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병장 이승일 04-19 04:34 | HIT : 286 



#1
 우리는 세상이 '어떻게' 존재하는가에 관해 매우 궁금해한다. 그리고 그것이 존재하는 방식을 알게되면 매우 놀라워한다. 우리는 그것에 경이로움을 표한다. 자연과 추상의 세계는 여러모로 상상할 수 없을만큼 경이롭다. 세계가 저렇게가 아니라 이렇게 존재한다는 것은 정말로 신기한 일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로부터는 별 다른 경이를 느끼지 못한다. 왜 아무것도 없지 않고 무언가 있는지에 관해서는 그다지 신기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이 사유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자신감있게 말한다. "원래 있는거지" , "있으니깐 있지" 

#2 
 우리는 '물리주의' 라는 말 안에 굉장히 불편한 두 존재 형태가 혼숙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물리학은 물질 존재를 인정한 뒤, 그 물질적 대상들이 보여주는 관계의 법칙성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다. 만약 이것이 허구가 아닌 진짜 법칙이라면, 다시 말해 이 법칙이 실재하는 것이라면, 그래서 물리학이 참이고 물리주의가 참이라면, 이 법칙은 비물질적인 존재가 되며, 물리학은 근본적으로 이원론적임이 밝혀지게 된다. 즉 물(物) + 리(理) 학. 
 물리주의는, 물리학이 정말로 참이라면,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정 반대의 모습이 되어버린다. 

#3
 인간의 지성이 세계의 가장 넓은 영역을 통찰하고 있을 때는 자신의 한계를 숙고하고 있을 때이다. 
" 어떤 것도 모든 것을 담을 수 없다."- 이것은 모든 것의 집합 U 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수학적 사실에 대한 비유적 표현이다 - 고 말할 때, 우리는 이 명제의 부정에 그나마 가장 가까이 가있다. 

#4
 뉴턴 물리학에서 힘이란 일정량의 질량에 일정량의 가속도를 제공하는 물리량이다. 여기서 힘과 가속도는 벡터량이고, 방향이 포함되어있는 양이다. 이 때의 방향이란 제공한 힘의 방향과 일치해야한다. 즉 내가 힘을 준 바로 그 방향으로의 가속도만 나의 힘에 의해 직접 발생한 것이며, 나머지는 그 힘의 왜곡 혹은 외부적 힘에 의해 발생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 의지' 를 아주 많은 차원의 위상공간에서 작용하는 힘으로 간주할 수는 없을까? 나는 어떤 의지를 갖고 무언가를 명령한다. 그리고 그 일이 일어난다. 이 일이 내 의지에 의해 일어난 일이려면, 그것이 나의 의지와 '같은 방향' 에 놓여진 일이어야 한다. 물론 여기서 방향이란 공간적 방향이 아니라 언어적, 혹은 심지어 논리적 의미에서의 방향이다. 
" 수건 좀 가져와". 그리고 후임이 수건을 가져온다. 나의 의지는 실현되었다. 
" 수건 좀 가져와." 그리고 후임이 양말을 가져온다. 나의 의지는 불완전하게 실현되었다. 그러나 후임이 아무 것도 가져오지 않은 경우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실현된 것이 분명하다. 

#5
 다음의 논리규칙
-(P → Q) → -Q
 내 두뇌는 -(P → Q) 에서 -Q 를 이끌어내는데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이것은 논리적 규칙이 이행하는데에 실제로 시간이 필요로 한다는 뜻은 아니다. 논리적 혹은 수학적 규칙의 이행은 탈시간적이며, 이것은 논리학과 수학이 물리세계과 구분되는 가장 중요한 측면 중 하나이다. 물리세계에서는 어떤 진행이 일어나기 위해서 반드시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빛의 속도가 무한대라고 해보자. 로렌츠 변환식의 1-(v/c)² 가 1이기 때문에 (어떤 수학자들은 1로 수렴한다고 말할테고)  상대성 효과는 전혀 발생하지 않는다. 시간은 어디서나 완전히 절대적이게 된다. 
 무엇보다도 정보 전달에 시간이 소요되지 않는다. 만약 빛의 속도가 무한대였다면, 논리학과 수학은 그 자체로 또한 물리학이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이 우주에서 빛의 속도가 가장 빠른 속도이면서도 여전히 유한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6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 그 사람은 이 나라의 법을 따른다. 그러나 그러지 않을 수도 있었다. "

 그러나 왜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은 이상한가?
" 사물들이 물리법칙을 따른다. 그러나 그러지 않을 수도 있었다. "






 상병 나상빈 
6 / 물리법칙에는 지배당하는것. 법에는 지배당할수도 있지만 그것은 단지 약속일뿐? 

