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로 도망왔다.

아니? 군대에서 도망쳤다, 도 아니고 군대로 도망왔다? 뭐 어떻습니까. 그럴 수도 있지. 아무튼 제 2005년이 그랬습니다. 무슨 거창한 고민 끝에, 무슨 거악(巨惡)으로부터 도망친 것도 아니에요. 차라리 시류에 영합했다고나 할까. 못난 놈이죠. 어흠.

군대에 와서 교회와 가까이 지내게 되었습니다. 놀라운 광경이 많더군요. 가장 기억에 남던 것은 '군 입대하기 전에 파송예배를 드렸다'는 말이었습니다. 파송? 어디로? 당연히 군대지. 군대로 파송한다, 아, 얼마나 멋진 말입니까? 사회에서 열심히 전도하다가 단지 전도의 장이 군대로 옮겨간다는 거. 참 감동받았습니다. 누구는 사회에서 부적응한 결과로 군대로 도망가는데. 놀랍더군요.

사회에서 싸움질하는 사람들과 가까이 지냈더랬습니다. 싸움질이라. 아무튼 여기저기서 인간답게 살아보겠다고 뛰쳐나온 사람들은 많았는데, 제 머리-머리통은 큰 편입니다만 두개골이 특별히 두꺼운지 지능이랄까 사고는 평균에도 못미치는-로는 그 사람들 사이의 상호관련이라든지, 그 사람들 이면에서 꿈틀거리는 특별난 원리 같은 것을 도저히 생각해 낼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아니, 그 사람들은 둘째치고, 내가 그 사람들과 무슨 상관이며 그 사람들을 정말 도울 수나 있는지도 모르겠던걸요. 내 한 몸 건사하기도 어려웠달지.

아무튼 제가 생각보다는 행동이 앞서는 사람이라 그렇게 좌충우돌 여기저기서 몇 년 굴러먹다보니 나이는 한살 두살 차오르고, 곁에 있던 사람들은 하나 둘 인생의 등짐을 짊어지고 떠나버리더군요. 이런 타이밍이다보니,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군대야말로 최적의 도피처였습니다. 해외나 산중으로 도피하는 것보다 몇 배는 좋더군요. 돈도 안들고, 사회한테도 인정받는 곳이고, 무엇보다 언젠가 한번은 와야 하는 곳이니까. 참 얍삽한 생각이죠.

그렇게 생각없이 2년이 벌써 지나가버렸습니다. 사실 2년간 몸도 마음도 지쳐서 하루빨리 나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지만, 반면 나가면 이거 또 어떻게 해야 하나 막막한 기분도 듭니다. 2년이면 다 떨궈질 줄 알았던, 싸움질이나 일삼는 무리들이 아직도 주변에서 얼쩡거리고 있고, 2년이면 고쳐질 줄 알았던 짧은 생각과 게으른 몸은 여전히 그대로고. 그런가 하면 밖에서 끝끝내 모른척 외면했던 나이와 생계의 압박은 몇 배로 불어났고. 한심한 노릇이죠. 농담같지만 말뚝이나 박을까, 하는 생각도 몇 번 해봤을 정도로.

아, 참 갑갑하죠. 누구는 종교의 힘으로도 평생 예수님 전도하는 과정이라고, 군대 가면서 파송 예배하고, 전역해서 나가면 어느 교회에서 봉사할까 이런 고민하는데. 나름대로 뜻과 고민을 가지고 살았었는데도 군이라는 삶의 장을 변화시키는 일종의 책임을 끝끝내 외면하고 우수한(파렴치한) 소총병의 임무를 완수한 나 같은 모습이라니. 으흠. 이래서야 평생 떳떳하게 살 수 있겠습니까? 정치하는 사람들 욕할 게 하나도 없다니까요, 이거. 변절이 은둔보다야 떳떳하지요 뭐.

어느 노래에 보면 이런 말이 있어요. '아아 짧았던 내 젊음도 헛된 꿈이 아니었으리' 다 꿈같은데. 사실 노래를 만들어 부른 이도 헛된 꿈이 되어버린 젊음이 안타까워 이런 노래를 부른게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네요. 몰라요. 나가면 열심히 살겠죠. 당연히. 그런데 열심히 살아서 과연 어떤 사람이 될까?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며 살 수 있을까? 훗훗훗. 내 머리로는 이해불가인 진실이나 정의는 진작에 포기했지만, 적어도 내 주변의 작은 부분이나마 변화시키면서 살고 싶다는 꿈은 과연 어느 산길을 헤매고 있을까요.

