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역인사] 마음을 담은 글  
병장 김선익   2009-02-13 22:33:48, 조회: 215, 추천:0 

그동안 얼굴을 내밀지 못했던 건 부득이한 사정 때문이었어요. 많이 아팠거든요. 지난 2개월동안 저는 제 인생에서 처음으로 백스텝을 밟았답니다. 입궁 후 2년간의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될 만큼 충격적인 일을 겪었거든요. 저는 07년 입궁하기 전의 풋내기로 다시 돌아가버렸어요. 아니, 오히려 그 때보다 더 예전으로 돌아갔을 수도 있죠. 
너무 크게 백스텝을 밟은 나머지 저에게는 시간이 필요했어요. 그런데 사회는 물론이거니와, 가족들조차 그 시간을 인정해주지 않더군요. 내 뒷덜미를 낚아채 한참 뒤로 보내놓고는, 아무런 보상도 없이 더 험한 곳으로 내보내려는 이 곳이 정말 미웠답니다.  
어머니한테 전화를 걸어 신세 한탄을 했어요. 아들은 스스로가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왜 그걸 인정못하고 정상적이기를 강요하는지를 따졌죠. 눈물이 나오더군요. 울먹거리는 목소리가 들리자 어머니께서 긴장하셨나봐요. “저녁하고 죽이되든 밥이되든 부댕껴 살면 되지 않겠니?” 조심스레 묻는 어머니의 질문에 전화를 끊었어요. 공중전화를 앞에 두고 한참을 숨죽여 울고 있는데, 내 주위를 지나가는 정상적인 사람들과 내가 다르다는 사실이 새삼 뼈저리게 와닿었요. 맞아요. 난 사람들을 무서워하기 시작한거에요.
진정한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냐고 묻는다면, 자신있게 한 명은 있다며 이름까지 댈 수 있는 친구한테 연락을 했어요. 나한텐 더 시간이 필요하다. 너를 만날 여유가 없다라고 했더니 버럭 화를 내더군요. 이번엔 서러움보다는 아쉬움이 들더군요. 나 없이도 잘 지내리라 생각했던 친구였거든요. 바로 아버지한테 전화를 했어요. “아들이 저녁을 한다니 기분이 좋구나. 저녁하고 열심히 공부하렴. 장한 아들” 울컥한 마음에 버럭 화를 냈어요. “저를 자꾸 등떠밀지 마세요. 네 인생이니까 네 자유다 이런 무심한 말은 더더욱 하지 마시구요. 남하고 다른 제 모습을 본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통인지 알기는 아세요”
여기 극단적인 상황을 하나 말해보려해요 - 전쟁이 났어요. 전쟁고아는 하루가 멀다하고 끊임없이 늘어나고 있어요. 스크루지같은 남자였어요. 부자였는데 인색했죠. 죽음의 전쟁이 다가오자 마음을 고쳐먹은 이 남자는 중대한 결심을 하게되요. 전쟁고아들을 위해 고아원을 설립해서 아이들을 받기 시작한거죠.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전쟁고아들을 수용하다보니 큰 부자였던 이 남자도 돈이 떨어져가기 시작했어요. 버틸대로 버티다가 결국엔 모두 굶어 죽게 되거나 혹은 어린이병사로 끌려갈 지경에 이르렀어요. 결국 이 남자는 고아들 중 몇 몇을 골라 외국으로 인신매매 혹은 노예로 팔아넘기기 시작했어요. 결국 몇 명의 희생으로 남은 사람들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목숨을 유지할 수가 있었죠. 우리는 이 남자한테 어떤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야 할까요? 나는요. 대인기피증 환자랍니다.  
철없는 저녁대기병. 전 내일 집에 갑니다. 다들 건강하세요. 충분한 시간 뒤에 건강한 모습으로 뵐 수 있기를 바래요.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10
11:22:54 

 

병장 정희재 
  멋져요. 다들 약간 그런게 있어요. 그냥 막부딪쳐요. 화이팅 2009-02-13
23:39:55
  

 

병장 김무준 
  파이팅- 2009-02-14
19:28:41
  

 

병장 이우중 
  수고하셨습니다. 윤동주와 이문열에 대한 이야기는 시즌 투로 넘어가서도 계속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해 봐도 되려나요. 2009-02-14
20:51:58
  

 

상병 정근영 
  몇 남지 않은 글들이 선익씨와의 작별을 아쉽게 하는군요. 
굿바이- 
'별 헤는 밤'은 정말로 좋았답니다 2009-02-15
14:13:51
  

 

병장 홍석기 
  많은 이야기를 하지 못해서 아쉽습니다. 백스텝이라- 후. 시즌 2에서 못다한 이야기들을 할 수 있기를 바라며. 굿바이. 2009-02-15
14:19:09
  

 

병장 김민규 
  어이쿠, 선익님. 저도 요즘 많이 아픈데 이야기할 사람이 없네요. 
찰나의 기적에 희망을 걸고 살아가는데 방금도 그 바람은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사그라들고 말았어요. 아직까지는 추억하는 마음이 더 커서 다시한번 긍정해 보지만 정말, 이러다 무서워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토록이나 그리워하는 제 자신이, 그리고 그만큼이나 냉정할 수 있는 사람이 말이예요. 
빨리 집에라도 갈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먼저 가서 쉬고 계셔요. 시즌2에서는 못다한 이야기 더욱 꽃피울수 있기를 바랍니다. 수고 많으셨어요. 2009-02-15
15:04:08
  

 

병장 김동욱 
  아쉽네요 이렇게 가버리시다니! 2009-02-15
23:59:10
  

 

병장 김용준 
  안녕히 가세요... 2009-02-16
09:04:05
  

 

상병 이동열 
  에구, 그다지 이야기도 못 나눈것같은데 가버리시는 군요... 
시즌2에서 못다한 이야기 나누길 바라면서 수고 많으셨어요... 2009-02-16
09:10:19
  

 

병장 이동석 
  시즌2에서 봐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