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에 대한 저작권은 푸른꽃에게 있습니다. 하지만, 퍼가든 말든 맘대로 하세요.
본 글은 주말에 심심풀이로 필자가 그냥 간략하게 개괄한 롤랑바르트의 텍스트론 입문서입니다. 난해하지는 않지만, 방대한 롤랑 바르트의 이론을 텍스트-저자론을 중심으로 필자의 텅 빈 지식을 바탕으로 이해하기 쉽게 풀어써보려고 했습니다만, 성공했는지는 모르겠군요.
좀 긴 글일 수 있으니 스크롤의 압박은 알아서 커버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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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작가라는 집단은 어떤 집단일까요? 단순히 글을 쓰는 집단일까요? 흔히 <데미안>의 작가는 헤르만 헤세이고, <반지의 제왕>의 작가는 톨킨, <장마>의 작가는 윤흥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작품(텍스트)은 작가와 시대의 산물이고, 작가의 메세지와 시대적 성찰이 작품에 분명하게 녹아있다고 말합니다. 예컨데,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70년대 암울했던 정권 속의 소시민적 분노를 그리고 있고, 단테의 <신곡>은 중세의 모든 신학사상을 아우르는 방대한 울림이라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데미안>은 피폐해진 현대유럽의 정신에 대한 성찰의 목소리라고 평하는 사람도 있죠. 작품은 작가와 시대의 산물이고,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라고 말합니다.
2. 저자의 기원 - 바르통
고대의 작가들은 크게 두가지 부류로 나뉘어있었습니다. 첫째는 문학의 기원설에 입각하여, 문학의 이야기가 종교적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경우의 이야기입니다. 프로이센의 저명한 시인이었던 하인리히 하이네에 의하면, 시인(문학가)은 순수한 천재 그 자체로서, 신들(자연)이 그들에게 내려주는 메시지를 받아적는 사람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그들은 세상에 감춰진 비밀과 진실들을 언어로 대중들에게 이야기해주는 사람이고, 그러면서 사람들에게 신의 비밀을 '언어'로서 설파하는 역할을 맞은 진실의 사제였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시(문학)라는 언어는 세상의 비밀을 설파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믿었으며, 그것은 곧 은유-비유적 언어로서, 신비한 우의로서 구전되어왔습니다. 이것이 바로 고대 서사시의 기원입니다. 따라서 고대 서사시의 저자들은 모두 무당Shaman이나 사제 계급이었지요. 대표적인 예로, 북유럽 신화서사시인 에다Edda를 전승했던 스칼드Skald라는 음유시인은 당대 가장 높은 사제계급이었고, 그들은 신화를 노래하여 세상의 진리를 설파했다고 믿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에픽Epic 서사시들도 문학적으로 복워노딘 호메로스의 두 서사시 등을 제외하면 대개는 신전에 사제들이 남긴 자료들이 대부분입니다. 한국의 고대 서사시인 무가(巫歌)들 역시 이런 맥락해서 해석 될 수 있고, 종교학자 마르치아 엘리아데의 <성과 속>에 따르면, 수많은 원시부족사회에서 신화, 즉 서사시를 부르는 자는 마을의 샤먼이자 추장이었다고 진술합니다.
이런 시(문학)의 진실성과 신화-종교적 속성은 후에 낭만주의 문학의 핵심토대가 되기도 합니다마는, 이것은 원초적으로 문학 발생론적 차원에서 발생신화학적으로 비밀을 전파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당시 신화 문학은 불문학자 이형식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심심파적거리'가 아니었으며, 그들에게는 종교이자, 신학이자, 문학이자, 생활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니까, 고대의 신화사회에서 문학은 삶의 모든부분을 장악하고 있는 가장 상위계급의 '권력'이었습니다.
문학은 그 탄생부터 그 종교-영성적 특징을 가지고 있었기때문에, 권력집단이 될 수 있었습니다. 특히 북유럽 스칼드가 그러했고, 한국 고대국가들의 제사장들 역시 그러했습니다. (드라마 주몽의 신녀들의 역할을 보면 조금 이해가 되실겁니다.) 롤랑 바르트는 이러한 문학 탄생의 배경에 잡혀있는 선천적인 권력과 그 권력을 쥐고 있는 작가(저자)집단을 일컬어 '바르통Barton'이라고 정의내렸습니다. 롤랑 바르트의 저자론에서 바르통은 꽤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래의 글에서 분명히 드러날 것입니다.
