. 삼국지에서 제갈공명이 유비에게 처음 했던 이야기가 솥다리 3개가 균형을 이루는 천하 삼분지계였거든요. 이성과 감성과 지금 말한 제 3의 성도 같은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이를 발견한 계기가 폭력적인(넌 악마야!) 광신에 의한 것이라고 해도 승일씨는 상당히 중요한 발견을 한 것이 분명해요. 03-19
상병 전영재
중세시대의 장면과, 마녀 화형의 장면과, 십자군 학살의 모습을 떠오르게 하는군요.
씁쓸합니다. 03-19
병장 배진호
마녀화형이라.. 그렇군요.. 또하나의 희생자인걸까요?!
승일님의 친구인데.. 우리가 무슨 이유와 목적으로
그 사람에 대해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일까요?!
승일님의 친구라면 존중받아야할 정녕 친구라면..
승일님이 이러한 글로 인해서.. 친구가 받아야할 것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게 될지 알 수가 없네요..
모두가 사람이고.. 광신도 사람이고 무신론도 사람입니다..
누가 누구를 비판할 수도 없고..
누가 누군가를 욕할 수도 없다고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단지 우리는 지켜볼 수 있고 관찰할 수 있고 생각할 수 있을뿐...
우리가 당시의 상황이고 당사자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막연한 추측을 할 수 있을 뿐이지..
그것에 대해서 어떻다 어떻다라고 이야기하는것도
사실은 조심스러워 지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03-19
상병 박하림
유신·무신에 대한 종교토론은 무의미합니다. 간단히 말하면, 유신이 신이 존재함을 증명해야 하듯이, 무신 또한 존재하지 않음을 증명해야하니까요. 신론은 하나의 논리적인 철학사상에 기반을 두느냐 마느냐의 선택지 중 하나일 뿐입니다. 물론, 그 선택지의 결정에 있어서도 기반이 되는 선택지 철학이 들어가겠지만요.
참고로 저는 뉴턴과 아인슈타인이 생각했던것처럼 신(저는 기독교)이 이 세계를 창조했으며이 세상의 구성이 완벽하다는데 사상에 동의합니다.
그리고.. 제가 보기에 승일님의 친구 분은 (소위 사탄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길이 어긋나고 있군요. 유신론자가 인문학 서적을 들여다보지 말아야 한다는건 어불성설입니다. 승일님은 친구 분을 무신론적 관점에서 옳은 길로 인도하려하지 마시고, 그의 유신론적 사상 기반에서 그에게 맞는 얘기와 책을 권해주셔야 할것 같습니다. 유신론을 버리느냐 마느냐는 다분히 그의 마음이니까.
일단, 가볍게 선물로 C.S. 루이스의... 젠장, 항상 이 책의 제목 첫 부분이 기억이 잘 안나네요. 〈~의 기독교〉를 선물하는건 어떻습니까? 03-19
병장 박동일
하림// <순전한 기독교> 인가요?
승일// 친구분이 신학을 공부하고자 하신다면 장신대 보다는 연대 신학과를 추천하세요. 지금 그분이 가지고 있는 높은 자존감이나 소명받는 자의 불성실한 태도는 무참히 부셔줄 테니까요. 03-19
병장 성태식
동일, 하림 // 순전한 기독교가 맞습니다.
C.S. 루이스를 굇수로 보이게 만드는 책이지요.
동일 // 연대 신학과. 자유주의도 아니고 복음주의도 아니라는 애매한 위치에 있다죠.
덕택에 좀 지나친 사람들의 머리를 두드려주는데 딱 알맞은 듯 합니다. 03-19
상병 전영재
// 진호
마녀화형의 장면을 언급한 것은 승일님의 친구가 마녀 화형의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지금 이 게시판에 친구분이 얘기를 주를 이루고 있긴 하지만 그에 대한 개인적인 비난 보다는 그의 생각의 위험성 -다른 것을 무조건 이단으로 취급하고 대화하지 않으려는 행동-과 공포-중세시대의 많이 보여졌던 모습-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다고 저는 판단합니다.
.
그런 경우에 이러한 사람에 대한 해법은 무엇이 있을까...우리는 이러한 사람과 어떻게 타협하고 대화하여 그 생각을 놓을 수 있게 할 수 있을까...라는 해결책에 있어서 답답함을 느끼는 거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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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신학을 공부하면 다행이지만 만약 저 상태로 계속된다면 자칫하면 자기만의 논리, 자기만의 길로 빠질 위험성이 큰것이 사실입니다.