돌아보면 책마을에서도 도망만 다녔던 것 같네요. 책마을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게 작년 초였으니까, 벌써 일년도 한참 더 되었죠. 사실 더 많이 참여하고,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인트라넷을 하기 힘든 객관적인 여건 더하기 평범한 일상에도 쉽게 지쳐버리는 나 자신의 약함 때문에, 항상 이곳에서 눈치만 보았던 것 같아요. 그래도 많은 이들이 기억나요. 육이은, 김대현, 김동환, 김동석, 주영준, 엄보운, 이영기, 송희석, 마성은, 안대섭, 박종민, 정준엽 등등. 아, 늘어놓고 보니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네요.

그래도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의 일단이나마 들여다 볼 수 있어서 잃어버릴 수도 있었던 많은 것들을 붙잡을 수 있었고, 놓칠 수 있었던 많은 것들을 묶어둘 수 있었어요. 내 생각도 나누고, 개인적으로도 만나볼 수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싶지만 한번의 출타가 어려운 제 사정상 그 긴 시간동안 정모도 한번 못나가고. 흥. 몰라요. 난 책을 싫어하니까. 책마을하고는 원래 안 맞는 사람이었는지도. 그래도 마지막에 토로하는게 아쉬움이라니 좀 싫군요.

아무튼, 이렇게 써놓기는 했어도 패배한 2년은 아니에요. 사회에서는 사회의 룸펜이었고, 군대에서는 군대의 룸펜이었을 뿐. 그래도 아직 새파란 젊은이 아닙니까? 아, 나한테 바울이 길가에서 예수를 만나거나 무함마드가 동굴에서 천사장 가브리엘을 만난 것과 같은 극적인 회심이 있을 것 같지는 않으니, 앞으로도 부단한 성찰이 있어야 하겠다, 라는 건 역시 아직 생각에 머물 뿐입니다. 아, 게을러 게을러 게을러! 

술도 안 먹었는데 술먹은 소리가 막 나오네요. 사실 전역인사라도 좀 규모있게 쓰고 싶었는데, 이거 제대로 쓸 시간도 없어서 이렇게 개발괴발(..) 두서없이 공해만 생산해냅니다. 모두들 건강하셔요. 특별히 재영씨, 준호. 나가서 만납시다. 내가 나이가 많으니 먼저 나가야지(..) 이런 거 보고 비웃으시면 곤란합니다. 사실 우울하게 썼지만 기분은 아주 좋아요. 솔직히 지금 책마을 좀 심심하지 않습니까? 우리 모두 재미있게 살아야겠습니다. 그럼 모두 안녕-  
 
 
상병 구본성 
  전 도망온지 1년 되었는데, 읔,, 
글을 보니 재밌게 사실 것 같습니다. 그려, 

잘가. 05-16   
 
일병 김준호 
  그 쌈질하던 사람 중 한 명한테 얼마 전 편지 왔어요. 그럭저럭 지내고 있다던데 그 젠장맞을 그럭저럭이 어떤 건지 상상이 돼서 쫌 그렇더군요. 
절대 이곳으로 도망온 게 아니라고 끌려온 거라고 생각하고 싶은데 뭐 내 게으름에 내가 지쳐버려 선택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깐, 음 밖에서 더 얘기해요 흐흐 6월엔 그 사람들도 나와요 흐흐 05-17   
 
상병 김재영 
  홀자씨, 축하드립니다. 
드디어 사회惡으로 돌아가시는군요. 무려 07학번과 얼굴을 텄다는 그야말로 파렴치한(!) 행위를 저지른 소총수여,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07을 향해서도 총부리를 겨누실 것인가, 아니면 곱게 총 따위는 내려놓고 대신 두꺼운 전공책을 펼쳐 들 것인가! 

홀자씨와 함께 관악 운동장에서 마임 하던 게 생각납니다. 아마도 노래 제목은 <새물>이었던가요? 그때 문예하면서 참 좋았습니다. 밤 늦게 학관에서 밤 새도록 마임 연습하고 자보 만들고 퍼포먼스 짜고 랩 연습하고..... 꿈만 같습니다. 지금의 학관은 어떨지 궁금합니다. 그 곳은 다시 <그대와 나> 모두 갈 수 있는 곳일까요? 