고대의 저자(텍스트로 남겨졌든 구두로 전승됐든)들은 사제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막강한 권력을 가진 바르통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고대에서 중세로 넘어가면서, 이런 신화학적 이야기들은 카톨릭의 '성전'에 밀려서 이단으로 소멸되버렸고, 정치적 수단으로서의 '문예'는 전혀 다른 몫으로 맡겨지게 됩니다. 중세 카톨릭 사회는 모든 삶과 정신적 이야기를 '성서'에 의존하기 시작했고, 성서는 중세 삶의 전체를 장악한 하나의 패러다임이 되버리죠. 이런 의미에서 문학적 바르통을 가진 사제들은 바로 성전과 성가극을 쓴 주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중세에는 카톨릭적 사제계급 뿐만이 아니라, 국가 정치계급으로서 지위를 가진 집단이 존재했습니다. 네. 왕과 기사들이었죠. 봉건제도라는 특이한 - 지극히 게르만적인 - 정치제도 밑에서 그들은 '민네문화Minne Caltus'를 만들었는데, 소위 '기사도'라고 불리는 유럽 정신이 그것입니다. 이것은 후에 매너Manner(Minne -> Manner)로서 유럽문화의 중심으로 자리잡게 되기도 하죠. 하여튼, 이 민네문화는 왕가 귀족들이 종교적 신념 이외에도 받들어야할 삶의, 정신적 지침이기도 했는데, 이것을 설파하고 즐기기 위한 목적으로 탄생된 시문학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중세 문학의 꽃이라고 불리는 민네장Minnesang(Manner Song이라고 번역해도 될라나)입니다. 발터 폰 데어 포겔바이데, 볼프람 폰 에센바흐, 탄호이저, 나이트하르트 폰 로이엔탈, 고트프리트 폰 슈트라쓰부르크, 울리히 폰 리히텐슈타인같은 기라성같은 기사시인들은 바로 이 시기에 로맨스와 기사정신, 봉건군주에 대한 충성과 교회에 봉사를 테마로 하는 수많은 작품들을 남겼습니다. 이는 당대에 활동했던 수많은 귀족들에게 귀감이 되었고, 교훈을 주고, 삶의 지침을 내려주는 문학서이자 사상서이자 지침서였습니다. 중세의 바르통은 그래서 바로 이 기사들이었습니다. (따라서 기사도문학은 궁정에서만 널리 불려졌고, 서민들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나가고 있었지요. 이는 민담형태론에서 언급되는 이야기인데, 바르트는 이 부분에 대해서 큰 흥미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때문에 이 글에서는 생략하겠습니다.)
중세의 바르통은 문학가이자 동시에 막강한 권력집단이었습니다. 기사들은 멋지고 당위적인, 그리고 수사적인 시를 지어가면서, 자신의 후원자(왕이나 제후들)를 지지하고 그들의 도움을 받아 여행을 했습니다. 그들은 가장 전형적인 바르통으로서, 자신의 왕당의 당위성을 설파하는 목적을 담아서 시를 지었습니다. 이를테면, 중세 최대의 서정시인이라 불리는 독일의 발터 폰 데어 포겔바이데의 <팔레스티나리트>라는 시는 중세의 대표적인 격언시로서 팔레스티나를 탈환하라는 십자군원정에 호소하는 작품입니다만, 그 뒤에는 발바로사의 3차 십자군원정의 당위성을 입증하려는 목적이 숨어있었습니다. 현재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단테의 <신곡 - 지옥편>역시 당시 피렌체에서 극심하게 대두되던 흑당파와 백당파에 대한 조롱의 목적으로 쓰여졌습니다. 중세의 바르통은 정치적 목적과 굉장히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고, 그에 따라서 정체되있는 봉건제도에 기대어 굉장히 오랜 기간동안 정치적 수행을 하였습니다.
