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좋은님이 전화를 주셨습니다. 지난달 기사 중에 '장애인'이란 용어를 썼는데 그 말 대신 '장애우'라고 표현하는 게 좋지 않느냐고 하셨지요. 그때는 경황이 없어서 설명을 못 드렸는데, 요즘은 장애우란 말이 오히려 역차별 효과가 있어 쓰지 않는 추세라고 합니다. 사전에도 장애인이란 명칭으로 등재되어 있고요. 말 한마디, 용어 하나 고르는 일도 신중히 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관심 있게 지켜봐주세요.(장민형)
위 내용은 군에서 무료로 배급해주는 덕에 때론 유쾌하고 때론 가슴찡하게 보고 있는 월간지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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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정희진씨가 자신의 책 <페미니즘의 도전>에서 적절하게 비유했듯이, 약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하는 동물의 세계에서 먹는 자와 먹히는 자가 존재한다면, 인간의 세계에서는 정의하는 자와 정의당하는 자가 존재합니다. 신대륙이라는 표현은 유럽을 기준으로 한 말이며, 한국의 남해라는 표현도 제주도의 입장에서 보자면 북해가 됩니다. 유색인종이라는 표현 역시 백인을 기준으로 하여 나머지 인종을 깡그리 하나의 집단으로 묶어 버린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 사회가 장애인이라고 규정한 범주 내에 존재하는 사람들은 매우 다양한 차이들을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많은 경우에 장애인 내부의 차이는 비장애인과 장애인간의 차이보다도 큽니다. 다시 한번 정희진씨의 말을 빌리자면 장애인이 가진 다양한 차이들, 인간이 지닌 다중적 정체성에도 불구하고 한 인간의 정체성을 장애인으로 환원하는 것이 바로 '장애인'이란 표현입니다. 백인종의 입장에서 황인종, 흑인종, 혼혈인종은 모두다 유색인종일 뿐인 것처럼,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에서 장애인간의 차이는 별로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냥 장애인이라고 부르면 족한 것입니다.
뭐 어쨌든 우리 사회는 장애인이라는 용어가 공식 용어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장애인 단체가 단체 명칭과 단체에서 발간하는 잡지를 통해 '장애우'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이 용어 역시 시민사회단체들은 물론 방송계에서도 매우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장애를 지닌 사람에 대한 가장 올바른 표현은 무엇인가'라는 한 설문 조사에서 장애우라는 응답이 50%를 넘었다고 하니 그 영향력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여러 가지 논란 속에서도 굳이 이 용어를 고집하고 있고, 이를 공식 용어로 사용하자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어서 이것에 대해 왈가불가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 용어가 정치적으로 심각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정확히 지적되고 또 비판되어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장애우라는 표현, 즉 '당신은 우리의 친구입니다'라는 의미 구조 안에서 <당신은 누구이고 우리는 누구인가? 당신은 장애인이고 우리는 비장애인이다.> 라는 의미가 성립합니다. 즉 장애우라는 표현은 비장애인의 시선에서 장애인을 규정하고 있는 용어인 것입니다. 친구라는 의미를 나타내는 '우友'라는 표현은 문법적으로도 사람들 간의 관계를 나타내거나 2, 3인칭의 표현으로는 쓰일 수 있지만, 장애인이 자기 자신을 주체적으로 나타내는 1인칭의 표현일 수는 없습니다. "나는 장애우입니다"라는 표현 자체가 성립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한국 사회에 만연해있는 나이주의와 권위주의를 두둔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연령과 사회적 지위를 지니고 있는 모든 장애인이 나와 친구일 수는 없습니다. 역설적으로 나이주의가 매우 공고한 한국 사회에서 장애우라는 표현이 무분별하게 쓰일 수 있다는 것은, 비장애인과의 관계에서 불평등한 권력 관계가 반영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정확한 정치적 비판의 지점이 수반되지 않은 막역한 완곡어법을 사용하는 것은, 장애라는 문제를 사회 구조적인 것으로 바라보고 이를 해결해야한다는 문제의 핵심과 무관하거나 이를 비켜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이러한 표현은 장애라는 말 자체를 피하면서 무언가 긍정적인 방식으로 장애인을 표현하고 있는 것 같지만, 오히려 사회적 정상성이라는 문제제기를 회피하거나 이를 강화하고 있는 용어법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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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상병 정영목
장애우란 표현이 일종의 '차가운 악(뜨거운 악과는 달리 잘 감지되지 않고 오히려 종종 좋게 보이곤 하는 악)'이란 것이군요. 미처 생각지 못한 주제였는데, 잘 봤습니다.