음 한신대 신대원을 추천하는건..너무 극단적일지도 모르겠군요. 수위를 낮추어(?) 복음주의 서적을 추천하는게 낫게군요 03-19
병장 박제영
음.. 고양이는 뭔가요..?
... 월척인 듯? 03-19
상병 박재우
어리석은 제가 보기에는 말도 길고 너무 어렵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 친구분이 그의 생각이나, 아니면 그가 주장하듯 하나님으로 부터의 말을
몸소 실천해보이신다면 모든건 분명해지리라 봅니다.
그 친구분이 말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모든걸 버리고, (아니 어쩌면 그 자신에게 봤을때는 모든걸 얻는 길일수도 있지만) 신학대학원을 들어가고, 하나님의 가름침을 따라 살아간다면 우리가 그에게 뭐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하지만 그 반대로 그가 그 자신의 생각을 증명해 보이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를 비난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03-19
병장 김택근
역시 종교전쟁은 어느 커뮤니티나 반응이 거세군요
저도 기독교인입니다
겉으로만이 아닌 진정한 기독교인이 되고 싶은 그런 사람인데...
뭐 다른 사람들 보기엔 광적일수 있지요
삶의 우선순위가 무조건 종교이니까요
흠...
우리
죽어서 봅시다 03-19
병장 배진호
택근님 저도 기독교 인입니다.. 사실 이러한 글이 의도적으로
기독교를 비판할 의도가 없었지만.. 어쩃든
여러가지 내용과 생각들에 의해서
어떠한 부분 즉 광적인 부분이 비판받아졌다는 생각이 드네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위축감이 든다거나
뭐 약해지거나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삶의 우선순위가 종교라는것..
그것은 솔직히 생각해서 남들이 보았을때
가장 이해할 수 없는 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기독교인이 된다는것! 그것은
어쩌면 남들보다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것이지요.. 실망하지 마세요..
그리고 낙담하지 마세요
영재님 음.. 뭐 영재님이 전달하신 의도를 제가 조금은 잘못 받아들인것 같군요
하지만 전 그것을 통해서 단지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것 뿐입니다..
한발자국만 떨어져서 글들을 보게 된다면..
제 말을 이해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03-19
상병 김지민
택근 / 결국은 또 예수천국 불신지옥입니까? 03-19
병장 한승호
저는 신의 가차없는 면이 마음에 들던데요
그리고 온전한 신의 모습을 보는 '사람'이 있을까요
같은 기독교인 이라도 모두 다른 모습을 마음속에 품고있다고
생각합니다
논쟁 해봤자 결론은 없다는거
지적 투쟁을 즐기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은?
신을 논한다는 자체가
너무나 추상적인 인간의 언어로는 어려운 영역이죠 03-19
병장 이승일
이렇게 많은 분들이 답글을 다실줄은 몰랐습니다. 괜한 글을 올려서 분란을 일으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나름대로의 의미는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이 문제에 관한한 그 어느쪽 의견에 관해서도 확신이 없습니다. 하지만 어느쪽인가는 분명히 옳을테고,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논의하는 것이 무가치하거나 지적 유희일 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결코 결론에 도달할 수 없다는 주장도 단지 또 하나의 근거없는 독단적 판단인 것은 분명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설사 기독교가 완전히 진실이라고 해도, 그것에 대한 비판을 허용하는 것은 결코 잘못된 행동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통해서 기독교인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설득시킬 수 있을지 고민해볼 수 있고, 또 자신이 아직 깨닫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해 볼 수 있을테니까요. 뿐만아니라 자신의 믿음을 꼭 수정하지 않더라도, 비판은 그 믿음이 생동감을 잃어버리지 않고 항상 살아있게끔 만들어 줄 것입니다. 기독교가 만약 진실이 아니라면, 당연히 이러한 비판은 있어야하겠지요.
결론적으로 기독교가 진실이건 아니건, 그것에 대한 비판이나 논의 혹은 정당화의 노력은 결코 무가치한 것이 아니며, 그것을 무가치하게 느끼게 만드는 것은 진리의 신성함이라기보다는 개개인의 게으름이나 오만, 무지 따위가 아닐까 합니다. 저 역시 이런 경향이 짙었기 때문에 스스로 반성하는 차원에서 말씀드렸습니다. 03-19 *
병장 한승호
승일/ 아~ 실수 단정지어 버렸군요 03-20
병장 성태식
승일//(웃음) 여기서도 세계관의 차이가 확연이 드러나는군요.
