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이젠 장대한 스페이스 파노라마(Remix)다!! (상병 안대섭/050830)
사실 나는 어제 인성검사에서 내 인생은 실패로 가득찬 느낌이 들때가 있다, 라는 질문에 솔직히 대답하지 못했다.
조금 망설이다 '꼭, 그렇지만은 않아...'라고 대답하고 싶은 내 심정을 돈 꽤나 받고 설문지를 만들었을 사람들이라면 조금은 알아주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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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넉한 집안살림, 유복한 환경에 어디 특별히 아픈곳 하나 없고 그럴듯한 대학진학에 군생활도 이제 반즈음을 향해 치달아가고 있는데. 그런데, 세상이 싫어 머리카락이 날락말락한 주제에 출산 예정일 보름이 지나서도 나오기 싫어 발버둥쳤던 못난 아들을 지금도 걱정하고 계실 부모님껜 죄송스럽게도 나는 감히
'나를 키운것은 8할이 삽질이다'
라고 말하려 한다. (비뚤어진거 보면 일단 인간성은 실패했구나, 하시는분도 계시리라!)
절대 태어나자마자! 아무런 죄없이 인큐베이터에서 섭씨 40도로 뜨겁게 달궈지는 형벌을, 고통을 받았기에 이렇듯 쉽게 실패를 말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건 아니다. 그게 기계고장이었든, 간호사의 어리버리함 혹은 숨겨진 파괴본능이었든...아무튼 그건 중요하지 않다. 시덥잖은 헛소리로 차있는게 태반이지만 어쨋든 뇌용적이 줄어든것 같진 않고, 차라리 FBI, 더 나아가 외계 생명체가 어떤 두려움(!) 때문에 미리 조치를 취한 것이라 아무 생각없이 떠벌리고 다니는 편이 훨씬 도움이 될테다.
외계인? 외계인! 어?? 그렇구나! 나 외에도 많은 지구인이 외계인에게 그 날개를 펼치기도 전에, 혹은 얼마 날아오르지도 못한 채 꺾였다. 러브호텔 러브체어보다 낯뜨겁고 뻔뻔하게 달아오르던 인큐베이터, 학주한테 종아리 18!!대를 맞고 한동안 걷지를 못해 아버지 차로 등하교 하며 부르주아 쥬니어 행세하게 만들었던 모의고사 성적(나의 정치적 오점이랄까), 그리고 결정적 증거로 나를 좋아한다고, 그렇게 날 흔들어 놓고 그냥 떠나버린 그녀, 그녀의 흔적(2.7, 2.3. F를 제외한 평점이다.)! 울엄마를 제외한 모든 여자는 외계인이었어! 이건 명백한 지구침공이다!!!
역사라는게 항상 그렇듯, 누구하나 앞장선 사람 없이도 지구인은 세력을 규합했다. 가장 박해받은 자들(이라 쓰고 상태 안좋은 애들이라 읽는다) = 가장 뛰어난 자들이 모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건 그들의 전력을 간단히 훑어보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집구석에 틀어박혀 식음전폐하다 애완 고양이 붙잡고 펑펑 울었다는 자(고양이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위로해주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동아리방에서 손에 피가 날때까지 신들린 베이스 연주를 했다는 자(음악! 음악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힘 중에 하나이다),
영등포까지 고백하러 갔다 차이고 돌아오는 슈퍼마켓에서 소주 한병 사 원샷하고 종로2가역에서 뭐야 하나도 안취했잖아!!! 를 외친 후 귀가, 아버지를 붙잡고 울었다는 자(아들은 낳아봤자 외간여자한테 간과 쓸개를 무상제공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한다), 기타등등 기타등등 다수생략....
소크라테스 수염을 잡아 당기고 피타고라스를 삼각자로 x침 놓아주는 등 맹활약하던 우리는 지난해 네 부동산이 은행에 차압 당해도 노여워하거나 슬퍼하지 말라고 혹세무민한 푸쉬킨이라는 자를 추적하는 활동을 마지막으로 잠정 휴식기간에 들어가야했다.
비록 그들은 이 날을 예상하여 수십년전부터 온갖 관습과 규율, 군문화, 그리고 그들의 비밀병기-어리버리 부사수와 그의 늘어지는 말투! 젠장!!-를 준비했지만 나는 오늘도 지구인으로써의 고매한 지성과 자긍심을 힘겹게 지켜가고 있는것이다.
언젠간 그날이 오리라. 변절자 푸쉬킨을 동대문 밀리오레 정문에 내걸고, 이반 데니소비치 형제가 출소할 때 도스토옙스키가 바덴바덴에서 터뜨린 잭팟으로 기름진 음식과 미녀들을 대접할 날을 기다리리라. 그땐 오네긴 경도 17세기 초의 따냐와 19세기의 따냐 양쪽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지구인 만세! 혁명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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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가 필요한건 항상 옳은 일이라고 믿는건 어리석지만...
형은 말하곤 했어. 내가 너희들을 좋아하는건, 우리가 서로의 약점을 아무 조건 없이 서로에게 내보여줬기 때문이라고.
술에 절면 다음날 자기 핸드폰에 찍힌 옛여인들과의 통화목록을 보며 괴로워하는 사람이긴 했지만 말이야. 그래서 더 즐거워. 팩트가 팩트를 증명하는 이 순환고리가. 옛여인 목록 젤 위에 그녀 이름이 찍혀 있어도, 난 잘 견디니까.
병장 여은운 (2005-08-30 15:57:44)
하K. 엄청나게 괴로운 만큼 더 즐겁겠군요!!!!!!!
상병 김강록 (2005-08-31 15:00:09)
플라톤은 위를 가리키며 밀어치기를 말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아래를 가리키며 끌어치기를 말하던 아카데미아 당구장 입구에 붙은 '기하학을 모르는 자 들어오지도 말라'라는 말에 이럴 수는 없는 일이라고, 우리의 당구가 이토록 독선적일 수는 없는 것이라고, 절규하며 한 선수가 떠났습니다.
입대를 한달여 앞두고 먼저 군에 가있던 大영일고등당구스쿨 공채 24기 문래동 최프로에게 면회를 갔습니다. 복귀 시간은 다가오고...경기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이 녀석 고기국은 한 그릇 먹이고 들여보내야 할텐데, 경기를 일찍 끝내려는 저의 마음은 처음으로 승부욕이 아닌 친구를 위한 이타심으로 불타올랐습니다. 처음으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한 당구를 쳤습니다. 이것이 당구라고, 진짜 당구는 가슴으로 치는 것이라고, 당구는 휴머니즘이라고, 팽팽 도는 끝내기가락은 이미 새로운 세상 위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날 당구장에서 흘렸던 뜨거운 눈물을.
반갑습니다. 동지!