3. 바르통의 상실
하지만 왕권이 붕괴되는 근대에 들어오면서 이야기가 달라지게 됩니다. 상업과 과학이 발달하고 군주제가 흔들리는 르네상스 이후가 오면, 더이상 저자들은 확고하게 심지있는 하나의 후원자를 얻을 수가 없습니다. 왕보다 훨씬 막강한 가문(예컨데 메디치나 비스콘티같은)이 등장하고, 귀족보다 더욱 영향력있는 계급 (예를들면 한스 작스나, 야콥 뵈메같은)의 자들도 태어나기 시작합니다. 이제 바르통들은 각자 자신이 가야할 길을 선택하여 나아가야 했습니다. 위에서 예를 든 신성로마제국의 한스 작스는 원래 구두장이였습니다. 그는 저 유명한 슈마허 길드(슈마허는 구두장이라는 뜻입니다)의 길드원이었는데, 길드의 위상과 장인들의 삶을 대변하려 했던 저 유명한 장인가Meistersing를 부르는 마이스터징의 대가로 손꼽혔고, 야콥 뵈메는 그가 독자적으로 구축한 그노시스 철학을 표현하기 위해 굉장히 의미심장한 여러 작품을 남겼습니다. 이제 바르통은 일원적 종교-정치체계에서 일어나는 사상을 옹립하는것이 아니었고, 자신의 신념이 옳다고 생각되는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물론 모든 바르통이 성공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근대 인문주의의 정신을 떠받든 페트라르카나 보카치오는 굉장히 뛰어난 정치인이자 시인으로서 열렬한 지지를 받았지만, 그와 반대의 길을 걸어갔던 작가들은 대부분 역사의 먼지속에 묻혀졌습니다. 여전히, 저자는 바르통으로서 생존하여야하는 입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근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볼테르나 뒤마같은 작가들은 이성을 바탕으로 한 진보적 국가를 위한 정치에 발을 들여놓는 바르통으로서 기능했으며, 시민사회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고, 막심 고리키같은 작가는 프롤레타리안 문학에서 절대적인 바르통으로서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이 때까지 바르통은 무언가 지지해야할 목적이 있었지요.
하지만 20세기, 홉스붐이 지적한 <극단의 시대>로 치달아가면서 바르통은 설 자리를 잃기 시작했습니다. 19세기에 스탕달이나 발자크, 조르주 상드처럼 후원자 밑에서 글을 쓰며 그들에게 헌정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그들은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개인주의-데카당스의 물결 속에서 자기가 의지해야할 정치적 목적을 잃어버리기 시작했습니다. 거대담론은 무너졌습니다.(포스트모던) 의지해야할 목표가 사라집니다. 그러면서, 저자는 서 있어야할 장소를 잃고 표류하며 '나'에 대해서 집착하게 됩니다. 故김현은 <한국문학의 위상>이라는 명저에서 이런 바르통의 상실을 가지고 '문학은 써먹을 수 없다는 것을 써먹는다'라는 매우 뛰어난 명문을 남겼지만, 사실 롤랑 바르트의 바르통 상실은 이런 파편화되가는 현대사상의 맥락에서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단적으로 1950년대 이후의 소설을 읽어보면 - 그러니까 까뮈나 사르트르같은 - 작품의 실존적 성향은 모두 '거대담론이나 사상'에 비추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자아, 자신. 그리고 타자는 자신과 관계를 맺는 낯선 존재로 표현됩니다. 저자는 바르통을 잃었습니다. 자신이 기대어 설 무언가가 소멸해 버린것입니다. 이것은 현대사상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그것은 다음 글에서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아무튼, 정치적으로 떠나간 바르통의 상실은 저자에게 목적을 잃고 표류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전세계의 저자는 '자아'에 몰두하게 됩니다. 미셀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나서고, 윌리엄 포크너는 '에밀리에게 장미'를 바치기도 하고, 프란츠 카프카는 절대로 입주할 수 없는 '성'을 들어가려고 노력하는 겁니다. (물론 알렉산드르 솔제니친같은 바르통적 힘을 지지하는 작가가 없는 건 아니지만)
저자가 왜 글을 쓸까요? 현대의 대부분의 작가는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표현하기 위해', 그리고 '자유로운 사고의 전개를 위해'라는 대답을 합니다. 하지만, 사실 처음에 작가들은 이러한 바르통을 일차적인 목적으로 상정하고 글을 썼다는 사실을 염두해야합니다. 단테의 신곡이 '세계 최고의 환상서사시'로서 읽혀지지만, 사실 그것은 단테의 정치-신학적 목적에 가장 주안점을 두고 있었던 작품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역사상 모든 작가들이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역사적-문학사적 헤게모니'를 가지고 있는 작가들은 대개 그런 경향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4. 저자의 죽음 1- 후기 구조주의 언어학
저는 앞서 단테의 <신곡>이 원래는 정치적-신학적 목적으로 쓰여진 풍자시라고 지적하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신곡을 읽을때 그러한 우의와 상징들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도 즐겁게 신곡을 읽어나갑니다. 그리고 '완전히 감동받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롤랑바르트의 후기 텍스트론의 정점이자, 프랑스 신비평의 핵심은 바로 이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그 커다란 포문을 연 비평가가 바로 롤랑 바르트였습니다. 이것은 바르통의 상실보다 훨씬 충격적인 커다란, 가히 혁명적인 이론이었습니다.