전 장애인(a handicapped person)이란 표현이 맞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만. 흠. 분명 "나는 장애우입니다."라고 말할 수 없다는 점에서 '장애우'란 표현은 틀린 것 같고. 뭔가 PC한 용어가 따로 있는지 궁금하네요.
2008-02-11 12:14:20 | ipaddress : 52.2.1.39
03|병장 김상열
장애인분들이 자기들을 소개할때 '저는 장애인입니다.'라고 하는건 못본듯. 대부분 '저는 장애가 있습니다.'라고 말하지요. 말아톤에서도 '우리 아이는 장애가 있어요.' 라고..(먼산)
꼭 명사형으로 써야할까요? 장애인이든, 장애우든 그렇게 말하는 순간에 그 사람들은 '나와는 다른 어떤 것'으로 규정되어버리는듯한 느낌이 강한것 같은데.. 그냥 '장애가 있으신 분',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면 안되는지? 꼭 명사형이여야 할 필요가 있는지?
2008-02-11 12:51:59 | ipaddress : 52.2.8.232
문득 든 생각입니다만
우리가 장애人,友분들께 말을 더 가리고 바꾸려고 하는 것이
오히려 서로가 조심스러워지는 불편한 관계를 지속시키진 않을까 생각됩니다.
'아 맞어. 장애우라고 해야지.'
'아니야 장애라는 말을 쓰지말고 좋게 표현해서 말하자.'
이런 여러생각이 겹치는 가운데
장애우 분들의 앞에 서서 개혁을 단행하는 소수의 분들이
혹시나 다수의 평온한 장애우분들을 오히려 언짢게 하지는 않을까 우려가 됩니다.
2008-02-11 14:00:18 | ipaddress : 22.96.2.133
02|병장 장윤호
<페미니즘의 도전>, 좋은 책입니다.(웃음)
상열님 글을 보니 정말 한자어로 만든 조어는 약간 규정성이 강하다는 느낌이 드네요. 그에 비해 국어로 풀어 쓰게 되면 약간 임시적인 뉘앙스가 나구요. 그렇게 보니 아직 장애가 없는 사람, 혹은 '미장애인'이라고 쓸 수도 있는 것이구요.
어떤 것을 쓰는 것이 옳으냐 라고 이야기 하기는 힘들지만, '정의하고 정의당하는' 이 구도만큼은 염두에 두어야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2008-02-11 14:17:34 | ipaddress : 48.1.2.232
|병장 조승현A
"장애인"이라는 용어는
행정의 원활을 위해서 사람을 규정하고 인격을 배제시켜버린 단적인 예라 생각 되는군요.
이들은 행정적 혜택이나 보호를 받기위한 "법적장애인"일 뿐이라는 생각을 가지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미성년자, 주민등록번호가 1로 시작되는 남성, 주민등록번호가 4로 시작되는 2000년 이후 태생의 여성" 정도로요.
손이부러져 2급 장애인이 되신 분, 시력이 나빠져 1급 장애인이 되신 분
저부터라도 우선 그분의 이름은 누구누구이고, 그 다음에 손이 조금 불편하신 분
이렇게 생각하도록 해야겠어요.
제 이름이 조승현이고, 그 다음에 여자를 무지 밝히는 놈이듯이요.
2008-02-11 14:34:16 | ipaddress : 54.9.3.158
02|병장 이기중
장애우라는 말에는 시혜적 과잉친절, 착한 장애인 컴플렉스 등등의 뉘앙스도 있지요.
2008-02-14 13:35:09 | ipaddress : 56.4.2.227
02|일병 박종윤
한때, <마라톤>과 <맨발의 기봉이> 같은 영화들이 흥행에 크게 성공했던 때가 있었습니다.(혹시 <허브>도 들어갈까요, 그 영화는 보지 못했는데.)