저는 기독교인이지만, 제가 하나님을 믿는 것과 하나님이 일반적 의미로 '존재'하는건 다르게 봅니다. 따라서 저 역시 어느 쪽 의견에 관해서도 확신이 없지요.
하지만 저는 어느쪽도 옳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결코 결론에 도달할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한 충분한 근거가 있다고 생각하지요.
따라서 '기독교가 옳으냐? 비기독교가 옳으나?'라는 논쟁보다는 기독교가 자신 안에서 어떻게 '옳음'을 관철하는지, 그리고 비기독교가 자신의 관점에서 어떻게 '옳음'을 관철할지 드러내 보이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줄로 말해, 비판은 의미가 없지만 대화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경우 심각하게 문제가 되는 부분은 대화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충돌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므로 최우선 과제는 다투지 않고 의견을 교환하는 방법으로 생각됩니다.
이건 개개인의 이성적 능력을 키운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평소에 그렇지 않던 분들도 기독교 관련 주제로 리플을 다실 때는 조금 격양된듯 하니까요.
지독하게 어려운 문제예요. 어쩌면 좋을지 감이 안 잡히는중.
지민//안타깝지만, '예수천국 불신지옥'은 기독교의 기본 원리입니다.
단지 그 기본 원리가 극명한 대조를 통해 강렬하게 표현되었을 뿐이지요.
지민씨의 리플은 기독교인들이 다른 사람의 주장을 완전히 무시하고
자기 말만 하는 현상을 적절히 꼬집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발언이 의견의 교환에 적절하지는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택근//죽어서 보자는 발언은 조금 위험하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그 발언의 진의는 이해가 갑니다만, 경험상 첨예한 대립의 상황에서는
사소한 표현 하나가 싸움의 시작을 불러 일으키는 경우가 많더군요.
조금만 더 신경 써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03-20
병장 김택근
음.. 저의 발언이 문제가 되나 보군요..
전 전도를 좀 하러 다니는 편이었습니다
일반사람들의 생각을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많이 이해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기독교에서 말하는 '믿지 않는 사람들'하고도 잘 지냄니다
대학교 내내 기독교 동아리에서 지냈고
그곳에서 삶의 의미와 이유를 찾았고 그 이유대로 살아 가려 노력하는 중입니다
죽기 전까지의 세상은 그저 눈에 보이는것이 다 입니다
특별한 접촉없이는 기독교를 이해하기 힘들죠
죽어서 보자는 말은...
저의 결론 입니다
극단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알수 없습니다
자신이 안믿겠다고 마음 먹은 사람들을 믿게 하는건 정말 힘들고
그런 사람들은 평소의 평생의 신념대로 살다가...
사망합니다.
사후세계를 믿었던 안믿었던 죽게 되지요
그리고...
기독교에서 말하는 영원을 살아 갑니다
천국과 지옥의 존재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한 사람은 없습니다
음.. 부정적으로 설명한 사람들은 많았지만요 (웃음)
성경대로라면..
구원받지 못한 모든이들은 그저 지옥에 가서 영원히 고통받습니다
독선적이죠...
극단적이고
왜 예수만이 천국가는 길이냐?
이유는 좀 긴데...
..
.
따로 글을 올려야 하나?
하지만
자기의 주관이 있고 생각이 깊다고 자신하고
자기의 이론과 논리에 자신감이 있는 사람은
기독교를 이해하기 힘든부분이 많습니다
하지만
더욱 깊이 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지식을 동원하여 기독교를 공격해서
그에 타당한
기독교가 어떻게 해서도 반박할수 없는 논리를 세워보세요
그러려다 실패해서 믿게된 수많은 석학들의 기분을
알아갔으면 좋겠습니다... 03-20
상병 김지민
기독교가 반박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 지는데요. 파고들면 파고들 수록 '비합리적'인게 종교아닌가요. 사실 저도 영세를 받고 심지어 견진성사까지 받아서 대부가 될 수 있는 천주교도의 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제가 믿는 것은 신일 뿐이고 격식을 천주교로 차용할 뿐이지 교리를 덮어놓고 신봉하는 것은 아닙니다. 교리에 대해서 회의적일 수 있는 것이 어째서 나쁜가요? 신의 말씀이라구요? 혹여 그것이 그 잘난 유구한 역사를 통해 왜곡된 기술이라면 오히려 신에 대한 모독 아닙니까?