이런 예를 우리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오웰의 <동물농장>이 스탈린 정권에 대한 통렬한 풍자의 우화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스탈린주의를 들어보지도 못한 열 서너살 짜리 아이들도 이 작품을 매주 재밌고 즐겁게 읽으면서 한마디의 감상을 남깁니다. "참으로 추악한 돼지들이야!" 사실 톨킨은 <반지의 제왕>을 그저 하나의 "이야기"로 써나갔지만, 평론가들은 그 작품 안에서 "물질만능주의의 현대비판"과 "기독교적 관점의 인종주의"를 찾아내어 첨예하게 토론합니다. 텍스트는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런 해석들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분도 책을 읽으면서 느껴본 적이 있을 겁니다. 예컨데, 보차키오의 <데카메론>을 읽고나서, 그저 '통속적인 재밌는 소설'이라고 생각하였지만, 그것이 해석을 읽어보면, '르네상스 정신을 가진, 기독교 경건주의를 통렬히 풍자하고 인간을 희화하는 걸작'이라는 극찬을 읽을때의 황당함 같은거요.
롤랑 바르트는 후기 구조주의 언어학자였습니다. 구조주의는 소쉬르라는 스위스 언어학자로부터 시작합니다. 구조주의는 칸트의 선험적 관념론이 다른 옷을 입고 다시 부활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는데, 과연 그렇기도 하죠. 소쉬르의 '구조주의 언어학'의 핵심을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이런 겁니다. 언어는 우리가 언어를 표현하는 표현수단(문자, 울리는 음성의 떨림등)과 그것이 가지는 의미 ('사.과'라고 쓴 글자는 나무에 열리는 빨갛고 달콤한 열매를 뜻한다는)로 나눌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선험적 관념론의 칸트적 아이디어로 추상적 의미를 분열한 것이기때문에 칸트적이라는 말을 듣죠) 후자를 랑그Langue, 전자를 Parole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둘 사이의 관계는 약속에 의한 자의적 관계라는 것이 소쉬르 언어학의 기본 주장입니다.
이런 구조주의 언어학이 야콥슨의 프라하 학파와 코펜하겐 학파의 언어학을 거치면서, 랑그와 파롤은 약호Signal와 상징Symbol의 구조로 병립되었고, 상징체계와 약호에 의해서 랑그와 파롤의 분립적인 의미가 제자리를 찾게 됩니다. (이 부분은 조금 난해한 부분이라서 그냥 삭제하겠습니다) 그래서 랑그와 파롤은 후기 구조주의에서 시니피에(Signifier기의)와 시니피앙(Signifien기표)으로 표현됩니다. 아주 거칠게 말하자면 시니피에는 어떤 상징이나 기호, 언어등이 내포하는 의미들을 말하는 것이고, 시니피앙은 그런 의미가 담겨져있는 약속된 기호나 상징, 언어발화등을 지시하는 것입니다. 예컨데, 도로표지판의 "천천히"이라는 글자를 보았을때, 우리는 그것을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천천히'라는 의미가 아니라, '서행하시오'라는 명령문장이라는 사실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이때, 이러한 약속관계에 의해서 쓰여진 '천천히'라는 글자들과 표지판자체가 바로 시니피앙(기표)이고, '서행하시오'라는 의미가 담겨있는 것이 바로 시니피에(기의)인 것입니다.
시니피에와 시니피앙이 랑그와 파롤과의 가장 커다란 차이점이 뭐냐면, 시니피에와 시니피앙은 자의적 관계를 가지되, 서로 연상적 약속관계를 가지고 정립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코펜하겐 언어학파의 상징연구의 업적이라고 볼 수 있을듯 합니다.) 하여튼, 이렇게 시니피에와 시니피앙을 가진 언어학적 관계는 다분히 '상징적'이고, '지시적이지 않'습니다.
