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글은 잘 읽었습니다. 아마, 책마을에서 본 원익씨의 글 중 ‘가장 친절한 글’이 아니었나 생각을 해 봅니다.(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에 대해서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머릿속에 '전혀' 그려지지 않는군요. 허허.

  원익씨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저는 오히려 인문독서 커뮤니티에 만연한, 행복한 '상호인정' 속에는 '추문적'(헤겔이 주노의 변증법에서 보았듯이)인 것이 도사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냉철한 지성이 가져야만 하는 따뜻한 가슴이 실상은, 타인에 대한 애정과 존중과 배려라기보다는 차라리 냉철한 지성이 그 자신과 타자에 대해 수행하는 방어적인 거리두기의 심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전도된 사태가 존재합니다. 확실히 책마을에서는 텍스트 상으로 무엇이든 '진지하게' 말하고 사유하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러한 '진지함'은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으려는, 결국 이 모든 것은 '말'에 불과하기에 아무래도 좋다는 반-사유적인 자기만족적인 경향을 내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담론'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저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빠질 수 있는 함정입니다. 사실 윤정기님이 최근에 허원영 씨의 글을 인용했지만, 저는 그러한 사람들이 '담론'의 편에서 취하는 진지함의 태도에서, 기껏해야 언어적인 진지함에 불과한 것을 그 자신의 인격적인 진정성으로 인정받으려는, 나아가 자신의 실천적-현실적 무기력을 타인의 인정을 통해 보상하려는 패배주의의 단면 외의 그 어떤 것도 보지 못하겠습니다."

  원익씨가 지금까지 글 속에서 몇 번이나 말해왔던, '좋은 게 좋은 것인' 분위기에 대한 비판은 분명 여러 번 있어 왔지만, 사실 깊이 있게 논의되었던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정모에서, 승진씨(아마 맞을 겁니다.)는 원익씨의 블로그를 찾아갔던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떤 글에 댓글이 30여개가 달려 있었는데, 모든 댓글의 내용이 ‘퍼가요-’ 였다고 하더군요. 아마 이러한 글에서, 글쓴이가 느끼는 것은 어떠한 ‘자기만족’이라기보다는 아마 ‘절망 그 자체’였을 겁니다. 고작 퍼간다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 쓴 글이 아니리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거든요. 그럼에도 이러한 일이 끊임없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것은, 그것이 고작 ‘대립이나 다툼을 두려워하고’ ‘예의를 차리고’의 개념선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느껴집니다. 원익씨는, 어떠한 노력을 하고 계십니까? 이는, 진심으로 순수한 질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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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히려 이 논쟁은 작금 책마을의 상황 안에서, '소사'라는 자리가 불편한 어떤 지점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단지 그 사실이 지금까지 은폐되어 왔음을 역으로 폭로한다고 하겠습니다.” 이 글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저는 이 한 문장이라고 느낍니다. 아마, 원익씨는 그러한 의도로 쓰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저는 분명 그렇게 이 글을 읽었습니다. 제가 애초의 문제제기(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적절한지는 잘 모르겠지만)에서 문제라고 여겼던 것을 꿰뚫는 문장이라고 보여집니다.

  작금의 책마을의 상황 안에서, 소사라는 자리가 어떠한 불편한 지점을 차지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 적은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소사 선거’라는 일련의 이벤트를 통해 드러난 양상이 ‘소사’라는 자리가 저에게는 어떠한 불편한 지점으로 여겨지게 되었다는 거지요. 저는, 궁극적으로 이 불편함이 해소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해소되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어떠한 ‘최소한 견뎌낼 수 있는 정도로의 축소’는 무조건 필요하다고 봅니다. 원익씨의 글이 그러한 상황에 대한 제시로 끝났다는 것은, 저에게는 그러한 면에서 일종의 아쉬움입니다. 

18.1.17.63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12-07
17:01:29 



병장 김진호 
22.65.5.94   글을 쓰면서도 제대로 이해를 못한게 아닌가 두렵습니다. 
모든 자리가 그렇겠지만 소사라는 자리 역시 책임과 권리가 맞물려있는 자리입니다. 
소사라는 자리가 불편하다면 권리에 비해 동반되는 책임이 많다는 것이겠죠. 
결국, 소사라는 자리에 대한 책임과 권리에 대한 새로운 정립이 필요하다는 것 아닌가요. 

너무 쉽게 생각한건가요? 

참, 정치성의 문제에서 소사 자체에 대한 논쟁으로 옮겨오는 이 과정이 좀 신기합니다. 
얼쑤절쑤. 2009-11-05
16:47:06




병장 박원익 
54.1.24.102   질문에 제대로 대답할 수 있으려면, 제가 그 질문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어야겠지요. 제가 도대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의 여부를 궁금해 하시는 건지요? 

그리고 이것은 제 질문인데, 

왜, 소사 자리가 야기하는 불편함이 '축소'되어야 한다고 보십니까? 물론 제 의도는 당연히 그 불편함이 '문제적'임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축소'되고 간과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2009-11-05
21:14:48




병장 양동훈 
18.1.17.63   저는 때때로, 원익씨에게서도 그러한 상호인정의 모습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의 눈에만 그렇게 보였는지도 모르지만 말이지요. 그 틀을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축소되어야 한다'라는 것은, 어떠한 '불만족스러운 모습'이기에, 축소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축소라는 표현보다는, '해소'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군요. 껄껄. 2009-11-05
22:15:13




병장 박원익 
54.1.24.102   이것 역시 제가 어떤 형태로든 '인정'을 받으려는 것일지도 모르지요. 사실 이런 글들을 올리기에 앞서 어떤 '쪽팔림' 같은 것도 있고요. 하지만 그런 것들에 굴하지 않으려고 저 자신이 개인적으로 노력하는 중이라는 답변을 드려도 될련지요. 사실 제가 책을 읽는 이유는, 그리고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이냐고 물어도 될 것 같은데요. 사실은 제 독서행위나, 진호님이 말씀하셨듯이 기막힌 장문으로 점철된 제 글은 제 눈에는 하나의 '질병'에 지나지 않다는 사실을 저 자신에게 환기하곤 합니다. 적어도 증상에 탐닉하는 짓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지요. 

'문명 속의 불만'이라는 말이 있듯이, 지금 상황에서도 '책마을 속의 불만'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것이 축소되어야 한다기보다는 끊임 없이 상기되고 논쟁적인 방식으로 재각인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