1 / 저는 전기라는거 자체가 있는것 인터넷이 있는것에 대해 아직도 경의를 표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마저도 익숙해지고있지만.. 04-19   

 병장 심승보 
 음, 우선 "로렌츠 변환식의 1-(c/v)²" - 이 대목에서 c와 v의 위치가 뒤바뀌어 있습니다. (웃음) 04-19   

 병장 박희원 
 저같은 경우에도 1번인 경우에는 많이 생각하죠, 결론은 조금 다르게 나타납니다. 뭐 결국 종교적으로 다가가는점 때문이긴 하지만, 정말로 이 세상의 이 모든것들이 있는것 자체가 저는 신기하기만 합니다. 허허. 04-19   

 병장 박효승 
1// 저는 사람이 이런 생각을 하는게 가장 신기하고 ㅇㅇ스럽습니다. 
 이성을 가진 인간. 현재 지구에서는 다른 종족 아무도 이런 생각을 하지않으니까요 
 오로지 인간이니깐, 이 답도 없는 질문을 계속 하는것 같습니다. 
 언제쯤 답이 나올까요? 저도 한번씩 생각하지만 답은 매번 비슷하게 나옵니다. 
 우리, 그 것들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정말 궁금하고, 신기하지만. 
 우리, 그 것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살아가는 모든 것에는 
 존재의 의미,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 존재의 사명을 위해. 
 즐겁게 인생을 열심히 살려고 합니다. 
 글재주가 없어서 전달이 잘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04-19   

 병장 성태식 
 안타깝게도 동의할 수 없습니다. 

#1 - 사물의 존재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웃음) 

#2 - 그 법칙은 운동에 대한 기술일 뿐입니다. '태식이는 달린다.'라는 말에서 '달리기'라는 사물이 실재한다고 생각하기는 어렵지요. 하나의 원자가 다른 장소로 움직일 때, 그 움직임에 대한 기술이 실재한다고 생각하기도 어렵습니다. 
' 열'이라는 단어는 명사의 형태를 지닙니다. 우리의 언어 속에서 '모니터'나 '키보드'와 같은 사물로 이해되지요. 이러한 이해 때문에 플로지스톤설이 나타났으며 플로지스톤설 때문에 열의 원인에 대한 정확한 설명이 늦어졌습니다. 이 점을 고려할 때 모든 것을 일종의 실재로 전재하기가 매우 까다로워집니다. 

#3 - 음 이 부분은 거의 동의합니다. 한계를 확장시키는것 보다 더 넓은 생각의 활동은 있을 수 없지요. 

#4 - 이 내용은 당위적 문제를 사실의 일종으로 간주하는 듯합니다. 사실 저도 미시적 수준에서 당위와 사실이 구분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추측은 합니다만. 원칙적으로 당위와 사실은 다릅니다. 의지를 어떤 가능세계 속의 힘의 일종으로 간주한다면, 그 힘에 대한 의지적 작용의 문제를 추가적으로 제기할 수 있습니다. 

#5 - 일단 그렇기 때문에 논리학적 규칙과 수학적 규칙은 현실 세계에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 규칙들은 어디에 존재할까요? 어딘가에 존재한다면, 우리가 어떠한 방법으로 그 세계를 알 수 있을까요? 
 우리의 추론 을 통해 그 논리규칙의 세계를 알 수 있다면, 그 논리 규칙의 실재성은 우리의 추론을 넘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합니다. 

#6 - 법을 따르는 것은 의지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물리적 규칙은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건 단지 우리의 의지 뿐이지요. 우리가 왜 물리규칙에서 벗어날 수 없는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지금까지 벗어나지 못했으며 벗어날 일말의 가능성도 없다는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글쎄요. 초능력이나 기적같은 것을 감안해 본다면 다른 대답이 나올 수도 있겠군요. 그렇다면, 역으로 말해 초능력이나 기적은 절대 밝혀져서는 안되겠지요. 그게 밝혀지는 순간 일종의 법칙으로 포섭되어 버릴테니까요. 