5. 저자의 죽음2 - 저자의 죽음
이 점에서 롤랑 바르트는 시니피에와 시니피앙으로 이루어진 모든것을 '텍스트'라고 지칭합니다. 신호등도 하나의 '텍스트'이고, 문학작품도 하나의 '텍스트'입니다. 메모지에 스여있는 '곧 돌아오겠음'도 메모지, 짧은 글자,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의미들에 의해 시니피에와 시니피앙이 만들어내는 하나의 텍스트라고 보았습니다. (이것은 데리다의 해체론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이 점에서 롤랑 바르트가 텍스트를 바라보는 관점은 매우 독특합니다.
언어는 시니피에와 시니피앙으로 구성된다고 앞서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런 시니피에와 시니피앙의 관계는 소쉬르의 '랑그-파롤'관계보다 훨씬 더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지적해드렸습니다.
그런데 이 언어적 약속관계라는 것이 '사회적으로 약속'되었다고 하더라도, 개인의 경험과 외상(이건 지극히 프로이트적인 용어지만, 그렇기때문에 프랑스 현대철학에서 매우 중요하기도 합니다)에 따라서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물론 인간은 사회적으로 교육된 집단사회의 동물이긴 하지만, 동시에 그런 언어의 교육에 의해서 '제단된' 언어를 사용하기때문에, 개개인의 무의식속에는 사회적으로 약속되지 않은 언어들이 무한히 가라앉아 있다고 말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파스칼 키냐르가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에서 굉장히 명쾌하게 설명했으니 관심있는 분은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러한 똑같은 시니피앙을 입고 있지만, 개인마다 반응하는 시니피에의 미묘한 차이를 낚아내어 퍼 올리고 그것을 엮어서 글을 쓰는 사람을 '저자'라고 바르트는 정의합니다.
쉽게 말하자면, 이런 것입니다. 경기도 철원에 GOP에서 MP로 일하는 사람이 제주도에 있는 친구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칼같이 차가운 겨울 바람 위로 악마의 비듬이 떨어진다!"
우리는 모두 '악마의 비듬'이라는 은유적 표현이 '일과 외 시간에 내리는 함박눈'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여기서 글을 읽는 거의 모든 여러분들은 이 글을 읽고 '사역의 압박!'을 공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면, 이 '악마의 비듬'이라는 표현은 우리 영내생활이라는 공동의 사회 속에서만은 '약속되어 은유적으로 구성된' 언어의 완벽한 시니피앙이기 때문입니다. 그에 대한 시니피에 역시 우리가 약속하여 같은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주도에서 눈을 몇번 보지도 못한 사람은 악마의 비듬이라는 표현이 무엇인지 선뜻 이해할 수도 없을 뿐더러, 뒤에 "!"(느낌표)가 왜 붙었는지를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면, '악마의 비듬'이라는 표현이 그에게는 매우 생소한 - 그의 사회에서는 - 약속되지 않은 언어였고, 그것이 '눈'이라는 일차적 대상을 지시한 다는 사실의 사회적 약속조차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똑같은 영내자가 이 글을 보더라도, 어떤 사람은 "아악! 악마의 비듬! 절대 오지마라!"라고 외치는 사람이 있겠고, 남부지방에서는 이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롤랑 바르트의 텍스트론의 핵심을 바로 이것입니다. 시니피에와 시니피앙은 약속된 체계를 바탕으로 엮여있습니다만, 그것이 소쉬르의 랑그와 파롤처럼 완전히 자의적으로 구획되어 나누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의 시니피앙은 하나의 시니피에와 대응 할 수 없고, 하나의 시니피앙 사이로 새어나가 무의식 속으로 가라앉는 시니피에들이 존재한다는 것이죠. 작가는 기호(언어)들을 엮어서 하나의 '텍스트'(시니피앙)를 엮어냅니다. 그 텍스트에 써나가는 시니피앙들은 모두 작가의 머릿속에, 기존에 가지고 있던 것들이면서, 작가가 무의식-심상적으로 재배열한 시니피에들을 '염.두.하.고.'(이것은 아주 중요한 표현입니다) 쓴 것들입니다. 하지만, 텍스트는 단지 '시니피앙'으로만 보여질 뿐입니다. 왜냐면, 작가가 염두했던 시니피에들은 모두 <작가 개인의 무의식속의 언어 백과사전에서 꺼내어 사용된 언어들>이기 때문에, 타인 - 예컨데 독자 - 의 무의식적 시니피에와는 100% 일치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는 그 시니피앙을 쓸때 그 씨니피에를 '확정하고' 쓰는 것이 아니라 '염두하고' 써야하는 것입니다. 작가의 개인적 언어의 의미백과사전과 독자의 개인적 언어의 의미백과사전은 같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롤랑 바르트의 '비어있는 텍스트'론 입니다. 텍스트는 그래서 의미가 비어있는 것입니다. 작가는 A라는 의도를 가지고 시니피앙을 적어나가더라도, 작가와 독자는 무의식적 언어 (시니피에와 시니피앙의)관계가 100% 같을 수가 없기 때문에, 완전히 전달 되는 것이 아니라, 빈 상태로, 그리고 텍스트(시니피앙)라는 매개를 바탕으로 독자에게는 의미들(시니피에)이 '재생산'되는 것입니다.