평등한 자유를 외치는 사람들이 있었던가 하면 그런 명제들은 안위한 소-부르조아의 것이라며 <사활>을 건 투쟁을 외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우리의 동네는 쉽게 쪼개어지곤 합니다만, 다만, 또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의지만큼은 쪼개지지 말자는, 지나치게 <신영복>스러운 고백만 되풀이할 뿐입니다. 

녹두호프가 아직 장사를 할지는 모르겠지만, 언제 술이나 한 잔 합시다. 한 두시간 일찍 녹두에 도착해<그날이 오면>에서 책이나 읽고 있겠습니다. 그리고 한 두 권 사들고 (아마도 윤소영 교수의 신작,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의 쟁점들> 정도? (웃음)) 녹두호프에서 만납시다. 그리고 머리가 터질 때까지 마십시다. 내일이 후회될 때까지 마십시다. 

그대의 전역을 축하드립니다. 지금 저의 간과 위는 이미 세팅되어 있습니다. 글은 역시나 그대 특유의 자책과 패배적 독백이 섞여 있지만 저는 읽을 수 있습니다. 그대의 마음이 날아갈 것 같다는 것을. 그 기분 휘발되기 전에 (아마도 빨리 찾아오겠지만) 다시 한 번 알콜 뿌려봅시다. 무진장 뿌려봅시다. 

<쪽지 줘요. 핸펀 번호 기재 요망> 05-17   
 
일병 김준호 
  녹두호프 아직 장사해요. 담주에 나가면 갈 생각인데(웃음) 쟁쟁씨도 담주에 나가시나요? 그리고 형규형은 꼼반이에요 흐흐흐 05-17   
 
상병 김재영 
  악! 그렇군요. 
홀자씨 죄송~ 지금까지 잘못 알고 있었네요. 꼼으로의 꼼백 축하! 
그나저나 준호씨 쪽지 보냈어요. 05-17   
 
상병 박준연 
  옛기억이 차근차근 곱씹히네요.. 
저 역시 도망쳐온지 1년이 다 되어갑니다. 
이곳에서 고민을 하며 나간다니 부럽습니다. 
새로운 세상, 그 앞에 선 형규님의 변치않은 노래를 기대합니다. 

재영/<새물>이라니.... 04년 보급곡인 (...) 
군대란 곳에서 "새물"이란 두글자를 보게 될 줄이야.. 

한걸음 한걸음씩~ 
내딛는 우리의 힘찬 걸음이~ 05-17 * 
 

상병 이기중 
  형규님 축하드립니다~ 
댓글에서 그리운(그리고 여기서는 상상도 못한) 단어들이 툭툭 튀어나와서 깜짝깜짝 놀라게 되네요(웃음) 05-17   
 
상병 김재영 
  기중 / 

댓글은 사랑을 싣고.... 

제가 홀자씨와 다시 극적인 조우를 하게 된 것은, (그리고 인트라넷에서 미약하게나마 바깥에서 알고 지내던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관계에의 전화를 이루어 낸 것은) 지금은 전역한 주영준이라는 사람을 통해서였습니다. 그 양반이 학교신문기자 출신이라서 교내에 존재하는 여러 건전모임에 대한 정보를 소상히 알고 있었죠. 90년대 초반 학생들 사이에 존재했던 <문화>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정리하는 글이었던가요. 그 글이 아마 제 기억에 가장 쇼킹했었는데, 온갖 건전모임의 이름이 전시되어 읽던 사람 모두가 후덜덜했던 기억이...... 90년대 초반 이른바 <신세대>논쟁을 일별하던 글이었는데, 지금은 잘 읽히지도 않는 커리의 이름을 들추어내며 참 아련한 기분에 젖게 만드는 글이었습니다. 학회평론 편집위원 출신 이범, 김현경씨등의 글이 언급되었고 (또 하나의 문화상품.. 뭐 이런 글), 지금은 유명가수가 된 이적(본명 이동준)씨의 글도 언급되었고 , 동인지 상상도 튀어나오고.... 등 뭐 여튼 재밌는 글이었었죠. (웃음) 

저도 거기서 맨 처음 익숙한 단어들 (ex - Young Dandy, 전화cup, twenty first century) 보고 헉 이게 뭐야! 이런 댓글을 달았더니 밑에 보이는 뭔가 익숙한 이름 <상병 조형규> 씨의 댓글..... 혹시.... 당신은......?????!!?!? (당시 전 일병) 뭐 그래서 연락 주고 받게 된 거죠.. 허허 (땀) 