그리고 설령 저는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이 정말 올바른 교리더라도, 오로지 그것을 목적으로 신앙을 가지는 것이 얼마나 '신성하지 못한' 일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참으로 가식적이고 목적적인 행위지요. 혹시 제가 신이라면 -물론 신을 인간의 범주에서 생각하는 것은 크나큰 오만이겠습니다만은 - 그런 사람들은 나락으로 쳐박아 버릴겝니다. 아무 대가 없이 순수하게 신을 경이롭게 여기고 신봉했던 이들에게 축복을 내리면 내리겠지요
제가 '결국은 예수 천국 불신 지옥입니까?' 라고 했던것은, 결국 기독교의 결론이 그런 목적적이고 의도적인 '신성치못한' 종교라는 점에 대해서 또한번 좌절했기 때문입니다. 03-20
상병 김지민
교회가 선교되기 전 세계의 모든 인구는 다 태어난 이유도 없이, 기회도 부여받지 못한 채 지옥으로 떨어졌군요. 저는 그게 가장 어이 없습니다. 03-20
병장 성태식
택근 // 그냥 '죽기 전에는 확실한 해답을 알 수 없다.'라고 표현해 주시면 안 될까요?
제 관점에서 기독교를 반박할 논리는 없습니다.
그러나 반박할 논리가 없다고 해서 기독교가 옳은 것은 아닙니다.
기독교를 옹호할 수 있는 논리가 성립할 때에만 기독교는 옳습니다.
기독교를 옹호할 수 있는 완벽한 논리도 없으니
기독교의 옳고 그름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없지요.
지민//그렇기 때문에 그건 지민님께서 기독교를 믿지 않아도 되는 근거가 됩니다.
그러나 그 이유로 기독교인을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오류가 있는 종교를 믿는 행위는 악이 아닙니다.
만일 지민님께서 기독교에 오류가 있다고 생각하시고, 그 오류를 밝히려고 생각하신다면
기독교인을 불쌍하게 바라보셔야지 짜증나게 바라보시면 안되지 않을까요.
선교 전의 인구가 기회도 없이 지옥으로 떨어졌다는 주장에 대해 한 번 살펴보지요.
어느 날 산사태가 일어났습니다. 한 마을이 작살났지요.
그 마을 사람들은 대피할 여유도 없이 죽었습니다.
이 사례와 선교의 사례는 '신'을 제외하면 같습니다.
산 아래 마을에 태어난 아이나 비기독교가정에 태어난 아이나
다 우연히 태어났으니까요.
산사태로 죽은 아이는 자연법칙에 의해 죽은거고
지옥에 간 아이는 신이 정한 세상의 법칙에 의해 죽은 것입니다.
하지만 지민님은 자연 법칙을 '어이없다'고 표현하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마음에 안 들면, 안 믿으시면 됩니다.
그리고 '이러이러한 이유로 난 신이 싫다.'고 차분하게 말씀해 주시면 충분합니다.
마지막으로 저 위의 준엽씨의 지적대로,
이 논쟁이 리플을 통하지 않고 새로운 글을 통해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 03-20
병장 박희원
택근 // 택근씨 여기서도 뵙네요, 택근씨가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지에 대해서는 알지만 그래도 죽어서봅시다 라는 발언은 약간 위험하다고 생각되구요. 논리적으로 따져라! 라는 발언도 솔직히 또 약간의 시비조로 보여서 분명히 다른 파장이 일어날것이라고 생각하구요. 저도 기독교이므로 말씀드리는거지만, 어느문제점에서는 분명히 논리적으로 저희도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기독교인들 안에서는 모르겠지만, 다른 비기독교인들은 일단 뭐랄까 받아들이는 부분이 다를수도 있기 때문이죠..