예컨데, 오웰의 <동물농장>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여기서 혁명적 돼지 보나파르트는 스탈린을 풍자할 것을 염두하고 오웰이 써나갔으리라 우리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작품 안에서 드러나는 타락하는 보나파르트를 읽으면서, 오히려 반대의 과정으로 돼지 속에서 우리 심상에 잠자는 스탈린의 인상을 재생산하여 인식하게 됩니다. 이 과정이 다른 방향 (예컨데 스탈린을 모르는 어떤 독자의)으로 진행하게 되면, 이 작품은, 농가에서 일어난 민중의 폭동을 그린 우화라고 읽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전혀 잘못된 엉뚱한 해석일까요? 롤랑바르트는 "아니"라고 말합니다. 텍스트의 해석에 있어서 정격의 정론은 없습니다. 왜냐면, 이로 인해서 텍스트는 그저 '비어있는 것'이고 저자가 텍스트를 완성하는 순간 텍스트의 시니피앙만 남겨지고, 시니피에는 저자에게부터 완전히 떠나가 독자의 몫으로 남겨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텍스트의 메세지를 저자가 내릴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수많은 독자들은 저자의 시니피에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언어적 백과사전에 기록되어있는 시니피에(의미)들을 찾아서 텍스트를 읽어나갑니다. 그러므로, 저자는 텍스트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고, 그 텍스트의 '시니피앙'들을 저자의 언어적 백과사전에서 배껴써나간 '필사자'에 불과하다고 바르트는 지적합니다. 그래서 롤랑바르트는 <텍스트의 즐거움> 가장 첫 머리에서 "저자는 죽었다"라는 충격적인 선언을 합니다. 수천년간 이어진 저자와 독자의 정치적 권력관계에서 바르통은 사멸했고, 독자들의 승리로 문학적 권력 헤게모니가 매듭지어진다는 담론적으로도 엄청나게 중요한 선언인 것입니다.
6. 텍스트의 즐거움
저자는 빈 텍스트를 쓰고, 독자는 빈 텍스트의 의미를 자신이 스스로 채워넣고 읽기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저자는 뭐가 되는 것일까요? 롤랑 바르트는 이에 대해서 '유희'라는 테제를 던져놓습니다. 위에서 저는 저자가 자신의 시니피에를 '염두하여' 시니피앙을 자신이 쓰는 텍스트에 베껴쓴다고 지적했습니다. 여기서 시니피에를 '염두한다'는 것, 이것이 바로 저자의 글 쓰는 사고과정이라고 말합니다. 저자는 그 글을 쓸때 독자들이 어떤 반응을 할지 예상을 하고 글을 씁니다. 그리고, 그런 독자의 시니피에들을 생각하면서, 자신의 시니피에와 퍼즐맞추기를 하는 일종의 '게임'을 즐깁니다. 이것은 완전히 비어있는 시니피앙(기표)을 가지고 시니피에를 에워싸고 벌이는 저자와 독자의 게임이고, 즐김이자 즐거움이고, 텍스트를 바탕으로하는 하나의 '유희'입니다. 그러니까 저자의 임무는 텍스트를 독자에게 완전히 개방하므로써 독특한 의미들을 무한히 재생산할 수 있는 약호Signal를 구성하는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아래 예를 하나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래 문장을 주목해주세요.
"그녀의 별이 폭발했다."
