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역인사] 인류의 생존을 위하여  
병장 정영목   2009-01-13 16:16:39, 조회: 259, 추천:0 

아, 저도 이제 전역인사를 해야 할 때가 왔군요. 감개무량 합니다. 2년이란 기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걸 진즉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형도 아니고 부도덕한 배우자'와 함께 살아야 했던 지난 세월은 정말 길고 고통스러웠습니다. 합법적으로 이혼을 할 수 있게 되는 이 시점에서, 새삼스레 재혼을 잘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이곳 생활에 대한 감상은 <아프리카의 타성과 그 개선책에 관한 소고>에서 이미 언급했으니 중언부언하지 않겠습니다. 여기선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어제 오후 9시경, MBC 로고송이 문득 귀에 와 닿았습니다.

"함께 꿈꾸는 세상, 언제나 MBC."

주요 방송사 중 가장 선호하는 MBC 채널에서 아름다운 멜로디와 뜻있는 메시지를 들으니 그저 마음이 훈훈할 따름이었죠. 헌데 제 생각은 갑작스레 엉뚱한 곳으로 튀어 버렸습니다.

'신자유주의로 대표되는 보수주의자들은 저 로고송을 들으면 아마 냉소적인 표정을 짓겠지?'

그냥 문득 들었던 생각인데, 의외로 마음에 들었어요. 그래서 계속 사고를 확장해 나갔습니다. 이젠 그들이 하나둘 나타나서 이렇게 말하기 시작하네요. 너희들은 현실을 몰라. 이곳은 정글이야(정글이어야 해). 함께 꿈꾸는 세상은 환상일 뿐이야. 그런 뜨거운 가슴도 주체 못해서야 대체 뭘 할 수 있겠어.

헌데 전 뜨거운 가슴이 아닙니다. 제 EQ는 평균 이하에요. 전 어디까지나 가슴보다 머리가 앞서는 사람입니다. 그런 저에게 보수주의자들이 냉철한 판단력 운운하면 '가소로울' 수밖에 없죠. 굼벵이 앞에서 주름잡는 것도 유분수지 원.

전 제 머릿속의 그들에게 이렇게 일갈했습니다.

"함께 꿈꾸는 세상은 '이루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는 그런 이상향이 아니오. 인류가 앞으로 생존하기 위해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 자신의 운명에 무관심한 이들이야말로 공부를 좀 하셔야겠군."

허수아비만 때려본 입파이터들은 조금 당황한 듯 논조를 살짝 바꿉니다. 너희들은 구체적인 대안이 없어!

"구체적 대안? 부당한 전쟁을 줄이기 위해 무력 조직에 노동조합을 도입할 수 있겠소? 그것이 힘들다면, 참교육의 실현을 위해 교육 현장에 시험을 없앨 수 있겠소? 이것마저 힘들다면, 자원 낭비를 막기 위한 소비세-누진세-환경세의 확대 도입은 어떻소? 어허, 제 주장이 현실에 동떨어진 주장이라고는 말하지 마오. 내게도 보이지 않는 손이 풍요를 가지고 온다는 믿음은 마치 신화 속 이야기 같고, 적자생존 밖에 모르는 편협한 입장은 <종의 기원> 첫 장이라도 펴봤는지 궁금할 따름이니까."

저의 완벽한 승리였습니다. 제 머릿속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죠.

허나 현실은 논리만으론 잘 되지 않습니다. 시크한 도시 남자라면 다 아는 사실이에요. 100번 말로 이겨도 1번 물리적으로 밀리면 끝입니다. 그래서 전 언제부턴가 대안 무력을 꿈꾸기 시작했어요. 인간의 모습을 한 효과적인 무력. 저는 그 답을 기계에서 찾았고,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을 검토해봤습니다. 아무래도 그런 AI를 직접 구현하기엔 너무 늦은 것 같으니, 다른 사람들이 비슷한 꿈을 꿀 수 있도록 서사시를 쓰고자 마음먹은 것이구요.

역사적 인물이나 소설 캐릭터들을 보면 저 같은 아이가 한 번 꼬이면 막무가내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답니다. <반지의 제왕>의 사루만이라던가 <워크래프트>의 말리고스가 그런 유형이지요. 뭐, 그네들만큼 저 자신이 막강한 존재라는 뜻은 아니고, 제가 인류의 생존을 위해 제시한 ‘도덕적 기계 무력(소설에서는 아파치)’이라는 대안이 그런 식으로 타락하는 걸 막을 책임을 느끼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만에 하나, 인류가 절멸한다 해도 그들만이라도 올바른 판단을 내려 생존해 갔으면 하는 바램도 있고.