지민// 지민씨, 한국땅에 교회가 선교되기 전에 대한 문제로 말씀드리고 싶은데, 물론 어떻게 생각하면 그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저도 궁금했던 적이 있었구요. 그리고 제가 직접 물어본건 아니고, 누군가 얘기를 하는건 잠시 들은바가 있었습니다.(어렸을적이라 제대로 생각이 나지는 않습니다. 흑흑 죄송해요, 무척이나) 아니 죄송하다기 보다는, 제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이런 발언을 하면 안되는것 같기도 하지만.. 그 시대에는 기독교적으로 하나님께서 양심심판이라는게 있었다고 들었는데.. 더이상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그 시대의 사람들이 무조건 지옥으로 떨어지지는 않았다고 들었어요(하아..들었다는 말에 또 울컥하실지도..)
아.. 여기에 대해서는 나가게 되면 알아보고 알아보리라고 다짐했었는데 계속 귀찮아서 안 알아봤던 제 자신이 한심스러워지는군요(땀) 03-20
병장 김택근
희원// 제가 좀 공격적이라서요.. 옜날에 전도여행다닐때도 어떤아저씨한테 흥분하다거 큰소리쳐본... 하여간 조심은 하는데... 헤헷 그래도 저 자체는 밝답니다 03-20
병장 박희원
택근 // 저도 그렇긴 했는데, 그래서 좋았던건 없던것 같거든요, 결국에 그사람한테도 상처를 주게 되는것 같아서요 뭐,, 03-20
병장 김진욱
우선 저는 기독교인입니다. 글을 쭉 읽다가 이런 성경 구절이 떠오르더군요.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
진리를 알면 진정으로 우리는 자유케 될것입니다. 03-20
병장 임정우
진욱 / 자유롭게 되었다고 꼭 진리는 아니지요. 03-20
병장 박희원
기독교적으로 그냥 자유로운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안에서 그 안에서 자유해야 하는것이죠.. 03-20
병장 김택근
흑 전 말을 잘 못해요
그냥.. 논리적이지 못한건지.. 참... 03-20
상병 김지민
조낸 길게 썼는데 로가웃 되서 다 떨궜습니다. 의욕 상실이지만 간단하게나마 요약해서 답글 답니다.
태식 / 산사태의 경우에도 '어이없다'가 맞습니다. 제가 산사태를 통해 사망한 아이와 연관이 되어있다면 '어이없다'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관련이 없을 지라도 조금만 감정이입을 했을 때 '어이없다'라는 감정은 당연히 생깁니다. 그래서 딱한 뉴스를 보며 사람들이 혀를 차는 겁니다.
쯔쯔.
어이 없잖아요. 아닌가요? 불쌍하잖아요. 아닌가요?
물론 이것도 신의 경지를 인간이 감히 이해할 수 있는가 아닌가. 신의 행동을 어이없다고 말 할 수 있는가 아닌가의 결론으로 이어지겠지만, 태식씨의 논리에 대한 반박은 이겁니다.
' 어이없음'
그리고 타 종교와 달리 기독교의 경우는 그 배타성이 너무나 짙어서 '안믿으면 땡'이 통하지 않습니다. '불신 지옥'이라는 엄청난 타이틀을 달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는 존재 자체로 폭력이 됩니다. '안믿는 놈들(일테면 김지민)은 지옥에나 가라' 라는 말을 잠정적으로 달고 있는 겁니다. 물론 제가 임의로 폭력적으로 바꾸긴 했습니다만, 제가 무슨 말을 하려하는 것인지는 이해하시리라 생각 합니다. 일테면 거짓말 하지 않았는데 거짓말 했다고 누가 억울하게 뒤집어 씌우는 것과 비슷한 이치입니다. 이럴 경우에도 '나는 거짓말 안했는데 뭐' 라고 치부해 버리면 땡입니까? 거짓말을 했기 때문에 이어지는 후폭풍(신뢰가 떨어진다던가, 사람들이 싫어한다던가)은 둘째치고라도 누명씌워지는 억울함은 어떻게 해소한다는 말입니까?
' 지옥에 가는 사람' 으로 분류된 저의 억울함은 어디서 해소합니까? 그냥 안믿으면 그만입니까? 기독교가 주류인 이 사회에서, 저는 그냥 '안 믿으면 땡'하고 말아버리면 그만입니까? 몇번씩이고 그런 충돌속에서 사는데도요? 그런 무책임한 말이 어디있나요. 저는 폭력속에 있는데요. 저는 기분이 불쾌한데요. 저는 지옥에 가는 사람이라는데요
게다가 여기에는 제가 안믿는다고 해서 피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저라고 아는 것 하나 없는 사후세계에 대해 딱 '이렇다'라고 논하는 종교가 다수의 힘으로 자리잡고 있다면, 거기에 대해서 저는 공포를 느낄 수 밖에 없지요.