이 문장을 읽었을때 이 의미를 어떻게 해석해야할까요? 많은 사람들이 의미를 여러가지로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녀의 심중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라든지, 그녀의 별(눈동자)에서 눈물이 흘렀다든지, 독자는 이 짧은 텍스트 속에서 엄청나게 다층적인 의미를 뽑아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문장은 SF소설에서 사용되어 실제로 그녀의 행석이 폭발하는 씬에서 제시가 됩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굉장히 다층적인 의미를 하나의 텍스트가 내포하므로써, 독자들에게 의미가 무한히 열려있게 됩니다. 롤랑바르트의 제자였던 불가리아의 언어학자인 츠베탕 토도로프는 이러한 텍스트내의 서술체계와 독자들 세계의 인식문법 사이의 간극을 통한 '망설임'이 독자의 반응을 결정한다는 굉장히 발전적인 이론까지 제시합니다만, 여기서는 거기까지 나아가지는 않겠습니다. (웃음)
저자는 이런 다양한 계층의 독자들이 텍스트를 바탕으로 시니피에를 어떻게 뽑아올지를 염두하고 텍스트를 짜넣고, 독자는 그러한 고심끝에 짜놓은 '빈 텍스트'를 읽으면서 무한한 상상력의 즐거움으로자신의 시니피에를 채워넣습니다. 이것이 바로 독서의 희열이며, '텍스트의 즐거움'이라고 바르트는 지적합니다. 그러니까, 이 롤랑바르트의 텍스트론은 <문학의 불멸하는 고전을 꼽는다>라고 말하는 클라이언 브룩스를 비롯한 영미 신비평가들에게 카운터어퍼컷을 날리는 혁명적인 글이기도 하면서, '최신의 문예조류'와도 첨예한 연관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7. 텍스트 해석의 문제
그렇다면, 텍스트를 어떻게 해석해야하는가? 라는 문제가 남습니다. 텍스트에 정격의 메세지가 존재할 수 없다면 (이것은 자크 데리다의 해체론과도 맥을 같이하는 부분입니다만) 해석의 여지가 논쟁의 대상으로 떠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이에 대해서 롤랑 바르트는 굉장히 재밌는 이론을 꺼냅니다. 바르트는 여기서 그 예로 음악을 들고 있습니다.
음악의 장르에서 있어서 작곡가는 '작가' 즉 텍스트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연주자는 그 텍스트를 해석하는 자, 즉 비평가이죠. 하지만, 위에서 말했듯이 작가는 창조자가 아니라 언어의 필사자고, 그 필사의 텍스트와 교감을 가지고서도 독자적 입장에서 정신을 표현하는 '연주자'는 단순한 창작자의 해석에 대한 문제를 뛰어넘게 됩니다. 즉 연주자는 텍스트에 독자(읽는 이의)의 정신(즉 시니피에)을 채워넣어 다시 또다른 텍스트로 치환하여 보여주는 메타예술적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으며, 바로 연주자는 텍스트의 '해석자'이자 '완성자'인것입니다. 왜냐면 연주자에 이르러 의미는 '해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학으로 따지자면 비평이 바로 이 텍스트의 '완성자'가 될것이고 음악의 경우는 '연주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텍스트를 읽는 모든 독자는 이런 의미에서 텍스트의 완성자가 됩니다. 책은 읽이므로써 완성되는 것이죠. 그리고 그 빈 텍스트를 읽고 비평해서 내놓는 독자의 텍스트는 다시 빈 텍스트로 (텍스트자체에는 의미가 담길 수 없는 완전히 비어있다는 것은 위에서 거듭 강조했습니다.) 변하여 타자에게 전달되고, 다시 그것은 빈 의미로 받아들여져서 빈 텍스트를 창출합니다. 이것이 바로 메타비평이라는 것입니다.
롤랑 바르트는 텍스트에서 저자를 '죽이므로써' 텍스트의 의미들을 독자에게 방종적으로 열어놓았고, 그 비어있고 열린 텍스트들 속에서 즐거움을 느끼면서 시니피에를 찾아가는 모험과 교류, 그리고 그 안의 희열과 낭만적 에로스를 찾아가는 과정이 바로 <텍스트의 즐거움>이라고 롤랑 바르트는 지적합니다.
더 진행해야할 이야기가 많겠지만, 롤랑바르트를 중심으로한 후기 프랑스 구조주의 철학의 핵심적인 이야기는 어느정도 담겨져 있다고 생각하니, 난삽한 글을 여기서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