 전반적으로 자유연상에 가까운 내용 같아 뭐라고 이야기하기 난감한 측면이 없지는 않습니다만... 외려 그 덕에 생각의 주요한 전제가 잘 드러나는군요. 04-19   

 병장 이승일 
 태식 / 물리법칙이 필연적이라는 주장을 받아드릴 경우, 그 법칙을 양화시킬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이미 논리적으로 증명되어있습니다. 그래서 파인만 같은 학자는 애를 써서 '과학법칙은 필연적이지 않다' 라는 것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근사치' 라는 것과 '필연적 법칙' 이라는 것은 아주 다른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태식씨가 6번 리플과 같이 말할 때, 즉 "일말의 가능성도 없다" 다시 말해 "필연적이다" 라고 말할 때, 태식씨는 스스로 작성하신 2번의 리플과 모순을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태식씨는 모니터의 존재도 받아드리지 못하기 때문에 그 이상의 존재를 받아드리는 것은 무리겠죠 (웃음) 그러나 태식씨는 분명히 퀄리아의 존재를 받아드립니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4번의 경우, '의지적 작용의 문제' 가 무엇인지 명료하지 않군요. 
 또한 당위와 사실이 정말로 '원칙적으로' 구분되는 것이냐 하는 문제는 증명되어야할 문제이지 이미 자명한 문제가 아닙니다. 거기에는 아무런 근거도 없습니다. 예컨대 우리는 모든 입자들이 너무나도 착해서 의지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물리 법칙에 잘 순응한다 라고 서술할 수도 있습니다. 혹은 생각만큼 착하지는 않아서 양자역학적 불확실성을 보여준다고 서술할 수도 있죠. 물론 진짜로 그렇다는게 아니라, 당위와 사실을 원칙적으로 구분지을 수 있는 합리적인 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승보 / 고마워요. v/c 가 맞죠. 

 그나저나 승보형, '동양사상의 불합리함' 에 대한 답변은 언제쯤 ? 
 곧 제대하면서 (웃음) 04-19 * 

 병장 성태식 
1. 양자역학의 비결정론적 세계관은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고려할 때 필연적이다라는 말 자체가 성립하지 못하지요. 필연적이다라는 말에 대한 해석을 재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2. '성태식은 퀄리아의 존재를 인정한다'라는 명제를 승일씨는 참으로 판정하시고, 저는 거짓으로 판정합니다. 또한 설령 제가 퀄리아의 존재를 인정한다고 해도 그 사실을 입증할 만한 충분한 근거는 없습니다. 충분한 근거가 있더라도 여러 사람에게 입증할 수단은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퀄리아의 존재에 의지하지 않고 인간의 사고를 설명할 수 있다는 제 주장에 대해 충분히 변호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모니터의 존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다고 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에 사실의 존재를 가정하고 여러가지 현상을 설명하기에 사실의 존재를 가정하지 않고 여러가지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한다고도 이야기했습니다. 빨간색에 대해 쓴 글의 마지막 부분에 아마 나올겁니다.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이야기했는데... 승일씨께서 저의 생각에 대해 상당히 오해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군요. 04-19   

 병장 이승일 
 태식 / 결정론적인 것과 필연적이라는 말을 혼동하셨군요. 비결정론적인 이론은 그 자체로 필연적일 수 있습니다. 결정성과 필연성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태식씨는 스스로의 생각이 어떤 것도 양화시키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고 계시겠지만, 단지 모든 것을 불확실하게 양화시키고 계실 뿐입니다. 태식씨는 단지 아무 말도 하지 않으시고 계신 것입니다. 태식씨는 양화라는 것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가변적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으신 것입니다. 때문에 객관적인 존재는 없지만, 언제나 우리는 무언가 존재한다는 가정을 깐다는 것, 그리고 언어의 의미는 바로 그러한 임의성 위에서 드러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많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두 곧바로 논리적 오류를 드러내었습니다. 그것은 매우 흔한 오류입니다. 물론 흔하다는 것이 중요한게 아니라 오류라는게 중요하겠지요. 

 한편, 태식씨는 4번에서 '우리의 추론을 통해 논리 규칙을 알게된다' 는 의견을 피력하신 것 같은데, 대체 어떤 추론이 우리에게 논리규칙을 알려주는지 궁금하군요. 오히려 그 추론을 구성하고 있는 것들이 논리규칙들일텐데 말이지요. 04-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