기독교가 선교하는 방법은 '공포'입니다. 라고 생각합니다 03-20
병장 성태식
지민 // '어이없음'에 동감합니다.
그래서 종교적 감수성이 뛰어난 사람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을 '진짜로'불쌍하게 여기죠.
( 저는 아직 그 경지에 다다르지 못했습니다. (웃음)
아마 평생 다다르지 못할거예요. 제 스타일상 종교적 감수성을 느끼기는 좀.)
글쎄요. '지옥에 가는 사람'으로 분류된 사람의 억울함.
저는 이걸 지옥에 가는것도 아니고 안 가는 것도 아닌 상태로 풀기는 하는데
이걸 설명하기는 좀 '많이' 어렵군요.
( 라고 쓰고, 승일씨가 무서워서.. 라고 읽는다.)
' 지민씨가 지옥에 갈것이다.'라는 말은 마치
' 지민씨는 1년 이내로 파산할 것이다.'라는 말과 같습니다.
즉, 지민씨의 미래에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보입니다.
지민씨가 1년 이내에 파산할거라는 이야기는 지민씨께서 재정상태를
다시 한 번 점검해 보라는 충고가 담겨 있습니다.
기독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옥에 가지 않을 방법. 즉 해결책이 있는데
왜 해결책을 사용하지 않느냐고 하지요.
그러나 이 이야기는 기독교의 주장을 들어본 사람에게 국한되는 말이며
기독교의 주장을 듣지도 못한 사람에게 적용할 말은 아닙니다.
따라서 위의 대답은 기독교적 측면에서 한 대답이고,
기독교의 주장을 듣지 못한 사람에게는 인간적인 대답을 해야겠지요.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은 앞서 말씀드린 대로 '조낸'어렵습니다.
결론만 간단히 이야기하면, 기독교의 주장을 듣건 말건
지민씨의 마음 속에는 지옥이 없습니다.
또한 우리는 우리의 지옥이 지민씨에게 영향을 미칠거라는
확고한 증거를 갖지 못합니다.
한문장으로 압축하면, '모니터가 존재한다.'는 문장과 '지옥이 존재한다'는 문장은
그 적용범위가 다릅니다. (다르게 말해 '존재한다'는 단어의 의미가 다릅니다.)
마지막으로. 불쾌한 기분이 드시는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민씨의 생각과 기분이 소중한 만큼, 기독교인의 생각과 기분도 소중합니다.
부처의 생각중 일부는 '해탈하지 못하면 윤회 때 좋지 못한 꼴을 보게 된다.'인데
지민씨와 동일한 논리로 부처의 생각을 불쾌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부처의 생각에 대해 뭐라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제 생각을 최대한 짧게 압축하면.
기독교와 하나님에 대해 욕을 하건 어떻게 하건. 그건 지민씨의 자유입니다.
신적인건 신경쓸 필요가 없습니다.
( 물론 기독교인인 저의 입장에서는 말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이 지민씨의 불신앙에 대해 비난하는 것이 부당하듯
지민씨도 기독교인의 신앙에 대해 비난하지 못하십니다. 03-20
상병 김지민
결국은 서로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쌩을 까자는 결론이지요. 그것은 바로 배타성에서 기인합니다. 나의 공격은 정당방위입니다. 내가 먼저 신앙을 비난하는게 아니고, 내 불신앙이 '불신지옥'으로 위협받기 때문에 반론을 제기하고 그 교리조차 뒤 엎어 버리려는 것입니다.
죽기 전에 지옥에 가지 않기 위해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두가지입니다 (제 입장에서)
' 기독교를 믿는다' (예수천국)
그리고
' 지옥을 부정한다'
물론 지옥을 부정한다고 해서 진짜로 존재하는 지옥이 (만약 실존한다면) 없어질리는 없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밑져봐야 본전인 격으로 기독교를 믿고 보는 것일 겝니다. 그러다가 신앙이 깊어지고,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그렇게 되는 것이겠지요.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종교의 처음 시작은 단순했겠지요. 그것은 모태신앙일수록 그러합니다. 권선징악적인 교리를 통해 '예수천국 불신지옥'으로 시작되는 기독교는 개개인에게 그렇게 시작되는 것일 겁니다.