이를테면 <포레스트 검프>의 하위적인 장르로서의 영화들이랄까요. 그것들의 영화적인 완성도는 논외로 하고, 그것들에서 보이는 인물character들의 공통분모, 그러니까 장르적인 묘사랄까요. 그것이 현실에서 일반인이 '장애인' 대신 '장애우'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연상하는 이미지와 상당 부분 밀접하지 않나 생각되네요.
몇가지 진부한 수식들이 있습니다. '순수함', '아이스러운', '감정적인'... 人에서 友로의 변화는 이러한 수식들과 관계없지 않겠지요. 장애인들이 진정으로 '권리'를 찾는데 있어서 '장애우'라는 명칭은 하등 도움될 것 없다는 판단입니다. 오히려 그것들이 가지고 있는 '선량한' 이미지들에서 준연님이 지적하신 것과 같이 행위의 주체성(agent적인 주체)는 휘발되기 마련이고, 우리에게 늘 보호받아야 된다는 (경우에 따라 폭력적일수도 있는) 담론이 주를 이룰 것입니다.(실제로도 그러한 인식이 퍼지고 있는 것이구요.) 장애/비장애의 환원되지 않은 적대에서 파생되는 정치적 행위들, 이를테면 장애인 이동권 문제로 투쟁하고, (유시민 복지부 장관 때) 한강 다리 밑에서의 투쟁하던 시각 장애인들은 '친구'의 표상과는 거리가 멀어집니다. 그들은 우리와 같은 정치적 행위자이며, 주체입니다.
준연씨(으허~)가 (푸코 식)역사주의적 관점으로 빠질 수도 있었는데, 장애인/비장애인의 구획-짓기에서 환원되지 않는 실재적인 차이에 대해서 잘 지적해주신 것 같습니다. 니체의 역능 개념을 토대로 하는 차이의 정치학들, 그러니까 들뢰즈/푸코로부터 최근의 네그리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차이에 대한 전적인 인정으로서 '연대'를 꿈꾸고는 하는데, 그러한 와중 소실되는 것은 오히려 '차이 그 자체', 실재적인 차이들입니다. 역설적이지만 하나의 '보편자'로서 치환되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는 차이를 인정하고 새로운 생성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아닌, 고통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실재적인 '적대'를 응시할 수 있어야 됩니다. 준연씨 말마따나, 회피하지 않고 사회 구조에 대한 정확한 비판 담론을 형성해야 되는 것이겠지요.
2008-02-14 13:58:02 | ipaddress : 26.144.1.29
병장 박준연
종윤 // '말아톤'이 아니었나요? 문뜩 종윤씨(응?)가 '말아톤' 이야기를 하니 05년 등록금 올리지 <말아돈>이 생각나는 이유가 뭘까..?
7공주가 부른 러브송의 노래에 가사를 바꾸었었지? 율동도 무척 쉬워서 따라할만 했었는데..
등록금 동결되는 날~ 총회가 성사되는 날~
학교의 주인되는 날까지 우리들 모두 함께해~♬
우리 등록금 올려서 대학발전 됐을까?
우리 등록금 올려서 배만 채운건 아닐까?
우리가 학교의 봉이냐? 등록금 동결 함께해
이젠 내 손으로 이뤄낼꺼야~ 워우워워~
맞나 모르겠네. 온새미로 생각나지 않아.(먼산) 준사마가 '여자를 내려주세요' 노래 패러디 '등록금 내려주세요' 보컬로 불렀다가 민기형한테 밀려난 생각도 나고..! 점점 3월이 다가오니 학교 생각도 많이 나고 내 마음에 그 덕에 설레네.(웃음)
2008-02-14 16:46:22 | ipaddress : 54.1.35.179
병장 김현진
'정치적으로 올바른' 단어 선택의 하나겠지요?
저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명사형으로 범주화하지 않으려구요.
2008-02-15 07:47:24 | ipaddress : 52.2.6.64
04|상병 이태형
장애인 본인들은 장애인이 아닌 사람들이 자신들에 대해 왈가왈부 하는걸 몹시 싫어한다더군요.
장애우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왜 니들과 친구야!?' 하면서 화를 냈다던..
2008-02-20 13:31:02 | ipaddress : 18.33.9.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