이 모든 것을 위해 전 공부합니다. <대안 문명 탐구>에서 뵙겠습니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8
19:28:52 

 

병장 이우중 
  전역인사라기보다 앞으로도 죽 여기서 활동하실 분이 조곤조곤 써내려간 글 같습니다. 
하기야 시즌2도 있고, 어디서건 영목님이 계속 글을 쓰신다면 그 글을 보게 되겠지만, 이런 전역인사도 새롭네요. 허허허. 
축하드립니다. 모든 저녁자들에게는 이 말 말고 달리 해 드릴 말이 없더라구요. 2009-01-13
16:21:13
  

 

일병 송기화 
  가십니까- 가시는겁니까- 
하지만 시즌2가 있기에 예전만큼 아쉽지는 않네요. 
<대안 문명 탐구>를 기다리겠습니다. 2009-01-13
16:21:24
  

 

병장 이동석 
  억, 영목님 2월달에 뵙겠습니다. 조만간에 뵐텐데, 괜히 찡하군요. 허허. 
그런데 사루만-이라거나 말리고스-라니 뭔가 영목님과 어울리는것도 같은데... (퍽) 

<대안 문명 탐구>를 기다리며 저도 공부하겠습니다. 이젠 좀 알고 댓글 달아야죠. 

[시즌 2]가 어서 가고 싶어요. 흐흐. 2009-01-13
16:38:49
 

 

병장 홍석기 
  영목님, 아직 9일이나 남았습니다. 2009-01-13
17:16:37
  

 

병장 정영목 
  5일 슈가, 5일 열외입니다 훗. 사무실엔 이제 오지 않습지요. 월요일날 잠깐 들어와 볼께용. 2009-01-13
17:20:07
  

 

상병 이동열 
  북잇수다에서 뵈면 되지라고 생각하니 그렇게 섭섭하지는 않지만 
뭔가 정신적 지주가 떠나가는 느낌은 어쩔수가 없군요 
영목님의 짧으면서도 강한 '내글내생각'이 잊혀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울음) 2009-01-13
17:25:46
  

 

병장 박윤수 
  언제 가십니까? 내일부터십니까?! 2009-01-13
17:26:49
  

 

병장 오영석 
  수고 하셨습니다. 

<대안 문명 탐구> 기대하겠습니다. (웃음) 2009-01-13
18:11:01
  

 

병장 정병훈 
  한명 한명 떠나고 한명 한명 새로운 분이 눈에 띕니다. 영목씨의 연재물을 비롯해서 환경운동에 관한 글들도 잘 봤습니다. 다만, 오랜 시간 많은 얘기를 하지 못한 점에서 가슴이 아프긴 합니다. 거, 혹시 볼 수 있길 바랍니다. 2009-01-13
18:38:59
  

 

상병 김무준 
  시즌 투에서도 뵐 수 있기를. 그리고 다같이 모여서 술 한 잔 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좋겠군요. 2009-01-13
22:07:45
  

 

상병 김형태 
  고생하셧어요 와우 2009-01-15
08:18:17
  

 

상병 김형규 
  기계와 기계 사이를 넘어 만나게 될 인연이라면 어차피 온라인이나 정모든 언젠가 한번은 뵙겠지요. 영목님과 대화를 나누어 본 적은 없지만, 올려주시는 글로 제가 많이 배웠다는 점, 감사드립니다. 이 척박한 부조리함을 마지막까지 잘 삼켜내신 것 축하드립니다. 수고하셨습니다. 2009-01-15
10:20:11
  

 

상병 김영윤 
  쓰신 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2009-01-15
10:40:00
  

 

상병 김예찬 
  떠남이 아쉽습니다. 다음에 뵈어요. 2009-01-16
08:42:44
  

 

병장 문두환 
  댓글로 염장을 지긋하게 질러 주시더니 돌아와보니까 전역인사를 올리셨군요. 흐흐. 그런데 저는 아직도 위키가 생소합니다. 2009-01-16
16:02:55
  

 

병장 손정우 
  늧었습니다. 시즌 2에서 뵈어요. 2009-01-17
01:38: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