어쩌면 제가 이토록 열을 내는 이유는 제가 '천주교도'이며, 나름대로 신을 믿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도' 교리에 의하면 '지옥에 떨어지는 자'로 분류되기 때문에 그 공포로 열을 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공포에 짓눌려서. 사후세계에 짓눌려서... 아 젠장. 슬프다
그래서 결국 결론은,
1. 무서우니까 그만해
2. 무서워도 안 믿을거야
3. 무서워서 믿는건 비겁하니까
4. 별 생각이 없을 때 기독교를 믿은 사람들은 좋겠다. 의심할 여지도 없었던 채 바로 천국의(있을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주민이니까.
5. 그렇다면 기독교는 어떤 의미에서 부르주아가 아닐까
아 물론 4, 5번은 조금 헛소리고
6. 그러니까 이미 순수하게 믿음으로 봉착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믿음을 강요하지 말아주오
7. 만약에 기독교의 교리가 '불신지옥'이 아니라 '이웃들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으면 지옥에 가게된다' 정도의 권선징악적 교리였다면 '해탈하지 못하면 윤회 때 좋지 못한 꼴을 보게된다'처럼 불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해탈도 불교에서는 '선'일 테니까요)
8. 그리고 제가 공격하는 것은 기독교도가 아니고 기독교 교리입니다.는 것은 확실히 해야겠군요. 믿든 말든 제가 어쩔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제가 쓴 댓글 중에 기독교인을 모욕하는 대목이 있었다면 사과 드리겠습니다. 03-20
병장 배진호
엄청난 스크롤의 압박에 할 말이 없군요..
완벽한 답을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C.S 루이스의 천국과 지옥의 이혼이라는 책을 한번 읽어보신다면
굳이 지옥이라고 해서 열을 낼 필요는 없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그곳에서 묘사된 지옥은 어쩌면 나쁘지 않네 정도로 치부될 정도로 묘사되니까요
자세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너무 이야기가 길어질 것같아서 간단히 필요한 부분만 이야기 하겠습니다.
사실상 우리는 지옥이라는 것에 대해서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도 비유적으로 지옥을 이야기 하고 있을 뿐이지
실제로 지옥이 있다면 과연 무엇일까? 라는 의문은 머릿속에서 항상 맴돌게 되지요
그럼 존재가 없어지는것! 그것 자체가 지옥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아니면 실제로 우리가 느끼는 그러한 일부의 고통의 연속이 지옥인 것일까?
라는 생각도 듭니다. 때로 이빨이 아파서 참을 수 없는 두통과 치통을 느낄때
이 고통이 만약 연속적으로 이어진다면 지옥이 아닐까 하는 그러한 느낌도
받은적이 있습니다만, 죽게 된다면 아마도 신경이 전반적으로 죽어버리기
때문에 그러한 염려는 없겠지요..
어쨋든 그 책에서 표현하고 있는 지옥에 관련된 묘사는 회색도시 입니다.
밝은 색도 아니고 어두은 색도 아닌 단지 회색도시..
그 곳의 사람들은 죽었을때의 삶들을 반복하며 살아가고 있지요
화를 잘내는 사람은 매일같이 자신의 화에 못이겨서 살아가고 있고
등등.. 단지 몇가지를 보아서는 지옥의 단점이라는 것은 없어보이고
단지 그러한 것이 지속적이고 계속적으로 된다고 묘사되고 있습니다.
뭐 그렇다면 공간은 어떻게 되는가?! 죽은 사람이 생기면 그 공간은
무한하게 확장된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공간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말이죠..
이 이야기가 성경적인 내용에 기초로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약간은 성경적인 부분이 들어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보다는 다른 부분이 더 많다는 생각이 들었죠
어쨋건 그 내용이 그래 지옥이 있다면 이런식으로 존재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게끔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즉 어떠한 강요도 없고
어떠한 위협도 없었고 그냥 읽혀진 그런 책이었습니다.
한번쯤 읽어보시면 흥미로운 이야기라고 느껴지실듯 하네요.
참 그리고 주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진다는 이야기는 사실상
제가 그 교리를 믿고 있긴 하지만 서도 슬픈이야기라는
생각은 언제나 하고 있답니다. 왜.. 같은 사람인데 그래야만 할까?..