덧 - 홀자 하면 빠질 수 없는 이미지! 이 사람 어울리지 않게 <골든벨> 출신이래요~ (웃음) 나름 걸어다니는 네이버 지식in으로 통했다는 속설이 전해지던데... 사실일지는 만나보야 알 수 있다는... 05-17   
 
병장 강세희 
  도망자들이 많군요. 웃음. 녹두호프 저도 불러주세요. 05-17   
 
상병 이기중 
  재영/익숙한 단어들의 ex들이 뭔지 잠시 고민했습니다. 건전모임이라, 재밌네요(웃음) 05-17   
 
병장 강세희 
  재영 / 이상하게도 저는 그 글을 본 기억이 없군요. 울음. 당연히 안남아있겠죠? 슬픔. 흑...근데 young dandy는 왜 추측이 안되는건지... 05-17   
 
상병 이기중 
  세희/이니셜...(웃음) 05-17   
 
병장 조형규 
  이거, 다들 무슨 얘기들인지 내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내 전역인사 가지고 동우회라도 하겠다는거요 뭐요 다들(..) 

처음 책마을에 들어온 날 밖의 친구와 했던 통화 내용이 생각나는군요 

"여기에 자율주의자가 있어" "..." 

상병 김재영 
  忽子 : 소홀히 할 홀 - 소홀히 하다, 갑자기, 돌연, 다하다, 멸(滅)하다, 말하다........ 05-17   
 
상병 김재영 
  세희 / 아마 폭파된 35 시절 것이니 없을 겁니다. 영준씨 본인도 그 글에 큰 의미를 부여할 것 같지는 않네요. (웃음) 그나저나 진짜 녹두호프에서 언제 한 번 봅니까? 쪽지 또 보내드려야겠네요.. (웃음) 

기중 / 나름 개그 구사했는데, 잘 받아주시니 감사합니다. (웃음) 

홀자 / 낚였지, 낚였어. 파다다다닥! 그나저나 Negrian도 있었단 말이에요? 어후, 진짜 독하네. 하긴, 데리다 추종자도 있었는데 (그가 진짜 데리다에 대한 치밀한 독해를 진행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자율주의자...가 없을 리는 없지요. 그나저나 천개의 고원이나, Empire, 노마디즘 같은 책을 다 읽은 사람이 존재하긴 하는군요. 05-17   
 
병장 강세희 
  기중 / 켁. 그걸 못알아봤다니. 울음. 몇 개 더 재미로 추가해보자면 '당신의 H는 무엇입니까?', 'be의 3인칭 단수' 응?? 

일병 김준호 
  형규// 들풀 집단 학살하다니 흐흐 들풀 친구들은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통 알 수가 없어서 허허 05-18   
 
상병 김재영 
  세희 / Home cooking yard? or Internet security?. 그렇담 August에 boa용! 05-18   

상병 박준연
재영 / 전 RCY의 친구? 응? 이렇게 묘사(?)하려고 했었는데 ^^

상병 김재영 
  준연 / 그렇군요. 영화도 나온다고 하던데. 꼭 볼 생각입니다. 05-18   
 
상병 양호경 
  평소 글만 보고 다니는 과객이었는데, 반가운 단어들이 튀어나와 글을 남깁니다. 

반가운 단어<새물>은 아마 03년 신곡일껍니다. (괜히 딴지 거는 것 같지만, 그냥 03년 생각이 나서 그렇습니다. 이해해 주세요..눈웃음) 

관악 16동으로 돌아가시는거 같군요. 전역 축하드리며, 멋진 룸펜으로 남아 계시길 바랍니다. 05-18   
 
병장 조형규 
  예. 04년은 달려달려였던 것으로 기억이(먼산) 

아무튼 이글에 답글 단 무리들 오늘부로 웃대 킴에서 조사들어온다. 사실 나랑 주영준은 웃대 킴의 압잡이였다는거. 숨어 있는 1인치를 색출..(퍽퍽) 물론 농담입니다 (타앙) 

그리고 김재영 그만좀 진지해. 진지함의 과잉이야 과잉. 05-18   
 
상병 김동호 
  떠나는 마당에 상념이 너무 번잡하신 것 같습니다 올때가 되어서 왔고 이제 가라 하니 가는 뻔한 이치인 것을... 군대에 미련갖지 말고 FTA에 잘 적응하는 사회인이 되시길 바랍니다. 이상 전달 끝 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