심판이 존재할 필요성이 과연 있는 것일까?와 같은 의문 말이지요..
뭐 그렇다고 성경을 찢어 버릴 순 없자나요.. 03-20
병장 임정우
지민 / 7번, 으하하하하하~~ 03-21
병장 박상호
주워들은 얘깁니다만(죄송합니다).
카톨릭 교회의 교리와 개신교 교회의 교리의 큰 차이점중 하나.
기독교의 기본 교리는 믿음에 실천이 함께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허나 개신교 측에선, 실천을 뺀 믿음만을 강조하는 쪽으로 선교 방향을 정합니다.
잘은 기억이 안나는데, 마르코 복음엔가에 보면 실천 없는 믿음은 빈 껍데긴가
뭐 이런 내용의 말씀이 있습니다. 개신교 쪽에선 이 구절 때문에 마르코복음(?)을
정규복음서(?)로 인정하지 않았었습니다. 지금은 어떤지 잘 모르겠군요.
먹고살기도 바쁜 와중에 실천까지 해야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교리보다는
믿기만 하면 천국에 가게 해준다는 교리가 대중들에겐 훨씬 매력적이었겠죠.
예수천국 불신지옥은 하느님의 말씀을 온전히 담고있지 못한
전략적 취사선택에 의한 반쪽짜리 표어일 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기독교에 적을 두고있기는 하지만 종교적 지식이 전무한지라 이정도로만. 꾸뻑 03-21
병장 배진호
상호님 확실하게 말하자면 실천은 후에 강조한다는게 조금은 옳은 표현이라고
생각되는것 같네요.. 사실 그 실천이라는 것이 상호님께서 말씀하셨던 듯이
대중에게는 부담스러운것이 사실입니다. 사랑을 받지도 못했는데 사랑을 실천하라니
'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인가?' 라는 것이 일반 사람들의 입장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기독교를 다니는 사람들도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렇게 사랑을 듬뿍받아서
남에게 줄 사랑을 키워놓은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사람들에게 사랑을
줄만큼의 여력이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대부분은 자신의 내면을 정리하기도 바쁜데 남을 신경쓸 여력까지는 없기때문이지요
결과적으로 개신교에서 믿음을 실천하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것은 교리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분명 성경에서도 믿음의 실천에 대하여
언급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사실상 약간 갈급한 사람들을 위해서
그 실천의 부분에 대하여 눈을 가리고 설교하는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들은 설교중 실천을 강조하신 목사님들의 설교도 꽤 있었습니다.
즉 그것은 어쩌면 목사님의 설교스타일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결국에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에 어떻게 쓰여져 있는가이고, 목사님이 해석하고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선포하는 가는 사실상 크게 중요한것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목사님이 우리를 구원 시켜줄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분명한것은 목사님의 말은 여러사람에게 구속력을 지니게 되며
여러사람들은 그 말을 신뢰하고 따르게 될 것이기 때문에 그 말의 강도와
정도의 세기에 대해서 분명이 넘겨 짚어야할 부분은 꽤 많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그것을 한사람이 바꿀수 없는 노릇이고 그 부분에 있어서는
역시나 각자에게 맡기는 수밖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다른 것을 선택하면 되니까요.
확실한 것은 확실하게 믿게 되었을 때 수반되는것은 실천과 실행이라는
벽이고 또한 그것을 행하는 의지와 마음가짐에 대한 자세라는 것입니다.
싫어서 하는 행위라면 때려치는 것이 옳습니다.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포함
되어 있을 수 없고 그것은 기조적인 사상에 위배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간단한 '믿는다'라는 의미가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것이고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예수가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은 극히 소수라고 했을까요?
왜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했을까요?
분명히 예수님은 자신을 믿기만 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역설적이지만 하지만 분명한것은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실제적으로 믿고 난 이후 그 믿음에 대한 실천을 하기는 더더욱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실천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는 가식적인 부분이 아닙니다.
' 진심'이 선행되어야 하고 누구를 도와주던지 그 근본을
해결하려는 노력과 마음을 움직이려는 노력이 포함되어야 하겠죠..
그것은 어쩌면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03-21
병장 이승일
아아, 저라는 놈은, 그리고 인간이라는 존재는 도대체 얼마나 더 어리석을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